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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에디온
작가 : 염적
작품등록일 : 2017.11.7

과거 중간계를 휩쓸었던 원인모를 악마들의 습격이 일단락 된지도 어느새 20년, 전쟁을 종식시키는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세 명의 인간영웅 에디온 중 가장 강력한 자인 에르세데스 메데스의 아들인 에르세데스 이안은 평화속에서 평범한 삶을 살며 20살의 성인으로 거듭난다. 처음으로 맞는 방학에 떠난 첫번째 여행. 하지만 여행도중 대륙 곳곳에서 이상현상들이 발견되고, 이안과 일행의 앞에 다시 한 번 악마들의 위협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 2장 : 전조 (8)
작성일 : 17-12-15 19:38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1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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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이 울부짖었다.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함선 위에서도 그것은 악착같이 배에 달라붙어 살기를 가득 품은 불덩이를 연신 그 깊은 심연과도 같은 목구명 속에서 뿜어내고 있었다. 덕분에 배의 아래쪽까지 온도가 가득 올라가 부유석의 밀도가 낮아지면서 함선은 계속해서 위를 향해 솟아오르는 힘과 함장의 고도를 유지하려는 노력 사이에 오도가도 못한 채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덕분에 조나단은 중심을 유지하랴, 선채가 완전히 불에 타버리지 않도록 정신을 집중하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느라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벽 넘어에서 심안을 통해 보여오는 용의 짙은 살기는 그에게 편안한 호흡조차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계속해서 주위를 이리저리 이동하며 날아다니던 용은 이제 배의 뒤편을 집중공략하고 있었다. 용의 화염은 대단히 위력적이었다. 기도를 통해 선채를 강화시켜 최대한 열기를 견딜 수 있도록 조나단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곧 역부족이 될 것이었다. 배의 자재가 목재가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목재였다면 이미 전부 무너져내린지 오래였을것이다. 물론 전혀 위로가 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기도의 힘이 다해가기 시작했다. 용은 한 번 더 울부짖었다. 너무 많은 신력을 소모했다. 조나단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욱 거센 울부짖음이었다. 조나단은 고개를 들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그의 보호의 주문도 시간이 갈 수록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용의 화염은 멈출줄을 몰랐고, 그는 점점 체력을 소모해가고 있었다. 소모전으로 보자면 볼것도 없이 자신이 나가 떨어지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 순간, 수많은 생각에 머리가 아파오는 조나단의 무언가 새로운 것이 보여왔다. 심안을 통해 보여오는 검은 배경의 중심에 위치한 용의 화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이외에 새로운 무언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아주 밀도 높은 고도의 에너지들이 한 군데에 모여 둥그런 형태를 생성해내고 있었다. 여태까지 뿜어져 나오던 단순한 불길과는 다르게, 그것은 그 자체로 위협적이었다. 조나단은 그 힘의 덩어리에서 느껴져오는 살의를 느낄 수 있었다. 용은 그 화염덩어리를 던져 배에 구멍을 뚫어 놓을 작정이었다.

 조나단은 판단을 내렸다. 저것을 막아야만 했다. 지금 보내고 있는 정도의 신력으로는 저것은 커녕 계속되는 불길조차도 제대로 막아낼 수 없었다. 그는 기도를 멈췄다. 그러자 함선을 보호하던 황금빛의 빛도 그에 따라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강력한 불에도 꽤나 잘 버티던 함선의 벽면은 빠르게 녹기 시작했다.

 “Godish lem ato sepia!”

 그가 다시 한 번 크게 주문을 크게 외쳤다. 그러자 다시 한 번 그를 주위를 강렬한 황금빛 빛이 점멸했다. 뿜어져 나온 빛은 순식간에 앞의 벽으로 응집해 아주 거대한 마법진을 생성해내었다.

 조나단의 주문이 끝나기 무섭게 용의 입 속에서 거대한 구의 형체를 한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구체는 굉장한 속도로 함선을 향해 날아왔다.(용의 입과 선채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에 날아 왔다기 보다는 떨어졌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듯 하다.) 불덩어리는 배 안에까지 그 충돌음이 크게 전해져올 정도로 강하게 폭발했다.

 충돌과 동시에 벽을 지탱하고 있던 마법진은 충돌과 함께 수천개의 조각으로 나뉘어졌다. 유리창이 박살 나듯 깨어진 진의 조각들은 불씨가 허공에서 천천히 사라지듯이 모습을 감추었다.

 조나단은 다시 급히 보호 기도를 시작하기 위해 두 팔을 바닥에 닿은 채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야 앞에는 더 이상 화염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의 파동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불타는 심장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괴수의 형태만이 어렴풋이 보여올뿐.

 조나단은 기도를 멈췄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숨이 조금은 가빠왔다. 위협은 잦아들었지만, 남은 것은 참기 힘든 극강의 긴장감이었다. 그리고 곧 그 긴장감은 위기감으로 바뀌었다.

 사방에서 새로운 불덩어리들이 허공으로부터 피어올랐다. 어찌나 많고 넓게 분포해 있는지, 시야에 한 번에 담기에는 역부족일 정도로 많은 것들이 자신을 기점으로 양쪽에 넓게 떠올라 있었다. 용이 누군가가 자신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것이었다.

 보호의 주문을 걸기에는 공격이 향하고 있는 곳의 범주가 너무 방대했다. 짧은 시간만에 족히 공원만한 이 공간을 전부 방어할 수는 없었다. 조나단이 새로운 해결책을 강구할 시간조차도 주지 않은 채 그 화염들은 사방에서 쏟아져 내렸다. 보호의 주문 아래 불의 세례 아래에서도 멀쩡하던 벽은 수없이 많은 화염의 창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조나단은 손을 모았다. 지금은 힘을 아껴둘 때가 아니었다. 분명 곧 있으면 밀레가 이곳을 찾아낼 것이었다. 그라면 분명 눈앞의 용을 어떻게 할 수 있을 터였다. 우선은 그 전까지 이곳을 막아내어야 했다. 조나단은 아껴두었던 방법을 꺼내들기로 마음 먹었다.

 “Sag qurato cardo!”

 그가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방금 전과는 다르게 그가 내딛은 발바닥에서부터 황금빛의 줄기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빛줄기들이 바닥을 타고 벽면에 닿고, 거기에서부터 도통 읽을 수 없을 것 같은 괴상한 문자들이 아래에서 위로 써내려가지기 시작했다. 조나단의 이마에 박힌 문양은 그 어느때보다 밝게 빛났다. 그의 이마에서는 땀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팔은 떨리기 시작했다. 조나단은 상당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만큼 그의 주위는 견고해져갔다.

 그때 조나단은 흠칫놀랄 수 밖에는 없었다. 분산되어 나누어졌던 용의 마력이 다시 한 번 한 곳으로 집중되어 모여들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조나단은 다시 주문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집중했다. 하지만 이미 사방으로 퍼뜨린 힘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러나 용은 순식간에 힘을 거두어들였다. 힘을 운용하는 방식에서는 용이 적어도 몇 수는 위였다.

 다시 한 번 방금 전 보다 더 거대한 힘덩어리가 조나단의 눈앞에 나타났다.

 용은 단 한순간의 틈조차도 주지 않았다. 불덩어리는 선채에 충돌했다. 용의 습격직후 가장 강한 진동이 선채를 뒤덮었다. 그 와중에서도 균형을 유지하며 서있던 조나단은 거의 튕겨지다시피 뒤편으로 날아갔다. 두꺼운 벽이 산산조각나는 소리가 들렸다. 중앙부분의 보호주문이 벗겨지고, 그 틈새로 상공의 매서운 공기가 새어 들어왔다. 아니, 파고들어왔다. 배안의 것들을 휩쓰는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쓰러진 조나단의 머리칼이 앞을 향해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렸다. 조나단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간신히 눈을 떠 앞을 바라보았다.

 구멍난 선채를 거대한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었다. 그림자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았지만 거대한 비늘에 둘러싸인 그것은 그 자체로 위협적이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조나단은 그 형체대신 압도적인 힘과 살의를 느꼈다. 용이었다. 그것도 자신에게 적의를 품은.

 조나단은 몸을 일으켰다. 모든 것을 빨아들일것 같이 불어오는 바람과 흔들리는 선채, 그리고 웅장하게 서 있는 용의 풍채를 바라보며.

 “누가 나를 방해하나 했더니.”

 용이 자세를 바꾸었다. 틈새를 가득 매운 거대한 용의 비늘이 치워지자 곧 그 자리를 거대한 뿔을 단 도마뱀의 얼굴이 대신했다. 용의 눈은 매서웠다. 어둠 속에서 붉게 빛나는 그 두 빛덩어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조나단을 응시하고 있었다. 조나단은 밀려오는 살기에 한 층 더 숨을 쉬기 어려웠다.

 “성직자 나부랭이가 하나가 숨어있었군.”

 용은 부서진 구멍 사이로 머리를 밀어넣었다. 곧 완전한 형태의 두상이 조나단의 눈에 들어왔다. 뒤로 솟은 거대한 두 뿔. 그리고 입 안 사이사이 보여오는 칼날보다 날카로운 이빨. 다시 한 번 그 거대한 주둥아리가 열렸다.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필멸자여. 네게 기회를 주마.”

 용의 목소리가 조나단의 목 아래 부근의 배까지 도달하며 온 몸을 진동시켰다. 조나단은 여전히 두건을 두른 채로 그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한 인간을 찾고 있다.”

 용은 다시 한 번 그 거대한 입을 열며 말을 이었다.

 “방금 네 옆에 그 인간이 있는 것을 보았다.”

 방금 전 그 인간이라면……

 이안. 저 용은 지금 이안을 찾고 있었다. 어째서?

 조나단은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입을 다문 채 정신을 집중했다. 어째서일까. 왜 용이 인간따위를 찾아 이 소동을 피우는 거지? 이안. 이제 갓 성인이 된 청년. 지금 함께 발라테라스로 여행을 가는……. 밀레의 아들. 그리고…….

 ‘에디온.’

 조나단은 고개를 쳐들었다. 에디온. 오직 그 뿐이다. 저 용이 이안을 찾는 이유는 오직 그가 에디온, 메데스의 하나뿐인 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대체 왜?

 “그 인간을 내놓는다면 더 이상 아무런 일도 벌이지 않고 이곳을 떠나주마.”

 “이유를 물어도 괜찮을까.”

 조나단이 용에게 물었다. 그러자 용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록 짐승의 얼굴이었지만 조나단은 어려움없이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성직자가 처음보는 상대에게 하대를 하다니. 흥미롭구나.”

 용의 말은 정돈 되어 있었지만 적정한 분노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조나단은 주눅들지 않은채로 물음을 이었다.

 “이유를 물었다. 용이여.”

 “앞도 보지 못하는 모자란 필멸자 따위가!”

 거대한 음성이 머리를 울렸다. 조나단은 두 손으로 양 귀를 막았다. 고막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굉음이었다. 한 생명체에게서 저 정도의 소리가 나올 수 있다니.

 그때 용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얼음이 녹아 작은 석상으로 변하듯이, 또 거대한 지점토가 작은 조각상들로 변하듯이. 용은 보고 있음에도 쉽사리 파악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이며 점차 작아져갔다. 어느새 용은 작은 여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방금 전의 그 거대한 형태를 보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저 여인을 보며 용이라는 거대한 생물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그것은 인간과 똑같았다. 심지어 방금 전 웅장하게 울리던 목소리조차 가녀린 여성의 목소리로 바뀌어있었다.

 “이마에 박힌 가증스러운 문양을 보아하니 선택받은 자들 중 하나인 모양이군. 그렇다고 해서 네 그 대단한 신이 지금 너를 지켜줄 것 같은가?”

 조나단이 꿈틀했다. 여성의 모습으로 형태를 바꾼 용은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로 서슴치 않고 신성모독을 이어갔다.

 “나약한 인간이니 보이지 않는 것에 기대는 것이겠지. 미개하기 짝이없구나.”

 “너는 어떠한가.”

 조용히 그의 모욕적인 언사를 듣고만 있던 조나단이 말했다.

 “뭐라고?”

 “너는 어떠하냐고 물었다, 용이여.”

 용이 되물었다.

 “무엇이 어떠하다는 것이냐?”

 그러자 조나단은 대답했다.

 “네놈의 본성을 묻는 것이다. 인간을 모독하고 신을 모독하며 본인을 과시하고 있는 거대한 짐승의 모습을 한 존재의 고귀함에 대해 묻는 것이다. 네놈의 어떤 것이 우리에 비해 더 우월하고 심지어는 누군가의 믿음조차 짓밟을 정도로 뛰어나단 말이냐?”

 용이 대꾸했다. 어투에는 옅지만 분노가 실려 있었다.

 “몰라서 묻는 것이냐, 아니면 비꼬는 것이냐. 고작 100여년 밖에 살지 못하는 연약한 살갗을 지닌 짐승이여. 네놈이 지금 내게 나의 우월함의 근거를 묻는 것이냐?”

 “생의 길이로 우월함을 판단하느냐? 그렇다면 나는 네가 말하는 그 열등과 우월을 곱씹어 볼 필요도 없겠구나. 고작 육체의 강인함으로 네 고귀함을 증명하느냐? 그렇다면 네놈은 그 무엇보다 가진 것이 없는 존재다.”

 용이 으르렁거렸다.

 “입을 조심해라. 네놈을 불태워버리기 전에.”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나단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쉽게 죽일 순 없을거다.”

 조나단은 눈을 가린 두건을 풀렀다. 조나단의 두건의 매듭이 풀리면서 매듭은 어깨를 타고 내려가 몸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두건이 떨어지며 가려져 있던 그의 두 눈이 드러났다. 마치 황금빛으로 물든 구슬과도 같은 눈동자였다. 그는 그 강인한 눈으로 용의 위협적인 두 붉은 눈을 마주했다.

 “이안을 찾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면 네 제안은 고민할 가치조차 없다.”

 “나는 제안을 건낸 적이 없다, 건방진 성직자여.”

 열기가 공기를 채웠다. 순식간이었다. 주변의 공기에 마치 보이지 않는 불이 붙은 것만 같았다.

 “명령이다.”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수십개의 화염구들이 나타났다. 그것들은 일제히 어딘가를 향해 날아갔다. 조나단이었다. 하지만 조나단은 갑작스레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불덩어리들을 바라보면서도 냉정함을 유지했다.

 “Spod electra arlcratera!”

 그 주문은 조나단의 양 다리에 대단한 근력을 부여했다. 조나단은 그 짧은 순간에 한 가지의 주문을 더 외쳤다.

 “Muta Bod!”

 그러자 황금빛이 마치 무지개가 호수를 감싸듯이 조나단의 몸을 감쌌다. 그 짧은 순간 그의 몸은 순식간에 황금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염구와의 거리가 채 한 걸음이 되지 않는 순간, 조나단은 몸을 날렸다.

 화염구는 놀랍게도 그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조나단은 굉장한 속도로 날아오는 불의 세례들을 피해내었다. 강화된 다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속도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속도였다.

 다만 용에게 그것은 충분히 간파할만한 속도였다. 눈앞에 서있던 용은 어느새 조나단의 뒤편에 따라붙어있었다. 그는 전광석화같은 움직임으로 조나단의 뒤로 와 빠르게 주먹을 내질렀다. 주문을 외우기에는 너무 짧은 순간이었기에, 몸을 돌려 양팔로 공격을 막는 것이 최선의 방어였다.

 양팔을 타격하는 느낌이 강렬하게 피부를 타고 조나단의 뼈 속까지 전해져왔다. 강화한 육체로도 용의 주먹을 받아내는 것은 버거웠다.

 조나단은 꽤나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용이 계속해서 그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인간의 형태를 했음에도 그 거대한 형태가 잔상으로 남을 정도의 살기를 내뿜으며 공격을 계속했다. 조나단은 이번에는 공격을 받아내지 않았다. 다리에 조금의 힘을 더 보내 속도를 높였다.

 거의 날아오르듯이 튀어오른 조나단은 용의 뒤를 잡는데 성공했다.

 그는 양 손에 신력을 집중시켰다. 그것이 커다란 창의 형태로 변하는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무방비 상태의 용의 등을 향해 창을 집어던졌다.

 그러나 그것이 적중한 것은 용의 몸이 아닌 그가 소환한 또다른 불 덩어리였다. 그는 뒤조차 돌아보지 않은 채 정확히 조나단이 던진 창의 궤도에 커다란 불덩어리를 소환했다. 덕분에 창은 용의 비늘에 닿지 못한 채 공중에서 폭발하며 흩어졌다. 그리고 용은 금새 다시 뒤를 돌았다.

 용은 가볍게 바닥에 발을 딛고는 선채가 뒤흔들릴 정도로 강한 힘으로 바닥을 밀어찼다. 바닥은 산산조각났고 그는 거의 천장을 뚫을 기세로 조나단을 향해 날아왔다. 그 모든 것이, 고작 눈 한 번 깜짝할 새에 일어났다. 조나단은 피할 수 없었다.

 그는 몸을 강화한 신력을 오른쪽 팔에 집중시켰다. 하늘을 튀어오르며 내지른 용의 주먹과 신력이 집중된 조나단의 주먹이 공중에서 충돌했다. 공기가 대단한 파동을 이루며 그 충돌을 기점으로 뻗어나가고 둘 사이에 대단한 반작용이 적용되었다. 조나단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으며, 용은 그에 반해 부드럽게 착지했다.

 조나단은 착지하며 부딪힌 머리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는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앞을 바라보았다. 빙빙 도는 세상속에서 한 여자는 자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빠른 건가? 조나단은 시야가 마치 필름이 전환 되듯이 부자연스럽게 끊겨 보였다. 금새 그의 주먹은 조나단의 얼굴로 다가왔다. 조나단은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용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그의 팔을 잡은 손바닥은 힘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쓸려갔다. 주먹은 그대로 조나단의 얼굴에 꽂혔다.

 조나단은 맥없이 날아갔다. 둔기로 내리치는듯한 느낌이 광대뼈 속까지 훑고 지나갔다.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그는 벽을 부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조나단의 시야에는 붉은 빛이 가득찼다. 호흡이 힘들어졌다. 조나단은 손을 들어 왼쪽 뺨을 훑었다. 만져져야 할 것이 만져지지 않았다. 코의 절반이 무너진 것 처럼 심하게 누그러져있었다. 치덕거리는 액체가 왼쪽 뺨을 만지는 오른쪽 손바닥에 가득 묻어나왔다. 진한 붉은 색의 액체는 살구색의 손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놀랍게도 통증은 그렇게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조금 어지러울 뿐이었다.

 용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 번 바닥을 산산조각 내며 방금 전보다 더 빠른 기세로 조나단을 향해 뛰어올랐다. 조나단은 손을 들어 주문을 외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손은 그대로 피에 잔뜩 절어버린 볼에 붙어버린듯이 머무르고 있을 뿐이었다. 용은 그 긴 거리를 순식간에 극복했다.

 강철도 뚫어버릴 만한 화염을 실은 주먹이 공기를 내질렀다. 바람이 조나단의 얼굴을 휩쓸었다. 조나단은 눈조차 감지 못한 채 그 주먹을 맞이할 수 밖에는 없었다. 조나단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들려왔다. 쾅!

 조나단의 눈에 보여온 것은 불타오른 자신의 머리가 아닌 저편으로 날아가버린 여자, 아니 용. 그리고 그 자리에 대신 보여온 것은 건장한 한 남자. 민머리의 흑인 남자라. 조나단은 무언가 익숙한 듯한 느낌을 느꼈다. 그가 용을 저 멀리 날려버린 것이었다. 대단하군. 조나단은 생각했다. 그의 몸은 흰색의 빛으로 은은히 빛나고 있었다. 그는 몸을 돌려서는 조나단에게 무언가를 계속해서 소리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귀가 잠시 멀어버렸는지 조나단은 아무런 말도 들을 수 없었다. 그저 웅웅거리는 소리만 들려올 뿐.

 짝!

 후려맞은 뺨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따끔거림은 조나단으로 하여금 정신을 들게 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조나단! 치유하게!”

 정신없이 소리치던 밀레의 오른편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건방진 놈!”

 용의 울부짖음이었다. 계속해서 조나단을 바라보며 고함을 지르던 밀레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검을 바닥에 꽂아넣더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방금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은은한 흰색빛이 다시 한 번 그의 주변에서 피어오르더니 그와 조나단의 앞에 거대한 방패를 하나 생성해내었다.

 치솟은 불길은 용솟음치더니 곧 맹렬히 내려쳤다. 빛의 방패와 불의 창들이 부딪히고 연거푸 일어나는 힘의 충돌에 공기는 사납게 진동하며 굉음을 뿜어냈다.

 “조나단! 혼자서는 힘듭니다. 어서 상처를 치료……”

 조나단은 밀레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행동으로 답했다.

 “Ishutarilize!”

 눈이 부시는 빛이 발했다. 밀레의 빛과는 다른 황금빛의 빛이었다. 흡사 그것은 불꽃의 일렁임과 겹쳐보이는 듯했다. 조나단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이 전부 빛나는 황금빛으로 뒤덮였다. 마치 그가 빛 그 자체가 되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얼굴의 상처는 이미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후였다.

 “그 모습은……”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조나단의 목소리는 거대한 동굴에서 울리는 메아리와 같이 울렸다.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뭔지 알고 있으니까. 다만 대사제도 아닌 당신이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좀 놀랍군요.”

 잡담이 그치자 곧 안개가 걷히고 거대한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절규하는 여성과 짐승의 음성이 서로 반쯤 섞인 듯한 소리였다. 고막을 산산조각 내 버릴 듯한 사나운 울음소리에 밀레와 조나단의 시선은 곧바로 소리가 들려온 정면으로 고정되었다.

 불길이 양 옆으로 치솟았다. 거대한 날개가 보여오고 작게나마 머리 위에 솟아오른 두 개의 뿔이 시야에 나타났다.

 “역겨운 천사의 힘이로군.”

 용의 목소리였다. 묻어 나오다 못해 철철 흘러넘치는 분노가 온 몸의 피부를 곤두세웠다.

 “작전은?”

 “용 앞에서 조용히 속삭여봤자 소용없습니다.”

 조나단의 몸이 점점 더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강행돌파합니다!”

 그가 튀어 올랐다. 놀라울 정도의 점프력이었다. 그가 내딛은 바닥의 장판은 마치 용이 내딛은 것만 같이 산산조각 나 있었다. 그는 순식간에 용에게 다다랐다. 황금빛으로 뒤덮인 몸이 그대로 용의 몸에 충돌했다. 용의 강철보다 단단한 육체와 충돌했음에도 조나단은 멀쩡했다. 그는 용과 몸을 맞대어 싸우고 있었다.

 “접신(接神)의 경지로구나, 대단하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용은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조나단과 공격을 나누었다. 둘 모두 웬만한 공격에는 생채기도 나지 않는 육체를 지니고 있었고, 비슷한 빠르기로 서로에게 일격을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조나단은 용의 속도를 쫓아가는데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물러나시오, 조나단!”

 뒤편에서 밝게 빛나는 숏소드가 뻗어져 나왔다. 숏소드는 간발의 차이로 용의 살갗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와의 간격을 벌리는데에는 성공했다. 용은 빠르게 다가오는 검격을 피하기 위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날 수 밖에는 없었다.

 “그 상태는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습니까?”

 밀레가 물었다. 조나단은 곧바로 대답했다.

 “최대가 20분입니다.”

 “생각보다는 짧군요.”

 조나단은 머리를 쓸어 내렸다. 그는 여전히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상처가 생각보다 심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가증스러운 것들.”

 용의 음성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여성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짐승과 인간의 목소리가 반쯤은 섞인 듯한, 그런 요상한 음성이 들려올 뿐이었다.

 “이름모를 용이여.”

 밀레가 입을 열었다. 용은 말 대신 매서운 눈빛으로 그 부름에 답했다.

 “그만 물러나는 게 어떤가?”

 밀레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용은 물론이거니와 조나단조차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나단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눈동자는 흔들림없이 용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민머리의 이마를 타고 콧잔등위로 땀방울이 흘러내려왔다. 눈주변에 제법 땀이 들어갔음에도 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뭐라고?”

 “이안을 찾고 있다고 했지.”

 밀레의 물음에 용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너 정도되는 용이 인간 하나를 찾고 있을 이유를 찾기란 힘들어. 그렇다는 것은 넌 네가 찾고 있는 것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겠지.”

 용은 대답하지 않았다. 밀레는 말을 이었다.

 “아무리 에디온이라 해도 평범한 용 한 마리가 무슨 일이 있어서 이런 난리를 피면서까지 찾을 이유가 있을까? 물론 아니지. 용들은 철저한 개인주의에 남의 명령이라고는 듣지 않는 족속들이니까.”

 “입을 조심해라.”

 용이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밀레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너는 이 함선을 파괴할 수 없어. 마구 날뛸수도 없지. 왜냐하면 너는 에디온을 산 채로 데려가야만 하니까. 그렇지 않은가?”

 용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없군. 더 이상 묻지는 않으마.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밀레의 검에 빛이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검 손잡이 부근에 달린 반투명한 광석에 빛이 들어왔다. 빛은 그대로 위를 향해 올라가더니 밀레의 등뒤에 집중되었다. 그것은 점차 어떠한 형태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밀레는 입을 열었다.

 “너는 전력을 다할 수 없다는 거다.”

 밀레는 그 말과 동시에 조나단에게 눈빛을 보낸 후 그대로 땅을 박차고 용에게 달려들었다. 쾅하는 폭음과 함께 그가 걷어찬 바닥은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조나단! 강화 후 합류!”

 조나단은 대답대신 주문으로 답했다.

 “Muta bod! Spod electra arlcratera! Exagerrailize!”

 조나단은 연이어 세 개의 주문을 외쳤다. 주문이 끝나자 황금빛의 빛 세 줄기가 일사분란하게 밀레를 감쌌다. 세 빛줄기는 각기 다른 곳에 녹아들었다. 첫 번째것은 밀레의 온몸을 감싸며 그의 육체에 견고함을 더했고, 둘째 것은 밀레의 다리와 팔에 녹아들어가 굉장한 속도를 낼 수 있는 근력을 부여했다. 그리고 마지막 것은 밀레의 검에 부딪치며 안개가 옅어지듯이 사라졌다. 그러자 검에 빛나는 황금빛이 본래 빛나던 백색의 빛에 더해졌다.

 밀레의 검이 그대로 용에게 적중했다. 용은 양팔을 들어 밀레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내었다. 생각보다 무거운 중압감이 용의 양팔을 짓눌렀다. 충분히 막을 거라 생각했는지 용의 표정은 공격을 받은 직후와 그 이전이 상당히 상반되는 모양새를 보여주었다. 용이 내딛은 바닥은 꺼지면서 그가 받아낸 힘의 무게를 시인해주었다. 옅었지만 용의 팔에 상처가 나있었다. 조금이었지만 피가 흘러내렸다.

 용의 표정이 변했다. 그리고 곧이어 기세도 탈바꿈했다.

 그녀는 입을 벌렸다. 그러자 곧 용의 브레스와도 같은 거대한 화염이 그 시커먼 목구멍에서 뿜어져 나왔다. 화염은 빠르게 밀레를 휩쓸고 지나갔다. 족히 높이가 십여미터는 될 법한 장소였음에도 불구하고 불길은 천장에 닿아 나무자재의 천장을 불태웠다.

 밀레는 간신히 검을 들어 불길을 막아냈다. 형태없이 마구 휘어지는 불길이 이리저리 휘어 밀레의 몸통과 다리 부근에 닿았지만 조나단의 주문으로 보호받는 밀레의 육체는 그 가공할만한 열기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다.

 밀레는 몸을 내뺐다. 그러나 용은 쉴 수 없었다. 그녀의 뒤편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맹인 사내 한 명이 또 다른 공격을 가했기 때문이었다. 밝게 빛나는 주먹은 용의 얼굴에 적중했다. 주먹이 그녀의 안면에 그대로 적중함과 동시에 용은 거대한 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힘의 작용 방향대로 튕겨나갔다. 용이 공중에 떠오른 그 순간, 조나단과 밀레는 힘을 응집시켜 공중에 거대한 황금빛 창 한 개와 과 백색빛의 대거 수십개를 생성해내었다.

 양편에서 거대한 황금색 창과 수십개의 빛의 대거들이 용을 향해 날아들었다.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공격은 그대로 용에게 적중할 터였다. 용은 피할 수 없었다. 결코 피할 수 없는 각도였다.

 그러나 곧 밀레와 조나단의 눈앞에 충격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용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움직임을 보여주며 날아든 황금의 창을 피해냈다. 그 회피는 가히 믿을 수 없는 동작이었지만, 날아드는 추가적인 수십개의 대거까지 피해 낼 수는 없었다.

 순간 용의 울부짖음과 동시에 대단한 폭발이 일어났다. 주위를 모조리 집어삼킬 기세의 폭발은 날아드는 수십개의 대거들을 모두 녹여버렸다. 밀레와 조나단은 급하게 검과 팔을 들어 밀려오는 거대한 화염으로부터 몸을 방어했다. 그러나 불길은 그들을 넘어 그들이 디딘 곳의 전부를 태워버릴 기세로 피어올랐다. 밀레와 조나단은 밀려오는 열기에 살갗이 바짝 익어올랐다. 작열하는 불길은 멈추지 않았다.

 용은 그대로 날개를 휘둘렀다. 해안가에서 불어오는 서풍마냥 주위를 휩쓰는 공기의 곡예가 매섭게 사방을 휘저었다. 바람이 뒤편으로 밀려나며 빠르게 날아오는 용이 조나단의 앞에 나타났다. 용은 눈 한 번 깜박이는 순간에 조나단의 코앞에 나타났다. 조나단은 팔을 들었다. 용의 주먹이 그의 손바닥에 닿았다.

 조나단은 팔을들어 날아들어오는 용의 주먹을 잡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힘이 실리지 않았다. 잡았다기 보다는 부딪쳤다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조나단은 고개를 내려 힘이 가장 풀리기 시작한 발목부분을 바라보았다. 황금빛이 아래에서 부터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몸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접신의 시간이 다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용은 멈추지 않은 채 계속해 주먹에 힘을 실었다. 조나단은 그대로 뒤편으로 밀려날 수 밖에는 없었다. 그는 간신히 남아있는 힘을 주먹에 집중시켜 용의 힘을 받아냈다.

 몸은 달려오는 마차에 부딪친듯이 멀리 날아갔다. 양팔에 번개가 통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느껴졌다. 통증이었다. 상당한 통증이 느껴졌다. 뼈가 부러진 것만 같았다. 등은 나무벽을 거의 박살낼 만큼 강하게 충돌하였고 덕분에 중추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양팔에서 느껴지는 것과 맞먹을 정도로 컸다. 조나단은 고개를 내렸다. 그러자 붉게 부어올라 있는 양팔이 보였다. 특히 오른팔이 심했다. 통증은 계속해서 심해져만 갔다.

 하지만 용은 그런 통증을 살펴볼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바닥에 나뒹굴어진 조나단을 향해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뱀의 형상을 한 불길들이 일제히 조나단을 향해 날아왔다.조나단은 보호의 주문을 외워야 했다. 그러나 양팔은 들어올려지지 않았다. 뼈가 생각보다 심하게 다친 듯 했다. 그는 자신을 향해 죽일듯이 날아드는 불타오르는 뱀들을 막을 수 없었다. 완벽한 무방비 상태였다.

 그러나 조나단은 잿더미로 변하지 않았다. 밀레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검을 빼들어 바닥에 꽂았다. 그러자 검의 손잡이에 달린 반투명한 광석에서 대단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은 곧 거대한 형태의 방패로 바뀌어 날아오는 불의 세례들을 전부 막아냈다.

 곧바로 밀레는 바닥을 걷어차 용을 향해 뛰어들었다. 삼파전이었던 대결은 순식간에 밀레와 용의 사이의 대결로 바뀌었다.

 용은 계속해 불길을 토해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그녀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한 용이었다. 여성의 모습을 한 용이었다. 밀레는 그것과 싸우고 있었다. 그것도 밀리지 않은채, 몸과 몸을 부딪치며 육탄전을 벌였다. 강철보다 단단한 존재와 함께.

 “이곳을 전부 부수어버릴 생각이냐?”

 밀레가 소리쳤다. 용은 계속해서 화염을 뿜어냈다.

 “네놈들의 배가 이정도로는 끄덕없다는 사실은 나도 안다.”

 용은 팔을 휘둘렀다. 밀레는 몸을 뒤로 내빼며 아슬아슬하게 초열의 불꽃을 담은 손길을 피해냈다.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그는 내딛은 발로 추진력을 얻어 빠르게 앞으로 전진했다. 숏소드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왔다. 하지만 용은 가볍게 그 공격을 피해냈다. 곧이어 그는 바닥을 향해 발을 내리쳤다. 거센 불길이 밀레의 주위를 감쌌다. 그리고 채 눈 한 번 깜빡일 시간도 지나지 않고는 거대한 화염기둥이 밀레가 디딛고 있던 바닥에서 뿜어져올라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격은 밀레를 비껴갔다. 그는 빠르게 바닥을 박차고 나가 자신을 향해 뿜어져나온 불기둥을 여유롭게 피해냈다. 다시 한 번 그의 검이 허공을 가르고 용을 향해 날아들었다.

 용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팔을 들었다. 그녀는 빠르게 베어들어오는 밀레의 검날을 정확히 붙잡았다. 밀레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용의 손은 잘려나가지 않았다. 피는 흘렀지만, 그녀는 힘을 가득 실은 밀레의 검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유있는 믿음이었다. 그녀의 피부는 생각보다 훨씬 단단했다. 강철따위는 견줄 수도 없을 정도로.

 용은 몸을 돌려 밀레의 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콰드득, 살갗이 찢어지고 장기가 잘려나가는 소리가 둘 사이를 매웠다. 그리고 고통. 밀레는 이를 물었다. 뿌드득 거리면서 이는 갈려나갔다.

 “아픈가?”

 들려오는 사악한 여성의 목소리.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강하게 파고드는 거대한 존재의 손.

 우직! 갈빗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꽉 다문 입술 사이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밀레는 눈을 찡그렸다. 이마에 주름이 졌다. 입술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 용이 말했다.

 “느껴지나? 네놈의 나약한 살갗이. 산산조각나 흩어지는 가녀린 세포들의 신음소리가.”

 파고든 손길은 더욱 거세져 갔다. 피가 꽤나 거세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느껴라. 네놈이 이렇게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너희들이 이렇게 무지하고 열등한 존재라는 것을.”

 밀레는 피가 흘러나오는 입술을 잘끈 물었다. 뭐라 대꾸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은 턱 막혀버렸는지 아무런 말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밀레는 자신의 몸 안에 파고든 상대의 팔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력하게 파고든 용의 손길은 마치 거대한 바위와도 같았다. 고통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작열하는 고통보다 더 아픈 것은 없다지?”

 상처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용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밀레로 하여금 처음 공포를 느끼게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용과의 대화 후 처음으로 공포가 밀레를 덮쳤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동공은 흔들리고 용의 팔목을 쥔 손에는 가득히 땀방울이 맺혔다.

 죽음이 임박한 순간이었다. 눈이 감겨왔다. 정신은 흐려지고 시야는 점차 불안정해져 갔다. 정신력이 한계에 도달했다. 바닥에는 철퍽거리는 소리와 함께 쏟아져내리는 붉은 액체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때,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밀레!”

 간지러워오는 고막의 옅은 떨림. 그리고 보여온 것은 황금빛의 궤적을 그리며 용의 손목을 향해 내려오는 롱소드 하나. 점차 감기는 눈. 몸이 기울어지며 옅게나마 떠진 눈커풀 사이에 변하는 풍경들. 사방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밀레는 눈을 감았다. 귀에 들려오는 자신을 부르는 수많은 부름들을 뒤로한채, 밀레는 그렇게 잠시 어둠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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