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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펑더화이의 6.25
작가 : 주암
작품등록일 : 2017.12.15

펑더화이는 중국인민지원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온 총사령관이다. 펑더화이의 입장에서 보는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중국은 5차전역에 걸쳐 미군과 한국군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고 마지막으로 금성전투에서 엄청난 공격을 가하여 정전협정장으로 끌어낸다. 전선은 지루하고 소모적인 마지막 고지쟁탈전이 벌어지는데, 이런 과정에서 벌어진 삼감령전투는 중국군에 있어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흘러나온 첫 곡이 상감령전투의 주제곡이었다. 중국은 미제와 국경을 접하고 싶니 않아 이북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고, 미국은 중공을 견제하기 위하여 남한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다.

 
이년당 회의 1
작성일 : 17-12-15 16:47     조회 : 515     추천 : 0     분량 : 9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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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년당 회의

 

 

  1

 

  1950년 10월 4일, 중화인민공화국의 신정부가 수립(1949. 10. 1)된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이다. 이제는 서북지방 경제개발의 책임을 맡고 있던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북국 서기 펑더화이(彭德懷)의 시안(西安) 사무실 앞에 지프차 두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급정거하였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날씨가 흐리고 황사가 뿌옇게 끼어 금방이라도 천둥번개가 칠 것처럼 찌뿌드드한 날씨였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대개 누추한 인민복 차림이지만 표정만은 아주 밝다.

  정차한 지프차의 속력이 몰고 온 흙먼지가 앞으로 한 바탕 몰려가고 앞차에서 한 명, 뒤차에서 두 명의 인민해방군이 내린다. 앞차에서 내린 상급자로 보이는 자를 중심으로 두 명이 몇 발작 뒤에서 따르며 서북군정위원회 사무실이 있는 건물로 직행한다. 상급자로 보이는 자는 마오쩌둥(毛澤東)의 기요비서 예즈롱(葉子龍)이고 뒤 따르는 두 명은 중앙 판공청(辦公聽) 경위처(警衛處)에서 파견한 인원이었다. 그들이 건물 앞에 이르자 보초가 굳은 자세로 거수경례를 붙인다. 예즈롱이 사무실로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있던 펑더화이는 급히 일어났고 서로가 거수경례를 교환한다.

  “어서 오세요. 예 동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소?”

  “펑 총(彭總). 오랜만입니다. 기밀을 요하는 일이여서 자세한 내용설명은 할 수 없었습니다. 마오 주석의 전령입니다.”

  “네? 마오 주석께서.”

  예 동지로부터 전령을 받아 든 펑더화이는 갑자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무슨 일이기에 지금 당장 북경으로 오라는 것일까?”

  “저도 잘 모릅니다. 저는 다만 전령을 전하는 것뿐입니다.”

  “뭐 짚이는 것이라도 없소?”

  “없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라도 좋으니 아는 대로 말해주시오.”

  “꼭 제 개인적인 의견이라도 듣기를 원하신다면, 혹시 무슨 중대한 임무라도 맡기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제 개인적인 견해일 따름입니다.”

  “알겠소. 고맙소.”

  시안에 보내온 은회색 리(里)-2형 전용기 편으로 펑더화이가 북경 서교공항〔西郊機場〕에 도착한 것은 당일 오후 4시 5분으로 느지막할 즈음이었다. 펑더화이는 서북지구 경제발전계획 보고를 하라고 할지 몰라서, 서북지구 단위경제회복 발전 3개년 계획안과 조사 보고서, 통계 도표 뭉치를 몽땅 챙겨서 가지고 왔다. 펑더화이가 대동한 인원은 비서 장양우(張養吾)와 경호원 구오홍량(郭洪亮) 두 사람 뿐이었다. 펑더화이가 급히 트랩을 내려오자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던 중앙 판공청 경위처장 리수화이(李樹槐)가 손수 평더화이의 가방을 받아들고 뒤따랐다.

  펑더화이는 북경공항에 대기하고 있는 지프차에 몸을 싣고 급히 북경시내로 들어섰다. 북경은 시안의 날씨와는 달랐다. 희미한 가랑비가 흩뿌리다가 그치자 훈훈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중화인민공화국 탄신 1주년이 사흘 지난 북경거리는 곳곳에 아직 거대한 표어나 채색된 패루(牌樓)가 남아 있어 번화했던 전일의 광경을 떠올리게 했다. 국경일의 불꽃놀이 폭죽이 아직도 가끔 들리고 있었고 폭죽냄새도 코를 자극하고 있었고 환희의 인파 역시 천안문 광장에서 완전히 떠나지 않고 있었다. 천안문 성루 앞의 5성 홍기는 바람에 나부끼고 금수교(金水橋) 호반의 가을꽃이 햇빛에 반사되어 진한 색깔을 띠고 있다. 북경은 가랑비가 몇 차례 내린 뒤여서 길 가 버드나무 가지의 잎은 아직 무성하면서도 누릇누릇 낙엽이 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낙엽에 달려있는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은구슬 강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구식 궤도열차도 경적을 울리면서 달리는 것이 사뭇 평화스러워, 이 나라가 언제 그처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렀는지 가늠이 안 갈 정도였다. 시 중심을 관통하는 장안대가(長安大街)에는 오가는 많은 사람과 깃발이 한데 어우러져 새로운 중국을 상징하는 생기발랄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펑더화이가 북경에 오기 직전, 시안에서도 20만 명의 군중이 신청(新城) 광장에서 북, 꽹과리를 치고 피리를 불며 신중국의 1주년을 경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펑더화이도 서북국과 서북군구의 시중쉰(習仲勛), 양더즈(楊得志), 리즈민(李志民), 마밍팡(馬明方), 마원루이(馬文瑞) 등 지도자급 인사들과 함께 경축대회에 참석하고 경축시위 대열을 사열하였다.

  북경 왕부정(王府井) 거리의 남쪽 입구 쪽 북경반점(北京飯店) 호텔에 갑자기 군의 호위를 받은 손님이 나타나자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심상찮은 표정으로 바라본다. 펑더화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3층 309호실로 들어가서 가방만 탁자 위에 올려놓고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다시 나와 지프차를 타고 급히 중난하이(中南海)의 이년당(頤年堂) 중앙정치국 긴급회의실로 달려갔다. 오늘 회의가 있는 것도 공항에 도착해서야 알았지만 오늘 회의가 어떤 회의인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다만 중난하이의 이년당 회의라면 가장 중요한 국사를 논의하는 자리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미리 기별을 받고 회의 도중에 잠깐 나와서 평더화이를 맞이한다.

  “펑 총(彭總)! 어서 와요. 기다리다가 먼저 회의를 시작했어요.”

  “미안합니다. 어서 들어가십시다.”

  중난하이의 면적은 자금성보다도 넓다. 중해와 남해라는 두 개의 인공호수를 가지고 있어서 보통 중남해라고 했다. 중국공산당의 모든 주요 기관이 이 안에 포진하고 있다. 자금성의 정문인 천안문에서 서쪽으로 나 있는 서장안가(西長安街)의 붉은 담장을 따라 걸어가면 신화문(新華門)이 나온다. 이 신화문이 바로 중난하이의 정문이다. 중해와 남해 사이의 가장 중심건물인 근정전(우리 경복궁의 근정전과 이름이 같음)이 있고 그 곁에 풍택원(豊澤園)이 있고, 풍택원 내에 이년당이 있다. 과거 황제가 풍년을 기원하며 파종을 했다는 풍택원 내에는 황제의 서재였던 국향서옥(菊香書屋)이 있는데 마오쩌둥이 관저로 사용하고 있었다.

  회의는 오후 3시부터 시작되었으나 펑더화이가 이년당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였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 마오쩌둥이 직접 주재하는 회의였다. 중국공산당이 채택한 허심탄회한 난상토론식의 회의장이다. 위치 배정도 약간 오므라진 ㄷ자 형의 자유스러운 형태인데 마오쩌둥은 ㄷ자의 한 각진 곳에 다른 사람과 같은 인민복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가운데 대형탁자도 없고 다만 서너 개 찻잔을 놓을 수 있는 소형 원탁들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회의 제목은 조선전쟁에 중국이 참전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대토론회였다. 이날 중앙정치국 확대회의에 참석한 공산당 고위층은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朱德), 류사오치(劉少奇), 런비스(任弼時)의 중화인민공화국 수립당시 5대 서기가 모두 참석하였고, 덩샤오핑(鄧小平), 린뱌오(林彪), 가오강(高崗), 천윈(陳雲), 동비우(董必武), 린보취(林伯渠), 장원텐(張聞天), 랴오수스(饒漱石), 녜룽전(聶榮瑧), 양상쿤(楊尙昆), 후차오무(胡喬木), 리푸춘(李富春), 뤄룽환(羅榮桓), 펑전(彭眞), 보이보(薄一波), 덩즈후이(鄧子恢)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참석자의 면면으로 보아 중국최고위층 회의로서 그 중량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도 중요한 사안인지라 병환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런비스까지 참석하고 있었다. 런비스는 이 회의가 끝나고 2주일 후에 사망한다.

  회의는 오전부터 속개되는 회의였다. 펑더화이가 들어서자 회의장은 일순 긴장감이 더해진다. 펑이 회의장에 도착하자 마오쩌둥이 맨 먼저 일어나서 악수를 청하며 맞이한다.

  “펑 노총(彭老總. 펑더화이의 애칭)! 오시느라 수고 많이 하였소.”

  “주석! 기후관계로 연착을 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소. 갑자기 오시느라 수고하셨소. 자 앉으세요. 오늘 회의는 조선의 전쟁에 우리가 참전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요. 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의 휴전협정선인 38선을 넘어 중국국경선을 향해 북진 중에 있소. 지금 정치국은 우리의 출병원조(出兵援朝. 출병하여 조선을 도움) 문제를 논의하고 있어요. 출병을 하면 어떤 점이 유리하고 어떤 점이 불리한지 모두 솔직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으니 펑 노총도 의견이 있으면 말해주시오.”

  펑더화이가 자리에 앉자 마오쩌둥은 기록을 하고 있는 저우언라이와 녜룽전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무게 있게 말한다.

  “기록을 중지하세요. 기록도 중요하지만 그대들의 의견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기록을 하고 있으면 하고 싶은 말을 못할 수 있지 않소?”

  회의장은 차가운 기운이 감돈다. 무슨 일이나 기록하기를 좋아하던 저우언라이와 녜룽전은 펜을 놓고 가슴을 펴고 마오쩌둥과 펑더화이를 번갈아 본다. 정치국 위원이며 중남군구 서기인 린뱌오가 강력한 어조로 참전 반대의사를 밝힌다.

  “우리는 지금까지 일본제국주의와 국민당 군을 상대로 20년 동안이나 전쟁을 해왔습니다. 이제 갓 전쟁을 끝내고 신정부가 성립된 지 1년밖에 안되는데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든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고 해방전쟁도 아직 완수하였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해방구의 토지개혁이며 경제개발은 이제 시작하려는 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국과 싸워본 경험이 없습니다. 비록 국민당 군이 미국의 원조를 받고 미제무기로 무장된 군대였으나 그들 자체가 미군은 아니지 않습니까. 한 번 전쟁에 말리면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동북(만주)지방의 군사력을 강화하여 철통같이 방위하는 것이 차라리 실리가 있는 방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오쩌둥은 겉으로는 침착하게 듣는 척 했지만 안에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표정이었다. 모두 입을 열지 않자 린뱌오는 하던 말을 계속한다.

  “미국은 방대한 육해공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군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원자탄도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은 수천 년 동안 우리의 속령으로서 인구는 몇 백만 명밖에 안 되는 소국입니다. 불과 몇 백만 명을 구하기 위하여 5억 인구가 동원된다는 것도 실리에 잘 맞지 않습니다. 만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린뱌오의 말 중에 한국인의 인구수며 중국의 인구수까지도 맞지 않았지만 그런 지엽적인 것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고 오직 중심 줄거리가 맞느냐 안 맞느냐 만 중요했다.

  녜룽전도 린뱌오의 의견에 찬동하는 발언을 한다.

  “미국은 세계 제1, 2차 대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었던 나라입니다. 그렇다고 두렵다는 건 아닙니다만, 구태여 지금 우리가 그들을 상대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조선은 우리의 번속이었지만 청일전쟁 때 일본에게 떼어줌으로 일단 포기한 곳입니다. 지금 국운을 걸고 그들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 우리는 냉철해야 합니다. 잘못하다가는 이제껏 쌓아온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또 미국은 항상 교활하게 이익의 분배를 원하는 자기 졸개나라들을 데리고 같이 참전을 합니다. 마치 많은 나라들이 동조하여 연합한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어요. 이번에도 명목상으로는 유엔이라는 이름으로 16개국이 참전한 걸로 되어 있습니다.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경제의 절반을 점유한 초대국입니다. 그들은 18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으나 우리에게는 그런 항공모함이 한 척도 없습니다. 지금 아시아에는 일본, 필리핀, 괌,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 미국 군사력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육군이 배치되어 있으며, 100여 척의 전함과 1,100여 대의 전투기를 배치하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반면 우리 군대는 70㎜ 이상 화포가 190문에 불과합니다.”

  보이보도 발언을 하였다.

  “새로 인민공화국이 성립된 현시점에서는 아무래도 전쟁참여는 불리합니다. 단 소련홍군이 참전한다거나 공동으로 출병한다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적극지원이라도 해준다면 문제는 다릅니다.”

  저우언라이가 듣고 있다가 입을 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판단하였는지 침착하게 그러면서도 힘주어 입을 연다.

  “우리는 지금 역사 운운할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전쟁이란 장비로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소위 농민군의 수준으로 800만군의 현대장비를 갖춘 국민당 군을 무찌르고 조국통일을 달성하였습니다. 잠시의 안일을 꽤하다가 대국을 망칠 가능성이 있다면 신중히 고려해보아야 합니다. 지금 남쪽으로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대만의 국민당 군이 아직 소멸되지 않고 있어 불안한데, 다시 압록강 국경에 미제의 괴뢰도당과 국경을 접하게 된다면 우리는 불안한 위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시적인 안일보다는 장래를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조선을 잃게 되면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조선만을 위한 일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단 방금 녜룽전 동지가 말한 것처럼 장비 면에서는 우리가 훨씬 떨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참전한다면 소련과의 연합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마오쩌둥도 사방을 훑어보더니 무엇인가 입을 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판단한 듯하였다.

  “당신들의 발언은 모두가 일리가 있는 말이오. 조국을 위해서 어떤 것이 더 좋겠다는 의견은 얼마든지 제시하여도 좋소. 이 자리에는 조국의 불이익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오. 단 다른 나라가 국가적으로 위급한 시각에 처해 있는데 우리가 옆에서 보고만 있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소. 더구나 우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형제지국 조선의 문제는 더욱 그렇소.”

  펑더화이는 금방 회의에 참석하였지만 참전을 하여야 하지 않나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많은 사람이 참전을 반대하고 있는 것 같아 함부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오쩌둥이 발언을 하자 무척 마음이 놓였다. 마오 주석이 참전을 하여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자기로서는 첫날이고 늦게 회의에 참석하여서 함부로 발언을 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라 생각되어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자 펑더화이는 중앙판공청 주임을 맡고 있는 양상쿤을 찾아갔다. 양상쿤과는 옌안(延安)에서 군단장, 정치위원 생활을 하면서부터 개인적인 친분이 있기 때문에 일단 오전 회의의 내용과 전체 상황파악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형식적으로 오전회의는 조선전쟁의 개입에 찬성하는 의견을 말하고 오후에는 조선전쟁의 개입이 불가함을 말하자고 했으나 실재로는 자유스러운 토론이 되고 말았소. 주석의 소신을 아직 확실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의리적으로나 중국의 장래를 위하여서나 참여하여야 하겠다는 복안인 듯하나 미국과의 일전을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는 문제 아니겠소.”

  “린뱌오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이건 가정입니다만 만약 조선전쟁에 참여한다면 린뱌오가 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이지요. 그런데 린뱌오의 의견은 방금 들었던 것이 진심인 것 같소. 그는 애국정신은 투철하나 국가적으로 전쟁개입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개인적으로도 칭병하고 참여하고 싶지 않은 입장이오.”

  린뱌오는 원래 국민당 군으로 황포군관학교를 4기로 졸업하고 군벌을 타도하는 북벌군의 중대장으로 승승장구하였으나 장제스(蔣介石)가 공산당 동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것을 보고 국민당에서 탈주하여 동남부지역의 징강산(井崗山)으로 들어가 마오쩌둥 주더(朱德)가 이끄는 장시(江西) 소비에트 홍군에 합류한다. 제4야전군 사령원이었던 린뱌오는 제1야전군 사령원인 펑더화이와 함께 홍군의 가장 유능한 야전사령관이었다. 그가 최고의 실력을 발휘한 것은 만주에 주둔하고 있을 때이다. 그의 전법은 농촌을 먼저 점령하여 인심을 사고, 도시는 국민당 군에게 내어주는 것이었다. 뒤에 사면 포위를 당한 도시를 하나씩 점령하여 동북을 완전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10만이던 린뱌오의 군대는 80만으로 증가하였으며 49년 1월에는 베이징(北京)을 점령하고, 5월에는 무한(武漢)을 점령하고, 10월에는 100만 대군으로 광둥(廣東)을 해방시킨다.

  린뱌오가 걸핏하면 칭병하는 것은 실제 이유가 있다. 37년 국공합작이 성립되어 린뱌오가 115사단 병력을 이끌고 산시성(山西省) 핑싱관(平型關)에서 일본군 5사단을 매복 공격하여 격멸시킨다. 일본군 상대의 전투에서 승리다운 승리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린뱌오는 전리품으로 얻은 일본군 망토를 입고 기념 승마를 하던 중 아군으로부터 오인사격을 받아 머리에 부상을 입게 되었다. 그는 옌안(延安)으로 후송되었다가 모스크바에 가서 42년까지 요양을 하였다. 이 부상으로 린뱌오는 신경에 손상을 입었으며 물과 바람을 무서워하였다. 심지어는 산수화를 보는 것조차 두려워하였다. 공산정권 수립초기까지 지병을 핑계로 공식석상에도 잘 참석하지 않았다.

  펑더화이는 이날 양상쿤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일단 북경반점으로 돌아왔다. 호텔에 도착한 펑더화이는 한 숨도 잘 수 없었다. 내일 속개되는 회의에서는 확실히 자기의 의견을 밝혀야할 입장이기 때문이다. 먼저 자기 개인의 생각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었다. 조선의 전쟁에 뛰어 들것인가 말 것인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즉시 대만해협을 봉쇄하였다. 미 제7함대가 대만해협에 파견되자 중국의 대만공격은 일단 멈추어 설 수 밖에 없었다. 원래 6.25발발 1개월 전, 50년 5월에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는 대만 상륙작전 준비에 착수했다. 대만상륙작전은 인민해방군 제3야전군이 맡기로 했다. 제3야전군은 상하이를 중심으로 하는 화동지방을 맡고 있는 부대이며 사령원은 천이(陳毅)였다. 6월 상순에 열린 중국공산당 제7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7기 3중 전회)에서 마오쩌둥은 지금 가장 시급한 문제는 대만해방이라고 선언했고, 제3야전군 부사령원 수위(粟裕)가 구체적인 작전 방안을 보고하였다. 즉 며칠만 먼저 공격을 개시하였어도 대만해방은 끝났을 터인데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대만해협이 봉쇄되자 상황이 급변한 것이었다.

  50년 1월 5일만 해도 트루먼 대통령은 대만의 중국귀속을 확인하며 대만에 대한 야심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트루먼은 미국이 대만에 대한 모든 군사적 지원을 끊는다고 발표하여, 사실상 대만을 포기한 것이다. 때문에 중국의 대만 점령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이 발표가 있던 1월 5일 마오쩌둥은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 중소동맹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미국이 이때를 잡아 대만 포기를 선언한 것은 중소동맹을 맺지 않으면 미국이 문호를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겠다는 마오쩌둥에게 보낸 암시였다.

  그로부터 1주일 후(1. 12)에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딘 애치슨에 의해 소위 애치슨라인이 선언된다. 태평양에서 미국의 지역방위선을 알류샨 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한다는 것이고, 이것을 '애치슨라인'으로 명명한다는 것이었다. 어떻든 대만, 한국, 인도차이나 반도가 미국의 방위선에서 사실상 제외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트루먼과 애치슨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단시일 내에 이런 정책변화가 있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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