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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펑더화이의 6.25
작가 : 주암
작품등록일 : 2017.12.15

펑더화이는 중국인민지원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온 총사령관이다. 펑더화이의 입장에서 보는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중국은 5차전역에 걸쳐 미군과 한국군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고 마지막으로 금성전투에서 엄청난 공격을 가하여 정전협정장으로 끌어낸다. 전선은 지루하고 소모적인 마지막 고지쟁탈전이 벌어지는데, 이런 과정에서 벌어진 삼감령전투는 중국군에 있어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흘러나온 첫 곡이 상감령전투의 주제곡이었다. 중국은 미제와 국경을 접하고 싶니 않아 이북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고, 미국은 중공을 견제하기 위하여 남한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다.

 
압록강을 건너는 펑더화이 3
작성일 : 17-12-15 17:37     조회 : 328     추천 : 0     분량 : 6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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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회담이 끝나자 이 궁벽한 두메산골에서 언제 준비하였는지 찜닭 한 마리와 포도주가 나왔다. 멀리서 비행기소리 대포소리가 은은히 산천을 울리는 가운데 양국의 지도자는 술잔을 부딪치며 승리를 미리 자축하였다.

  한편, 10월 21일 펑더화이가 김일성을 만나는 날, 홍쉐즈는 펑더화이로부터 전보를 받았다.

  “금일 오전 9시에 동창과 북진 사이의 대동에서 김일성 동지와 만났음. 전방의 상황은 아주 혼란스러워 평양에서 철수하는 부대와는 이미 사흘 동안 연락두절임. 함흥, 순천 이남에는 우군이 없고 함흥의 적이 북진을 계속할 지는 불분명함. 덩화, 홍쉐즈, 한센추 동지는 필수 인원을 대동하고 급히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적을 섬멸할 수 있는 병력배치를 논의하기 바람. 제팡 동지는 잔여인원을 데리고 부대를 따라 그대로 전진할 것.”

  펑더화이가 극소인원만 대동하고 홀홀히 차 두 대만으로 조선 땅으로 사라졌을 때 그들은 불안해서 살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이틀 동안이나 완전히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최고 지도자의 행방을 모른다는 것은 자기들의 너무나 큰 실책이었다. 드디어 연락이 되고 회동하자는 말을 들으니 살 것 같았다. 상황은 시시각각 바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오 주석으로부터 부대배치를 바꾸고 펑 총사령관과 합류하라는 전보를 연거푸 받고 있었다. 한센추는 이미 제40군 사령부와 함께 전선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연락이 되지 않았다. 21일 당일 저녁 7시가 넘어서 기밀을 지키기 위하여 덩화와 홍쉐즈는 약간의 간격을 두고 각각 따로 출발하였다. 홍쉐즈는 지프차 안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 안내원이 잠을 깨워서 보니 사방은 아직 희뿌연 새벽 5시인지라 사주가 분명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조선특유의 민둥산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연락지점에 도착했다고 해서 보니 10여 호의 인가가 있는 산골 마을이었다. 덩화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40세 쯤 되는 당간부인 듯한 부인과 조선인민군 두 명이 맞이한다. 부인은 스스로 연락처 주임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는데 서투르지만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는 중국어로 말을 한다. 키가 약간 작고 기가 세게 보인 연락처 주임은 어떤 사명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태도였다. 조선 여성들은 중국여성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강한 면이 있다. 이 연락처 주임뿐만 아니고 조선 병사들은 거의가 중국어, 일본어 정도는 할 줄 안다. 중국인은 어느 한 사람도 한국어, 일본어를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나는 중국인민지원군 13병단 부사령관 홍쉐즈요. 사령관 펑더화이의 연락원을 만나기로 했는데 그는 지금 어디 있는 것이오.”

  “연락받고 이미 알고 있습니다. 펑더화이 총사령관의 연락원이 지금 오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아침 7시가 되자 덩화도 도착하였다. 그 때 미군의 P51전투기가 갑자기 날아와 마을에 한바탕 기총사격을 퍼부었다. 처음에는 이들이 무엇을 알고 사격을 하나 했으나 가만히 상황을 보니 그들은 아무런 계획 없이 무차별 사격을 가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아침 10시경에야 펑 총사령관의 연락원이 도착하였다.

  “펑 총사령관은 이 근처의 대동이라는 촌락에 계십니다. 지금 김일성 수상과 회의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펑 사령관도 어서 만나보고 싶어 하십니다.”

  홍쉐즈와 덩화가 연락지점에서 출발한 것은 11시가 넘어서였다. 가스67 지프차 위에 나뭇가지들을 꽂아 위장을 하고 산골 마을을 빠져 나갔다. 좀 넓은 들판에 이르자 미군 무스탕기 10여대가 갑자기 나타나 폭탄을 투하하고 기총사격을 가하였다. 그들은 잽싸게 차에서 내려 도랑에 몸을 숨겼다가 다시 타고 빠른 속력으로 산골짜기로 진입하였다. 홍쉐즈와 덩화는 실은 깜짝 놀랐다. 정보에 빠른 미군이라고 하더니 어느새 최고 지휘관들이 있는 곳을 알아내고 공중폭격을 시작하는가 하고. 그러나 이상한 일은 명중도 잘 되지 않는 폭탄에, 기총을 난사하여 실탄만 소비하고 있을 뿐 별 관심도 없는 듯 이내 멀리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대동까지 가는 약 1시간 되는 거리에서 여러 차례 미군전투기를 만났고 그 때마다 차를 숲속에 숨기고 사람은 멀리 떨어져서 은폐물 밑에 엎드렸다. 대동에 이르자 골짜기 입구에 여러 명의 보초병이 서서 차를 막았다.

  “누구십니까. 여기는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나는 중국인민지원군 부사령관 홍쉐즈요. 나와 덩화가 펑 총사령관을 뵙기를 원한다고 전해주시오.”

  그러자 보초병이 잠깐 기다리라며 들어갔다 나오더니 아주 정중하게 들어가라고 안내한다. 마을로 들어서자 펑 사령관의 경호원이 나왔다.

  “펑 사령관은 저 집에서 김 수상과 회담 중이십니다. 이야기가 길어지니 먼저 점심을 들며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초조하여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기다리니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들어오라는 전갈이 왔다. 두 사람이 들어가니 널따란 방 가운데 탁자를 사이에 두고 의자에 앉아 두 사람이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마치 친한 동무를 오랜만에 만나서 회포를 푸는 듯하였고 김일성 수상은 여유 만만한 태도였다.

  “어서 오세요. 여길 찾느라고 힘 들었지요? 나도 금방 평안북도까지 왔다가 때마침 도착한 펑 사령관을 만났지요. 그런데 적은 아직도 중국인민지원군이 조선에 들어와 있는 줄을 까마득하니 모르고 있어요. 멍청한 것들이지요. 하하하하.”

  “여기까지 오는데도 여러 번 비행기 사격을 받았습니다.”

  “그랬을 거예요. 그들은 우수한 화력만 믿고 자신에 차 있을 뿐 우리 빨치산 전법 같은 것은 전혀 모르고 있어요. 이제 중국지원군도 도착했으니 참 재미있는 전투가 될 것 같습니다. 자, 나는 펑 사령관과 이야기 많이 했으니 나가 보겠습니다. 말씀들 나누세요.”

  산동 사람처럼 덩치도 크고 사나이다운 풍모를 지닌 김 수상은 기분 좋게 한 잔하고 어느 잔칫집을 나가는 손님 같았다. 펑더화이는 두 사람을 보고 모든 마음이 다 놓이는지 19일 압록강을 넘어서부터 오늘(21)에 이르는 경과를 설명해주었다. 압록강을 넘어서 펑더화이는 신의주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났단다. 조선 외무상 박헌영도 거기서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일성 수상은 지금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날씨는 가랑비가 진눈깨비로 바뀌어 흩날리고 도로는 진흙구덩이가 되어, 하는 수 없이 박헌영의 제안에 따라서 수풍발전소 안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20일 정오에야 겨우 김 수상이 대유동의 폐광이 된 금광 안에 피신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했다. 김 수상을 만나러 가는데 펑더화이가 탄 가스67 지프차는 느리고 박헌영의 바르샤바 승용차는 빠르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박헌영의 바르샤바 승용차에 옮겨 타고 달렸다. 그 때까지 뒤 따르던 무전 차량은 종적도 보이지 않았다. 무전기가 없으니 아무에게도 연락을 취할 길이 없었다. 그러다 오늘(21)오후가 되어서야 추이룬의 차가 펑더화이를 찾아내서 찾아온 것이다. 두 사람더러 이곳으로 달려와 달라고 전보를 친 것은 바로 추이룬의 통신차량이 도착해서 겨우 가능했단다. 펑더화이는 말했다.

  “조선인민군의 병력으로는 미군을 상대할 수 없어요. 조선의 상황은 이제 우리에게 달렸어요.”

  “네, 저희들도 퇴각하는 백성들과 인민군을 보고 이제부터 모든 조선의 운명은 우리 손에 달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은 하루 속히 근거지를 점령해 진지를 구축해야 돼요. 그러려면 원래의 계획을 바꾸어 기동 중 기회를 포착하면 즉시 섬멸하는 각개격파 작전을 써야겠어요. 마오 주석의 말씀대로 미군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한국군 제6, 7, 8의 삼개 사단을 공략해서 첫 번째 전투를 승리로 이끌려고 하는데 내 계획이 어떻소?”

  “바로 그것입니다. 첫 번째 전투를 미군과 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첫 승전보를 전해서 사기를 격양시키려면 한국군을 선택해야 합니다.”

  먼저 한국군을 공격해야 한다는 것은 마오쩌둥의 최초부터의 발상이었다. 마오가 저우언라이를 소련에 급파하여 협상을 하게하는 한편 펑더화이 등을 북경에 불러 향후 대책을 협의할 때 결정한 사항이다. 스탈린이 당초 약속인 전투기 지원을 얼버무리자 소련의 전투기 지원이 없더라도 출병계획은 차질 없이 시행한다는 최종결정을 내리면서 저우언라이에게도 결정사항을 전보로 알렸었다.

 

  정치국 동지들과 협의한 결과 만장일치로 아군이 조선에 파병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처음에는 한국군을 집중 공략하여야 한다. 한국군과 싸울 경우 승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원산 평양선 이북의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구축하여야 한다. 우선 한국군 몇 개 사단에 타격을 입히면 조선의 전세는 우리에게 유리하게 바뀔 수 있다.

 

  펑더화이와 홍쉐즈, 덩화의 의견도 일치되었다. 먼저 약한 국군을 섬멸 내지 무력화시킴으로서 중국군의 사기를 고양시키고 미군을 고립시켜 섬멸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덩화가 구체안을 피력하였다.

  “제 구상은 이렇습니다. 동부전선은 제42군 휘하 1개 사단에 1개 포병여단을 배속시켜 장진 일대를 지키게 해서 국군 수도사단, 제3사단을 막도록 합니다. 서부전선은 3개 주력군을 집중시켜 국군 제6, 7, 8사단을 각개격파 하는 것입니다. 제40군을 덕천, 영변 일대에, 제38군은 희천에, 제39군은 태천, 구성, 일대로 진격시켜 적을 섬멸할 기회를 살피게 하겠습니다.”

  홍쉐즈가 이어서 말한다.

  “그런데 제39군이 태천 쪽으로 오게 되면 신의주, 정주가 비게 되어 적이 서해안으로 상륙해 올 경우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으로는 제66군을 안둥, 신의주 일대에 배치하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펑 사령관은 잠깐 생각하더니 내가 왜 그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나 하듯이 단호하게 하달하였다.

  “좋소. 당장 군사위원회에 전보를 치시오. 제66군을 내일, 모래 이틀에 걸쳐 톈진(天津)으로부터 급히 파견하여 신의주 정주 일대의 교통선을 장악하고 지원군의 예비대로 쓸 수 있도록 요청하시오.”

  펑더화이는 이어서 지도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나와 김일성 수상이 상의한 결과, 인민지원군 사령부는 대유동에 두기로 했어요. 대유동은 이곳 대동의 북쪽이고 이곳과 아주 가까운 거리예요. 당신들은 빨리 사람을 시켜 제팡에게 알리도록 하세요. 병단 사령부 필수 요원들을 데리고 최대한 빨리 대유동으로 옮기도록. 병단 사령부가 대유동에 도착하면 즉시 각 군, 각 사단과 통신연락을 취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세요.”

  창성의 대유동 금광은 한말에 프랑스가 개발권을 인수한 이래, 1940년에 조선총독부의 주선으로 당시 돈 1,300만원에 일본광업주식회사로 하여금 인수하게 한 거대한 규모의 금광이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짜기인데, 산골짜기 양편 산기슭에 금광 갱이 여러 개 뚫려 있었다.

  펑더화이는 폐광 속이 너무 어둡고 불을 켜면 벌레들이 날아와서 지도를 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권고도 무시하고 판잣집의 노동자 창고를 보고 다녔다. 갱 아래에는 낡은 창고의 가건물이 몇 채 있었는데 사령부 겸 숙소로 쓰기로 한 건물은 베니어로 지은 노동자 창고의 가건물이었다.

  미군은 평양을 점령한 이후로 완전 안하무인이었다. 이것이 북한의 철저한 실패로 간주하고 있었고 중국은 참전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설사 참전할 의사가 있더라도 벌써 시기를 놓쳤다고 생각했다. 병사들은 모두 맥아더의 추수감사절 이전에 전쟁을 끝낸다는 말을 믿었으며 최소한 크리스마스는 본국에 돌아가서 쇨 수 있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만약의 경우를 위하여 대기시킨 일부 병력을 제외한 전군이 압록강, 두만강의 조중 국경을 향하여 마지막 총공세를 펴고 있었다. 그들은 4개 군단 10개 사단, 1개 공수여단을 비롯하여 13만 여명의 병력을 주로 서부전선에 집중하며 서부 전선에서도 동시에 몰아붙이고 있었다.

  서부전선에서 올라온 병력은 미8군 사령관 워커(Walton H. Walker) 중장이 이끄는 미군 제1군단과 한국군 제2군단을 비롯하여 모두 6개 사단과 1개 여단, 1개 공수여단이었다. 미군 제1군단 소속 미제24사단과 영국군 제27여단, 한국군 제1사단은 평양, 사리원 일대에서 경의선 철로를 따라 신의주, 삭주, 벽동 방향으로 진격해 오고 있었다. 한국군 제2군단 소속 제6, 7, 8사단은 성천, 파읍(坡邑), 양덕 일대에서 초산, 강계 방향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예비대로는 미제1군단 소속 미기병 제1사단과 제187공수여단이 평양, 숙천 일대에서 진치고 있었다.

  동부전선에서 올라오는 병력은 알몬드(Edward M. Almond) 소장이 인솔하는 미제10군단과 한국군 제1군단 등 합계 4개 사단이었다. 미제10군단 소속 미해병 제1사단과 미제7사단 그리고 한국군 제1군단 소속 수도사단, 제3사단이 장진호를 따라 두만강변의 혜산, 강계 방향으로 진격해 오고 있었다.

  한국군을 선두에 세워 방패막이로 삼고 미군은 뒤에서 차에 탑승한 보병을 선두로 밀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진격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동부전선의 국군 수도사단은 벌써 오로리, 홍원 일대를 점령해 중국인민지원군의 예정 방어지역에 도달해버리고 말았다. 그때 압록강을 건넌 중국지원군 5개 사단은 압록강 남쪽의 신의주, 만포 지대에 도착하였을 뿐이어서 예정 방어지역에서 120-270km나 떨어져 있었다. 미군보다 중국군이 먼저 예정지역에 도착하기는 벌써 글렀다. 그런데 보고를 받은 펑더화이와 홍쉐즈, 덩화는 여기서 중요한 저들의 결점을 하나 발견하였다. 서부전선을 맡고 있는 미 제8군과 동부전선을 맡고 있는 미 제10군단 사이가 너무 떨어져 있어 허술한 빈틈이 생기고 있었다. 우환 중에 중국군이 노리고 있는 국군 3개 사단이 돌출되어 있는데 그들은 중국인민지원군이 벌써 조선 땅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은폐해 있다가 불시에 적을 분산 포위하여 각개격파하기에 아주 좋은 여건이 조성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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