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작가 : 지평선
작품등록일 : 2017.10.31

30일 뒤에 지구가 운석에 충돌해 멸망한다.
지구의 멸망을 막으려는 영웅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멸망하는 지구를 분석하는 공상과학물도 아니다.

삶이 30일 남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사람들의 버킷리스트.

 
D-22, 과엠티(1)
작성일 : 17-12-15 18:19     조회 : 256     추천 : 0     분량 : 4796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늦잠을 자고 말았다.

 눈을 뜨자마자 확인한 시간은 오전 11시 30분을 막 넘기고 있었다.

 

 눈도 제대로 떠지지 않는데 손은 제멋대로 핸드폰 잠금화면을 능숙하게 풀었다.

 아마 베개 밑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너와의 채팅창이 이미 켜졌을 것이었다.

 

 어느정도 정신이 들었을 때 슬며시 눈을 제대로 떴다.

 베개 밑에 넣어두었던 손을 빼서 채팅창을 확인했다.

 

 

 '일어났어?' 09:12 하태양

 

 부지런도 하셔라.

 

 나는 '이제 일어났어', 라고 대답한 후 핸드폰을 덮고 이불을 걷어냈다.

 

 부엌으로 가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리얼 봉지를 올리고

 냉장고로 가서 우유를 찾았다.

 

 헐.

 

 우유가 없었다.

 

 우유가 없는 지도 몰랐다니.

 

 뭔가에 홀리긴 단단히 홀린 게 틀림없었다.

 

 

 사러갈까, 그냥 다른 걸로 때울까, 고민이 시작되었다.

 

 찬장을 열어 라면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라면도 없었다.

 

 내가 우유와 라면을 집에 떨어뜨리는 날이 오다니…!

 

 

 과자도 밥으로 떼울만한 건 없고.

 당연히 밥도 없고. 반찬도 김치 이파리 조금.

 

 어제, 빼빼로 재료 사러 갔을 때 다른 것도 사올걸.

 

 

 결국 츄리닝 위에 입을 겉옷을 찾기 시작했다.

 

 질끈 묶은 머리에 진회색 캡모자. 두꺼운 뿔테안경과 마스크까지.

 들고 다니기 부끄러운 민낯을 가려줄 잇템을 풀로 장착하고 현관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운동화를 아무거나 신었다.

 

 

 동네마트는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멸망으로 인한 세계적 카오스가 끝난 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거의 아르바이트나 계약직으로 운영되는 직장은 기계나 무인시스템으로 대체되었다.

 '돈'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개념이 거의 무의미했을 뿐만 아니라, 푼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우유와 시리얼, 라면과 인스턴트 음식들을 바구니에 담았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어색한 마트의 정경을 확인했다.

 자취를 시작한 후 물건을 살 때면 늘 이 할인마트에 왔지만, 최근의 풍경은 아무리 익숙해지려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나에게 할인마트란 시끌벅적하고 항상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생선 코너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싱싱한 갈치와 고등어, 고기 시식 코너를 기웃거리며 모여있는 어린 아이들.

 행사상품 코너에서 온 마트가 울리도록 광고를 하던 직원들, 분주하게 야채와 과일을 담는 아주머니 아저씨들.

 카운터에 길게 늘어선 카트와 여기저기 삑삑 울리는 바코드 소리, 빠르게 장바구니에 담기는 물건들, 여기저기 움직이는 부지런한 손놀림.

 

 내가 기억하는 할인마트는 모든 게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도 달랐다.

 지금은 가족 단위로 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혼자 단촐하게 바구니 하나를 들고 필요한 것만 담았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물건들은 충분히 쌓여있었지만, 모든 것을 기계가 처리하다보니 별로 정갈하지는 않았다.

 창고에 쌓여있는 옛 물건들을 보는 기분이었다.

 

 나는 비식료품 코너로 들어갔다.

 아주 어렸을 때, 막 초등학생이 됐을 때쯤, 부모님과 함께 마트에 온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엄마는 뭘하고 지낼까? 아빠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잠깐 감상에 빠져 물건들 사이를 여기저기 비집고 다니고 있는데,

 휴지, 스탠드, 그 옆에 옛날에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디퓨저가 여러개 쌓여 있었다.

 

 가끔 친구 생일이 돌아오면 뭘 해줄까 고민하다가 늘 만만한 자스민향 디퓨저를 고르곤 했었다.

 

 나도 모르게 살짝 웃음이 나면서 몸이 그쪽으로 기울었다.

 

 "어?"

 

 삼나무향 디퓨저도 있었다.

 나는 상자에 꽁꽁 포장되어 있어서 향이 새어나오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그 겉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제대로 된 삼나무향은 맡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은은하게 향이 코끝을 찔렀다.

 

 핸드크림에서 나는 향보다 이렇게 디퓨저로 은은하게 맡는 게 훨씬 좋잖아.

 

 

 하나 살까?

 

 

 30초 정도 가만히 서서 생각의 시간을 가진 후, 조용히 그것을 바구니에 담았다.

 

 

 

 

 

 

 

 

 

 

 

 

 

 

 

 

 

 

 

 

 

 

 "저기."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지만 누군가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는 것은 충분히 느껴졌다.

 나는 이어폰을 빼고 뒤에서 멋쩍게 서있는 과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왜요?"

 

 "혹시 이번 주 금요일에 시간 있어?"

 

 "네…?"

 

 

 나는 하태양의 부스스한 머리카락에 한 번 시선을 준 후, 그 아이의 말끔한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내 표정에서 뭔가를 읽었는지, 과대표는 잠깐 머리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후 다시 말했다.

 

 "이번 주 과엠티 때문에 장볼 사람이 필요한데, 다들 시간이 안 된다고 해서. 혹시 넌 시간이 되는 지 궁금해서 물어본거야."

 

 

 하태양의 명확하고 깔끔한 정리에 나는 이 상황이 바로 이해됐다.

 

 

 "저 과엠티 안 가는데요."

 

 "알아."

 

 "과엠티 가지도 않는 제가 왜 장을 보러 가야 해요?"

 

 "그만큼 장보러 갈 인원이 부족해서 그래. 혹시 도와줄 수 없을까?"

 

 

 가지도 않는 나한테 물어볼 만큼 다른 아이들이 엠티를 이끌어가는데 비협조적이라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나랑 별로 친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와서 물어보기까지 하는 걸 보면, 좀 안쓰럽기도 하고.

 

 

 "노을아, 태양이 좀 도와줘라. 요즘 태양이 혼자 완전 힘들어 죽으려고 해."

 

 "어차피 노을이 넌 강독 수업 안 들으니까 그 때 시간 비잖아."

 

 같이 과방에 있던 동기들이 부추겼다.

 

 

 "그래도 노을이는 과엠티 가지도 않는 데 장보러 가라는 건 좀 너무하지 않아?"

 

 "맞아. 가는 애들 중에 몇명이 교수님한테 말씀드리고 가면 되지."

 

 연우랑 현채가 내 편을 들어줬다.

 

 

 "야, 교수님한테 말씀드리면 뭐가 달라지냐? 강독 교수님 빡빡하기로 소문났는데. 그냥 바로 결석처리되고 찍힐 걸?"

 

 "노을이랑 태양이랑 오붓하게 장보고 오면 되겠네!"

 

 누군가의 한마디에 과방에 깔깔깔, 웃음이 터졌다.

 나는 괜히 당황스럽고 부끄러워져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태양도 이런 상황은 예상 못했는지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도 장보러 가고 집부 선배들도 몇명 같이 가기로 했어. 그만 놀려."

 

 임혜성이 맥 끊는 소리를 했지만, 애들은 여전히 쿡쿡댔다.

 

 

 "금요일에 시간 돼…?"

 

 이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금요일에 시간되냐고 묻는 너를 보며, 나는 백기를 꽂을 수 밖에 없었다.

 

 

 "아, 알겠어요."

 

 짜증스러운 표정과 틱틱대는 말투였지만 나는 반강제로 결국 긍정의 대답을 주고 말았다.

 

 

 

 

 

 

 

 

 "어?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누구?"

 

 까무잡잡하고 날티나게 생긴 선배가 오자마자 다짜고짜 그렇게 물었다.

 그 말투에는 약간 띠꺼운 듯한 뉘앙스도 섞여있었다.

 

 

 "15학번 장노을입니다."

 

 "장노을? 아, 너 혹시 문개론 듣냐?"

 

 

 내가 네,라고 대답하려 하는데 누군가 대신 대답했다.

 

 

 "노을이 5조 발표자였잖아요."

 

 임혜성은 장보는 게 뭐 그리 좋은 일이라고 싱글싱글 웃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어, 기억나네."

 

 선배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지나가다가 한 두 번 본 적이 있는 선배였다.

 이름이 곽, 무슨 선배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

 

 

 "내일15 여자애들 누구 오냐?"

 

 "전 잘 모르는데요."

 

 "모른다고?"

 

 선배는 째진 눈으로 날카롭게 나를 째려봤다.

 

 

 "왜 몰라? 한창 단톡에 다 과엠티 얘기일텐데."

 

 "저 단톡 잘 안 봐요. 그리고 전 안 가니까 별로 관심이 없어서요."

 

 "뭐? 그럼 과엠티 가지도 않으면서 장보러 온거야?"

 

 그 선배는 별 것도 아닌데 언성을 버럭버럭 높였다.

 듣기 좋은 목소리도 아닌데 큰 소리를 내자 귀가 따가웠다.

 

 

 "노을이는 장보러 갈 사람이 없어서 도와주러 온 거에요."

 

 임혜성의 나지막하고 따뜻한 목소리에 그나마 조금 귀의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하여튼 15애들 빠져가지고. 아 그나저나 혜성이 너 소희랑 친하지 않냐?"

 

 "네. 뭐. 친하죠."

 

 "소희 과엠티 오지?"

 

 "네. 온대요."

 

 

 그 선배는 그래그래, 하면서 방금전까지 버럭하던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는 생긋한 얼굴로 빠르게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선두에 서 있던 안동혁 선배의 어깨동무를 슬며시 끼며 뭐라고 낄낄 주고 받았다.

 

 

 

 "노을이 넌 왜 과엠티 안 가?"

 

 어찌나 바짝 붙어서 걷는지 오른쪽 팔에 임혜성의 온기에 따뜻한 기운이 내 팔에까지 전해졌다.

 

 

 "저는…, 아니, 나는 단체로 여행가고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서."

 

 "그래? 너랑 친한 현채랑 연우도 다 가는데."

 

 

 그러니까 너도 와, 라는 뒷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현채랑 연우는 좋지만, 그래도 단체로 여행다니면 피곤하고 이것저것 신경 쓰이고. 그럴 시간에 그냥 혼자 쉬고 싶어."

 

 "그렇구나. 너도 가면 좋을텐데."

 

 "왜…?"

 

 

 그냥 빈말로 한 말이었을텐데, 나는 뭘 기대했는지 이유를 묻고 말았다.

 

 

 "내가 억지로 말 놓자고 해서 말은 놨지만 우리 별로 안 친한 것 같아서. 이번에 같이가면 친해질 수 있잖아."

 

 "뭐, 과 사람들이랑 이전보다 좀 더 친해지긴 하겠지."

 

 "난 너랑 친해지고 싶어."

 

 

 당연히 안 친하니까 친해지고 싶다는 말쯤 예의상, 혹은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왜 나는 자꾸 좀 더 달콤하게 왜곡해서 듣고 싶은건지.

 

 쌀쌀하게 부는 바람에 가느다랗고 윤기나는 너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나부꼈다.

 살짝 지는 석양의 노란빛과 그의 갈색빛 머리결이 잘 어울렸다.

 

 

 "나도 친해지고 싶어."

 

 "그럼 과엠티 같이 가자."

 

 청유형 문장과 어울리지 않게 조금 센 억양이 들어간 말투였다.

 

 

 "그치만 과엠티는 내일이고, 이제 간다고 하기에는 너무 늦었어."

 

 "아니야, 잠깐 기다려봐."

 

 임혜성은 어디론가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더니 하태양의 어깨를 뒤에서 질질 밀며 함께 나타났다.

 

 

 "지금 노을이 과엠티 간다고 하면 갈 수 있지?"

 

 임혜성의 물음에 하태양이 나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너 과엠티 가려고?"

 

 "묻지 말고 대답만 해줘. 갈 수 있어? 없어?"

 

 "한 명쯤이야 더 가도 상관없지."

 

 임혜성은 씨익 웃으며 나를 돌아봤다.

 

 

 "과대가 가도 괜찮다는데? 갈 거지?"

 

 "어어…."

 

 "어,라고 한 거야?"

 

 "아…."

 

 

 하태양은 나를 눈빛으로 뚫으려는 생각인지 정말 뚫어져라 쳐다봤다.

 

 "뭐? 간다고?"

 

 "갈게. 과엠티 갈래."

 

 "대박. 들으셨죠 과대님? 명단 수정해주세요."

 

 하태양은 얼떨떨한 표정으러 어어,하고 대답했다.

 

 나는 그의 표정에 미묘한 편화가 생겼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작가의 말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5 D-22, 과엠티(1) 2017 / 12 / 15 257 0 4796   
14 D-23, 데이 2017 / 12 / 11 265 0 4904   
13 D-24, 물과 기름 2017 / 12 / 7 244 0 4850   
12 D-25, 가을 서리 2017 / 12 / 4 256 0 4792   
11 D-25, 붕괴 2017 / 12 / 1 254 0 4856   
10 D-26, 사랑은 공통 분모 2017 / 11 / 28 276 0 4735   
9 D-26, 호불호는 종이 한 장 차이 2017 / 11 / 25 269 0 4764   
8 D-27, 떡볶이 먹으러 갈래? 2017 / 11 / 22 240 0 4748   
7 D-28, 나비의 날개짓 2017 / 11 / 19 257 0 5134   
6 D-29, 고백 2017 / 11 / 16 259 0 5086   
5 D-29, 뜻밖에도(2) 2017 / 11 / 13 265 0 4798   
4 D-29, 뜻밖에도(1) 2017 / 11 / 10 256 0 5172   
3 D-30, 바보와 멍청이 2017 / 11 / 7 280 0 5181   
2 D-30, 너에게 연락하기 2017 / 11 / 4 256 0 5328   
1 D-31, 정리 2017 / 10 / 31 438 0 5143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