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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에디온
작가 : 염적
작품등록일 : 2017.11.7

과거 중간계를 휩쓸었던 원인모를 악마들의 습격이 일단락 된지도 어느새 20년, 전쟁을 종식시키는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세 명의 인간영웅 에디온 중 가장 강력한 자인 에르세데스 메데스의 아들인 에르세데스 이안은 평화속에서 평범한 삶을 살며 20살의 성인으로 거듭난다. 처음으로 맞는 방학에 떠난 첫번째 여행. 하지만 여행도중 대륙 곳곳에서 이상현상들이 발견되고, 이안과 일행의 앞에 다시 한 번 악마들의 위협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 2장 : 전조 (12)
작성일 : 17-12-15 19:45     조회 : 209     추천 : 0     분량 : 9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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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얌전히 있거라.”

 또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의 풍경은 어느새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나의 몸도, 어느새 달라져 있었다.

 시간이 과거로 돌아간 듯했다. 주변은 방금 전의 그 비행장 안이었고, 눈앞에서 내 목을 부여잡고 있는 여자는 바로 그 때의 그 용이었다.

 “이제야 좀 잠잠하군.”

 내 몸은 축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내 정신은 말끔했다. 몸은 내 의지에 따라 움직여지지 않았다. 뭐랄까, 몸의 주도권이 내것이 아닌듯한 느낌이랄까.

 ‘전부 환상이야. 가만히 지켜보기나 해.’

 누군가가 내게 속삭였다. 방금 전 그 녀석이었다.

 용은 내 몸을 들어올렸다. 주위의 모습이 보여왔다. 피에 흠뻑 젖은 채로 쓰러져 있는 밀레의 모습, 그리고 간신히 붙잡던 정신을 잃어버려 바닥에 자빠져있는 에온의 모습, 그리고 유일하게 서서 우리를 응시하고 있는 조나단.

 “그 손 놔라.”

 조나단의 음성이 들려왔다. 상처는 없었지만 여전히 맥없이 흔들리고 있는 왼팔을 보아하니 팔은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듯 해 보였다.

 “멀쩡한 녀석이 아직 있었군.”

 용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팔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채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을 시간이 지나고.

 쾅!

 폭탄 수십개가 동시에 터져버린 듯한 위력의 폭발이 조나단을 휩쓸었다. 폭발의 정가운데에서 황금빛이 점멸했다. 조나단은 마지막힘을 짜내 용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내 눈에도 그 움직임이 보일 정도로 그는 지쳐있었다. 느려터지고 약해빠진 인간의 주먹따위는 용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용은 조나단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주먹. 말그대로 포대자루를 날려버리듯이 조나단은 날아갔다. 그리고 벽을 뚫어버리며 옆으로 날아가 말 그대로 바닥에 박혀버렸다.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용은 나의 목을 부여잡고 그대로 들어올렸다. 목을 조이는 손아귀의 힘이 내게까지도 느껴져 왔다. 숨이 막혀왔다. 나는 그저 지켜보는 관찰자일 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은 턱 막혀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 때 동시에 들려온 익숙한 말 한마디.

 “이제 내 차례지?”

 내 안의 그 녀석과 그때 들렸던 목소리가 겹쳐들렸다.

 기억이 났다. 그때 쓰러지던 순간 들었던 목소리는 분명 이 녀석의 목소리였다. 방금 전 내 이마에 손을 올리고 지금 내게 이 환영을 보여주고 있는 이 녀석.

 순간 내 몸을 감싸는 검은 연기들이 나타났다. 용의 눈빛은 승리감에서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곧 이 몸은 완전히 나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목을 부여잡은 용의 손은 검은 연기에 닿더니 점점 침식되기 시작했다. 용은 깜짝 놀라며 부여잡은 손아귀를 풀었다. 내 몸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환상이라는 것이 이제야 실감이 나는군.

 어두운 연기가 완전히 주변을 덮을 정도로 피어올랐다. 어라? 내 몸은 어느새 공중에 부유해 있었다. 용은 도대체 이것이 무슨일이냐는 표정으로 공중에 떠오른 내 몸을 응시하고 있었다.

 연기는 곧 잦아들었다. 그리고 내 몸도 다시 바닥에 곧바로 고정되었다. 두 발을 내딛고, 나는 다시 곧바로 서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흐음, 숨을 쉰다는게 이런 느낌이군.”

 내 몸이 말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입에서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고 해야겠지. 나는 분명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아참, 이거 환상이었지.

 “생각지도 못한 기회였네. 고맙다, 내 앞의 여인. 당신의 이름은?”

 용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 않은건지, 못 한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씰룩거리는 입을 보니 아마도 쉽사리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 듯한 모양이었다.

 “여기 이거 다 당신 작품이지? 안에서 전부 지켜보고 있었는데, 꽤나 인상적이었어. 세 명을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고 압도하다니. 놀라워.”

 상당히 이상한 기분인걸, 나는 가만히 있는데 계속해서 말을 하고 있는 느낌은 참 뭐랄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다.

 “그래서, 날 어떻게 할 생각이야?”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던 용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넌…… 누구냐?”

 용의 음성에는 불안감이 실려 있었다.

 “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나도 잘 모르겠군. 하지만 질문은 내가 먼저 한 거 같은데?”

 용은 내 말을 무시한 채 다시 한 번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너가 너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다니?”

 그러자 나는 대답했다.

 “그 질문에 담긴 의도를 잘 모르겠군.”

 용은 이제 당황하며 물었다.

 “무슨 말이냐? 네가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담긴 의도가 무엇이냐니?”

 “말 그대로야. 보이는 그대로라면 나는 에르세데스 이안이다. 아니, 에라니스 이안인가. 뭐 그건 상관없고. 하지만 지금 말을 하고 있는 나는 이안이 아니지. 아니, 이안인가? 이안일수도 있지. 하지만 난 이안 그 자체는 아니야. 이안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이안은 아니다. 나는 나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하겠군. 그래, 나는 나다. 이 정도면 충분한 대답이 되겠지?”

 용은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전혀 이해가 되지를 않는군.”

 “뭐, 어쩔수가 없지.”

 나는 팔을 들어올렸다. 용은 움찔거렸다.

 “자, 그럼 덤벼봐.”

 내 입에서 정말 믿을 수 없는 도발의 말이 튀어나왔다. 용은 맥락없는 상대방의 대화에 연신 입을 떡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뭐라고?”

 “내가 바깥구경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아직까지 이 몸은 내 거가 아니니까. 그 동안 이렇게 멀뚱하게 서 있을 수 만은 없잖아? 아까 보니 너 실력 좀 괜찮은 거 같던데, 한 번 덤벼보라고.”

 “내가 왜 너와 싸워야 하는 거지?”

 용이 물었다. 용은 주먹을 꽉 쥔 채 매서운 붉은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분노에 차있었지만, 절제하고 있었다.

 “왜냐면 내가 다시 사라지면 넌 이 몸을 해할거잖아?”

 용은 말문이 턱 막힌 것 처럼 입을 꾹 다문 채 주먹에 힘을 싣고 있었다. 긴장이 점차 고조되기 시작했다. 방금 내가 한 말이(사실 내가 한 말은 아니지만) 맞았으니까. 용은 나와 적이었고, 이 녀석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편인 것 같고. 그렇게 되면 용이랑 이 녀석이랑도 적이 되는 거지. 그렇다면.

 “싸울 수 밖에 없겠군.”

 용은 그 말과 동시에 양손에 거대한 불길을 일으켰다. 불길은 나를 향해 매서운 살기를 뿜어냈다. 하지만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하고 있는 거야? 저기 죽음이 다가오고 있잖아! 피하기라도 하라고!

 불길을 가득 품은 용의 견고한 주먹이 내 코앞까지 도달했다.

 턱.

 이럴수가! 나는 가벼운 손짓으로 용의 주먹을 잡아냈다. 분명 용광로에서 끓어오르는 용암만큼 뜨거운 불길이었는데, 내 손은 어째 생채기도 나지 않은 채로 태연히 용의 손아귀를 붙잡고 있었다.

 “뜨끈하네.”

 용의 당황한 눈빛은 꽤나 우스웠다. 그건그렇고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야? 불타오르는 주먹을 맨손으로 잡고도 이렇게 여유로운 말투라니.

 곧이어 내 손끝으로 부터 검은 연기가 마치 꽃이 만개하듯이 피어났다. 검은 연기는 길다랗게 늘어져 회오리바람이 몸을 휘감듯이 용의 팔을 휘감았다.

 연기는 그토록 견고하던 용의 피부를 종잇장 찢듯이 조각내었다. 처음으로 용의 피부에서 피가 쏟아져내렸다.

 용은 고통보다 자신의 강철같은 갑옷이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에 더 당황한 듯 했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뒤로 내빼기 위해 날개를 움직였다. 그러나 왜일까, 그녀는 그저 허공에 의미없는 날갯짓만 이어갈뿐이었다. 움직임은 커녕 그저 제자리 걸음이었다. 마치 무중력에 몸을 맡긴듯한 모습이랄까.

 나는 말없이 미소지었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군. 나는 분명 무표정으로 있는데, 내 몸이 미소를 짓는 이 느낌. 마치 얼굴이 두 개가 된 듯한 느낌이다.

 용을 붙잡아 둔 것은 다름아닌 나였다. 나는 오른손으로는 주먹을 잡은 채로, 왼손으로는 둥그렇게 손을 쥐고 있었다.

 용은 그렇게 공중으로 부유했다. 점점 높이 올라가면서 용은 알 수 없는 힘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러나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저 허공에서 젓는 팔다리의 자유로운 춤사위일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네놈……!”

 용이 증오를 담은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미동도없이 기분나쁜 웃음을 지어보였다.

 “실망이네.”

 나는 둥그렇게 쥔 왼쪽 손을 완전히 쥐어보였다.

 그러자 용은 마치 관절이 꺾인 것처럼 이리저리 몸을 흔들어대며 고통의 울부짖음을 질러댔다.

 “빠져나오라고, 아니면 그대로 죽는 거……”

 그리고 잠시 나는 말을 멈췄다. 주변에 불씨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리고 그 잠깐의 순간이 지나고, 주변은 한 번 더 대단한 불길에 휩싸였다.

 퍼어엉!

 이번에 일어난 폭발은 그 어느때보다 강력한 폭발이었다. 주변에 쓰러진 동료들에게까지 그 불길이 닿을락말락 할 정도로.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나는 멀쩡했다. 멀쩡하다 못해 밝게 점멸한 불씨들의 사나운 횡포속에서 나는 태연히 그 불의 바람결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의 표정은 아주 상쾌했다, 용에게 미안할 정도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 손짓 한 번에 불길은 마치 바다가 갈라져 길다란 바닷길이 펼쳐지듯이 양 옆으로 늘어섰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그 어느때보다 사나운 형태를 지니고 있는 용의 모습이 나타났다. 용은 아직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꽤나 용에 가까워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 머리에는 뿔이 돋아있었다 또. 눈은 붉은 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날개뼈 부근에서 솟아난 날개는 정말 거대해져 시야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였다. 손과 발에는 거대한 발톱이 돋아났고 피부는 어느새 작은 비늘들에 덮여있었다.

 용은 입을 벌렸다. 그리고 곧 대단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용의 브레스가 눈 깜짝할 새에 나에게 도달했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길은 그저 방금과 같이 평범하게 불어오는 바람마냥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바닥이 불타 끓어오르고 뜨거운 열기에 주변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지만 나는 옷깃조차도 타지 않았다. 숨 쉬는데에도 지장이 없었다. 눈동자는 변함없이 앞을 응시하고 있었고 입은 여전히 기분나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나는 전진했다. 용은 필사적으로 브레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다만 불길은 어째서인지 나를 넘어서지 못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것마냥 허공에서 그저 헛발길질을 하고만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였다. 아니, 나라고 할 수는 없지. 그 녀석이었다. 그 녀석, 그러니까 내 몸을 기준으로 아주 옅지만 넓게 퍼진 검은 연기들이 불길을 전부 차단하고 있었다. 붉은 화염에 담긴 악의, 살의, 분노, 그리고 그 초열조차도 전부 무용지물이었다. 도대체 이 녀석은 뭐지? 뭐길래 용을 이렇게 쉽게 압도하고 있는거야?

 나는 어느새 용의 코앞에 도달해있었다. 나는 오른손을 치켜들어 용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불길도 입이 막혀버림에 따라 멈추어 버렸다. 용의 분노에 가득 찬, 아니 이제는 두려움에 가득 찬 붉은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내 손에 막힌 입 안 목구멍 깊은 곳에서 용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크아아아아악!”

 나는 용의 이마를 향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강력한 진동, 그리고 이어서 반동. 용은 폭탄에 맞은 것 마냥 뒤로 날아갔다. 휩쓸고 지나간 나무바닥은 그대로 박살났다. 용은 힘겹게 손을 뻗었다. 앞으로 엎어져버린 채 부들거리는 용의 모습은 통쾌하다 못해 안쓰러울 정도로 무력했다.

 “끄으윽……”

 용의 피와 가래가 섞인 듯한 울음소리.

 “생각보다 별 건 없군.”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허세에 가득찬 말이지만 지금이라면 이해가 된다. 용을 장난감 취급하듯이 상대하는 이 녀석이라면 인정할 수 밖에 없겠지.

 나는 허공의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쥔 듯한 손모양을 한 채로 팔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그에따라 용의 몸도 공중으로 떠올랐다. 힘이 잔뜩 빠져 버린 채 떠오르는 용의 몸은 흡사 걸레짝같아 보였다. 동정같은 건 느끼지 않을란다. 저 녀석은 레이널을 죽인 살인자니까.

 “더 보여줄 게 남았나?”

 내가 물었다. 용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실제로 보여줄 게 남았다고 해도 말 할 힘조차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으니.

 “대답이 없군.”

 나는 유려한 동작으로 손을 휘둘렀다.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들은 마치 얇은 머리카락 마냥 나뉘어져 허공을 이리저리 누볐다. 너무 가늘어서 눈에도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지만, 나는 수백만 가닥에 일일이 담긴 지독한 살의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손끝을 움직였다. 내가 직접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내가 그것들을 조종하는 것만 같은 이 해괴한 느낌은…… 평온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는 방관자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바라보며 몸서리쳤다. 보는 것 만으로도 소름을 돋게 하는 힘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느껴지는 뭔지모를 익숙함, 지금 선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었다.

 다만 그 검은 가닥들은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빠르게 용에게로 날아갔다. 그리고 아무런 소리도 없이 용의 몸을 관통했다.

 피가 안개처럼 뿜어져 나왔다. 강철같이 단단하던 비늘은 온데간데 없고 지금 내 눈에 보여오는 것이라고는 오직 가는 실가락들에 맥없이 침입을 허락한 연약한 피부였다. 그 위대하던 용이 피를 토해냈다. 눈, 코, 귀, 할것 없이 온몸에서 피가 뿜어져나왔다. 용은 신음소리조차도 내뱉지 못했다.

 “끄으……”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녀석’이.

 “강철같은 피부라길래 기대했는데.”

 나는 천천히 둥그렇게 모은 손을 펼쳐나갔다.

 용의 몸을 관통한 수백만개의 실자락들이 서서히 퍼져가기 시작했다. 용은 다시 한 번 고통에 몸부림쳤다. 하지만 그럴 수록 나아지는 것은 없다. 이미 상황은 끝난지 오래였다.

 “네놈은 도대체 무엇이냐! 뭐길래 그분과 비슷한 힘을……!”

 손가락이 멈췄다. 그때의 나, 그러니까 그 녀석이 멈칫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뭐지, 무슨 말이 이 녀석을 멈춰세운걸까. 나는 상황에 집중했다.

 “그분?”

 내 입에서 간결한 물음이 튀어나왔다. 용은 고통속에 신음하면서도 계속해서 소리질렀다. 마지막 발악이었다. 하지만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컸다. 이걸 잘 들으면 이 녀석이 무슨 녀석인지에 대해서도 단서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나는 귀를 기울였다. 젠장, 다죽어가는 도마뱀 녀석, 좀 선명하게 좀 말하라고!

 “느에에에 노오옴! 끄으……. 어떻게 그분과 같은 힘을……. 어어떠엏게에에!”

 으악! 계속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똑바로 말해라. 말할 기회를 줄테니.”

 나는 다시 한 번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용은 그대로 바닥으로 철부덕 떨어졌고, 그의 몸을 관통했던 검은 실자락들은 형태를 바꾸어 새어나오는 피의 물살을 잠시 막아줬다. 하지만 고통만큼은 그대로였는지, 용은 바닥에서 뒹굴며 계속해 신음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묻는다, ‘그분’이 누구지?”

 그 녀석은 이전과 같은 장난스런 말투는 전부 버린 채 물기없이 건조한 말투로 용을 향해 물었다.

 “끄으으…… 네놈의 그 검은 힘, 그 힘말이다.”

 용은 갑자기 실없이 웃기 시작했다.

 “크크크……. 상상도 못했군 이런 곳에서 죽게 될 줄은.”

 갑자기 딴 소리야. 죽게 되니까 감상적이라도 된 건가? 다른 사람들을 죽일 때도 그런 생각은 커녕 즐거운 맘으로 임한 주제에. 악독하군. 너 같은 놈은 죽어도 싸다. 더군다나 레이널을 그렇게 죽여 놓았으니…… 하지만 ‘그분’이 누구인지는 말하고 죽으란 말야.

 “대답할 생각이 없는건가?”

 내가 싸늘하게 물었다. 나도차도 흠칫 놀랄만큼 냉소적인 말투. 용은 잠시 그 기세에 눌린듯이 입을 다물고 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열었다.

 “그럼…… 하아, 네놈은 죽으면서까지 적에게 도움을 주고 싶겠는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렇다면 내가 알아보면 되겠지.”

 나는 성큼성큼 발을 내딛었다. 가볍고 아무런 무게도 없지만 왠지 모르게 보는이로 하여금 움츠러들게 하는 걸음걸이. 나는 피떡이 된 용의 앞으로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그러고는 손을 뻗었다. 용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간신히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감사인사는 미리하지.”

 내 손이 그녀의 이마에 닿았다. 용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느껴지는 영혼이 녹아내리는 느낌. 회오리치듯이 눈앞의 풍경이 허공의 한 점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나는 온몸이 빙빙 도는 듯한 느낌에 눈을 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괴음. 귀까지 욱씬거려오네.

 하지만 나는 그 다음 장면을 보지 못했다. 필름이 끊기듯 풍경은 칼로 자르듯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으니까. 나는 다시 그 검은 평면의 공간으로 돌아와 있었다.

 “뭐야……?”

 나는 주저앉아 중얼거렸다. 머리가 조금 아파왔다. 뭐랄까, 어두운 공간에 있다가 갑자기 밝은 곳으로 이동한 듯한 느낌이랄까. 물론 이곳에는 전혀 빛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 몸을 볼 수 있는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정도면 대답이 되었겠지?”

 뒤편에서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은 뭐야?”

 그러자 그는 아주 미심쩍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뭘 말하는 거야?”

 “너도 알잖아.”

 나는 그에 답변으로 똑같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제 좀 능구렁이 같아졌군.”

 그는 콧방귀를 뀌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끊었어. 아직 네가 그 사실을 알 준비가 되지 않았거든.”

 “무슨 사실이길래?”

 “그건 아직 알려줄 수 없어.”

 “너는 나라며? 그런데 너는 알고 나는 알 수 없다고?”

 “아직은 아니야.”

 “뭐가 아직은 아니라는건데?”

 “그러게.”

 녀석은 기분나쁜 미소를 지어보였다. 우스운 것은 내 기분이 오묘해졌다는 것이다. 뭐랄까, 무시당하는 거지같은 기분과 녀석의 남을 깔보는 기분이 동시에 느껴졌다고 해야할까.

 “장난하지 마.”

 “뭐를?”

 “방금 그 말.”

 “응?”

 “용이 마지막에 남긴 말.”

 “아아, 그 말?”

 그 녀석이 한 번 더 그 기분나쁜 미소를 보여왔다.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너가 알면 나도 알 필요가 있는거 아냐?”

 “왜 그렇게 생각하지?”

 녀석의 물음에 나는 잠시 멈칫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그거야 당연히.

 “너가 나는 너라고 했잖아? 더 설명할 필요가 있나?”

 “그렇지, 너는 나고 나는 너지.”

 “그런데 왜 안 알려주는건데?”

 “아직 내가 결정을 내리지 않았으니까.”

 “뭘?”

 그러나 대화는 거기서 끊길 수 밖에 없었다. 순간 세상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마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 어지러움이 증폭되지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서 알 수 없는 말의 음성들이 귀를 맴돌기 시작했다.

 “다음에 보자고.”

 곧이어 선명해지는 메아리들.

 “이…….세요! ……어…… 이안!”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일어나세요, 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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