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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언데드 아가씨
작가 : 흑염룡
작품등록일 : 2017.12.15

언데드가 된 아가씨의 이야기.

 
1. 어린 가주님(2)
작성일 : 17-12-15 23:34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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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주님은 사람을 너무 믿어요.”

 “뭐?”

 릴라이나가 서류를 읽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백작님’이나 ‘가주님’보다는 릴리 아가씨라고 더 많이 불리는 그녀를 기어코 가주님이라 부르는 사람은 이 저택에 딱 하나였다.

 어릴적 아버지가 엘라리온가의 방계라며 데려온 남자아이, 테일리 엘라리온. 릴라이나보다 한 살 어린 열여섯의 소년.

 “일하다 말고 갑자기 무슨 소리야?”

 새파란 머리를 뒤로 묶은 소년이 계속 손과 눈을 움직이며 말했다. 얼핏 봐서는 청년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얼굴에 십대의 앳티가 남아있었다.

 “사람이 다가오면 먼저 의심부터 하시라구요.”

 “…그거 첼 이야기야?”

 “네.”

 릴라이나가 눈을 찌푸렸다. 그러나 테일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첼은 수상하다고 했잖아요.”

 “너 또 귀족 이름을 함부로…”

 “그게 중요한 게 아닐텐데요.”

 아니 중요한데.

 첼은 귀족, 그것도 후작가의 직계이고 테일리는 귀족과 평민의 중간 계급, 미들네임이 없는 준귀족이다. 상황에 따라선 준귀족 신분을 빼앗기고 평민으로 강등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집무실 한 켠에 앉아있는 시종도, 영지에 하나뿐인 기사도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어차피 저 테일리가 다른 사람 앞에서 그런 실수를 할 리는 없으니까.

 “일단 손 멈추지 마시고요.”

 “윽.”

 테일리는 지금도 빠르게 서류를 처리하는 중이었다. 처리하는 속도가 릴라이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서류에 닳고닳은 노귀족이라도 쉬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또 그거야? 첼이 나한테 잘해줘서 얻을 게 없는데 왜 잘해주는지 모르겠다고?”

 “가주님은 전혀 의심이 안 가십니까? 무려 후작가의 셋째가 이름만 백작이나 마찬가지인 가주님께 목을 맨다는데? 아무리 첩의 자식이라지만 직계-”

 “테일리!”

 “…테일리, 넌 말을 좀 가려서 해라.”

 기사 바론이 껄렁하게 경고했다. 그 특유의 분위기가 릴라이나는 물론 테일리의 미간에서도 주름을 지웠다.

 “…좀 더 조심하시라 이 말씀입니다.”

 릴라이나가 아예 몸을 돌려 앉았다.

 “조심하긴. 첼은 내가 찡그리기만 해도 미움 받은 줄 알고 안절부절 해. 후작가에서 어떤 취급을 받고 자랐는지, 안쓰럽지도 않아?”

 “그래도 그 인간, 느낌이 영 안 좋아요.”

 대체 무슨 느낌!

 “네 말대로 첼이 내게 접근할 다른 이유는 아무것도 없어. 내가 재산이 많아 권력이 있어? 있는 거라곤 페페로이와 넬레티카 몇 송이 나는 작은 영지가 전부인데. 대체 첼이 날 좋아하는 이유가 사랑 말고 뭐가 있는데?”

 “우리는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죠.”

 “정말 너!”

 바론이 급히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요 그만. 아가씨, 그러다가 델트마이어경께서 듣습니다?”

 릴라이나가 입을 다물었다.

 엘라리온 저택은 넓지 않았다. 첼이 머물고 있는 손님방은 겨우 바로 아래층이었다.

 “얘가 순수한 마음을 의심 하잖아요. 실례되게.”

 “가주님이 멍청하게 의심도 없이 덜컥 믿는 거죠.”

 “그래 너 머리 좋다!”

 “아 그만 하시라니까 들. 어이 시몬, 쿠키라도 좀 가져와라.”

 릴라이나와 테일리는 흘낏 바론을 노려봤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둘 다 단 거라면 아주, 좋아하니까.

 “달달한 거 먹으면서 머리좀 식히… 아하하.”

 바론의 입에서 어색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내편이나 들어’라는 눈빛이 양 쪽에서 똑같이 쏘아지고 있는데 하하 누구 편을 들어야 하려나.

 “음. 그래도 테일리 이 녀석이 천재 아닙니까. 사람 조심해서 나쁠 것도 없고…”

 릴라이나가 뺵 소리질렀다.

 “천재면 뭐해요 사랑은 개뿔도 모르는데!”

 하이고야 아가씨, 개뿔이라뇨.

 “아가씨 저한테서 그런 단어 배우시면 안됩….”

 “그러는 가주님은 사랑이 뭔지 알기나 하시구요?”

 “당연하지!”

 내 말도 좀 들어줘.

 바론은 입을 열 타이밍을 재다 포기하고 푹 한숨을 내쉈다.

 둘 다 아직 이십 년도 안 산 어린양들이 뭔 사랑을 아네 마네… 그렇게 고개를 저을 때 몇 번 더 말을 주고받은 끝에 결국 릴라이나가 축객령을 내렸다.

 “아 몰라!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둘 다 나가!”

 “난 왜…”

 테일리는 그 사이 처리할 서류를 전부 끝낸 참이었다. 어차피 하도 작은 영지라 서류 자체가 많지도 않았다.

 테일리가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지금 정신 사납게 소리치고 있는 게 누군데…”

 ”나.가.”

 쾅!

 바론을 밀어낸 릴라이나가 부술 듯 문을 닫았다.

 바론과 달리 당당히 먼저 걸어 나온 테일리가 파란 염료를 덕지덕지 바른 머리칼을 손으로 휘젓다가 생각났다는 듯 휙- 바론을 돌아봤다.

 “아저씨. 가주님 앞에서 용병시절 어휘 좀 쓰지 말라고요.”

 “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데 어쩌라… 알았어 조심할게, 워, 워. 근데 도련님아,”

 “그렇게 부르지도 말고요.”

 테일리의 성은 릴라이나와 같은 엘라리온이긴 하지만, 미들네임이 없는 이상 귀족신분도 아니고 백작가의 방계니 먼 친척이니 해도 사실상 단지 성만 같은 남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바론은 심심치 않게 그를 도련님이라 부르곤 했다.

 “연초도 집어 넣으시고요. 제가 저택 내 금연이라고 했죠, 잊어버렸어요? 것도 가주님 방문 앞에서 연초를 피시겠다?”

 “…물기만 할 거야 물기만.”

 물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잔소리에 바론은 속으로만 입맛을 다셨다.

 “아무튼, 너도 좀 덜 까칠하게 굴 수는 없는 거냐?”

 코웃음이 돌아왔다.

 “네 없어요.”

 “끙…….”

 바론이 솥뚜껑 같은 손으로 테일리의 머리를 꾸욱 눌렀다.

 테일리 또한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바론은 그보다도 무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기본적인 체력단련만 하기에 전체적으로 팔다리가 마르고 살집이 없는 테일리와 달리 곰 같은 바론이라 체구가 더욱 차이나 보였다.

 “네가 가주님을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질투를 그렇게 표현하면 쓰나.”

 “…….”

 테일리가 쓰레기 보듯 바론을 쳐다봤다.

 저벅저벅.

 막 계단을 올라오던 첼이 그들을 발견하곤 빙그레 미소지으며 목례했다. 흠잡을 곳 하나 없는 완벽한 미소였다.

 “세이즈 경, 백작님께선 아직 집무실에 계신가요?”

 “아, 예.”

 “감사합니다.”

 다시 한 번 목례한 그가 그들을 지나쳤다.

 바론과 함께 무표정한 얼굴로 마주 고개 숙인 테일리는 무표정인 그대로 뒤도 안 돌아보고 계단을 내려갔다.

 

 * * *

 

 “정말.”

 시몬이 가져온 쿠기를 휴식용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테일리와 바론의 것까지 가져 온지라 혼자 먹기엔 양이 꽤 많았다.

 그것을 빤히 노려보던 릴라이나가 집어 던지듯 펜을 내려놓았다.

 “시몬, 테일리 쟤는 정말 왜 저러는 걸까?”

 “그냥 아가씨를 걱정 하는 게 아닐까요?”

 책상에서 일어나 테이블에 털썩 주저앉은 릴라이나가 되물었다.

 “걱정?”

 “한 번 쯤은 생각해 봐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니까요. 백작님과 백작부인께서도 짚고 넘어가보려 하셨을 거에요. 우리들의 소중한 아가씨니까.”

 “애 취급 하지 마.”

 말은 그렇게 해도 릴라이나의 볼은 살짝 발그레했다. 시몬이 소리 없이 웃었다.

 ‘정말 그런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태도가 너무 뾰족하지 않나?

 와삭.

 쿠키가 입 안으로 부스러졌다. 베리가 박힌 바삭한 쿠키는 막 구운 듯 따뜻했다. 마침 주방에서 쿠키를 구워놓던 중이었던 듯 했다.

 우물우물.

 과자의 달콤함을 음미하며 생각을 날려버리는데, 별안간 똑똑. 노크소리가 들렸다.

 “백작님, 첼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픕!?”

 릴라이나가 다 씹지도 않은 쿠키를 꿀꺽 삼키며 입가를 털었다.

 뭐야, 첼이 집무실엔 왜? 아니 못 올 건 없지만, 왜?

 “드…을어오세요!”

 분명 들릴 리가 없는데 문 뒤에서 피식 하는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한 숨이 나왔다. 대체 자신은 언제쯤 우아하고 품위 있는 연인이 될 수 있을까?

 “쉬시는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안 그래도 쿠키가 너무 많아서 걱정하던 차였어요.”

 “쿠키요?”

 릴라이나의 표정이 잠시 샐쭉하게 변했다.

 “같이 먹으려던 누가 계속 신경을 건드려서 내쫓아버렸거든요.”

 “하하.”

 그 누가 누군지는 굳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릴라이나가 권한 자리에 앉으며 첼이 집무책상을 가리켰다.

 “내쫓아도 되나요?”

 “괜찮아요. 머리가 좋은 아이라 어차피 잠깐이면 끝내거든요.”

 시몬이 두 사람 앞에 우려낸 차를 내었다. 항상 마시는 페페로티였다.

 “첼이 집무시간에 절 찾은 건 처음이네요.”

 “죄송합니다 생각에 빠져있다 바로 왔더니 시간을 생각을 못해서…….”

 “아뇨, 아니에요. 무슨 일이에요?”

 “음……”

 첼의 시선이 테일리의 집무책상으로 향했다.

 “엘라리온 경에 관한 말씀입니만…….”

 “테일리요?”

 “예.”

 릴라이나가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결국 테일리 이 녀석이 첼에게 큰 무례를 범한 게 아닐까? 하지만 있는대로 다 내뱉긴 해도 다른 귀족 앞에서까지 그런 실수를 할 테일리가 아닌데. 참다참다 터진 걸까?

 ‘하아, 테일리… 정말.’

 일단 대신 사과하고 첼을 잘 달래야 할 것 같았다.

 첼도 그녀에겐 소중한 연인이었고, 테일리도 마찬가지로 동생이나 다름없이 의지하고 있는 가족이었다. 둘 다 상처받거나 무슨 일이 생기게 둘 수는 없었다.

 그러나 첼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엘라리온 경이 밤마다 저택을 나가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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