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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hair)헤어날 수 없는 탈모
작가 : 탈모인
작품등록일 : 2017.12.16

의대생 한지현은 탈모 강의를 듣고 7년 전을 떠올린다. 평범한 여중생이던 자신의 머리카락이 급작스레 빠지게 된,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탈모 병변은 돌연변이가 일어난 암세포처럼 분열하고... 결국 지현은 대학병원 피부과에 내원한다. 열일곱의 나이로 모든 머리카락을 잃게 된 지현은 대인기피증과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되는데...
여느 때처럼 모자를 눌러쓰고 진료를 받고 나온 지현은 '전신 탈모증'을 앓는 동갑내기 유청명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아픔을 이해해 주고, 진심 어린 위로를 해주는 유일무이한 친구이다.
훗날 의대생이 된 지현은 자신의 힘으로 전신 탈모증을 치료하려 하는데...
가발부터 피부과, 동의보감, 심리상담까지 탈모의 모든 면을 다룬 메디컬 소설!

 
31장: 치료 실패
작성일 : 17-12-16 17:28     조회 : 298     추천 : 0     분량 : 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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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치료 실패(treatment failure)

  중력에 이끌려 떨어지는 물줄기처럼, 시계바늘에 이끌려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갔다. 1년 반이 지났고 R한의원에서의 치료도 막을 내렸다. 청명과 내가 대학교 3학년이 되는 동안 몸에서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들이 나타났다. 우선 겨드랑이였다. 나의 왼쪽 겨드랑이에서는 꽤 많은 털이 돋아났다. 전신 탈모증이 나타나기 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오른쪽 겨드랑이에서는 몇 올의 털이 돋아났다. 양쪽 다리와 허벅지, 전완부와 팔에서도 털이 조금 자라났다. 예전보다는 엷은 털이었고 대부분의 여자에게는 효용성이 없었다. 막 이차성징을 시작한 사춘기 소녀처럼 음모도 조금 자라났고, 항문의 털도 얼마간 회복되었다. 코털 역시 예전보다 많이 자라났다. 가운데 삼분의 일만 있던 왼쪽 위 속눈썹도 이제 절반 남짓해졌다.

  치료의 핵심은, 그러나 머리카락과 눈썹이었다. 눈썹은... 여전히 침묵했고, 머리카락도 마찬가지였다. ‘꽤 많이’ 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거의 나지 않았다. 60퍼센트는 턱도 없었고 채 0.1퍼센트도 나지 않았다.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대실패였다. 1년 반 동안 머리와 배에 꽂아 놓은 수천 개의 침도, 수백 번의 뜸도, 동의보감에서 허준이 말한 한약도, 장을 튼튼하게 만들어 머리카락으로 혈액 순환을 촉진시켜 준다는 유산균도 한낱 쓰레기 더미가 돼버렸다. 물론 수백만 원에 달하는 진료비와 치료비 역시 허공으로 증발했다. 청명도 마찬가지였다. 9살 때 온 몸의 털을 잃은 청명도 수백만 원을 내고 겨드랑이 털과 음모 몇 올만을 얻었을 뿐이었다. 치료목표였던 머리카락과 눈썹, 그리고 코털은 채 수십 올도 얻지 못했다.

  R한의원에서의 마지막 진료를 마쳤을 무렵,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학교 3학년의 여름 방학을 앞둔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마지막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청명과 나는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거의 무의식에 잠식된 상태로 원룸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다만 그때 그 시커먼 파도 같은 느낌이 반복되었다. 몇 년 전, 대학병원에서의 마지막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의 그 쓰라린 기분을 나는 다시 한 번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기말고사가 끝나자 여름 방학이었다. 원룸의 짐을 챙겨서 청명과 나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잊으려 했다. 의사에 이어 한의사도 치료에 실패했기에 머리카락 자체를 체념하려 했다. 허공으로 증발한 머리카락처럼 머릿속을 텅텅 비워내려 했다. 쉽지 않았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민머리, 민눈썹은 내 눈을 교묘하게 자극했다. 밖에 나갈 때마다, TV를 켤 때마다 치렁치렁한 머리채는 시세포를 쾌감에 떨게 만들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에 산다면 모를까 혹은 머리카락이 머리가 아니라 발이나 배에 달렸다면 모를까, 아니면 세상의 절반이 민머리라면 모를까, 머리카락은 단념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여름 방학이 끝날 때까지 나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체념을 한 것도, 그렇다고 뭔가 묘책을 찾아낸 것도 아니었다. 제자리에서 헛도는 수레바퀴처럼 무의미한 방황을 할 뿐이었다.

  탈모 치료에 실패했기에 머리는 원상태 그대로였다. 하지만 내 가슴은 그대로가 아니었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행위는 본전이 아니라 퇴보를 불렀다. 치료에 연이어 실패하자 나는 모종의 허무 상태에 빠졌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치료를 안 받을 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부과든 한의원이든 가지 않은 것만도 못하기 때문이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그 돈으로 차라리 가발을 샀더라면, 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치료 실패로 인한 후유증 혹은 대가였다. 몇 년 동안 해온 일이 무위에 그쳤기에 필연적으로 뒤따른 정신적 차원의 대금이었다.

  치료 전과 치료 후의 내 머리 상태는 변함이 없었다. 치료비를 지불했기에 나는 그에 해당하는 치료를 받았다. 다만, 치료를 받으며 몇 년 동안 기울인 노력에 해당하는 대가는 보상받지 못했다. 수천 개의 알약, 수십 번도 넘게 각각 머리에 바르고 쪼였던 약과 자외선, 수천 회도 넘게 꽂은 침, 천 번도 넘게 먹은 유산균과 수백 번 넘게 마신 한약, 진료대기석에서 고개를 처박고 기다린 인고의 시간, 대학병원과 한의원을 오가는 버스에서의 초조하고 갑갑했던 수천 시간 역시 같은 질량을 가진 보수를 요구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풍성한 머리털이라는 결과물을 획득하지 못했기에 나는 심리적인 측면에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급류에 휩쓸린 나무토막인 양, 몇 달이라는 시간이 덩어리째 흘러갔다. 공허 상태에 빠져 삶에 집중하지 못한 사이 수개월이 지나간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 달력을 보니 벌써 10월이었다. 이 말은 더 나아가서 원형 탈모증 6주년과 전신 탈모증 5주년을 의미했다.

  그러면서 내가 놓인 상황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이 드러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시간의 흐름이 꼬인 실타래를 풀어준 것이었다. 내 앞에는 그리고 청명 앞에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었다. 계속 치료를 시도해 보는 길과 머리카락을 포기하는 길이었다. 특이한 병이었다. 전신 탈모증은 아직 완치법이 없는 난치병이지만, 치료를 하지 않아도 생명에는 전혀 위협이 없었다. 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약의 부작용은 만만치 않았다. 만약 로봇처럼 영혼이 없는 시퍼런 심장을 갖고 있다면, 치료를 안 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사항이 될 수 있었다.

  두 개의 길 모두 평탄치 않아 보였다. 그것은 마치 독을 품은 전갈 밭과 붉은 눈의 하이에나 떼가 도사리는 평원 중 하나를 선택해라는 것과 비슷했다. 할 수만 있다면 두 갈래 길 모두를 거부하고 싶었지만, 그건 운명이 허락하지 않았다.

  평균수명대로 산다면 앞으로 60년이라는 세월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브루스 윌리스처럼 머리카락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호랑이가 아니었다.-브루스 윌리스도 눈썹은 있다-가발이 탄생한 수천 년 전부터 원형 탈모증이 박멸된 미래의 어느 날까지, 가발을 쓰고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대부분의 전신 탈모인들처럼 청명도 나도 호랑이가 아니라 연약한 임팔라였다.

  삶의 갈림목에서 청명과 나는 머리를 맞대고 숙고했다. 며칠 동안 고민했지만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청명과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대다모뿐만 아니라 이마반 플러스를 비롯해 다른 탈모 블로그를 뒤지기 시작했다. 구글까지 들척이면서 전두, 전신 탈모증 사례를 참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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