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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스네이크맨
작가 : 엄길윤
작품등록일 : 2017.11.8

뱀의 능력을 가진 남자가 성범죄자를 처단한다.

 
슈퍼내츄럴(3) 시즌1 완결
작성일 : 17-12-15 09:57     조회 : 262     추천 : 0     분량 : 9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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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 여자가 나를 살피더니 노골적으로 동생의 몸에 안겼다.

 

 “나를 잡아먹어요. 죽이라고요. 내가 준 힘으로 나를 끝장내요. 내 목숨은 오직 당신한테 달렸어요.”

 

 그녀가 동생의 허벅지를 더듬는가 싶더니 입을 벌려 목으로 가져갔다. 물어서 힘을 주입하려는 거였다. 동생은 얼떨떨한 얼굴로 자기 품으로 파고드는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가 동생의 몸을 뱀처럼 휘감았다. 동생의 온몸에서 열기가 확 올랐다. 도저히 안 되겠다. 지금은 이놈한테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놈을 밀치고 벌떡 일어났다. 당해낼 수 없지만, 어쨌든 그녀를 막아야 한다.

 

 뱀 여자에게 달려가려고 발을 내딛자마자 뭔가가 발목을 움켜쥐었다. 밑을 내려다봤다. 놈이 엎어진 상태에서 한쪽 손을 들어 발을 잡았다. 황급히 동생을 봤다. 그녀가 목에 달라붙어 입을 벌리는 게 보였다. 나를 잡아먹으려고 했던 때처럼 턱 관절을 탈골했다. 커다란 입이 쩍하고 벌어져 동생을 향했다.

 

 “이 씨발 놈이! 안 놔?”

 

 놈의 옆구리를 힘껏 걷어찬 후 그녀를 향해 내달렸다. 억! 잡힌 발이 마치 단단한 족쇄에 매달린 것처럼 팽팽히 당겨졌다. 제자리에서 한쪽 발로 깡충깡충 뛰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뒤를 돌아봤다.

 

 놈은 엎어진 상태에서 고개도 들지 못했다. 주입한 독으로 온몸이 마비된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이건 거의 무의식적인 본능이었다. 목이 잘려도 뭔가를 물어뜯고 죽으려 아가리를 벌리는 뱀의 특성과 비슷했다. 어디 한 번 엿 돼보라는 거였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안 놔? 안 놔?”

 

 놈의 등을 발로 밟다가 머리를 사커킥으로 날리자 발목을 쥔 손의 힘이 느슨해졌다. 다리를 털어 놈을 떨쳐냈다. 얼른 동생을 살폈다. 동생이 뱀 여자의 목을 잡고는 밀쳐냈다. 그녀가 뒤로 밀려 뒷걸음질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동생이 나를 보며 혀를 찼다.

 

 “형은 내가 무슨 여자에 환장한 줄 알아? 날 뭘로 보고. 아무렴 가족보다 여자가 더 중요하겠어?”

 

 동생한테 이런 면이 있다니? 솔직히 좀 놀랐다. 동생이 주저앉은 뱀 여자에게 말했다.

 

 “이보세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누구를 죽이는 게 말이나 돼요? 상식적으로 생각해야지. 동물의 세계? 약육강식? 우리는 문명인이라고요. 여기는 현대 사회고. 시대가 어느 땐데, 야만인도 아니고.”

 

 그녀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

 

 “그럼 진작 밀어냈어야죠. 이미 할 건 다 했는데.”

 

 동생의 목에서 붉은 형광이 빛을 냈다. 물에 떨어뜨린 물감처럼 온몸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여자에 환장한 거 맞고만! 어이가 없어서 동생을 쳐다봤다. 동생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건···”

 

 뻘쭘한 얼굴로 나를 보던 동생이 목을 어루만졌다. 콜록거리며 기침했다. 붉은 형광이 상체에 다 퍼진 것과 동시에 체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이건 형광 뱀에 물린 사람들과 비슷한 증상이었다. 뱀 여자가 능력을 주입하는 것과 형광 뱀이 사람을 문 것의 차이가 전혀 없었다. 기본적으로 똑같았다. 단지 물린 사람이 다를 뿐이었다.

 

 뱀 여자가 일어나 나를 노려봤다. 다시금 짙은 그림자가 주위에 드리워졌다. 오싹했다. 그녀가 웃었다. 저 자신만만한 얼굴은 이제 너와 나뿐이라는 경고였다. 싸늘한 기운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동생이 제자리에서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주저앉았다. 황급히 형광 뱀의 기억을 떠올렸다. 동생의 몸에서 근육이 차오르는 게 보이지 않았다. 상체엔 오직 붉은 형광뿐이었다. 어느새 허벅지까지 번졌다. 그럼 결국엔 죽는 거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근육과 붉은 형광이 몸에서 뒤섞였다. 그래서 힘을 얻고, 살아남은 거였다. 저대로라면 버텨내지 못한 다른 사람들처럼 붉은 형광이 넘쳐흐르다 못해 눈 코 입에서 쏟아질 터였다. 막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퍼지지 못하게 지연시켜야 한다!

 

 뱀 여자가 걸어오면서 말했다.

 

 “왜요? 동생분이 어떻게 될까 봐 걱정이에요? 본인 걱정부터 하시죠? 아, 그리고 동생은 원래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요. 형광 뱀이든 나든 누가 물어도 저렇게 된다고요.”

 

 뱀 여자는 애초에 능력을 주입할 마음이 없었던 거다. 모든 건 동생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주먹을 꽉 쥐었다. 당장에라도 저년의 아가리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그녀가 사뿐사뿐 걸어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어둠이 사방으로 춤을 췄다.

 

 동생이 부들부들 떨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붉은 형광이 무릎을 지나 종아리까지 번졌다. 팔 쪽으로 퍼진 형광이 핏줄처럼 손등과 손가락 사이로 뻗었다. 얼굴 가득 차오른 형광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넘실거렸다.

 

 뒤를 돌아봤다. 조금씩이지만, 엎어진 놈이 꿈틀거렸다. 마비가 풀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다시 그녀를 살폈다. 달려가 때려죽여야 한다. 그게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안다. 덤비면 끔살이라는 것을.

 

 동생부터 살려야 한다. 아니, 뱀 여자를 죽여야 한다. 어쩌면 꼰대를 마비시켜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게 최우선일지도 몰랐다. 대체 뭐부터 해야 할까?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게 남았다. 일단 살아남는 거였다. 걸어오는 그녀를 보며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동생이 저 상황인데도 물러날 생각을 하다니. 나 자신의 비겁함에 몸서리쳤다. 씨발! 이게 지금 뭐 하는 거냐고!

 

 그녀가 걸어오며 키득거렸다.

 

 “형제라도 뭐 별거 없네요. 어쩔 수 없지. 일단은 살고 봐야 하니까. 괜찮아요. 원래 사람이라는 게 비겁한 거거든. 이해해요.”

 

 더 물러날 수 없어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녀가 가까워질 때마다 온몸이 욱신거리며 피부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추웠다.

 

 “역겹지 않아요? 사람들의 행태가. 살기 위해선 비겁한 짓도 서슴지 않잖아요. 아니, 꼭 그것 때문만도 아니지. 그냥 다 싫어요. 그들이 내쉬는 숨결. 듣기 싫은 쫑알거림과 어디에서든 드러운 낯짝들을 내보이고 말이야. 지겨워 죽겠어요. 아주 죽여 버리고 싶다고요. 하나라도 남기면 안 돼요. 다 쓸어버려야지.”

 

 뱀 여자의 정체는 대체 뭘까? 사람이기는 할까? 왜 이렇게 사람을 증오하고, 저주하는 걸까? 용기 내 소리쳤다.

 

 “너도 같은 사람 아냐? 그렇게 사람이 싫으면 자살하면 그만이지, 왜 그렇게 사람들을 해치려고 난린데? 참 애쓴다. 뭐, 몹쓸 짓이라도 당해서 그러는 거야? 그럼 경찰서에 가든지. 무턱대고 이러면 뭐 어쩌라는 건데.”

 

 “보고도 몰라요? 사람 아니잖아요. 뱀이에요. 뱀. 다시 말해줘요? 비암. 그리고 말은 바로 해야지. 사람들이 자살을 안 하니까 이러는 거 아니냐고요. 이유는 묻지 말아요. 너무 당연해서 말할 기분도 안 나니까.”

 

 너무 당연해? 바꿔 말하면 이유 따윈 없다는 이야기였다. 사람이 싫다는 거 그거 하나뿐이라니. 실망스러웠다. 아니다. 어쩌면 그거야말로 조금의 거짓 없는 진실일지도 몰랐다. 구구절절한 사연 따위는 화장실이나 담벼락에 덕지덕지 붙은 찌라시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사이에 뱀 여자가 더 가까워졌다. 온몸의 털이 바짝 곤두섰다. 마치 거대한 벽이 성큼성큼 다가서는 느낌이었다. 맞설 수 없다. 물러나야 한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근데 나도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내가 언제부터 세상에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아주 옛날부터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또, 자세히 생각해 보면 엊그제 태어난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형광 뱀도 그러네? 당신은 알아요? 언제부턴가 나타나서 방해하더라고요.”

 

 모른다. 알 리가 없다. 저년이 한 말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뱀 여자와 형광 뱀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하나는 세상을 지옥으로 바꾸려 하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막으려는 거였다.

 

 그녀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죽이면 알겠죠. 뭔가 변화가 찾아올 테니. 일단 당신부터 처리하고요.”

 

 악을 쓰며 말했다.

 

 “설마 내가 죽는다고 해도 그게 가능할 것 같아?”

 

 동생을 살폈다. 붉은 형광이 온몸으로 퍼지기 직전이었다. 발을 동동 굴렀다. 뭐라도 해야 한다. 뱀 여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걱정 말아요. 하루아침에 다 죽일 거라고는 생각 안 했으니까. 이런 일에는 말이에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요.”

 

 그녀가 몇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온몸이 아팠다. 신음을 흘리며 두 다리에 힘을 줬다.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죽는다 해도 받아들여야 한다. 뱀 여자가 입을 벌렸다. 저 아가리에 들어가면 형광 뱀처럼 눈 녹듯 사라질 거였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끝까지 공포를 억누를 수 없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지금이라도 도망치면 어쨌든 살아남을지 모른다. 그녀가 입을 찢어질 듯 벌리며 달려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었다.

 

 “형! 도망가! 얼마 못 버티니까, 일단 튀라고!”

 

 화들짝 눈을 떴다. 동생이 뒤에서 뱀 여자를 잡았다. 온몸이 붉은 형광으로 가득 찼는데도 끝까지 놓지 않고 버텼다. 두 팔로 그녀의 허리에 깍지를 끼고는 벌러덩 넘어졌다. 동생과 뱀 여자가 바닥을 뒹굴었다.

 

 “멍 때리지 말고, 얼른! 나 이제 죽을 것 같아서 그래!”

 

 동생이 끙끙대며 소리쳤다. 뱀 여자가 쓰러진 동생의 위에서 허우적댔다. 깍지를 낀 손이 느슨해지는 게 보였다. 그녀가 온몸을 흔들며 발광했다. 금방이라도 떨치고 일어날 태세였다. 뱀 여자에게 깔린 동생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코에서 붉은 형광이 새어 나왔다.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 결정했어야 했다. 바로 뱀 여자를 향해 달려갔다. 그녀에게서 쏟아지는 차가운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그녀가 비웃었다.

 

 “동생의 희생을 헛되게 하는 거예요. 알죠? 그냥 도망쳐요. 인정하라고요. 무섭잖아요? 사람은 원래 그런 거예요.”

 

 나야말로 그녀를 비웃었다.

 

 “잘 알지. 무서우니까 이러는 거야. 동생을 버리고 달아나는 게 더 두렵겠더라고. 너 따윈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거든.”

 

 동생에게 접근해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뱀 여자를 붙잡고 버티느라 버둥거리는 동생의 다리를 잡은 후 바지 밑단을 걷고 종아리를 물었다. 있는 힘껏 마취액을 퍼부었다. 일종의 모험이었다. 몸 안의 마취액을 꼰대 놈에게 많이 소비한 상태였다. 전부 사용한 후에도 계속 쥐어짜면 뭔가가 더 나올지도 몰랐다. 바로 붉은 형광이었다.

 

 억지로 없는 마취액을 짜내다 보면 내 안의 형광 물질이 입을 통해 동생에게 흘러 들어갈 수도 있다. 마지막 남은 가능성이었다. 원래 뱀독은 뱀독으로 치료하는 거다. 그게 뱀 해독제의 원리였다.

 

 동생이 눈을 뒤집은 채 축 늘어졌다. 입에 거품을 물었다. 헐떡이는 거로 보아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내 마취액에 마취된 거였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동생이 마취되면 뱀 여자를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잡아먹히더라도 하는 수 없다. 우선 동생을 살리고 봐야 한다. 대가리가 잘려도 무는 뱀처럼 말이다. 그녀가 동생을 떨쳐내려고 몸을 뒤틀면서 말했다.

 

 “당신이 크게 착각하는 게 있는데요. 만약에 동생 몸에서 형광을 제거한다고 해도 어차피 나한테 죽어요. 동생은 마취된 상태니까 저항 못 하잖아요. 간단하네. 목 조르면 되잖아요. 끽해야 2분이나 버틸까.”

 

 그녀가 간교한 뱀처럼 입을 놀렸다. 인정하라는 거였다. 받아들여라. 포기해라. 일종의 강요였다. 이제껏 많은 사람이 그 말에 넘어갔을 터였다. 아니면 적어도 의심을 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난 아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다.

 

 뭔가가 입안에서 턱 막혔다. 마취액이 다 떨어졌다. 입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바람 빠진 풍선을 부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누운 채로 입을 찢어질 듯 벌렸다. 고개를 뒤로 젖혔다. 턱관절이 빠지면서 입이 더욱 크게 벌어졌다.

 

 그녀가 허리를 들었다. 옆구리를 붙든 동생이 힘없이 딸려 올라왔다. 이미 정신이 없는 듯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상체를 일으켜 세운 뱀 여자가 입을 벌린 채 나를 내려다봤다. 아가리 속의 검은 구멍이 마치 심연 같았다. 이상하게도 그 안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가운 기운도 없고, 온몸을 찢을 듯한 공포도 없었다. 고요했다. 그게 오히려 더 소름 끼쳤다. 바로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입이 내 얼굴로 성큼 다가왔다. 동생의 종아리를 문 입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잘못 생각한 걸까? 이러다간 뱀 여자에게 잡아먹히고, 동생은 교살당한다. 차라리 동생을 구하지 않고, 그대로 달아나는 게 옳은 선택이었을까?

 

 그때였다. 옆구리를 감은 동생의 팔이 더욱 조여들었다. 뱀 여자가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동생은 이미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입에 거품을 문 채 고개도 들지 못했다. 그런데도 온 힘을 다해 그녀의 허리를 두 손으로 잡고 늘어졌다. 형광 물질이 전해준 뱀의 악독한 근성이 오히려 동생에게 힘을 준 거였다. 마치 꼰대가 내 발을 붙들고 버틴 것처럼.

 

 그녀의 상체가 다시 뒤로 젖혀졌다. 벌린 입이 저만치 멀어졌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였다. 바람 빠진 풍선을 불든 허공에 좆질하든 상관없었다. 온몸에 힘을 주며 없는 마취액을 힘껏 뿜어냈다. 머리에서 뭔가 뚜둑 끊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그게 온몸에서 연달아 터졌다.

 

 동생의 종아리를 내려다봤다. 입에서 붉은 형광이 뿜어져 동생의 몸 안에 있던 형광 물질과 뒤섞였다. 뱀 여자가 온몸을 뒤틀며 발버둥 쳐도 동생의 깍지 낀 손은 풀어지지 않았다. 몸에서 형광 물질이 빠져나갈수록 주위가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형광 뱀에게 물린 후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온기였다. 그건 곧 뱀의 능력도 같이 사라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은 동생을 살리는 게 우선이다. 동생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뿜어낸 형광이 동생의 온몸에서 뱀 여자의 형광과 섞인 채 부글부글 끓었다. 그러고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주위에 커다랗게 드리워진 어둠이 일순간 보이지 않았다. 뱀 여자가 세차게 뿜어내던 칼날 같던 기운도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더는 동생의 몸에서 형광 물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도 동생과 똑같았다. 그녀의 몸에서 얼음장처럼 차갑던 온도를 느낄 수 없었다.

 

 동생이 깍지를 풀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뱀 여자가 씩씩대며 일어섰다.

 

 “내가 소용없다고 했죠? 왜 더 화나게 하는 건데요?”

 

 그녀가 내 목을 움켜쥔 후 위로 끌어올렸다. 컥컥거리며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녀가 입을 쩍 벌렸다. 그 상태로 멈칫했다. 당황한 얼굴로 입을 오므렸다가 다시 벌렸다. 그뿐이었다. 아까처럼 턱관절이 빠져 입이 더욱더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서 느껴지던 공포감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잡힌 목도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다.

 

 한쪽 손을 들어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가늘었다. 힘을 주고 뿌리쳤다. 손이 목에서 떨어졌다. 그녀가 놀란 얼굴로 팔을 허공에 휘저으며 휘청댔다. 형광 물질이 다 빠져나갔으니 뱀의 능력도 사라진 거였다. 이제 그녀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보통 사람이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어두운 골목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동생은 이미 정신을 잃었다. 꼰대는 아직 마취에서 풀리지 않은 채로 꿈틀거렸다. 그녀를 노려봤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천천히 물러섰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보였다. 뱀 여자에게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나에게서 공포를 느끼는 거다. 그걸 깨닫자 걷잡을 수 없는 살의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이대로 놓치면 다음번에는 나와 동생이 죽는 거다. 뒤를 쫓아가 단숨에 목덜미를 잡았다. 그녀가 뒤돌아 주먹을 휘두르며 나를 때렸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솜방망이 같은 주먹을 얼굴로 받아내며 두 손으로 그녀의 목을 쥐었다. 그녀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날 쳐다봤다.

 

 나도 모르게 두 손에 힘을 줬다. 그녀가 소리도 못 지르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숨도 못 쉰 채 입을 벙긋거렸다.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날 때렸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가슴이 두근댔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게 생각보다 떨리고 긴장됐다. 뱀의 힘이 사라졌으니 보통 사람으로서 처음 누군가를 죽이는 거였다. 정말 이래도 될까?

 

 확신을 하기도 전에 내 얼굴을 쥐어뜯던 그녀의 두 팔이 밑으로 처졌다. 다리도 힘을 잃고, 맥없이 꺾였다. 쓰러지는 그녀를 멍하니 내려다봤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이미 죽었다. 시퍼렇게 질린 얼굴이 점점 작아지더니 금세 한 마리 작은 뱀으로 변했다.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사람이 아닐 거로 생각했었지만, 막상 뱀이라는 게 드러나자 당황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남았다. 드러누워 꿈틀거리는 꼰대를 살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상태지만, 곧 마취에서 깨어날 터였다. 얼른 자리를 피해야 한다.

 

 동생을 부축하며 스마트폰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일단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형사들이 왔다 갔을지도 모르지만, 다시 돌아가는 거로 의심을 피할 수 있을 거였다. 꼰대가 문제였다. 놈에게는 아직 뱀의 힘이 남았다. 그걸로 어떤 짓을 하고 돌아다닐지 모른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구경만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뱀 여자까지 처리했는데 이건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좆같은 배드엔딩이었다. 개 좆같네, 진짜!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근방에서 몇 차례 성폭행이 일어났다. 경찰들은 아직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했다. 현장에 남은 증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피해자들은 범인의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였다. 그만큼 철저하게 피해자를 제압하고, 상황을 통제했다. 다 꼰대 놈이 한 짓이었다. 뱀의 능력으로 증거도 남기지 않고, 경찰들의 포위망을 이리저리 피했다.

 

 다 알면서도 좆밥처럼 찌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길 가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열나게 튀어야 할 상황이었다. 마치 고딩들에게 쫓겨 달아나던 때처럼 말이다. 기분이 개더러웠다. 따지고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동생은 며칠 전에 훈련소에 입소했다. 가기 전에 뱀 여자와 대적했던 상황이나, 그동안 있었던 일을 사실 그대로 다 말해줬다. 직접 겪었으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실이라는 걸 받아들여야만 했다.

 

 막말로 예전 잘 나가던 때의 일일 뿐이었다. 지금은 전역한 지 얼마 안 된 백수에 불과했다. 이렇게 잡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복에 겨운 행동일지도 몰랐다. 당장 취업 걱정을 해야 할 판이었다. 뭐가 됐든 기분이 더러웠다.

 

 그날도 인터넷으로 취업 정보 사이트를 들락거리는데 몸에서 온기가 사라지는 걸 느꼈다. 그렇다고 추운 것도 아니었다. 어느새 주변 물체의 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차를 마시는 엄마의 몸에서 열기를 감지했다. 온몸의 근육이 뒤틀리며 솟았다. 힘이 넘쳐흘렀다. 이건? 뱀의 능력이 생긴 거였다. 어째서?

 

 그러다가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어금니에 저장된 마취액을 다 소비했을 때였다. 그때도 시간이 지나자 다시 마취액이 채워졌다. 이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예 내 몸이 형광 물질을 치료하고 다시 만들어내야 할 신체 부위로 인식한 거였다. 그거였다. 그게 아니면 지금 일어난 일은 도저히 설명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인터넷 취업 정보 사이트를 닫고, 뉴스를 찾아봤다. 얼마 전에 우리 동네 근처에서 또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의 추정으로는 전에 벌어진 사건들과 같은 범인이었다. 바로 꼰대 놈이었다. 세상 무서운지 모르지?

 

 기다려라, 개새끼야. 아주 개박살을 내주마! 놈을 어떻게 잡을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이제는 꼭 성범죄자들만이 대상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악인을 처단할 거다. 전보다 더 바빠지겠지. 할 일은 정해졌다. 바로 스네이크맨 시즌2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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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죽음이 너를 바라본다(2) 2017 / 11 / 28 259 0 4601   
18 죽음이 너를 바라본다(1) 2017 / 11 / 27 244 0 7280   
17 번외-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2017 / 11 / 24 255 0 5204   
16 부처님 오신 날 2017 / 11 / 23 260 0 6700   
15 뱀은 뱀을 잡아 먹는다(4) 2017 / 11 / 22 265 0 4031   
14 뱀은 뱀을 잡아 먹는다(3) 2017 / 11 / 21 257 0 4352   
13 뱀은 뱀을 잡아 먹는다(2) 2017 / 11 / 20 248 0 3781   
12 뱀은 뱀을 잡아 먹는다(1) 2017 / 11 / 17 281 0 4882   
11 CCTV 조까! 2017 / 11 / 16 264 0 5295   
10 동생 개새끼 2017 / 11 / 15 273 0 6401   
9 페도 새끼는 다 죽어야 해 2017 / 11 / 14 278 0 4488   
8 번외- 몇 달 전 기억에서 쌩까버린 일화 2017 / 11 / 14 278 0 1242   
7 스네이크맨의 탄생 '더 비기닝' 2017 / 11 / 13 281 0 4823   
6 먹잇감은 사방에 널렸다 2017 / 11 / 12 277 0 5086   
5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야? 2017 / 11 / 10 257 0 3634   
4 스파이더맨? 아니, 스네이크맨! 2017 / 11 / 9 253 0 3886   
3 빤스런 2017 / 11 / 8 248 0 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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