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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Hi?story!
작가 : 슈동
작품등록일 : 2017.12.12

[남장여자/무당/소드마스터/성장형 먼치킨] 신기를 타고난 펜싱 세계랭킹 1위 대한민국 국가대표 고진희! 올림픽 결승의 날, 그녀가 쓴 부적에 의해서 이계로 떠나게 되는데.....집으로 가기위해 소드마스터가 되는 과정까지,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라노벨 풍의 본격 남장여자 이고깽물 시작합니다.

 
49. 충격과 공포
작성일 : 17-12-15 15:58     조회 : 265     추천 : 0     분량 : 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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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진희는 닭 쫒던 개, 지붕 위를 쳐다보는 허탈한 심정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은 푸르렀고 피크닉이라도 가면 딱 좋을 날씨이지만 안타깝게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진희는 주변을 멍청하게 두리번거렸고 그런다고 해서 없던 문이 뿅 생기는건 아니었다.

 

 운디네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혀를 쯧쯧 찼다.

 

 "그 늙은 여우가 한번 해보자는거지?"

 

 "그러게. 우릴 아주 호구로 보는구만."

 

 실프가 노기 어린 음성으로 답했다. 그는 뭔가 열받는게 있는지 애꿏은 턱만 매만지고 있었다. 분노를 표출하기 보다는 인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기탱천한 실프를 본 진희는 마지막 딱 한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령왕들에게 질문했다. 정말인지 너무나도 간절한 마음에 말끝이 실짝 떨렸다.

 

 "저, 그러면 여기서 나갈 방법은 없는건가요?"

 

 "누가 그래?"

 

 실프는 팔짱을 풀고는 고운 미간을 험상궂게 일그러트렸다. 그의 감정이 격화됨에 따라 살랑이던 미풍이 점점 강풍이 되면서 그의 머리가 바람따라 휘날렸다.

 

 어느새 녹지의 평원에는 토네이도가 휘몰아쳤다. 자존심이 꽤나 높은 그는 고작 엘프로부터 무시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영 기분이 언짢은 상태였다.

 

 정령계의 평화로운 잔디밭에 있던 낙엽들이 휘몰아치면서 구석에서 놀고있던 진과 제피루스들도 바람에 흡수되었다.

 

 운디네는 갑자기 큰 바람이 불자 기겁하면서 바람소리에 묻히지 않을 정도로 크게 외쳤다.

 

 "어이, 나도 열받는건 아는데 진정하는게 어때?"

 

 운디네가 푸르딩딩한 손으로 실프를 살짝 흔들었다. 잠시간 고삐풀린 실프는 그제서야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와 휘몰아치는 바람을 거두었다.

 

 "미안- 오랜만에 화가 나니 힘조절이 안 되네. 괜히 험한 꼴만 보였어."

 

 다시 기류가 조정이 되어 기분좋은 미풍으로 돌아왔고 실프는 진희에게 멋쩍게 말했다.

 

 평화로운 세계에서 어지간히 화날 일이 없었나보다. 진희라도 그럴만 했다.

 

 그런데 여태껏 잠자코 시체같이 있던 이프리트가 엉뚱하게 폭죽처럼 허공을 향해 불꽃을 쏘았다.

 

 실프처럼 딱히 화풀이 용으로 던진 것도 아니었고 아무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1초 뒤, 진희는 곧 깨달았다.

 

 이프리트가 가리킨 공간에 불꽃이 펑 터지자 남은 불똥들이 모여 빛무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들은 처음 출발했을 때의 엘프의 숲 포탈보다 반경이 더욱 넓은 원형의 빛이 되었고 하늘에 두개의 태양이 뜬 것처럼 보였다.

 

 진희는 어리둥절했고 노움은 그 모습을 같이 지켜보면서 자랑스레 말했다.

 

 "우리가 여기선 신이나 다름없다고 했지? 어느 바보가 우리가 평생 여기 갇혀있을거라고 생각했는지 짐작이 간다만, 보다싶이..."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던 노움이 갑자기 헛숨을 들이삼켰다. 안도한 진희가 그녀에게 달려들어 포옹한 탓이었다.

 

 노움은 잠시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다가 다시 자애롭게 표정을 바꾸며 품 속에 안긴 진희를 토닥였다. 진희는 희열에 차오르는 어조로 들썩였다.

 

 "고마워요."

 

 "천만에. 그래도 나보단 이프리트에게 먼저 고맙다 해야지?"

 

 진희는 깨달았다는 듯이 '아.'소리를 내며 이프리트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이프리트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더니 남극 한복판보다 더 차가운 음성으로 싸늘하게 대꾸했다.

 

 "꺼져."

 

 이프리트의 철벽은 감히 범접할 수 없을 정도 였고 명백한 사양이었다. 싫다는데 굳이 해줄 필요도 없다.

 

 진희는 냉랭한 거절에 기분 나쁠 법도 한데 의외로 웃어넘겼다. 이프리트의 특이한 성격을 한눈에 파악해서이다.

 

 '츤데례.'

 

 그리 결론내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차가운 손길이 느껴졌다.

 

 습기에 질퍽질퍽한 손의 주인은 운디네.

 

 그는 어깨너머로 배운 귀족예법로 영애를 다루듯 진희의 손을 빛무리 쪽으로 부드럽게 인도했다.

 

 "이제 가볼까?"

 

 진희는 얼음장같은 운디네의 손을 더욱 꽉 잡으며 빛무리 쪽으로 걸어갔다. 남은 정령왕들도 진희를 따라 오랜만에 속세를 향한 여정을 준비했다.

 

 그 어느때보다도 밝게, 진희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네."

 

 

 

 ****

 

 

 

 "할배!!!!!!!!!!!!"

 

 산새가 지저귀고 안개가 깔린 평화롭던 장로의 나무집에 대문짝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란을 떠는 이는 다급한 용무라도 있는 듯, 숨을 거칠게 헐떡거렸다.

 

 아침부터 산통을 깨는 이의 주인공은 비토르, 그는 분노의 발길질로 대문을 세게 깠고 헐레벌떡 서둘러 뛰어왔는지 그의 연두빛 머리는 땀에 푹 절여있었다.

 

 조용히 책을 정리하던 장로는 조심히 물건을 내려놓은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물었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소란이지?"

 

 "시치미 떼지 마! 어젯밤에 내 집에 자객보낸거 할배지?"

 

 비토르는 성난 황소처럼 쉬익쉬익 거친 숨을 내뱉었다. 장로는 찬찬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아주 태연하게 아무 일 없어 보였다.

 

 비토르는 화를 가라앉히지 않은 채로 말을 이어나갔다.

 

 "어제 손님방에서 죽어있던 자객 두명을 발견했어."

 

 "그래서?"

 

 장로는 최소한의 감정표현도 없었다. 폭발하기 직전의 비토르는 노발대발 쾅쾅 바닥 꺼지도록 발로 내리찍으며 장로에게 걸어갔다.

 

 어느새 장로 코앞까지 당도한 엘레스는 분개한 표정으로 장로 옆의 테이블에 주먹으로 탕탕 두드렸다. 테이블 위의 티스푼은 주먹질에 따라 스프링처럼 튀어올랐다.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아무리 인간이라도 그렇지 손님한테 자객을 보내는게 어딨어?!"

 

 "그래...인간이라..."

 

 장로는 비토르가 못 말리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마치 이 철없는 아이를 어찌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엄마 같은 행동이었다.

 

 반면 비토르는 알쏭달쏭 한 장로의 반응에 화는 나지만 긴가민가 고개를 외로 비틀었다.

 

 피식 실없는 바람소리를 낸 장로는 무심하지만 의미심장하게 눈을 번뜩였다.

 

 "정말 그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느냐?"

 

 "...뭐?"

 

 비토르의 기세가 한풀 꺾이자 장로는 '걸렸구나!'하는 표정으로 음산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 자객들 모두 실력있는 전사들이었다. 그런데 인간 따위에 어떻게 살았는지 보단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궁금하지 않더냐?"

 

 "아..."

 

 비토르는 열을 내다 말고 그대로 멈춰버렸다. 정말, 지금은 화가 나지만 장로 말이 맞았다.

 

 하룻새에 소중한 친구를 잃을 뻔하긴 했지만 어떻게 그 약골이 한꺼번에 잠복한 이를 집아낼 수 있었지?

 

 반면 장로는 득의양양한 기색이었다. 검버섯 피어오른 그의 얼굴에는 무서우리만치 환한 기색이 비쳤다.

 

 아직 비토르는 어리다. 어쩜, 이리 고맙게도 생각대로 움직여줄 수 있을까?

 

 그때, 장로의 집 안에 큰 원형의 빛이 생겨났다. 홀로 이질적이게 둥둥 떠다니던 원형 빛의 진은 당연히 장로의 눈에 띄였다.

 

 장로는 한가롭게 비토르의 말상대를 해주다말고 눈이 뒤집힐 정도로 빛무리를 바라보았다.

 

 비토르도 장로가 갑자기 이상한 반응을 보이자 따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도 장로와 마찬가지로 입만 벙긋 거렸다.

 

 빛무리는 두 사람의 시선을 캐치했디는 듯, 올록볼록 성게 모양이 되다가 한 형체를 토해냈다.

 

 "우아악!"

 

 바로 진희였다. 처음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정사정없는 웜홀 롤러코스터를 탄 그녀는 딱딱한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아...이렇게 몸 함부로 굴리면 안 되는데.'

 

 찡그리면서 허리를 매만지던 그녀는 문득 자신을 쏘아보는 시선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앞에는 비토르가 경악했고 장로는 자지러질 정도로 혼비백산한 상태였다.

 

 진희는 비토르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고 싶었지만 곧 장로의 재수탱이 없은 주름진 얼굴을 보고선 그만두었다.

 

 "너...!"

 

 비토르가 패닉의 얼음에서 깨질 때 또 다시 빛무리에서 나머지 4명의 사람을 토해내고선 서서히 소멸했다. 이 네사람은 진희의 어수선한 등장과는 달리 고고하게 바닥 위로 착지했다.

 

 그리고 그 넷의 존재를 확인한 장로는 기절초풍이었다. 비토르는 그 콧대높은 장로가 사시나무처럼 달달 더는 모습을 보자 다시 고개를 돌려 그 넷을 응시했다.

 

 티 없이 맑은 기운이었다.

 

 청명한 물과 높다란 청공, 광활한 대지 그리고 순수히 타오르는 열정!

 

 '이 기운은....'

 

 일전에 접해보지도 못했던 맑은 기운이었다. 감히 정령들과도 견주어볼 수 없는 신비로운 대자연의 섭리, 아니 이 세상의 근원- 만물 그 자체였다.

 

 그리고 진희 본인은 보지 못했지만 그녀의 이마에는 정령왕과 계약했다는 4대 왕의 문장이 선명했다. 붉고 푸르며 투명하고 어두운 기운이 프리즘처럼 각도에 따라 다르게 어른거렸다.

 

 비토르가 깨달음에 털썩 주저앉자 장로의 집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문이 벌컥 열리더니 바글바글한 인파가 몰려왔다.

 

 "장로님! 이 기운은!"

 

 "설마 드디어 성공하신 겁니까?"

 

 장로는 식겁한 상황에 재기불능 상태까지 갔다가 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큼큼 헛기침을 한 그는 진희에게 입을 열었다.

 

 "그래. 어찌 돌아왔나?"

 

 진희를 향한 장로의 근엄한 말에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 쪽으로 쏠렸다.

 

 진희를 발견한 마을 사람들은 불쾌한 기색이었다. 마치 혐오스러운 구더기라도 본 표정이었다.

 

 "인간? 인간이 왜 장로님 댁에 있지?"

 

 "저 인간은 정령왕계로 갔다고 들었는데..."

 

 그 때, 진희 뒤에 어벤져스처럼 있던 정령왕들 중에 운디네가 성큼 나서서 진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진희의 어깨부분은 질퍽했고 시렸지만 신기하게도 옷은 젖지 않았다.

 

 "우리가 도와주었다. 엘프 장로여. 네 이름이 호크무트던가?"

 

 "...그렇습니다, 물의 정령왕이여. 누추한 곳까지 오시다니, 제대로 대접해드리지 못해 송구할 따름입니다."

 

 "저...정령왕!"

 

 진희를 향해 못마땅한 기색을 보이던 엘프들은 정령왕이라는 단어 한마디에 손바닥 뒤집듯 행태가 바뀌었다.

 

 곧, 그들은 자신들이 장로의 집에 온 목적을 깨닫고는 경배하는 자세로 정령왕들에게 예를 갖추었다.

 

 "정령왕이시여!"

 

 노움은 그들의 어리석음에 쯧쯧 혀를 찼다. 진희에게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보여준 그녀지만 문 밖의 엘프들에게는 버림받은 자식처럼 대했다.

 

 "그딴 사탕발림은 집어넣고, 하나만 묻지. 감히 우리를 새장 속의 카나리아 취급해? 우리가 아주 우습게 보이나?"

 

 단단히 분통을 터뜨린 실프가 한발짝 나섰다. 그의 분노는 대단했고 방 안에 강풍이 휘몰아치면서 온갖 잡동사니들이 떠돌아다녔다. 앞을 분간하기도 힘든 엄청한 바람이었지만 그 영향에서 벗어난 이는 진희밖에 없었다.

 

 정령왕의 압도적인 권능에 두려움에 질린 장로는 자세를 낮추며 읍소했다. 전에 인간들을 향했던 당당한 자세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해입니다! 저는 단지..."

 

 "개소리 집어치워. 너는 감히 네 짧은 식견으로 정령왕들을 정령계에서도 못 나오는 얼간이로 판단했어. 우리가 직접 만든 세계인데도 말이지."

 

 실프는 노기가 띈 음성으로 장로를 일갈했다. 그리고 장로와 별반 다를 것 없이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엘프들은 모두 실프를 향한 공포에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엎드렸다.

 

 가만히 칼바람을 맞던 장로는 나뭇가지 같은 한쪽 팔로 얼굴을 막으며 주름진 입술을 들썩였다.

 

 "정령왕이여! 저 또한 질문이 있습니다! 왜! 제가 그리 간청할 때는 계약을 물리시더니 인간의 부름에는 답하십니까?!"

 

 간절하다 못해 처절한 외침이었다. 매섭던 칼바람이 살짝 잦아들면서 장로의 처연한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실프는 비소를 머금었다.

 

 "왜냐고? 네가 지금 나에게 질문할 군번인가?"

 

 다시 바람의 강도를 높이며 폭발하기 일보 직전인 실프를 운디네가 툭툭 건들면서 진정시켰다. 실프는 아쉬움에 삐죽이며 바람을 거두었다.

 

 바람을 거두자 단정했던 집 안이 개판이 되었다. 나무벽은 뜯어져 여기저기 파편이 나뒹굴었고 장식용 물건들은 깨져서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아까 바람소리만 가득해 시끌하던 주변 공기는 엘프들의 숨소리 외에는 적막했다.

 

 운디네는 진희를 향해 화사하게 짓던 미소를 뚝 그치고선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정으로 답했다.

 

 "너희 오만한 엘프들은 선민사상에 찌들어서 지들이 지상최강 순수한 종족인줄 알지. 내 눈엔 그 놈이 그놈인데 말야. 오히려 인간들보다 더 새카만 물에 물들여 더럽혀졌군."

 

 운디네의 묵직한 팩폭에 여기저기 참회의 눈물이 터져나왔다. 정령왕들을 향해 엎드리던 엘프들은 굳은 신념이 깨지자 대부분 충격에서 헤어나오질 못 했다.

 

 운디네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교만하고 건방진 엘프들에겐 정령왕과의 계약은 그저 과시용에 지나지 않아. 아무리 약해빠져도 그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인간이 너희들보단 훨씬 낫다고 판단해서였다. 이제 되었는가?"

 

 최초의 질문의 제기자, 엘프 장로는 입을 다물었다. 옆에서 운디네의 말을 끝나길 기다렸던 실프는 오래기다렸다는 듯 다시 살랑살랑한 미풍을 일으켰다.

 

 "말 다 끝났으면 이제 결론을 보지. 그리하여 감히 정령왕을 우습게 본 벌을 내리겠다. 이제부터 엘프들에게 내렸던 모든 계약을 물리고 영원히 정령들과의 계약을 금지시키리라."

 

 엘프들의 아이덴티티나 다름없는 정령계약을 파기하고 영원히 금지시키겠다는건 사람보고 팔다리 없이 지내라는 말과 동일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엘프들 사이에서 울부짖음이 터져나오고 다들 명을 물리시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리고 만악의 근원, 엘프장로도 주먹을 꼭 쥐었으나 그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령왕 앞에선 그도 무기력한 일개 엘프였을 뿐이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실프와 운디네가 난리칠 때 일절 한마디도 없던 이프리트가 한보 나서서 실프에게 무미건조하게 한마디 던졌다.

 

 "그건 너무 심한 처사이군...내가 보기엔 이 일의 책임자 딱 하나만 빚을 갚으면 될 것 같은데 말이야..."

 

 이프리트의 말을 듣던 비토르가 황급히 장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장로 역시도 이프리트의 말 뜻을 알아차리고선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마치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이프리트는 장로의 기운빠진 모습에 무표정하게 답했다.

 

 "그래. 네 죄를 '죽음'으로 갚아라."

 

 화륵!

 

 이프리트의 손바닥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불의 크기는 매우 작았으나 뜨거운 혀를 낼름 거리는게 한눈에 보아도 위험해 보였다.

 

 문 밖의 엘프들은 뭐라 말릴 새도 없었다. 감히 정령왕의 말에 토달다간 자신들에게로 그 불똥이 튀길테니까.

 

 이프리트는 서서히 장로에게로 걸어나왔다. 그녀의 발자국, 발자국마다 뜨겁게 달궈져서 나무바닥은 까맣게 그슬리며 불꽃이 피어올랐고 곧 마그마가 되어 이프리트가 걸을 길 따라 녹아버렸다.

 

 이프리트와 마주하게 된 장로의 금안은 곧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이프리트는 손을 들어 일렁이는 지옥의 불을 장로 앞에 선보였다.

 

 "엘프들에겐 자연적이지 않은 죽음이 수치라지? 그 중 화형이 제일 기피되는 죽음의 유형이고."

 

 이프리트는 진희가 본 것 중에 최고로 말을 많이 떠벌렸다. 그녀는 쭉 손을 뻗었고 화염은 곧 입을 열어 장로의 늙은 육신을 집어삼켰다.

 

 작게 타들어가던 불꽃은 점점 부풀어 올라 화려한 춤을 추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비토르는 꽤나 담담한 표정이었다. 단순히 작별을 고하는 사람처럼.

 

 장로를 집어삼킨 주홍색 불길은 그의 얼굴을 비추었고 놀랍게도 비토르에게서 솟아나던 부산물은 사라졌다. 그의 푸른 피부색도 보통 사람들처럼 살구빛으로 변했다.

 

 다만, 그의 이마에 박혀있던 동전만한 보석은 반짝 빛나더니 은은한 광채를 띄웠다.

 

 금새 정지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타오르던 불길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불길이 사라진 자리에는 잿덩이, 뼛조각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영원한 침묵만 감돌 뿐.

 

 이프리트는 다시 새침하게 돌아와 진희 옆으로 돌아갔다. 갑작스러운 장로의 죽음에 엘프들은 단체로 패닉이었다.

 

 물론 정령에 대한 명을 물린 건 감사해야할 일이지만 오랜 지도자를 잃은 이 상황에서 아무도 환호 할 수 없었다. 다만, 이들은 후계자의 표식이 사라진 비토르와 정령왕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네가 후계자인가? 축하한다. 이제 장로가 되었군."

 

 실프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비토르는 그제서야 상황을 인지한 듯, 뿔이 솟아있던 자신의 팔꿈치를 매만졌다. 뒤이어 자신의 피부색을 확인하고선 허탈하게 웃었다.

 

 "시기가 이리 빨리 올줄은..."

 

 "별로 슬프지 않아?"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사람치고 지나치게 멀쩡한 모습에 의문이 생긴 진희였다. 비토르는 힘없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스승같던 이였지만 친할배도 아니었고, 그럴만한 죄를 지은 사람이니까."

 

 진희는 양심과 도덕이 충돌이 되어 찜찜하게 끄덕였다. 예전에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울고불던 기억이 떠오르긴 했지만 죄를 지은 자는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하니. 왜인지 점점 인간성이 상실이 되는 기분이었다.

 

 진희는 일단 비토르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축하한다."

 

 "어디 너만할까. 진짜 정령왕이랑 계약하다니, 너도 참 괴물이다."

 

 비토르는 피식 웃어 응답했고 진희도 따라 웃었다. 누군가의 죽음 이후라기엔 지나치게 훈훈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진희는 그걸 노린 듯, 정령왕의 눈치를 살짝 본 뒤에 비토르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혹시...드래곤하고 친분이라도 있니?"

 

 비토르는 이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듯 눈을 똥그랗게 치떴다.

 

 "왜? 갑자기."

 

 "볼일이 생겨서...그냥 바로 말할게. 드래곤 모리오 클라우스가 있는 곳 알아?"

 

 "정령계에 이어 드래곤 레어까지 가겠다니...말리진 않겠는데 도대체 왜?"

 

 "찾던 물건이 정령왕들한테 없어서 그래."

 

 비토르는 한방 먹었다는 표정으로 헛웃음 지었다. 도대체가 이 인간한텐 평범한 구석이라곤 없다는 듯이.

 

 "단순히 계약하러 간줄 알았더니...너도 참 못 말린다. 그래. 같이 가줄게."

 

 "정말?"

 

 난색을 표할줄 알았는데 일 술술 풀리는 분위기에 진희에게 화색이 돌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알려준다는 것도 아니라 같이 가준다니?

 

 진희가 웬만한 몬스터들의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잘 알테고 대충 지도라도 던져주면 해결이 될텐데? 비토르는 그런 진희의 의문에 답해주는 것처럼 곧바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나도 안부차 가야돼."

 

 "...으응?"

 

 "모리랑 나랑 친분이 좀 있거든."

 

 알고보니 부자인맥이었던 비토르였다.

 
작가의 말
 

 분량조절에 계속 실패하네염. (48화의 제목을 정상적으로 바꿨습니다!) 그나저나 드디어 50화라니!!!!믿기질 않네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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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 응 아니야 2017 / 12 / 15 261 0 8366   
37 37. 승급시험(2) 2017 / 12 / 15 253 0 6043   
36 36. 승급시험(1) 2017 / 12 / 15 251 0 5817   
35 35.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2017 / 12 / 15 270 0 4581   
34 34. 이러려고 엘프됐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2017 / 12 / 15 262 0 6852   
33 33. 참 쉽죠? 2017 / 12 / 15 271 0 5430   
32 32. 지옥훈련? 2017 / 12 / 15 268 0 4810   
31 31. 지옥훈련(2) 2017 / 12 / 15 245 0 4979   
30 30. 지옥훈련(1) 2017 / 12 / 15 244 0 4535   
29 29. 세상에 바보같은 질문은 없다. 2017 / 12 / 15 245 0 4092   
28 28. 수업은 개나 줘(2) 2017 / 12 / 15 237 0 4680   
27 27. 수업은 개나 줘(1) 2017 / 12 / 15 249 0 5593   
26 26. 스쿨홀릭(3) 2017 / 12 / 15 234 0 5175   
25 25. 스쿨홀릭(2) 2017 / 12 / 12 260 0 6164   
24 24. 스쿨홀릭 (1) 2017 / 12 / 12 256 0 4252   
23 23. 아무도 날 막을순 없어 2017 / 12 / 12 261 0 5879   
22 22. 차원의 검 2017 / 12 / 12 252 0 4979   
21 21. Game Over 2017 / 12 / 12 272 0 6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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