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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현대물
21세기 무인
작가 : 임준후
작품등록일 : 2016.7.6
21세기 무인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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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열 배 강해진다면, 나는 백 배 강해질 것이다!"
임한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약자를 유린하고 서민을 괴롭히던
조직폭력배와 비리 정치인, 악덕 기업주들은
한 영웅의 출현 앞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이제 악의 세력은 단 한 명의 적,
임한을 상대로 싸움을 벌여야 한다.

 
4 화
작성일 : 16-07-07 09:19     조회 : 481     추천 : 0     분량 : 8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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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뒤, 겨울

 

 

 거리는 막바지에 다다른 동장군의 위세로 얼어붙어 있었다. 이틀 전 내린 눈이 그대로 얼음덩어리로 변한 채 거리 곳곳에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도로를 제외한 도시의 대부분이 흰 눈에 덮여 있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한은 시내 헌책방들이 모여 있는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한의 옆으로 사람들이 온몸을 두터운 털옷으로 휘감고 종종 걸음으로 지나갔다.

 “이곳은 따뜻하네요! 아저씨, 안녕하셨어요?”

 한은 초우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며 구석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서점 주인에게 인사했다.

 “어! 한이로구나. 정말 오랜만이네. 그동안 어디 갔다 왔니? 너무 간만이라 네 얼굴을 잊어버리는 줄 알았다.”

 서점 주인은 반갑고도 약간은 서운하다는 얼굴로 한을 맞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한이 마지막으로 서점을 찾은 것은 1년이 더 되었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일이 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뭐 어쩔 수 없지… 그래 오늘은 무슨 일로 온 거냐?”

 서점 주인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그동안 한이 찾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벌써 서운함이 사라진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은 책을 사려고 온 것이 아니고 여쭤볼 게 있어서 왔어요. 아저씨, 혹시 1년 전에 제가 마지막으로 와서 사갔던 책들 기억하세요?”

 “전에 네가 사간 책들? 글쎄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걸. 왜 그때 사갔던 책들에 무슨 문제가 있었니?”

 “아니요,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제가 그때 책 10권을 샀는데 그 중에 끈으로 묶여 있던 책 세 권이 있었어요. 기억하시는지…?”

 한은 서점 주인이 책에 대해 기억해 주기를 바랐지만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책을 파는 것이 업인 사람에게, 누구에게 무슨 책을 팔았는지 기억해 달라는 것은 사실 무리가 있었다.

 “끈으로 묶여 있던 책들? 아! 그래! 그건 기억이 난다. 그림이 많고 내용이 독특한 것이었지. 무술에 관련된 책들 같아서 네게 권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책들은 왜?”

 “아! 기억이 나세요! 별 일은 아니고요. 그 책들을 어떻게 입수하신 것인지 알고 싶어서요.”

 한의 얼굴이 밝아졌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온 길이었는데 어쩌면 단서를 구할 수도 읽을 것 같았다.

 “그 책들을 어떻게 구했더라?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서….”

 서점 주인은 이마에 내천(川) 자를 그리며 손가락으로 코끝을 가볍게 문지르며 말했다.

 서점 밖에는 겨울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미세한 얼음조각들이 바람에 밀려 눈보라를 만들고 있었다. 아직 어두워지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도, 거리에는 인적이 끊어졌다.

 생각에 잠겼던 주인의 눈이 반짝였다.

 “생각났다! 그 책은 어떤 노인에게 산 거였어. 나이가 많이 든 노인이었는데, 집에 있던 책이라면서 사달라면서 찾아왔지. 너한테 그 책을 팔기 바로 며칠 전 일이야.”

 “아는 노인이었어요?”

 “아니, 그날 처음 보는 노인네였어. 말수도 적었던 걸로 기억된다. 권당 오천 원인가 주었던 거 같은데, 돈을 받으면서도 책값을 더 쳐달라거나 하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거든. 책에 대해서 애착이 거의 없는 거 같은 태도라 별로 귀한 책이 아니라고 여겼지. 그 책을 서울에 가서 고서전문가에게 감정을 받아볼까 하다가 실없는 짓 같아서 그냥 두고 있었는데 마침 네가 와서 팔게 되었던 거지.”

 “그러셨어요? 혹시 그 노인이 했던 말 중에 특별히 기억이 나시는 건 없나요?”

 한은 그 노인에 대한 지푸라기 같은 단서라도 잡을 수 있기를 바랐지만 서점 주인의 대답은 심드렁했다.

 “아니, 노인네가 우리 가게에 들어와 한 말은 책 사달라는 말뿐이었어. 흥정도 없었고, 그러니 기억할 만한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어.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미안하네. 그런데 그건 왜 알려고 하는 거냐?”

 “책 내용에 궁금한 점이 있어서요. 제가 무술 수련하는데, 그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저술하신 분 밑에서 수련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 지은 분을 찾고 싶었는데….”

 한이 책을 사간지 1년도 넘게 지나서 책 주인을 찾았지만 서점 주인은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나도 지금 그 노인을 다시 만난다 해도 얼굴을 알아볼 자신이 없는데, 그런 노인네를 어떻게 찾을 수가 있겠냐! 무술 잘 가르치는 곳은 많으니까 다른 곳에서 알아보는 게 훨씬 빠르고 도움이 될 거다.”

 서점 주인은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의 한을 보았다. 안경 너머로 한을 바라보는 눈빛이 의미심장했지만 한은 실망 때문에 그 눈빛을 보지 못했다.

 “하여튼 고맙습니다. 다음에 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그래, 앞으로는 좀 자주 들려라.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전화하고. 준비해 놓을 테니까.”

 “예, 아저씨.”

 한은 서점을 나왔다. 추운 바람이 약간은 따듯해졌던 몸의 온도를 단숨에 앗아갔다.

 단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서점 주인의 말대로라면 책을 판 노인도 《무상진결》이라는 책의 가치를 알고 있지 못했던 것 같았다. 하긴 그 책에 실린 내용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헌책방에 권당 오천 원에 팔 가능성은 만에 하나라도 없었다.

 한은 책의 구입경로를 역추적해서 원래 무상진결이 보관되어 있던 장소를 찾고자 했다. 1년 반에서 약간 모자라는 시간 동안 한은 천단무상진기를 수련했고, 그 가치를 이제 확실하게 깨우치고 있었다.

 무상진결의 뿌리를 찾으려는 한의 첫 시도는 무산되었다. 그러나 한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무상진결의 뿌리와 그 힘이 자신에게 이어지게 된 진정한 이유를….

 

 

 한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거실에는 이청운이 쇼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영화만 상영하는 케이블방송 채널이었는데, 야한 장면이 방송되고 있었다.

 청운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한을 흘깃 쳐다본 후 계속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한은 피식 웃으며 청운의 배 위에 태연하게 걸터앉았다.

 “으악! 임한 너마저….”

 청운은 과장되게 죽는 시늉을 하더니 배를 퉁겨 한을 거실 바닥에 떨어뜨리고 바로 일어났다. 한의 머리를 잡더니 헤드락을 걸었다.

 “항복! 항복! 남의 집에 몰래 들어온 양상군자가 주인을 잡는구나! 말세로다! 말세!”

 한의 우스꽝스러운 응대에 하하 웃은 청운은 헤드락을 풀고 소파에 다시 앉았다. 한도 그 옆에 앉았다. 청운은 대학 1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다.

 진학한 과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고민을 하더니 덜컥 군대에 가겠다고 휴학계를 제출한 것이 지난 달이다.

 군대 가면 여자들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다면서 자기 여자는 절대 그렇게 만들지 않겠다고 여자친구인 지연에게 온갖 공을 들이고 있느라 바빴는데, 나머지 시간에는 거의 한의 집에 죽치고 있는 편이었다.

 “한아, 요새 너 체육관에서 뭐하고 있는 거냐? 가끔 보면 이상한 자세를 잡고 있던데, 요가하고 있는 거냐?”

 “요가? 아니야. 최근에 배운 무술이 있는데 그걸 본 모양이구나.”

 “그래? 그게 뭔데?”

 “전통무술이야. 나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네게 말할 것이 별로 없다.”

 “임한이 말할 것이 별로 없는 무술이라… 천하의 고수 임한이 말 못하는 무술이라… 별 게 아니라는 거야, 아니면 대단해서 아직 말을 못하겠다는 거야?”

 “둘 다 아니다. 내가 아직 자세히 몰라서 말을 못하는 거야. 제대로 알게 되면 말해 주마.”

 “그래? 알았어!”

 청운의 잘생긴 얼굴이 슬금슬금 한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한은 청운이 무언가 부탁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렇게 눈을 반짝반짝하면서 얼굴을 들이밀 때마다 난감한 부탁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던 것이다.

 청운은 한이 무술 수련하는 걸 보는 것은 좋아했지만 본래 운동에는 별 소질도 없고 관심도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한이 무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무언가 부탁할 것이 있으면 꼭 무술에 관련된 것을 화제 삼아 이야기의 서두로 삼는다.

 “내가 말이야. 부탁할 게 있는데… 꼭 들어줘야 한다.”

 “뭔데 인마! 일단 무슨 일인지 들어는 봐야, 들어줄지 말지 대답을 할 거 아니냐!”

 청운은 흠흠하며 자세를 바로 하고 한을 바라보았다.

 한은 언제 보아도 듬직한 친구다. 지나치게 과묵하고 사람 사귀는 걸 싫어해서 그렇지, 사귀면 사귈수록 보고 싶어지는 친구다.

 청운에게 있어서 한은 어쩌면 부모보다도 더 신뢰할 수 있는 친구였다. 그리고 그 믿음에 대해 여러 번에 걸쳐 보답도 받았다. 자신의 부탁이라면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도 한은 들어준다. 하지만 청운은 아직 한에게서 어떤 부탁도 받아본 적이 없다. 늘 자신을 미안하게 만드는 친구였다.

 “지연이 친구 중에 서영은이라는 여자애가 있어. 너는 모르겠지만 지연이하고 둘도 없는 친구 사이지. 걔한테 문제가 생겼어. 지연이는 나한테 어떻게 도와달라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더라. 그래서 네게 얘기하는 거야.”

 “힘이 필요한 일인가 보구나.”

 한은 약간 난감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청운이 재미있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가끔 난데없는 정의감을 발휘한다고 엉뚱한 곳에서 떡이 될 지경으로 얻어맞고 와서 사람을 열 받게 하더니, 대학생이 된 지금도 다른 사람의 어려운 것은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청운이었다.

 “단순히 네 솜씨가 필요한 일인지는 나도 잘 판단이 안 선다. 그 영은이라는 친구에게 스토커가 생긴 모양인데 보통 스토커가 아니고 폭력배인 것 같아. 지연이 말로는 그 스토커가 검은 대형차를 타고 다닌다는데, 덩치들을 꼭 두세 명씩 데리고 다닌대. 영은이 그 친구 무서워 죽겠단다. 그 폭력배 같은 남자가 아무 데서나 불쑥불쑥 나타나서는 자기와 사귀자고 하는데, 자기는 몸서리쳐지게 싫다고 하더라. 며칠 전에 납치 비슷한 것도 당할 뻔한 모양이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지연이한테도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대. 지연이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펄펄 뛰니까, 그러면 자기는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라면서 사색이 돼서 울더래. 지연이도 무슨 일이 생길지 겁이 나서 경찰에 신고를 하지 못했다고 해. 경찰에 신고를 하기 전에 너에게 한 번쯤 상의를 해보고 싶어서 온 거야.”

 청운의 표정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어두워졌다.

 화가 난 모습이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자들과 힘 겨룸을 할 자신이 없는 무력감 같은 것도 느끼는 것 같았다. 한은 청운의 찡그린 얼굴을 손바닥으로 한 번 톡 쳤다.

 “내가 한번 알아보마. 그 영은이라는 친구 집주소하고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 같은 거 있으면 내놔 봐라.”

 한의 말에 청운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고 있던 셔츠의 윗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한에게 건네주었다.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될 줄 알고 미리 준비한 듯했다.

 사진에는 커다란 분수대가 물줄기를 하늘로 힘차게 뿜어 올리는 멋진 장면을 배경으로, 젊은 여자 두 명이 손을 잡은 채 활짝 웃고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아가씨는 청운의 여자친구 지연이었다. 한도 청운이 소개시켜 주어서 지연을 알고 있었다. 같이 식사도 몇 번 했었다.

 지연의 손을 잡고 있는 아가씨는 청치마에 흰색 티를 걸쳐 입고 있었다.

 지연이도 상당한 미모였는데 영은이라는 아가씨도 지연보다 더 했으면 했지, 못하지 않은 미모였다. 깨끗한 인상과 가느다란 몸매라서 전체적으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느낌이었다.

 사진의 뒤에는 주소와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서울이었다.

 “영은이를 먼저 만나봐야 하지 않겠냐?”

 “그럴 필요 없어. 내일부터 내가 영은이라는 아가씨 주변에 머물 테니까. 평상시처럼 생활하라고 말을 해. 그 녀석들은 내가 알아볼게. 내가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면 말을 할게. 그때 그 아가씨를 만나도 늦지 않아.”

 한의 말을 들은 청운의 얼굴에 안심하는 기색이 어렸다.

 한의 나이는 결코 많다고 할 수 없지만 한이 나서서 해결되지 못하는 일은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잘 움직이지 않지만 움직인다면 반드시 끝을 보는 친구였다. 그리고 한은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다음날 한은 새벽운동을 마치자마자 간단한 옷가지와 세면도구가 들어 있는 작은 가방을 들고 서울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청운의 부탁을 해결할 때까지 영은이라는 아가씨의 집 부근에서 생활할 작정이었다.

 

 이만성은 느긋하게 그랜저의 뒷좌석에 몸을 기대었다.

 영은의 삼삼한 몸매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제 장난은 그만두기로 했다. 동생들 보기도 그렇고 영은의 겁에 질린 얼굴을 보는 것도 시들해졌다.

 오늘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어디로든 끌고 가서 끝장을 볼 터였다. 지금까지는 장난이었지만 더 이상은 아니었다.

 그만큼 점잖게 말을 했는데도 영은은 자신의 마음을 받아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간만에 순정파 청년처럼 행동했더니 동생들의 수군거리는 소리에 귀가 간지러울 지경이었다.

 ‘오늘도 네 년이 그렇게 나온다면 내 동생들에게 시식을 시키고 사창가에 팔아버리겠다. 참는 것도 한도가 있지. 네 년이 감히 이 이만성을 무시해!’

 영은의 미행을 명 받은 고후식이 연락해 준 장소로 부하 두 명과 함께 그랜저를 타고 이동하며, 오늘 밤 영은을 어떻게 요리할까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을 때였다.

 “끼이이익!”

 “저런 개자식이! 뒈지려고!”

 차가 급정거했다.

 운전을 하다가 핸들에 가슴을 심하게 부딪친 심현준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표정으로 운전석 문을 박차며 밖으로 튀어 나갔다.

 옆 차선에 달리던 차량들이 휘청하며 그랜저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욕설이라도 하려고 창문을 내렸던 운전자들은 그랜저에서 튀어나온 검은 양복차림의 덩치들을 보자 유리창을 빠른 속도로 올리고 달아났다.

 급정거로 인해 이만성도 앞좌석에 코를 찧었다. 이만성의 성질은 현준보다 사납다. 이만성도 차문을 열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저 새끼 죽여버려!”

 이만성의 사나운 고함이 도로 위를 울렸다. 그러나 상대는 강심장이었다. 도로 한복판에서 이만성의 그랜저 앞을 막아선 채 오른손 중지를 빳빳이 세우고 ‘Fuck you’를 먹였다. 게다가 이만성의 고함을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상대는 임한이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임한의 머리카락을 바람이 더욱 헝클어 놓아서 제대로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느긋하게 돌아선 임한은 도로를 벗어나 인도로 올라섰다.

 그의 몸집도 이만성의 일행에 뒤지지 않는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80킬로그램이 넘는 몸무게다. 주변을 가득 채우는 상대의 존재감에 심현준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이만성의 고함을 들은 현준은 조건반사적으로 한에게 달려들었다.

 현준은 이만성의 밑에서 일한 지 3년째였고, 유도가 2단이다. 접근전이 그의 특기였다. 한번 잡히면 어디가 부러지든 꼭 상대의 몸 한 군데를 부러뜨리는 독종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상대를 잘못 만났다.

 한은 어깨를 잡으려는 상대의 팔목을 가볍게 잡고 반대로 꺾었다. 빠각하는 소리와 함께 현준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해서 도로를 굴렀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한은 도로를 구르는 자의 오른쪽 정강이를 발끝으로 걷어찼다. 뻑 하는 소리가 났다. 검은 기지바지 위로 정강이의 부러진 뼈가 튀어나와 도로에 피를 뿌렸다.

 조수석에 탔던 김점술이 한의 앞을 막아서며 오른발로 앞돌려 차기를 했다.

 한은 간단하게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상대의 다리를 잡아 그 무릎을 왼쪽 옆구리에 낀 채 오른손바닥으로 무릎을 한 번 눌러주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김점술의 무릎이 90도 각도로 부러지며 꺾였다.

 이만성은 슬금슬금 뒷걸음쳤다.

 자신이 가장 믿는 동생 두 명이 숨을 두어 번 내쉬기도 전에 병신이 되어 인도에 뻗어 있었다. 둘 다 비명도 없이 쓰러진 것이 기절한 것 같았다.

 “너 누구야? 이 새끼!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만성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가만히 있어도 산적 같은 인상이 눈을 부릅뜨자 저승사자같이 변했다. 하지만 상대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상대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이만성의 시야에서 사라졌나 싶더니 불쑥 그의 코앞에서 솟아올랐다.

 한의 손바닥이 인정사정없이 이만성의 가슴을 쳤다. 이만성은 꺽꺽거리며 얼굴이 노래졌다. 그 자리에서 반듯하게 뒤로 넘어갔다.

 한은 이만성의 뒤통수가 땅에 닿기 전에 그의 멱살을 잡았다가 살며시 놓았다. 뇌진탕으로 죽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은 것이다.

 건장한 세 명의 남자가 30초도 안 되는 시간에 정신을 잃고 인도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거리를 휩쓸고 있었다.

 

 

 한은 청운에게 전화를 걸어 덩치들이 다시는 영은의 주변에 얼씬거리지 않을 거라고 말해 주었다.

 청운에게 부탁 받은 지 9일째 되는 날의 밤이었다.

 청운은 한이 어떤 방법으로 일을 해결했는지 알고 싶었지만 묻지는 않았다. 물어도 대답할 친구가 아니었으니까.

 

 

 그 날 이후 이만성은 2년이 넘는 세월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병명은 불명이었다. 서 있기만 해도 수족이 떨렸고, 심장의 박동이 두 배는 빨라졌다. 누워 있으면 덜했지만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 년 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그의 머릿속에는 ‘영은’이라는 이름의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그에게 그 날의 기억은 악몽이었고, 조직에서 승승장구하던 자신과 현준, 점술은 그날 이후 폐인 취급을 받으며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만성 일행은 자신들의 몸속에 있는 경락들이 천단무상진기(天壇無常眞氣)라는 고대(古代)의 절기(絶技)에 의해 뒤흔들린 상태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한마디로 그들은 깊은 내상을 입은 것이다.

 한의 가벼운 손짓은 그들의 뼈를 부러뜨리고 오장육부를 뒤흔들어 놓았으며, 경락(經絡)의 정상적인 흐름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한의 아버지 임정훈의 좌우명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다.’

 ‘손을 쓰기 전에 세 번 생각하고, 일단 손을 쓰기 시작하면 전력을 다하라.’

 ‘끝맺음을 확실하게 할 자신이 없다면,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그것은 또한 임정훈의 아들 임한의 좌우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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