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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N의 밤
작가 : MrNerd
작품등록일 : 2016.8.22

격리된 구역, 생존자, 그리고 좀비

 
<1부 : 낙조> - 6장 : 혐오
작성일 : 16-09-06 12:08     조회 : 540     추천 : 1     분량 : 1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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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표는 중앙에 있는 머리가 벗겨진 남자로 정했다.

 

 자다가 변을 당한 건지 남자는 팬티 바람에 맨발을 질질 끌어당겼다. 한쪽 팔은 어깨 죽지만 남아있었고 얼굴의 반이 날아가 검붉게 물든 두개골이 그대로 보였다.

 

 보기는 괴로웠지만 초짜 연습 상대론 제격이었다. 제대로 사람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녀석이라면 외려 망설여지게 된다.

 

 “좋아, 제대로 잡았지?”

 

 건호가 승재 옆에 엎드려 자세를 봐주었다.

 

 그러나 조준을 하고 있는 소년의 자세는 별달리 지적할 만한 점이 없었다. 그는 내심 놀랐다. 단기간에 이 정도까지 따라올 줄을 몰랐다. 이제 초짜용 시체는 졸업시킬까.

 

 아니, 아직은 모를 일이다. 그는 평소처럼 사격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다시 일러주며, 준비가 다 되면 쏘라 말해 주었다. 제대로 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것도 덧붙였다. 맞추는 게 아니라 쏘면.

 

 사실 승재에게 부족한 건 소질이 아니었다. 평소에 운동을 해둔 것도 있었지만 소질 자체는 오히려 그보다 더 좋았다. 그러나 아무리 재능이 좋아도 승재는 아직 아이였다.

 

 요 며칠 동안 시체를 제대로 맞추진 못한 건 총알이 빗나간 것보다는 방아쇠를 제대로 당기지 못한 탓이 컸다. 최근에는 시체를 맞추긴 했지만 머리에 명중시키진 못했다. 억지로 쏘고 있기 때문이란 걸 그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아직 승재는 손가락에 달라붙은 망설임을 쉬이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래도 처음보다는 나아졌다. 첫날 조준한 상태로 흐느껴 울었던 걸 그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속으로 욕하면서 눈물범벅이 된 조준경을 닦았던 것도.

 

 녀석의 숨소리가 갑자기 변해 건호는 그쪽으로 신경을 기울였다. 어깨가 거칠게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가 신호를 보내자 그 패턴은 점차 변해갔다. 처음엔 여전히 빠르게, 점점 느려지다가…… 순간 총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화약 냄새가 옥상에 진동했다.

 

 시체가 바닥에 처박힌 채 피를 흘렸다. 승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 광경을 지켜봤다.

 

 “잘 했어.”

 

 그는 웃으며 승재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두 가지 의미에서의 칭찬이었다. 제대로 잘 쐈다는 점과 자신이 한 짓에 대해 도망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런 게 아니라고 입으로 말했지만 녀석도 겸연쩍게 웃었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거에요?”

 

 승재가 그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순간이었지만 그 눈에서 무언가가 사라진 걸, 그는 보았다.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다.

 

 “그래야지. 바로 할 수 있겠어?”

 

 물어볼 것도 없었다. 승재의 눈이 불타올랐다. 방금 전에 고기 맛을 알게 된 맹수처럼.

 

 “그래, 그럼 해보자. 자, 어떤 녀석으로 정할까.”

 

 먼지로 덮인 도시 전경을 눈으로 좇으며 다음 표적을 물색했다.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 시체가 적어 금방 찾을 것 같았지만 마음에 드는 건 생각보다 보이지 않았다.

 

 “흠, 생각만큼 찾기가 쉽지가 않구나.”

 

 “저, 아저씨?”

 

 “음, 왜?”

 

 그가 조준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되요?”

 

 조심스럽지만, 기분이 좋다는 건 감추지 못한 말투다. 옥상에서 사격을 가르치게 된 이래로 거의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녀석, 그 정도 갖고 우쭐하긴.

 

 “말했잖아, 궁금한 거 있으면 그때그때 물어보라고.”

 

 “화 안 내실 거예요?”

 

 “질문 내용이 뭔지에 따라 다르지. 그래도 한 번 물어봐. 궁금하니까.”

 

 “그냥 딴 건 아니구요.”

 

 승재는 거기서 잠시 사이를 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여기서 안 나가시는 거예요?”

 

 “첫날에 말했잖아, 사냥꾼이라고.”

 

 “그건 저도 알아요. 제 말은 왜 사냥하고 계시는 거냐고요. 그러니까 아저씨는 저희랑 다르게 밖에 마음대로 나가실 수 있잖아요? 잘은 몰라도 범죄자도 아닌 것 같고.”

 

 승재는 계속해서 말했다.

 

 “제가 밖에 나간다면 절대로 다시는 이런 데 안 올 거예요. 아니 제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그렇잖아요? 근데 왜 굳이 여기 있는 거예요?”

 

 “그게 그렇게 궁금하냐?”

 

 “예.”

 

 “왜?”

 

 “그게…….”

 

 승재가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계속 같이 있었는데도 아저씨 얘길 들은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얘기해달라고? 왜 사냥하는지?”

 

 승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잠시 아무 말이 없자, 소년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화나셨어요?”

 

 화 낼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굳이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상 별 상관도 없는 애한테? 표면적으로는 사제 관계일지도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관계다. 발목을 잡을 것 같으면 버리겠다고 그 스스로 직접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런 생각보다도 먼저 건호의 입이 열렸다.

 

 “별 이유는 없어. 그냥, 음, 난 네크로포비아거든.”

 

 “예?”

 

 “시체에 대한 공포증이라는 거야.”“시체가 무섭다고요?”

 

 이전에 악몽을 꿨다고 말 했을 때의 민아랑 똑같은 반응이다. 남매의 표정이 똑같아, 털보는 피식 웃었다.

 

 “그래, 내가 어휘 선택을 잘 못했구나. 딴 게 아니야. 나는 시체가 싫어. 혐오스럽지.”

 

 의도치 않게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아내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아들의 작디작은 손이 가슴 살점을 파고든다.

 

 “그래서 다 죽여 버리고 싶어. 말이 이상하지만, 그 뿐이야.”

 

 총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얼굴로는 웃을 수 있지만 역시 아직까지도 마음으로는 웃을 수 없었다. 승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숙연해하는 소년의 얼굴 너머로 산에 박힌 거대한 크레이터가 보였다. 그는 다시금 그걸 만들어낸 운석을 저주했다. 그리고 그 날 있었던 모든 일을 저주했다. 왜 하필 여기에 떨어졌던 걸까? 물론 다른 곳에서도 운석이 떨어지긴 했었다. 하지만 동시에 전혀 운석이 떨어지지 않았던 곳이 훨씬 많았다. 왜 하필 이곳이었을까? 왜 이 동네는 그 많고 많은 동네에 들어가지 못할 걸까?

 

 잠시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죄송해요.”

 

 승재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뭐가?”

 

 “그냥, 뭔가 괜한 거 물어본 거 같아서…….”

 

 “괜찮아.”

 

 그가 살짝 웃어보였다. 가족을 잃은 건 그 뿐만이 아니다. 애 앞에서 아프다고 징징대는 건 어른스럽지 못하다.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했잖아. 뭐 또 궁금한 거 없어? 아, 그러고 보니까 민아가 그러더라.”

 

 “예, 뭐가요?”

 

 “아저씨는 왜 총을 잘 쏘냐고. 너는 안 궁금해?”

 

 소년이 약간 망설이다가 웃으며 물었다. 조금 아파보이는 미소다.

 

 “궁금하죠. 예전에 뭐 하셨길래 사격을 그렇게 잘해요?”

 

 “별 거 없었어. 그 날 이전까지 가족이랑 살면서 평범하게 직장 생활했지.”

 

 “무슨 일이었는데요?”

 

 “그냥 회사원이었어. 남들이랑 별반 다를 것도 없었지. 뭐냐 그 표정은.”

 

 “아니, 뭔가 이상해서요.”

 

 “어디가?”

 

 “그냥 회사원이 총을 그렇게 잘 쏴요?”

 

 “취미거든.”

 

 건호는 빙그레 웃어보였다.

 

 “아버지가 중학생 때부터 자주 시켜주셨어. 아버지가 군인이라서 말이야, 그럼 총도 있겠다고, 나도 한 번 쏴보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더니 바로 사격장에 데려가더라고.”

 

 “조기교육… 비슷한 건가?”

 

 “글쎄, 그건 잘 모르겠구나. 이런 얘기하면 다들 아버지가 날 군인으로 키우고 싶어서였다고 생각들하는데, 흠, 그건 아마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냥 내가 사격에 흥미를 보여서 시켜주신 걸 거야. 당신은 생전에 한 번도 내 장래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한 적이 없었거든.”

 

 그는 차츰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갔다. 군복을 입고 있던 아버지의 입은 항상 닫혀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가 일하던 곳을 간 것도 기억났다. 모두가 아버지 같이 우중충한 옷을 입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쩐지 자신만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아 그는 몹시 두려웠었다. 그 이후로 그가 아버지를 따라가는 일은 없었다.

 

 “되게 부러워요.”

 

 승재가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말투로 중얼거렸다.

 

 “저희 아버지는 이것저것 간섭을 많이 하셨거든요. 제가 민아 또래면 또 모를까 벌써 이렇게 컸는데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너무하죠.”

 

 “잔소리하는 아버지가 원래 좋은 거야.”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녀석이 아직 19살이라는 게 다시 떠올랐다.

 

 “우리 아버지는 사실 너무 관심이 없어서 탈이었거든. 내가 우리 마누라랑 결혼할 때도 그냥 그러라고만 하셨다고. 딴 말도 아니야. 그냥 그러래. 마음에 들었는지 아닌지 정도는 말해줘야 될 거 아니야? 그거 때문에 나중에 장인어른 만날 때 얼마나 가시방석이었는지 알아?”

 

 승재가 쿡쿡거렸다.

 

 “그… 사모님? 아내분? 아무튼 뭐라 하셨어요?”

 

 “우리 집사람도 당황스러운 거야 똑같았지. 시아버지란 사람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래’ 한 마디 하고 넘어갔는데 괜히 자기가 미움받을만한 짓을 한 건 아닌가 계속 고민했대.”

 

 녀석은 계속 쿡쿡거리다가 이내 폭탄이 터지듯 큰 소리로 낄낄 웃어댔다.

 

 “대체 뭐가 웃겨?”그렇게 묻는 그의 입가에도 웃음기가 번져 있다.

 

 “솔직히 웃긴 얘기잖아요. 그리고 신기하기도 해서요. 아저씨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게.”

 

 “지금도 난 평범해.”

 

 그가 활짝 웃었다.

 

 “아 아저씨는 뭐 물어보고 싶은 거 없어요?”

 

 “응?”

 

 “저번에 그랬잖아요. 서로 하나씩 묻고 답하는 거.”

 

 “아, 그거. 글쎄 딱히 없는데…….”

 

 “어?”

 

 승재가 갑자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왜 그래?”

 

 “아니, 저 쪽에 사람이 있었던 것 같아서…….”

 

 승재가 건물 구석을 가리켰다.“어디? 안 보이는데?”

 

 “아, 잘못 본 것 같아요.”

 

 “싱겁긴. 아 그래, 요새 민아는 안 때리지? 동생한테 너무 그러지마.”

 

 승재가 그 말에 순간 흠칫했다. 기분 탓인가. 녀석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자식, 왜 아무 말이 없어?”

 

 “아저씨,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조심스러운 목소리. 이번엔 뭔가를 참는 듯 목소리가 낮게 깔려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였을 것이다.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위태롭게 들렸다.

 

 “뭔데?”

 

 “누가 아저씨 어머니를 죽였다면, 아저씨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요?”

 

 “뭔 소리냐?”

 

 “어렸을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승재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칼로 잘라내듯 힘겹게, 또박또박.

 

 민아가 태어난 날은 비가 내렸다고 한다. 승재도 아버지도 모두 학교와 회사에 가있던 때였다.

 

 예정보다 훨씬 빠른 산통이 닥쳤고 소년의 어머니는 이웃집 차를 타고 산부인과로 향했다. 아버지에겐 일이 그렇게 됐다고 이웃집에서 전화해준 뒤였다. 그런데 차가 막 큰 길에 접어들었을 때 일이 터졌다. 때마침 뒤에서 오던 차가 그들을 들이 받은 것이다. 어릴 적 일이라 승재는 구체적인 사고 상황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상당히 크게 들이받았다고 했다. 양측 운전자가 모두 사망했을 정도로. 어머니와 아기는 살아있었지만,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숨만 간신히 붙어있는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얘기에서 흔히 나오듯 곧 어머니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누구를 살리느냐? 자신을 구할 것인가, 아기를 구할 것인가? 그러나 답은 정해져있었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어머니는 아기를 택했다.

 

 “그 아기가 민아구나.”

 

 승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

 

 “저도 그게 민아 탓이 아니란 걸 알고 있어요.”

 

 승재가, 아니 소년이 절박하게 외쳤다.

 

 “사실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엄마차를 친 사람도 피해자에요. 나중에 경찰에게 얘기를 들었는데 신호를 어긴 건 엄마가 탄 차였어요. 들이받은 쪽은 가만히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거죠. 아, 이웃집 아줌마가 잘못했단 것도 아니에요. 엄마가 아파하시니까 서둘러 가려고 했던 것뿐이었겠죠. 그러니까…… 잘못한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민아는 살았지. 둘은 죽었지만. 아니 정확히는 셋이지.”

 

 “…….”

 

 “그러니까 미워하겠다는 거 아니냐? 그래서 때리는 거고. 죽은 놈들은 미워할 수도 때릴 수도 없으니까.”

 

 “그건 아니에요.”

 

 “뭐가 아닌데?”

 

 “그럼 저보고 어쩌라구요! 안 된다는 건 아는데 자꾸 생각난다고요. 민아가 엄마를 죽였다고 계속… 계속 떠오른다고요!”

 

 소년이 악을 썼다. 소년의 눈가에 눈물이 조그마하게 맺힌다. 누굴 위한 눈물일까.

 

 “나도 알아요.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내가 얼마나 더럽고 추한 새낀지. 나도 안다고요. 그래도 마음대로 안 되는 걸 어떡하라고요! 아저씨는 그럼 사랑할 수 있어요? 사랑할 수 있냐고요!”

 

 자조인지 절망인지 모를 감정이 입속에서 튀어나온다. 하지만 어느 쪽이건 상관없었다. 그에게 있어 그런 고민은 그 날 이미 사라졌다. 자의였든 타의였든.

 

 “한가하네. 그런 고민도 하고.”

 

 그는 망설이지 않고 받았다. 속으로 소년의 젖내 나는 오만함을 비웃으면서. 겨우 그 정도 가지고 더럽다고? 사랑할 수 있냐고?

 

 “너 정도면 양호해. 그보다 더한 것도 숱하게 봐왔거든. 어떻게 보면 시체들보다 인간이 더 무서워. 시체는 항상 그 상태지만, 인간은 얼마든지 추악하게 떨어질 수 있으니까. 아직도 엄마 찾아 징징대는 마마보이야 오히려 귀엽지.”

 

 승재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마지막 문장에선 흠칫했다. 분노인지 수치인지 모를 깨달음이 소년의 얼굴에 번졌다.

 

 그 역시 말하는 도중에 깨달았다. 이 녀석들은 그저 의뢰인이 찾는 것일 뿐이다. 가족 따위가 아니라. 자신이 그 동안 얼마나 물렀는지 반성했다. 무뎌진 감이 다시 날카롭게 되돌아오고 있었다.

 

 “네가 동생을 미워하든 어쩌든 세상은 널 신경 쓰지 않아. 더군다나 이런 세상일수록 더하지. 동생을 버리고 가고 싶다면 난 찬성이다. 음식도 총알도 더 아낄 수 있거든. 어쨌건 중요한 건 네 선택이야. 깨끗한지 더러운지를 따지는 건, 것도 요즘 같이 엿같은 시대에 그딴 걸 따지는 건 무의미해.”

 

 건호는 잠시 멈춰 소년의 반응을 살폈다. 승재는 허공을 노려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으로 봐서 듣고 있는 것 같았지만 확실하진 않았다. 그는 한숨 쉬며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그러니까 네 마음대로 해. 난 손님이고 결국 집주인은 너니까. 의뢰야 다른 것도 많거든.”

 

 그리고 한참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털보 쪽이 먼저 침묵을 깨긴 했지만 그것은 그저 단어였다. 그는 ‘하반신 없이 기어 다니는 놈’이라고만 중얼거렸다. 소년은 장전을 한 뒤 방아쇠를 당겼다. 지금까지 중에 가장 빠른 속도였다. 그러나 총알은, 너무 솔직하게도, 빗나갔다.

 

 ***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신경 쓰였다.

 

 건호는 창문에 얼굴을 묻은 채 힐끔 뒤돌아보았다. 노파가 거실 소파에 앉아 가만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승재 말로는 가끔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 걸 좋아하니 신경 쓸 필요 없다나. 하지만 노파의 취미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좀 전부터 그의 몸이 뚫릴 듯 노려보는 그녀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거지.

 

 그는 되도록 무시하려고 애쓰며 창 밖 동태를 살피는데 집중했다. 그러나 도시는 고요했고 끝내 신경은 엉뚱한 쪽을 돌아갔다.

 

 “대체 뭐가 문제에요?”

 

 참지 못하고 그가 물었다.

 

 노파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잠시 그를 멀뚱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우물거릴 뿐 뭐라는 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제발 크게 말해요. 못 알아듣겠어요.”

 

 또 다시 우물우물.

 

 젠장.

 

 그는 짜증을 참으며 노파에게 다가갔다.

 

 “다시 말해주실래요?”

 

 그가 노파에게 귀를 갖다 댔지만 여전히 웅얼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계속 같은 말을 힘겹게 반복했다. 더 집중해서 들어보지만 무리였다.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의미 없는 단어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입술을 읽어봤다. 물론 독순술 따위 배운 적이 없으니 제대로 되지 않았다. 노파의 입술 모양을 따라해 봤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첫 글자부터가 ‘이’자인지 ‘오’자인지 알 수가 없다.

 

 “아, 어떡하라는 거예요? 글로 좀 적든가 해봐요.”

 

 결국 건호가 화를 내며 몸을 세웠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었다. 그러자 이번엔 노파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제발 제대로 얘기 좀 해줘요. 뭐, 조심하라는 거야, 뭐야?”

 

 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었다. ‘오’발음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노파는 가만히 그를 쳐다보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귀찮다는 듯한 반응처럼 느껴져, 기분이 석연치 않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조심하라고요? 뭘요?”

 

 다시 되물었지만 노파는 이번엔 우물거리기는커녕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노파는 가만히 그의 손에 뭔가를 쥐어주었다. 초록색 표지의 작은 공책이었다. 겉면에는 'Diary'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뭐에-”

 

 노파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대체 뭐야? 영문을 모른 채 가만 서있던 그는 일단 대강 훑어볼 생각으로 공책을 폈다. 뭐 읽어보라고 준 걸 테니까.

 

 첫 페이지에는 ‘사랑하는 남편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이전에 남편 분에게 준 선물인걸까? 하지만 조금 읽어보자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200X년 6월 18일

 승재가 오늘 처음으로 일어섰다. 아직 떨면서 불안하게 흔들리긴 했지만 그렇게 선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내가 승재가 일어섰다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는 무슨 호들갑을 그리 떠냐고 나무란다. 하지만 아내가 이상한 거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하루하루 자라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 사랑하는 아들, 커서도 흔들릴지언정 쓰러지진 말거라.

 

 대충 편 페이지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승재 아버지의 일기다. 결혼식 당일 날 선물 받아 꾸준히 써온 듯 했다. 낯익은 장면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전반적으로 그런 내용들이었다.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되가는 과정들. 그저 훑어볼 생각이었지만, 그는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가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첫 부분은 온통 남자의 행복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 역시 알고 있고, 예전에 본 장면들이었다. 아내와의 행복한 나날들. 아이가 태어나면서 느껴지는 두려움. 그러나 이내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충실감. 자신이 드디어 무언가가 되었다는 그 느낌.

 

 그러나 그것도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턴가 글들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대충 9년 정도 지난시점에서부터였다.

 

 201X년 3월 6일

 또 저질렀다. 내가 해고된 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내 잘못도 아니고, 승재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다. 알고 있는데 자꾸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제발 정신 차리자. 제발.

 

 무슨 이야기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좌절감이 느껴졌다. 그 시점으로부터는 일기가 쭉 그런 식으로 적혀 있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안 쓰는 기간이 점점 벌어졌고, 내용도 더욱 짧아졌다. 알 수 없는 자책감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더 이상 화목한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았다.

 

 201X년 9월 21일

 아내의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일기는 거기서 끝나있었다. 수년이 지났는데도 눈물 자국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차마 끝맺지 못한 문장의 마침표로 보여 기분이 착잡했다.

 

 근데 이걸 왜 준거지? 막상 다 읽고 나니 노파의 행동이 더욱 이해가 되질 않았다. 승재 아버지가 노파를 구했다는 건 알고 있다.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인 거지? 도대체 뭘 조심하라는 거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건호는 생각 없이 뒷장을 넘겼다. 특별한 기대를 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뒤에 페이지가 남아 있어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놀랍게도 일기는 아내의 장례식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뒷장에는 수년이 지난, 진짜 마지막 장이 적혀 있었다. 9월 15일. 운석이 떨어졌던 날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난날이다. 그는 선물 포장을 풀 듯 천천히 마지막 장을 읽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이게 뭐야? 마지막 장을 다 읽고 나자, 스스로에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혼란스러운 건 아니었다. 노파가 왜 그것을 줬는지 그 의도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다만 그 의도를 받아들이기가 불편했다.

 

 마지막 장인 걸 보아 남자는 다음날 사라졌다. 승재의 얘기를 생각해보면 날짜도 얼추 맞는다. 그러니까 조심하라는 건가. 다음은 내 차례가 될 수도 있으니까? 기분이 찝찝하다.

 

 그 때 멀리서, 작은 총성이 들렸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해내고, 곧바로 다시 창가로 뛰어갔다.

 

 총성은 불규칙하게 유리창을 때렸다. 솟대 놈들은 아니었다.

 

 망원경을 통해 보니 예상대로 범죄자 무리가 보였다. 그가 기다리던 장면이었다. 외형으로 보아 크게 두 무리였는데, 한 쪽은 얼굴에 온통 시뻘겋게 피칠을 하고 있었고 나머지 한쪽은 복장은 제멋대로였지만 옷 색깔이 죄다 검은색이었다. 양측 모두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훈련을 받지 않았던 것이 훤히 보였다.

 

 총은 맞추기보다는 그저 쏘기 위해 쏘는 쪽에 가까울 정도로 막무가내로 발사했고, 총이 없는 인원들은 망치니 도끼니 해서 마구잡이로 휘둘러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맞추기보단 휘두르기 위해 그러고 있는 것 같았다.

 

 세력다툼인가. 그는 숨을 죽이며 망원경 속 풍경에 집중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이전에도 이런 일은 몇 번 있었다. 이 조그만 동네에서 대체 왜 왕이 되고 싶어서 난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다르다. 양쪽에서 벚꽃처럼 피어오르는 약탈자들의 피분수를 보면서 그는 거기에 뭔가 친근한 것이 섞여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곧 알게 되었다.

 

 세력다툼은 그저 부차적인 부산물일 뿐 이 모든 사태를 움직일 힘도, 중심에 설 무게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움직여낸 힘, 그가 친근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원인.

 

 그들은 사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뭘 사냥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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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우 16-09-06 18:46
 
오늘도 재밌게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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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Nerd 16-09-06 20:37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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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우 16-09-06 21:40
 
네 계속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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