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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강렬한 순정
작가 : 박이다
작품등록일 : 2017.11.23

"난 그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귀신을 보는 여자, 구영채. 평범하게 살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만큼 괴로운 어느 날.
그녀의 눈 앞에 동시에 나타난 청년 윤도하와 귀신 오순정!

6.25전쟁을 겪었다는 구세대 귀신 순정이 이 세상을 떠나기 전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고 한다. 그 소원만 이룬다면 그 동안 영채를 괴롭히던 모든 귀신들을 데리고 떠나줄테니.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지면 평범하게 살고 싶은 영채의 소원도 이룰 수 있다.

임무 수행을 위해 만나게 된 청년 윤도하.
남자는 '애' 아니면 '개'로 구분하며 남자라면 치를 떨던 그녀였는데......

알면 알수록 이 남자, 너무 멋있다......

 
그리운 순정
작성일 : 17-12-16 10:52     조회 : 218     추천 : 0     분량 : 4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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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8시. 영채는 도하와 만나기로 한 영화관 앞으로 갔다. 약속 시간에 거의 맞춰서 도착했는데 도하가 먼저 와있었다. 영채가 도하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자 도하는 영채를 보며 하얀 환하게 웃었다. 그의 웃는 모습에 영채는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얼굴도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 모습을 보며 순정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영채와 도하가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는 동안 순정은 두 사람이 앉은 의자 바로 뒤쪽에서 목석처럼 서있었다. 순정이 뒤에서 지키고 서있으니 영채는 더 신경이 쓰였다.

 

 도하는 영화를 보는 동안 한 번씩 영채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영화에 집중하는 척 영채는 스크린만 응시하고 있었지만 옆에 앉은 도하와 바로 뒤에 선 순정의 보이지 않는 시선에 신경이 곤두 서있었다.

 

 불현 듯 무릎 위에 얌전히 얹어진 영채의 손등 위로 보드랍고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면서 도하의 손바닥이 포개어졌다. 영채는 놀라 도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영롱하게 반짝이는 도하의 두 눈동자가 영채와 눈을 맞춘 채 수줍게 미소 지었다. 그의 얼굴을 보며 영채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영채는 도하의 손을 그대로 둔 채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악!”

 

 앞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뒤쪽에 서있던 순정이 영채의 바로 코앞에 선채로 영채를 주시하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떴다가 또 치켜떴다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돌발적인 영채의 비명소리에 영화에 몰입하던 사람들이 짜증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흘겨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영채씨 왜 그래요?”

 

 영문을 모르는 도하가 의아한 표정으로 속삭이며 물었다. 영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너 나한테 얘기 안한 거 있니?”

 

 순정이 말했다. 무슨 소리냐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영채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괜찮아요?”

 

 도하가 다시 속삭였고 영채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순정은 여전히 영채의 앞쪽에 서서 스크린을 가로막고 있었다.

 

 “저 잠깐 화장실 좀……”

 

 영채가 자리에서 일어나 순정에게 따라오라는 눈빛을 보내고는 조심히 통로 쪽으로 빠져나갔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출구 앞까지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당연히 순정이 뒤따라오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순정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영채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도하의 곁으로 몸을 바짝 기울인 채로 말이다. 영채는 기가 막힌 얼굴로 그 모습을 잠시 보고 있다가 곧 밖으로 나갔다.

 

 화장실에서 변기에 앉아 영채는 한참 동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간만에 너무 놀란 탓인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뭐하니?”

 

 어느새 순정이 나타나 영채의 앞에 섰다.

 

 “아, 깜짝이야.”

 “뭘 그렇게 놀라니. 나 하루 이틀 봐?”

 “그렇게 불쑥 나타나는데 어떻게 안 놀라?”

 “엄살은.”

 “왜 나왔어? 윤 오빠 옆자리 앉아서 아주 입이 귀에 걸렸더니?”

 “어머, 누가 할 소리래? 손잡고 쳐다보고 웃고 아주 신이 났던 게 누군데?”

 “왜 갑자기 심통이야? 내가 누구 때문에 그 오빠를 만나는 건데?”

 “시작은 그랬겠지. 근데 지금도 온전히 나 때문이야? 아니잖아! 남자라면 학을 뗀다더니 아주 싱글벙글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했더구만.”

 “설마, 지금 질투해?”

 “질투라니! 난 너의 모순된 말과 행동에 대해서 잠깐 꼬집은 것뿐이야.”

 “모순된 말과 행동? 그럼 할매는? 언제는 나랑 오빠랑 잘 어울린다며. 사람 욕심내는 건 아니라며. 근데 지금 하는 행동이 할매가 했던 말이랑 일치가 된다고 생각해?”

 “그래서. 잘 어울린다고? 지금 둘이 뭔가 있다 이거지?”

 “누가 그렇대!!”

 “어디서 악을 쓰고 있어, 건방지게! 잊으면 안 될 텐데. 내가 지금 너한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그건 할매도 마찬가지 아니야? 나 아니면 할매 소원 이루는데 누가 도와주고 유품은 누가 거둬줄 건데?”

 “강하게 나온다? 그래. 내 필요 가치를 벌써 잊었다 이거지? 한번 겪어 봐 그럼. 더 아쉬운 사람이 누군지 두고 보자고.”

 “뭐야. 어쩌려고?”

 

 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적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영채는 조심스레 문고리를 밀었다. 설마 진짜 떠나버린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는데 세면대 앞에 낯선 얼굴이 세 명이나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영채에게로 집중되었다. 안에서 순정과 대화하며 큰소리로 떠들었던 탓에 영채는 괜히 그 시선이 신경 쓰였다. 그녀는 최대한 조용히 세면대 앞으로 갔다.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을 바라본 영채는 온 몸이 굳었다. 영채의 옆에 나란히 세 사람이 서있었지만 거울에 비친 건 영채뿐이었다.

 

 “니가 소원을 그리 잘 들어준다매?”

 

 까무잡잡하고 광대뼈가 도드라진 40대 중반의 여자가 먼저 말을 붙였다. 영채는 애써 들리지 않는 척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그런데 수도꼭지 물을 잠그는 그녀의 손이 눈치 없게 떨리고 있었다.

 

 “못 들은 척 할래? 우리 보이는 거 다 알거든?”

 

 이번엔 긴 생머리의 20대 여자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피부가 새하얀 그녀는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것처럼 빨간 입술이 도드라졌다.

 

 악몽이 다시 시작되는 것인가. 영채는 눈앞이 아득했다. 순간의 욱하는 기분으로 순정에게 쏘아붙였던 말들이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후회로 밀려올 줄 몰랐었다.

 

 영채가 화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그녀들이 영채의 뒤를 졸졸 따라 나왔다. 영채는 꿋꿋하게 상영관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도하가 영채를 보며 미소 지었다.

 

 상영관 안에는 순정이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진짜 멀리 가버린 걸까. 영채는 허탈했다.

 

 “야. 너 계속 무시할래?”

 

 20대 긴 생머리 여자 귀신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아무 말 없이 그들의 옆에서 가만히 있던 주근깨투성이의 10대 소녀 귀신은 영채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눈알을 까뒤집었다. 영채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거봐. 자꾸 무시하면 재미없다.”

 

 한발 한발 영채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고 도하도 그 모습을 보고 얼른 가방을 챙겼다.

 

 

 “오순정씨 어딨어?”

 

 상영관 앞 복도에서 영채가 그녀들에게 물었다.

 

 “오순정? 그게 누군데?”

 “누고 그기?”

 “나랑 같이 있었던 처녀귀신 말이야.”

 “몰라.”

 “모른다고? 그럼 내가 소원 잘 들어준다는 말은 누구한테 들었는데?”

 “소문이 자자하던데? 네가 우리를 보는 능력이 있다는 거. 너 찾는다고 시간 꽤 걸렸어.”

 “어쩌나? 사람 잘못 찾아왔어. 난 소원 같은 거 들어준 적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거든.”

 “므라카노? 니가 우리랑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단 거 자체가 곧 니가 우리의 소원을 들어줄 능력 또한 있다는 거 아니겠나.”

 “그래. 그리고 뭐 착각하나 본데 지금 이거 부탁하는 거 아니야. 너한테 선택의 여지 따위가 있을 거라고 생각…어머!”

 

 날카롭게 쏘아대던 20대 여자 귀신이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영채의 뒤쪽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감탄에 마지않은 표정으로 두 손으로 제 입을 가렸다.

 

 “영채씨. 여기서 뭐해요?”

 

 도하였다. 영채는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가… 갑자기 머리가 너무 아파서요.”

 “그래요? 그럼 그냥 집에 갈래요? 데려다 줄게요.”

 

 영채와 도하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나란히 걸었고 세 귀신들이 그 뒤를 쫓아왔다. 영채의 얼굴은 어둡게 그늘지고 있었다.

 

 “누구? 남친이야? 완전 잘생김.”

 

 20대 여자 귀신이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영채는 최대한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들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도하의 옆에 붙어 그의 외모를 감상했다.

 

 “이 촉촉한 눈매, 오똑한 콧날 좀 봐. 내가 이런 남친 한번 사귀어 보고 죽었으면 억울하진 않을 텐데.”

 “니는 젊은 년이 뭘 그리 남자를 밝히샀노. 마흔 다섯 처녀 귀신도 있는데.”

 “언니만큼 하겠어? 그리고 젊어서 밝히는 게 낫지. 늙어서 밝히는 건 꼴값이고.”

 “뭐 꼴값? 이 가시나가요. 젊고 늙은 기 중요하나? 니나 내나 어차피 뒤진 몸인데. 같은 귀신 주제에 젊다고 유세는.”

 “뭐? 말 다했어?”

 “에고 무시라.”

 

 영채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영채와 도하가 사람들 틈에 끼어 안으로 들어갔다. 만원에 가까운 엘리베이터 안에 그녀들도 비집고 들어왔다.

 

 “남친이야, 썸이야?”

 “남친이면 이래 다니겠나? 다른 쌍들 봐라. 완전 끌어안고 댕기는데 야들은 손도 안 잡고 댕긴다이가.”

 

 영채는 귀를 더 틀어막았다.

 

 “많이 아파요?”

 

 도하가 걱정스레 물었다.

 

 “네. 갑자기 이명 현상이 와서……”

 

 영채의 말에 40대 귀신이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명이 뭐야?”

 “무식하기는. 이명도 모르나? 귀에 헛소리 들리는 거 아니가.”

 “뭐 헛소리? 그래서 우리가 하는 말이 지금 헛소리라 이거야? 야! 묵언수행 하니? 왜 자꾸 쌩까?”

 

 영채는 더 깊게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숙였다.

 

 “너 계속 쌩까면 네 남친한테 붙어버린다?”

 “닥쳐!”

 

 영채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도하가 놀란 눈으로 영채를 쳐다보았고 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영채에게 집중 되었다. 난감했다. 귀신들은 재미있다는 듯 킥킥거리며 웃어댔다.

 

 “영채씨?”

 “아, 미안해요. 갑자기 헛소리가 나오네요.”

 “몸이 많이 안 좋은가 봐요.”

 “네. 미안해요, 오빠.”

 “미안하긴요. 아니에요.”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서 문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미안해요. 오빠. 미안해요. 이따 연락할게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영채는 냅다 뛰어버렸다.

 

 “영채씨!”

 

 도하를 뒤로한 채 영채는 줄행랑을 쳤다. 빨리 뛴다고 귀신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들과 도하와 한 공간에 있는 것이 영채는 숨이 막혔다. 또 어떤 돌발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답답했다.

 

 이럴 줄은 몰랐지만 순정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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