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영아. 근데 유한 오빠가 너한테 잘 하긴 했잖아. 음.. 솔직히 둘의 관계니까 자세한 내용은 친구라도 모르지만 우리랑 볼 때도 오빠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물까지 떠먹여주니까..
마치 아빠가 아기 이유식 먹이는 거처럼? 이건 좀 오버인가?“
“맞아. 그렇게 잘 했지. 집까지 항상 바래다주고, 우리 가족들에게도 잘 했고 가끔 회사 끝나고 유한이 차가 주차돼 있는 거 보면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 이렇게 느꼈지.”
“연애는 양면성이 있잖아. 유한 오빠도 이렇게 좋은 점이 있는 만큼 서운하게 만드는 점도 있겠지. 그런데 오빠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커서 헤어진 거야?”
“글쎄 크기로 질문하니 어떻게 답해야할지..”
아영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지며 소주 잔을 만지작거리다 번뜩 눈이 커지고 미애와 지수를 한 번씩 돌아가며 바라보다 말을 건넨다.
“아. 딱 이런 거 같아. 나 연애하는 동안 너무 외로웠거든 너희한테 말 못한 유한이와의 일도 있고 그리고.. 유한이 주위 여자들이 유한이한테 대시할 때 유한이가 깔끔하게 쳐내지도 못하고 그냥 하루하루 불안했어.”
지수가 잘 익은 고기를 쌈장에 찍어 입에 머금고 오물오물 씹다 아영의 말이 끝나고 급하게 물을 마시고 말을 건넨다.
“개 자식.”
“나는 유한이만 있으면 되는데 유한이는...”
“유한 오빠는 안 그래?”
“아니.. 유한이도 나 없이 안 되는데, 나만 있어도 안 되는 느낌.. 학교 후배도, 친구도, 게임도 소중한 게 너무 많아.”
“가장 문제는 학교 후배지! 우유부단의 끝판왕 신유한!”
“그래도 나 후회는 안 해. 유한이가 아니었다면 내 삶에 이렇게 간절한 사람은 없었을 거야.
또 사랑하겠지. 그런데 이렇게 간절하고 소망하게 되는 사람은 내 인생에 한 번뿐이야.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평생 모를 그런 감정을 알게 해줘서 고마워.“
“역시.. 우리 이쁜 아영이.. 엄청난 애 늙은이야..”
“뭐? 야 이지수 너 정말!”
“왜~~~ 맞는 말이야!!”
지수와 아영이 장난스러운 수다를 나눌 때 미애는 그런 둘을 바라보더니 흐뭇한 미소를 머금는다.
아영은 이렇게 유한과의 이별을 시작했다.
좋은 친구들과 맛있는 고기, 그리고 소주.
사랑 후 찾아오는 이별은 마치 바다와 같다.
이별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우리들은 구명조끼도 없이
덩그러니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 던져진다.
사랑을 할 때 보다 이별의 바다가 얕아. 제 발로 걸어 나올 수도 있고
사랑을 할 때 보다 이별의 바다가 너무 깊어 발이 닿을 줄 알았다가 허우적거리고
눈과 귀, 입에 바닷물이 들어가 죽을 것 같이 힘들 수도 있다.
아영과 유한의 이별 바다의 깊이, 파도는 제각각 일 것이다.
같이 사랑했어도 이별의 깊이는 다르다.
우리가 다르기에 헤어진 것처럼..
-
유한은 친구들과 술집에서 나와 집 방향으로 걷고 있다.
그때 웅이가 준수의 손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잽싸게 가져와 주머니에 넣으며 말을 건넨다.
“나는 PC방 갈 거야. 너희는 안 가냐?”
“난 안가.”
“나도.”
웅이의 질문에 준수와 유한은 바로 대답을 하고 지훈이 눈치를 보는 듯하더니 유한에게 말을 건넨다.
“유한아 괜찮아?”
“응 괜찮아.”
“바로 집 갈 거야?”
“글쎄 그건 잘 모르겠어.”
“아.. 지금 이벤트 중이라 나도 PC방 가야 될 거 같아. 먼저 갈게 얘들아.”
“응 가라.”
지훈은 웅이와 PC방이 있는 골목으로 사라지면서 계속 뒤돌아본다.
“저 새끼는 갈 거면 가지 왜 눈치를 봐.”
“야 최준수 근데 넌 왜 안 갔냐?”
“내 마음인데?”
술집에서부터 유한과 준수의 대화에 가시가 숨어 있다.
“그냥 물은 거다 새끼야. 집에 가냐?”
“너는?”
“나는 뭐..”
“맥주 한 잔 하고 갈랜다.”
“어디서?”
“편의점 너도 같이 하던가.”
퉁명스럽게 유한에게 말을 건네는 준수지만 사실 준수는 그 누구보다 유한의 곁에 있어주고 싶어 한다.
“그래 나도 뭐 집 가기 좀 아쉬웠어.”
유한도 그런 준수의 마음을 알지만 굳이 서로에게 말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유한에게 아영과의 이별의 시작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집으로 돌아가 덩그러니 방 침대에 누워 아영을 그리워할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있다.
딸랑-
편의점 문을 열고 준수와 유한이 들어왔다.
간단히 마른안주거리를 고르고 맥주 냉장고 앞에서 준수는 잽싸게 자신이 마실 맥주를 꺼낸다.
“난 이거.”
“아.. 난 이거”
“엥? 신유한 너 저 맥주 향이 이상하다고 싫어했잖아.”
“아.. 그랬었나? 아영이가 좋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