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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현대물
21세기 무인
작가 : 임준후
작품등록일 : 2016.7.6
21세기 무인 더보기

작품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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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열 배 강해진다면, 나는 백 배 강해질 것이다!"
임한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약자를 유린하고 서민을 괴롭히던
조직폭력배와 비리 정치인, 악덕 기업주들은
한 영웅의 출현 앞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이제 악의 세력은 단 한 명의 적,
임한을 상대로 싸움을 벌여야 한다.

 
6 화
작성일 : 16-07-07 09:31     조회 : 523     추천 : 0     분량 : 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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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이 제대한 지 6개월이 지났다.

 그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천단무상진기의 수련을 하면서 도서관에 다니는 것이 하루 일과의 거의 전부였고, 가끔 친구 이청운의 집에 들러 청운의 가족과 저녁을 먹었다.

 청운의 동생 여경은 졸업 후 사회 진출을 준비할 나이였지만 취직이 자신 없다면서 3학년 때 1년 휴학을 해서 이제 4학년이 되었고, 가끔 찾아가는 그를 골려줄 궁리만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의 수련이 깊어지면서 그 정력은 세상에 흔치 않은 수준이라 여경의 어떤 장난에도 웃기만 할 뿐이다. 이제는 재미가 없어졌는지 여경은 장난도 거의 치지 않았다.

 “오빠, 이제 그만 가자.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야.”

 한의 옆에서 영어원서를 펼쳐 놓고 씨름을 하던 여경은 몇 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책을 보고 있는 그에게 말했다.

 여경이 생각하기에 임한은 특이한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도 나이답지 않게 조숙했지만 군에 갔다 온 이후에는 사람이 더 이상해졌다. 제대한 후의 한을 겪어본 여경의 결론은, 그가 조로증에 걸린 사람이라는 것이다.

 수년 만에 본 한은 나이답지 않게 차분한 가운데 신비함을 느끼게 하는 면이 있어서 여경의 마음에 파문을 던졌다. 하지만 6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그에게서 여동생을 대하는 부드러움 외에 다른 모습을 전혀 보지 못하자 여경은 지루해졌다.

 여경이 보기에 한은 요즈음 젊은이 같은 활달함이 없었다.

 조선시대 같은 때라면 그의 차분함과 신중함은 큰 매력이었겠지만 21세기의 젊은이다운 튀는 면이 한에게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놀라거나 화내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여경은 보지 못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 그것이 여경이 6개월 동안 본 한의 전부였다. 가히 조로증(早老症)에 걸렸다고 여경이 의심할 만했다.

 사춘기 시절부터 한을 해바라기했던 여경의 열병은 거의 사라지고, 이제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한은 함께 공부하기에 좋은 사람이고, 사람을 참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자신이 알기로 한은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합격하긴 했지만 대학은 구경도 못해 본 사람인데, 그동안 겪은 그는 가히 만물박사와도 같았다. 어떤 질문을 해도 막힘이 없었고, 자신의 전공인 경영학 분야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없었다. 어떤 때는 담당교수보다 더 자세하고 쉽게 설명해 줘서, 군대라는 곳에서 경영학을 따로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빠, 안 갈 거야?”

 나지막한 목소리로 주변의 눈치를 보며 여경이 다시 재촉하자 그제야 한은 고개를 돌려 여경을 보았다.

 “알았다. 가자.”

 둘은 도서관을 나섰다. 여경은 가방을 메고 있었지만 한은 빈손이었다.

 그에게는 아직 특별하게 무언가를 필기하며 공부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은 벌써 어두웠다. 다른 사람들도 도서관이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지자 하나둘씩 귀가하는 중이었다.

 “오빠는 왜 책만 읽어? 온갖 종류를 다 읽는 것 같던데….”

 여경은 말없이 자신의 옆에서 걷고 있는 한에게 물었다. 여경의 키도 여자치고는 꽤 큰 키인 170센티미터인데 한의 귀에도 미치지 못한다. 물론 하이힐을 신으면 더 커 보이기는 하겠지만.

 “그냥….”

 여경은 그의 무덤덤한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입술이 삐죽거린다.

 “피… 그런 게 어디 있어? 오빠 나이가 있는데 도대체 뭘 준비하는 거야? 그렇게 책을 많이 읽어야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뭔지 너무 궁금하다. 정말….”

 “특별하게 무얼 준비하는 것은 아니야. 그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고 있을 뿐이지.”

 한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여경은 더 이상 거기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4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준비하기 위해 한을 졸라 도서관에 함께 다니고 있고, 졸업을 앞두고 여유가 없는 것이다.

 IMF 이후 실업자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고,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통계숫자보다도 여경이 느끼는 실업 문제는 더 심각했다. 거기에 자신이 숫자를 보태는 것은 정말 사양하고 싶은 일이어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필사적인 기분이었다.

 한도 여경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에게 여경은 분신과 같은 친구의 여동생이었고 무심해질 수 없는 존재였다. 그에게 여경은 비슷한 또래에서 알고 지내는 유일한 여자였다.

 특별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도와주고 싶었지만 취직문제는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여경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도 어렵다는 취직 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실력과 운이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여경을 먼저 집에 보내고 한은 도시의 한복판에 나지막하게 솟아오른 팔달산에 올랐다. 높지도 않지만 나무가 우거진 데다 시에서 신경 써서 관리하고 있는 도시의 허파와 같은 산이었다.

 폭 5미터 정도 되는 도로가 산허리를 둘러서 나 있었고, 도로의 한편으로는 시민들을 위한 간단한 체육시설과 벤치 등이 마련되어 있어서 쉬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밤이 깊어가자 끌어안다시피 하며 걸어가는 연인들도 많았다.

 한은 도로를 따라 천천히 걷다가 도로변에 있는 약수터에서 물을 마셨다.

 무엇을 해야 할까? 제대한 지 6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천단무상진기는 의식적인 행공(行功)없이도 24시간 여일(如一)하게 몸을 경로에 따라 운행하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강하게 집중하는 수련시간보다는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심지어 책을 읽을 때조차 천단무상진기는 저절로 운행되었다. 수련 때보다는 강도가 약하긴 하지만 항상.

 한의 경지는 점점 깊어져 중단전에 쌓이는 진기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었고, 이제는 미약하나마 상단전이 있는 인당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그의 예상보다도 몇 배나 빠른 진전 속도였다.

 또한 또 다른 능력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초능력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천단무상진기는 그 기세만으로도 자신의 의사를 타인이 따르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능력을 최초로 목격한 사람은 역시 요즈음 그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청운의 동생 여경이었다.

 

 

 한 달 전이었다.

 그와 여경은 여느 때처럼 도서관에서 각자의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가던 중이었다. 삼일 동안 심하게 몸살을 앓은 여경을 집까지 바래다주려고, 여경의 집 앞 골목으로 막 들어서던 때였다.

 “야! 거기 가는 젊은 연인님들 잠깐 서 봐라.”

 불량 끼가 잔뜩 묻어나는 말투에 기분이 상한 여경이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5미터 정도 떨어진 골목의 어두운 곳에는 대여섯 명의 사내가 몰려 있었다. 골목길에 설치된 가로등 빛에 드러난 그들은 이제 겨우 고등학생을 벗어난 듯했다. 머리카락을 노랗고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고 하나같이 담배를 입에 물고 있거나 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질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오빠, 어떡해? 빨리 가자.”

 여경은 겁먹은 표정으로 한의 손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한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여경이 보기에 겁을 먹은 것 같지는 않았고 눈앞에 있는 자들을 신경 쓰는 기색도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본 여경의 마음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고, 그제야 오빠 청운에게서 오래 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한이 무술의 고수라는 말을….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웃고 말았던 것 같은데, 지금 그의 한가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그 말이 사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야, 저놈 어째 우리가 안 무서운가 본데!”

 가운데의 노랑머리와 눈을 마주치며 담배꽁초를 발로 비벼 끄던 청바지가 말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다. 너무 뻣뻣하면 부러진다는 것을 모르는 놈인 것 같은데, 오늘 우리가 세상이 무섭다는 걸 교육 좀 시켜주자!”

 노랑머리의 비웃음 섞인 멘트와 함께 그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의 부드럽던 눈매가 가라앉았다. 그의 몸에서 무서운 기세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기운이 접근하던 남자들의 몸을 묶었다. 그와 함께 그들의 마음도 묶였다.

 그들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눈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더니 고개가 숙여졌다. 그 순간 그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무서운 음성이 심령을 강타했다.

 “서라!”

 나지막하지만 힘찬 목소리였다.

 여경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한을 바라보았다. 어슬렁어슬렁 위협적으로 다가오던 남자들이 말 잘 듣는 아이들처럼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장승처럼 서 있는 그들의 이마 위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꿇어라!”

 한의 목소리가 다시 골목 안에 울리자 그들은 잠시의 지체도 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어깨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그중 몇 명의 바지춤은 축축이 젖고 있었다. 공포가 그들의 자율신경계를 마비시켰던 것이다.

 “오빠? 이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전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여경이 말끝을 흐렸다.

 한의 폭풍 같은 기세는 다가서던 남자들에게 선택적으로 집중되었다. 여경은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게 말하고 있는 한의 목소리에 어이가 없었다.

 그의 말투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나 쓸 것이었다.

 전혀 상황에 어울리는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남자들이 말 잘 듣는 아이들처럼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자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말 몇 마디로 사람을 무릎 꿇게 하고 방뇨를 하게 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 여경의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당사자인 한도 당황했다. 골목 안에 들어서기 전부터 그들의 기척을 느낀 한은 천단무상진기의 힘을 끌어올려 그들을 살폈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낱낱이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여경을 바라보는 그들의 번들거리는 시선이 그의 신경을 긁었다.

 그리고 다가서던 그들에게 천단무상진기의 기운을 육성(六成) 정도 실어 던진 한마디는 대단했다. 멀쩡했던 젊은 남자들을 병신으로 만든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벌어진 상황은 한의 상상을 초월했다.

 녀석들이 어느 정도는 저항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것이 그의 예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저항하지 못했다. 이번 일로 그는 알게 되었다.

 천단무상진기의 기운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한은 팔달산 산책로 근처의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도 있을 것이며, 어른들 몰래 일탈을 즐기는 중고등학생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든 하고 있을 것이며,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다.

 “하아….”

 벤치에 양팔을 걸치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던 한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가 지니게 된 능력은 가히 불가일세라 할 만한 것이지만 그러한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을지 아직 찾지 못했다.

 한은 자신이 지니게 된 절대적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이 능력들이 일상에서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얽힐 때 어떤 일들이 발생하게 될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가능하면 자신이 가진 능력을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에 사용하고 싶었다.

 한은 7년이 넘는 시간의 거의 전부를 무상진결의 수련에 쏟아 부었다.

 그의 노력은 처절할 정도였다. 처음에 호기심 반, 치기 반으로 시작한 수련의 성과가 조금씩 보이면서, 그는 천단무상진기가 결코 허무맹랑한 장난이나 상상 속의 무예가 아니라는 사실을 뚜렷이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자 무상진결의 수련은 가속도가 붙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 청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가족을 잃은 그의 허무와 절망이 무상진결의 수련과정에서 극복되고 있었다. 그런데 무상진결의 수련으로 얻게 된 여러 능력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는 초인이라 부르기에 어색하지 않은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능력을 세상을 위해 어느 정도 사용해도 되는지 그 마지노선을 정할 수가 없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천단무상진기는 이름 그대로 무상의 공부이다.

 수년간 이것을 수련한 한의 정신세계는 절대 평범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의 마음은 불교에서 말하는 부동의 경지에 가까워지고 있어서 흔들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한은 젊었다. 마음과 몸의 공부가 아무리 높은 경지를 개척해가고 있어도 한은 이제 스물넷의 젊은 청년인 것이다.

 열정은 인간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고, 특히나 젊은 시절의 열정은 더욱 강렬하다. 젊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외부에서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가장 강할 때이고, 그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고, 그 능력이 탁월할 때는 그 열망이 더욱 강해진다. 그러한 열망이 부동심에 가까운 그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내려다보이는 시내의 불빛들이 그의 마음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한은 중앙계단을 밟으며 팔달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시내의 중심으로 바로 통하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계단이었다. 어렸을 때는 무척이나 가파르고 높아 보이는 계단이었는데, 이제는 낮고 평범한 경사도에 불과한 길이었다.

 계단을 내려오던 그는 누군가 자신을 주시하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젊은 놈이 무슨 고민이 그리 많아.”

 70은 넘어 보이는 백발의 노인이 10여 미터 떨어진 길가에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노인이 한 말인 듯싶었다. 평범한 검은색 바지에 곤색 잠바를 걸치고 있었는데, 얼굴이 불그스름한 게 무척 정정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보이는 노인의 앞에는 《토정비결》을 비롯한 여러 권의 낡은 점술서들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에서 연인들의 사주를 봐주는 노인 같았다.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노인은 그를 손짓으로 부르더니 자신의 앞에 앉게 했다.

 한은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평범한 점쟁이 노인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일어난 천단무상진기의 공능으로도 살펴보니,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노인이었다. 결코 평범할 수가 없는 노인인 것이다.

 “네놈 나이에 그만한 경지라면 어렵게 공부했을 텐데 꼬락서니는 상갓집 개일세. 참 내….”

 노인은 한을 향한 것인지 혼잣말인지 대상을 알 수 없는 말을 하더니, 끝내는 한을 꼬나보면서 혀를 찼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어르신.”

 한은 냉수를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노인의 깊은 눈은 그의 모든 번민을 포용하고도 남을 것처럼 깊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한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노인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

 노인은 자신의 상태를 한 눈에 알아본 듯했고, 어쩌면 답을 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세상에 너만 특출 난 게 아니다. 인간이 본시 가진 것을 깨우쳐 후대에 물린 사람이 어찌 한둘일까. 스스로 제어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 세상은 사는 것이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왜 모르느냐. 부처라도 걸리적거리면 베어 버리겠다던 땡중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너만 못했으리라고 생각하느냐? 네가 배운 것이 아무리 특별한 것일지라도 그 또한 사람이 남긴 것. 자신을 믿고 나아가거라. 가고 가다보면 길이 나온다. 어차피 길은 누군가가 다녀서 생기는 것. 아무도 가지 않은 곳이라도 네가 다닌다면 이미 길인 게야.”

 노인 또한 사람을 의식하지 않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미친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힐끔힐끔 돌아보았다. 어떤 아가씨들은 입을 가리며 키득키득 웃고 지나갔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주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섬주섬 점술서들을 챙기며 그를 바라보던 노인의 눈가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짧지 않은 생을 살아오면서 너처럼 운명이 보이지 않는 놈은 처음 보는구나. 네가 한 공부도 특별하고… 하지만 네 운명이 평범치는 않아 보이니 힘을 가려 쓰거라. 하늘이 힘을 주심은 쓰임새가 있기 때문이니, 네 나이에 세상과 지나치게 거리를 두는 것은 해롭다. 너와의 인연이 이번은 끝이 아닌 듯하니, 다음에 만나게 된다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은 다시 일어나 큰절을 하는 한을 뒤로 하고 휘적휘적 멀어져 갔다.

 한은 다시 벤치에 앉았다. 그동안 답답했던 기분이 가신 듯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갈 자신감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불과 10여 분 동안 이어졌던 인연이지만 한은 다시 한 번, 이제는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노인에게 감사했다.

 세상에는 자신에 버금가거나 더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한의 외로움과 고민을 덜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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