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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ANTI(안티)
작가 : 고전부
작품등록일 : 2017.10.30

한 독자의 초대장을 받고 일본 오사카로 간 작가 '시호'. 그곳에서 '시호'의 소설 속 장면과 똑같은 살인이 벌어진다.

 
20. 안티 (完)
작성일 : 17-12-14 22:07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7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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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完) - 안티

 

 

 서정은 하숙집 대문을 열었다. 경찰차 세 대가 서 있었다. 입을 꾹 붙이고 있던 유정은 제 앞에 놓인 것들을 비로소 실감했다. 연행, 체포, 취조. 제 소설에도 쓰지 않았던 것들. 그럼에도 유정은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서정을 따랐다. 서정은 유정을 가운데 차 뒷좌석에 태웠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형사가 힐끔 유정을 쳐다보다 헛기침을 했다. 서정은 투명한 차창이 보이는 문을 닫은 채 수연의 지시를 기다렸다.

 

 “네. 알겠습니다. 이대로 사건 마감하겠습니다.”

 

 수연은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서정이 차 앞을 지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도연이 밖으로 나왔다. 주위를 조금 둘러본 도연은 수연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보고―드리고 있는 건가요?”

 

 갑작스럽게 얼굴을 내민 도연 때문에 수연은 인상을 구기며 단번에 전화를 끊었다. 상대는 영문도 모른 채 갑자기 꺼진 전화기에 귀를 붙이고 있을 게 뻔했다.

 

 “뭐 하는 거야.”

 “여기 온 이래로 한 번도 웃은 적 없지 않아요? 이제 사건도 다 끝났겠다, 분위기 전환 좀 할 겸 장난 좀 쳐봤어요.”

 

 자기 때문에 표정이 더 굳은 걸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린가. 수연은 낮게 욕설을 중얼거리며 미간에 더 힘을 주었다. 해림은 보이지 않았다. 도연과 같이 도쿄로 가는 비행기 표를 알아본다고 했다. 아직 하숙집 안에 있는 모양이었다.

 

 “수경 씨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내일 나와. 하숙집을 다시 운영하려면 애 좀 먹을 테니까.”

 

 도연은 수연의 말에 동조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도연은 유정이 탄 차 뒤편을 빤히 바라보더니 입가를 움직였다.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도연이 어울리지 않게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수연은 심드렁한 얼굴로 도연을 보다 건조하게 답했다.

 

 “효정 씨가 소우마 미나토라는 걸 언제 알았냐고 물어보고 싶은 거지? 효정 씨가 자살했을 때 내가 사건을 종결시키려고 했었으니까.”

 “잘 아시네요.”

 

 수연도 도연을 따라 유정이 탄 차창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서정이 수연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언제 출발할지를 묻고 있는 모양이었다. 수연은 잠깐이라는 뜻으로 손바닥을 내보인 채 도연의 말에 답했다.

 

 “완전히 검증을 한 건 이미 소우마 미나토가 자살한 직후야. 스미레 형사한테 소우마 미나토의 출국 기록을 조사해 달라고 했거든. 여권 사진을 대조해보고 알았지. 노효정이 소우마 미나토라는 걸.”

 “그럼 그전엔 효정 씨가 소우마 미나토일 거라는 의심을 했었던 건가요?”

 “뭐…조금 어이없는 이유로?”

 

 도연이 의아스러운 눈으로 수연을 보았다. 수연은 낮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나갔다.

 

 “3년 전 일어났던 사건을 떠올리고 나서 나는 소우마 미나토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했어. 그래야 그가 누구인지 조금이라도 단서를 찾아낼 수 있으니까.”

 “…….”

 “내가 발견한 거라고는 고작 소우마 미나토가 갖고 있는 애착의 정도야. 그녀는 병적으로 시호에게 집착했어. 난 그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 평소 습관에서도 분출됐다고 생각해. 아마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는 새에.”

 “습관?”

 “겉으로 보기엔 누가 소우마 미나토인지 전혀 알 수 없었어. 다들 시호의 팬이라는 언급을 했었고, 그중에서도 유별난 반응을 보인 사람도 없었지. 그러던 중에 눈에 무언가가 들어오기 시작하더군.”

 “그게 뭔데요?”

 “한국어 교재.”

 

 아. 도연은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도연이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효정은 한 시도 쉬지 않고 한국어 교재를 들고 다녔다. 효정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효정의 어눌한 말투를 가리키며 효정의 행동을 이해했겠지만, 사실 효정의 한국어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급작스러운 상황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효정의 말에서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효정은 꿋꿋이 교재를 들고 다녔다.

 

 없으면, 불안하다 여겨질 정도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한국 사람이었던 아빠를 증오하는 미움이 그런 식으로 표출된 걸 수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시호는 한국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일종의 동경을 나타낸 상징적인 의미일 수도 있어.”

 “…….”

 “그냥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노효정을 소우마 미나토라고 내 멋대로 생각한 거야. 뭐. 따지고 보면 소우마 미나토를 범인 B라고 생각한 것도 내 추측이지.”

 “…….”

 “사실은 수색이 완전히 끝난 후에 노효정을 취조할 생각이었어. 최유정을 잡을 미끼를 얻기 위해서. 뭐…금방 좌절되고 말았지만.”

 

 도연은 수연이 자신과 다른 영역에서 능통하다고 생각했다. 도연이 심리적인 영역에서 감이 좋았다면 수연은 감정적인 영역에서 감이 좋았다. 둘의 추측은, 빗나간 적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러는 너야말로 애초부터 노효정을 체포하기 위해 하숙집에 온 거 아니야? 나중엔 요코라는 카드까지 쓰면서.”

 

 그 말이 맞았다. 도연은 해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3년 전 사건에 강한 관심을 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시호라는 존재에.

 

 “네. 처음엔 그런 목적으로 오사카까지 온 거였는데….”

 “…….”

 “갈수록 점점 흥미가 떨어져서.”

 

 역시나. 수연은 진이 빠진다는 얼굴로 도연을 노려보다 입을 닫았다. 수연은 도연과 더 이상 얘기를 섞고 싶진 않았다. 역시나 도연은 사람을 질색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서정이 달려오고 있었다. 꽤나 짜증이 났다는 얼굴로.

 

 “경위님 대체 언제 타실 거예요? 여태 기다렸는데, 빨리 이동하고 사건 완전히 종결시켜야죠!”

 

 수연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서정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서정이 잔소리를 퍼붓는 경우는 드물었다. 수연은 갑자기 속이 답답해져 헛기침을 했다.

 

 “이왕 기다린 김에 조금만 더 기다려줄래요, 형사님? 저 잠깐 할 말이 있는데.”

 

 도연이 유리한 손가락을 길게 피며 유정이 탄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유정과 할 얘기가 있다는 뜻이었다. 난처한 표정을 지은 서정은 곧바로 수연을 보았다. 해답을 구하는 눈치였다.

 

 “딱 1분. 차창 사이로 대화해. 차에 절대 타선 안 되고.”

 

 수연의 말에 도연이 여유롭게 웃으며 유정이 탄 경찰차를 향해 걸어갔다. 어쩐 일인지 쉽게 허락한 수연의 태도에 서정도 덩달아 놀라며 수연을 보았다. 유정이 탄 자동차 지붕의 사이렌이 소리는 내지 않은 채 요란스러운 빛을 냈다.

 

 “근데 너….”

 “네, 네?”

 

 걱정스러운 눈으로 서정이 도연을 쫓았다. 대뜸 수연이 꽤나 위협적인 말투로 서정에게 말을 건넸다. 서정은 흠칫 놀라며 말을 더듬었다.

 

 “최유정이 정신을 잃었을 때. 자살한 노효정의 방을 뒤진 건 이해가 되지만 최유정의 방까지 조사한 건 어떤 이유에서야?”

 “…….”

 “뭐, 결과적으로 두 방에서 모두 청산가리가 발견돼서 수사에 도움이 되긴 했지만…너도 이전에 최유정을 범인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수연이 또렷하게 물었다. 서정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조금 생각에 잠기다 굳은 결심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날 서정은 잠이 든 유정을 보며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소은의 말이 맞았다. 이 사람이 진범이다. 이 사람이 잡히지 않으면 소은이 용기를 낸 건…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서정을 움직이게 한 동기였다.

 

 “경위님.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 사실…최유정 씨가 진범이라는 거 이미 알고 있었어요.”

 “아?”

 

 수연이 놀란 나머지 입을 크게 벌린 채 유별난 탄성을 뱉었다.

 

 “쇼고 씨의 살인에 대한 취조를 끝낸 후에 소은 씨가 절 찾아왔었거든요. 그리고…쇼고 씨의 방에서 유정 씨의 노트북 키보드 소리를 들었다고…소은 씨가 저한테 말을 해서….”

 

 기어가는 소리로 말을 흐린 서정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고개를 숙였다. 수연은 가소롭다는 듯 한쪽 눈썹을 추켜올리더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넌 그 중대한 이야기를 이제 와서 나한테 보고한 거네?”

 “…….”

 “내가 혼자 끙끙대면서 어떻게 사건을 해결해나가는지 지켜보려고?”

 “…죄송합니다.”

 “네가 조금이라도 일찍 말했으면 어쩌면 강소은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서정은 급작스럽게 눈가가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서정의 가슴 한편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는 죄책감. 그것을, 수연이 건드리고 있었다.

 

 “네가 얼마나 끔찍한 짓을 했는지는 네가 더 잘 알 거야. 강소은의 시체를 본 순간부터.”

 “…….”

 “평생 널 괴롭힐걸.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날 거야. 죄의식이라는 게 그런 거거든.”

 “…죄송합니다.”

 “그래도….”

 

 수연이 구겨진 담뱃갑을 꺼내며 무감하게 말을 꺼냈다. 서정을 더, 울리게 하고 마는.

 

 “이제야 겨우 진짜 형사가 된 건지도 모르겠네.”

 

 마지막 말을 하며 수연이 서정을 스쳐 지나갔다. 수연은 유정이 탄 차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제야 출발할 마음이 생긴 듯 보였다. 서정은 손등으로 대충 눈가를 닦은 채 수연을 따라갔다.

 

 도연은, 차창 너머의 것을 바라보며 삐딱하게 서 있었다. 묘한 웃음을 띤 채로.

 

 

 생각보다 손쉽게 수연에게 허락을 맡은 도연은 곧바로 유정이 탄 차 앞에 섰다. 유정은 뒷자리에 앉아 멍하니 앞을 보고 있었다. 도연은 차창을 두 번 두드렸다. 유정이 고개를 틀었다. 운전석에 앉은 형사는 도연의 얼굴을 확인하고 절반쯤 차창 문을 내렸다.

 

 “내가 마지막에 했던 말,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도연은 대뜸 유정에게 질문했다. 유정은 기억을 더듬었다. 도연은 분명 둘의 싸움에서 자신이 이긴 거라고 강조했다. 유정은 피식 웃음이 새었다. 물론 단면만 보면 그럴지도 몰랐다. 결과적으로 사건을 해결한 건 도연의 몫이 컸으니까.

 

 하지만 유정은 도연이 이번 사건의 완연한 핵심을 꿰뚫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바로 ‘시호’의 정체였다. 도연은 끝내 그것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도연은 스스로 자아도취에 빠져있었다. 단순히 사건의 해결점만 가지고.

 

 유정은 그것이, 몹시도 우스웠다.

 

 “즐거워 보이네.”

 “…….”

 “분에 넘칠 정도로.”

 

 유정이 단조롭게 말했다. 차 안에 갇혀 있는 유정, 그리고 밖에서 그런 유정을 들여다보는 도연. 입장 차이는 극명하게 갈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정은 여유로울 수 있었다. 자신이 동경하면서도 짓밟고자 했던 대상이, 바보 같은 오만함에 빠져있었다. 그걸 비웃을 이는 오직 유정밖에 없었다. 그 사실 만으로도 이미 승자는 자신이라고 유정은 확신했다.

 

 “난 네가 나한테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어.”

 “…….”

 “네 눈엔 항상 흥분이 서려 있었거든. 나를 볼 때마다. 마치 어떻게 죽여 버릴지 간을 보는 살인자처럼 말이야.”

 

 유정이 느슨하게 몸을 비틀었다. 그리고는 도연을 응시하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결국 도연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는 뭘까. 어린애같이 자랑질을 하려고?

 

 “내가 얼마나 너보다 높이 서 있는지, 네가 얼마나 무모한 싸움을 걸었는지 일일이 나열하고 싶어.”

 “…….”

 “남을 발밑에 깐 채로 상대의 위치를 상기시키는 것만큼 재미난 건 없잖아?”

 

 유정은 조소를 띠었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만에 빠져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김도연을 조롱하며.

 

 “하지만 참을게. 지수연 경위가 오고 있어.”

 

 피곤할 정도의 번잡한 말. 꼴사나운 패자 주제에. 유정은 운전석에 앉아 있는 형사에게 그만 차창 문을 닫아달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여전히 미소를 띤 채로 도연을 올려다보았다. 유정은 도연의 바보 같은 꼴에서 새어 나오는 비웃음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유정은 수갑에 묶인 두 손을 꽉 쥔 채로 숨을 크게 내쉬려 했다.

 

 그때였다. 유정의 모든 사고 회로가 정지됐다. 사색이 된 채로 몸을 굳혔다.

 

 “잘 가.”

 

 도연의 입에서 나온….

 

 “…시호.”

 

 섬뜩할 만큼 명료한, 한 단어 때문에.

 

 

 *

 

 

 해림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킬킬대며 웃는 도연을 보며 혀를 찼다. 고개를 내저으며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해림은 녹초가 된 몸으로 곧바로 침대에 쓰러지다시피 몸을 기댔다. 도연은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해림은 순간적으로 열이 받는 걸 느꼈다. 내가 이렇게 지친 건 모두 저 녀석이 한 부탁 때문인데.

 

 “생각해보니까….”

 “…….”

 “돈을 더 받아야 할 거 같은데.”

 

 해림이 금방이라도 잠에 들 듯 나른한 목소리로 말하며 길게 하품을 했다. 도연은 듣고 있는지 안 듣고 있는지 키보드를 두드리며 웃기에 바빴다. 해림은 침대에 묻었던 고개를 든 채 도연이 보고 있는 모니터를 들여다보였다. 단순한 워드 창이 띄워져 있었다.

 

 “그래. 얼마든 줄게. 네 덕분에 아주 재밌는 일을 하고 있거든.”

 

 해림은 눈을 가늘게 뜨며 도연이 치고 있는 글을 보았다. 어딘가 문맥이 이상했다. 하지만 대충 내용을 살펴보니, 초대장을 작성하고 있는 듯 보였다.

 

 “시호한테 보내는 거야? 네가 그렇게 질기게 부탁한?”

 

 해림은 손에 턱을 괸 채로 도연에게 건조하게 물었다. 도연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웃음기는 가시지 않은 채였다.

 

 “응. 본명은 최유정이란 이름이네.”

 

 해림은 세계적인 해커였다. 매일 손바닥만 한 게임기로 보이는 기계를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정보를 입수하고 다니기 일쑤였다. 그렇게 쌓인 정보는 수억 원 대의 가격으로 거래되곤 했다.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길을 다니면 사람들은 해림을 향해 조롱하곤 했다. 도리어 놀림감이 되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정체를 단 한 번도 누구에게 밝힌 적이 없었던 해림에게 도연이 찾아왔었다. 도연은 대뜸 제안을 했다. 부르는 대로 돈을 줄 테니, 누군가의 신상을 파악해달라는 거였다. 얼굴과 성별과 나이. 연락처와 주소까지 주도면밀하게. 그것도 ‘시호’라는 이름을 쓰는 홈페이지 IP만으로.

 

 애를 먹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너 때문에 내가 시호의 작품을 얼마나 읽었는지 알아?”

 

 해림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도연은 관심이 없어 보였다. 입술을 잘근 깨문 해림은 이내 화제를 돌렸다.

 

 “좀 제대로 쓸 수는 없어? 문장이 다 어색하잖아.”

 “일부러 이렇게 쓴 거야.”

 “왜?”

 “소우마 미나토는 항상 한국어 교재를 들고 다니거든.”

 

 소우마 미나토라면 시호의 소설을 재연해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라고 도연이 말한 적이 있었다. 덧붙여 도연이 그저 단순하게 심심―하다는 이유만으로 체포하겠다고 한 것도 해림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 소우마 미나토가 한국어 교재를 들고 다닌다는 걸 어떻게 아는 거지? 벌써 체포를 한 건가. 해림은 의문을 가졌다.

 

 “벌써 잡았어?”

 “잡은 건 아니고. 일단 지켜보고 있어. 근데 너도 아는 사람인데? 노효정 말이야.”

 

 아아. 노효정이라면…하숙집에 머무는 이들 중 하나였다. 아직 여기에 온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 이름이 가물가물한 해림은 조금 머리를 굴리다 효정을 기억해냈다. 해림은 그제야 느닷없이 하숙집에 묵자고 했던 도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체포를 안 하고 이상한 초대장이나 만들고 있는 거야? 체포해서 시호를 도발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

 “너를 추종하던 너의 열렬한 팬을 내가 잡았다―뭐 이딴 이유로.”

 

 해림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도연의 뒤에서 연이어 말했다. 도연은 이상할 정도로 시호라는 이름에 집착했다.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이에게 쓸 데 없는 승부욕을 키웠다. 해림은 그런 도연이 조금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굳이 애를 쓰며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응. 그러려고 했는데, 이 편이 더 확실할 거 같아서.”

 “아아―밟아주기에?”

 

 도연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몹시도 흥분된다는 얼굴이었다.

 

 “그런데…발신인이 소우마 미나토네?”

 

 도연은 거듭 웃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리고는 마우스를 달칵거렸다. 프린터가 가동됐다. 종이가 인쇄됐다.

 

 “누군가를 농락하기엔…거짓말만한 게 없지.”

 

 도연은 급기야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늘 까칠한 투로 언제 시호의 정보를 얻을 수 있냐고 했던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라고 해림은 생각했다.

 

 “대체 왜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시호를 못 이겨서 안달이야? 그냥 단순히 너를 놀리는 듯한 소설을 써서?”

 

 도연은 항상 혼잣말로 시호에 대해 얘기를 했었다. 해림은 지나가는 말로 몇 번 도연의 말을 들었었다. 도연의 말에 의하면 시호는 도연이 해결한 사건을 토대로 소설을 쓴다고 했다. 물론 전부는 아니었지만, 도연이 사건을 해결했다는 기사가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항상 시호는 도연이 풀었던 범행에 트릭을 더한 채로 글을 완성한다고 했다.

 

 마치, 이 수수께끼도 풀어 봐.라는 의도로.

 

 “그러게.”

 

 해림의 물음에 도연은 인쇄된 종이를 들고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는 해림을 빤히 내려다보며 표정을 달리했다.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

 “뭐 단순히 말하자면….”

 

 장난과도 같은 그 웃음을,

 

 “…난 걔의….”

 

 …결코, 잃지 않은 채.

 

 “안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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