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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펑더화이의 6.25
작가 : 주암
작품등록일 : 2017.12.15

펑더화이는 중국인민지원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온 총사령관이다. 펑더화이의 입장에서 보는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중국은 5차전역에 걸쳐 미군과 한국군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고 마지막으로 금성전투에서 엄청난 공격을 가하여 정전협정장으로 끌어낸다. 전선은 지루하고 소모적인 마지막 고지쟁탈전이 벌어지는데, 이런 과정에서 벌어진 삼감령전투는 중국군에 있어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흘러나온 첫 곡이 상감령전투의 주제곡이었다. 중국은 미제와 국경을 접하고 싶니 않아 이북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고, 미국은 중공을 견제하기 위하여 남한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다.

 
조선의용군의 입북 3
작성일 : 17-12-15 17:12     조회 : 304     추천 : 0     분량 : 8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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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8월 16일 오후에는 소련군이 경성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경성역에는 해방군을 환영하기 위한 인파가 물밀 듯이 몰려들고 있었다. 남대문로에는 소련의 붉은 깃발을 흔들고 만세를 부르며 경성역 쪽으로 몰려드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경성부청 앞에도 인파로 가득하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오후 3시쯤에 소련군이 도착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1시에는 벌써 흰 한복을 입은 여운형이 휘문중학교에서 집회를 열고 건국준비위원회가 총독부 산하기관을 접수한다고 선언하고 경성방송국, 경성일보 등을 접수하며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하였다. 각 지역 건국준비위원회도 각 지역 관공서를 접수하고 경찰서, 도청 등을 접수하기 시작하였다.

  8월 17일에는 부산 지방교통국장 다나베 나몬이 조선총독부의 비상대기명령을 받고 배를 대기하고 있는데, 웬걸 아베 총독의 아내가 손자 2명을 데리고 파리한 얼굴로 나타나 80톤짜리 배에다 조선에서 약탈한 문화재 귀중품들을 가득 싣고 일본으로 출발시키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배는 얼마 가지도 못하고 목도(木島) 앞바다에서 그만 멈추고 말았다. 얼마나 짐을 많이 실었던지 과적으로 인하여 운행도중에 배가 한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더니, 점점 각도가 심해져 결국 완전히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마침 아베 부인과 손자 둘은 구명 조키를 입히고 투부까지 감고 있었기 때문에 날랜 수부들이 헤엄쳐가서 구출하여 겨우 다시 세워진 배에 싣고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아베부인은 하는 수 없이 애써 갈취한 귀중품들을 모조리 바다에 수장하고 겨우 목숨만 살아서, 다시 도청의 알선으로 많은 돈을 주고 암매한 조선인의 배를 타고 황급히 일본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이 일이 있기 전, 이날 아침 경무대는 초상집과 같이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아베 부인은 손자 둘을 데리고 꿇어앉아 아베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울고 있었다. 아베가 나와서 엎드려 어깨를 들먹이고 있는 아내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요코! 울고만 있지 마라. 너는 살아남아야 한다. 린짱과 아키짱을 데리고 오늘 중으로 내지로 먼저 돌아가 있어라.(일본인은 자기 마누라한테는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이름을 부르고 해라를 한다. 내지란 자기네 일본이란 뜻이다.)”

  “주인님!(일본여자는 자기 남편에게 하녀가 쓰는 용어를 사용한다) 당신은요?”

  “나는 여기서 할 일이 남았다. 남들이 다 도망간다고 나도 도망갈 수야 없지 않겠느냐. 청자와 백자, 그리고 서화(書畫), 금은붙이들은 모두 차에 실어놓았다. 그것만 무사히 내지로 가져가면 우리 가문은 3대는 잘 살 수 있다.”

  “모란무늬 청화백자도 실었지요?”

  “물론이다.”

  “청자 운학문매병은요?”

  “물론 잘 실었다. 청자 운학문매병은 열 번을 포장하였으니 걱정하지 마라.”

  “주인님도 꼭 살아서 돌아와야 해요. 알았지요. 딴 생각일랑 아예 하지마세요(사무라이들은 이런 경우 대개 할복을 하기 때문에 그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알았다(이 때 아베는 할복을 결심한 듯한 표정을 하였다). 어서 일어나 가거라.”

  요코가 일어나자 린짱과 아키짱은 아베에게 달려가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연호한다. “오냐. 오냐. 너희들은 대일본제국을 위하여 건강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알았느냐?” 두 손자는 씩씩하게 “하이!”하고 큰소리를 지른다. 이 때 이 광경을 보고 있던 경무대 관원들의 울음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렸다. 승용차 1대와 짐을 가득 실은 커다란 트럭 2대가 서서히 움직이자 이번에는 모두 소리 내서 울었다. 그런데 그 인파 속에서 한 젊은이가 “지미 ×헐, 저만 살려고 먼저 도망을 가?”하고 제법 노골적으로 소리를 지른다. 아마 정원사인 것 같았다. 옆 사람들에게 들렸음직 한데 그 말을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날로 경무대 인원들은 절반 이상이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총독의 부인이 이럴 진데 다른 일반인들이 자기 살길을 찾아 날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무서운 호랑이 같던 그들이 이제는 자기 살 구멍만 찾는 작은 산토끼가 되어 이리 뛰고 저리는 모습은 한편 측은하기도 하였다. 원래 일본인은 그런 사람들이다. 한 번 기가 꺾이면 손가락으로 밀어도 넘어질 만큼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일본인을 잘 표현한 말이 있다. 가시캉콘죠(下士官根性. 하사관 근성)! 자기보다 한 계급만 높아도 벌벌 기고 한 계급만 낮아도 완전히 밟고 짓이겨버리는 비열한 남자의 표상이다. 그러기 때문에 일본인에게 약자로 보이면 큰일이 나는 것이다.

 

  북한에서도 발 빠르게 인민위원회가 조직되어 모든 조직을 인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소련군의 남하는 늦추어지고 있었다. 소련군이 오지 않으리라는 것 자체를 일본은 모르고 있었고 38선이 그어져 있는 줄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8월 20일에야 조선총독부의 조선에 대한 반격의 음모가 시작된다. 즉 소련군은 남하하지 않는다는 것과 38선이 갈라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일본왕이 항복선언은 했지만 아직 구체안은 남아 있었다. 일본대표 가와베 도라시로(河邊虎四郞) 중장 일행 12명이 맥아더 장군의 명령에 따라 일본군용기를 흰색으로 칠하고 녹십자를 그려넣었다. 그 비행기를 타고 19일에 이에시마(家島)에 도착했다. 거기서 미국 측 안내를 받아 맥아더 장군과 회의를 하기 위하여 미군 비행기로 갈아타고 마닐라에 도착했다. 19시간 만에 겨우 이루어진 마닐라 회의에서 일본은 천황을 살려준다는 조건하에서 8월 10일에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였고 포츠담 선언은 무조건항복이란 것, 맥아더 장군이 일본총독이 된다는 것 등을 확인한다. 맥아더는 천하무적의 당당한 태도로 그 특유의 옥수숫대 마도로스파이프를 입에 물고 나타났다.

  “항복식 조인은 도쿄 만에 정박하고 있는 미합중국의 미조리함 선상에서 9월 2일에 거행하오.”

  “핫! 알겠습니다 장군. 참 그리고, 미군은 언제쯤 조선에 상륙하시는 것입니까?”

  “약간 늦어질 것이오. 미군이 조선에 항복문서를 받는 것은 38선 이남에 국한하오.”

  “네? 38선…?”

  “자세한 것은 당신들은 알 필요 없소. 모든 것은 우리 사정에 따라서 할 것이오.”

  여기서 처음으로 조선을 38선으로 갈라 이북은 소련이 이남은 미군이 일본의 항복을 받는다는 내용을 알게 되었다. 북위 38도선은 미·소 양국이 한반도에 있는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하여 얄타 비밀협정에 의하여 편의상 설정한 것이었다.

  일본의 내무차관은 이 사실을 조선총독부 엔도 정무총감에게 8월 20일 당일로 전문으로 알리게 되고 그 때서야 조선총독부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소련군은 안 온다. 소련군이 서울을 점령하면 일로전쟁 때부터 쌓인 악감정으로 일본에 대한 엄청난 보복이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안 온다는 것 아닌가.

  총독부로서는 먼저 여운형이 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들어 인민공화국을 만들려는 기세를 멈추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경성 경비사령관 고모다는 하룻밤 사이에 3천여 명의 일본군을 전역시켜 80%이상이나 도망가 버린 경찰인력을 대치한다. 그들로 하여금 건준이 접수한 모든 기관을 다시 탄환하고 조선총독부가 유일한 통치기구란 것을 전국에 천명한다.

  살 구멍을 찾아 사면팔방으로 도망가고, 쥐구멍이라도 처박고 들어가기 바쁘던 일본은 불과 5일 만에 갑자기 기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멀쩡한 가구며 살림살이들을 모조리 내다 팔던 일인은 다시 세간을 사들이기 시작하였고 조선인에게는 대일본제국의 위엄을 보여줘야 한다고 경망을 떨기도 하였다. 사태파악을 완전히 한 조선총독부는 25일에 아직 조선에 오지도 않은 하지 중장에게 비밀문서를 발송하였다.

 

  존경하는 하지 중장 각하

  조선의 치안확보를 위해서는 일본의 군인과 경찰을 활용해 주시기 바라오며 그것이 조선 내의 불안감과 조선의 폭동을 막는 최선의 길임을 알려 드립니다. 아울러 조선의 공산주의자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일소하여야 합니다. 일·미 사이에 이간질을 책동하는 자가 있사오니 가능한 일본총독부 관리에게 모든 사정을 물어 불량자들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주의할 것을 희망합니다. 아울러 귀국 군대가 상륙하여서도 우선 기존의 조선은행권을 그대로 사용하게 해 주시기 바라오며, 우리는 미군의 편에 서서 함께 소련 편에 선 공산주의 폭도집단을 응징할 것을 희망합니다.

  일본국 주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 돈수

 

  그리고는 미군이 아직 상륙도 하기 전에 미군이 상륙하면 조선인이 총으로 방어하려 한다는 둥 거짓 정보를 미국 측에 흘러 보낸다. 미군의 상륙 직전까지 조선주둔 일본군 용산 제17방면군 사령관 고츠키 요시오(上月良夫)와 오키나와의 하지 중장 사이에 무려 80여 통의 전문이 오가고 있었다. 고츠키는 “조선인 중에는 공산주의자 혹은 독립운동가가 많습니다. 이들은 이 기회에 치안을 교란시킬 의도를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경찰, 헌병 외에 군대를 동원하여 치안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1945.9.1. 오전1시)”라고 했고, 소련과 이데올로기 대립을 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반가운 정보였기 때문에 이는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는 고츠키에게 답신하기를 “일본군의 치안유지를 허가한다. 조선인에게 직접 경고하기 위해 오늘 미군기가 포고문을 투하할 것이다. (9.1. 오후 4시)”라고 답신한다. 미군은 신속하게 9월 1일 당일로 군용기를 출동하여 조선에 삐라를 뿌린다. 조선에 뿌려진 하지 중장의 제1호 포고문이란 삐라 내용은 미국이 일본의 항복을 받으러 오는 것이 아니고 조선의 항복을 받으러 온다는 내용이었다.

  “모든 것은 조선의 행동여하에 달려 있다. 철저한 복종은 나라의 재건을 빠르게 하지만 경솔하고 무분별한 행동은 인명의 손실과 국토의 황폐, 독립의 지연을 가져올 뿐이다. (9.1. 하지중장 포고문)” 미군이 상륙할 때 감히 경거망동하면 조선을 쑥대밭을 만들어버리고 말겠다는 점령군의 협박이었다. 고츠키는 대환영을 하고 즉시 하지 중장에게 답신을 띄운다. “전단 투하가 조선의 치안에 대단히 유효합니다. 특히 공산계 적색분자의 책동을 막는데 유효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다시 한 번 투하해 주시길 간절히 요청합니다. (9.2. 오후 4시)” 하지와 고츠키는 착착 손발이 맞아 떨어졌다. 하지는 즉시 다음 전단을 투하한다. “남조선 주민에게 고함. 미국은 곧 귀국에 상륙하게 된다. 국민의 질서유지를 도모함도 이번 상륙의 목적이다. 일본인 및 미 상륙군에 대한 반란행위, 재산 및 기존시설에 대한 파괴행위 등을 엄벌한다. (9.4. 하지중장 포고문)”

  조선총독부의 이간질은 완전 성공을 거두어 ‘일본인 및 미 상륙군’을 한 편으로 만들고 조선을 다른 한 편으로 만들고 있었다. 9월 8일에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기 전, 하지는 오키나와를 출발하면서 다음과 같은 전단을 먼저 조선의 하늘에 살포한다. “한국은 미국의 적이며 적국의 취급은 관례에 따라 수행할 것을 선언한다.” 아주 분명하게 ‘한국은 미국의 적’임을 천명하고 나온 것이다. 일본은 하지 중장이 상륙할 인천 항구에는 폭동을 일으킬 항만노동자로 가득하다고 거짓 정보를 보내고 그 치안유지권을 가지게 된다. 그것도 모른 한국 사람들은 미군이 상륙한다는 소식을 듣고 환영인파와 구경꾼들이 인천항구로 몰려갔고 만세소리와 함성소리가 요란하였다. 이런 인파를 보고 일군은 이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고 미군에 보고하고 한국인을 향하여 무차별 발포를 한다. 즉석에서 사망 2명에 부상자 수십 명이 나오고 군중은 흩어졌다.

  여기까지가 일본의 1차 음모였다면, 이제부터는 진짜 한국의 경제를 완전히 파괴해버리고 갈 제2차 음모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은 8.15 이후, 조선은행권을 대량으로 찍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행과 상담하여 1엔짜리 원판을 조금 크게 만들어 1,000엔으로 바꾸어 찍어내고 100엔짜리도 찍어냈다. 도서인쇄주식회사에서 찍었는데 어찌나 인쇄가 조잡하던지 손에 잉크가 묻어날 정도였다. 8월 11일 현재 조선의 총 화폐발행고가 47억 엔이었는데 8월 15일 이후에 찍어낸 것을 합하니 95억 엔이나 되었다(이 중 4억 엔은 일본으로 공수). 거기에 또 구 화폐 45억 엔이 더해졌다. 그 구 화폐는 당시 총독부재무국장 미즈타 나오마사(水田直昌)가 44년 말부터 폐기하여야 할 화폐를 폐기하지 않고 총독부 지하창고에 은밀히 보관하고 있던 것이다. 이 폐기해야 할 45억 엔을 갑자기 풀어버리니, 기존 조선발행권 95억 엔을 합하여 무려 140억 엔이 통용되고 있었다. 전 발행고의 세 배가 통용되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조선총독부에서는 돈 잔치가 벌어졌다. 재무국장 미즈타는 자기 부하들에게 6,400만 엔을 나누어주었다. 정무총감 엔도 류사쿠는 기밀비로 500만 엔(현재 돈 100억 엔 상당)을 차지하였다. 이 돈은 소위 퇴각금 혹은 도피자금이었던 것이다. 또한 일본인 기업체에게는 무한정의 대출이 가능하였다. 어차피 갚을 필요도 없고 갚을 기회도 없을 것이란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일본의 미국에 대한 러브콜은 성공을 거두었고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을 적대시하라는 술책도 잘 먹혀 들어갔으며 자기들이 무사히 귀국할 수 있게 안배한 사전공작도 모두 맞아떨어졌다. 9월 7일, 미즈타가 조선총독부 선임국장으로 미군선발대를 맞으러 김포공항에 나갔다가 자기도 믿기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대개 전쟁에서 이긴 승자는 패자를 무자비하게 살상 능욕하는 것이 상식인데 미국인의 태도는 전혀 달랐다. 만면에 웃음을 띠고 악수를 청하고 착석을 권유하며 조선에 대한 궁금한 점을 이것저것 묻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 때 미즈타는 “나는 미군이 일본인 지역을 점령하러 온 것이 아니라 우리와 인수인계라는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 온 것을 깨달았다.”고 측근들에게 말한 바 있다. 일본 국내도 전혀 바뀐 게 없었다. A급 전범이니 B급 전범이니 하여 몇 명 사형도 처하고 투옥도 시키지만 그 책임을 지는 자는 최고 책임자에 국한되었다. 장관이 사형을 당해도 바로 밑의 차관이 올라가 장관이 되기 때문에 모든 일본의 체제는 하나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존속되었다. 일반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왕도 살아있고 모든 정치사회 체제도 전혀 바뀌지 않으며 전쟁은 끝났으니 미군이 고마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미군이 밖으로 나오면 아희들이 성조기를 들고 나와서 환영하였으며 미군이 혼자 무장을 하지 않고 기차를 타고 시골길을 다녀도 신변에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조선총독부가 우리의 독립투사들을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어둔 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컸다. 미군정청 치하에서 독립투사들은 모조리 빨갱이로 몰려 체포되거나 도망가거나 숨어서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본군의 정식 조선퇴각은 9월 30일부터 시작하는데 모두 10만 명 인원이었고, 일반 일본인은 10월 10일부터인데, 퇴각하는 인원이 무려 80만 명에 이르렀다. 돈 있는 자는 따로 밀항선을 이용하여 조선에서 챙긴 재산을 하나도 남김없이 고스란히 가져갔다. 조선총독부는 퇴각하기 직전에는 참으로 무차별로 화폐를 찍어내어 일본인에게 선심을 썼다. 그 돈으로 조선의 보물 보화는 모조리 사들여 일본으로 가져갔다. 일본인이 떠난 뒤에는 그 돈들은 어차피 휴지가 될 것이기 때문에 무진장 찍어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조선인들은 대를 이어 보관하고 있는 보물 보화라도 그 몇 10배 몇 100배를 주겠다는데 팔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일본인이 떠난 뒤의 조선은 종이쪽 같은 지폐만 남아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의 악마가 덮쳤다. 8월 15일에서부터 11월 사이에 조선의 물가는 30배나 뛰어올랐고 쌀값은 2,400배나 뛰어 올랐다. 조선총독부 재무국장 미즈타 나오마사는 나중에 본국에서 경제교란죄로 체포되기는 하지만 얼마 안 있어 금방 석방되고 만다.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도 맥아더 사령부에 의해 45년 12월에 전범으로 심문을 받게 되는데, 그는 반성은커녕 “일본 식민정책은 한국인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이었으며 한국인은 아직도 자신을 다스릴 능력이 없기 때문에 독립된 정부형태가 되면 당파싸움으로 다시 붕괴될 것”이라고 하며 남북공동정부 수립을 적극적으로 반대한다고 미국에 충고할 정도였다. 아베는 역시 무죄로 석방되었으며 78세라는 천수(1875-1953)를 다 누리고 죽는다.

  당시 미군 중에도 한국 내에서 뇌물수수, 폭행 등 범죄행위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였지만 미군정청의 검열을 받아서 출간되는 한국의 신문에는 미군비리에 대한 기사가 일언반구도 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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