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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블랙 앤 화이트
작가 : 잉준이
작품등록일 : 2017.12.8

실패의 늪에 빠진 남자와 자신만을 바라보는 사람이 필요했던 여자가 서로 만나 상처를 치유하고 꿈을 이루는 이야기

 
13
작성일 : 17-12-15 22:54     조회 : 251     추천 : 0     분량 : 5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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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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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노래를 만들 때 빠르면 몇 주, 늦으면 몇 달이 걸리기도 했다. 다행히도 이번 곡은 꽤 빠른 편이었다. 그녀와 머리를 맞대서 가사를 쓰고 악기를 만지고 하다보니 2주 정도가 지나자 노래는 거의 완성 되어갔다. 이제 남은 작업은 세세하게 모난 부분들을 둥글게 다듬는 일이었다.

 

 마무리까지 같이 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엘레인은 요즘 바쁜 모양이었다. 얼마 전 페밀리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던 도중 그녀가 신난 얼굴로 말한 이야기는 대략 이랬다.

 

 “그래서 무대를 내려오는데 있지, 갑자기 왠 남자가 명함을 주더라고...”

 

 여느 때와 같이 노래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던 엘레인에게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대뜸 명함을 건냈다는 것이었다. 선글라스를 낀 채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랬는데, 그래서 처음엔 경계를 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그녀가 오해를 한 줄 알고 명함을 건넸는데, 그 명함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entertainment

 

 그 명함을 보고도 누구세요?라고 물을 가수는 없었다. 가수를 지망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르는게 이상할 정도로 유명한 기획사였으니까.

 

 그녀는 그런 곳에서 캐스팅 제의를 받은 것이었다. 거절할 이유는 당연히 없었다. 애초에 그녀는 더 큰 무대를 위해 오디션을 볼 예정이었고, 그 곳은 그녀의 꿈을 이루어주고도 남을만한 힘이 있었다. 당연히 엘레인은 엄청 기뻐하며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런 고로 요즘 그녀는 평상시보다 더 바빠진 것 같았다. 계약하랴, 기획사에서 연습하랴, 카페에서 노래하랴. 딱 봐도 몸이 두 개여도 모자라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카페를 관둬라고 했지만 그녀는 무대에 서는 게 확정되기 전까지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엘레인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당신한테 고기 사먹이려면 계속 돈 벌어야지.”

 

 라고 말했다.

 

 나도 물론 짬짬히 음반 가게 일을 하고 있긴 했지만 그 말에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공연을 하는 그녀의 수입은 내 파트 타임 알바 수입과는 비교가 안됐다. 부끄럽지만 나 혼자 버는 돈으로는 우리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건 분명 내가 미안해 해야 할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내가 가사일을 자주 해야 돼서 음악에 집중을 못 할 까봐. 자신의 스케줄 때문에 자신이 함께 만들자고 했던 곡의 마무리를 같이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 말에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나는 내 노래 하나 때문에 엘레인의 꿈에 차질이 생기지 않길 바랬다. 옆 자리 별의 빛을 뺏어 내 별을 빛나게 하는 건 원치 않았다.

 

 4-2.

 

 그렇게 또 1주일이 흘러갔다.

 

 나는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었던 터라 뻐근한 몸을 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뚝, 뚜둑.’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던 건지, 몸에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뼈 소리가 났다.

 

 눈을 돌려 컴퓨터에 표시된 시계를 봤다. 6시 46분. 아까 점심을 먹자마자 여기에 있었으니까 최소 4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창문 밖을 보니 해는 모습을 감춘지 오래였다. 이어폰을 낀 채 악기나 컴퓨터만 만지고 있으니 이렇게까지 시간이 간 줄도 몰랐다. 나는 고개를 두어번 꺽어 남아 있는 찌뿌듯함을 털어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으로 가니 밥솥에서는 밥이 다 되간다는 신호인 뿌연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벽을 더듬거려 불을 킨 채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정확하네.”

 

 딱 7시가 되면 다 될 것 같았다.

 

 나는 냉장고 문을 열어제낀다. 그리고 가장 밑 칸에서 아침에 재워둤던 고기를 꺼냈다. 냄새가 기가 막혔다. 양념이 제대로 밴 모양이었다. 저절로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나는 고기 말고도 양손 가득 반찬 통을 들고서 뒷 발로 냉장고 문을 닫았다.

 

 요즘 이 시간대의 내 일상은 저녁을 차리는 일이었다. 엘레인이 여러모로 바쁜 터라 집에 늦게 돌아오는데, 항상 저녁을 안 먹고 오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어떻게 밥을 차리게 해. 항상 녹초가 된 상태로 들어오는데.

 

 프라이팬을 뒤집고, 냄비를 휘젓고, 오븐을 확인한다. 그리고는 음식이 준비되는 대로 하나씩 식탁에 올려놓았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냄새가 정말 기가 막혔다. 이럴 때 만큼은 이때까지 자취 하면서 길러놨던 요리 실력이 고마웠다.

 

 오븐에서 고기를 꺼내 조심스레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때였다. 딸랑.하고 맑은 종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안 봐도 엘레인이었다.

 

 “엘레인?”

 

 “나 왔어.”

 

 목소리에서부터 피곤함이 느껴졌다. 신발을 벗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그녀가 부엌 쪽으로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눈 밑엔 짙은 다크 써클이 자리잡고 있었다.

 

 “오늘도 힘들었어?”

 

 “그냥. 생각지도 못한 일이 많이 일어나서.”

 

 “뭔데? 나쁜 일이야?”

 

 “아니, 좋은 소식이야. 그것도 엄청.”

 

 엘레인은 그렇게 말하며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내가 궁금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먹으면서 얘기 해 줄게. 음식 식겠다.’라고 말했다. 미소를 보니 확실히 좋은 일인 것 같긴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밥솥에서 크게 두 그릇을 퍼서 그녀와 내 앞에 하나씩 놓고 자리에 앉았다.

 

 “뭘 이렇게 많이 했대?”

 

 “그러게. 너한테 좋은 일 생길 걸 나도 모르게 알고 있었나봐. 막 맛있는 거 해주고 싶더라고.”

 

 그녀는 그 말에 피식하고 웃었다.

 

 “집에 무당이 살고 있었네.”

 

 몇 가지 농담이 더 오고 간 후, 우리는 그제서야 식사를 시작했다. 그녀는 고기를 한 입 먹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맛있다.라는 말은 우리 식탁에서는 이제 진부한 말이 되어버렸다. 말을 할 때도 우물거리며 반찬을 집어 먹는 모습에 나는 절로 흐뭇해졌다. 왜 엄마들이 밥 할 땐 짜증을 내면서 아들이 밥 먹는 모습만 보면 미소를 짓는지 알 수 있었다. 나라고 그렇게 한가한 건 아니었지만 그녀의 맛있다고 말하는 듯한 눈빛만 보면 요리에 투자하는 시간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그너자너 아까 기쁜 소식 있다며.”

 

 “아, 맞아. 그거.”

 

 “뭔 일인데?”

 

 “듣고 안 놀랠 자신 있어?”

 

 “그 정도야?”

 

 “물론이지. 엄청 좋은 일이거든.”

 

 엘레인은 뭔가 엄청난 소식을 들고 온 모양이었다. 신나게 놀리던 포크질도 그만둔 그녀는 눈빛을 마구 반짝이고 있었다. 궁금한 건 당연했지만 그녀의 기대감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나는 2배는 더 과장된 얼굴로 그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글세 있잖아......”

 

 “응.”

 

 “그게......”

 

 “응.”

 

 “뭐냐면......”

 

 “......”

 

 뭔데 저렇게 시간을 끄는거야.

 

 “나...데뷔 시켜 준대!”

 

 “정말?!”

 

 그녀가 두 팔을 하늘 위로 쫙 뻗으며 그렇게 소리쳤다. 다크 써클이 드리운 그녀의 눈은 아랑곳하지 않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질렀다. 얼마나 기쁜 소식일까, 궁금했었는데 이건 진짜 예상치도 못할 정도로 기뻤다. 그렇게 시간을 끌만한 얘기였다. 내가 데뷔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기뻐하냐고 궁금할 때가 아니었다. 그녀는 내게 있어서 전부였고,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기쁜 일은 나에게도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어떻게?! 저번에 말할 때는 적어도 몇 달간은 엽습생 생활을 해야 될 거 같다더니?”

 

 “그러니까!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운이 좋았어.”

 

 “운?”

 

 “응, 너 케빈 알지.”

 

 “케빈?”

 

 “그래, 그 작곡가 있잖아.”

 

 모를 리가 있나. 지금 제일 잘 나가는 작곡가들 중 한 명인데.

 

 “그 사람이 왜?”

 

 “그 사람이 사장님이랑 되게 친한가봐. 자주 놀러온다고 듣긴 했는데 마침 오늘 딱 왔더라고......”

 

 그녀는 신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어찌나 흥분을 했던지 엘레인은 밥을 먹는 것조차 까먹고 신나게 얘기했다. 손짓, 몸짓을 섞어가며 그 때 상황을 재연하려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녀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케빈이라는 유명 작곡가가 있는데 그녀가 속한 엔터테인먼트 사장이랑 친했다. 그래서인지 회사에 자주 놀러오곤 했는데, 오늘 딱 왔다는 것이었다. 엘레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여느 때처럼 연습실에서 노래를 연습하고 있었는데, 때 마침 연습실 앞을 지나가던 케빈이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케빈은 사장에게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었고 사장은 연습생이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그가 사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당장 데뷔시켜. 쟤 내가 키울게.’

 

 “케빈이 그랬때?”

 

 “사장님이 그렇게 얘기해줬어. 내 자작곡이 마음에 든대.”

 

 “정말? 잘됐다, 진짜로.”

 

 “그치? 빨리 나 잘 되길 빌어. 매일 저녁을 5성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게 해줄게.”

 

 그녀가 포크로 고기를 한 점 찍어 내 입에 넣어주며 말했다. 나는 고기를 씹으며 키득거렸다.

 

 나머지 식사를 하며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해 떠들었다. 우리들의 얘기 속에서 그녀는 데뷔 1일차부터 어느샌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가수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여가수의 남편이 되어 있었고.

 

 그렇게 한 참을 떠들며 먹다보니 얼마 안 있어 접시는 싹 비어져 있었다. 우리는 늘 그랬듯 식탁을 치우고선 커피를 한 잔씩 타서 자리에 앉았다. 우리들이 뭔가를 마무리 할 때는 항상 커피와 함께였다.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러다보니 문득 나도 할 말이 있었다는게 떠올랐다.

 

 “아, 맞다.”

 

 “왜?”

 

 “나도 좋은 소식 있어.”

 

 “좋은 소식? 뭔데?”

 

 “노래 완성했어. 오늘.”

 

 “아, 진짜?”

 

 오늘로 딱 그녀와 만들던 노래를 마무리 한 것이었다. 밥 먹으면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엘레인의 얘기에 집중하느라 말하는 걸 까먹고 있었다.

 

 “응, 그래서 오늘 하루 종일 작업실에 있었어.”

 

 엘레인은 아까 자기가 데뷔 했다고 말했을 때 만큼 기쁜 표정이었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거야. 빨리 듣자. 들어보고 싶어.”

 

 “그럴까. 커피 먹으면서 들으면 딱 좋을 거 같긴하다.”

 

 마침 조용하고 천천하게 흘러가는 곡이니까.

 

 나는 그녀에게 잠시만 기다려라고 한 후 방 안으로 들어갔다. 컴퓨터 화면에는 작업을 딱 끝마친 상태의 곡이 띄워져 있었다.

 

 나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선 노래가 흘러나오기 전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들고 부엌으로 나왔다.

 

 “틀었어?”

 

 “쉿, 지금 나온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스피커에선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you and I-

 

 ......뚝.

 

 스피커는 나의 읊조림을 마지막으로 침묵을 자아냈다. 나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

 

 엘레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평소 내 노래를 듣고 날 때면 항상 칭찬이든, 쓴 소리든 뭐라도 꼭 말해주는 그녀였는데, 이번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그런 그녀에게 어땠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아니, 물어볼 때가 아니었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

 어떻게 해야 될 지를 모르겠다. 여자가 우는 걸 처음 보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여자가 이렇게 바로 앞에서 눈물을 머금고 있는 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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