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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어느 날 천사가 떨어졌다
작가 : 솜솜
작품등록일 : 2017.12.7

[빙의물]
의료봉사 중 갑자기 사고를 당해, 이상한 세상에서 눈을 뜬 세진.
다짜고짜 자신을 덮치려는 남자에게서 무작정 도망쳐 나와 숲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러는 도중 수상한 사람들에게 쫓기던 남자를 구해주게 되는데.......
점차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계획(5)
작성일 : 17-12-16 01:29     조회 : 331     추천 : 0     분량 : 5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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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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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냐에게 부탁하여 또 방에서 따로 아침을 먹었다. 생각할 게 많아서 렌케나 엘리아의 얼굴을 마주치기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또 말없이 사라졌다간, 어제의 렌케를 봐서는 어디까지고 뒤져서 날 찾아올 것 같았다. 행동력 하나는 끝내주는 인간이니 말이다.

  아니, 사실 말을 안 하고 나간 것도 아니었다. 분명 밖에 나갔다 오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왔는데도, 렌케는 기사들을 동원해 나를 찾아왔으니, 편지 같은 걸로 작별인사를 했다가는 또 똑같은 사태가 일어날 게 뻔했다.

  ‘역시 제대로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는 게 맞는 것 같아.’

  제대로 렌케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깔끔하게 독립해야지.

  단단히 마음을 먹고 벤자민에게 가서 공부도 했다. 그러나 막상 찾아가려니 걸음이 떨어지질 않아서 밤이 될 때까지도 고민했다.

  그러다 깜박 잠이 들어 아침이 되었을 때, 예상치 못한 사람이 찾아왔다.

  “공주님!”

  “안녕하세요, 라일라.

  엘리아가 문을 두드린 건 매우 이른 시간이었다. 엘리아가 방에 들어오더니 잠시 서성였다. 아침이라 그런지 엘리아가 더 깡마르고 연약해보였다.

  “어... 앉으시겠어요?”

  어색하게 물었다.

  “아니, 아뇨.”

  엘리아가 대답하며 자신의 손을 반복적으로 매만졌다.

  “......”

  나도 말재주가 있는 편이 아니어서 그냥 뻘쭘하게 엘리아를 쳐다보며 서 있었다.

  “내... 내 시녀가 왔었다고 하더군요.”

  “네.”

  어제 오전에 찾아왔던 엘리아의 시녀라는 여자를 떠올렸다. 비수가 되는 말만 팍팍하고 갔던 무서운 여자.

  “그 제안은 유효해요.”

  “네?”

  내심 공주가 그 일에 대해 사과를 하려고 하나 생각했으나, 공주의 얘기는 다른 이야기였다.

  “돈이 필요하다면 줄게요.”

  “.......”

  “제발 떠나줘요.”

  “....... 어차피 오늘.”

  “그에게 말하지 말고 떠나요.” 어차피 오늘 말하고 떠날 거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엘리아가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말을 잘랐다.

  “네?”

  “에렌은 다정해서 분명 당신을 잡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떠나요.”

  “하지만.”

  “제발! 그는 당신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에요. 제발 안 될 것을 탐내지 말아요. 당신 때문에 모두가 힘들어져요.”

  “.......”

  그를 탐낸 적이 없다고 단박에 외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정말 그를 탐낸 적이 없나?

  렌케가 날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 눈빛이 떠올랐다. 그리고 끝내 나는 내가 그를 탐낸 적이 없다고 당당하게 부인할 수 없었다.

  “자.”

  엘리아가 손에 들고 들어왔던 큼지막한 가방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그녀를 의아하게 쳐다보니 엘리아가 다시 말했다.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몇 년은 먹고살 수 있는 돈이에요. 이걸 가지고 떠나요. 난 오늘 에렌과 함께 궁으로 돌아갈 거예요. 그 사이. 떠나 있어 줘요. 멀리멀리.”

  말을 마친 엘리아가 나를 잠시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뒤돌아 나갔다.

  어제에 이어 이틀이나 연속으로 연타를 당한 기분이었다.

  일국의 황녀가 고작 내가 떠나는 것 하나를 저렇게까지 간절하게 원하다니. 꼭 내가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 같았다.

  내가 멍하니 오전을 보내는 사이 렌케와 엘리아가 황궁으로 떠났다. 엘리아는 아주 가는 거고, 렌케는 일주일 뒤에 돌아온다고 했다던가, 옆에서 얘기해주는 소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충 그랬다.

  “하아.......”

  답지 않게 한 가지 문제를 두고 몇날 며칠을 끙끙 앓다보니 식욕까지 떨어질 지경이었다.

 *

  렌케가 황궁에서 돌아오기로 한 이틀 전, 난 결국 결정을 내렸다.

  지금까지 신세를 졌던 사람에게서 말도 없이 떠나는 건 도리가 아니었지만, 엘리아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확실히 지금까지의 렌케를 보면 또 상관없다고 하며, 날 그의 집에 계속 머물게 할 게 뻔했다.

  그리하여 나는 결국 안 되는 글 솜씨로 고치고 또 고쳐 장문의 편지를 썼다. 내 주제에 장문이라고 해봤자 양피지 한 장을 채 넘기진 못했지만 말이다.

  그동안 잘해줘서 고맙다, 많이 배웠고, 앞으로 잘 살 테니 걱정하지 마라. 요약하면 이 세 마디 내용을 길게 늘여 쓴 것뿐이었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정성스레 쓴 편지를 가지고 터덜터덜 렌케의 방으로 향했다.

  낮에 가면 분명 누군가 청소를 하고 있거나 그래서, 몰래 편지를 놔두기가 힘들었기에 한밤중이 되어서야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오늘따라 더 썰렁하고 스산하게 느껴지는 복도를 느릿느릿 걸었다. 그럼에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렌케의 방으로 향하는 길이 짧게만 느껴졌다.

  막 렌케의 방문 앞에 도달했을 때, 난 본능적으로 걸음을 멈췄다.

  내 귀를 잡아끄는 어떤 소리가 방 안에서 들려왔다.뭔가를 질질 끄는 것 같기도 하고 덜그럭거리며 만져대는 것 같기도 했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이런 쪽으론 감이 좋아서 누군가 안에 있는 게 틀림없다는 데 확신이 들었다.

  ‘도, 도둑인가?’

  누구를 불러와야 하나? 그 사이에 털 거 다 털어서 도망가 버리면 어떡해?

  짧은 사이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수만 가지가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방에 쳐들어가서 녀석의 얼굴을 확인하고 소리를 질러도 늦지 않다는 거였다. 어차피 이곳엔 뛰어난 기사들이 많이 있으니 크게 소리 지르고 뭐라도 깨면 분명 누군가는 달려올 것이다. 렌케에게 보탬이 될 만한 일을 하나라도 해주고 싶었다.

  생각을 마치마자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당장에 렌케의 진열장으로 달려가 술병을 꺼내 양손에 쥐었다.

  “꼼짝 마!!”

  ‘얼굴. 얼굴을 확인해야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으니 마음이 초조했다.

  “거기 가만히 있어! 그렇지 않으면 당장 이걸 너에게 던져버릴 거야!”

  이래봬도 배드민턴을 뻘로 한 건 아니거든! 아무리 실루엣만 보인다 해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걸 조준해서 맞추는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위협하며 그대로 굳어 있는 검은 형체에게로 다가갔다.

  ‘피 냄새!’

  창문이 활짝 열려 있어 바람이 부는 바람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비릿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긴장감에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시키는 대로 가만히 있었는데 그걸 던질 건가?”

  “어?!”

  놀라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술을 떨어뜨릴 뻔했다.

  지금 있을 리가 없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렌케??”

  “렌케가 맞아?”

  “그래.”

  확인 차 다시 물어보니 제대로 대답이 들려왔다. 그런데 렌케가 맞다고 하더라도 이 코를 찌르는 피 냄새가 매우 신경 쓰였다.

  “잠시만 거기 딱 있어.”

  렌케에게 경고하고 구석에 있는 등을 켰다.

  “!!!”

  등을 키자마자 보인 렌케의 모습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범벅이었다. 방에서 들린 이상한 소리는 옷을 벗는 소리였지 상의 갑옷과 셔츠와 검이 그의 주변에 떨어져 있었다.

  상의는 완전히 벗은 상태였음에도 피가 너무 묻어 있어서 보이는 부위가 살인지, 피 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그가 다쳤다는 사실 깨닫자마자 내가 이 방에 왜 왔는지도 싹 잊어버린 채 당장 그에게 달려갔다.

  “어떻게 된 거야!”

  지혈을 하기 위해 렌케의 상체를 덥석 잡고 더듬으며 상처를 찾았다. 렌케가 내 손을 잡아 제지하며 말했다.

  “내 피가 아니다.”

  “말도 안 돼. 그럼 누구 피란 말이야 이게.”

  다급하게 대답하다말고 깨달았다. 다른 사람 피일 수도 있다는 걸. 렌케가 쫓기고 있던 첫 만남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일단 피 좀 닦아내고 상처 보자.”

  렌케의 팔을 잡아끌고 욕실로 향했다. 렌케를 넓은 욕조의 가장 자리에 앉혀놓고 물을 받았다. 곧 뜨거운 김이 올라왔다. 가운을 갖다 주고 바지까지 다 벗으라고 종용했다. 움직이 부자연스러운 렌케가 신발과 옷을 벗는 걸 도와주었다.

  물을 떠서 렌케의 몸에 묻은 피를 조심스레 닦았다. 피가 묻은 게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닌지 쉽게 닦였다.

  “이봐 이봐! 안 다친 게 아니네!”

  상체를 다 닦아 내고 팔을 닦을 때서야 상처를 발견했다. 팔이 길게 찢어져 있었고, 거기에서 피가 계속 새어나오고 있었다.

  “응급처치 안하고 뭐하고 있던 거야!”

  팔을 깨끗이 닦아내고, 깨끗한 천을 찾아다가 붕대처럼 감았다.

  “더 아픈데 없어?”

  렌케가 내 물음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피 멈춰야 되니까 팔 계속 들고 있어.”

  렌케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렌케가 팔을 들고 있는 동안 천에 물을 묻혀 렌케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능숙하군.”

  렌케가 말을 꺼냄과 함께 내손에 닿아있던 그의 도톰한 입술이 움직였다.

  “!!”

  황급히 손을 뗐다. 나 때문에 거의 벗고 있다 시피 한 렌케와 너무 몸을 밀착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뒤늦게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그때도 이런 식으로 응급처치를 했었나?”

  “으, 응.”

  내가 뭐라고 대답하는지도 모른 채 시선이 붙박이듯 렌케의 몸에 고정되었다. 내가 상처를 본답시고 벗긴 가운이 허리 가에 흘러내려 하체만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었다. 꽉 짜여진 근육 위로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는 흉터들조차 섹시해보였다.

  응급환자라고 생각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어느 정도 좀 처치를 해서 그런지 그가 미친 듯이 의식되었다.

  대체 렌케는 왜 내가 그를 막 만져대는 데도 옷을 벗기는데도 가만히 있었던 거지?!

  뽀얀 수증기 속에 느슨하게 앉아 있는 그는 다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른해보였다.

  “왜 그러지?”

  촉촉한 검붉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아찔한 자태에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

  벌떡 일어나서 새 수건과 가운을 가져와서 렌케에게 건넸다. 렌케쪽으로 자꾸 돌아가는 눈을 거두기 위해 아예 그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이걸로 닦고 갈아입어. 난 이만 가볼게. 내일 꼭 의원님께 말씀 드리고.”

  그리고 곧바로 달려서 렌케의 방을 나왔다. 내 방의 침대에 도착할 때까지 난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심장이 얼마나 세차게 뛰는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얼굴로 자꾸 피가 쏠리는 게 계속 렌케를 생각했다간 코피라도 터질 것 같았다.

  “후우... 후.......”

  심호흡을 하며 이상한 충동을 참았다. 그 자리에 조금 더 있었을 때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난 내가 충동에 잘 휩쓸린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빨리 거기에서 벗어난 게 백번이고 천 번이고 잘한 일이었다.

  ‘정신 차려!’

  몇 번이고 뺨을 두드리며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노력하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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