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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 세계의 이야기
작가 : macarong
작품등록일 : 2017.10.30

[현대판타지]
일그러진 세계, 탐욕으로 물든 전쟁속에서 깨어나서는 안될 존재들이 눈을 뜬다

다가오는 그 날을 막기 위해 자신을 망가트려야만 했던 그 세계의 이야기

 
#0028 소라의 하늘
작성일 : 17-12-16 09:14     조회 : 224     추천 : 0     분량 : 4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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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쾅 소리와 함께 닫혀있던 문이 거창하게 열리며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소년이 긴 머리를 나풀거리며 안으로 들어온다. 어깨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흑발은 관리를 잘하고 있는지 우아하게 흩날린다.

 

 “사쿠라씨!!”

 “...”

 

  새롭게 가디언즈에 접수되어온 의뢰서들을 확인하고 있던 시로츠키 사쿠라는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불청객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불청객의 정체를 확인한 그녀는 자그마한 한숨을 내쉬며 귀찮다는 듯이 의뢰 뭉치로 시선을 돌렸다.

 

 “왜 계속 저만 안된다는 거에요?!”

 

  소년은 자신이 화났다는 것을 강조라도 하려는 듯 발소리를 쿵쿵거리며 사쿠라에게 다가간다.

 

 “사장님-!”

 

  소년은 그녀가 읽고 있던 의뢰서를 손으로 가리며 사쿠라를 올려다보았다.

 

 “현아.. 아직 너한테 의뢰는 무리라고 했잖아”

 

  소년보다는 소녀에 가까워 보이는 긴 흑발의 소년, 서현은 볼을 부풀리며 책상 위에 엎드려 무작정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저도 바깥에 나가보고 싶다구요...”

 “으음...”

 

  소년의 눈물 섞인 투정에 닫혀있던 사쿠라의 마음이 흔들린다. 사쿠라는 무언가를 계산하며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엎드린 채 사쿠라의 모습을 훔쳐보던 서현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떠오른다.

  사쿠라는 속아주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언제까지 이대로 있을 수도 없지”

 “그 말은 설마..!!”

 “아직이야! 네가 의뢰를 받을 준비가 됐는지 테스트부터 해봐야지”

 

  사쿠라는 묘하게 히죽거리는 볼을 꼬집는다.

 

 “아앗 아파요 누나!!”

 

  소년의 안타까운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사쿠라는 상관하지 않고 찹쌀떡처럼 몰랑거리는 볼을 마구 주물럭거렸다.

 

 “조금 있다가 내가 부를 테니까 그때까지 방에서 대기하고 있어”

 “네에!”

 

  얼마나 기쁜지 활짝 웃으며 달려나가는 서현의 모습을 바라보며 사쿠라는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어느새 그날로부터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아이를 언제까지고 이곳에 가두어 둘 수도 없는 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큰 산이 남아있었다.

  아이의 웃음을 실망으로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해 사쿠라는 각오를 다지며 문을 닫았다.

 

 

 

 “에헤헤”

 

  행복을 주체할 수 없는 웃음, 서현은 자신의 침대에 누워 세상에 대한 기대에 부분 채 망상에 빠져있었다. 행복한 망상으로 침대 위를 뒹굴던 서현은 몸부림을 멈추고 머리맡에 놓여있던 사진을 소중한 듯이 껴안는다.

 

 “그래..! 만나러 오지 않는다면 내가 만나러 가면 되는 거야”

 

  그 따듯했던 온기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촉촉해진 눈가로 한줄기 그리움이 흘러내린다.

 

 -대기중인 서현 요원은 사장님께서 찾으시니 이 방송을 듣는 즉시 훈련장으로 가주시길 바랍니다.

 

  스피커에서 기다리던 방송이 흘러나오자 서현은 그리움을 닦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진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진 서현은 서둘러 밖으로 뛰어나간다.

  조심스럽게 베게 옆에 놓여진 한 장의 사진, 그 속에는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으엑?!”

 

  훈련장에 도착한 서현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미모의 여성을 발견하고 괴상한 비명을 내질렀다.

 

 “아 벌써 온 거야? 빨리 왔네”

 “누나가 왜 여기 있어요?!”

 “테스트보기로 했다면서? 준비는 끝난 거야?”

 “설마... 테스트 상대가...”

 

  해맑게 달려온 서현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린다.

 

 “응. 아무래도 사쿠라는 바쁘다 보니 테스트는 내가 대신 하게 됐어”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초록빛 머리카락이 불어오는 바람에 물결치듯 흩날린다.

 

 “으으”

 “왜그래? 사쿠라가 아니라서 실망한 거야?”

 “실망했다기 보다는 무... 설마 상대가 지현누나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으니까요”

 

  하나뿐인 목숨은 소중한 것이었기에 차마 당사자 앞에서 무섭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훈련장에서 서현을 기다리고 있던 여성은 김지현이었다. 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는 마치 시간이 비껴간 듯한 모습으로 그곳에 서있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김지현은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뒤로 묶는다.

 

 “혹시나해서 물어보는 건데.. 봐주면서 하실 거죠...?”

 

  두려움으로 가득한 서현의 물음에 김지현은 조용히 메고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자신의 키보다도 긴 검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휘두르며 손목을 풀기 시작했다.

  준비운동 삼아 검을 가지고 놀던 김지현이 자세를 바로잡는다.

 

 “아니. 전력으로 갈 거야”

 

  그녀에게서 폭사되어 나오는 거대한 기의 파동에 공기마저 몸을 떤다.

  준비를 마친 그녀는 한줄기 섬광이 되어 서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무시무시한 기운을 바라보며 서현은 이것이 장난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웨일!!”

 “네에에!”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반투명한 무언가가 서현의 손에 쥐어진다. 서현은 서둘러 손에 쥔 무기를 들어올려 달려드는 섬광을 맞받아쳤다.

 

 “으앗?!”

 

  손이 저릿할 정도의 충격에 서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김지현과의 거리를 벌린다. 하지만 그녀가 그걸 가만히 놔둘 리 없다. 겨우 벌어졌던 거리는 순식간에 다시 좁혀지고 그녀의 무차별적인 검이 서현을 덮친다.

  성난 이리처럼 매섭게 쏟아지는 검무속에서 서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방어하는 것뿐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이 정도 실력으로 의뢰를 맡는 건 무리라구?”

 “으으...!!”

 

  그녀의 도발에 울컥한 서현이 자신의 무기를 움켜쥔다. 그 순간, 서현의 손에 들려있던 무언가는 거대한 대검의 모양으로 변하며 쇄도하던 김지현의 검을 튕겨냈다.

 

 “어라?”

 

  혼신의 힘을 다한 일격에 폭풍처럼 몰아치던 검이 잠시 멈칫한다. 아주 잠시였지만 서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김지현을 향해 돌진했다. 달려나가는 서현의 손에는 어느새 자그마한 단검이 들려있었다.

  너무 마음이 앞선 걸까, 손에 쥔 단검으로는 닿을 수 없는 거리였음에도 서현은 그것을 휘둘렀다.

 

 “윽.. 뭐야?!”

 

  검과 검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김지현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기세를 잡았다고 생각한 서현은 그대로 상대를 압박해나간다.

 

 “언제 이런 것까지 생각해낸 거야?”

 “저라고 그동안 놀기만 했던 건 아니라구요!!”

 

  그저 단검을 허공에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검은 분명 거리를 무시한 채 김지현에게 닿고 있었다.

 

 “오호 대단한데?”

 

  그것은 상대에 대한 순수한 감탄이었다.

  단검이라는 것은 짧은 대신에 그만큼 휘두르는 속도가 빠르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움직임이 가능하다. 하지만 짧은 길이 탓에 전투에 불리한 점도 많았다.

  그렇다면 필요한 순간에 검의 크기를 변형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 무기를 그런 식으로 이용할 줄이야”

 

  휘둘러지는 단검은 정확한 순간에 맞춰 거대한 대검으로 형태를 바꾸어 김지현을 압박한다. 단검의 속도로 휘둘러지는 대검, 그 가속도로 인해 순간적으로 검에 실리는 힘은 더욱 강해진다.

  정해진 형태가 없는 무기, 서현은 그 특성을 이용하여 변칙적인 공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흐음...”

 

  김지현은 서현의 손이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검을 움직인다.

  그녀는 그저 처음 보는 공격 방식에 놀란 것일 뿐이다. 사실 그것은 검술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 서현은 그저 특이한 검을 휘두르는 것일 뿐이었다. 이내 김지현은 익숙해진 듯 아무렇지도 않게 서현의 검을 맞받아치기 시작했다.

 

 “어...?”

 

  서현은 자신이 어렵게 준비했던 비장의 기술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맞받아치던 검은 어느새 점점 더 빨라져 간다. 그렇게 형세는 순식간에 다시 역전되었다.

  기이할 정도로 긴 검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손 주변만을 노려오는 검격에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할 수 없다. 점점 뒤로 밀려나던 서현은 등 뒤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고개를 숙이며 양 팔을 들어 올렸다.

 

 “으으...”

 

  새하얀 검이 눈앞에 멈춰 선다.

 

 “졌습니다...”

 “오케이. 테스트는 여기까지”

 

  서현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것이 분했는지 서현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히잉 주인님.. 울지 마요...”

 

  서현의 손에서 나타난 자그마한 소녀가 흘러 내리는 눈물을 닦아준다. 인형처럼 앙증맞은 소녀는 그 작은 눈으로 서현을 울려버린 김지현을 노려보았다.

 

 “지현님도 너무해요!!”

 

  소녀는 토라진 듯 고개를 홱 돌린다.

  검을 등에 멘 김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훌쩍이고 있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쁘지는 않았어”

 “메-!!”

 

  위로하듯 서현의 곁을 맴돌던 자그마한 소녀는 혀를 내밀어 김지현을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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