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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햇볕이 따스한 백악관의 오후는 한가했다. 애치슨은 백악관 경호원의 경례도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곧바로 대통령 집무실로 직행하였다. 복도에서 친하게 지나던 브라이언 정책보좌관을 만났는데도 건성으로 인사하고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각하! 지금 마오쩌둥과 스탈린이 만나고 있습니다. 그 둘이 힘을 합하면 우리와 영국이 힘을 합한 것보다 더 커질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뭐라고요? 그 둘은 좀처럼 합쳐지기 어려울 것이라 하지 않았소? 그 둘이 합칠 수 없게 해야 해요.”

　 “우리가 대만을 포기한다고 하면 마오쩌둥은 우리의 양보를 알고, 우리의 소련 고립정책에 동조하지 않을까요?”

　 “그것 괜찮소. 그러면 지금 당장 우리가 대만을 포기한다고 발표를 하세요. 그들이 손을 잡으면 절대 안 되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마오쩌둥이 대만도 점령하고 소련과도 손을 잡는다면 최악의 사태가 아닙니까?”

　 “그렇군요. 더 최악의 경우는 마오쩌둥이 대만을 점령하고 소련이 중국의 협력 하에 대만을 이용할 수 있다면 더 위험한 상태가 됩니다. 소련이 원자폭탄을 보유한지도 벌써 1년 가까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어느 경우도 우리한테 이익은 없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수소폭탄을 만들어서 소련의 우위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실은 미국의 현재 가장 큰 문제는 2차 대전 이후의 해이한 국방태세예요.”

　 “그렇습니다. 저도 이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2차 대전의 승리감에 도취되어 지금 군기는 해이할 데로 해이해져 있으니까요. 그 문제로 저도 각하께 말씀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이 때 부자가 울리고 비서실에서 “각하? 지금 농무부 장관이 급히 결재 받을 일이 있다고 합니다.” 하자 트루먼은 한가한 말하고 있다는 식으로 신경질 섞인 말투를 내뱉는다. “기다리라고 해. 어떤 결재도 잠시 중지해요.”

　 트루먼은 애치슨에게 말을 잇는다.

　 “그래, 해이한 미군의 군기를 잡고 해이한 미국국민의 나사를 조이는 방법은 없겠소?”

　 “우리를 유리하게 만든 것은, 지구의 어느 한 구석에서 전쟁이 일어나야 하고 미국이 이에 관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힘도 과시하고 군수물자도 팔고 세계의 경찰국가로 군림할 수 있습니다.”

　 “그렇소. 그런데 지금은 어디서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 않지 않소?”

　 “한국의 무초 대사의 말에 의하면 이승만은 북진통일을 노래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밀고 올라갈 사람이기 때문에 미군에서 휘발유를 사흘 분 이상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날 분을 그날 주는 상황이랍니다. 휘발유 한 방울 나지 않고 펜촉 하나도 못 만드는 나라가 미국만 믿고 저리 날뛰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군대도 모두 9만여 명 밖에 안 되는데 그중 4만 명이 후방에 있습니다. 전쟁을 노래 부르기는 이북의 김일성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 대신 이북은 이남의 배나 되는 군대를 보유하고 있고 주력부대는 중국혁명에서 갈고 닦은 역전의 용사들입니다. 경제적으로도 이남보다 훨씬 우위입니다.”

　 “그 상황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소?”

　 “있습니다. 우리가 허점을 보이면 이북은 당장 쳐들어갈 것입니다. 우리의 동양방위선을 한국은 제외한다고 발표하면 어떨까요?”

　 “아주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트루먼은 루즈벨트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하자 부통령이 된지 불과 82일 만에 대통령을 승계한 사람이다. 그 동안 루즈벨트 대통령을 단 2차례 만난 일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945년 4월 12일 루즈벨트 대통령이 사망할 당시 트루먼은 정부의 정책이나 계획에 대하여 거의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원자폭탄의 개발이나 악화일로로 치닫던 소련과의 관계도 보고받은 바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의 업적은 대단히 많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독일의 항복을 받았고 태평양전쟁에서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히로히토 일본왕의 항복을 받아냈다. 냉전시대에는 1947년에 그리스와 터키정부에 군사적, 경제적 원조를 실시하여 공산주의자의 압력을 약화시켰고, 48년에는 마셜(George C. Marshall) 플랜으로 서유럽의 경제를 복구하기 위하여 170억불의 원조를 4년 동안 제공하였다. 같은 해,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하여 유럽의 비공산주의 국가를 주축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라는 집단안보기구를 창설하였다. 1949년 중국공산당 혁명이 성공하자 트루먼의 봉쇄정책은 중국으로 확대되었다.

　 6.25 전쟁이 일어나던 날이 미국으로는 하루 전인 24일이다. 트루먼은 주말을 자기의 고향 미주리 주 인디펜던스에서 보내고 있었다. 일찍 잠자리에 들려는 밤 9시쯤에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애치슨이 메릴랜드의 자기 집에서 건 전화였다.

　 “각하! 급한 일입니다. 북한군이 남한을 전면 공격했답니다. 무초 대사의 말에 의하면 전에 있었던 소규모 전투와는 완전히 성질이 다른 본격적인 침공이랍니다.”

　 “잘 됐습니다. 당장 개입하도록 합시다. 먼저 유엔 사무총장에게 연락하여 안보리 소집을 준비하라고 해요. 나는 도쿄의 맥아더 장군과 통화하고 즉시 워싱턴으로 돌아가겠어요.”

　 “각하! 유엔 사무총장에게는 제가 즉시 연락하겠습니다. 맥아더 장군과 이야기나 좀 나누시다가 푹 주무시고 내일 워싱턴으로 오십시오. 야간비행이 위험합니다. 기타 조치는 제가 다 취하겠습니다.”

　 실로 트루먼의 한국전 개입은 애치슨으로부터 소식을 듣자마자 10초 안에 결정한 것이었다.

　한 나라가 전쟁을 한다는 것 이상 큰 문제가 없는 것인데 10초 안에 참전을 결정했다는 것은 그 안에 모든 것이 결정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트루먼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맥아더는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대만이었다. 대만이 만약 공산당의 수중에 들어가면 미국의 맞수인 소련이 이를 이용할 가능성이 많다. 그렇게 되면 소련에게 항공모함 수십 척으로 조직된 함대를 내어주는 셈이며 오키나와와 필리핀의 미국 기지를 궁지에 몰아넣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만을 모택동이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트루먼도 결국에는 맥아더의 계획대로 대만을 봉쇄하면 한국 문제를 국부적으로 국한시키고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해이해진 정신을 재무장 할 수 있으리라 믿고 맥아더의 시책에 동의한다.

　 아직 중국의 대표권을 가지고 있는 장제스는 6.25가 터지자 전쟁의 배후에는 소련이 있고 이는 서방 민주주의의 아시아 정책이 실패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참모총장 저우즈러우(周至柔)와 국방장관 꾸오지자오(郭寄嶠)가 총통부 총통집무실에 들어서자 책상 위에 놓인 재떨이를 쓸어 팽개치며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야, 당신들도 생각을 해봐. 도대체 미국의 정책이란 것은 틀려먹었단 말이야. 유럽에서는 서구 민주주의가 북대서양공약인지 나토조약인지를 체결하고 마셜 플랜이란 것을 채택하여 공산세력의 팽창을 잘 막았지 않아.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소련의 중국침략을 좌시했지 않아. 중구경아(重歐輕亞. 유럽을 중시하고 아시아를 가벼이 봄) 정책을 쓰다가 이 꼴이 된 거지 뭐야.”

　 “그러나 우리는 미국의 비위를 거스르는 일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알았어요. 알았어.”

　 꾸오지자오 국방장관의 말에 장제스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한다.

　 그러다가 중화민국이 6월 29일 유엔으로부터 유엔회원국의 한국전 파병을 승인한 안보리의 결의를 통보받자 즉시 3개 사단의 파견을 결정한다. 리우렌이(劉廉一) 장군이 지휘하는 제67군을 주력으로 제80군의 제201사단을 더하여 3만 5,000명 정도의 1개 군을 편성하여 20대의 C-46수송기로 병력을 실어 한국으로 나르기로 했다. 이들 제67군은 1949년 10월 저우산 군도(舟山群島) 덩부 도(登步島) 전투의 주력부대였고, 제201사단은 동월 진먼(金門)의 구닝터우(古寧頭) 전투의 주력부대였다. 이 두 부대는 모두 공산군과의 전투에서 충분한 경험과 승리의 경험이 있는 부대였다. 파병준비는 마쳤으나 이들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할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손에 달려 있었다. 중화민국 주일대표단장 허스리(何世禮)가 일본 황궁〔皇居〕의 도랑가 다이이치 빌딩의 6층 맥아더 집무실(54평방미터)을 찾아가 중화민국의 한국전 참전을 타진하였으나 그는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허스리는 반문하였다.

　 “어찌 안 된다는 것입니까. 장군. 속 시원히 말이나 좀 해주세요.”

　 “중화민국이 한국전에 참가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요. 대만이 경거망동하면 자칫 대만 자체를 잃을 수도 있어요. 나는 대만만은 절대 잃게 할 수가 없어요. 대만 군대가 북쪽으로 이동하여 한국전에 참여한다면 미군이 그 빈자리를 메꾸어야 하는데 그러느니 차라리 미군이 직접 참전하느니만 못해요.”

　 “그러나 장제스 총통의 의지는 아주 분명합니다. 우리는 유엔 상임이사국 이예요. 우리가 한국전에 참전하겠다는데 못할 이유가 뭡니까.”

　 “안됩니다. 지금 대만은 중화기가 부족하고 병사들에게 지급할 급여도 결핍되어 있는 상태라고 알고 있어요. 한국에는 아직 가용할 만한 보병이 있는데 그들이 패한 이유는 중화기가 부족했기 때문이어요. 만약 당신네가 참전한다면 미국이 현재 지고 있는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뿐이에요. 내가 먼저 제7함대 사령관을 타이뻬이(台北)에 파견하겠어요. 그래서 미 해공군과 타협하고 국부군을 재편해서 별도의 용도로 사용할 방법을 강구하겠어요. 국부군이 유엔군으로 참전하는 것만은 반대이니 그리 아세요.”

　 중화민국은 5개 유엔 상임이사국 중의 하나이기는 하였으나 대만으로 쫓겨 온 상태에서 다른 상임이사국과 동등한 자격일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