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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공포물
경성크툴루
작가 : 최믹하
작품등록일 : 2017.11.17

경성에서 일어나는 수상한 일들, 괴력난신 소녀와 유학파 탐정사무소 소장님이 진실을 파헤쳐갑니다.

 
행복한 모녀 (2)
작성일 : 17-12-14 23:55     조회 : 547     추천 : 0     분량 : 7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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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멀리, 우리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어린애의 웃음소리.

 재잘거리며, 웃고, 소리치고, 달린다.

 바닥을 가볍게 박차고 통통 튀는 아이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애들이 흔히 그렇듯이, 달리다 말고 제풀에 까르르 웃으며 소리를 지른다.

 그 뒤에서 나직하고 따뜻한 목소리로 엄마가 아이를 만류하고 있었다.

 

 “헉.”

 

 나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물론 아무 것도 없었다.

 소리는 여전히 들리고 있었지만, 거리는 정말로 텅 비어 있었다. 밤바람에 검불이며 쓰레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명랑하게 웃으며 달려오는 어린애나, 그런 애를 잡으려는 어머니의 모습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소리는 들리고 있지만.

 저 멀리서 우리처럼 지나가는 몇몇의 사람들이, 동척 경비들이 나를 흘끔 바라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나야. 나 밖에 없어.

 보이는 게 아니라, 목소리만 들려…

 

 소장님은 팔짱 낀 내 팔에 꾹 힘을 주고는 속삭였다.

 

 “너무 열심히 쳐다보지 마. 불필요한 관심을 끌면 안되지.”

 “야…”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렸던 것만큼이나 급하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내 동작이,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제어할 수가 없어…

 소장님은 옆에서 다독이기라도 하듯이, 부드럽게 속삭였다.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긴장 풀어.”

 “그, 그거시, 맘대로 안 되는디,”

 “너무 의식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아까 먹은 숯불갈비 같은 생각을 해도 좋고.”

 “지도 소장님처럼 구신 앞에서도 태연했으면, 진작에 탐정사무소나 차렸겠지유.”

 “어휴.”

 

 소장님은 안되겠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 어쩔 거에유, 점점 가까워지잖아유?”

 “좀 더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으면 멀어질텐데 말야.”

 

 다짜고짜 사람을 귀신 구경에 끌고 온 게 누군데, 자기가 되려 억울한 표정입니까, 소장님.

 

 하지만 소장님을 붙들고 여죄를 추궁하기에는, 소름끼치게도, 행복한 가정의 소리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내 어기적거리는 발걸음으로는 더 이상 속도가 나지 않았다. 아니, 등 뒤에서 목소리만 있는 가족이 다가오고 있는데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 그렇게 척척 걸어갈 수 있다는 거야, 당장 오금이 저려오는구만.

 결국 속도가 별로 나지 않았다. 소장님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내 팔에 힘을 준 채로, 발걸음을 천천히 늦췄다. 나는 기겁했다.

 

 “뭐, 뭐하는 짓이에유? 점점 다가오잖슈!?”

 “응, 그냥 우릴 지나갈 거야.”

 

 먼저 보내버리려는 것 같다.

 합리적인 대응이었지만, 차마 그걸 기다릴 자신이 없어 나는 힘주어 눈을 감았다.

 

 물론 실수였다. 눈을 감자 다른 감각이 더욱 예민하게 느껴졌다. 그 때문에 보도블럭 위를 달리는 작은 발자국 소리는 더욱 선명해져서, 나는 그 어린애가 신은 때묻은 양말이며, 생기 가득한 발걸음, 살짝 닳았지만 아직 탄력 있는 고무신의 모습까지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것을 막지 못했다.

 내 머리보다도 훨씬 낮은 곳에서 들려오는 명랑한 웃음소리. 다섯 살, 여섯 살 정도. 동네 어린애들이 내 옆을 지나갈 때 들었던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아이 특유의 티없는 해맑음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어린애는 뒤를 바라보며 엄마한테 소리쳤다.

 

 “빨리 와!”

 

 작은 발자국 소리는 명랑하게 내 등 뒤에까지 따라붙었다. 보이지 않는 엄마가 뒤에서 “엄마도 같이 가야지,” 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다.

 나는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줬다.

 

 그 형체 없는 발소리가 내 옆을 지나갈 때쯤, 아이의 까르륵거리는 웃음소리는 한순간 멈췄다. 어쩌면 어린애들이 간혹 그렇듯, 앞을 안 보고 달리다가 앞 사람에게 부딪칠 뻔 해서 혼자 깜짝 놀랐을 수도 있다. 어쩌면 잠시 멈춰서 지나가는 옆 사람을, 나를 흘끗 올려다봤을 수도 있다. 아이들은 놀랍도록 친밀하게 굴 때가 있으니까.

 아니면, 어쩌면…

 

 침묵은 순간이지만 정말로 길었다.

 나는 침을 삼키며 소장님의 팔에 바짝 매달렸다.

 

 수십, 수백가지의 보이지 않는 가능성 앞에서 다시 발자국 소리는 활기차게 앞으로 달려갔다. 다시 명랑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저 뒤에서 엄마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아이를 부르고 있다.

 형체 없는 행복한 가족의 목소리 사이를, 소장님은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소리로 가득 찬 어둠 속에서, 나는 소장님의 팔에 의지해서 소장님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놀랍게도 소장님의 발걸음은 멈추지도, 떨지도 않고 있었다.

 

 이윽고 좀 더 크고 무거운, 약간 바스락거리는 짚신 소리가 지나갔다.

 

 “얘도 참.”

 

 그렇게 늙은 목소리는 아니지만, 웃음기가 담뿍 묻은 따스한 여자 목소리였다. 엄마, 아이 엄마의 목소리야. 이들이 목소리밖에 없다니, 이럴 수가, 목소리 만으로도 너무 많은 것들이 담겨있는데… 실체는… 왜 목소리만…

 

 엄마는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작게 한숨 쉬었다.

 

 두 목소리가 다 충분히 멀어지고 난 뒤에서야, 나는 몇 번 심호흡 하고는 눈을 떴다. 내 옆에서 소장님은 웃지도, 굳지도 않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물론 나를 비웃는 표정도 아니었다. 소장님은 그저 담담하게 평가했다.

 

 “역시, 그냥 스쳐 지나가는 조선인 모녀군.”

 

 나도 입을 열기는 했지만, 막상 입을 열고 나니 너무 많은 말이 입 안에 엉켜서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말도 같이 삼킨 다음, 제일 먼저 목구멍 위로 올라온 말을 내뱉었다.

 

 “소장님은...”

 “응?”

 

 소장님은 나를 돌아봤다.

 나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소장님은 이런 악취미가 있어서 시집이나 가겄슈?”

 “벌써 갔어.”

 

 뭐시라.

 하지만 소장님은 내가 소장님의 개인사에 열중할 시간은 주지 않았다. 내가 놀라기도 전에 다시 발걸음에 속도를 붙이면서 자기 할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나처럼,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이다.

 

 “저 모녀는 저녁이면 이렇게 웃고 떠들면서 동척 쪽을 몇 바퀴 도는 것 같아. 너무 늦은 밤에는 없어지고. 뭐 아이가 있으니까 당연한 거 아닐까 싶긴 한데. 낮에는 안 나오고.”

 “구신이니까유.”

 “그렇지.”

 

 소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면 최근에 생긴 현상이라, 사람들이 낮에 만난 증언이 없는 거일 수도.”

 “최근이라.”

 “응. 가장 첫 소문은 올해 5월이었어.”

 

 그 시발점이 너무 명확한 것이, 미묘하게 마음에 걸린다. 나는 슬쩍 소장님을 돌아봤다. 소장님은 힘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래, 테러에 죽은 그 애야.”

 

 여섯 살. 어린애. 죽은 건 애다. 그런데 목소리는 혼자가 아니야. 엄마도 같이 있지. 도대체 뭘까, 왜 저 모녀는 동척을 돌고 있는 걸까.

 소장님은 슬쩍 과거를 회상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다가 혼자 고개를 저었다.

 

 “평범한 귀신 소동이었으면 사건 근처에도 못 갔을 거야. 동척에 원한을 가진 조선인은 정말 많으니까. 하지만, 저 정도로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건 이상하잖아?”

 “그렇쥬.”

 “어린 애가 죽은 뒤에도 동척에 묶여있을 만한 사건은 별로 없었어. 부모가 동척에 땅을 뺏겼다고 해도, 저 정도 어린애가 그런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문제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도 이상하지. 오히려 명확했어. 너무 어린애니까.”

 

 어린 만큼 너무 끔찍한 일이기도 하고. 소장님은 작게 덧붙였다.

 확실하고 끔찍한 일이었다.

 

 “당시 신문 기사들을 확인해보니, 아이가 어디 사는지는 금방 나왔어. 그래서 그쪽 동네를 가봤더니 신상까지 금방 나오더라고. 아무래도 딱한 일이었으니까. 안된 척 하면서 남의 불행을 이야기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몇 년이고 우려먹을 만한 소재였지.

 뭐, 나도 그런 이야기를 좋다고 들어서 지금 여기까지 알아낸 거지만.”

 

 언제나처럼의 냉소였다.

 전반적으로 소장님은 인간 외 존재나 사건에는 좀 너그러운 편이고, 인간들이 벌이는 멍청한 작태와 욕망에는 아주 냉소적인 편이다.

 

 “어쨌든 아까 그 애 이름은 지희야. 유지희. 여섯 살이었고.”

 “퍽 어리네유.”

 “안 됐지.”

 

 우리는 잠시 말을 멈췄다.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는 괴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확실한- 남의 불행이기도 한 것이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남의 불행에 대해 캐묻는 것은 도무지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나는 퍽 우물거리며 질문했다.

 

 “근디… 죽은 건 갸인디… 엄니는 왜… 아부지는…”

 

 하고 싶은 질문은 많았다. 아이는 확실히 죽었는데 왜 엄마도 이렇게 되었는지. 그렇다면 그 아버지는 어떻게 된 건지. 물론 합리적이고 일상적으로, 조선에 횡행하는 비극들을 끌어다 최악의 답변을 내놓을 수는 있었지만 그걸 굳이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소장님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뭐, 애가 죽은 것에서부터 사건이 ‘시작’한 거니까.”

 

 충분히, 다른 불행들의 시작이 될 수 있는 사건이다.

 

 “아까 들은 웃음소리는 꽤 행복해보였지만, 둘이 그렇게 유복하진 않았던 모양이야. 아이 어머니, 이은경은 아이 아빠 없이 혼자 삯바느질로 아이를 키우고 있었어. 뭐, 가난해도 행복하게 살 수는 있으니까.

 하지만 아이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고, 그런 끔찍한 사고의 충격을 추스를 틈도 없이 총독부 쪽에서 언론이나 강연으로 독립군에 대한 피해를 증언하라는 압박을 한 모양이야.

 근데 아버지가 왜 집에 없었냐면, 그이는 연전에 만주로 떠났거든.”

 

 아까 만주로 떠난 조선인이 30만 명이랬던가. 만주로 떠나는 사람은 많다. 동척에 땅을 뺏겼거나, 당장 목숨을 붙인 채로 이번 겨울을 날 수 없다고 판단하거나, 국내에서 뭔가 죄를 지었거나, 혹은 사랑에 빠져서라든지… 30만 명에게 30만 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일 불안한 가능성은 따로 있지.

 나와 눈이 마주친 소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독립군이야.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떠난 거지. 가족을 두고. 현숙한 아내답게 이은경은 남편의 결정을 지지해줬다고 해. 지옥 같은 길이었겠지만.”

 

 그리고 그 아이가 사고로 죽었다.

 가난하고, 불령선인의 가족으로 지목 받아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남편이 옳은 일을 한다고 믿으며 지지했고 자부심을 가졌을텐데. 그 일에 얽혀서 아이가 죽었다. 혼란스럽고 끔찍하다. 그 와중에 피해를 증언하라는 압박도 받았다. 너무 멀리 있는 남편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다.

 나는 눈을 감았다.

 

 “자살이었어.”

 

 사람을 너무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상황이었다. 그 비참한 이야기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얹을 수 없었다. 소장님은 잠시 침묵하다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엄마까지 죽은 거야.

 여섯 살 아이. 엄마. 세상이 살해한 불행한 모녀. 동척을 돌고 있는 모녀의 정체는 그 둘이 맞을 거야. 사실, 그 두 명이 아니고서는 여기 나타날 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이상한 건 그 다음이야. 왜 이 불행한 모녀는 웃고 떠들면서 동척을 돌고 있는 거지?”

 

 도무지 행복한 인생이 아니었는데도, 죽은 뒤에 남긴 것은 행복한 목소리 뿐이다.

  이상하지. 아무래도 이상하지.

 소장님은 멀어져 간 목소리의 주인들을 바라보려는 듯,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그래서 와본 거야.

 그 행복은 혹시 미끼일 뿐이고, 누군가를 홀리거나… 목적 있는 공격성이 있는 건 아닐까, 해서. 산 사람 일은 산 사람이 처리해야 하니까.”

 

 그래서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건가. 계획적으로 과식까지 시켜서… 아닌가, 그건 그냥 과식이었나. 음.

 어쨌든 맛있는 저녁에 홀랑 속아넘어간 것은 좀 분하지만, 소장님의 마음가짐에는 나도 찬성하는 바였다. 그래서 우리 탐정사무소 최고의 주먹인 나를 데리고 온 것까지는 좋은데… 도대체 저 목소리밖에 없는 모녀에게 제 주먹이 통하기는 할까요…

 

 “어쩐지 산 사람 일을 지가 처리해야 한다는 것처럼 들리는디유.”

 “아냐, 아냐, 같이 하는 거지.”

 “흐으음.”

 

 나는 미심쩍은 눈으로 소장님을 바라봤다. 소장님은 두 손을 내저으며 급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확실히 공격성은 없었어. 그렇지? 그냥 행복한 모녀였다고.”

 “그건… 그렇죠.”

 “참 이상하지.”

 “야.”

 

 왜, 행복할까.

 

 어째서 행복한 기억으로 그 앞을 걸을 수 있는 걸까.

 우리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느리게 걸었다.

 

 동척 건물, 세로로 길쭉하게 난 고전풍 창문에서는 이따금씩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위용찬 서양 고전식 기둥이 야트막한 담장과 소나무 너머로 보인다. 너무나 위풍당당하고 아름답게, 설레게 서있는 잔인한 건물.

 이 건물 때문에 그 어린이보다 끔찍하게 죽은 사람은 아주 많다. 그 애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간도나 만주로 떠난 사람도 정말 많다. 화려하며 동시에 비극적이고 끔찍한 식민지의 삶.

 

 차라리 떠나버린 사람들은, 그냥 추억 속에 조선의 비참함을 남겨둘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과거의 추억과 행복, 혹은 불행으로, 남은 사람들에게 닿을지 어떨지 모르는 편지라도 남기며…

 

 잠깐, 편지, 편지?

 

 나는 고개를 들었다.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몇몇 생각들을 곱씹어보다, 뒤섞고, 말이 되게 만들려다가…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나는 입을 열었다.

 

 “어쩌면…”

 “어쩌면?”

 

 소장님은 나를 흘끔 바라봤다.

 

 "뭔가 짚이는 구석이라도 있어?"

 "아니, 저, 그니께, 대단한 것은 아닌디…"

 

 나는 자신없이 말했다.

 

 “그 모녀는… 아버지에게 보여주려는 거죠.”

 

 우리는 행복하다.

 우리는,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먼 타지로 떠나 고생만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머니나 가족들에게 거짓말로 행복을 꾸며내 적은 편지처럼.

 

 우리는 여기 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소장님은 내 말을 듣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조금 뒤 약간 자신 없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하지만 어째서 여기에?”

 “삯바느질로 먹고 살던 모녀가 눈감으면 코 베어가는 이 경성에서 변변한 집을 마련했을 리도 없고, 기껏해야 사글세 방이겠지요. 방은 월세 안 내면 바로 나갈테고. 이 조선에 아버지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은 없어요.”

 

 몸이 멀리 있어도 풍문으로라도 가족의 사고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든 와볼 테지만, 막상 돌아온다 해도 이들의 자취를 찾아 돌아갈 곳은 없다. 무덤이라고 해서 변변하게 마련되었을 리도 없다. 경성에서 송장문으로 나가서 그대로 사라진 시체들은 얼마나 많은가.

 

 결국, 아버지가 경성으로 돌아온다면 그들이 아버지와 만날 수 있을 만한 장소는…

 끔찍하게도, 사고의 현장이다.

 

 그렇게 가장 슬픈 곳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소리를 내고자 하는 역설이 시작한다.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소장님은 느리게 물었다.

 

 ”아버지는 그 웃음이 행복해 보인다고, 둘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할까?”

 “글쎄요.”

 

 우리는 천천히, 몸을 돌려 사무소로 향했다.

 

 *

 

 한두 달 뒤의 일이다.

 순사들을 잔뜩 태운 차가 경성의 신작로를 미친 듯이 달리고, 칼을 찬 순사들이 눈을 번쩍이며 모퉁이마다 서있는 흉흉한 하루가 있었다. 모두 무슨 일이 있으려니, 하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이 두엇 모여있기만 하면 순사들이 달려오는 통에 별 영양가 있는 소문이 퍼지지는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신문에는 ‘동척 테러’ 라는 헤드라인이 한 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누군가 동척에 -이번에는 정말로- 폭탄을 던졌다는 것이다. 저번보다는 더 많은 동척 근무자들과 순사가 죽었고, 범인 유모씨도 현장에서 폭사했다고 했다.

 유 모씨, 신문을 읽어주던 소장님과 내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며칠 뒤, 괜히 냉면을 먹자며 구리개로 갔다가, 또 잔뜩 먹고, 약속이라도 한 듯 동척으로 향했다. 세월 좋게 동척이나 구경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순사들의 의혹 가득한 시선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동척 부근을 몇 바퀴 돌았다.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죽은 이는 그 애의 아버지였을까.

 그 가족은 드디어 만난 것일까.

 내가 알 도리는 없지만, 사실은 그들이 만나는 것이 그 웃음보다도 더 비참한 일이기도 했지만, 하지만 제발… 그 가족이 지금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이제는 서로의 손을 잡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나는 가만히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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