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컵 정도 마셨을까? 그제야 그는 자신이 마신 것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그녀와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얼굴이 뻘겋게 올라오더니 힘없이 쓰러졌다.
“약하네,”
“말했잖아, 정말 약하다고, 덕분에 많이 남았네. 너도 마실래?”
그녀는 병을 내게 흔들어 보였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됐어 난 술 안 마시거든”
“너도 술이 약한가봐?”
“그건 아니고 그냥 아직 미성년자라 안 마시는 거지”
그러자 그 얘는 나를 보며 피식 웃기 시작했다.
“에? 너 착한 아이구나? 그깟 몇 년이나 차이가 난다고 아직도 그걸 따르고 있어 솔직히 요즘 고등학생 치고 어른들 말 잘 듣는 애가 어디있다고. 다 그 전에 다 술은 마시거나 담배피고 심한 경우 마약하는 얘들도 있는데”
그 말에 나는 그녀에 대한 인상을 대폭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활달한 성격인줄만 알았는데 이럴 줄은 몰랐으니까.
“뭐, 나야 그럴 필요는 못 느꼈으니까, 그리고 너도 약간 취한 것 같은데 그리고 애초에 우리 목적은 이렇게 떠드는 게 아니었잖아?”
“괜찮아, 괜찮아, 난 이정도로 취하진 않으니까 그리고 이 녀석 좀만 건드리면 알아서 다 불 거야 원래 그런 녀석이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쓰러진 녀석의 볼을 쿡쿡 찌르더니 그의 귓가에 뭐라 소곤 거렸다.
그러자 녀석은 약간 흐느끼는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떠날 거잖아! 그 잘난 능력 있으면 떠날 거잖아! 안 그래? 전부터 그랬다고! 다들 날 떠났다고 함께 하기로 했으면서... 난 쓸모없으니까! 나 같은 건 버려질 거라고 나도 같이 가고 싶어...”
녀석의 흐느낌은 한참이 지나고야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의 말을 들은 그녀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지고 있었다.
“저기, 어떻게 한 거야? 얘가 왜 이래? 아무리 술을 먹였다곤 하지만”
“아무 것도 아냐, 보통 영화 보면 술 먹여서 정보 캐내기도 하잖아 대충 껀덕지만 던져주면 술술 부는 거지 아까 말한 것처럼 대충 비슷한 거야 그나저나 예상은 했지만 역시 그런 거였나? 참 한심한 열등감이라 할 수 있지만 내가 할 말은 아니네...”
그녀는 이내 심각한 표정을 짓은 채 혼자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녀석을 일으켜 세우고는 내게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야겠다. 고마웠어, 아 돈 반은 내가 낼 테니까 이 녀석 좀 잘 챙겨줘, 이래저래 말은 많지만 그래도 내게 가장 소중한 소꿉친구이고 이 녀석 말대로 나 당분간 녀석과 떨어져 있어야 할 거 같거든. 전에는 몰랐는데 아무래도 내가 초월계다 보니 학생회에서 러브 콜도 있고 우리 학교가 특이해서 그렇지 전체적으로 보면 초월계의 비중이 그리 많지 않아서 일단 정부에서 관리를 하는데다가 무슨 일이 생길 때 마다 지역 사회와 연계해서 도움도 주고 그래야 하나봐 내 능력이 어디에 쓰일지는 모르겠지만”
“알았어, 돈 걱정은 말고 먼저 들어가 어차피 내가 다 사기로 한 건데, 그리고 이 녀석, 기숙사도 같고 노력은 해볼게 도대체 너희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고마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어디론가 가버렸고 나 역시 계산을 하고 연후를 부축한 채 밖으로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어차피 녀석도 잠들어 있겠다. 주변을 살피고는 기숙사로 순간이동을 했다. 내가 이 녀석을 데리고 기숙사로 돌아가려면 꽤 힘에 부칠테니 말이다.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주문을 읊조리고 다시 눈을 뜨자 어느새 기숙사 방이었다. 나는 당장 녀석의 침대에 녀석을 눕히고 한쪽 어깨를 주무르며 나 역시 내 침대로 가 거기에 걸쳐 앉았다.
“쳇, 역시 힘쓰는 일은 내 역할이 아닌데 말이야, 덕분에 괜히 마법을 썼잖아. 웬만하면 안 쓸려고 했는데.”
이내 침대에 똑바로 누워 괜히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연후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덕에 일어서서 녀석을 돌아보았다.
“가지 마, 나 알고 있었어...”
녀석은 어느새 침대에 앉아 흐느끼며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그의 알 수 없는 말에 의문을 표하고 있을 때쯤 녀석은 갑자기 엉금엉금 내게 다가와서 내가 하소연 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나,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다고! 이혜가 나에게 술을 먹이려고 했던 거 말이야 그러면서 말은 하고 싶었으니까! 차마 맨 정신으론 못하는 것을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말하고 싶었으니까, 그러니 가지 마... 날 떠나지 마... 너도 어디론가 가 버리면 난 진짜 혼자야 현...”
아직 취기가 가시지 않은 건지 나를 붙잡고 이런 소리 저런 소리 하는 그었지만 나는 차마 녀석을 밀쳐낼 수가 없었다. 취중진담이라 했던가? 비록 취기는 있지만 녀석 마음 속 깊은 그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무슨 일을 겪은 건지는 몰라도 짙은 외로움, 평소라면 찾아볼 수 없는 그것이 보이기도 했다.
나는 녀석의 하소연을 계속 들어만 했고, 술의 힘인 것인지 한 동안 속내를 털어 놓던 그는 한참을 울고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곤, 내 나름대론 선을 긋는다고 했지만, 녀석을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게 무엇이든 결국 나는 언젠가 떠나야 할 사람일텐데. 과연 이러한 점을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에 해결이 될 수 있을까?
그저 부디 이 모든 게 별 탈없이 지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