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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사장님이 보고 있다!
작가 : 카렌
작품등록일 : 2017.12.9

시각장애인 사장님께 경제 신문을 읽어주는 개인비서 한지현.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야. 25살 넘어가면 안 필린 다니깐."
남성우월주의자 할머니는 마음대로 그녀의 배우자 모집 광고를 신문에 내버린다. 꼼짝없이 할머니가 소개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했던 지현. 평소에는 단 한 차례도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 없었던 사장님이 신문에 실린 광고를 봤다면서 지현에게 청혼한다.
"이 배우자 모집 광고에 내가 지원하고 싶습니다.“
사장님, 정말 진심이십니까?
habilis21@naver.com

 
사장님이 보고 있다! 8화
작성일 : 17-12-17 14:16     조회 : 224     추천 : 0     분량 : 8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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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여기가 입술인가요?

 

 

 신경질적으로 자판을 두드리던 지현이 한숨 같은 혼잣말을 내뱉었다.

 

  "진짜로 이건 아니지.“

 

 지현은 초대장을 다시 펼쳐보면서 입술을 비스듬히 끌어올렸다.

 

 

  [한지현의 배우자 모집 1차 심사 서류 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배우자는 한지현과 직접 만나는 2차 심사 면접을 통해 선정됩니다. 한지현과 만날 수 있는 날짜와 시간을 아래의 번호로 알려 주세요.

 

 문의 : 010 – 4X4X - 44XX]

 

 

 분명 당사자인 자신은 허락조차 하지 않았는데, 초대장에는 그녀의 증명사진이 떡하니 붙어있었다.

 

  '……정말 미치겠네.‘

 

 이마를 맴돌며 통증을 유발하던 스트레스가 이제 아래로 내려가 어깨가 묵직하고 뻐근해졌다.

 

 내 배우자를 뽑는 게 취업하는 것도 아닌데 1차 서류 전형에 2차 면접까지?

 

 거칠게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 지현은 한겨울의 칼바람처럼 매섭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초대장을 노려보았다. 사장님이 건넨 초대장을 열어 보고 소름이 돋은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몸만 부르르 떨었다.

 

  ㅡ 그럼 내가 여기에 지원해도 되는 거죠?

 

  ‘사장님은 정말 이 바보 같은 면접에 지원하실 생각인 건가.’

 

 정말 이대로 흐지부지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한쪽 눈가를 구긴 지현은 다부진 표정으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가고 휴대전화에서 조 여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할머니, 저 지현이에요.“

 

  - 오, 그래. 지현아. 네가 웬일이냐.

 

 조 여사의 태평한 목소리에 지현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할머니. 혹시 배우자 모집 광고에 연락한 사람한테 초대장 보내셨어요?“

 

  - 으응, 너도 알고 있었냐? 그래, 초대장 보냈지. 아이디어 끝내주지 않니? 그 아이디어 네 고모가 낸 거야.

 

 조금의 미안함과 죄책감도 없는 조 여사의 목소리에 지현은 온몸에 한기가 돌아 손으로 팔뚝을 쓸어내렸다.

 

  ㅡ 어쩜 네 고모는 이런 기발한 생각을 다 할 수 있니? 대단하지 않니? 그 초대장도 다 송이 고모가 만든 거야. 배우자 모집 초대장이라니 정말 재밌지?

 

  “아니요. 할머니, 정말 하나도 재미없어요.”

 

 뭐가 그리 좋은 건지 높은 톤으로 송이를 칭찬하는 조 여사의 눈치 없음에 지현은 한족 주먹을 불끈 쥐었다.

 

  - 난 재밌기만 한데 얘는 참, 왜 이렇게 삐딱하게만 생각하니?

 

 표정을 찌푸린 지현은 입을 일자로 다물고 침묵했다.

 

  - 그런데 너 이번 주 일요일에 시간 되니?

 

  “왜요?”

 

  - 왜긴 왜야. 초대장 보낸 남자한테 연락이 와서 그렇지. 나이가 조금 많긴 한데 직장이 대기업이야.

 

  “나이가 몇 살이나 많은 데요?”

 

  - 15살이면 조금 많지?

 

 나보다 15살 많으면 지금 40대잖아!

 

 머리가 띵 해진 지현은 간신히 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고모가 초대장을 보낸 남자들이랑 저를 맞선보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 그래, 간단하게 말해서 그거지. 맞선. 사실 요즘 결혼 정보 회사가 많긴 한데 원, 믿음이 가야 말이지. 할미가 직접 보고 고르고 골라서 뽑은 놈들이니까 넌 믿고 만나도 된단다.

 

  "할머니.“

 

  - 왜, 왜 그러냐?

 

 능변가인 조 여사가 말을 더듬자 지현은 그녀가 뭔가를 숨기는 게 있다고 확신했다.

 

  “할머니, 솔직히 말해 보세요.”

 

  - 솔직히? 뭘 말이냐?

 

  “자꾸 저한테 결혼하라고 하시는 거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 ……호호호. 다른 이유? 아니, 다른 이유가 뭐가 있겠어?

 

 조 여사의 과장된 웃음소리를 들은 지현의 속눈썹이 쉴 새 없이 팔랑였다.

 

  - 지현아,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안에 남자가 없잖니. 따지고 보면 이게 다 네 엄마 탓이지. 한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왔으면 아들을 낳아야지. 네 엄마는 아들도 못 낳고 딸 하나 달랑 낳았잖아, 예전 같으면 쫓겨나도 벌써 쫓겨났을 거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 그러니까 네 엄마를 대신해서 네가 한씨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거지.

 

  "할머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번에도 할머니는 도통 말이 통하지 않았다. 아니, 한씨 집안의 대를 내가 어떻게 잇냐고!

 

  - 뭘 더 따져. 그냥 할미가 결혼하라면 결혼하는 거지!

 

 할머니의 불호령에도 지현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누구 맘대로 결혼이에요.“

 

  - ……저저, 할미한테 말하는 꼴 좀 보소.

 

 조 여사가 혀를 끌끌 차며 큰소리로 외쳤다.

 

  - 할미가 하라면 해야지. 뭔 말이 이렇게 많아. 너 결혼 안 하려면 너희 엄마랑 같이 본가에서 나가거라.

 

 결혼하지 않으면 영란까지 내쫓겠다는 조 여사의 엄포에 두통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 진짜 너희 엄마가 우리 집에서 한 게 뭐가 있다고.

 

 참고, 참고 또 참고, 또 한 번 참았던 지현은 할머니의 마지막 말에 활화산 같은 분노를 터트렸다.

 

  "할머니, 전 절대로 맞선에 나가지 않을 거예요!“

 

 도대체 결혼이 다 뭐라고!

 

 생애 최초로 할머니께 소리를 지르며 크게 반항한 지현은 전화를 끊고도 분을 삭이지 못했다.

 

 

 

 ***

 

 

 

 지현은 문틈 사이로 한쪽 눈을 들이밀고 사장님의 집무실 안을 훔쳐보고 있는 지현을 발견했다.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옆으로 간 지현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은 씨,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엄마야! 깜짝이야!“

 

 지은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매서운 눈동자로 지현과 시선을 마주쳤다.

 

  "갑자기 나타나면 어떡해. 나 깜짝 놀랐잖아. 지현 씨, 제발 매너 좀.“

 

  ‘몰래 훔쳐보던 사람이 누군데 매너 타령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꽂으며 지현은 끙하는 소리를 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어디 가셨어?“

 

 집무실 안으로 당당하게 들어온 지은이 뜬금없이 물었다.

 

  "누구요?“

 

  "내가 여기서 누굴 찾겠어. 당연히 사장님이지.“

 

  "뜬금없이 사장님은 왜 찾으시는 거예요?“

 

  “뭐, 그건 한지현 씨가 알 필요 없고. 사장님, 친구분 만나러 가셨나?”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현은 오후 업무시간에 사장님께 읽어줄 보고서를 살펴보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몰라?“

 

  "네.“

 

  "왜 몰라?“

 

  "그걸 꼭 제가 알아야 하나요?“

 

 지현이 비스듬히 한쪽 눈썹을 추켜 올렸다.

 

  "한지현 씨가 맨날 사장님이랑 붙어있잖아. 비서가 사장님이 어디 가셨는지 누굴 만나는지 다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사장님이 그런 말을 해줘야 알죠. 사장님은 자기 동선에 관해서 얘기하는 거 싫어하세요.“

 

 갑자기 찾아와 이상한 질문을 하는 지은이 귀찮아진 지현은 힐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여긴 왜 오신 거예요?“

 

  "왜 오면 안 돼?“

 

  "뭐,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사장님은 낯선 사람이 집무실 찾아오는 거 싫어하시거든요.“

 

  "괜찮아. 아직 안 오셨잖아.“

 

 사장님의 책상으로 간 지은이 마음대로 이것저것을 뒤지기 시작하자, 지현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물건을 마음대로 손대시면 어떡해요?“

 

  "걱정하지 마. 잠깐 보고 그대로 내버려 둘 테니까.“

 

  "그래도 남의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죠.“

 

 지현이 단호하게 말했지만, 지은은 들은 채도 안 하고 계속 사장님의 물건을 만지작거렸다.

 

  '정말 들은 척도 안 하네.‘

 

 10분쯤 있으면 점심시간이 끝난다. 사장님이 오실까 문 쪽을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지현에게 책장을 뒤지던 지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알고 보니까 한지현 씨도 고단수야.“

 

  "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그녀가 말하는 얌전한 고양이가 자신이라는 것을 눈치챈 지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보고 하신 말씀이세요?“

 

  "그래, 그럼 여기 한지현 씨 말고 누가 있겠어?“

 

 어떻게 이 난간을 넘어야 할지 막막해진 지현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지현 씨, 사장님이랑 어제 만나서 뭐 했어?“

 

  "그냥 백화점에서 쇼핑했어요.“

 

  "쇼핑?“

 

 사장님과 쇼핑했다는 말에 지은의 눈동자에 파란 불꽃이 튀어나왔다. 잘못하면 데이겠다 싶어서 지현은 급히 보고서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한 거야?“

 

  "뭘요?“

 

  "사장님한테 어떻게 꼬리 쳤냐고.“

 

 숨겨놨던 발톱을 드러낸 지은이 앙칼지게 묻자 당황한 지현은 주춤 뒤로 물러섰다.

 

  "전 사장님한테 꼬리 친 적 없어요.“

 

  "그럼 왜 사장님이 아침에 지현 씨한테 아는 척 한 거야?“

 

  "그거야 오늘까지 제출하기로 한 보고서 때문이죠.“

 

 있는 힘껏 콧방귀를 뀐 지은이 천천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지은이 그녀의 주변을 빙빙 맴돌자 매에게 주시당하는 사냥감이 된 것 같아서 지현은 자리를 피했다.

 

  "솔직히 말해봐. 처음부터 이러려고 그랬어?“

 

  "처음부터 제가 뭘요?“

 

  "처음부터 사장님 꼬셔서 팔자 고치려고 AK 그룹에 입사한 거 아니야?“

 

 지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진짜 아니야?“

 

 지현은 지은이 알아서 떨어져 나갈 주길 바라면서 진지하게 대답했다.

 

  "네, 전 사장님 꼬실 생각 전혀 없어요.“

 

  "그럼 내가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사장님한테 꼬리 치는 거 나한테 걸리면 죽을 줄 알아. 착한 척하면서 뒤로 호박씨 까면 더 열 받는 거 알지?“

 

 표정이 어두워진 지현을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가던 지은이 걸음을 멈춰 세웠다. 문 앞에는 흰 지팡이를 들고 있는 사장님이 서 있었다.

 

  "어머, 사장님. 오셨어요?“

 

 사장님이 나타나자 바로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지은의 뻔뻔스러운 형태에 지현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장님께 진드기처럼 들러붙는 지은이 속내가 훤히 보였다.

 

  "누구십니까?“

 

  "네? 아, 저는 저택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공지은 이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겁니까?“

 

  "제가 사실 한지현 씨랑 되게 많이 친하거든요.“

 

 뭐 이런…….

 

 지현은 목 끝까지 차오른 욕을 가까스로 밀어 넣고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험악한 표정을 지은 지은이 고개를 돌려 입 모양으로 그녀에게 '닥쳐'라고 말했다.

 

  "그런데 용건이 뭡니까?“

 

  "혹시 사장님이 뭐 필요한 거 없으시나 물어보려고 왔어요.“

 

 지은은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사장님께 내숭을 떨었다. 표정과 말이 전혀 일치되지 않는 지은은 유주얼 서스팩트 버금가는 반전이었다.

 

  "내가 필요한 거요? 그것 때문에 내 집무실에 온 거군요.“

 

  "네, 그럼요.“

 

  "나한테 필요한 걸…… 이름이 뭐랬더라?“

 

 지현이 저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리자 고개를 돌린 지은이 그녀를 향해 주먹을 들어 보였다.

 

  "공지은이요. 공지은.“

 

  "아, 그래요. 공지은 씨. 내가 필요한 거 말만 하면 지은 씨가 뭐든지 해줄 겁니까?“

 

  "……뭐든지요? 어머, 사장님도. 참!“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지은은 몸을 비비 꼬며 교태로운 웃음을 터트렸다.

 

  "네, 사장님, 전 사장님이 원하시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뭐든지요?”

 

  “네, 뭐든지요.”

 

 지은은 사장님이 벗으라고 하면 당장이라도 벗을 기세였다. 작게 웃음 짓던 그의 입술 사이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럼 당장 이 방에서 나가요.“

 

 사장님의 집무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에이, 사, 사장님. 노, 농담이시죠?”

 

  “농담 아닙니다. 빨리 나가요.”

 

 사장님의 싸늘한 목소리에 움찔한 지은은 표정을 구기면서 집무실을 나갔다.

 

  "그런데 지은 씨는 목소리가 참 이상합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막 바뀝니다. 한지현 씨한테 죽을래 이랬다가 친하다고 그랬다가.“

 

  "아…….“

 

  "정말 이상하네요.“

 

 

 *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앉은 지현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러는 겁니까?”

 

  “……아니, 아닙니다. 사장님.”

 

 어금니를 꽉 깨물고 웃음을 참던 지현이 결국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현이 입을 벌리며 웃자 무표정이었던 우빈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씨익 웃었다.

 

  "이얼, 사장님 오늘 좀 멋있네요?“

 

  "내가 멋있었습니까?“

 

  "네. 오늘 진짜 멋있어 보였어요.“

 

  "한 비서한테 멋있게 보였다니 그럼 다행이군요.“

 

 사장님의 말에 지현의 입가에 수줍은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봉지은 씨는…….“

 

  "푸훕!“

 

  “……?”

 

  "봉지은이 아니라 공지은 씨에요. 공지은.“

 

 지현의 설명에 우빈은 머쓱한 표정으로 뒷덜미를 긁었다. 창가 테이블에 그녀와 마주 앉은 사장님이 팔짱을 끼고 물었다.

 

  “근데 가사 도우미가 왜 한지현 씨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거죠? 혹시 돈 떼먹었습니까?”

 

  "아뇨. 그럴 리가요.“

 

  “아니면 남자 문제에요?”

 

  “아니요! 사장님, 저를 어떻게 보시고.”

 

 지현은 손사래를 치며 펄쩍 뛰었다.

 

  “그런데 왜 봉지……”

 

  “푸훕. 공지은 이라니까요.”

 

  “공지은이든 봉지은이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입니까.”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린 지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은 씨가 갑자기 저를 싫어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음, 무슨 이유일까. 공지은 씨가 못돼 처 먹어서?“

 

 지현이 흠흠 헛기침을 하자 우빈이 얼른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게 아니면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그게 다 여기 앞에 계시는 비현실적인 비주얼의 사장님 때문이죠.“

 

  "나 때문이라고요?“

 

 사장님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떠오르자, 지현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사장님이 여직원들 사이에서 강다니엘 뺨치는 아이돌인 거 모르세요?”

 

  “그렇습니까?”

 

  “네, 사장님 잘생기고 스타일도 좋다고 여직원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해요.”

 

  “그럼 내가 아침에 한 비서에게 말을 걸어서 그런 겁니까?”

 

  “음, 뭐…….”

 

 지현이 말끝을 흐리자 우빈이 눈꺼풀을 찡그렸다.

 

  “그래서 그랬군요. 아, 내가 아침에 왜 그랬을까.”

 

  "그래요. 정말 왜 그러셨어요?“

 

  "미안합니다. 내가 바보 같았어요.“

 

 사장님이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한다는 것을 알아챈 지현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조금이라도 예쁜 내가 참아야죠.“

 

 지현이 한껏 으스대자 우빈이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아까 아래층에서 소리 지르던데 왜 그런 거예요?“

 

 설마 내가 사무실에서 소리 질렀던 걸 들은 건가?

 

 사장님의 눈치를 살피던 지현은 체념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아까 할머니랑 좀 싸웠어요.“

 

  "할머니랑 싸웁니까?“

 

 웃음을 참는 우빈을 보고 지현이 민망함에 양 볼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저도 정말로 참다 참다 생애 최초로 반항한 거라고요.“

 

  "지현 씨는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네. 당분간은요.“

 

  "당분간만?“

 

 지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초대장을 받은 사람 중에 저랑 만나고 싶다는 남자가 있어요.“

 

  "…….“

 

  "전 싫다고 했는데 할머니가 자꾸 만나보라고 하셔서 그것 때문에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어요.“

 

 눈을 가늘게 뜬 우빈이 손으로 턱을 괴며 그녀에게 물었다.

 

  "한 비서의 배우자 모집 광고에 꽤 많은 남자가 지원했나 보군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왜 그런 거죠?“

 

  "사람들 보는 눈이 다 똑같아서 그런가 보죠.“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나처럼 예쁘고 똑똑한 여자가 FA 시장에 나오니까 남자들이 다들 눈독을 들이는 거겠죠.“

 

 우빈의 입꼬리가 미묘한 각도로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고 지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왜 웃으세요? 제가 예쁘다는 게 안 믿기세요?“

 

  "웃어요? 내가요? 아니요. 안 웃었습니다.“

 

 분명 입술을 꿈틀거렸는데…….

 

  "아니에요?“

 

  "아닙니다. ……크, 크흡.“

 

 우빈이 집무실이 울릴 정도로 크게 웃자 지현은 입을 앙다물었다.

 

  "미안합니다. 그냥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게 웃겨서 그랬습니다.“

 

 우빈의 변명에도 지현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치, 나 진짜 예쁜데 나 고등학교 때 동네에서 제일 예쁘다고 소문났었는데.”

 

  "예쁘다고 하니까 진짜로 예쁜지 확인해 보고 싶군요. 확인해 봐도 됩니까?“

 

 지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눈만 껌벅이고 있는 지현에게 우빈이 불쑥 손을 내밀었다.

 

  "만져도 돼요?“

 

  “네?”

 

  “예쁘다면서도. 진짜 얼마나 예쁜지 알고 싶네요.”

 

  “……흠, 뭔가 사장님께 말린 것 같은데요?”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지현은 순순히 그의 손을 자신의 뺨에 가져갔다.

 

  “그래요. 어디 한 번 실컷 만져봐요.”

 

 우빈이 손을 뻗어 부드럽게 지현의 볼을 쓸어내렸다. 엄지로 자신의 볼을 쓰다듬는 우빈의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그의 다정한 손길에 지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한 비서 피부가 정말 좋군요.“

 

  “…….”

 

  “잡티 하나 없는 도자기 피부 같아요.”

 

 지현은 떨지 않기 위해 입을 앙다문 채로 우빈을 빤히 바라보았다. 가만히 들여다본 그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피부색은 하얀 편이에요?“

 

  "네. 하얘요.“

 

 움직일까 말까 망설이던 우빈이 손가락을 움직여 손끝으로 지현의 눈썹을 만졌다. 그의 손가락이 속눈썹을 건드리자 자연스레 뻗어 있던 그녀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속눈썹이 굉장히 길고 풍성하네요. 붙인 겁니까?“

 

  "아니요. 이건 제 속눈썹이에요.“

 

  “진짜군요?”

 

  “네, 진짜예요.”

 

 그저 사장님이 자신의 얼굴을 만지고 있을 뿐인데, 지현의 콧구멍에서 뜨거운 숨결이 나왔다.

 

 별거 아닌데 이거 되게 부끄럽네.

 

  "코는 되게 귀엽네요.“

 

  "'코가 귀엽다'라는 말이 무슨 말이에요?“

 

  "그냥 뭐…….“

 

 한참 동안 닿아 있던 손이 덜어지자 지현은 조금 아쉬웠다. 그녀의 마음을 눈치챈 건지 옅은 미소를 지은 그가 다시 볼에 손을 올리자 지현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여기가 입술인가요?“

 

 우빈의 손가락이 그녀의 입술을 건드리자 지현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었다.

 

  “네, 입술이에요.”

 

 지현의 심장이 거세게 쿵쾅대서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오늘 립스틱 무슨 색 발랐어요?“

 

  "립스틱 안 발랐어요. 그냥 립밤 발랐어요.“

 

  "그래요?“

 

  "네.“

 

  "그래서 그런지 입술이 되게 촉촉 하군요.“

 

  “……이제 됐죠?”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볼을 숨기기 위해 지현은 몸을 뒤로 뺐다. 달아오른 마음과 얼굴을 가라앉히기 위해 지현은 숨을 고르게 쉬고 바쁘게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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