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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장미의 이름
작가 : 홍단
작품등록일 : 2017.12.14

꿈을 꿔.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꿈을.

알레테아의 혼잣말에 그가 묻는다.

...돌아가고 싶은 건가요?

대답은 생각보다 빠르고, 분명하게 돌아왔다.

돌아가고 싶다고 한 적은 없어. 기억 속에서 긁어내고 싶을 뿐이야.



알레테아도 한때는, 미치도록 돌아가고 싶었다.
그녀의 부모와, 형제와, 이웃들의 몸을 양분으로 피어난 그 혐오스러운 붉은 꽃들의 꿈을 꾸기 전까지는.

 
12화 - 엘피스(1)
작성일 : 17-12-16 22:14     조회 : 245     추천 : 0     분량 : 5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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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밤은 기묘했다. 칠흑의 커튼 속에 달빛조차 흐리고 별만이 유난이 반짝이던, 그런 밤이었다. 대기는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불안정하게 움직였고, 군청색 구름이 별 사이를 헤집는, 그런 밤. 무슨 일이라도 금방 일어날 것만 같은.

 

  마치 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큰 일이 일어나고 말리라는 그런 느낌이 드는 밤이었다.

 

  엘피스는 평화의 신을 모시는 이 도시에 와 이곳저곳을 탐색하느라 몸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겨우 7일 동안 이 도시 내부의 몸을 숨길 만 한 장소부터 비밀스러운 길들까지, 많은 것들을 익히고 외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탓이었다. 사람을 최대한 만나지 않고 은신하며 행동하다 보니 몸뚱아리가 배로 힘들었다.

 

  지금 몸을 뉘이고 있는 골목길 사이 다 부서진 집터 또한 그런 과정에서 찾아낸 장소였다. 평화의 신전과 직통으로 연결되면서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 공간. 이런 장소를 찾으려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엘피스는 골목길 사이에 위치한 부서진 집터에 뉘였던 몸을 일으켰다. 피곤함에 몸이 녹아내리는 듯 했지만 일단은 쉬는 것을 좀 더 뒤로 미루기로 했다.

 

  특유의 오지랖이라기보다는, 뭔가 따끔따끔할 정도로 마음을 간질이는 것이 있었던 탓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망령들이 지금 움직여야만 한다고 귓전에 속살거리는 것만 같이 느껴졌으니.

 

  기묘한 밤, 이런 느낌이 오는 때에는 자신이 어떻게든 움직이지 않으면 무슨 사단이 나곤 했다. 그것도 단순한 미신이라 치부하기엔 기막힐 정도로 많이 벌어졌다.

 

  이전에 도움을 받은 이후 도시를 떠나던 날도 이런 기묘한 밤이었다. 당시 도시를 떠나며 엘피스는 지금과 같은 따끔따끔하게 마음을 간질이는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무시한 채 도시를 나가 버렸고, 나중에서야 그 도시에 신벌이 내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자신을 숨겨 주었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그 일이 벌써 10년도 더 전 일이었으나, 이후 엘피스는 그 날과 같은 기묘한 분위기의 밤만 되면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어 버렸다. 혹시라도 그 때와 같은 과오를 저지를까 봐, 그 날처럼 자신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게 될까 봐서.

 

  결국 엘피스는 피곤에 절은 몸을 일으켜 검은 로브를 두른 채 골목길을 묵묵히 걸어 나갔다. 길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별다른 일 없으면 빨리 돌아와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아니, 별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그리고 별 다른 일이 일어난다면 자신이 막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일어나기를 다짐하면서 엘피스는 골목길을 걸어 나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몸을 내밀었다.

 

  그리고 몸을 내밀자마자 엘피스는 자신의 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아챘다. 아니,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나온 골목과 이어진 음식점 쪽으로, 한 여자가 헐레벌떡 뛰어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뛰고 있기만 하다면 이 한밤중에 운동이라도 하나 보다 하고 나름대로 이해해 줄 수도 있었겠지만, 문제는 뒤에 따라오고 있는 것에 있었다.

 

  여자의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것은 새하얀 머리카락의 소녀로 보였는데, 여자가 나름 빠르게 달리고 있음에도 저 멀리서부터 거리를 좁혀 들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무시무시한 속도로 짓쳐들어, 얼마지 않아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여자는 뒤에서 쫓아오고 있는 것의 존재를 잘 모르고 일단 그냥 내달리는 것 같았다. 만약 알았으면 저 정도로 둘 사이의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는 상황에서 대로변을 따라 정직하게 달리는 미친 짓을 할 리가 없으니까.

 

  ‘이 밤중에 이 거리에서 도망칠 수 있을 만한 곳은 신전뿐이지. 아마 대로변을 따라 그대로 달려서 신전으로 도망치려는 건가 보군. 하지만 저대로 가다간 얼마 안 가 따라잡힐 터.’

 

  엘피스는 고민에 빠졌다. 밤의 기묘한 분위기와 자신의 감에 따라 거리로 나왔고, 거리에 나오자마자 곤경에 빠진 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평소대로라면 대충 도와주고 끝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 뒤에서 쫓아오는 자는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았다는 게 문제였다.

 

  평소에 만나곤 하는 불량배 놈팽이들은 몇 대 두들겨 펴 주기만 해도 바로 꼬리를 내리고 도망쳤다. 그래도 뻗대는 놈들은 단검으로 살짝 목 따는 시늉만 해 줘도 바로 오줌을 지리며 도망치곤 했다.

 

  그러나 저 뒤의 하얀 녀석은 아무리 봐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엘피스는 오랜 세월 신들에게 쫓기고, 신의 백성에게 쫓기다 보니 대충 그 사람에게 풍기는 분위기만 봐도 이 녀석이 해볼 만한 녀석인지, 아니면 힘든 녀석인지 대충 구분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 녀석에게선 정말 위험한 분위기가 풀풀 풍겨 오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그 녀석의 불길한 살기가 주변의 공기를 가득히 메워가는 것이 느껴졌던 것이었다. 저 무시무시한 살기를 쫓기고 있는 자가 눈치를 못 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팔 한 쪽은 완전히 걸레짝이 되어 덜렁거리며 뛰어 오는데, 녀석의 새까만 눈동자에는 어떠한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공허함과 순수한 광기만이, 칠흑의 밤보다도 새까만 눈동자에 가득 담겨 있었다.

 

  ‘위험한 녀석이다. 이길 수 없진 않겠지만...’

 

  하지만 저런 위험해 보이는 녀석과 싸웠다가는 분명 피를 엄청나게 흘리게 될 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바닥에 대량의 피를 흘렸다가 이 도시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평화의 신에게 들키게 되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아마 평소의 엘피스라면, 여자가 안타깝긴 하더라도 계획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두고 갔을 것이었다. 몇 달을 미리 조사하고 다른 자들에게 정보를 얻어 실행하려 한 계획이었다. 평화의 신에게 걸리지 않는다면 쉬이 실행될 지도 모르는 계획. 하지만 걸린다면 어렵게 진행될 수도 있는, 그런 계획이었다.

 

  그런 계획을 실행하게 되는 게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굳이 어려운 길로 가게 될 지도 모르는 모험수를 두는 멍청한 짓을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렇지만 변명이 무색하게도, 차마 돕지 않을 수 없었다.

 

  엘피스는 잠자코 기다리고 있다가 도망치던 여자를 잡아 끈 뒤, 누가 쫓아오고 있음을 알려 주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의 입을 막은 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친절히 알려 주기까지 했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어떻게 될 줄 알고 그런 멍청한 짓을 햇을까... 하지만 엘피스는 그녀를 도와주었다. 죽지 않도록, 도망칠 수 있도록 - 그것이 자신의 계획을 어렵게 할 수도 있음에도.

 

  쫓기던 그 여자가, 바로 자신을 숨겨준 대가로 신벌을 받은 자의 딸이었기 때문이었다.

 

  ‘멍청한 짓이야. 하지만 저 자는 날 구해주었던 이의 딸이 틀림없어. 그리고 난 그 자에게... 약속을 했었지.’

 

  엘피스는 쉽사리 떠나려 하지 못하고 밍기적거리는 여자를 보며, 잠시 그 때를 떠올렸다.

 

 ✳

 

  10년 전, 엘피스는 모독자라는 연유로 쫓기고 있던 신세였다. 당시 엘피스는 벼랑 끝까지 몰려 있는 상태였는데, 자아의 신이 신벌을 내리고 있던 도시를 향하던 중 습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자아의 신의 백성들이 습격한 탓이었다. 자아의 신은 다른 여타의 신들처럼 알현을 통해 선택한 자들에게 백성의 지위를 주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신벌을 내리고 있는 도시의 주민들 중 일부를 제 멋대로 선정하여 자아를 소멸시키고 괴물로 만들었는데, 이 괴물들을 자신의 백성이라 칭하였다.

 

  말이 좋아서 선택받은 백성이지, 사실상 저주 받은 불쌍한 자들일 뿐이었다. 인간의 모습 따위는 이미 잃어버리고, 인간의 마음조차 잃어버린 끔찍한 괴물들은 자아의 신의 명에 맹목적으로 충성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끔찍한 신을 위해 자신들이 죽는 것조차 거리끼지 않고 명령을 수행했다.

 

  엘피스는 이런 괴물들 수십의 습격을 받았으며, 어찌어찌 무찌르기는 했으나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그들의 무리가 그야말로 미친 듯이 엘피스를 공격해 댔기 때문이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습격해대며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이를 한 개라도 더 박아 넣고 죽는 그들의 공격에 엘피스는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고깃덩어리가 된 채 숨만 간신히 붙어 있고, 다리만 어찌어찌 움직이던 엘피스는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어떻게든 발걸음을 옮겨 작은 도시로 흘러들어갔다.

 

  엘피스는 완전히 피투성이가 되고 온몸이 너덜너덜한데 미친 듯이 피곤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해 재생에 쏟을 기력도 없었다. 도시의 거리에 들어 왔을 때, 거리의 사람들이 엘피스의 몰골을 보고 비명을 지를 정도로 엘피스의 상태는 처참했다.

 

  온몸의 살갗은 다 찢어지다 못해 하얗게 뼈가 드러났으며, 금색의 머리카락엔 엘피스와 자아의 신의 백성이 흘린 피와 살덩이가 한데 엉겨 붙어 있었다. 자줏빛 빛나는 눈동자 중 한 쪽을 상실하여 푹 파여 있었고 그 사이에서 고름이 검게 변색된 피와 함께 떨어져 내렸다. 옷은 완전히 걸레짝이 되었으며 뱃가죽이 찢어져 흘러내린 내장이 바닥에 질질 끌려 다니고 있었다.

 

  말 그대로 모독자 특유의 생명력으로 연명하고만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도시에 들어온 것도 제정신으로 저지른 짓이 아니었다. 만일 사람들이 만신전이나 근처 대도시에 있는 신전에 신고라도 했다면 엘피스의 운명은 그대로 끝장이었을 터였다.

 

  그러나 엘피스의 두뇌가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던지라... 엘피스는 길거리에서 팔리던 음식이 눈에 비쳐지자마자 바로 손으로 집어 입 안으로 쑤셔 넣었다. 살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곤 그대로 땅바닥에 엎드러져 잠이 들어 버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완전히 미친 짓이었으나, 정상적인 사고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엘피스의 몸은 재생을 위한 음식을 섭취하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

 

  만약 그 도시가 평범한 도시였다면, 엘피스는 그대로 끝장이 났을 것이었다. 아마 이게 웬 떡이냐 하면서 득달같이 달려든 자들, 혹은 길드로 인해 이미 만신전에 잡혀갔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 도시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있던 폭력의 신전에 잡혀갔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끔찍한 일이었다.

 

  모독자에게 만신전이란 죽음보다도 더 지독하게 두려운 장소였다. 모독자를 노리는 길드에 의해서든, 아니면 신들의 모독자 사냥에 의해서든 끌려 들어가면 엄청난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모독자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 끔찍한 실험을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어찌어찌 탈출한 이의 말에 의하면 모독자도 정신이 나갈 수 있는지, 나갈 경우 어떻게 되는지 등을 실험하기 위해 지독한 고문을 당했다고 했다. 온 몸의 살가죽을 벗겨내는 정도는 예사라고.

 

  그렇다고 폭력의 신전에 끌려가는 것이 더 좋으냐 하면 절대 아니었다. 폭력의 신은 20인의 신 중 가장 모독자를 증오하는 것으로 알려진 신이기 때문이었다. 만신전에서 탈출한 자는 있어도 폭력의 신전에서 탈출한 자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엘피스는 둘 중 어느 한 쪽에도 끌려가지 않았다.

 

  엘피스가 한참을 누워 있다가 눈을 뜨고 제정신을 차린 곳은 만신전의 고문실도, 폭력의 신전의 차가운 돌바닥도 아니었다.

 

  엘피스가 누워 있던 곳은 다름 아닌 침실이었다. 커다란 침대 위, 따뜻하고 폭신폭신한 이불이 덮여 있는 굉장히 아늑한 침실이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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