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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혼돈과 함께하는 나날
작가 : ghostS
작품등록일 : 2017.11.15

[현대판타지]

혼탁한 시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어설픈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작품 소개 :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끊임없이 기괴하면서 위험천만한 사건사고들이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러한 혼탁한 시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어설픈 그들이 움직인다.
아직 제대로 배운 것도 없는 초짜 ‘퇴마사’ 지망생 '선우명'.
그에게 빌붙어 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 '아애'.

그 둘이 많은 이들과 만나 우역곡절 끝에 힘을 합쳐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괴상한 일들을 해결하고, 세상을 혼탁하게 만드는 존재들과 맞서 싸워 퇴치하는 이야기.

 
#12. 홍탁, 날다.
작성일 : 17-12-14 17:23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8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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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3. 혼(魂)과 백(魄)의 안내자

 

 #12. 홍탁, 날다.

 

  “헉!”

 

  푸다다닥 거리며 갑자기 날아든 괴물 닭의 등장에 선우명은 너무 놀란 나머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쿵하고 뒤로 넘어지기까지 했다. 충격과 공포로 얼떨떨한 선우명의 귀엔 그토록 괴롭히던 악귀들의 귀성까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선우명은 이제껏 살아오며 닭이라는 동물을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사실 닭이나 비둘기나 이 세상 모든 조류들은 다 은근히 징그럽게 생겼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수탉은 살짝 우아하게까지 보였다. 물론 그 닭을 보면서 무서움을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무슨 킹 오브 더 치킨이야, 뭐야?’

 

  선우명이 처음 4층 파티 룸 통유리 벽을 통해 보았을 땐 몰랐지만, 닭은 온통 빨간 색으로 둘러싸여있었다.

  몸통 전체를 감싸고 있는 깃털뿐만이 아니라 부리부리한 눈알도, 무서울 정도로 크고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도 붉었다. 머리위에 꼿꼿하게 세워진 닭 볏과 부리아래의 고기수염도 새빨갛다. 그리고 언뜻 보이는 숱 많고 기다란 꼬리털도 검붉었으며 잘못 스쳤다간 베일 것처럼 날카롭게 보였다.

 

  “홍탁아! 이리로 와!”

 

  홍란이 그 거대한 수탉을 불렀다.

  아무래도 ‘홍탁’이라는 미묘한 이름을 가진 듯한 그 괴물 닭은, 닭 특유의 몸짓으로 목을 기웃기웃 까딱까딱 거리며 뒤뚱뒤뚱 한 발 한 발 선우명에게 다가왔다. 그 움직임에 선우명은 주저앉은 채로 뒤로 더듬더듬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공룡의 직계후손이 닭이라는 가설을 듣고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맞는 것 같다고 지금 선우명은 확신했다.

  이 커다란 녀석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형상이 딱, 머리에 볏이 달린 육식공룡 딜로포사우루스(Dilophosaurus)가 먹이를 잡아먹으려는 모습 그대로였다.

 

  “저기, 레드오어키드님, 이 닭 좀 치워주세요! 지금 절 부리로 쪼려고 하잖아요! 진짜로 살아있는 사람은 안 잡아먹는 거 맞아요?”

 

  선우명은 겁에 질린 작은 목소리로 홍란에게 도움을 청했다.

 

  “홍탁! 그만! 그건 산 사람이야. 그만 해!”

 

  하지만 괴물 닭은 주인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맹견인 것마냥 홍란의 말을 무시했다. 그 꼴을 보고 홍란은 민망한 목소리로 선우명에게 사과했다.

 

  “아, 저기, 미안해요. 지금은 내가 그 녀석 관리자이긴 한데, 홍탁이 제 애완동물 같은 건 아니라서, 제 말을 잘 듣지는 않아요.”

 

  “뭐라고요?”

 

  “그래도 걱정 할 필요는 없으니까.”

 

  “지금 저 녀석이 나한테 하는 짓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뭐, 이상하긴 하네요. 원래 혼백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가지는 녀석이 아닌데.”

 

  홍란의 말을 듣자마자 선우명은 자신의 입술에 맺힌 핏방울을 급하게 닦아냈다. 아까, 귀신들이 내는 굉음을 참아내느라 억지로 이를 악물었을 때 나온 피였다. 선우명의 피 냄새가 요괴나 괴물들을 끌어들인다던 아애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선우명은 이 망할 놈의 닭이 자신의 피 냄새를 맡고 온 것이라고 확신하자마자 큰 소리로 ‘불검’이라고 외쳤다.

  다행히도 활활 타오르는 불검이 다시 선우명의 오른 손 위로 나타났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선우명의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간 우려와는 달리, 불검의 불꽃은 신목의 뿌리를 태우지 않았다. 아마도 선우명이 만들어낸 것들은 원래는 상극이더라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동안 언령조형술로 각각의 오행(五行)을 따로 불러낸 적은 있었지만, 이제껏 단 한 번도 한꺼번에 두개 이상의 오행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아예 시도 자체를 해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급했다.

  이 괴물 닭이 분명 선우명이 목격했었던 것처럼, 지렁이 잡아먹듯 자신을 잡아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무기가 떠오른 거였다.

  선우명의 불꽃 검이 자신 앞에 막아서자 그제야 괴물 닭은 고개를 갸웃 거리며 잠시 뒤로 물러났다.

 

  “어서 저 자식 좀 치우라니까요! 안 그러면 진짜로 불태워서 닭고기 통구이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요!”

 

  “미쳤어요? 그쪽이야 말로 그거 안 치워요? 홍탁은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고! 중요한 영수(靈獸)인 천계(天鷄)라고요. 그리고 또 엄청 성스런 존재라서 귀신도 못 베는 그런 검으론 어차피 우리 홍탁이에겐············! 어, 어라?”

 

  하지만 홍란의 예상과 달리 선우명의 불꽃은 닭의 깃털을 태우고 있었다. 물론 선우명이 진짜로 닭을 구워버릴 생각으로 불검을 휘두른 것은 아니었다. 홍란의 말대로 애초에 귀신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불꽃이었다. 괴물 닭을 불태울 수 있으리라는 예상은 단 일초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선우명이 내휘두른 그 불꽃이 닭의 한쪽 날개에 닿자마자 화르르르륵 불이 번져버린 것이다.

 

  “꼬끼오오오오옥, 꼭꼬꼭꼬꼬꼭”

 

  “까아아아아악! 진짜 미쳤어요? 얼른 불 안 꺼요? 그 홍탁인 진짜 죽으면 안 된다고욧!”

 

  홍탁은 순식간에 불이 붙어버린 자신의 날개를 미친 듯이 퍼덕거렸다. ‘푸다다닥’ 날갯짓 소리가 거칠었다. 놀라 껑충껑충 뛸수록, 닭의 몸통이 처음 봤을 때처럼 점점 커졌다. 그리고 방방거리는 움직임도 점점 더 과격해졌다.

  수탉이 너무 과하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자 선우명도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아, 저기 미안합니다. 진짜로 불로 태울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만 선우명에겐 이미 괴물 닭에게 번져버린 불길을 꺼버리는 재주까지는 아직 없었다.

 

  괴로워하던 닭이 후다다닥 커다란 날개 짓을 하자 그 커다란 몸뚱이가 훌쩍 떠오르기 시작했다. 커다란 날개가 펼쳐지며, 순식간에 괴물 닭은 클럽 [RED]의 내부 홀 천장까지 날아올랐다. 그리고 갑자기 고통을 참지 못하고 사자후(獅子吼) 같은 비명을 토해냈다.

 

  “꼬끼오~~~~~~~~~!!! 꼬끼오오오~~~~~~~~~~~~~!!!!”

 

  그 우렁차고 장엄한 울림은 샅샅이 훑어가듯 퍼져가며 건물 전체를 흔들어댔다.

  그리고 선우명은 옛날 어르신들이 입으로 입으로 전해 준, 닭의 울음이 귀신을 쫓는다는 말도 확실히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는 걸,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냥 닭은 아니더라도 저 녀석 같은 특별한 닭이 울어서 귀신을 쫓는 것을 본 적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리라.

 

  홍탁의 사자후 같은 ‘꼬끼오’ 소리는 클럽 [RED]안에 있던 귀신들에게 분명 영향을 끼쳤다. 닭의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귀신들은 혼비백산 겁을 먹은 것 같았고 이내 그 파동과 부딪히자마자 귀신들의 형체는 하나하나 산산이 깨어졌던 것이다. 선우명의 눈에는 그 무시무시한 잡귀들이 먼지처럼 흩어지는 것이 선명하게 비춰졌다. 그리고 귀신들은 마침내 흔적 하나 남기지 않은 채 깨끗하게 사라졌다.

 

  아직도 바닥에 주저 않아 있던 선우명도, 입을 멍하니 벌린 홍란도, 공중으로 날아오른 홍탁의 커다란 날갯짓과 그 홍탁이 뱉어내는 사자후가 끼친 결과들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마침내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선우명이었다.

 

  “저기, 레드오어키드님, 저 녀석 원래 저런 것도 하나요?”

 

  “아니요, 저도……, 저런 건 진짜 처음 봐요. 저 뚱뚱한 녀석이 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하지만 홍탁의 울부짖음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불이 아직도 꺼지지 않은 채 계속해서 닭의 날개를 태우고 있었다.

 

  “깔깔깔갈깔깔, 뭐야, 무슨 일이야? 크크큭크킄. 나 먹으라고 일부러 저 닭 구워주는 거야? 크크큭ㅋ큭.”

 

  어둠 속에서 아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부러 선우명은 화난 목소리로 외쳤다.

 

  “미친, 아애 너! 이 난리가 나는 동안에 넌 도대체 어디 있었어?

 

  “아우, 아깝다. 진짜 맛있어 보이는데. 아깝다, 아까워. 일부러 우리 귀여운 선우명씨가 날 위해 직접 불에다 구워주기도 했는데 말이지. 깔깔깔갈갈, 그런데 이 녀석은 그냥 안 먹기로 했어. 아깝지만 말이지. 크크큭ㅋ큭.”

 

  “미친. 무슨 헛소리야?”

  “웃기지마. 그렇게 많이 처먹어 놓고선 아직도 배가 고프냐?”

 

  어둠 속에서 낯선 목소리가 동시에 울리자 선우명은 움찔 놀라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홍단님! 대체 어디 있었어요?”

 

  이번엔 홍란이 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시끄러. 나도 내 할 일 하느라 바빴다고. 쳇, 나 덕분에 니 닭이 지금까지 무사한 줄이나 알아라. 그런데 기껏 내 팔 하나 내 주고 니 닭 지켰더니, 결국 통닭구이나 만들어 놓고 있냐?”

 

  그 때 선우명은 분명히 보았다. 커다란 괴물 닭보다 더 커다란 짐승의 입이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불붙은 괴물 닭을 통째로 삼켜 버리는 것을. 그 짐승의 얼굴은 선우명 자신이 그렇게도 좋아하고 집착하는 신화 속의 용을 닮아있었다.

 

  “저, 저, 저, 저, 저건? 뭐죠? 용? 용? 진짜 용?”

 

  그때 다시 전깃불이 파팍 하고 들어왔다. 아마도 클럽 [RED]의 실내 안의 모든 전등불이 동시에 켜진 것 같았다.

  동시에 선우명이 언령조형술로 불러낸 신목의 뿌리도, 불의 검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환한 전기불빛 아래에는 괴물 닭도, 괴물 닭을 삼킨 용의 얼굴도, 아애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 아래에 남아 있는 것은 처참한 몰골의 인간들뿐이었다. 3분의 1은 기절했고, 3분의 1은 울고 있었으며, 나머지 3분의 1은 미친 듯 발광하고 있었다.

 

  이 홍대 클럽 일대에 정전이 된 후, 대략 30여분 정도의 시간만이 흐른 후였다.

 

 *

 

 -바로 오늘 새벽의 일입니다. 2017년 7월 X일, 새벽2시경에 발생한 갑작스런 정전으로 인해 유명 홍대 클럽에서 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000 기자가 이를 취재해 보았습니다. 000 기자, 나와 주세요.

 

 -네, 000 기자입니다. 바로 이곳,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클럽[RED]에서 신나게 밤을 즐기고 있던 수백 명의 시민들은 새벽 2시경 발생한 정전 때문에 끔찍한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 30분 동안 클럽 내에선 어떠한 안내 방송도 나오지 않았다고 하며…………,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직접 출입문을 찾아 헤매다 넘어지는 등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 대부분의 클럽 이용객들은 모두 집단 패닉에 빠진 채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 끔찍한 트라우마가 남을 수 있다고………. 이에 클럽 [RED] 관계자는 모든 정신적, 육체적 피해 보상을 책임지겠다고 발표를 했으며 …………, 또 홍대클럽 일대의 전선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 지며, ………………, 소방당국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찾아 철저하게 규명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

 

  거기까지 듣고 나서 선우명은 뉴스를 꺼버렸다.

  이미 인터넷 상으로는 지난밤의 클럽에서의 정전 사고에 관련해서 많은 말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대부분, 바로 근처에 수해를 입은 지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밤새 클럽에서 놀다 사고가 난 것에 대해 꼴좋다, 쌤통이다, 라는 반응이 많았다.

  또 클럽에 있던 사람들이 병원에 실려 가면서 클럽에서 귀신을 봤다던가, 어둠 속에서 분명히 아나콘다가 움직이는 것을 봤다거나 홀 천장에 불덩이가 날라 다녔다는 등의 황당무계한 진술들을 하는 바람에, 클럽 이용객을 대상으로 마약검사를 대대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들끓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정전 당시 [RED]클럽 루프 탑에서 엄청난 수의 낙뢰가 발생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정전의 이유가 아마 그 마른번개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하아. 저게 다 진짜 하룻밤, 아니 겨우 삼십 분 안에 벌어졌던 일이라는 거지?”

 

  불과 한 시간가량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선우명은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지난 새벽의 홍란과의 만남도 홍탁과의 만남도, 선우명은 충분히 버거웠었다.

  그런데 지금 또 새로운 버거운 것이, 자신도 모르게 하나 더 생겨나 있는 것이다.

 

  선우명이 클럽 [RED]에서의 난리법석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온 것은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털썩 소파에 넘어져 잠에 빠져 들었었다.

  정말이지 장우진이고 김삼재 노인이고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었다. 그저 마음 편히 잠들고 싶었고, 실제로도 시체처럼 편하게 잘 수 있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평소처럼 땀에 젖은 채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 선우명의 머리맡에 서있던 것은 아애 혼자가 아니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미소년은 잠에서 막 깨어난 멍한 표정의 선우명에게 자신을 홍단이라고 편하게 불러도 된다고, 선심 쓰듯 허락했었다.

 

 *

 

  “선우명? 선우멍? 여튼, 너는 밥 안 먹어?”

 

  선우명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애 맞은편에서 아애와 함께 한우를 열심히 뜯고 있는, 엄청나게 잘생긴 미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꼭 유명한 미소년 아이돌 같이 생겼고 옷차림도 누추한 이 집과는 어울리지 않게 화려했다.

 

  “깔깔깔깔깔, 걍 냅둬. 안 그래도 너 땜에 고기 모자란데, 입 하나 없는 게 좋은 거지. 크크큭크큭.”

 

  “그래도 집 주인도 먹어야지? 아, 혹시 나 때문에 불편해?”

 

  “아, 아니……, 아닙니다. 맘 편히, 많이 드십시오. …….”

 

  선우명은 마지막에 덧붙인 ‘드래곤 님’ 이라는 단어를 차마 크게 내뱉지는 못했다.

 

  “깔깔깔깔깔깔, 야야, 선우명! 이 자식 진짜 용 아냐! 짝퉁 돌연변이 용이야. 크크큭. 그렇게 쫄면서 두근거릴 필요 없다니까. 크크크큭.”

 

  “그러는 넌 정체가 뭔데? 족보도 뭣도 없는 잡괴 주제에?”

 

  “깔깔깔, 까불고 있네. 너 팔 하나 다시 났냐? 반대쪽도 다시 한 번 물어 뜯어줘? 크크크큭.”

 

  키 큰 미녀와 키 작은 미소년의 만담을 들으며, 선우명은 고개를 내저었다. 사부님이 돌아오시기 전에 아애 하나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인데, 이대로 가다간 골칫거리 혹 하나가 더 붙어 버린 셈이다.

  그 때 요란한 록 음악의 핸드폰벨 소리가 울렸다. 홍란이었다. 클럽에서의 사고처리 때문에 바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다행히도 홍란은 선우명의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연락을 해 주었다.

 

  “여보세요? 레드오어키드님?”

 

  “아, 선우명씨? 홍단 샊…, 아니, 홍단님 진짜 지금 거기에 있어요?”

 

  “네, 지금 제 눈앞에서 한우를 뜯고 계시긴 한데요.”

 

  “한우? 지금 밥을 먹고 있다고요?”

 

  “네에.”

 

  “하아, 진짜 별일이네요. 여태 홍단님이 술 말고 뭔가를 먹는 걸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하기사 난 홍탁이가 하늘 나는 것도 이번에 처음 봤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뭐.”

 

  “저기, 홍단님은 홍란님과 같이 지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듣기로는 홍란님 보디가드 같은 거라고?”

 

  “뭐, 우리 홍탁이가 다른 괴물들에게 당하지 않도록 하려고, 우리집안에서 유명한 도사님들을 찾아 부탁했고, 그 쪽에서 홍단님을 특별히 보내준 거에요. 여튼 나와 홍탁이의 보디가드가 맞긴 맞는데, 완전 상전이 따로 없었다니까요.”

 

  홍란의 마지막 말은 거의 속삼임처럼 들렸다.

  선우명은 만약 홍단의 성질머리가 아애와 비슷한 거라면,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대외적으로는 홍단님이 내 동생인 걸로 되어있어요.”

 

  “아아, 네에. 그런데 왜 하필 동생으로?”

 

  “진짜로 보디가드가 따라다닌다는 걸 남들 눈에 알려지는 건 싫었거든요. 일단은 가능하면 나랑 매일 밤 가까이에 붙어 다녀야 하니까, 일단 친한 형제나 애인으로 하기로 했는데. 홍단님 생긴 것 좀 봐요. 내 애인하기에도, 오빠라고 하기에도 넘 어려보이잖아요.”

 

  “아아, 네. 그런데 그렇담 지금 당장이라도 홍란님이 위험해 지면 안 되니까 보디가드가 옆에 있어야…….”

 

  “아니에요. 사실은 홍탁이가 밤에만 나오기 때문에 밤에만 나랑 홍탁이 곁에 있어주면 되요.”

 

  “아? 그 괴물 닭이 밤에만 튀어 나와요?”

 

  “우리 홍탁이, 괴물 아니에요, 천계(天鷄)라고요, 신성한 닭! 하여튼 홍단님은 특별히 모신 분이기도 하고, 또 풍 도사님이 특별히 추천해주신 대단한 능력자라고 해서 우리 집안에서도 신경 써드리고는 있지만…. 사실 어찌나 안하무인에 지 멋대로 인지, 그 동안 같이 지내기 엄청 힘들었다고요. 완전히 개망나니였다니까.”

 

  홍란이 잔뜩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하지만 분명 홍단이 마음만 먹으면 그 정도의 소리는 들리고도 남을 거였다. 선우명이 흘깃 홍단의 얼굴을 살폈지만, 다행히도 특별한 표정 변화는 없었다.

 

  “그러니까, 선우명씨, 홍단님은 밤에만 나랑 있어주면 되니까, 낮 동안에만 선우명씨가 좀 맡아주면 안 될까요? 우리 집에 있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음, 서로가. 어때요??”

 

  “아니, 그건 좀, 저도 좀 많이 곤란한데…….”

 

  “아, 걱정 마요. 그냥 염치없이 공짜로 부탁하는 게 아니라, 이건 일종의 의뢰에요. 뭐, 아이 돌보기 아르바이트 같은 거랑 비슷한 거죠. 당연히 적당한 의뢰비를 드릴 거고요.”

 

  “네? 의뢰비……?”

 

  “백만 원.”

 

  “……?”

 

  선우명이 아무 말을 하지 않자, 홍란이 조용히 덧붙였다.

 

  “한 달에 백오십만 원. 어때요?”

 

  “……?”

 

  “좋아요. 홍단님이 그 집에선 밥도 먹는 것 같으니까, 한 달에 삼 백? 콜?”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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