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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21세기 조선스캔들
작가 : 달빛별
작품등록일 : 2017.12.4

헬조선을 살아가는 21세기 취업준비생 여자와 연산군 시대에 태어난 사림파 가문의 남자가 만나다!

난세시대 출신의 은오와 삼포세대 출신의 지민은 시대를 뛰어넘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그들은 시간이 흘러 함께 지낼수록 점차 서로의 상처를 돌아보고, 스스로의 못난 모습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두 청춘 남녀의 시대를 넘어선 로맨스 판타지.

 
제 17화, 이제 우리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어요
작성일 : 17-12-15 22:49     조회 : 222     추천 : 0     분량 : 6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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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17화, 이제 우리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어요. >

 

 지민이 집을 나가고 홀로 남겨진 은오는 습관적으로 TV 전원을 켰다. 지민이 아르바이트를 가거나 외출을 하면 혼자서 할 일이라곤 TV 시청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TV가 켜지면 화면 속 영상에 집중했던 평상시와 달리 은오의 신경은 다른 곳에 쏠려있었다. 지민이 일어난 후 줄곧 그녀의 태도가 이상했던 점이 마음에 걸렸다. 혹시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하여 지민의 화를 불러일으켰나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지민이 나가기 전에 이유를 알아내려 했지만, 결국엔 실패하고 말았다.

 

 “대체…,”

 

 이유가 뭐란 말인가!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없는 기억을 되짚어 봐도 특별한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해내기를 포기한 은오가 답답했는지 긴 한숨을 토해냈다.

 

 무심코 TV 화면으로 고개를 돌린 은오는 그 자리에서 뻣뻣하게 얼어붙었다. 화면 속에서 남자와 여자가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부끄러운 줄 모른다며 채널을 돌려버렸을 그였지만, 어째서인지 화면에 고정된 시선을 거둘 생각이 없어보였다.

 

 저들의 키스를 보고 있자니 어제의 일이 불현 듯 스쳐갔다. 지민과의 짧았던 입맞춤. 짧아서 아쉬웠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눈에 띄게 당황한 지민을 배려하여 이후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지민의 기분이 안 좋았던 이유가 그 때의 입맞춤에 대해 함구하는 자신에게 화가 나서임을 알 리 없는 은오였다.

 

 “저 낭자는 그 때 그..”

 

 열정적인 키스가 끝난 뒤 얼굴을 든 여자를 발견한 은오가 놀라워하며 중얼거렸다. 예전에 우연히 TV에서 봤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오늘로써 확실해졌다.

 

 ‘닮았다. 그 아이와.’

 

 머릿속으로 한 사람의 얼굴을 그려낸 은오가 설핏 웃어보였다.

 

 * * *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고, 현관 안에 들어선 지민이 신발을 벗었다. 이미 문을 열기 전 심호흡을 해둔 덕분인지 더 이상 크게 떨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방심해서는 안 되었다. 은오 앞에서 정신없이 굴다가 집을 뛰쳐나온 아침의 기억을 스쳐가니 다시 아찔해지는 그녀였다.

 

 제 예상대로 TV 앞에 꼿꼿이 앉아있던 은오가 저를 반겼다. 그와 지낸 시간이 어느덧 쌓였다보니 표정만 봐도 무슨 기분인지 대충은 알아볼 수 있었다. 무심한 척 표정을 굳혔지만 살짝 올라간 입가가 은오의 기분을 대변했다.

 

 종일 혼자서 집에 틀어박혀 TV만 쳐다보고 있으려니 적적해져 사람이 그리웠던 게지.

 

 그렇게 결론지은 지민이 단조로운 어조로 말을 꺼냈다.

 

 “나 왔어요.”

 “아…, 왔소?”

 “네.”

 

 은오의 어색한 물음에 짧게 대꾸한 지민이 그를 지나쳐 화장실로 걸어갔다. 찰나의 짧은 순간, 은오가 뭐라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닫는 게 보였다. 등 뒤로 따갑게 느껴지는 시선을 떨쳐낸 지민이 화장실 문을 닫았다.

 

 사실 아침에는 일부러 은오를 상대하지 않고 피한 것이 맞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 윤정과 이야기를 나누며 제 입장 정리를 이미 끝냈다. 은오와 자신은 살아가는 세상이 애초부터 다른 사람들이니 불필요한 감정은 묻어두자는 쪽으로. 그게 차라리 마음 편하기도 했고, 여러모로 최선의 선택이었다. 적어도 지민 스스로는 충분히 만족한 해답이었다.

 

 이런 와중에 은오를 슬금슬금 피해 다닐 리가. 다만 오는 내내 속이 좋지 않아서 화장실에 가는 일이 매우 급했을 뿐이었다.

 

 다만 화장실로 향하면서 마지막으로 본 은오의 얼굴로 보아, 아침의 일로 자신이 여전히 냉랭한 상태인 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김은오씨.”

 “….”

 “내 말 듣고 있어요, 은오씨?”

 “듣고 있소.”

 

 급한 불을 끄고 나온 지민은 은오와 대화를 시도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느릿한 대답이었다.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아침부터 지금까지 줄곧 자기를 무시해서 삐졌나? 제멋대로 판단한 지민이 빠르게 상황을 수습하려는데, 은오가 말을 이었다.

 

 “내가 무얼 잘못한 것이오?”

 “네?”

 “아니, 그렇지 않고서야 자네가 나를 보지 않으려 할 이유가 없잖소.”

 “….”

 

 듣고 있자니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닌지라 지민의 입가가 씰룩였다. 과거에서 온 남자라 앞 뒤 꽉 막히고 답답한 줄만 알았는데, 눈치가 제법이었다.

 

 그렇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었다. 애써 표정을 수습한 지민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김은오씨 잘못 아니에요.”

 “그럼 아침에는 왜 나를 보고도 못 본 척하며 피했던 것이오?”

 “그건..”

 

 말끝을 흐린 지민이 잠시 고민했다. 전날 밤의 입맞춤 때문에 네가 신경 쓰여서 그랬다, 라는 정직한 대답을 내놓을 수는 없고. 대신에 그가 쉽게 납득할 만한 다른 이유를 지어내야만 했다.

 

 “그게, 그러니까…”

 “괜찮으니 편히 말해보시오.”

 “아! 이마에 뾰루지가 났지 뭐예요.”

 “뾰루.. 그게 무엇이오?”

 

 하는 수 없이 며칠 전 이마에 불쑥 솟아난 뾰루지를 들먹인 지민이 은오의 눈치를 살폈다. 제 스스로 생각해봐도 지나치게 어설프기 짝이 없는 핑계거리였다.

 

 그런데 이게 웬 떡? 은오가 ‘뾰루지’라는 단어를 몰라 오히려 제게 뜻을 되물었다. 조선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단어일 테니 그가 못 알아듣는 것이 당연했다. 이렇게 되면 일이 더 쉬워진다.

 

 에헴, 괜히 헛기침을 내뱉은 지민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설명을 늘어놓았다.

 

 “뾰루지는 요거, 보이죠? 사람 피부가 빨갛게 변하면서 위로 불룩하게 올라오는 거예요. 주로 피곤하면 생겨요.”

 “오, 이것을 이곳에선 뾰루지라 하는 것이오? 종기와 비슷한 생김새이오.”

 “종기?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조선에선 흔히들 종기라 부르오. 한번 걸렸다 하면 낫기가 꽤 어려운 병이오.”

 “아, 맞아. 사극 드라마에서 종종 들어본 것 같아요.”

 

 방금 전까지의 어색함은 말끔히 사라지고, 어느새 바짝 붙어선 두 사람이 쾌활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던 중 은오와 지민의 시선이 맞물리며 동시에 부딪쳤다. 열심히 재잘거리던 지민도, 거기에 화답하듯 말을 잇던 은오도 침묵하면서 집안이 고요해졌다. 두 사람 모두 서로 맞닿은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상대가 날숨을 내뱉는 소리 하나까지 선명하게 귀에 들어올 정도였다.

 

 이윽고 번쩍 정신이 든 지민이 황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쓸데없이 그에게 설레지 않기로 해놓고, 또다시 같은 실수를 저지를 뻔 했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은오가 정적을 깨며 물었다.

 

 “그런데, 자네 이마에 뾰루지가 난 일과 나를 피한 행동에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이오?”

 “아…, 당연히 상관이 있죠!”

 “어째서?”

 “이마에 이만큼이나 큰 뾰루지를 달고 다른 사람 앞에 서는 거,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소. 귀엽기만 한 것을.”

 “…뭐라고요?”

 

 지민은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귀엽다니, 어떤 게? 설마 그가 귀엽다는 대상이 제 이마에 난 이 징그러운 뾰루지는 아니겠지.

 

 하지만 쐐기를 박으려는 듯, 뒤이어 들려오는 은오의 말이 훨씬 더 경악스러웠다.

 

 “자네 얼굴이 종기로 가득 뒤덮여져 있다고 해도, 귀여울 것이오.”

 “그거 지금..”

 “응?”

 “내 얼굴에 뾰루지 잔뜩 생기라고 악담하는 건가요?”

 “….”

 

 은오는 나름대로 칭찬이랍시고 덧붙인 말이었으나 지민의 귀에는 끔찍한 저주로 들린다는 게 문제였다. 덕분에 그가 지민에게 ‘귀엽다’고 칭찬하면서 은근슬쩍 마음을 드러낸 것은 쥐도 새도 모르게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날 밤, 잠에 들기 전 세안을 마친 지민이 영양 스킨을 피부에 듬뿍 덧바르며 중얼댔다.

 

 “이놈의 뾰루지, 또 생기면 저 인간 탓이야.”

 

 * * *

 

 이틀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사이 은오와 지민은 언제 어색했었냐는 듯 관계를 회복했다. 지민의 집에서 함께 살면서 때때로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그런 관계.

 

 둘 중 한명이 먼저 손을 뻗기만 하면 손쉽게 닿을 거리였다. 하지만 둘 중 누구도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운 일상이 흘러가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저 다녀올게요.”

 “오늘은 아르바이트 하는 날이 아니지 않소? 어디 가는 것이오.”

 “아, 그게 공모전… 그냥 볼일 있어서요.”

 “공모전?”

 “그런 게 있어요. 다녀올게요!”

 

 은오의 물음에 공모전 당선과 시상식에 대해 설명하려던 지민이 대충 얼버무리곤 문을 열었다. 벽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을 보니 지금 나가도 제 시간에 도착하기 빠듯할 것 같았다.

 

 지민이 제대로 된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홀연히 사라져버리고, 어김없이 홀로 남겨진 은오는 미간을 찌푸렸다.

 

 뭐가 그리 바쁘다고 저렇게 뒤도 안 돌아보며 떠나버리는지. 지민에게 왠지 모를 서운함을 느끼는 그였다.

 

 * * *

 

 “헉, 헉….”

 

 지하철역에서 나온 지민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혹시라도 늦을까봐 정신없이 뛰었더니 평소 운동 부족인 게 여실히 드러났다. 지민은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제 체력이 원망스러워졌다.

 

 그 때, 지잉-하고 짧은 진동이 울렸다. 핸드폰도 확인할 겸 잠시 멈춰선 지민이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을 힐끗 올려다봤다.

 

 [사랑하는 내 동생아, 오늘 내가 너의 집에 가도 되겠니?]

 

 발신자는 언니 지혜였다. 무심하게 문자를 읽어 내리던 지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 인간이 뭐라는 거야?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지민이 분노를 담아 답장을 쓰려는데 문자 하나가 또 도착했다.

 

 [설.마. 그 남자가 또 너의 집에 있는 건 아니겠지?]

 

 한마디로 불시에 제 집에 들이닥쳐 지난번처럼 은오가 있나 없나 확인하러 오겠단 소리였다. 원래 지혜는 동생의 집에 가도 되겠냐고 친절하게 물어보는 언니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방문 목적이 너무 훤히 보였다.

 

 골치 아픈 사태가 벌어지겠다는 예감에 지민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이를 어째야 하나. 자신은 시상식에 참석하러 가야 하는데, 지혜가 언제 집에 올 것인지 짐작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가지 말라고 붙잡아봤자 씨알도 안 먹힐 게 뻔했고, 은오 쪽에 연락하고 싶어도 그는 핸드폰이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던 지민이 마침내 결심이 선 듯 걸음을 뗐다.

 

 이렇게 된 이상 시상식에 갔다가 택시를 타고 얼른 집에 가는 방법 밖에 없었다. 거리가 꽤 있어 비싼 택시 요금을 각오해야했지만 지금은 돈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망할 구지혜, 내가 가만 두나 봐라!”

 

 방금 전까지 잔뜩 지쳐있었다는 사실도 잊은 듯 빠르게 뛰어온 지민이 건물의 문을 열었다. 오는 내내 지혜에 대한 욕을 한가득 퍼부은 덕분에 그녀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바득바득 이를 갈던 지민이 건물 안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민의 눈앞에 보인 것은 건물의 로비가 아니었다.

 

 거칠고 질퍽한 돌밭 위에 놓인 볼품없는 초가집들. 그 옆으로 보이는 대조적인 모습의 화려한 기와집들.

 

 주위에 돌아다니는 한복 차림의 사람들. 지게를 이고 가는 장사꾼과, 말을 탄 채 제 옆을 지나치는 선비.

 

 21세기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낯선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지민은 차분하게 놀라움을 가라앉혔다.

 

 처음에 이곳으로 왔을 때만 해도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어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서 얼떨떨했다.

 

 겨우 현실을 받아들인 후 이곳을 떠나 자신이 살던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고, 결국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또 이곳에 오다니? 지민은 하늘이 제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곳 조선에, 또다시 혈혈단신으로 이렇게 떨어지다니.

 

 지민이 절망하며 털썩 주저앉는데, 그 순간 소곤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좀 봐봐.”

 “오메, 저 처자는 뭐다냐?”

 “몸에 걸친 해괴한 의복은 또 뭐고. 어디서 주워 입었대?”

 “동네에서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아뿔싸.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가만히 듣던 지민의 낯빛이 새하얘졌다.

 

 지난번 조선에 왔을 때, 지민은 성균관 유생 옷을 입고 있던 터라 크게 주목받지 않았다. 그래서 당연한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한국에서 흔히들 입는 옷과, 이곳 조선에서 입는 옷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따라서 제가 걸친 검은색 투피스 정장이 조선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정체불명의 옷이 된 것이다.

 

 당황한 지민이 눈을 굴리는 사이,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불어났다. 이리저리 말 옮기기 좋아하는 무리들이 벌써 소문을 널리 퍼뜨린 모양이었다.

 

 웅성대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이젠 아예 대놓고 지민 쪽으로 삿대질을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처음 보는 이들로부터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푹 숙인 지민이 어디로든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발을 떼려는 때였다.

 

 “어딜 가려고!”

 “맞아. 암만 봐도 수상쩍단 말이지?”

 “관아로 끌고 가서 사또 나리께 저 계집을 보여야겠어.”

 

 구경하는 사람들을 제치고 앞쪽으로 걸어 나온 사내가 호기롭게 외쳤다. 집채만큼 큰 키에 우락부락한 인상을 가진 사내였다.

 

 그의 말을 들은 지민이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하고 몸을 돌렸다.

 

 사극 드라마에서 관아로 끌려간 죄인이 어떤 벌을 받더라?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답은 간단했다.

 

 형틀에 묶여 꼼짝도 못하는 상태로 무시무시한 곤장을 맞게 된다.

 

 이대로 끌려갔다간 그 무서운 곤장을 맞을지도 모른다. 난데없이 조선으로 또 굴러들어온 것도 억울한데, 그런 험한 꼴을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생존본능이 발동된 지민이 이를 악물고 뛰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사람들이 뭐라 소리치는 게 들려왔지만 아랑곳 않고 계속 달렸다.

 

 * * *

 

 한참을 달린 끝에 어느 이름 모를 산의 입구까지 다다른 지민이 홱 고개를 돌렸다. 혹시라도 제 뒤를 쫓아온 사람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주위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없었다. 안도감에 한숨을 내쉰 지민이 다시 걸어가려는데, 그녀의 뒤로 말소리가 들려왔다.

 

 “산에 올라갈 것이오?”

 “…?”

 “이 산에는 포악한 호랑이가 살고 있으니 가지 않는 게 좋겠소.”

 “김은오씨?”

 

 방금까지 지민은 이곳, 조선에 홀로 떨어져 오게 된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김은오, 눈물 나도록 반가운 그 남자가 제 앞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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