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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장미의 이름
작가 : 홍단
작품등록일 : 2017.12.14

꿈을 꿔.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꿈을.

알레테아의 혼잣말에 그가 묻는다.

...돌아가고 싶은 건가요?

대답은 생각보다 빠르고, 분명하게 돌아왔다.

돌아가고 싶다고 한 적은 없어. 기억 속에서 긁어내고 싶을 뿐이야.



알레테아도 한때는, 미치도록 돌아가고 싶었다.
그녀의 부모와, 형제와, 이웃들의 몸을 양분으로 피어난 그 혐오스러운 붉은 꽃들의 꿈을 꾸기 전까지는.

 
13화 - 엘피스(2)
작성일 : 17-12-16 22:15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4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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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넓고,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이불이 푹신푹신한 침대였다. 침대 옆에는 작은 탁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 핏물을 씻는 데 쓴 것으로 보이는 얼룩덜룩한 수건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니 이미 살갗과 뱃가죽은 이미 재생을 마친 상태였다. 아무래도 영양분을 어떻게든 섭취한 후 부드러운 침대 위에서 잠을 푹 잔 덕이었으리라.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엘피스는 자신이 있는 공간이 어디인가 두리번거리며, 어떻게든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파악하고자 했다.

 

  모독자가 된 이후 - 아니, 모독자가 되기 전에도 이런 푹신한 침대 위에서 잠이 들었던 적이 없었는데, 도대체 어떤 사람이 자신을 이 침대 위에서 쉬도록 했단 말인가?

 

  어쩌면 상처를 심하게 입은 선택받은 백성으로 착각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선택받은 백성 어느 종류 중에서도 이 정도까지 몸이 망가지고도 살아남는 개체는 없었다. 가루다족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가루다족은 새의 형상을 가진 종족인데다 어느 신의 백성도 아닌, 아예 인간과는 다른 종족이라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가루다족 무리는 제국 밖에서 공동사회를 형성하고 살고 있기에 애초에 제국 내에서 발견될 일이 없었다. 고로 가루다족이라고 착각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애초에 이 정도의 살림을 차릴 정도로 부유한 자라면 최소한의 교육은 받았을 터인데, 신의 백성이 이 정도까지 망가지더라도 죽지 않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신의 백성이라도 내장이 흘러나와 질질 끌릴 정도로 상해를 입으면 죽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내 정체가 모독자란 것을 알고도 도와주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말도 안 된다.’

 

  그렇지만 모독자를 도와준다는 건 더욱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모독자를 도와주었다가는 무슨 꼴을 당하는지, 제국의 인간이라면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 거기다 이 정도의 부를 쌓은 자라면 대체로 제국의 고위층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 생각을 품었을 리가 만무했다.

 

  어쨌든 엘피스는 자신에게 도움을 준 자에게 별로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게 착각으로든, 아니면 다른 목적으로든 간에, 자신이 모독자인 이상 위해만 끼칠 것이 뻔했다. 자칫하면 신벌이 내려 이 도시 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엘피스는 발가락과 손가락을 움직여 보며 자신의 몸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하고, 원래 입고 있던 옷가지를 챙겨 서둘러 떠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원래 입고 있던 옷을 걸레짝이라 생각해서 버렸는지 몰라도, 옷이 없어져 있었다. 방 안 옷장에도, 바닥에도, 그 어느 곳에도 자신의 옷이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입을 만한 다른 옷조차 한 벌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지금 입혀져 있는 옷을 입고 나가기엔 얇은 실크로 만든 하얀 속옷이 전부였기에, 입고 나갈 수가 없었다.

 

  만약 입고 나갔다가는 맨살이 다 비칠 게 뻔히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하얀 속옷이었다. 옷은 원래 전투하다가 찢어지라고 있는 거라며 신경 안 쓰는 엘피스조차도 신경이 안 쓰일 래야 안 쓰일 수가 없었다. 옷 안이 훤히 다 비치는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가 되려 눈에 뜨일 게 뻔하기도 했고.

 

  거기다 원래 들고 다니던 단검이 수중에 없다는 것 또한 마음에 걸렸다. 아마 옷을 벗기고 침대에 누이는 과정에서 흘린 건지도 모른다. 소중한 제자 녀석이 직접 만들어준 무기로, 그 날카로움과 단단함 덕에 신의 백성들과 싸우는 데 정말로 요긴한 것이었다. 만약 그 단검이 없었다면 자아의 신의 백성과의 싸움에서 제대로 싸우지도 못했을 터였기에 더욱 절실했다.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군. 소중하고 요긴한 무기인데 말이지.’

 

  엘피스는 한숨을 쉬며, 일단 침대에서 일어나 몸이 제대로 기능하는지부터 꼼꼼하게 체크해 보기로 했다. 손가락 마디마디 제대로 움직이는지, 관절이 무리가 가진 않았는지, 재생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원래 대충 체크하고 가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이곳저곳 몸을 체크하고 있는데 침대 옆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스르르 열렸다. 꽤 무거워 보이는 문이라 열린다면 꽤 시끄러운 소리가 나리라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굉장히 조용히 문이 열렸다.

 

  그 바람에 엘피스는 저도 모르게 바로 경계 태세를 취하며 문에서 들어온 이를 노려보았다. 하도 안전하게 지낸 적이 없다 보니 저절로 몸이 그렇게 움직이는 게 버릇이 되어 버렸다. 저 사이로 과연 누가 나올지. 어쩌면 자아의 신의 백성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문이 열리고 등장한 이는 불에 타는 듯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인자한 미소를 지닌 남자였다. 평화의 신 따위가 인간 앞에서 짓는 거짓 미소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진짜 미소를 지닌 남자. 하지만 그럼에도 경계를 취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남자는 저도 모르게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는 엘피스를 향해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모독자님... 아니, 위버멘쉬시여. 잠은 편히 주무셨는지요? 경계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롯이 제 의지로 당신을 도와 드렸으니까요.”

 

  “위버멘쉬라... 그 단어를 말하는 자를 만나게 되다니 참 오랜만이군요. 하지만 제가 계속 여기 있다가는 당신에게 위해를 끼치는 꼴이 되고 말 겁니다. 바로 떠날 수 있게 옷과 단검을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위버멘쉬시여, 그렇게 조급해 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저는 위버멘쉬님을 밀고하지 않을 거고, 주민들에게도 입단속을 시켜 두었으니까요. 그러니 머무시면서 몸을 추스르시는 게 어떨까요?”

 

  “죄송합니다. 이대로라면 폐만 끼칠 겁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는 없지요. 제 옷과 단검을 돌려주시는 대로 바로 떠나겠습니다.”

 

  엘피스는 그의 제안을 완강히 거부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에 들었다가 일어난 게 얼마만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이 쓰러진 시점에서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창문 너머로 비치는 해의 위치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그리 오래 전도 아닌 때에 거리 한복판에서 그런 몰골로 나타났었으니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아마 개중에서는 모독자라고 짐작한 사람들도 꽤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입단속을 했다지만 본 사람이 너무 많았다. 만약 그 중 하나라도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끔찍한 일이 발생하는 건 금방이다. 그렇게 망하는 도시를 수도 없이 많이 봐 왔기에, 엘피스는 남자의 제안을 애써 뿌리치려 했다.

 

  “제가 위버멘쉬님을 구해 드린 것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붉은 머리카락의 남자는 문을 열려 하는 엘피스의 앞을 완강히 막아서며, 말을 계속 했다.

 

  “전 그저 모독자일 뿐입니다. 모독자 중 절대 다수는 착하지 않고, 전 그 절대 다수에 속하는 자입니다. 비키지 않으신다면 당신을 해치고서라도 나가겠습니다.”

 

  “전 위버멘쉬께서 그런 분이 아니란 것을 잘 압니다. 절 해치려 하셨다면 진작 해치우셨겠지요.”

 

  난감하고도 답답한 상황이었다. 남자는 엘피스의 말에 저 나름대로 반박을 해 가며, 도저히 길을 내주려 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확신이 있기에 저러는 건지. 지금 자기 앞에 있는 모독자가 위해를 가하지 않을 거라고 무슨 자신감으로 판단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만약 여느 성질 더러운 모독자들 앞에서 저랬다가는 모가지 날아가는 것 정도로 끝나지 않을 지도 몰랐다. 아마 자근자근 발끝부터 씹어 먹혀 죽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고 저리 행동하고 있었다.

 

  ‘위버멘쉬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것도 그렇고. 모독자 신앙에라도 빠져 있는 건가? 아니면...’

 

  가끔 신들의 압제에 지쳐 모독자를 신앙하는 자들이 있기는 했다. 신에게 왕권을 받아 다스리는 제국 황제의 광기가 심해지면서, 차라리 모독자를 찾으며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자들이 생기곤 했던 것이다. 혹은 삶이 너무 힘들고 도저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자들이 뭐라도 되라는 심정으로 모독자를 섬기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이 남자는 그런 자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런 이들과 달리 부유했고, 무엇보다도 그의 눈에는 광기가 없었다. 으레 모독자를 섬기는 자들은 심히 몰린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이들의 눈에는 언제나 제국과 신, 그리고 인생에 대한 분노와 광기가 얼룩져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에게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이 눈동자 속에 가득히 펼쳐져 있었다. 마치 그의 머리카락 같이 불타오르는 것은 신앙도, 광기도, 분노도 아니다.

 

  “권속이 되길 원하신다면, 거절하겠습니다. 전 모독자가 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아서, 권속을 만들 정도의 재능이 없습니다. 제 관할 영역과 관련된 특수능력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합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절대로요! 부탁드립니다. 위버멘쉬시여, 전 그저 위버멘쉬께서 든든히 휴식을 취하시고 안전히 머무르시다가 나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 목소리가 자못 간절했다. 휴식을 취하고 가지 않는다면 절대 안 놓아줄 것이라고 밖엔 생각되지 않는 간절한 목소리에 엘피스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머물러 주지 않곤 안 끝나겠어. 일단 잠시 동안만이라도 있어 줘야겠군.’

 

  결국 엘피스는 자신이 누워 있었던 침대 위에 도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푹신푹신한 시트가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있도록 도왔으나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몇 분 정도만 대충 어울려 주다가 나갈 생각이었으니까.

 

  “네, 그럼 잠시만 머물러 있겠습니다. 대신 아주 잠시만입니다. 이후엔 단검과 옷을 돌려 주셨으면 좋겠군요.”

 

  그것이 둘의 첫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기껏해야 몇 시간 정도나 될까 말까한 덧없는 만남.

 

  그러나 오랜 세월을 살아 왔고, 앞으로 그보다 몇 십, 몇 백 배의 세월을 살아가게 될 엘피스의 입장에서도 정말 잊을 수 없는, 그런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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