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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잿빛세상에 뜬 붉은 달
작가 : AT하나
작품등록일 : 2017.12.6

가상세계인 'D월드'가 상용화된 현재, D월드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처리하는 VA수사대원으로 일하게 된 주인공 린느 후즈가 겪을 미래의 이야기

 
018. B-15 창고(3)
작성일 : 17-12-14 23:17     조회 : 254     추천 : 0     분량 : 9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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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안등급 최대로 높여서 접속하자.”

  “여기서?”

  “제안 받아들이죠. 어디서 접속하죠?”

  “따라오세요.”

 

  핸드폰이 계속 울려댄다. 급하다는 이야기다. 지금 현재 범행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범행이 발견되면, 가까운 곳에 있는 보안부 사람들과 수사대 사람들에게 연락이 간다. 파트너 제도이기 때문에 린이나 반의 AV가 오프한 장소와 가까운 곳에서 범행이 일어난 것이리라. 린은 알라민을 따라 걸어가면서 핸드폰을 확인했다. ‘페이휴 플랜트 15구역’. 린은 이전에 페이휴 플랜트에서 오프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반의 VA가 페이휴 플랜트에 있는 것이다. 위치까지 핸드폰에 찍혀 왔다. 언제나 D월드 전체를 감시하는 보안부 소속 안드로이드들이 연락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할 것이다. 알라민이 걸음을 멈추었다. 바퀴가 달린 커다란 의자 두 개가 있고, 접속포트가 있다. 접속포트가 있는 기계 위로는 커다란 스크린이 있었다. 영화라도 보는 건가. 아니면…린은 더 이상의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둘 중 한 의자에 앉은 린은 곧장 가방에서 키보드를 꺼냈다. 보통 핸드폰으로 끝내곤 하지만 린은 키보드가 편해서 휴대용을 가지고 다닌다. 잭을 이용해 키보드와 접속포트를 연결한 린은 곧장 VA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제일 많이 사용하는 짧은 금발 머리에 푸른 눈동자의 키가 큰 여성의 모습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다 만들고 나서 반을 보았다. 반은 린에게 자신의 VA 정보를 보냈다. 파트너가 되고 나서 첫 접속이다. 반도 접속 준비를 마치니 두 사람의 VA가 접속 준비를 마쳤다. 이내 린은 키보드에서 뽑은 잭을, 반은 핸드폰에서 뽑은 잭을 집어 자신의 목덜미에 꽂아 넣었다. 엄청난 멀미가 듦과 동시에 얼마 지나지 않아 린은 눈을 떴다. 페이휴 플랜트에서 오프 장소로 지정된 곳 중 사건현장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접속했다. 린은 곧장 밖으로 뛰어나갔다.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보안부에 연락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린이 달려오니 사람들은 자리를 피해주었고, 린은 곧장 현장을 볼 수 있었다.

  보라색 단발머리의 여성이 스캐너를 들고 어떤 남자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스캐너는, 여태까지 지겹게 보았던 붉은 달이 새겨진 스캐너였다. 그러니까 ‘정신분열타입’ 말이다. 남자의 데이터가 꼬이면서 괴상한 형상으로 일그러지고 있다. 린은 지체하지 않고 달려가 여자의 팔을 걷어찼다.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스캐너를 놓쳤다. 스캐너의 작동은 멈추었지만 피해자의 모습은 돌아올 줄 몰랐다. 일단 린은 그 여자를 붙잡아 팔을 꺾었다. 팔을 방금 걷어차여서 그런지 여자는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이거 놔!! 놔!!!”

  “당신은 상해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겁니다. 변호사 선임할 수 있고, 지금부터 하는 발언은 본인에게 불리할 수 있습니다.”

  “정보국…? 이 가짜 세계를 어쩌려는 거야! 없어져야 해…없어져야 한다고!!”

 

  뭐야. R사건이야? 린은 인상을 찌푸린 채 여자의 팔을 더욱 꺾었다. 여자가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그 때 반이 도착했다. 접속하기 전에 반이 VA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까도 생각했던 대로 매우, 평범한 모습이다. 갈색 머리카락에 같은 색 눈동자. 키가 좀 큰 거나 덩치는 현실의 반과 다르지 않았지만, 외모가 너무 평범해진 게 익숙하지 않았다. 게다가 오른쪽 입가엔 흉터까지 있다. 더 이상한 건 D월드의 계절은 초여름인데, 반의 VA는 목티에 긴 바바리까지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가을이나 그 이상의 옷차림이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누나, 내가 체포할게.”

  “R사건이야. 더 떠들기 전에 얼른 연행해야 할 것 같아. 나는 피해자를 병원으로 이송할게.”

  “응. 그럼 연락해.”

 

  반과 린이 대화하는 사이에 보안부에서도 출동해서, 보라색 머리카락의 피의자는 반과 함께 경찰서로 향했고, 정보가 엉켜버린 피해자는 린과 함께 병원으로 옮겨졌다. 피해자의 몰골은 참담했다. 분명히 사람의 형상이었을 텐데 정보가 꼬이면서 의식을 잃은 것 같다. 오른쪽 팔과 허리가 기이하게 꺾여있다. 누가 보면 아주 높은 곳에서 추락해 오른팔과 허리뼈가 박살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보안부 사람들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이 사람, 현실의 몸은 괜찮을까. 린은 그게 제일 걱정이었다. 가장 가까운 병원에 도착해서 내리자마자 피해자에게 의사와 간호사가 달려들었다. 간호사들 중 한 명은 참담한 피해자의 모습에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 의사는 곧장 처치를 하려고 했지만 환자의 상태를 보고 절망했다.

 

  “또 정신분열타입이야….”

 

  엉킨 정보를 원상 복귀하는 방법이 아직 없다. 의학부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걸 린도 알고 있었다. 의사는 잠시 절망했지만, 곧 간호사들에게 뭔가를 지시했다. 어떻게든 상태를 조금이나마 낫게 하려는 것 같다. 지시를 마친 의사가 두통이 오는 듯 다시 다른 곳으로 움직이면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긴 레몬색 머리카락에 같은 색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붉은 색 머리띠로 앞머리를 넘기고 있었다. 흰 의사가운이 잘 어울리는 백인이었다. 그리고 린은 그 VA를 본 적이 있었다.

 

  “유리야.”

  “…린 언니. 이번 피해자 데려온 게 언니구나?”

  “응. 피해자는, 어때?”

  “……정신분열타입 스캐너는 아직 치료방법을 발견 못했어. 정보를 꼬아놓는 게 매번 달라서, 치료법도 매번 달라야하고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려.. 사망률도 꽤 높은 편이고. 일단 신체정보부터 원상복구하려고 해. 정신적으로는 얼마나 손상을 입었을지 잘 모르겠지만..”

 

  의학부에서는 그 붉은 달 스캐너를 ‘정신분열타입’이라고 부르니까.. 린과 반이 조사하고 있는 그 사건이 방금 전에 하나 더 터진 셈이다. 린은 인상을 찌푸렸다가 유리를 보았다. 괴로워보인다.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가 들어올 때 의사가 겪는 고통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 같다. 모든 의사가 모든 환자를 고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 의사들에게, 치료가능성이 낮은 환자들만큼 아픈 손가락은 없을 것이다. 유리는 D월드에서 발생하는 이런 피해사태를 연구해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에도 꽤 힘을 기울이고 있는 의사라서, 더욱 괴로울 것이다. 린은 유리의 어깨를 툭툭 쳤다.

 

  “잘 하고 있어, 유리야. 너무 힘들어하지 마.”

  “물론이야. 내가 할 일은 한 명이라도 더 낫게 하는 거니까. 고마워, 언니.”

  “그리고 내가 할 일은 이 빌어먹을 스캐너를 만드는 놈 때려잡는 거지. 둘 다 힘내보자.”

  “응!”

 

  그 때 린의 핸드폰이 울렸다. 반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유리는 간호사가 불러서 방금 린이 데려온 환자에게 갔다. 린은 머리가 지끈거려서 응급실에서 나와 병원 바깥 벤치에 앉아 전화를 받았다.

 

  “잘 잡았어?”

  “응. 자해를 시도해서 애 좀 먹었네. 그래도 잡아서 구금했으니까 이제 괜찮아. 수사대에서 주소 추적중이고. 누나는 병원?”

  “유리가 일하는 병원이야. 오프해서 보자. 추적 중이면 금방 잡혀올 것 같은데.”

  “오프 장소로 가야 하니까, 내가 그쪽으로 갈게. 그냥 병원에서 잠깐만 기다려. 알았지?”

 

  하긴. 어차피 오프 장소로 가야 하구나. 사실 린은 오프 장소가 아니어도 어디서든 오프할 수 있다. 변형VA의 장점 중 하나였다. 오프 프로그램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괜히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면 곤란하므로 린도 되도록 오프 장소에서 오프를 하고 있다. 여태까지는 오프 장소가 아닌 곳에서 오프한 적도 없었고 말이다. 린은 벤치에 앉은 채 하늘을 보았다. 초여름의 하늘은 저렇게 파란 거구나. 책에서나 보았던 것이다. 지금 현실에서는 파란 하늘은 볼 수 없으니 말이다. 오염정도가 심해서 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다. 현실에서 보는 하늘은, 디스플레이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그냥 컴퓨터 화면을 보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말이다. 감흥이 없다. 하지만 D월드에서의 하늘은 신경을 다 연결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정말 하늘로 보인다. 가을하늘만큼 높고 푸르지는 않지만 커다란 뭉게구름이 있는 파란 하늘은 보기 좋았다. 초여름의 열기가 느껴진다. 린은 계절을 신경 써서 반팔에 얇은 천으로 된 면바지를 입고 있다. 린의 VA는 지나가면서 누구라도 힐끗 볼만큼 예쁜 편이었으므로 병원 벤치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는 린을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다시 돌아보고 있었다. 린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은 채 여름이라는 계절을 느끼고 있다. 현실에서는 다른 지역으로 가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에 치여 그런 곳에 가기도 어렵고 말이다.

  린이 앉아 있는 벤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순찰차가 섰다. 반은 그 차에서 내렸다. 아무래도 다시 나오는 경찰들의 도움을 받아 타고 온 것 같다. 린은 반의 VA를 다시 보았다. 갈색 머리카락은 꽤 긴 편이어서 묶어두고 있다. 그러고 보니 알라민도 머리를 묶고 있었는데, 반의 VA 쪽이 좀 더 길다. 알라민의 머리카락은 묶은 게 짧아서 약간 떠 있는데, 반의 것은 어깨에 닿을 정도의 길이였기 때문이다. 표정은 평소 린이 보는 반의 표정처럼 웃고 있다. 얼굴에 흉터가 있다. 게다가 계절에 정-말 맞지 않는 목티에 바바리까지. 린은 반을 보자마자 더워지는 걸 느꼈다. 린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으므로 사람들이 다 반을 힐끗 쳐다보았다.

 

  “지금 계절이 뭐게, 반?”

  “여름이지. 나도 알아.”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

  “그건 누나도 마찬가지야. 신기하긴 하다. 저번에 리슈베르 테러미수 때랑 또 다르구나.”

 

  반은 변형VA를 새삼 느꼈다. 리슈베르에서는 크게 활약하지 못해서 그저 린이 샷건을 잡는 걸 보고만 있었다. 그 때의 모습은 키가 작은 검은 머리 여자였는데, 지금은 전혀 다르게 키가 큰 백인 여자다. 아마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 두 개의 VA를 보았다면,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나마 반은 린과 보고 지낸 기간이 있고, 린이 변형VA라는 걸 알기 때문에 동일인물이라는 걸 인정할 수 있는 것뿐이다. 반은 근처 오프 장소를 검색했고, 둘은 걸어가기 시작했다. 걸어가면서 린이 반에게 물었다.

 

  “대체 왜 그런 맞지 않는 옷차림을 하고 있는 거야? 안 더워?”

  “덥긴 한데.. 익숙해졌어. 그냥, 기억하고 싶어서.”

  “뭘?”

  “아, 저기야!”

 

  린이 물었지만 반도 말하기가 좀 꺼려지는 모양인지 말을 돌렸다. 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내가 꼬치꼬치 물을 이유는 없지. 각자 개인사정이란 게 있는 거고, 개인 정보는 개인 재량이니까. 좀 섭섭한 감이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한 채 린과 반은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는 ‘BAR’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술집으로 위장된 오프 장소인 모양이다. 오프 장소는 보통 사람이 없는 곳으로 정한다. 그런데 간혹 관리하는 사람이 있는 건물로 정하기도 한다. 이곳이 그런 모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바텐더로 보이는 한 남자가 린과 반을 보았다.

  희끗희끗한 백발이 섞인 갈색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넘긴 바텐더는 멋들어지게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마치 어떤 브랜드에 쓰일 정도로 정돈이 잘된 콧수염이다. 검은색 나비넥타이를 하고, 같은 색 베스트를 입고 있는 그는 유리잔을 닦고 있었다. 린과 반을 보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반이 먼저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그래, 반이구나. 그럼 이쪽은 파트너일 거고.”

  “…네…. 반, 누구셔?”

 

  반은 고개를 내저었다. 관리인이 있는 곳이라고는 해도 모든 관리인을 오프하는 사람들이 알 수는 없다. 반도 자신을 알아보는 바텐더를 보고 꽤 놀란 눈치다. 수사대 인원을 알 정도라면 수사대 인원인가 싶지만, 안 그래도 인력이 부족한 수사대에서 관리까지 할 리는 없었다. 그 때 바텐더가 유리잔과 마른 수건을 내려놓더니 잔을 두 개 집어서는 뭔가를 따라서 린과 반에게 주었다. 반에게는 맹물이었으나, 린에게는 옅은 노란빛의 무슨 음료였다. 린은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아봤고, 그와 동시에 바텐더가 누군지도 알았다.

 

  “렘씨한테 이를 거예요.”

  “…벌써 눈치 챘니?”

  “반, 국장님이셔.”

 

  여전히 누구인지 모르겠는 눈치로 서 있는 반에게 린이 귀띔하자 반은 놀랐다. 국장은 매우 바쁜 사람이다. 이런 데서 오프장소 관리를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다! 반이 놀라고 있는 사이 린은 국장인 체첸이 자신에게 준 음료를 마셨다. 역시나 레몬에이드다. 린은 모든 음료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두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레몬에이드다.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은 오랫동안 봐온 체첸뿐이었으므로 바로 알아챘던 것이다. 게다가 린이 알아챘다는 걸 알고 나서 당황한 체첸이 습관적으로 턱수염을 쓰다듬는 모션을 취했기 때문에 더욱 확신했다. 체첸은 턱수염이 있지만, 지금 바텐더는 턱수염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렘씨가 진짜 엄청 찾을 텐데.”

  “나 여기 있는 거 알고 있어. 가끔 접속허락 받고 있다, 뭐. 나도 정보국 사람인데 관리보직 하면 안 되나?”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국장님이 하실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소릴 하시는 거예요? 오프장소 관리는 수사대원들도 안 하잖아요.”

  “그렇지. 수사대원들은 사건해결만 해도 시간이 없으니까.”

  “국장도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무슨 소릴. 국장은 두루두루 알아야지. 이것도 내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체첸이 아주 자부심 있는 듯 말하자 린은 할 말을 잃었다. 곧 체첸은 2층으로 가서 오프하라며 앞치마를 풀고 반과 린을 따라 2층으로 올라왔다. 2층은 바텐더의 숙소처럼 꾸며져 있다. 그러니까 침대가 두 개 있다. 보통 다수VA들은 의자에 앉거나 침대에 누운 후 오프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그러면 자동으로 오프가 진행되는 구조다. D월드에서는 모습이 꽤 빨리 사라지지만, 정확히는 연결된 신경이 다시 끊겨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꽤 걸린다. 접속할 때와는 또 달리 말이다. 꽤 걸린다고는 해도 2~3분 내외다. 반이 침대에 앉는 것과 달리 린은 선 채 오른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은 신기하다는 듯 린을 보고 있다.

 

  “나 먼저 오프한다, 반.”

  “어? 응.”

 

  변형VA는 오프 형태가 다르다는 걸 반은 몰랐으므로 린이 오프하는 걸 보고 있었다. 린은 천천히 오른손을 움직여 목덜미로 향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현실에 누워 있는 린의 오른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린과 반이 접속한 이후로, 반의 핸드폰과 린의 키보드는 누가 건드려도 입력이 되지 않도록 잠긴다. 그리고 오프하기 전에는 현실의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린은 눈을 뜨지 않았고, 오프하지도 않았는데 팔이 움직이고 있다. 옆에서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알라민이 놀라서 린을 계속 보았다. 린의 오른팔은 정확히 목덜미에 꽂혀 있는 잭을 향했다. 그리고 곧 그 잭을, 뽑았다! 잭을 뽑자마자 린은 인상을 찌푸린 채 정신을 차리려 애썼고, 5초도 지나지 않아 눈을 떴다. 이런 오프 형식은 알라민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오프다…! 신경을 연결하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지만, 다시 그 VA에서 현실의 신경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건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그리고 다들 안전하게 오프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오프 프로그램을 사용한 사람들은 완전히 오프가 된 이후에나 몸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린은 전혀 아니었다.

 

  “으…머리야.”

  “린씨, 당신 어떻게…?!”

 

  린의 짙은 갈색 눈동자가 알라민을 보았다. 놀란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 그럴 법도 하지. 접속한 사람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었다면, 이렇게 오프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본 적이 없을 테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린은 알라민을 보다가 자신의 몸 상태를 보았다. 따로 다른 짓을 했다거나 한 것 같진 않다. 의외로 담요가 덮어져 있었다. 알라민이 덮어놓은 것 같다. 반에게도 덮여 있다. 린은 잭을 정리한 후 키보드도 정리해서 넣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이 눈을 반짝 떴다.

 

  “누나! 어떻게 오프 한 거야?”

  “여기선 안 돼. 정보국에서.”

  “아…응.”

  “좋아요, 알라민씨. 제가 따로 연락드릴게요. 그 때 뵙죠.”

  “다행이네요. ‘다음번’이 있어서.”

 

  알라민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는지 빙긋 웃는다. 눈꼬리가 약간 쳐져 있어서 선해 보이는 사람이다. 아마 이런 상황이 아니라 따로 처음 만났다면 린은 의외로 알라민에게 마음을 쉽게 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만났고, 린은 여전히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 알라민이 기대하는 저 ‘다음번’에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알라민을 더욱, 실망시킬 지도 모를 일이고. 린은 웃었지만, 선의는 전혀 없어 보이는 웃음이었다.

 

  “기대되네요. 나중에 봐요. 가자, 반. 그 피의자, 잡혔을 거야.”

  “아, 응.”

  “잠깐만, 슈가 준비한 차가 있는데.. 마실 시간 없을까요?”

 

  린과 반 모두 라미슈가 저것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가겠다고 말하기가 조금, 미안해졌다. 알라민이 껄끄러운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렇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린은 깨어났을 때부터 코를 찌르고 있는 향기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향기의 근원이 차라는 걸 알고 다시 한 번 절망했다. 린은 라미슈를 보았다. 라미슈는 차 한 잔을 들고 린 쪽으로 걸어왔다. 린은 정말 미안한 얼굴로 라미슈와 시선을 맞췄다.

 

  “미안해요, 라미슈씨. 제가…민트 알레르기가 있어요. 그래서 차는 못 마실 것 같아요.”

 

  라미슈는 린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잔을 거뒀다. 린은 그런 라미슈를 보고 웃어주고는, 반과 함께 창고에서 나갔다. 라미슈는 민트차가 담긴 잔을 들고 알라민에게 걸어갔다. 그쪽으로 걸어가니 알라민이 라미슈의 손에서 잔을 받아들었다. 차 향기를 맡던 알라민은 차를 조금 마셨다. 민트 향기가 알싸하게 스쳐 지나갔다. 기분이 좋은 듯 웃던 알라민은 곧 찻잔을 든 채로 반이 접속할 때 사용했던 의자에 앉았는데, 표정에서 웃음이 조금, 사라졌다. 라미슈는 그런 알라민을 보다가 린이 사용했던 의자에 앉았다. 서로 마주본 채 앉아 있던 두 사람은 곧 알라민이 옅게 웃으면서 말을 하면서 침묵을 깼다.

 

  “슈, 내가 잘 하고 있는 걸까?”

 

  라미슈는 방금 전에 찾아온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적을 수 있었다. 혹은 그저 고개를 끄덕여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알라민을 가만히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알라민은 그런 라미슈를 보았다가 고개를 숙였다. 라미슈는 그런 알라민을 보고 의자에서 일어나 알라민에게 걸어가선 그 금색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알라민은 의자에 옆으로 기대어 누워 가만히 눈을 감았다. 캄캄해진 시야처럼,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들이 알라민을 덮쳐오는 것 같았다.

 
작가의 말
 

  전에도 나왔지만 린은 민트 알레르기가 있어요. 파트너가 되고 나서 첫 사건을 잘 해결했는데, 오프 방식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놀랐네요. 그것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나올 것 같아요. B-15 창고 에피소드가 끝났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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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03. 수사대 첫 임무(1) 2017 / 12 / 7 241 0 10554   
2 002. VA수사대(2) 2017 / 12 / 6 258 0 6350   
1 001. VA수사대(1) 2017 / 12 / 6 393 0 1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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