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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혈마연애전기
작가 : 추적룡
작품등록일 : 2017.11.20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던가. 강호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혈사를 암시하는 서책의 출현. 때를 맞춰 출몰하는 괴인들. 수백 년 전 멸문한 혈교의 부활조짐. 마교와 사파의 심상찮은 움직임까지. 모든 일의 배후이자 새로운 혈마로 지목된 청년은 정작 엉뚱한 소리만 할 뿐이다. 자신은 강호제일미와 혼인하기 위해 강호에 출도했다고. 그리고 엄숙한 얼굴로 선언한다. 자신의 연애를 방해하면 정, 사, 마를 막론하고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괴팍하지만 가슴 따뜻한 이 혈마는 과연 무림을 혈겁에서 구하고 영웅이 될 수 있을... 아니, 그보다 강호제일미에게 장가들 수 있을지. 본격 애인쟁취 분투기, 를 빙자한 무림과의 맞장뜨기가... 진짜 혈마의 전설이 이렇게 시작된다.

 
외모지상주의?
작성일 : 17-12-14 19:07     조회 : 359     추천 : 0     분량 : 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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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내려 달라고?”

 

 남자의 얼굴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어려 보이는 걸?’

 

 나이 지긋한 의원인 줄 알았건만,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청년이었다.

 

 ‘흠, 뭐... 조금은 잘 생긴 거 같기도.’

 

 얼굴에 잔뜩 묻은 흙더미만 털어낸다면 말이다.

 

 “그래, 내려주지.”

 

 사내가 말했다.

 

 “그 전에... 찜을 했으니까, 좀 더 확실하게 해둬야 할 텐데?”

 

 혼잣말처럼, 사내가 중얼거렸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네에...?”

 

 진혜미가 나직이 물었다.

 

 “아, 저 사람들이 좋겠다. 잠시만 기다려.”

 

 생각났다는 듯, 사내가 말했다. 그러고는 주위를 스윽 둘러봤다.

 

 스으으윽!

 

 진혜미도 주변을 돌아봤다.

 

 ‘그래, 맞아. 서 아저씨를 비롯해서 사람들 모두가 굳어졌었지? 내가 빨리 저들의 혈도를 풀어줘야...’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엇?”

 

 “어어, 몸이 움직여!”

 

 “정상으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볼을 꼬집는 사람, 옆 사람과 부둥켜 안는 사람, 자신의 아이를 번쩍 안아보는 사람 등 모두들 기쁨에 차 있었다. 물론 진가장의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뒤늦게 검을 어루만지며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제 됐네, 흠흠.”

 

 사내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주위를 돌아보던 시선을 거둬들인 채였다.

 

 ‘설마... 이 사람이?’

 

 진혜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아닐 거야. 우연의 일치겠지.’

 

 시선을 건네어 볼수록 앳되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홍안의 청년에 불과한 그가, 사람들의 기혈을 일거에 풀어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고작, 시선을 한 번 건넨 것만으로? 그런 일은 불가능해.’

 

 하지만 어쩌면?

 

 ‘정말 이 사람이 한 걸까?’

 

 진혜미는 문득 생각했다.

 

 ‘지금 이 사람이 쳐다보지 않은 유일한 곳은 하늘인데... 거기 떠 있는 창천문 무사들만...’

 

 여전히 몸이 굳은 채, 하늘 위에서 단체로 버둥대고 있는 것이다.

 

 “흠...”

 

 하지만 청년은 창천문 무사들 따윈 알 바 아니라는 양, 그쪽으론 일별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자, 이제 됐어.”

 

 대체 아까부터 뭐가 됐다는 건지, 시선을 거둔 청년이 진혜미를 보고 말했다.

 

 “네? 그것보다 어서 저를 내려주...”

 

 진혜미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무리 자신이 환자에 가까운 상황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계속 안겨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였다.

 

 쪽!

 

 남자가 진혜미에게 입맞춤을 했다.

 

 ‘아...!’

 

 엉겁결에 벌어진 상황. 진혜미는 아무 말도 못한 채, 사내에게 입술을 맡긴 채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의 상황, 마을사람들의 시선, 진금장 소장주로서의 체면... 등등,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주위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는 어렴풋한 느낌만 들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한 가지.

 

 ‘생각보다... 향긋한 냄새가... 아,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청년이 그제야 얼굴을 떼었다.

 진혜미는 짐짓 성난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청년을 노려보았다.

 

 싱긋!

 

 햇살아래서 청년이 해맑게 웃었다. 어이없게도 그 순간, 진혜미는 그의 치아가 희고 가지런하다는 인상을 받는 동시에 입맞춤이라는 것이 원래 이렇게 달콤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 미쳤어! 내가 지금 무슨...!’

 

 다음순간,

 

 웅성웅성!

 수군수군!

 설왕설래!

 

 “뭐... 뭐야?”

 

 “지금... 무슨 일이야?”

 

 “설마,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래?”

 

 “좋을 때네? 호호호!”

 

 주위를 둘러보자 수많은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당과 가게 아주머니에서부터 포목점 영감님, 빨랫터 아낙네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진금장의 무사들도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진 채 쳐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하늘에 떠 있는 무사들도!

 

 “으으... 으으으으으!”

 

 진혜미는 주먹을 들었다.

 

 퍼억!

 

 “내려 달라구요!”

 

 남자의 얼굴을 속시원하게 한 대 쳤다고 생각했지만.

 

 톡!

 

 실제로는 살짝 건드렸을 뿐이었다.

 

 “응?”

 

 주위를 둘러보던 남자의 시선이 다시 진혜미에게 향했다. 자세히 볼수록 준수한 얼굴이었다.

 

 “한 번, 더?”

 

 “무, 무슨...?”

 

 진혜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쪼옥!

 

 남자가 다시 한 번 입을 맞췄다. 아까보다 길고 진한 입맞춤이었다.

 

 짝짝짝!

 

 “와아아!”

 “멋있다!”

 “멋져요!”

 

 웅성웅성!

 수군수군!

 왁자지껄!

 

 가히 난리가 났다.

 

 “한 번 더!”

 

 “한 번 더!”

 

 군중 심리란 이리도 강력한 걸까. 조금 전까지 살벌하기 짝이 없던 상황이었건만, 어느새 그런 건 까맣게 잊었다는 듯 연이어 한 번 더, 를 연호하고 있었다.

 

 “으으으!”

 

 진혜미의 얼굴이 온통 새빨개졌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몸이 가뿐해진 것 같은데도, 이상하게도 청년의 몸에 안긴 채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최대한 째려보면서 앙탈... 아니 화를 내보는 것.

 

 “지, 지금 당장 나를...!”

 

 “이제 그만.”

 

 “뭐, 뭐에욧?”

 

 진혜미가 쏘아대듯 대꾸하자.

 

 “세 번은 안 돼.”

 

 ‘헐!’

 

 진혜미의 머릿속이 충격으로 빙글거렸다. 이쯤되면 가히 정신적 내상(?)이라 할 수 있었다.

 

 ‘대체 이 남자... 무슨 생각을 하는 거? 도대체 무슨 말미잘 멍게 해삼 물오징어 말린 미역 미꾸라지 쭈꾸미 사촌 같은 소리를...?’

 

 짝짝짝짝짝!

 

 저벅! 저벅!

 

 주위에 쏟아지는 박수갈채 속에서, 청년이 여유 있게 걸음을 옮겼다.

 청년이 진혜미를 안고 걸으며 말했다.

 

 “찜 했을 뿐이지, 아직 내 여자라는 건 아냐. 세 번은 좀 일러.”

 

 ‘허어어어어어?’

 

 내... 여자?

 자기가 무슨 왕후장상이라도 되는 줄 아나?

 

 “부끄러워 할 거 없어.”

 

 말문이 막혀 울그락 불그락하는 진혜미의 얼굴이 부끄러워 홍조를 띠기라도 했다는 양, 바라보는 남자였다. 그러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난...”

 

 청년이 덧붙였다.

 

 “...천하제일미와 혼인할 거라서.”

 

 그것은 엄숙한 선언이었다. 진혜미가 읽어왔던 매담집으로 비유하자면, 마치 강호평화를 논하는 회담장에서 정사마의 대표가 정사마대전의 종언을 선언이라도 하듯 한 숙연한 분위기마저 감도는 일성이었다.

 

 ‘하아!’

 

 진혜미의 내면에서부터 깊은 분노의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하아! 뽀뽀는 해놓고 사귀어주시지는 못하시겠다? 그 이유라는 것이... 나, 진혜미가 강호에서 젤 예쁜 여자가 아닐지도 모르니까?’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작금의 강호라지만, 이런 막말이 있는가.

 

 ‘에라이 이런... 망둥어 빠가사리 우뭇가사리 해파리 한쪽 허파만도 못한...’

 

 그때였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

 

 청년이 정면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뭐, 뭐시라?’

 

 이제는 입만 벌리면 무슨 말을 내뱉을지 두려워지기까지 하는 청년이었다.

 

 “난...”

 

 청년은 하늘가를 쳐다봤다.

 먼곳을 응시하는 표정 속에는 뜻밖에도 진중한 빛이 스치고 있었다.

 

 ‘저거야! 저 눈빛 때문에 그만, 연배가 있는 고명한 의원일 거라고 깜박 속았었어!’

 

 그 눈빛은 마치 영겁의 시간을 뚫고 이제 갓 세상에 나온 것처럼 반짝이는 총기와 무거운 우수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한 번 맺은 인연은 저버리지 않아.”

 

 청년이 진혜미를 내려다보고 말했다.

 

 ‘속으면 안 돼, 진혜미! 절대로 저 눈빛에 넘어가선 안 돼!’

 ...라고 다짐하면서도,

 

 “근데 이름이 뭐지?”

 

 “혜미... 진혜미...”

 

 청년의 질문에 진혜미는 곧바로 대답하고 있었다. 평소답지 않은 얌전한 음성이었다.

 

 “난, 척유한.”

 

 ‘척유한...’

 

 진혜미는 속으로 이름을 곱씹어봤다. 울림이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이 분명해! 불쌍한 사람과 일일이 다툴 필요는 없겠지!’

 

 “어서 내려주기나...!”

 

 툭!

 

 기다렸다는 듯 바닥에 내려놓는 척유한이었다. 어줍잖은 소릴 했다가는, 이번에야말로 호통을 쳐주리라 다짐했던 진혜미로서는 싱겁기 그지없는 결말이었다.

 

 “혜미 아가씨!”

 

 “서 아저씨!”

 

 서천휘가 달려왔다. 진금장 무사들은 혈도가 풀린 이후로도 움직이기 어려울 만큼 기력이 빠진 상황이었다. 서천휘만은 이 정도나마 거동을 할 수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응, 서 아저씨는 괜찮...”

 

 그때였다.

 

 “커헉!”

 

 바닥 한구석에 나동그라진 채 백년혈마가 검붉은 피를 토하고 있었다.

 

 “흐으으... 네놈!”

 

 널부러진 백년혈마가 가까스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입가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원독이 잔뜩 담긴 눈길로, 백년혈마가 척유한을 쳐다봤다.

 

 저벅!

 

 척유한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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