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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검은 에덴-낙원으로 가는 길에 지름길은 없다
작가 : PS달빛
작품등록일 : 2017.11.7

사자(死者)와 인간의 대립과 타협, 갈등 속에서
인간의 생의 무게와 죽음과 밀접해 있는 영혼의 가치를 논하고, 인간이 되고 싶은 그들의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갈망과 지상낙원을 꿈꾸며 그들만의 에덴을 그리는 이야기

 
1부-[7년의 과거]21화 쪽빛 가람(伽藍)의 무녀1
작성일 : 17-12-14 23:33     조회 : 263     추천 : 1     분량 : 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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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날따라 셀 수도 없이 반짝이던 많은 별과 시릴 듯이 차갑게 빛나는 달빛 아래, 늦가을의 밤길을 비추듯 소녀는 어둠의 끄트머리에 한줄기 빛처럼 마주보며 서있었다.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퍼지면서 그녀의 주변 곳곳에 서리가 내려 하얗게 수를 놓았고, 그것은 마치 싸늘한 미소로 다가와 뛰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처럼 지금 서있는 이 땅에 흐르는 모든 시간이 멈춰버린 듯했다.

 

 얇은 유리막처럼 금방이라도 깨져 날아갈 것 같이 여리고 작은 몸집이지만 강인해 보이면서도 숨 막힐 듯 고혹적인 그 자태는 당당함이 묻어 나왔으며, 바람에 흩어져 은은하게 풍겨 오는 달콤한 꽃향기와 함께 환한 달빛마저도 통째로 집어 삼킬 듯한 아련하고도 아득한 푸른 눈동자는 이 세상에 볼 수 없었던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여신이 정말로 존재 한다면 그것이 흡사 이 눈앞에 있는 소녀의 형상일지라도 이토록 찬란하고,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웠을까.

 

 그렇게 소녀와 마주친 그 한순간마저 영원 같은 시간이었고 또한 운명이었으리라.

 

 그렇게 믿었다.-

 

 

 [조금 오래된 이야기-소녀를 만나다]

 

 

 

 *************************

 

 

 소녀는 더욱 가까이 쥬비터에게 다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빤히 쳐다보면서 눈을 두 어 번 깜박였다.

 가까이서 보니 예쁜 얼굴이 더욱 빛나 보였다.

 

 "아, 저...그러니까...여기가 어디...?"

 "...누구냐고...물었어"

 

 뜸들이면서 말을 건네는 쥬비터의 말을 끊은 그녀의 몸에서 더욱 차가운 냉기가 흘러나오더니 주변에 하얀 서리가 내렸고 쥬비터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서둘러 대답해 주었다.

 

 "난 저기...바다 너머에서 왔는데...'한'이라는 나라에서..."

 "흐음..."

 

 소녀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더 가까이 다가갔다.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쥬비터는 말을 잇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서있을 뿐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녀는 쥬비터의 몸 이곳저곳을 훑어보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냄새가 나..."

 ".....!?"

 

 다짜고짜 냄새 난다는 그녀의 말에 쥬비터는 흠칫했다.

 그야 하루 종일 뛰어 다니고 도망 다니고 물에 빠지고 했으니 냄새가 날 만도 했으나 소녀는 그런 냄새를 말하는 게 아닌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을 이엇다.

 

 "너한테서 익숙한 냄새가 나. 뭐지? 너 인간이잖아."

 

 잡아먹을 듯이 다가온 그녀가 두서 없이 '너'라고 하면서 들이대는 바람에 쥬비터는 소녀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말을 걸었다.

 

 "흠,흠. 아, 저기 혹시 여기가..."

 "인간 맞는데? 근데 이 느낌은 아주 익숙하구나."

 

 하지만 소녀는 또 쥬비터의 말을 자르고 동그랗게 뜬 눈으로 이리저리 그의 몸을 살폈다.

 

 "아니...저기...여기가~어디냐고~~!"

 

 계속 본인의 궁금한 것만 얘기 하는 그녀의 행동에 슬슬 짜증이 올라오던 터라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소녀는 그런 쥬비터의 말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그의 질문에 답해 주었다.

 

 "여기는...사원이야, 그것도 아주 오래된..."

 "사원? 그럼 여기가..."

 

 쥬비터는 소녀의 대답에 주위를 둘러보았고 소녀는

 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인간의 발길이 끊긴지 꽤 오래 됐는데, 어떻게 이 영역에 들어 온거야?"

 "?"

 

 소녀는 이곳까지 들어온 경로에 대해 궁금한 듯 한 말투로 물어 봤으나 쥬비터는 그녀의 질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두 눈을 감더니 '후~' 하고 짧게 한숨을 쉬고는 눈을 떠 쥬비터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일단 따라와. 여기는 너 같이 약해빠진 인간에겐 여긴 좀 위험해."

 "아...그래...응? 뭐라고?"

 

 소녀는 순간 쥬비터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후 그의 손을 붙잡고 건물이 있는 쪽으로 이끌었고 쥬비터는 그녀의 거침없는 말에 잠시 황당한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생각할 틈도 없이 소녀가 잡은 손에 끌려가듯이 따라가게 되었다.

 

 "아, 그리고 여기 산짐승들은 호기심이 많은데다 매우 난폭하니까 아까처럼 바보 같은 행동은 하지 않길 바래. 죽고 싶지 않으면..."

 "아...보고 있었나."

 "응, 니가 걔 짱돌로 찍을 때부터."

 "크읍...!"

 

 쥬비터는 그녀의 계속되는 거친 말투에 빈정이 상했는지 잔뜩 인상을 찌푸리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떠올라 앞서 가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나이가..."

 "너보단 몇 백살은 많으니까 입 다물고 그냥 따라올래?"

 "넵."

 

 나르시아나의 동방예의지국인 '한'의 출신인 그는 나이를 물어 예의 없는 그녀의 말투에 대해 따질 건수를 만들려 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또다시 단칼에 쥬비터의 말을 끊은 소녀의 기세에 눌려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한 채 조용히 따라갔다.

 

 멀리서 봤을 땐 건물이 가까워 보였지만 막상 걸어서 가려니 시간이 꽤 걸리는 것 같았다.

 

 가는 길 주위에는 나무 사이로 여러 형태의 건물이 줄지어 있었고 그 블럭을 지나니 커다란 저택 형태의 사원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고급스러운 무늬의 대리석의 날개 모양 조각상 너머로 화강암으로 견고하게 지은 벽돌 건물에 둥근 돔 모양의 지붕과 고깔 모양의 지붕이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사원의 규모도 규모지만 일반적인 건물과는 다르게 차가워 보이는 이미지의 이질적인 외관과 오랜 시간 누군가가 살았던 흔적 따윈 없는 듯 비교적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물이었다.

 

 그 옆으로는 둥근 기둥 형태의 탑이 보였는데 그 곳은 아마도 수행원들의 기도 장소로 쓰이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저벅저벅-

 

 쥬비터는 소녀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샤악-

 

 그녀가 어두컴컴한 건물의 내부에서 오른손을 살며시 들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젓자 곳곳에 위치해 있던 갖가지 형태의 등이 하나 둘씩 켜지더니 주위가 금새 밝아지기 시작했다.

 

 "...오..."

 

 무슨 마술을 부린 듯 밝아지자 쥬비터는 그 광경에 짧은 감탄을 자아냈다.

 하지만 이미 유이나의 신기하고도 강력한 '령술'을 많이 봐왔던 터라 그렇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빛이 들어온 실내는 밖에서 봤던 건물의 크기와는 다르게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았다.

 

 약간 소규모 광장 같은 느낌에 가운데에는 작은 분수대가 있었고 그 옆으로 원형의 테이블과 푹신해 보이는 가죽으로 된 소파 4개, 그 주위로 벽난로, 책장과 장식장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분수대 뒤로 2층으로 갈 수 있는 나선형 계단과 여러 갈래의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소녀는 걸치고 있던 은빛의 로브를 벗어 소파 위에 올려 놓은 뒤 그 자리에 다소곳이 앉아 쥬비터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로브를 벗으니 짧은 치마를 입은 얇은 다리의 하얀 속살이 나왔고 쥬비터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그녀의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할지 모른 채 쭈뼛쭈뼛 서있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래...어찌하여 이곳에 오게 된거지?"

 "아니, 어떻게 냐니...정신 없이 달리다 보니..."

 "이 주위는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결계로 막혀 있는데, 더군다나 순수 인간인 너는 더더욱 이곳을 못 찾을 텐데 어떻게 들어 온건지 그걸 묻고 있는 거야."

 

 소녀의 말대로 라면 쥬비터는 원래 이 장소를 몰라야 하고 들어 오지도 못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데 자신도 모르게 우연히 들어 왔으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의아해 할 일이다.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겁나게 도망치다 겨우 살았구만..."

 

 쥬비터는 아까부터 같은 질문만 하는 소녀가 답답했는지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감아 한숨을 푹 쉬고 있던 그때 그녀가 소파에서 일어났고 잠시 후 눈을 떴을 때는 그의 코앞에 아주 가깝게 다가온 그녀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쳐다 보고 있었다.

 

 "어우! 깜짝이야...!"

 

 가깝다. 그것도 많이.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바람에 쥬비터는 양팔을 들고 어떤 자세를 취해야 될지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그녀가 시선을 그의 외투 쪽으로 옮기면서 말했다.

 

 "익숙한 냄새가 여기서 나는데..."

 "...!아니 도대체 무슨 냄새가...!"

 

 -휘잉-

 

 "......!"

 

 계속 거슬리는 그녀의 말에 반박하려 들었고 순간 그녀가 오른손을 눈높이까지 올리면서 한번 까딱 하더니 쥬비터의 외투 쪽에서 약하게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 그의 외투 안쪽에서 줄곧 숨겨 놓았던 검은 돌(영혼석)이 빠져나와 공중에 뜬 채 소녀의 눈앞으로 서서히 이동했다.

 

 "그건...!"

 "너 같은 인간이 어째서..."

 

 소녀는 검은 돌을 손에 꽉 쥐고는 쥬비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째서...이 돌을 가지고 있는 거지?"

 "아...그거 이리 줘! 그건 어머니의 유품이야!"

 "유품이라..."

 

 쥬비터가 자신의 검은 돌을 가져간 소녀의 손목을 잡은 채 그녀가 갖고 있는 돌을 도로 뺏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꽉 쥐어진 손을 다시 펴 보려 했지만 그녀의 손목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돌에 대해 잘 모르는 걸 보니...'바하르'의 첩자는 아닌 모양이고..."

 "......!"

 

 소녀의 입에서 쥬비터가 아는 단어가 나오자 그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바하르'를 알고 있어? 넌 그들이랑 무슨 관계가 있지? 어이..."

 

 -퍽!"-

 -쿠당탕탕!-

 

 "으...윽!"

 

 작고 가냘픈 몸이었지만 그녀에게서 나온 괴력은 전혀 약하다거나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무지막지했다.

 

 그녀를 재촉하는 쥬비터의 두꺼운 팔을 가볍게 뿌리치고는 주먹으로 그의 복부를 강타해 몇 미터 떨어진 벽난로가 위치한 곳 까지 시원하게 날려버린 것이다.

 

 "재촉하지 마라 인간, 그리고 질문은 내가 먼저......응?"

 

 소녀가 저 멀리 내동댕이쳐진 쥬비터를 향해 안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부릅 뜨며 한마디 던지려고 했으나 쥬비터는 이미 쓰러져 그대로 뻗어버린 후였다.

 

 배를 움켜쥐고 누운 채 미동도 하지 않는 그를 보더니 땀을 한방울 흘리며 말을 멈추고 그에게 다가갔다.

 

 "아...내가 힘조절이 좀 안됐나? 살짝 친다는 게 그만..."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고는 그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댔다.

 

 식은땀을 흘리며 기절해 누워있는 쥬비터의 얼굴에는 작은 상처들이 있었고 그간 쉴새 없이 달려온 터라 많이 피곤했는지 눈을 뜨지 못했다.

 

 그 전에 소녀의 시원한 한방이 제일 크긴 했지만 지금까지의 행적을 보면 그거 맞고 기절한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흠...할수없나?"

 

 소녀는 조금 미안했는지 쓰러진 쥬비터를 들쳐 메고 질질 끌고 가듯이 불이 켜진 복도 한쪽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그를 눕혔다.

 

 잠시 그의 행색을 자세히 보니 갖가지 상처와 굳은 핏방울, 땀으로 인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

 

 뚫어지게 그의 누워 있는 모습을 쳐다보던 소녀가 조용히 그의 이마에 살며시 손을 갖다 대자 푸른빛이 그녀의 손에서 흘러 나왔다.

 

 -우우웅-

 

 그 빛은 잠시 쥬비터의 얼굴 주위에서 맴돌더니 그것은 곧 얼굴로 스며들었고 피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면서 고통에 찡그린 표정이 다소 사그라들어 조금 나아진 듯이 보였다.

 

 반복되던 거친 숨소리가 안정적으로 돌아오자 소녀는 잠이든 그를 뒤로한채 다시 복도 밖으로 나왔다.

 

 "약해 빠져서는..."

 

 소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로비 쪽으로 걸어갔다.

 

 

 ----------------------

 

 ...

 

 "......???"

 

 ......

 

 "누구...?"

 

 하얗게 밝은 어딘가의 공간.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주위는 밝은 빛 투성이라 잘 보이지 않는다.

 

 -...줘...-

 

 "누구지? 여기는..."

 

 저 멀리 실루엣이 보였다.

 여인의 모습이었다. 아니, 어린 소녀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실루엣은 점점 가까워졌지만 여전히 주위가 너무 밝아 누군지 알 수 없다.

 

 -...억 해줘...-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서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말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기억해줘-

 

 ------------------

 

 "......!"

 

 눈을 떴다.

 보이는 것은 조금은 높아 보이는 천장과 옆으로 은은하게 켜진 하얀 등불.

 아무도 없는 작은 방안의 침대 위에서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쓰읍!"

 

 소녀의 둔탁한 주먹에 맞은 부위가 제법 아픈지 인상을 찌푸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안그래도 맷돼지의 공격을 비록 스치긴 했지만 두 번이나 맞은데다 그 부위의 근처에 정통으로 한방 맞았으니 당연히 고통을 호소할만 했다.

 

 "후우..."

 

 쥬비터는 다시 심호흡을 하면서 침대에서 내려왔다.

 다행히 못 걸어다닐 정도는 아닌 듯했다.

 

 "여기는..."

 

 잡다한 가구 없이 침대와 그 옆으로 푹신한 의자만이 놓여있는 작은 방안이었다.

 벽쪽으로는 커다란 창문이 있어 그 밖으로 밝은 달빛과 함께 창문 사이로 은은하게 퍼지는 자주빛 꽃의 향기가 작은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얼마나 누워 있었지? 많이 늦은 시간은 아닌 것 같은데...어라..."

 

 쥬비터는 달을 보며 혼자 중얼거리다 문득 잠들어 있는 시간 동안 꿈을 꾸었던 것 같은 생각에 눈을 살며시 감았다.

 

 "으음...무슨 꿈이었지..."

 

 예전에도 그랬고 요근래 꿈을 꾸었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후..."

 

 몇 초간 끙끙대면서 생각을 했지만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는지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주위를 살핀 후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적막한 복도.

 쥬비터가 걸어갈 때마다 천장에서 불이 켜졌다.

 

 -뚜벅뚜벅-

 

 조용한 복도의 대리석 바닥이 그의 발소리에 크게 울렸다.

 소녀의 주먹을 맞고 쓰러졌던 로비 쪽으로 다다르니 또 한번 천장의 불이 켜져 그곳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가지런히 정돈된 테이블과 의자, 벽난로...기절하기 전에 봤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소녀는 어디로 갔을까.

 

 "......"

 

 주변을 둘러보면서 소녀를 찾았지만 인기척이 없는데다 복도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서 어디로 가야 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던 그는 어정쩡 하게 그곳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때.

 

 -...♪.... . .-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쥬비터는 귀를 기울이며 그 소리를 들었다.

 

 -아...아...♬-

 

 노래를 부르는 소리.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위쪽에서 들리는 것으로 보아 2층에 누군가(소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쥬비터는 나선형의 계단을 올라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

 

 "......"

 

 어떤 악기라던가 별다른 멜로디 없이 고요한 2층의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신비로우면서도 또 동시에 아름다운 음색을 지니고 있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니 노랫소리도 조금씩 크게 들려왔다.

 

 "......"

 

 쥬비터는 그 목소리에 이끌려 마치 홀린 듯 자신도 모르게 방 쪽으로 서서히 걸어가 문 앞에 섰다.

 

 불은 안 켜져 있지만 반쯤 열린 방문 사이로 달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문 안쪽으로 창가에 걸터앉아 열려있는 커다란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을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쓸어 넘긴 채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노래를 부르는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고운 목소리는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쥬비터의 두 귓가에 또렷하게 들려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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