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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나는 단풍이었고, 낙옆이 되었다.
작가 : 수길
작품등록일 : 2017.12.16

화려해야 할, 오히려 그것이 "의무" 로 보여지는 청춘의 아프고, 어두운 면을 현실적인 감성으로
그려내보고 싶었다.

 
-
작성일 : 17-12-16 21:33     조회 : 356     추천 : 0     분량 : 18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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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단풍이었고, 낙옆이 되었다.

 

 

 내 인생은 멋진 이야기다.

 그 어떤 요정이 나를 지켜 주고 안내했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좋은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 -안데르센

 

 

 1.

 사방을 창과 문으로 닫아 놔서 조용한 방, 은효는 이불도 제대로 덮지 못한 채로 잠을 자고 있었다.

 “밥 먹어라” 어머니가 늘상 변함없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듣긴 들었는지, 몸이 움직이는지 않은지 은효는 인상만 찌푸릴 뿐이였다. “은효야 밥 먹어라” 첫 번째와 별 다를 것 없는 음성이 또 다시 들려왔다.

 “아 안먹어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었다. 은효는 이불 속에서 어제 마신 술 냄새를 맡고 있자니 속과 머리가 울렁거려 죽을 맛이였다. 덕분에 잠도 다시 찾아오지 않는 듯 했다.

 머리 맡에 대충 던져져 있던 핸드폰이 진동소리를 냈다. 은효는 잠을 다시 청하지 못하는게 그 타이밍에 울린 진동소리 때문인지 괜히 중얼중얼 욕짓거리를 입밖으로 냈다.

 “시발 꼭 이럴때 뭔가 울리지 시발 진짜” 은효는 폰을 쳐다보지않고 반대방향으로 다시 몸을 틀어누웠다. 지-잉

 “아 진짜 누구야 시발아 잠 좀 자자 잠 좀!” 몸을 겨우 일으킨 은효는 폰을 쳐다보고 그 상태로 5분이 지났는지 10분이 지났는지 시간이 얼마나 지난지도 모른 채 폰만 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노크를 하고, 방문을 열고 뭐라 말하는 것 같긴 한데 은효는 아무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2.

 어느새 은효는 준호의 사진 앞에 서있었다. 장례식장 예의를 차리거나, 옷가짐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은효는 어제 준호와 같이 술 마시던 그 상태로 하루가 채 걸리지 않고 또 다시 준호를 보러 온 것이다. 그리고 준호는 웃고 있었다. 하얀 꽃으로 둘러 쌓인 사진 속에서. 누군가 은효 앞으로 걸어오더니 은효가 쳐다보기도 전에 뺨을 후려갈겼다. 쫙!

 이미 제정신이 아닌 은효는 얼얼한 상태로 다시 쳐다보았다. 준호의 어머님이였다. 순간 이상하게도 은효는 차라리 조금 더 얻어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준호의 어머님은 그러지 않았다. 은효의 다 해진 츄리닝 바지를 붙잡고 꺼억꺼억 할 뿐이였다.

 은효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순간 은효는 뺨을 맞아도 깨지 않는 꿈이라면, 차라리 친구들이 장난치는 몰래카메라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을 인지했다. ‘진짜 난 개새끼구나..’

 

 

 

 3.

 “이름” 형사가 물었다. 은효는 자신과 형사 사이에 있는 나무 책상 무늬만 쳐다 볼 뿐 대답이 없었다. “이름..!” 형사가 또 다시 물었다. 은효는 그제서야 형사를 쳐다봤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지 않는다기보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은효의 머리 속에는 어제 초저녁부터 동네 호프집에서 말이 끊이지 않던 열정적인 준호의 모습만 그려졌다. 더 하고싶은 말이 있었을텐데, 언제쯤 다시 들을 수 있을까 하는 말도 안돼는 생각이 은효의 머리 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형사는 더 이상 이름을 묻지 않고 있었다. 형사한테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가죽자켓 안주머니에서 담배 한까치를 꺼내 물더니 여유롭게 뻐끔뻐끔 태우며 은효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저도 펴도 돼요?” 은효가 물었다.

 “한대 펴라” 형사가 답했다. 좀 이상한 형사였다. 은효가 자기 담배를 다 필 때까지 한마디 하지 않고 기다렸다. “이은효요” 담배를 다 태운 은효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은효” 따라서 중얼거리며 형사는 컴퓨터 타자를 두드리며 무언가를 작성했다.

 “주소”

 “서울시 도봉구 쌍문2동 미래빌라트 402호요”

 “미래빌라트..몇 호?”

 “402호요”

 “402호..나이”

 “스물여섯이요”

 “대학생?”

 “아니요, 딱히 하는거 없어요”

 “뭐 알바나 그런것도 안하고?”

 “네”

 “이런 곳에서 나랑 이런 대화하는게 기분 나쁠꺼 아는데,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너라서 참고 조사만 하는거야”

 “피해자요? 어떻게 된거에요?”

 “교통사고”

 은효는 교통사고라는 무덤덤한 형사의 말에 어떠한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무덤덤한 형사의 태도에 어이가 없어서인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인줄로만 알았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 눈 앞에서 웃고 떠들었던 친구여서인지 은효는 어떠한 반응을 해야 할 지 몰랐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사랑하는 이가 다치거나 죽으면 온갖 감정을 표현하던데..’ 은효는 순간 자신이 준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고 느꼈고, 그 순간 자그마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4.

 [주생주사호프] “이름 참 좆같네”

 은효는 어제 준호와 골뱅이소면에 소주와 맥주를 마셨던 호프집 간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몇 년을 다녔던 호프집인데 이제와서 새삼 가게 이름도 병신같이 느껴졌다. 준호를 포함해서 다른 동네 친구들과 갓 성인이 됬을 땐 술에 살고 술에 죽자며 의리를 다지며 좋아했던 똑같은 호프집인데..

 은효는 다른 친구들 생각에 핸드폰을 꺼내들었지만 이내 다시 주머니 속으로 집어 넣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 몰랐다. 솔직하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직 친구의 죽음을 받아드리지 못했기에, 슬퍼하지도 울지도 못했다고 자기위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은효는 담배를 꺼내물어 불을 붙히고 가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사장님이 어제 마감 청소를 안하고 문을 닫았는지 어제 앉아있던 자리는 무서울만큼 그대로였다.

 거의 다 먹고 양념 된 오이만 뒹구는 골뱅이소면 그릇, 소주 세 병과 맥주 다섯 병 바닥엔 소주 한병과 떨어트린 젓가락, 물컵이 시간이 멈춘듯 그대로 있었다.

 

 

 

 5.

 은효가 준호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사장님한테 주문을 했다.

 “사장님 여기 골뱅이소면이랑 소주 하나 주세요”

 사장님이 물었다. “오늘은 혼술이야?”

 “아니요! 준호 이새끼 이제 올꺼에요”

 “요즘은 맨날 둘이 마시냐? 딴 애들은 왜 안와 다들 바빠?”

 “에이 다 바쁜척 하는거죠, 취업준비다 자격증시험이다해서”

 “바쁠때지 바쁠때야! 눈 깜빡하면 서른, 눈 깜빡하면 결혼! 아주 죽어난다. 나도 정신차려보니 지금 이 짓거리를 하고 있네”

 은효는 사장님을 말을 들으면서 손으로는 준호에게 빨리 오라고 재촉 문자를 보내고 있다. 사장님은 괜한 이야깃거리에 신이 났는지 안주를 만들면서도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근데 지금을 잘보내야돼!! 젊을 때가 좋은거지 뭐든지 할 수 있고, 열정 넘치고 패기 넘칠 때!! 은효야 넌 뭐 안하냐?”

 “저요? 전 뭐..생각중이에요”

 치-링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준호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그래 안주 금방 나간다 좀만 기다려라”

 “네 많이 주세요 많이!”

 준호는 기분이 좋은지 실실 웃으면서 은효 앞에 앉았다.

 “방금왓냐? 뭐 시켰어?”

 “넌 뭐 시킨지도 모르고 많이 달라그러냐 병신새끼, 골뱅이소면”

 “오 좋았어 오늘 오디션도 후회없이 봤으니 진하게 한잔 하자” 준호는 여전히 들떠있었다.

 “넌 뭐 맨날 오디션만 보고 되는게 하나도 없냐, 진짜 오디션이라는거 보긴 보는거냐?”

 은효는 자기와 다르게 꾸준히 무엇인가를 하고 있던 준호가 내심 부러웠는지 툭 던져물었다. 그런 은효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준호는 신나서 대답했다.

 “이번에는 뭔가 분위기가 좋았던 거 같아. 그렇게 긴장도 안하고, 보여줄 수 있는 연기는 다 보여주고 나온거같아” 준호는 오디션 보던 순간을 다시 떠올리면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듯 했다.

 “모르겠어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더라고! 아 있잖아, 그런 날! 평소에는 별 신경도 안쓰던 거리가 괜시리 이뻐보이는 날”

 “너 술 마시고 온 거 아니지?” 은효가 이상하게 들뜬 준호를 비웃듯이 물었다.

 “아냐 오디션보고 너 보러 바로 온거지! 여튼 정말 괜찮은 하루였어. 아 그래서 오디션장에 도착해서 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와 진짜 매번 느끼는거지만 얘들 왜 그렇게 예쁠까? 예쁜 친구들이 하도 많아서 흘깃흘깃 쳐다보면서 연습도 못하고 시간 보냈다 그래도 뭐 만족!” 준호는 여자를 참 좋아했다. 어찌보면 그게 준호 삶의 원동력처럼도 보인다고 은효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 그래서 결국 예쁜 여자 지원자들 그렇게 쳐다보다가 정신차려보니까 곧 내 차례더라고, 그 순간에도 ‘아 큰일났다 연습 못했는데’ 라는 생각이 아니고 ‘꼭 저 친구들이랑 작품을 같이 하면서 연기하고 싶다’ 라는 생각했다니까? 나 제대로 미쳤지?” 준호는 실실 웃으면서 마른 안주를 집어먹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제정신은 아니지” 은효가 주방쪽을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골뱅이소면은 나오려면 조금 걸릴 것 같았다. 사장님이 주방에서 나와 뒷문에서 아내와 통화하는 소리가 얼핏 들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차례가 되서 내 이름을 호명하더라고! 지금까지 오디션 볼 때는 진짜 심장 두근되는게 내 귀에도 들릴 정도였거든? 근데 오늘은 아니였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 좋게 봐줄꺼같고 잘 될 것만 같은 느낌이였거든”

 은효는 솔직하게 노래나 춤, 연기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관심조차 없었지만 준호 얘기 만은 흥미가 있었다. 자기와 가까운 사람 중에 이런 생활을 하는 사람은 준호가 전부 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 들어갔어! 심사위원 네 분이랑 가운데 카메라가 있고 옆에 큰 티비가 있었는데 거기에 내 얼굴이 실시간으로 나오더라고, 솔직히 그 때 아니면 언제 내 얼굴이 티비에 나오는걸 제대로 보겠나 싶어서 나도 같이 티비 속 내 얼굴을 보고 있었지 그러니까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자기소개를 하고 연기를 시작하라는거야. 내가 자기소개를 뭐라했는지 알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등신아”

 “안녕하십니까!! 유명 드라마의 배경이 된 쌍문동에서 살고 있는 장준호 입니다!! 아침엔 카페, 저녁엔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연기에 대해서 진지한 열정을 놓지않고 있는 스물여섯 청춘 배우입니다!!” 순간 은효는 다른 테이블을 둘러보았다. 준호가 마치 은효가 심사위원인 것처럼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오디션장에서 했던 자기소개를 재연했기 때문이다. “쪽팔려 앉아”

 “어때?” 이미 준호는 은효에게 꽤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느낌으로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뻔했다.

 “음..병신같아 청춘 배우가 뭐냐 청춘 배우가”

 “아 그래? 뭐 어떻게 벌써 그렇게 말해버렸는데” 준호는 원했던 대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개의치 않아했다.

 “사실 심사위원들이 무표정으로 딱히 반응이 없었어, 나처럼 그런 사람들이 한둘이겠냐 그래도 난 신경쓰지 않고 바로 연기를 시작했지! 너한테 보여줬었나?”

 “뭐 너 연기?”

 “응, 진짜 찌질한 남자친구 역할이거든. 헤어진 전여자친구한테 연애 할 때 빌려줬던 돈 갚으라고 하는 남자친구 역할”

 “딱 장준호 너잖아 뭐 연기 할 필요도 없었겠다” 은효는 대답했다. 그리고는 준호가 그런 남자는 아니라는 것도 대답과 동시에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너가 연기를 몰라서 그래 이자식아, 아 근데 연기를 하는 내내 심사위원들이 계속 웃으셨어. 괜히 나도 기분 좋아져서 흥분을 하긴 했지만”

 “찌질한게 딱 너니까 웃은거지 안봐도 뻔하구만”

 “그런게 아니라니까! 연기 끝나고 연기 배운지는 얼마나 됐냐, 카메라보고 한번 웃어봐라, 아침 저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이번 오디션에서 좋은 결과가 있으면 작품에 피해 없이 할 수 있겠냐? 이런 질문을 했다니까?”

 “야 근데 너 주유소 안가도 돼냐?” 얘기를 듣던 은효가 준호가 문득 술마시다 중간에 일하러 가진 않을까 신경쓰이는 마음에 물었다.

 “오늘 오디션 본다고 스케줄 빠졌지, 근데 사장님 뭐하는거야 왜 안주랑 술이 안나와”

 “또 사모님이랑 싸우시는거 같던데, 봐봐 저기” 은효는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주방 뒷문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아니 뭐 맨날 싸울 일이 생기나? 그것도 신기하네” 준호도 슬쩍 보더니 이내 테이블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그게 잘본거냐?” 은효가 내심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고, 자기 자신이 그 내용을 궁금해했다는 것이 민망했는지 괜히 어깨만 돌리며 스트레칭을 했다.

 “뭐라 설명하긴 좀 그런데, 그냥 느낌인거지 새끼야 느낌! 이번에는 될꺼야 진짜”

 “빨리 좀 떠라 티비에서 좀 보자 너 연예인되고 나 쌩까면 알지? 인터넷에 너 과거 쫙-?

 “아니 연예인 안한다고! 난 배우가 되고 싶은거라고”

 “그게 그거지 무슨 차인지 전혀 모르겠네”

 “너한테 설명해서 뭐하냐, 아 그리고 내가 무슨 과거가 있어 나 후달리는거 없어”

 “없어? 알겠어 기사 뜨고 나서 ‘아 은효한테 잘할껄’ 이러지마라”

 “에이 내가 널 쌩까겠냐, 일단 자그마한 역할이라도 좋으니 기회만 줬으면 좋겠다”

 “뭐 하다보면 되겠지”

 “아이고 미안하다 전화를 좀 받고 오느라, 면발이 다 눌러붙어버렸네..” 어느새 사장님은 테이블 옆으로 오셔서 안주를 건내고 있었다.

 “괜찮아요 배고파서 기절 직전이에요, 소주도 아직 안주셨는데” 준호가 골뱅이소면이 담긴 접시를 받으며 말했다. “내 정신 좀 봐, 이노무 여편네 서방 일하고 있는데 진짜” 사장님이 투덜거리며 냉장고에서 소주를 한 병과 맥주 한 병을 가져다주셨다. “이건 서비스”

 “또 싸우셨어요?” 은효가 물었다.

 “참나 싸우기는, 별거 아니야 할 말 없으니 괜히 잔소리 하는거지” 사장님은 아내 목소리가 들리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은효랑 준호는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키더니 몇 분간 서로 말도 없이 면발이 불어터진 골뱅이소면을 허겁지겁 먹었다.

 배고픔이 어느 정도 사라졌는지 준호가 혼자 술을 따라서 마시더니 은효에게 물었다.

 “넌 뭐 안하냐?”

 “뭘 해”

 “아니, 하고싶은거나 그런 것도 없으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돈이라도 좀 벌어 쓸 생각 없냐고 군대도 다녀온 새끼가 아직까지 부모님한테 용돈타서 쓰고 싶냐”

 “지랄이야 갑자기” 은효는 예고도 없이 정곡을 찔렸는지 예민하게 답했다.

 “갑자기 이런말해서 좆같겠지만 너랑 안 지가 십 년이 넘었어 그냥 문득 궁금해지네 하긴 하고 싶어 하는거 찾기도 힘들지 내가 유별난 걸 수도 있어 한 잔 하자”

 둘은 소주와 맥주가 섞여있는 각자 잔을 비워냈다. 은효는 갑작스레 대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해했다. 준호는 은효를 약올리거나 할 얘기가 없어서 그냥 꺼낸 말이 아니였음을.

 “너가 아직 하고 싶은걸 딱히 못찾아서 그래, 근데 뭐 급할껀 없지 대부분 그럴텐데” 은효 표정이 안좋다는 것을 눈치 챈 준호는 중얼거리듯 던져말했다.

 “넌 연기가 그렇게 좋냐?”

 “좋지, 진짜 너무 좋아. 쉽게 말해서 여자보다 좋아” 정말 준호다운 답변이라고 은효는 생각했다.

 “아니 왜? 도저히 이해가 안가네 불안정한 삶에 죽어라 사람들한테 평가받는 일인데?”

 “그러니까 하는거지 솔직히 나도 불안한게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내가 연기를 안하고 평범하게 대학교 졸업해서 취업준비해서 취업하고 돈 모아서 결혼하고 결혼하면 애 키우면서 평생을 살아야 될텐데..후회 할 꺼 같아. 매 순간을”

 “아니 왜?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게 어때서? 대부분이 그렇게 살아가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걸 원하는 사람들도 많잖아”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는건 절대 아냐, 오해하지마. 시간이 흐르는 대로 행복하면 행복한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화나면 화나는대로 살아가는게 아니고. 마냥 행복하고 싶어서 나이랑 관계없이 늙어도 뭔가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보고 싶은거지”

 “그러니까 넌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는거 같은데? 난 평범하게 회사다니고 고정 된 수입 받으면서 그렇게 사회에서 그리고 회사에서 버텨내는 것도 열정적이라 생각하는데?”

 “너 진짜 그렇게 생각해? 솔직히 다 까놓고 그렇게 생각해?”

 “아..닌가?” 준호가 한 층 더 진지해진 모습에 은효는 당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주 월요일마다 월요병, 월요병이라 그러면서 온갖 부정적인 말을 SNS에 쏟아내고 힘들다 지친다 직장상사 욕하고 하지도 못할 퇴사 얘기에..그거 진짜 행복하게 열정적으로 사는거라 생각해?”

 “아니 뭐 그건 아니지만 사람들만의 각자 사정이 있는거니까..꼭 돈을 벌어야 한다든지 아니면 돈을 많이 모아서 하고 싶은 걸 한다든지”

 “돈이 삶의 행복이고, 돈이 삶의 목적인가 보지. 나는 그게 아니고”

 은효는 생각했다. 자신은 준호처럼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열정적으로 살아본 적도 없을 뿐더러 대부분의 친구들처럼 취업준비에 취업을 하고 나서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은효는 그렇게 몇 시간을 더 준호와 미래와 현재, 돈과 행복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평소에 하지 않던 얘깃거리였지만 오늘은 왠지 많은 얘기를 듣고 싶어 하던 은효였다. 그렇게 얘기를 하다보면 어떠한 생각이 번-쩍 자기에게도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6.

 가게 현관 유리문에 머리를 박고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은효는 하마터면 눈물이 터질뻔 했다. 담뱃불만 붙혀놓고 피우지 않았던 담배는 이미 불씨가 꺼진 채로 은효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은효는 순간 머리가 너무 아팠다.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꿈 일 수도 있다. 너무나 현실같은 꿈을 가끔 꾸는 경우도 있으니. 일단 한숨 푹 자고 나면 모든게 괜찮을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은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빠른 걸음인지 가벼운 뜀박질인지 모를 정도로 집으로 향했다. 이상하리만큼 동네가 조용했다. 날씨는 또 이상할만큼 깨끗하고 밝았다.

 은효는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섰다. 아무도 없었다. 침대에 누우려고 하는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 깨려고 잠을 자는 경우도 있나..?’

 

 

 

 

 7.

 은효는 거리에 서있었다. 처음 보는 길이였다. 늘상 보던 동네 골목길이 아닌, 강남대로 혹은 청담대로처럼 큰 회사 건물들이 주욱 들어선 대로변.

 여기저기 정장차림의 사람들이 서류가방을 들고 자기가 없으면 세상이 큰일나는 것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그런 바쁨도 모자른지 걸어다니면서도 온갖 서류들을 확인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도 했다. 은효는 그런 사람들을 멀뚱히 쳐다보며 가만히 서있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그 거리는 가만히 서있는 것도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는 거리인 것 같았다. 그 짧은 시간에 몇 번이고 사람들은 가만히 서있는 은효를 툭 치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이상하게 눈치가 보인 은효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분명 낮인데 높고 높은 커다란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바람에 마냥 차가운 그늘 진 거리였다. 차도는 신호등도 없어보였다. 생전 처음보는, 딱 봐도 값이 많이 나가는 차들이 사고라도 날 것 처럼 내달리고 있었다. 은효는 그 거리를 목적지도 없이 걷고 있었다.

 ‘나도 뭔가 바쁜 일이 있는 사람처럼 보여야되나?’ 라는 생각을 할 때쯤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준호였다.

 

 말쑥한 정장 차림에 머리도 말끔하게 올린 장준호. 은효는 준호에게 다가갔지만 아는 척을 할 수가 없었다. 준호가 준호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늘상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가진 친구가 아니였다. 주변의 바쁜 사람들처럼 감정이 없이 차가운 무표정이였다. 또 은효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고 있었다. 준호는 저 멀리 어딘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준호가 보는 곳이 궁금해진 은효는 준호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얼어 붙을 수 밖에 없었다. 준호가 쳐다보고 있는 것은 은효와 준호 쪽으로 다가 오고 있는 한 사람이였다. 은효도 잘 알고 있는 한 사람. 은효의 전 여자친구 민경이였다. 민경은 준호에게서 은효가 보이지 않는지 준호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은효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민경이가 저렇게 예쁘게 웃었던 적이 있었나’ 은효는 민경과 20대 초반에 2년정도 연애를 했었다. 끝이 안좋긴 했지만, 연애 할 때도 저런 표정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은효가 잠시 민경과 연애 했을 때를 회상하는 사이, 어느새 민경은 준호 앞에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민경도 대로변 사람들과 비슷하게 깔끔한 정장차림을 입고 있었다. 다만 주변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혼자서만 밝은 계열의 색상의 옷차림이였다.

 준호와 민경은 손을 마주잡고 민경이 걸어왔던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은효도 벙찐 표정으로 그 둘을 뒤쫒았다. 둘이서 무슨 내용의 대화를 하는지 전혀 들리진 않았지만, 준호는 계속 무표정 이였고 민경은 너무 행복하다는 듯 준호만 쳐다보면서 걸었다. 그 둘은 뒤에 은효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둘이 언제 어떻게 저런 사이가 된거지?’ 은효는 서운함과 배신감을 조금씩 느껴가고 있었다.

 은효가 알기로는 준호와 민경은 딱 두 번 만났다고 알고 있다.

 

 -

 첫 만남은 은효와 민경이 연애 초창기에 서로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할 시기였다. 은효와 민경은 매일 같이 붙어 다녔고 행복하고 소소하게 데이트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날도 은효와 민경은 영화를 보고 나왔다.

 “아 진짜 여자 주인공 너무 이쁜거 아니야? 어떻게 연기를 저렇게 잘하지? 그치? 어떗어? 난 또 보고싶어 영화 너무 잘 만든거같아.” 민경은 신이 났는지 남은 팝콘을 들고 은효에게 재잘거렸다.

 “자기가 더 이뻐” 그런 민경이 귀여워보였는지 은효는 민경의 볼을 만지며 대답했다.

 “왜그래 오빠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씌였네 병원으로 바로 가볼까?” 내심 기분이 더 좋아진 민경은 쑥쓰럽게 반응했다.

 “뭐 먹으러갈까? 배 안고파 자기?”

 “응 계속 팝콘을 먹었더니 아직 밥은 별로 안끌리네, 오빠는 배고파?”

 “아니 나도 별 생각없어 커피 한잔 하면서 뒹굴뒹굴할까?”

 “가자 맨날 가는데 말고 오늘은 색다르게 딴 곳 가보자 사진도 맨날 똑같은 곳에서 찍으니까 SNS에 업로드하기 신경쓰이더라고”

 “으이구 알겠어 이 주변에 이쁜 카페가 있을라나? 내가 찾아볼게 잠시만” 은효는 핸드폰을 꺼내 들어 민경이 만족 할 만한 카페를 찾고 있었고 민경은 은효 옆에 딱 붙어서 같이 보고 있었다. 그 때 핸드폰 화면이 잠깐 멈추더니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지잉- “장준호”

 “어? 뭐야 이새끼”

 “오빠 친구 아냐? 받아봐”

 “아 미안해 잠시만!” 은효는 준호의 전화를 받았다. “뭐야 갑자기”

 민경은 멀뚱멀뚱 통화하는 은효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방금 여자친구랑 둘이 영화 보고 나왔다. 이제 카페 갈라고. 너 뭐하는데.“

 핸드폰 너머 준호의 목소리를 듣던 은효는 잠깐 민경을 쳐다봤다.

 “왜? 무슨일있어? 뭐라는데?” 민경이 물었다.

 “얘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좀 떠서 안 바쁘면 볼까 해서 연락해봤다네”

 “난 상관없어 같이 잠깐 보면 돼지! 오빠 친구도 한번 보고 싶었는데”

 “아 잠깐만 여자친구랑 말 좀 해보고” 은효는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오빠 친구도 한번 볼 겸, 오래 있는 것도 아니고 잠깐만 있다 간다며!”

 “괜찮겠어? 그럼 카페로 오라그럴게?”

 “알겠어 근데 오빠 우리 어디 갈지 정하지도 않았는데?”

 “어 준호야, 문자로 카페 위치 보낼 테니까 잠깐 와 여자친구도 상관없다고 하네” 은효가 다시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잠시 뒤, 은효와 민경 그리고 준호는 카페 창가자리에 마주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 은효 친구 장준호라고 합니다” 준호가 해맑게 웃으며 민경에게 인사를 건냈다.

 “어쭈 이새끼 실실 웃는거봐라?” 은효도 여자친구와 친구와 셋이 만난 자리가 썩 괜찮았는지 장난을 쳤다.

 “안녕하세요 저는 은효 오빠 여자친구 송민경이라고 합니다” 남자친구의 친구를 처음 보는 민경은 쑥쓰러운지 은효 옆에 딱 붙어서 인사를 했다.

 “죄송해요 데이트하는데 괜히 방해되서, 제가 약속이 있었는데 좀 미뤄져서 남는 시간에 은효 좀 보려고 연락했던건데..”

 “아녜요! 저도 오빠랑 친했던 친구들 궁금해서 한번 뵙고 싶었어요. 방해 한거 아니니까 너무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근데 무슨 약속이 미뤄진건데?” 은효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준호에게 물었다.

 “아르바이트 면접 보러가는데 시간이 좀 미뤄진거야”

 “뭔 아르바이트?”

 “카페, 바리스타 놀이 한번 해봐야지! 구인공고에 스케줄 조정도 가능하다고 해서! 나한테 이런 일이 구하기가 좀 쉽냐”

 “아 그렇겠구나. 민경아 이 친구는 지금 연기 공부하는 친구인데 배우야! 자기 말로는 조만간 영화관에서 자기 얼굴 볼꺼라는데 별 기대는 하지마” 은효는 자기와 준호만 뻘쭘하게 쳐다보는 민경이 신경쓰였는지 말을 돌렸다.

 “우와 배우에요? 신기하다 연기하는 사람 처음봐요” 민경은 준호를 놀라워했다.

 “아녜요 그냥 열심히 해보는거죠, 근데 이렇게 이쁘신 분이 은효를 왜?” 준호가 물었다.

 “네?” 준호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민경이 대답했다.

 “장난치지마 임마! 자기가 너무 이쁜데 나같은 얘를 왜 만나냐고 장난치는거야” 은효가 웃으면서 민경에게 설명해줬다.

 “하하하 오빠가 하도 저를 좋아해서 만나주는거에요~” 그제서야 이해를 한 민경은 준호의 장난에 맞장구를 쳐줬다.

 그렇게 별 시덥잖은 대화를 몇 번 주고 받고선 준호는 시간이 다 되었는지 마시던 커피를 손에 들고 은효와 민경에게 다음에 보자며 인사를 하고 나갔다.

 이 날 이렇게 준호와 민경은 처음 만났었다.

 

 -

 은효는 두번째 만남은 그 이후로 시간이 많이 지난 뒤로 기억하고 있다.

 민경과 2년이라는 시간을 연애하면서 서로에게 지치고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감정이 연애초창기보다 무뎌졌을 즈음이였다.

 은효와 민경은 동네 포장마차에서 곱창과 소주를 시켜놓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주일만에 만난 둘이였다. 연애기간동안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민경은 1년전부터 취업준비를 하며 공부에 매달렸었다. 자연스레 은효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줄었다.

 “오랜만에 보니까 좋다. 오늘은 머리 좀 식히려고?” 은효가 곱창을 씹으며 민경에게 물었다.

 “그냥 답답하기도 하고” 민경은 은효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을 하고 소주 한 잔을 비웠다.

 “무슨 일 있어? 공부가 잘 안돼?”

 “아니 무슨 일 없어 걱정하지마”

 “그래? 근데 맛있는 곱창 앞에다 두고 표정이 왜그래” 예전에 비하면 너무나 차가워진 민경의 표현과 반응이였지만 은효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곱창에 집중했다.

 “술이나 마시자” 민경은 은효와 자신의 술잔에 소주를 채웠다. 그리고 각자 잔을 비웠다.

 “오빠” 민경이 술을 마셔서 속이 쓰린지 표정을 찌푸리며 물을 마시고 있는 은효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 은효는 다시 젓가락을 들며 대답했다.

 “오빠는 뭐가 제일 좋아?”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너가 제일 좋지”

 “아니 그런거 말고 제발 진지할 땐 진지해지면 안될까?”

 “갑자기 또 왜이래 진짜” 은효도 민경의 날카로운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먹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민경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우리 저저번주에 싸우고 오늘 처음 보는거야 그냥 좋게 시간 보내다 가면 안돼? 너도 공부하다가 답답해서 나왔다며”

 “그러니까 하는 소리야, 오빠”

 “뭘 ‘그러니까 하는 소리’야 이해 좀 되게 말해”

 “우리가 왜 싸웠는데”

 “다 끝난 얘기를 지금 왜 또 꺼내는거야”

 “오빠는 뭐 안할꺼야? 개인 시간 없어? 솔직히 말해서 연애 초기에야 서로 좋아죽을때고 그땐 둘 다 별 일이 없었으니까 잘 만났던거지. 상황이 바꼈잖아. 조금 있으면 우리 이십대 후반이야 후반. 오빠야 남자니까 그런거 잘 와닿지 않을 수 있겠는데, 난 아니야”

 “무슨 상황이 바꼈다는거야, 그리고 남자 여자가 뭐가 문젠데”

 “오빠 나 지금 스물다섯이야. 내 주변 친구들, 선배들은 이미 취업해서 나 만날때마다 결혼 얘기하고 결혼한 친구들도 많아! 그래 결혼은 그렇다쳐도 나도 뭔가 일을 좀 해야되지 않을까? 그래서 공부 하는거고 그러느라 오빠 잘 못만나는건데 오빠는 아르바이트도 안하고 하는 공부도 없고 맨날 집에만 박혀있으면서 나한테 만나자만나자하는 오빠가 답답해서 나온거야 그래도 여자친구니까 이런 말이라도 해주려고”

 “아니 그래서 만났어? 안만났잖아 너 공부하는 거 방해 될까봐 연락도 잘 안하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잖아 뭐가 문제야? 또 내가 뭘 그렇게 널 답답하게 했는데?”

 “오빠! 나는 지금 오빠의 이런 반응이 답답한거야. 왜 진심으로 해주는 걱정을 삐뚤게 받아드려? 오빠는 미래가 걱정이 안돼? 별 목적 없이 그냥 하루하루 살아가는거야?”

 순간 은효는 무슨 말을 입 밖에 내려했지만 입을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의 입 안에 있는 말은 마냥 투정 밖에 안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할 말이 없어진 은효는 소주 잔에 술을 다시 채우고 있는 민경을 뒤로 한 채 담배를 태우러 포장마차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러는 자기는 얼마나 잘났다고 어이없네” 은효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히면서 구석 진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나와서 찬바람을 쐬니 화장실이 급해졌던 것이다.

 구석 진 곳에서 볼 일을 보면서 이런 자신의 모습이 비참하게 느껴졌던 건지 민경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긴 건지 은효는 들어가서 다시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은효는 손에 묻은 오줌을 바지에 대충 스윽 닦고 다시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자신의 자리에 누가 앉아서 민경과 웃으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웃고 있던 민경은 들어오는 은효를 보고 다시 표정이 굳었다. 누군지 모를 상대는 그런 민경을 보고 뒤를 돌아봤다.

 “뭐하냐 얼른 와” 준호가 은효를 보며 말했다.

 “너가 왜 여기있냐” 은효는 순간 화가 났던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을 느끼며 민경 옆에 앉으며 물었다.

 “오늘은 일이 일찍 끝나서 집 가는 길에 여기 지나가는데 민경이 보이길래 그냥 무작정 들어와봤지”

 “나 말고 친구랑 있었으면 어쩔뻔했냐”

 “그러면 그냥 인사만 하고 가려고했지! 담배폈냐?”

 “어 방금”

 “나 조금만 있다가 가도 돼지? 나 저녁도 못 먹었단 말이야~” 준호가 은효에게 애교를 부렸다. 은효는 당황해서 바로 대답도 못하고 민경을 쳐다봤다.

 “괜찮아요 오빠 같이 있다 가요” 민경이 준호에게 말했다.

 “너무 고맙다 민경아! 은효 이자식아 너 여자친구한테 잘해 이런 여자친구가 어디있냐! 얼굴도 이쁘지 마음씨도 착하지”

 “조용하고 곱창이나 먹어라” 은효는 ‘너가 뭘 알겠냐’ 라는 표정으로 준호를 보며 말했다.

 “오빠, 오빠는 연기 잘하고 있어요?” 민경이 준호에게 물었다.

 “잘..하는건 모르겠는데 열심히 하고 있지! 민경이 너는 취업준비 한다그랬나?”

 “열심히 하고 있으면 된거죠” 민경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들릴 듯 말듯 대답했다. 그리곤 뒤늦게 준호의 물음이 생각났는지 말했다. “네 저도 계속 준비하고 있는데 너무 힘드네요”

 민경의 말에 은효는 민경을 쳐다봤지만 이내 바닥으로 시선을 옮겼다. 민경의 눈을 마주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은효는 민경이 취업 준비 하느라 마냥 바쁜 줄 알았다. 힘들다고 직접적으로 말한 적이 없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아..많이 힘들었구나’ 은효는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많이 힘들지 요즘 취업난이다, 청년 실업 몇..백? ..만? 얼마였지? 기억이 잘 안나네 어쨌뜬 너도 고생이 많다 민경아 공부하랴 은효 돌보랴” 준호는 민경에게 무겁지 않은 응원을 하고 싶었다.

 “장난치냐 얘가 나를 뭘 돌봐, 내팽개쳐져있는데!” 은효가 시덥지 않은 응원의 화살이 자신에게 향해 있는 거에 대해 괜히 발끈 했다.

 민경이 그런 은효를 한번 째려보더니 소주 잔을 비웠다.

 “오빠는 연애 안해요?” 민경이 안주로 곱창을 집어먹으며 준호에게 물어봤다. 준호는 뜬금없는 민경의 질문에 놀란 듯 눈이 커진 채로 민경을 바라봤다.

 “아니 얼굴도 괜찮고 성격도 밝고 여자들한테 인기 많을꺼같은데”

 “날 알아주는건 너 밖에 없구나 민경아 나도 내가 안사귀는거라고 생각했는데.. 못사귀는거더라고”

 “에이 무슨 소리에요! 오빠가 여자한테 관심 없는거 아녜요?”

 “풉” 뾰루퉁한 표정으로 안주를 집어먹던 은효가 민경의 말을 듣고선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그 순간 민경과 준호는 동시에 놀란 표정으로 은효를 쳐다보았다.

 “미안”

 은효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곱창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준호가 여자한테 관심이 없다니..’

 “그래도 멋있어요 하고 싶은 것도 뚜렷하고, 노력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잖아요 오빠는”

 민경이 진심 어린 눈빛으로 준호를 보며 말했다.

 “응? 뭐가 멋잇어 다들 이렇게 살지 뭐..” 민경의 눈이 부담스러웠던 준호는 시선을 어디다 둘 지 모르고 괜히 다른 테이블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 순간 민경은 그렇게 살지 않는 자신의 남자친구를 흘겨보고선 소주를 빈 잔에 채웠다.

 “내가 따라줄.. 괜찮아? 많이 마신거 같은데?” 은효가 민경의 눈치를 보고 소주를 대신 따라주려했지만 민경은 무시하고 마저 소주를 채웠다.

 “생각해볼게..” 은효가 시무룩해져서 민경에게 말했다. 민경이 은효를 바라봤다.

 “생각해본다고.. 하고싶은거”

 “그래”

 

 그렇게 그 날 밤은 왠지 모를 적막함이 술자리를 채워가고 있었다.

 -

 

 은효는 과거에서 빠져나와 다시 거리를 걷고 있는 민경과 준호를 바라봤다.

 그리고선 은효는 민경과 준호가 만났을 때 자기만 눈치를 채지 못했었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그 둘이 연인처럼 붙어있는 모습을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자신의 전여자친구가 준호를 남자로 생각했다는 느낌이 뒤늦게 몰려오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 쯤 앞서 가던 두 사람은 자그마한 골목 안으로 쭈-욱 들어갔다.

 이상하게도 그 골목은 사람 한 명 없는 좁다란 골목이였다. 은효는 이런 골목에서 그 둘을 뒤쫒는다면 들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금방 상관없다는 결론에 다달았다. 뒤쫒는게 문제가 아니였다. 은효에겐 지금 민경과 준호 둘이 같이 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아니 같이 있는 것의 문제보단, 민경이 준호의 팔짱을 끼고 연인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조용한 골목에서 은효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따라갔다. 은효는 그렇게 조심스레 따라걸었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민경과 준호는 주변을 아예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여전히 준호는 무표정으로 앞만 보고 걸었고 민경은 아까보다 더 들뜬 몸상태로 준호에게 붙어있었다.

 “휴”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은효는 자기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뱉고선 금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골목 끝에는 아무것도 없이 건물 하나만 우두커니 서있었다. 모든 벽면이 검정색으로 되어있는, 창문 하나 달려있지 않는 건물이였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건물이였다.

 민경과 준호는 그 까만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은효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을 때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M O T E L”

 모든 것이 검정색이였던 건물이 아니였다. “M O T E L” 이라는 글자는 피로 써놓은 것처럼 새빨갛게 대문에 적혀있었다.

 ‘죽일 년놈들이 이런 관계였구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은효는 과거에 민경과 관계를 맺을 때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은효는 멍하니 서서 그 생각이 점차 또렷해질 즈음, 이미 땀 범벅이 되어있었다.

 ‘이제와서 무서울 게 뭐가 있나‘ 은효는 새빨간 글씨로 이 건물이 어떤 곳인지 알려주는 대문 손잡이를 잡았다. 심장이 터질듯이 두근거렸다. 피가 온몸을 질주하는 듯 했다. 철-컥

 문이 열릴듯 소리를 냈지만 열리지 않았다. 철-컥 다시 한번 손잡이를 돌리며 밀어봤지만 열리지 않았다. 철컥철컥 은효는 이제 미친듯이 손잡이를 잡고 흔들고 있었다.

 격하게 흔들리며 계속해서 철컥 거리는 문소리에 맞춰 은효의 상상은 더욱 더 자세하게 둘을 그려가고 있었다. 미칠 지경이였다.

 쾅쾅쾅!

 참다 못한 은효는 소리를 지르며 문을 부실 듯 두드리고 발로 차고 있었다.

 철-컥

 그 순간 잠금장치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은효는 멈췄다.

 문이 열렸다.

 준호가 은효를 보며 소름끼치게 웃고 있었다.

 

 

 

 8.

 은효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식은땀을 흘리며 침대에 앉아 있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지끈거렸다.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도저히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지잉-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훈기였다.

 “어..왜”

 “야 이은효! 너 왜 이렇게 연락을 안받아 너까지 무슨 일 있는줄 알았잖아”

 “뭔데”

 “너 어제 준호랑 같이 있었다며, 소식 못들었어?”

 “어..?”

 “일단 주소 문자로 찍어 보내줄테니까 빨리 와”

 훈기는 뭐가 바쁜지 그렇게 말만 하고 전화를 뚝 끊었다.

 

 [한주병원 장례식장 203호]

 

 역시 꿈이 아니였다.

 ‘그럼 준호는..준호는..’ 은효는 그 다음 생각은 도저히 떠올리기가 힘이 들었다.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도 소식을 들었는지 장례식장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 같았다.

 은효도 정신차리고 다시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주섬주섬 옷을 대충 입고선 집을 나서려 했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엄마”

 “밥이라도 챙기고 나가지”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목소리는 흐려졌다.

 ‘다시 장례식장을 찾아가면 어떻게 해야하지? 뭘 해야하지? 또 가도 되는건가? 뭘 챙겨가야되는건가?’ 은효는 주변을 둘러볼 겨를도 없이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에 잠겨 빠른 걸음으로 준호의 장례식장으로 걸었다.

 ‘민경이도 오려나? 준호가 여자친구가 없어서 그건 다행인건가..’ 별 이상한 생각도 중간중간 은효의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은효는 병원 앞 신호등에 멈춰서 고개를 들었다. 빨간 불이였다. 고개를 돌려 거리를 보았다. 여전히 이상할만큼 조용한 하루였다. 병원 앞은 언제나 사람이 어느 정도는 있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빠르게 지나다니는 두 세명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고, 지저귀는 새들도 없었다. 은효의 얼굴을 내리쬐는 햇빛도 유달리 따뜻하고 몸 속으로 들어오는 공기도 상쾌한 순간이였다.

 은효는 행복을 느끼기엔 지금 가는 곳이 적당한 목적지가 아니였지만, 행복감을 만끽했다.

 지금이 아니면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순간처럼.

 

 끼이익-!

 

 아직은 빨간 불이였다.

 신호를 기다리던 은효는 이미 공중에 떠있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운전자를 밑으로 한 채, 아직도 따뜻한 햇빛을 온 몸으로 받으며 떠올랐다.

 

 은효는 아프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듯 했다. 아직도 마치 꿈처럼.

 이상하게 평소에 생각지 못했던 장면들이 은효의 눈 앞에 그려졌다.

 

 -

 나인가 싶을 정도로 행복하게 웃고 있던 어린 다섯 살의 자신을.

 그 모습을 보며 서로 손을 잡고 똑같이 웃고 있는, 지금 내 나이 또래의 부모님을.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준 많은 친구들.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한 못난 자신과, 그 모습까지 사랑해줬던 여자친구.

 행복했던 모든 순간들, 슬프고 화나는 모든 일까지 너무 아름답게 그려졌다.

 -

 

 그렇게 은효는 준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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