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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펑더화이의 6.25
작가 : 주암
작품등록일 : 2017.12.15

펑더화이는 중국인민지원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온 총사령관이다. 펑더화이의 입장에서 보는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중국은 5차전역에 걸쳐 미군과 한국군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고 마지막으로 금성전투에서 엄청난 공격을 가하여 정전협정장으로 끌어낸다. 전선은 지루하고 소모적인 마지막 고지쟁탈전이 벌어지는데, 이런 과정에서 벌어진 삼감령전투는 중국군에 있어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흘러나온 첫 곡이 상감령전투의 주제곡이었다. 중국은 미제와 국경을 접하고 싶니 않아 이북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고, 미국은 중공을 견제하기 위하여 남한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다.

 
이년당 희의 3
작성일 : 17-12-15 16:58     조회 : 314     추천 : 0     분량 : 10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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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펑더화이는 생각했다. 참전하여야 한다. 우리는 미국과 어차피 1전을 벌리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미군의 무진장한 지원을 받은 국민당 군을 물리쳤지 않은가. 그렇다, 전쟁은 장비가 아니고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때 마오 주석의 전령을 가지고 시안에 왔던 예 비서의 말이 머리를 세차게 때리고 있었다. 비록 자기 개인 의견이라고 전제를 달기는 하였으나 어떤 중대한 임무를 맡길지도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예 비서는 무엇인가 분위기를 알고 하는 말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펑더화이는 예 비서의 ‘중대한 임무’라는 지점에 생각이 멈추자 “아!” 하고 혼자 탄성을 발하였다. 혹시 자기에게 조선파병의 임무를 맡기려는 것이 아닐까…. 펑더화이는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침대에 올라가 잠을 청할 수가 없어서 바닥에 침구를 옮기고 앉아서 출병 건에 몰두하였다.

  다음 날(10. 5) 아침 일찍 덩샤오핑이 북경반점으로 펑더화이를 찾아왔다. 마오쩌둥이 중난하이에 와서 아침 식사를 같이하자는 전갈이었다. 국향서옥에 도착하자 미리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가 기다리고 있었고, 식사는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덩샤오핑과 펑더화이까지 네 사람만 하였다.

  “펑 총, 어제는 아무런 발언도 안했는데 좀 서운했어요. 생각 좀 해보셨어요?”

  “네 주석, 실은 저는 어제 회의가 출병원조 건인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 머리 속에는 오직 서북건설만 맴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 출병원조 건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참전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저우언라이가 말을 거든다.

  “주석과 저도 참전을 해야 한다는 쪽입니다.”

  마오가 말한다.

  “라오 펑(老彭)의 의견을 들으니 마음이 놓이네요. 어제 저녁에 린뱌오, 가오강 두 동지가 여길 찾아와서 많은 얘길 나눴어요. 두 동지는 지금도 참전을 반대하는 입장인데 가장 큰 이유는 세계 제3차 대전이 일어날까봐 걱정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것은 지나친 기우예요, 오늘 속개되는 회의에서는 펑 노총의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발표해 주세요. 단 참전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모두 일리가 있어요.”

  “알겠습니다. 제 의견을 발표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만약을 위해서 묻는 말인데, 만약 참전을 한다면 누가 수장을 맡았으면 좋겠소?”

  “제가 양상쿤에게서 듣기로는 중앙에서 이미 린뱌오 동지를 보내기로 내정한 것 같던데요?”

  마오쩌둥은 이 말을 듣더니 당장 눈썹을 찌푸리고 두 눈마저 질끈 감아버린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한숨을 내 쉬었다. 마오쩌둥은,

  “그랬지요. 사흘 전에 나와 저우언라이, 리우샤오치, 주더 넷이서 상의한 결과 린뱌오를 보내기로 의견일치를 보았지요. 그 이유는 그가 해방전쟁 전체시기를 통해 동북지구를 이끌어 온 사람일 뿐만 아니라 동북 제4전군 사령관이었으니까요. 현재 남만주에 집결한 4개 군은 모두 애당초 동북지구에 있던 부대인지라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무엇보다 먼저 동북지구를 지원해야 하지요. 우리나라 장백산맥 지형의 특징이나 민정 풍속은 조선 북부의 실상과 대체로 비슷하지요. 이런 여러 면을 고려해서 그를 주장(主將)으로 보내자는데 합의 했지요. 그런데 며칠 전 내가 그의 의견을 타진하러 갔더니, 좀 긴장된 기색을 보이면서 건강이 안 좋다는 점만 강조해요. 날마다 불면증에 시달려서 햇볕도 무섭고 바람도 무섭고 사람의 목소리도 무섭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임무를 맡지 않았으면 하는 기색이 역려하드라니까요. 펑 총(彭總)! 린뱌오가 안 맡는다면 당신 생각에는 누가 가장 적임자일 것 같소?”

  “그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 주석의 의중입니다. 주석께서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을 정해야 뒤탈이 없을 것입니다.”

  “라오 펑! 나는 실은 참전을 한다면 당신을 마음에 두고 있는데 라오 펑의 의견은 어떻소?”

  펑더화이는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쳤고, 여기서 뒤로 빼는 모습을 보여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이 들었다.

  “만약 주석의 의견이라면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단 당중앙의 의견통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제야 마음이 놓이네요. 물론이지요. 됐어요. 됐어.”

  오후에 회의는 속개되었다. 국가 부주석이며 동북(만주)인민정부 주석인 가오강(高崗)이 발언을 하였다. 동북은 조선과 국경을 직접 접하고 있기 때문에 가오강의 위치는 아주 중요했다.

  “나는 동북에 있기 때문에 조선인들의 생각을 잘 압니다. 조선인들은 동북을 자기네 국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고조선이 있던 땅이고 고구려의 땅이었고 발해의 땅이었기 때문에 누구나 자기의 고향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동북인민군은 당연히 조선전쟁에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을 분명히 하고 우리의 국익에 의하여 행동하여야 합니다. 지금은 모든 여력을 국가건설에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건국한지 1년 밖에 안 되었으며 내전의 피해가 너무나 큽니다.”

  이번에는 린뱌오가 다시 발언을 한다.

  “우리가 미국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중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적으로 삼을 것이 아니고 오히려 아군으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미국은 벌써 우리에게 정보를 흘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조선에 파병을 하지 않으면 우리와 외교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는 암시를 보냈습니다. 물론 하나의 음모일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그들을 역이용하면 됩니다. 오히려 좋은 기회일 수 있습니다. 지금 이대로 싸운다면 미국은 일본이 우리 국민을 살상한 수보다 훨씬 많은 수를 살상할 수도 있습니다.”

  펑더화이는 이제야말로 발언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왜 모두 반대만 하십니까? 생각해 보세요. 미국이 만약 조선반도 전체를 점령한다면 동북지역이 편안할 것 같습니까? 동북뿐만 아니라 중국전체가 막대한 위협에 빠질 수 있습니다. 지금 시간은 급박합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어요. 나는 출병원조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잘못 되어도 기껏해야 국내해방전쟁의 승리가 몇 년 늦어지는 정도입니다. 미국이 전체 조선을 점령하고 우리의 문 앞에서 우리와 얼굴을 맞대고 대치한다면 그들은 언제라도 핑계를 대고 중국에 쳐들어 올 수 있습니다. 이왕 싸울 것이라면 나중에 싸우는 것보다는 미리서 싸우는 것이 낫습니다. 미국은 대만해협을 봉쇄함으로 벌써 우리에게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대만해방을 코앞에 두고도 미국 때문에 공격을 못하고 있는데 여기서 다시 양보한다면 우리는 벌써 미국한테 무릎을 꿇는 격입니다. 이왕 전쟁을 할 바에야 전장(戰場)을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로 설정하는 것이 열 번 낫습니다. 건설은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건설은 먼저 급한 전쟁을 마치고 나서 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모두 일시에 시선이 펑더회이에게 꽂힌다. 펑더화이는 더 힘주어 말한다.

  “우리에게 숱한 곤란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껏 모두가 피력한 정황도 모두 사실이고요. 하지만 적에게도 약점은 있습니다. 그것은 병력이 부족하고 보급노선도 길게 뻗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 본토에서 조선까지 약 5천여 해리나 떨어져 있으니까요. 우리는 물론 전반적인 면에서 문제를 관찰해야 합니다만, 적이 조선반도 전체를 점령했을 경우, 이것은 바로 우리나라에 막대한 위협이 됩니다. 과거 일본이 중국을 공격해 왔을 때도 바로 조선을 발판으로 삼아 우선 동북 3성을 공격하고, 다시 동북 3성을 도약대로 삼아 관내까지 대거 진공해 왔습니다. 이 역사적 교훈을 소홀히 보아 넘겨서는 안 됩니다. 이번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미국 침략군으로 우리 입장에서 얕잡아 볼 수 없는 상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자체의 실력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1947년 후중난(胡宗南) 군이 옌안으로 진격해 왔을 때, 그 병력은24만 명이고 공군의 지원도 있었으며 무기 장비도 거개가 미제였습니다. 아군 장비와 비교해 보면 몇 배나 많고 우수했습니다. 아군은 겨우 2만 5천 명으로 적군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았고 무기도 낡고 소총 한 자루 당 배정된 실탄은 20발에서 30발을 넘지 못했습니다. 산시(陝西), 간수(甘肅), 닝샤(寧夏) 성 지역은 토지도 척박하고 인민도 가난한데다가 인구마저 고작 1백만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후중난 군을 격파할 수 있었습니까. 첫째, 우리는 정의로운 전쟁으로 스스로를 보위하려는 전쟁을 했습니다. 둘째, 변방지역 민중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습니다. 셋째, 민첩하고도 신축성 있는 기동전략과 융통성 있는 기동전술에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현재 우리는 이미 전국의 정권을 장악했고 수백만 군대와 전국인민의 지원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세한 장비의 적에게 대응한 경험을 지닌 이상, 전략 전술 면에서 중대한 실책과 오류만 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미국 침략군을 격파할 자신이 있습니다.”

  너무나 힘주어 말하는 펑더화이의 말에 모두는 일시에 말문이 막힌 듯 했다. 듣고 있던 마오쩌둥이 말을 이었다.

  “미국이 조선에서 승리하게 되면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무기의 다과를 너무 중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무기에 해당하는 무궁무진한 인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핵은 없지만 수류탄이 있어요. 만약 우리가 출병하지 않는다면 적군은 압록강까지 침범할 것은 분명합니다. 참전하게 되면 이익이 클 것이고 참전하지 않으면 손해가 클 것입니다. 요 며칠간 상당수의 동지들이 참전불가의 이유를 말했습니다. 다 국가를 위한 말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조선인민과 조선노동당원들은 우리의 항일전쟁, 해방전쟁에서 중국혁명 사업을 위하여 우리와 같이 피를 흘러주었어요. 어느 소수민족이 우리의 내전을 자기의 내전으로 알고 그들처럼 우리와 함께 싸워준 민족이 있습니까? 지금 조선은 민족적 위기에 처해 있어요. 그들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워주었는데 우리는 그들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요? 수 백 수 천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해도 이 한 가지 이유를 반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애국주의의 입장에서도 그렇고 국제주의의 입장에서도 조선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우리가 떨쳐 일어나 주어야 합니다. 견의용위(見義勇爲. 의를 보면 용감히 일떠서는 것)는 우리 중화민족의 특기이며 전통미덕이 아니었습니까? 결론적으로, 현대에서는 누구나 힘센 나라가 힘 약한 나라를 마음대로 유린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약한 나라를 치는 나라는 돌멩이로 자기 발등을 찧는 격이 되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마오쩌둥은 자기가 너무나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나 약간 후회도 해보았으나, 그러나 자기가 뜻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계속하였다.

  “물론 우리가 출병하지 않을 이유 또한 백 가지도 더 됩니다. 그러나 현재 미제의 창끝이 동북을 향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좁은 면적을 가진 지역이기 때문에 우리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며칠을 버티기 어렵습니다. 만일에 조선이 미국에 의해 점령된다면 그들이 압록강을 건너오지 않더라도 우리의 동북은 미국의 위협 속에 나날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평화적인 건설도 어려워져요. 우리가 조선 문제를 방치하면 미제는 득촌진척(得寸進尺. 작은 것을 먹으면 더 큰 것을 먹으려 함)할 것이 분명합니다. 미제는 일제가 중국을 침략하는 모습을 잘 보아 왔으며 그 루트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친다면 오히려 일제가 했던 만행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국은 지금 세 개의 칼날을 우리에게 향하고 있어요. 첫째, 조선으로부터의 칼날은 우리의 머리를 향하고 있고, 둘째, 대만으로부터의 칼날은 우리의 배를 향하고 있고, 셋째, 베트남으로부터의 칼날은 우리의 발등을 향하고 있어요. 사 불리하면 그들은 이 세 방향에서 중국을 동시에 진공해 올 수도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피동적인 대상이 됐을 때는 이미 늦어요. 우리가 지금 결의하려는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항거하여 조선을 도움)는 그들의 생각대로 가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한 번 주먹을 뻗어서 백 대의 주먹을 막는 일입니다. 항미원조는 순망치한, 호파당위(戶破堂危. 대문이 부서지면 집 본채도 위험에 빠짐)를 막는 일입니다. 단 여러 사람이 주장하였고 나도 동의하지만 우리는 장비 면에서 미국에 뒤집니다. 소련의 협조는 어떤 형태로든 필요합니다.”

  마오는 북벌전쟁, 항일투쟁, 국공내전을 거치면서 조선인의 의지와 용감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중국인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정신무장이며 항일의지, 높은 지식수준은 마오의 입장에서는 반할 정도였다. 이런 나라를 철저한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다. 중국인은 항일의지가 조선인에 비하여 훨씬 미치지 못했다. 특히 동북인민은 수 천 년 동안 흉노, 거란, 여진, 몽골의 노략질을 당해 왔으며 근래에 와서는 부패한 장제스 정부의 착취와 마적 떼들의 강탈로 지쳐 있는 사람들이다. 일본인들이 침략해 와도 그들은 마적 떼 정도로 생각했다. 어차피 강탈당하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동북뿐만 아니라 대만 같은 경우는 오히려 일본인을 환영하는 분위기까지 있다. 포르투갈 인이 통치하다가 네덜란드 인이 그들을 쫓고 통치하였으며, 명나라의 정청꿍(鄭成功)이 도망 와서 또 네덜란드 인을 내쫓고 통치하다가, 청이 이를 정벌하고 푸젠 성(福建省)의 일부로 편입하였으며, 일본이 조선에서의 청일정쟁의 대가로 이를 할양받았고, 이어서 장제스가 망명하여 통치하고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누구의 통치를 받고 착취를 당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 중에서 가장 통치를 잘해 주었다고 생각하는 일본에 가장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대만인의 일본에 대한 짙은 향수는 누구도 말리지 못한다. 그러나 조선인의 항일의지는 전혀 다르다. 중국인이 발 벗고 따라가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강하며 정부수립까지 중국을 도와준 조선의용군의 은혜는 너무나 크고 감격적인 것이었다.

  마오의 말이 막 끝나가려는 즈음에 밖에서 사령원이 들어와 마오쩌둥에게 조용히 말한다.

  “풍택원에 소련 손님이 와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급한 일이라고 합니다.”

  조용한 말이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은 알아들을 수 있을만한 음량이었다. 마오쩌둥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소련에서 급한 손님이 왔다니 잠깐 만나고 오겠소. 잠시 휴회하겠습니다.”

  마오는 바로 옆에 있는 풍택원에 가서 소련 손님을 만나고 20분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종이 한 장을 들고 밝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방금 스탈린 동지로부터 친서를 받았습니다. 스탈린 동지는 김일성 동지의 요구를 받아들여 원조를 하기로 결정했고 중국의 출병에도 찬동한다고 했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하지는 않지만 일단 출병을 결정해도 되지 않겠어요?”

  “찬성합니다.”

  몇 사람이 찬성한다고 입을 모았고 나머지도 대부분 긍정적인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로써 출병원조는 결정 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사태를 만회할 길이 없음을 안 린뱌오가 불쑥 한 마디 하였다.

  “만약 반드시 출병하여야 한다면 출이부전(出而不戰)하여야 합니다.”

  출이부전이라니, 출병은 하되 싸우지 않는다. 그런 방법이 있을 수 있을까? 린뱌오는 실은 한국전쟁에 대하여 가장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었다. 9월초 주북한 무관 차이청원(柴成文)이 북경에 돌아오자 그를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식사를 같이 하며 자세한 조선소식을 듣는가 하면 다른 여러 정보 루트를 통해서 가장 민감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마오쩌둥은 린뱌오에게 물었다.

  “어떻게 출이부전할 수 있단 말이오?”

  “첫째는 동북지방까지만 출병하여 감히 미국이 중국을 넘보지 못하게 겁박하는 방법이 있고, 둘째는 조선까지 출병을 하되 북부지방에 주둔하며 협상하는 방법이 있고, 셋째는 만부득이 싸워야 할 경우라도 연구를 해보면 우리의 인력을 최소한으로 소모하고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이 날 린뱌오의 의견은 무시되고 일단 출병원조는 결정을 보았다. 그런데 제4야전군의 린뱌오가 책임을 맡으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제1야전군 펑더화이가 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아직 정치국의 정식 동의가 필요하지만 일단 지원군 총사령관에 펑더화이, 부사령관에 홍쉐즈(洪學智), 덩화(鄧華), 한센추(韓先楚), 그리고 병단 참모장에 제패이란(解沛然=제팡〔解方〕)으로 결정을 보았다.

  회의가 파하자 마오는 린뱌오와 펑더화이만 불러 극비의 상황을 논의 하였다. 특히 린뱌오의 출이부전의 세 번째 방법을 물었다.

  “린 총! 오늘 회의에서 말한 세 번째 출이부전의 방법에서 인력을 최소한으로 소모하고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는데 그 방법을 자세히 좀 말해주세요.”

  “제가 먼저 주석께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무엇이오?”

  “저 많은 국민당군의 포로를 어떻게 처리하실 계획이십니까? 그들은 진심에서 항복해 온 인원이 아니기 때문에 공산당의 시책에 절대 진심에서 복종할 인원이 아닙니다. 물론 지금까지 많이 돌아섰고 이 뒤로도 돌아서겠지만 끝까지 심복하지 않을 인원이 제 생각으로는 최소한 200만 명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이오. 실은 나도 저들을 어떻게 취급하여야 하나 고민 중에 있었소. 그들을 처리할 계획이라도 있는 것이오?”

  그러자 펑더화이도 린뱌오를 보고 말을 한다.

  “무슨 좋은 방책이라도 있소?”

  “있습니다. 이번 조선전쟁에서 그 국민당 군을 소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거양득입니다. 우리의 대미전쟁에 적극성도 보이고 우리의 최대의 골칫거리를 해우(解憂)하는 방법이기도하고요.”

  마오쩌둥과 펑더화이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탄복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세 사람이 얼굴을 마주보며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마오가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찬성이오. 이제부터 지원군으로 조선에 들어갈 해방군병력의 배치 문제는 일체 린 총에게 맡기겠소.”

  “고맙습니다. 제가 펑 총과 타협해서 드러나지 않게 면밀히 배치하겠습니다. 단 일체의 권한을 저에게 일임해 주셔야만 합니다.”

  “알겠소. 일임하겠소.”

  알고 보면, 불만세력을 전쟁터에서 소모하는 것은 특별한 묘책도 아니다. 전쟁을 하는 자들이 오래 전부터 써오던 상투적인 수법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가장 큰 원인이 국내 불만세력을 해외로 축출시키려는 것이었다. 전국시대의 일본열도 안에는 2백 개 이상의 나라들이 난립하였다. 미천한 신분으로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는 기라성 같은 영웅호걸들이 언제 어디서 자기의 목에 칼을 들이댈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조선침략이었다. 도요토미의 입장에서는 싸움은 이겨도 좋고 져도 좋은 것이다. 불만세력들을 모두 소비하고 국론을 통일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소련이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켰지만 그 반대세력이 대단하였다. 특히 귀족이며 군인, 지식인들의 강한 저항에 부딪쳐 많은 어려움을 격고 있었다. 그 때 히틀러가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키고 바바로사(Barbarossa)계획에 의하여 소련을 침공해 옴으로서 오히려 소련 공산혁명을 완성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어 주었다. 스탈린은 혁명에 저해가 되는 인원을 애국이라는 명분으로 징집하여 전선으로 내몰아 죽게 함으로써 불만세력을 일시에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스코 전투(Battle of Moscow) 시 약 5개월여 동안에 400-500만 명의 사상자가 나왔는데 그 안에 대부분이 혁명 불만세력들이었던 것이다.

  바로 1개월 전까지만 하여도 김일성이 낙동강전선 공방전에서 이 방법을 써먹고 있었다. 북한은 8월초까지 1개 전차사단과 9개 보병사단을 낙동강 전선에 동원하였고 다른 3개 보병사단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이 공방전은 8월초에서 9월 중순까지 계속되는데 낙동강 전선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고 있을 때, 그들은 남한 청년 40만 명을 강제도 징집하고, 또 각 감옥소에 수감되어 있던 반공죄수들을 의용군이라는 명목 하에 낙동강 전선에 투입하여 소모전을 벌리고 있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개시와 더불어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총반격을 하게 됨으로 그들의 불만세력 소모전도 무의미하게 끝나고 만다.

  마오는 린뱌오를 보며 이번에는 다른 문제를 꺼냈다.

  “그리고 출병원조군의 명칭문제를 나와 저우언라이 동지가 생각해 둔 것이 있는데, ‘항미원조 지원군’ 어떻소?”

  “미국에 항거하여 조선을 돕는다는 항미원조(抗美援朝)는 좋습니다만, 지원군은 가지 지(支)자 입니까 뜻 지(志)자 입니까?”

  “뜻 지자 지원군(志願軍)이지요. 그래야 정식 선전포고에 의한 전쟁참여가 아닌 게 되지요.”

  “좋습니다.”

  린뱌오와 펑더화이가 동시에 찬성하였다.

  사흘 전,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는 일단 조선에 출병하기로 의견이 모아지자 급히 황옌페이(黃炎培)를 불렀다. 황옌페이는 경제계의 원로이자 비공산당원인 부총리로서 항상 정도를 가는 원로로 잘 알려져 있었다. 황은 비록 두 사람이 가정을 하고 묻는 말이라고는 하지만 둘의 뜻이 합치되었다면 결정된 사항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신중히 자기의 의견을 말해 주었다. 지(支)원군이라 하면 정규군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말썽이 날 소지가 많으니 지(志)원군이라고 하면 개인적인 의지에 의하여 참여한 군대가 되기 때문에 말썽이 날 염려가 적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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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6.25 술래잡기 1 2017 / 12 / 15 314 0 9418   
13 몸부림치는 백범 4 2017 / 12 / 15 298 0 10070   
12 몸부림치는 백범 3 2017 / 12 / 15 300 0 7732   
11 몸부림치는 백범 2 2017 / 12 / 15 304 0 11143   
10 몸부림치는 백범 1 2017 / 12 / 15 306 0 10304   
9 조선의용군의 입북 3 2017 / 12 / 15 305 0 8035   
8 조선의용군의 입북 2 2017 / 12 / 15 314 0 9334   
7 조선의용군의 입북 1 2017 / 12 / 15 320 0 11453   
6 절치부심 3 2017 / 12 / 15 308 0 6930   
5 절치부심 2 2017 / 12 / 15 317 0 9057   
4 절치부심 1 2017 / 12 / 15 318 0 6909   
3 이년당 희의 3 2017 / 12 / 15 315 0 10371   
2 이년당 회의 2 2017 / 12 / 15 323 0 4669   
1 이년당 회의 1 2017 / 12 / 15 516 0 9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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