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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마피아게임
작가 : 맨온파이어
작품등록일 : 2017.12.17

제한된 공간에서 시작한 마피아 게임은 모두가 죽어서야 끝이 난다.

영국의 추리여왕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모티브를 따온 살인극. 살인과 살인 사이의 연결고리를 통해 긴장감은 더욱 커져만 가고 모두가 죽었을 때 당신은 범인이 누구인가 확인하기 위해 다시금 책장을 앞으로 넘기게 될 것이다.

 
회상
작성일 : 17-12-17 13:55     조회 : 200     추천 : 0     분량 : 7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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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장. 회상

 

 

 김동훈. 그는 나와 같은 05학번이자 영문과 8대 학생회장이었다. 동시에 ‘제인 오스틴’의 초대 수장이기도 했다. 그는 학회를 꾸릴 무렵 나와 경찬에게 손을 내밀었다. 동기이자 친구였던 셋은 뜻을 함께 모아 학회를 세웠다. 동훈은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임원진을 이끌었고 우리는 임원으로써 제 역할을 다하며 동훈을 밀어주었다.

 

 그 결과 대외 스피치 대회를 비롯한 각종 경연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뽐내며 학교 정문 앞 현수막을 독차지했다. 봄, 여름,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다가올 무렵, 우리는 꿈같은 시간의 피날레를 장식할 영어과 전통축제인 ‘학술제’를 남겨두고 있었다. 학술제란 영문과 학생들이 배우가 되어 한 편의 영어연극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학과 대표 교수들부터 고학번 선배들까지 모두 참석하는 자리로 영문과 연중행사 중 가장 큰 의미를 두는 메인 이벤트였다.

 

 대부분 작품성 있는 영화를 연극 대본으로 각색해 막과 장으로 나누어 극을 완성시키는 수순이었다. 임원진을 비롯한 연극 희망자들은 한자리에 모여 작품선택에 나섰다.

 

 "이미 유명한 작품들은 대부분 전대에서 다 했어.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맘마미아’는 역대 최고로 평가받고 있지. 일단 정극과 희극 중 어떤 걸 선택할지 결정해야 돼."

 

 경찬은 원형테이블에 모인 사람들에게 눈길을 주며 운을 띄웠다. 곧 이곳저곳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누군가에 의해 다시금 이목이 집중되었다.

 

 "정극 같은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력과 발성이 탁월해야 돼. 기존 작품에 대한 감동이 워낙 크기 때문에 아마추어들의 무대라도 자연스레 기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지. 물론 배역들이 맡은 바 연기를 완벽하게 해낸다면 그 이상의 감동을 이끌어 낼 수도 있어. 반대로 희극은 아마추어들이 연기하기에는 훨씬 부담이 덜한 편이야. 전반적으로 극 분위기 자체가 밝기 때문에 실수를 해도 애드립으로 넘어갈 수 있지. 그렇다고 정극에 비해 감동이 덜하다고 평가할 수도 없어. 작년에 한 ‘세 얼간이’가 히트 친 건 다들 알고 있지? 결론을 말하자면 극의 종류가 어찌됐든 배우들이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녹아들 수만 있다면 극은 성공한다고 보면 돼."

 

 깔끔하고 반듯한 외모였다. 만년 학생회장만 해왔을 것 같은 모범생 이미지지만 가끔 웃을 때에는 반항기가 보인다. 누군가는 학회장을 보면 제임스 딘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이미 영문과의 아이콘이었다.

 

 "학회장님의 고견 잘 들었습니다. 그럼 저도 개인적인 의견을 말해 보겠습니다. 사실은 제가 얼마 전에 감명 깊게 본 뮤지컬이 한 편 있습니다. 영화로도 제작된 바가 있는 ‘파리넬리’입니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에 다들 아실 거라 믿습니다. 연극도 좋지만 이번에는 뮤지컬 형태의 공연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갓 들어온 새내기는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신입생에게 쏠렸다. 지수는 모두의 동의를 구하듯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아이디어는 좋아. 그런데 과연 파리넬리를 연기할 사람이 있는 거야?"

 

 지수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1년 선배 민유희가 부드러운 웃음을 띠며 물었다.

 

 "그럼요. 감히 말씀드리자면 제 머릿속에는 이미 중요 배역들이 정해졌어요. 파리넬리 역에 ‘김동훈’, 그의 형인 리카르도 역에 ‘정선재’, 마지막으로 음악의 어머니인 헨델 역에는 ‘유혜나’ 어떤가요?"

 

 지수의 의견은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졌다. 동시에 그녀는 총괄감독의 자문가로 낙점 받았다. 동훈은 총괄감독 겸 주인공인 파리넬리를 연기하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 성악을 배운 경험이 가장 큰 가점으로 작용했다. 당시 밴드 동아리에서 메인 보컬을 맡고 있던 나와 학교 축제에 단골로 등장하던 수준급 노래실력의 혜나는 각각 리카르도와 헨델 역에 캐스팅 되었다. 남은 조연들도 끼 있는 학우들로 채워지고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었다.

 

 모든 연출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유희는 조명과 음향감독을 맡아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었다. 경찬은 무대를 꾸미고 즉석에서 여러 소품들을 만들어냈다. 가영은 궂은 잡일을 마다않고 척척해내며 다른 이들이 연극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각자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몰두하며 두 달이란 시간을 흘려보냈다.

 

 D-day.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간 노력했던 시간을 고스란히 복원해냈다. 동훈이 아리아 <울게 하소서>를 부르면서 극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한편의 뮤지컬이 끝나자 관중들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배우들과 스텝 모두가 무대 위로 올라와 손을 잡고 감사인사를 올렸다. 동훈은 눈시울을 붉히며 유종의 미를 받아들였다.

 

 "오늘 이곳을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발전하는 영문과가 되겠습니다."

 

 감동과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자연스레 뒤풀이까지 이어졌다. 불과 몇 시간 전이지만 어느새 추억이 되어버린 소중했던 순간을 다 같이 회자하고 있었다. 그러나 밤새 얘기해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이야기는 다음 날 ‘학회장 실종’이란 충격적인 소식으로 대체되었다.

 

 "다음 날 갑자기 사라져버렸어. 그리고 벌써 6년이란 시간이 흘렀어. 경찰 쪽에서도 수사에 손을 뗀 지가 꽤 될 거야. 이미 죽었다고 결론지었겠지. 만약 살아 있다면 6년 동안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그리고 설령 동훈이가 여기 있다한들 우릴 죽일 이유는 또 뭔데?"

 

 난 마치 어딘가에 숨어있을 동훈에게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내뱉었다. 혜나는 양 손으로 관자놀이를 비비며 다시 소파에 주저앉아버렸다. 실종자가 언급되면서 분위기는 더욱 침울해졌다. 다들 머릿속으로 잊고 있던 동훈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듯 숙연해졌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 범인은 일부로 저런 트릭을 쓴 거야. 녀석은 순식간에 두 가지 효과를 얻어냈어. 일단 우리를 완전히 공포에 몰아넣는데 성공했어. 옛 기억을 이용한 심리적 공격인 셈이지. 게다가 제 3의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범인의 후보명단에 자연스레 끼어 넣었어. 이로써 머릿속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 셈이지."

 

 "그런데 범인이 과연 저 효과만 노리고 아리아를 틀었을까?"

 

 유희는 그 외에 뭔가 더 있을 거 같다는 표정이었다. 경찬 역시 그 말에 동의했다.

 

 "범인은 왜 굳이 제 3의 인물인 동훈이를 등장시킨 걸까? 혹시 가영이가 죽은 이유도 동훈이와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동훈이가 실종된 이유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지."

 

 "그럼 동훈오빠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공유해볼까요? 혹시 어떤 실마리가 잡힐지도 모르잖아요."

 

 지수는 브레인스토밍을 제안했다. 키워드는 김동훈. 그와 관련된 정보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이 기존에 알고 있던 정보들뿐이었다. 그가 외동아들이며, 월드컵 경기장 인근에 살고, 집안형편이 꽤나 어렵다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동훈오빠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네. 그래도 1년이나 같이 생활했는데. 그러고 보니 그 실종사건이 일어나고 며칠간이나 경찰이 학교에 찾아와 우리한테 질문을 했었잖아. 물론 쓸 만한 정보는 거의 얻지 못했지만."

 

 유희는 뭔가 씁쓸한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동훈 오빠,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어요. 예전 교양과목을 같이 들을 때 심리검사를 한 적이 있는데 답안지에 인적사항을 체크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우연히 본 거지만 확실하게 보았거든요. 분명 편부모에 체크가 되어 있었어요."

 

 지수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덧붙였다. 과연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유는 설명이 되었다. 집안에 가장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물질적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너무나 큰 부분이었다. 그러나 동훈은 그런 사실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어쩌면 학회장이란 견장의 무게감이 그를 지치게 한 건 아닐까.

 

 "계속 더 할 거야? 더 이상 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어차피 범인은 우리가 하는 짓을 비웃고 있을 거야. 이런 풋내기 탐정놀음에 난 더 이상 놀아나고 싶지 않아."

 

 혜나는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냉장고로 향했다. 그녀는 냉장고 문을 열더니 술병과 물을 챙겨 2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재빨리 뒤따라가 그녀의 몸을 돌려세웠다.

 

 "뭐하는 짓이야? 지금 사람이 죽었어. 범인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그런데 혼자 술이나 마시고 있겠다고?"

 

 이성을 놓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지만 혜나의 철없는 행동에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냉정했다.

 

 "내가 봤을 때 오히려 혼자 있는 게 더 안전할 거 같은데? 저 방문을 닫고 잠가 놓으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할 테고, 그럼 내가 범인이 아니고서야 위험할 일이 전혀 없지 않겠어?"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나를 버려두고 다시금 계단을 올랐다. 그녀의 발걸음이 멀어질수록 알 수 없는 패배감이 몰려와 내 입을 박음질하더니 결국엔 벙어리로 만들어버렸다. 어떻게든 가서 다시 잡아야 하는데, 이대로 돌아서면 분명 후회할 텐데, 수만 가지 잡생각이 머리를 잡아먹어버린 탓에 정녕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했다. 결국 방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고 꽤나 오랫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만 내려와요. 오빠. 언니는 괜찮을 거예요."

 

 지수는 선뜻 내려오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담담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물론 전혀 위로는 되지 않았지만 막무가내로 올라갈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녀도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혜나가 많이 혼란스러울 거야. 아무래도 전 연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유희는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지만 내 눈치를 보진 않았다. 그녀에겐 추측보단 팩트가 우선순위였다.

 

 "영문과 공식 커플이었던 만큼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던 것도 사실이고 왕의 여자라는 타이틀도 제법 부담스러웠을 거야. 물론 그 모든 걸 극복하고 6개월 이상 사귈 수 있었던 건 혜나의 사랑이 컸기 때문이지만."

 

 유희의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날아와 내 폐부를 찌르고 들어왔다. 숨을 쉬기 힘들만큼 쓰라렸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사실뿐이어서 반박조차 할 수 없었다. 혜나는 동훈이 실종된 후에도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옆에서 그걸 지켜보는 고통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갑자기 사라져버린 동훈이 줄곧 원망스러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겐 기회로 작용했다. 힘들어하는 혜나 옆에서 말없이 기다려주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겐 위로가 되었으니까. 그녀의 마음이 다시 조금씩 열리는 걸 바라보는 건 내게 큰 행복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연극이 막을 올렸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갑작스런 암전이 찾아온 것이다. 지금 상황 역시 무대의 모든 조명이 나간 것처럼 어둡고 절망적이었다. 대체 범인은 어떤 목적으로 이런 시나리오를 쓴 것인가.

 

 "어쨌든 지금 혜나는 혼자 있는 편이 나을지도 몰라. 짧게나마 한숨자고 나면 평정심을 많이 되찾겠지. 방문을 잠갔으니까 누구도 들어가진 못할 테고. 물론 혜나가 범인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말이야."

 

 경찬은 유희의 말에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방 안에 창문이 하나 있는데 잠겨 있는 걸 확인했어. 혜나가 먼저 열어주지 않는 이상은 들어올 수 없을 거야. 더구나 높이가 상당한 2층 창문을 기어오를 수 있는 캐릭터는 스파이더맨밖에 없어. 결론은 방문으로 누군가가 들어가는지만 지켜보고 있으면 어떤 일도 일이나지 않을 거란 얘기지."

 

 경찬은 말을 마치고는 길게 하품을 했다. 어느 새 시간은 새벽 2시가 되어 뻐꾸기가 집밖으로 나와 울기 시작했다. 모두가 긴장감과 피로에 절어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밤을 새려면 커피라도 마셔야겠어. 당장이라도 눈을 감으면 그대로 쓰러질 거 같으니까."

 

 "제가 커피를 타 올게요. 마침 1회용 팩에 든 커피를 몇 봉지 챙겨왔어요. 유희 언니, 나랑 같이 가."

 

 지수는 유희를 데리고 부엌으로 사라졌다. 경찬은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내 어깨를 토닥였다. 난 말없이 2층 방문만 바라보았다. 지금이라도 장난이었다는 듯 웃으며 내려와 줬으면 좋겠다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빗줄기는 약해질 생각이 없는 듯 더욱 더 세차게 창문을 때리기 시작했다. ‘고립’이란 단어가 이럴 때 쓰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었다. 부엌에서 물 끓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커피가루가 종이컵에 쏟아지는 소리. 그건 마치 사우나 안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모래시계 속 모래입자들 같았다. 이 모든 소리가 확성기를 갖다 대기라도 한 듯 정확히 들리는 이유는 가영이 만들어낸 숙연함 때문이리라.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커피포트가 고장 난 탓에 주전자에 물을 끓이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요."

 

 지수는 커다란 쟁반에 네 잔의 커피와 설탕 컵을 담아왔다. 그러나 누구하나 선뜻 커피에 손을 대는 사람이 없었다. 지수는 뒤늦게 아차하며 아무 잔이나 집어 들었다.

 

 "설마 제가 커피에 독을 탔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없길 바라며 기미상궁이 되어 먼저 맛을 보겠나이다."

 

 지수는 홀짝이며 커피를 맛봤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맛이 제법 괜찮다고 자신했다.

 

 "나는 그냥 아메리카노는 써서 못 먹어. 설탕을 좀 넣어야겠어."

 

 경찬은 설탕을 한 스푼 덜어 커피에 넣었다. 유희도 슬쩍 맛을 보더니 설탕을 집어넣었다. 나는 샷을 추가해서 먹는 스타일이라 커피분말을 조금 더 넣어 진한 맛을 만들어냈다.

 

 모두가 커피를 마시며 몰려오는 잠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아메리카노 특유의 향이 코끝에 스며들자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었다. 잠시나마 가영이 죽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간 듯 몸이 편안해지면서 잃어버렸던 여유를 되찾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내일 아침까지만 버티면 돼. 해가 뜨기 시작하면 기다리기가 훨씬 더 수월할거야."

 

 경찬은 자꾸 나오는 하품을 손으로 막으며 울먹이듯 말했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였다. 몸 안으로 따뜻한 기운이 들어가자 눈꺼풀은 더욱 무거워졌다.

 

 "안되겠어. 냉수라도 마셔야지."

 

 경찬은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더니 입으로 퍼붓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잠을 깨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이것조차 큰 효과를 보진 못했다. 가장 먼저 꾸벅거리며 졸기 시작한 경찬이었다.

 

 "오빠, 일어나. 잠들면 안 돼."

 

 지수는 경찬의 팔을 흔들며 잠을 깨웠지만 이미 들어오신 그분은 좀처럼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위기는 빠르게 전염되어 유희마저 고개를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난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 이곳저곳을 풀며 스트레칭을 했지만 이미 무거워진 몸은 활력을 잃고 주저앉고 말았다.

 

 반쯤 감긴 눈꺼풀로 내 모습을 지켜보던 지수도 결국엔 소파에 드러누워 버렸다. 난 한숨을 쉬며 원망스런 눈빛으로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제 겨우 2시 20분. 시간은 늦게 가기로 작정한 듯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혜나가 홀로 있는 방문 역시 움직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고 있을까? 문득 방으로 향하고픈 마음이 동하여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금세 주저앉고 말았다. 내가 간다고 문을 열어줄 그녀가 아니었다. 이미 모두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새삼 시간을 앞으로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떻게든 혜나를 사랑하지 않으리라.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둘 생각이었다. 그럼 지금처럼 몸도 마음도 무겁지 않을 텐데. 과거에 얽매이는 한심한 짓은 하지말자고 몇 번이나 다짐했었지만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온전히 현재에만 집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인간은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를 고민하면서 가장 중요한 지금을 놓치게 된다. 지금은 과거와 미래의 경계이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우리는 살고 있다. 그 순간이 행복하면 추억으로 남고 불행하면 고통스런 악몽이 되어 우릴 괴롭힌다.

 

 대체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물었지만 결국 대답하지 못했다. 정신은 더욱 몽롱해져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제발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며 마침내 의식의 필름을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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