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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신화에 관하여
작가 : 펭윙
작품등록일 : 2017.11.3

21세기,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이시대에 갑자기 오래전 모습을 감췄던 신들과 악마들이 나타난다. 인류와 함께 악마들과의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는 신들과, 신들을 굴복시키고 인류를 타락시키려는 악마들의 마지막 이야기


 
희생(1)
작성일 : 17-12-17 20:00     조회 : 262     추천 : 0     분량 : 5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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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원들은 한참을 원천을 찾고 있었지만 원천은커녕 상자의 코빼기도 찾을 수 없었다. 천사들은 하나둘씩 부상을 입어 떨어지고, 천자마의 흥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엔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성치 않은 몸이었던 시엔은 방금 천자마와의 대결에서 부상을 입어 더욱더 몸 상태가 악화된 상태였다.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천자마가 발을 땅바닥으로 내리치고 땅이 흔들리더니, 이내 금이 쩌저적 갈라지고 그 틈 사이로 마귀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미치겠네! 뭐가 이리 복잡해지는 거야!"

  기 요원은 땅 위로 올라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마귀들을 보고 기겁했다. 시엔은 재빨리 보우쪽으로 다가가 그를 부축하고 달려오는 마귀들로부터 멀어지려 애썼다.

  "시엔 당신이라도 빨리 피해요. 당신이 죽으면 사람들이..."

  "난 안 죽는다니까! 어서 내 어깨에 팔을 올려. 저놈들에게서 최대한 멀어져야 해!"

  시엔은 절뚝거리는 보우를 부축하고 요원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지금 시엔은 마귀 하나를 상대하기에도 벅찬 상황이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태풍 앞의 나뭇가지 같은 신세였다.

  마귀들이 얼마나 매섭고 빠른지 아무리 빠른 속도로 피해도 격차는 점점 더 좁혀져갔다. 요원들이 남은 총알로 막아보려 했으나 별 성과 없이 금방 다 떨어지고, 그들과 마귀들의 간격은 이제 채 20미터도 안돼 보였다. 그런 그들을 도와준 것은 미카엘의 명을 받고 그들을 도우러 온 천사들이었다. 천자마의 공격으로부터 가까스로 몸을 보전한 천사 스무 명 정도가 요원들과 시엔 앞에서 온몸으로 마귀들을 막아섰다.

  "근원! 원천은 아직이에요?"

  "방금 찾아본 곳에는 없어. 남은 곳은 이제 이 부근밖에 없는데,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나도 더 이상 영력을 쓸 수 없고, 이 요원들도 너무 지쳤어."

  아즈라는 요원들을 돌아봤다. 시엔의 말대로 안 그래도 이 사단이 나기 전 아수라들을 상대하느라 요원들은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나 힘이 빠져 있었다.

  "저희들이 찾는 걸 도와드리겠습니다! 지금 미카엘 혼자 겨우 막아내고 계세요! 빨리 그것을 찾아서 미카엘을 도와야 합니다!"

  아즈라는 마귀들을 막으러 온 천사 중 일부를 수색작업에 투입하고, 이제 그녀를 포함해 더 적은 수의 천사들만이 마귀들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시엔은 겨우겨우 몸을 이끌며 한 곳이라도 둘러보려 애썼다. 무리해가면서까지 혼자 천자 마를 상대하면서 시간을 벌고 있는 미카엘을 두고 그녀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보우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과 천사들이 최악의 상황을 막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그 또한 가만히 앉아서 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도 제대로 피지 못한 채 다리를 절뚝거리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얼마 못가 다시 중심을 잃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몸이... 몸이 안 움직여... 빨리 원천을 찾아야 하는데... 시엔을 도와야 하는데...'

  그는 거추장스럽기만 하고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여겨졌다. 그는 끝내 답답한 마음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 처참한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분하고 서글펐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의 목의 문양이 다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보우는 순간적으로 원천에 가까워질 때마다 목의 문양이 빛났던 것이 생각났다. 방금까지만 해도 힘없이 겨우 숨만 내쉬었던 그는 벌떡 일어나 다시 그의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문양이 더 빛나는 방향을 찾아다녔다.

  '분명히 근처에 있어!'

  그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이 상황을 끝낼 수 있는 원천을 찾는 데에 온 힘을 쏟기 시작했다.

 

  아즈라는 천사 몇 명과 함께 계속해서 마귀들을 막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무리 천사라 하더라도 무식하게 수량으로 밀어붙이는 마귀들로부터 온전히 버틸 수는 없었다. 한두 명씩 점점 휘청거리기 시작하고, 아즈라 또한 지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틀렸어. 이대로 가다간 모두가 당해.'

  아즈라는 점점 더 불안해지는 예감에 더욱 의욕을 잃어갔다. 그런데, 금방이라도 그들을 제압할 것 같았던 마귀들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다시 천자마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천사들은 갑작스러운 마귀들의 행동에 의아해가지고 마귀들이 달려가는 방향을 쳐다봤다. 그러다 마귀들이 떼거지로 미카엘을 덮치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카엘! 피하세요! 더 이상 안 돼요!" 아즈라가 미카엘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소리쳤지만, 미카엘은 들리는 건지 안 들리는 건지 그녀의 말을 무시하며 계속해서 천자마의 코앞까지 달려갔다. 아즈라는 곧 미카엘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그녀는 남은 천사들을 이끌고 미카엘을 향해 달려갔다.

  '안 돼요, 지금까지 계속 희생을 하셔놓고 또 스스로를 희생하려 하시다니! 또 당신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게 할 수는 없어요!'

 

  시엔은 계속해서 주변을 수색하던 와중, 아즈라의 외침을 듣고 바로 미카엘을 바라봤다. 그는 자신의 몸에 붙어 끊임없이 공격하는 마귀들을 그대로 달고 천자마의 머리 위로 올라 그녀의 이마에 칼을 꽂고 있었다.

  "안 돼! 만약 지금 미카엘 상태로 제육천의 문을 연다면...!"

  시엔은 원천을 찾는 것을 멈추고 미카엘 쪽으로 달려갔다. 신발이 벗겨진 것도 모르고 그녀는 날카로운 건물의 잔해를 밟아가며 그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하늘에는 큰 빛이 생기고, 빛 속으로 마귀들과 조각난 천자마의 몸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미카엘은 풀썩 바닥에 떨어져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주저앉았다. 시엔은 자신보다 먼저 미카엘에게 다가가고 있는 천사들에게 소리쳤다.

  "어서 문에서 물러나! 안 그러면 제육천으로 휩쓸리고 말아!"

  시엔이 경고하기가 무섭게, 빛에서 천자 마의 연기가 뿜어져 나와 천사들을 휘감고 차례차례 제육천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연기는 천사들 대부분을 감싸고 마지막으로 미카엘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시엔은 재빨리 미카엘에게 다가가 그의 앞을 가로막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미카엘 대신 천자 마의 연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보우는 건물 잔해의 한 곳을 계속해서 뒤적이고 있었다. 잔해 사이를 더욱더 깊게 파면 팔수록 문양에서 나오는 빛은 더욱더 강해졌다.

  '여기 있는 게 확실해! 분명히 아래에 원천이 있어! 이것만 꺼내면...'

  그때 멀리서 미카엘의 절규가 들려왔다.

  "대체... 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보우는 고개를 돌려 미카엘 쪽을 바라봤다. 그러고선 시엔이 연기에 휘감겨있는 것을 보고 놀람을 감추지 못한 채 원천을 찾는 것도 잊고 시엔에게 달려갔다.

 

  "대체... 왜 저 대신 고난을 겪으려 하십니까... 저 하나만 희생해도 끝날 일이었습니다. 근원께서 나서지 않으셔도 됐다고요!"

  미카엘은 비통한 표정으로 시엔에게 소리쳤다. 시엔은 자신을 강하게 제육천으로 끌어당기는 연기에 맞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다.

  "넌 매번 우리 대신 희생하려 했어. 난 그런 모습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아."

  "당신은 근원이십니다! 우리와 인류를 구원할 유일한 존재라고요! 당신이 지옥으로 끌려가면 우리는 누구를 의지해야 한단 말입니까!"

  시엔은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보우를 한 번 바라보고 미카엘에게 온화한 미소를 애써지어 보였다.

  "미카엘, 난 사라지는게 아니야. 지옥으로 끌려들어 가도 절대 쉽게 굴복하지 않아. 그리고 내 힘은 언제나 너희 곁에 있을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근원, 당신의 힘이 남아있다 한들 그 누가 근원의 뜻을 받든단..."

  그때 보우가 어느 틈에 달려와 시엔을 붙잡았다. 시엔은 눈물 범벅이 된 채로 자신을 붙잡은 보우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뭐, 뭐하고 있어요. 당신 엄청 강하잖아요. 안 죽는다 했잖아요. 어서 이 연기 같은 거 끊어버리고 도망쳐야지 뭐 해요... 거의 다 끝났는데!"

  보우는 시엔을 끝까지 붙들고 놔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엔은 조금씩 연기에 이끌려 제육천 문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걱정 마. 난 절대 사라지지 않아. 저기로 들어가도 난 다시 너에게 돌아올 거야. 나중에 다시 만나도 이번처럼 나에게 친절히 대해 줄 수 있지?"

  "다시 만나긴 뭘 다시 만나요! 우리 헤어지지도 않았는데! 그래, 그 원, 원천 거의 다 찾았어요! 그거만 갖고 오면 저기로 안 빨려 들어가고 계속 여기 있을 수 있는 거죠?"

  시엔은 끝까지 자신을 붙들고 있는 보우의 목에 걸려있는 혜산 스님의 사리를 한번 어루만졌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손을 갖다 대며 곧 헤어질 것 같은 연인의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미안하고, 고마웠어. 너 덕분에 나는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었고, 잠시나마 행복을 느낄 수 있었어. 부디 내가 돌아올 때까지만 원천을 맡아줘. 스님의 사리가 널 지켜줄거야."

  "왜 계속 그런 불길한 말을 하고 그래요! 우리 안 헤어진다니까 진짜! 조그만 기다려요, 내가 빨리 원천 갖고 와서 구해줄게요! 진짜예요, 거의 다 찾았어요 진짜!"

  보우는 다시 허겁지겁 자신이 파고 있었던 건물 잔해더미로 달려가고 시엔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면서 달려가는 보우의 뒷모습을 아련히 바라봤다. 연기는 더욱더 세게 그녀를 휘감아 잡아당겼고, 미카엘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울음만을 계속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근원... 다 제 불찰입니다... 또 근원을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네 탓이 아니야 미카엘. 다시 만날 때까지 나 대신 보우를 지켜줘. 이제 저 아이가 모든 것을 구원할 유일한 희망이야."

  "무슨 얘기십니까 근원... 저 아이는 열쇠일 뿐인 나약한 소년일 뿐입니다. 어찌 저 아이가 근원을 대신할 수 있단 말입니까."

  미카엘의 울음 섞인 물음에 시엔은 힘든 와중에도 엎드려있는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위로해줬다. 그리고 말했다.

  "방금 저 아이에게 내 권능을 줬어."

  시엔의 말에 미카엘은 깜짝 놀라 시엔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 근원 그게 무슨 말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날 믿어줘. 보우를 도와주고 보호해 줄 수 있지?"

  미카엘은 눈물을 멈추지 않은 채 그저 시엔을 바라봤다. 그러다 고개를 숙이고 마지막으로 시엔에게 외쳤다.

  "근원의 명,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미카엘의 대답을 들은 시엔은 그제서야 안심했다는 듯 편안한 표정을 짓고 연기에 이끌려 빛으로 점점 더 가까워졌다. 시엔은 담담하게 눈을 감고 짧으면서도 길었던 지난 며칠을 되돌아봤다. 서울에 처음 왔을 때부터 겁에 질려 아무것도 못하던 그녀는 한 소년을 만나고 조금씩 다시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시엔은

 그 소년의 얼굴을 떠올리며 조용히 눈물을 몇방울 흘렸다. 저 멀리 빛 속으로 제육천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손을 모으고 혼자 중얼거렸다.

  "고마워 모두들. 나 때문에 벌어진 일 내가 끝낼게."

  잠시 뒤 빛이 사방으로 퍼지더니 이내 하늘 한가운데에 새겨져있던 문은 사라지고, 미카엘은 그저 계속 엎드린 채 서러운 울음을 삼켰다. 참으로 짧았고도 길었던 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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