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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해결사
작가 : 골든피크
작품등록일 : 2017.12.11

40년, 그 오랜 시간동안 윌런 왕국을 지배하던 오리헨은 도리어 속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 아래에서 볼모로 잡혀온 '저능아 왕자' 는 오늘도 하루를 겨우 연명하는 처지였다.

 
해결사
작성일 : 17-12-14 16:57     조회 : 279     추천 : 0     분량 : 8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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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고대룬어학부 시험까지 끝나자 어느새 저녁이 되어 해가 지고 있었다. 산 등선으로 모습을 감추려는 해는 붉은 그림자를 남겨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하나의 커다란 투기장 같은 구조물로 된 버밋아카데미는 노을을 받아 흰 벽이 유독 반짝거렸다.

 그 한 가운데 위치한 검은 외탑 '피레스' 창문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겉을 꾸미는 장식도 없이 높이 솟은 그것은 보는 것만으로 웅장함을 느끼게 만든다.

 투기장 형태의 건물이 아카데미의 수업을 위한 교실이라면 피레스는 기숙사, 식당, 교장실 등 학생들의 편의와 아카데미 운영을 위한 방들이 있는 탑이었다.

 

 로윈은 지금 피레스에 있는 1반 교실로 찾아가는 중이었다. 버밋 아카데미는 기본적으로 학부를 중심으로 운영이 되지만 아침과 저녁은 피레스에 있는 각 반에서 기본 교육을 받게 되어 있었다.

 입구 쪽에 북적거리는 인구들을 피해 계단으로 탑을 올라간 로윈은 이번에는 바로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었다.

 

 드르륵.

 뒷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순간 교실 안에 있던 인원들의 시선이 로윈에게로 쏠렸다. 반 정도는 비워져 있었지만 나름대로 북적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가라앉고 침묵 속에서 로윈은 무표정하게 구석에 있는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아이라면, 오리헨 맞지?"

 "맞는 것 같은데 그, 저능아 왕자."

 "뭐야, 설마 우리 아카데미로 전학온 거야? 기분 나쁘잖아."

 

 수근거리는 소리들 사이로 로윈은 시선을 내리깔고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로윈을 보며 소곤소곤 얘기하던 이들은 그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내 관심을 풀고 자기들끼리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다른 학부에서도 슬슬 수업이 끝났는지 하나 둘씩 교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들 밝은 표정으로 들어오다가도 로윈의 존재를 알고 나서 불편한 기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들은 최대한 로윈에게서 멀리 앉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어? 새로운 전학생인 거야? 귀엽게 생긴 아이잖아?"

 

 행여나 로윈을 모르는 학생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오려하면 친구로 보이는 이가 귓속말로 무언가를 속닥거렸다. 그러면 그들의 얼굴에는 단숨에 멸시의 눈빛이 흘러내린다.

 로윈은 작게 한숨을 쉬고 밖을 쳐다보았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너무 예상대로였다.

 

 드르륵.

 문이 드르륵 열리고 누군가가 또 들어오는 와중에 로윈은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들어온 사람은 한번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로윈 쪽으로 다가갔다.

 아무 말없이 의자를 뒤로 끌자 그제서야 로윈은 옆을 쳐다보았다.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과 주황색 눈동자를 가진 소녀는 로윈이 알기로는 하나였다.

 

 "미아랭."

 "응."

 

 짧게 고개를 끄덕인 미아랭은 의자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무슨 말을 하기가 뭐해 가만히 있던 중에 미아랭이 로윈을 슬쩍 흘겨보았다.

 

 "다른 학부, 시험."

 "다른 학부에서 본 시험 말입니까? 그냥 안 보는 편이 나을 뻔했어요."

 "모르는 거야, 결과는."

 "아, 시험지에 백지로 내고 와버려서 말이지요. 붙을 일은 전혀 없을 걸요."

 

 그럼 떨어지겠네 하고 중얼거린 미아랭의 말에 로윈은 속으로 쓰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검술은 합격, 축하해."

 "방금 전에 결과는 모르는 거라고 하셨잖습니까?"

 "합격, 내가."

 "합격시켜 줬다고요? 미아랭이?"

 "응."

 

 로윈은 미아랭이 검술학부의 부단장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부단장인 그녀가 직접 한 말이므로 믿을 수 있었다. 로윈은 슬며시 미소지어 보였다.

 

 "정말로 고마운데요? 덕분에 들어갈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검술학부, 실력우선, 충분해."

 "말도 안 돼! 그걸 합격했단 말이야?"

 

 문득 다른 목소리가 끼어둘자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그곳에는 토끼마냥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엘리스가 서있었다. 학생 공용의 아카데미 복장을 입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왕족의 기품이 살아있는 그녀였다.

 

 "호,혹시 모르는 거잖아. 미아랭, 그거 확실한 정보인 거야?"

 

 그녀는 당황한 어조로 다시금 사실여부를 물었다. 미아랭은 대답하기 대신 엘리스의 눈을 쳐다보았다. 엘리스는 자신을 쳐다보는 무표정한 주황색 눈동자가 몸을 움찔거렸다.

 

 "이름 부르지마, 낸시야, 너한테는."

 "으응."

 

 미아랭에게서 나오는 위압감에 눌려 엘리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윌런의 왕녀인 엘리스의 위치는 버밋 아카데미에서 누구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는 위치이다. 거기다가 보통의 왕족들과는 다르게 엘리스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잘 어울려주기 때문에 1반에서 엘리스의 인기는 꽤 높은 편이었다.

 가끔 한 몫 잡으려고 친근하게 구는 사람들과 진짜 친해지기 위해 다가오는 사람들을 구별하지는 못해서 문제이긴 하지만 그녀도 약간의 눈치로 호불호를 가릴 수는 있었다.

 반에서 미아랭 낸시 대한 엘리스의 호감도는 호감도 불호감도 아닌 딱 중간 정도여서 서로 말을 걸지도 않고 그저 인사만 주고받는 사이였지만 이 때만큼은 아니였다.

 

 "낸시, 정말로 로윈이 검술학부에 통과했다는 말이야?"

 "증인, 나."

 "나, 나는 못 믿겠어.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니잖아."

 "윌런푸스 왕녀님."

 

 엘리스는 로윈이 이름을 부르자 또다시 움찔했다. 그의 얼굴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지만 저 눈동자 너머로 장난스러운 빛이 가득했다.

 

 "설마 고귀하시고 정직하신 윌런 왕국의 왕녀님께서 정당한 내기를 모른척 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무, 물론이지. 약속 하나는 내가 또 칼같이 지킨다니까."

 "그럼 소원 들어주시는 거죠?"

 "무슨 소원인데... 내가 못 들어주는 건 안되고 또, 뭐랄까. 우리 둘에 관한 거면 또 곤란하기도 하고...기쁘기도..."

 

 한 손가락으로 볼 근처를 만지작 거리는 엘리스의 볼에 약간 홍조가 졌다. 로윈은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고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나중에 개인적으로 말씀드릴게요."

 "개인적으로?!"

 "?"

 

 혼자서 무슨 상상을 하는지 엘리스는 얼떨결에 큰소리를 냈다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미아랭은 그런 엘리스의 모습과 왜 그러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의 로윈을 보고 작게 코웃음쳤다. 이거야 원, 일방통행이구만. 가망이 없어, 가망이.

 

 쿠당탕.

 무언가 큰 소리가 나자 로윈은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보았다. 누군가가 넘어졌는지 바닥에 엎어졌다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더벅한 갈색 머리와 낡아서 헤진 아카데미 복장을 입은 남자는 로윈이 아까 만났던 가넷이었다.

 넘어지면서 제대로 부딪혔는지 인상을 찌푸리는 가넷의 얼굴을 보는 이들이 그를 보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괜찮으세요, 가넷 씨? 혼자서 넘어지셔서 쓰겠어요?"

 "네가 발을..."

 "어라? 무슨 소리 하시는 거에요? 증거라도 있어요?"

 

 문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학생이 다리를 꼬며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이 고의로 가넷의 발을 걸은 것 같았다. 가넷은 몸을 일으키면서도 혹시나 옷에 문제는 있지 않을까 꼼꼼히

 

 "혹시 옷이 안 찢어졌나 봐요. 안 그러면 지난번처럼 구멍난 옷으로 수업 듣겠네."

 "그 때 대단했었지, 하하하."

 

 빗발하는 조롱 속에서 가넷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싸늘한 눈빛이 올라왔지만 이내 사라졌다. 그 대신 거짓말처럼 그 자리에 웃음이 올라왔다. 로윈의 눈이 슬쩍 커졌다.

 어째서인지 가넷의 모습이,

 

 '동질감?'

 

 로윈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게 보였다.

 

 "함부러 장난치다간 큰일난다?"

 "어쩌라는 거야, 늙어서 아카데미 들어온 괴짜가."

 "큰일 내봐요, 그 다음은 책임 못 질텐데?"

 

 가넷이 주먹을 쥐어보이며 말했지만 상대방은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며 비웃을 따름이었다.

 늙다리 괴짜. 그것은 버밋 아카데미에서 가넷의 별명이었다. 버밋 아카데미 학생들의 평균 나이가 16~19살인 것에 비해 가넷은 그들보다 3살 이상은 많은 22살이었다. 거기다가 평민의 몸으로 대륙에서도 유명한 버밋 아카데미에 들어와서 뛰어난 실력으로 아카데미 장학생을 꿰차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반에 있던 이들은 실력도 나이도 가넷에게 뒤쳐져 가문의 위세만을 내세워 그를 놀릴 뿐이었다. 가넷도 그것을 알기에 속으로 '골이 빈 놈들' 이라며 혀를 차고 빈 좌석으로 갔다.

 

 "어라?"

 

 마지막 남은 빈 자리가 엘리스의 옆이라 그쪽으로 가던 가넷은 뒷줄에 앉은 로윈을 알아차렸다.

 

 "시크한 꼬맹이, 너 전학생이었냐?"

 "네. 좀..."

 

 로윈이 습관적으로 좀도둑이라고 말하려고 하자 가넷이 황급하게 로윈의 입을 틀어막았다.

 

 "으허허, 무슨 말을 하시는 건가, 동생?"

 "당신이 왜 제 형인겁니까?"

 

 둘만 있을 때는 좀도둑이니 뭐든 들어도 상관이 없지만 주변에 항상 먹잇감을 찾듯이 가넷의 허점투성이를 찾는 이들이 들었다간 어떻게 반응할 지 뻔했다.

 

 "허허, 우리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자구, 응?"

 "알았으니까 손 좀 놓으십쇼. 손에서 악취가 풍깁니다만?"

 

 어어 그래 하고 가넷이 손을 때자 로윈은 입가를 손등으로 스윽 닦았다. 머쓱해진 가넷은 머리를 긁적이다 제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있었다.

 전원이 반에 착석하고 나서 모두들 자기들끼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 일정에 대해서 궁금한 로윈이 반 어딘가에 시간표가 붙어있나 두리번거리자 미아랭이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시간표."

 "아, 감사합니다. 미아랭."

 

 시간표 상으로 보니 이제 곧 1시간 정도는 자유시간이었다. 그 뒤에는 각 반별로 담당선생님들이 들어오시고 교양이라든지 역사 등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진행한다.

 

 "그 1시간 말이야, 자유시간이라고 적어놨지만 사실은 저녁 시간이랑 같은 말이야."

 "그렇습니까?"

 

 마침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바이올린으로 된 음악이 흘러나왔고 그 소리가 끝나자 반이 소란스러워지고 일부는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물끄럼히 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로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이 저녁이라고 하셨습니까?"

 "응, 왜?"

 

 엘리스의 말에 로윈은 의아한 얼굴이었다. 저녁시간이라면 다들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어야 하는게 일반적일텐데 대부분 제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있으니 그게 이상할 따름이었다.

 

 "음, 그게 사실은 아카데미 내부에 있는 식당에서 주는 급식이...마,맛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집안에서 주는 음식들이 훨씬 맛있는 게 사실이라서 대부분 자기 도시락을 들고 와."

 "거짓말, 그거."

 

 이때까지 가만히 있던 미아랭이 방금전 말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강하게 이야기했다. 로윈이 왜 그러냐고 묻자 미아랭의 미간이 파르르 떨렸다.

 

 "여기 음식, 최악, 쓰레기."

 "쓰레기요?"

 "인정하는 바다. 내가 겨우겨우 돈을 모아서 한 번 먹어봤다만 그렇게 아깝게 돈을 버린 적은 없었지."

 

 가넷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주먹을 쥐고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처음 이곳에 입학해서 한 달동안 빠듯하게 번 돈으로 생활비에 보태고 남는 동전들을 겨우겨우 모아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한 적이 있었다.

 평민 촌놈이었던 그가 귀족들이나 먹는 음식을 먹는다는 생각에 막 기뻐하다가 딱 한 입 먹자마자,

 

 "그대로 기절해 버렸어. 너무 맛 없어서."

 "그 정도입니까?"

 "응, 더하면 더했지."

 

 로윈은 한 손을 턱에 괴고 흐음하는 소리를 냈다. 그 정도라면 음식이라기 보다는 독극물에 가까웠다. 그것들을 모아서 전쟁 시 적군에게 먹인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은 생화학 무기가 될 것이라는 실없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실제로 버밋 아카데미가 교육만으로 따지면 로라시아 대륙에서 손꼽히지만 최고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버밋 아카데미의 식단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매년 거기에 대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열렬한 컴플레인이 들어오지만 몇 년동안 바뀐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 중에서 현재 가장 유력한 설은 식당의 요리사가 아카데미 이사장의 친척이라는 설이었다.

 

 "그, 그래도 먹다 보면 먹을 만하지 않았을까나?"

 

 엘리스는 손가락으로 볼을 살짝 긁었지만 시선만은 옆으로 회피한 상태였다. 그녀 역시도 아카데미의 급식이 얼마나 최악인지는 잘 알고 있었지만 자기 왕국의 아카데미의 이미지가 망가지는 것을 보기가 껄끄러웠다.

 

 "왕녀님, 아무리 윌런 왕국의 아카데미라도 변호할 수 없는게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가넷의 얼굴은 로윈이 오늘 만났던 그의 얼굴 중에서 가장 단호하고 냉정했다.

 

 저녁 시간이 되니 각자가 준비해온 도시락을 꺼내서 먹기 시작했다. 로윈은 오면서 아무것도 챙겨오지 못했기에 그저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런 그를 본 엘리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뭐야, 로윈. 도시락 준비하지 않은 거야?"

 "네."

 "그럼 내 도시락으로 같이 먹자."

 

 엘리스가 특별히 보온 마법까지 걸린 자신의 도시락을 꺼내보였지만 로윈은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사양하겠습니다."

 "어째서?"

 "남에게 신세받기 싫습니다."

 "우리가 남이야?"

 "...?"

 

 의미를 모르겠다는 로윈의 표정을 본 엘리스는 윽하는 소리를 냈다. 상처받은 앵무새같은 표정을 짓는 엘리스에게 로윈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권유해봤자 로윈이 받아주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 엘리스는 다음에는 도시락을 2개 준비해야겠다 생각할 뿐이었다. 로윈은 저녁을 굶고 마려고 했으나

 꼬르륵.

 작은 소리가 로윈의 뱃속에서 나왔다. 워낙 작은 소리라서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소리였지만 로윈의 주변에 있던 이들은 전부 들을 수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로윈에게 돌아갔지만 로윈은 창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남들에게는 원체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로윈이지만 모두들 알 수 있었다. 저 반응은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거라고.

 

 끌끌하면서 웃어대던 가넷이 주섬주섬 도시락통을 꺼냈다. 나무를 대충 깎아 네모낳게 모양만 만든 도시락 통을 열자 쌀과 야채를 버무려 만든 주먹밥 2개가 덩어리채 놓여 있었다.

 

 "내껀 그냥 주먹밥이라서 맛대가리는 없겠지만 이거라도 먹어라."

 "아뇨, 괜찮습니다."

 "마, 몸뚱아리도 비실비실 한 놈이 뭘 굶을라 카노? 그냥 줄 때 먹으라카이."

 

 가넷은 들고 있던 주먹밥을 로윈의 손에 억지로 쥐어줬다. 잠시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 옆에서 재촉하는 가넷 때문에 주먹밥을 한 입 베어문 로윈은 의외의 맛에 눈썹이 꿈틀거렸다.

 

 "맛있네요."

 "그렇제? 역시 요리하면 이 가넷이 한 솜씨한다니까."

 "직접 만드신 거에요?"

 "고럼, 어차피 집에서 음식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말을 이어가던 가넷의 얼굴이 잠시 어두워졌다. 자신이 말하고도 무언가 잘못 말했는지 한쪽 눈매가 찌그러졌다. 그러나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가넷은 빙긋 웃어보였다.

 

 "몸뚱아리 멀쩡한 이 몸 아니겠나."

 

 로윈은 가넷이 지금 거짓으로 웃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나이를 먹고도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는 걸로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었지만 거기까지. 딱 거기까지여야만 했다.

 

 "로윈."

 

 로윈이 주먹밥을 받아들고 먹기 시작하자 엘리스는 불만에 가득 찬 얼굴로 그를 불렀다.

 

 "어째서 내 꺼는 거절하는 거야? 내 도시락이 훨씬 맛있고 양도 많은데."

 

 실제로 엘리스의 도서관은 데이지 궁에 있는 특급 셰프들이 매일 아침마다 최상의 식재료들로 직접 만들어낸 최고급 요리였다. 풀을 먹고 자란 소의 고기와 아무런 처리없이 자연 속에서 자란 유기능 채소, 바다에서 멀어 보기 힘들다는 해산물까지 화려하게 차려져 있었다.

 

 "내가 먹어보라고 꼭 부탁해도?"

 "전력으로 거절하겠습니다."

 "너무하네~"

 

 한 쪽 입술을 지근지근 깨물던 엘리스는 이내 포기하고 나서 자신의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로윈이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맛있는데 말이지. 누가 먹어보면 깜짝 놀란 텐데."

 "어머? 엘리스. 그럼 우리도 먹어봐도 될까?"

 "으응? 그, 그래."

 

 엘리스의 도시락 앞에서 눈을 빛내는 학생들을 보자 식은땀이 났다. 속으로 이럴려고 한게 아니였는데 하고 소리쳤지만 겉으로는 어색하게 웃으며 먹어보라고 하자 우르르 몰려온 학생들 때문에 도시락은 순식간에 털려나갔다.

 

 로윈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엘리스를 보면서 그녀의 도시락은 안 받아먹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듯 모르게 반에 있는 학생들의 관심이 네 사람 쪽으로 몰려있었다. 엘리스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남들의 시선, 특히 적대시 하는 시선에 민감한 로윈은 그런 이들의 분위기를 잘 파악할 수 있었다.

 

 로윈이 레옹 성에 살면서 알게 된 것들 중 하나는 사람은 자신이 보는 모습이 대부분 사실이라고 여긴다는 거였다. 물론 그 겉모습이라는게 사람의 외모를 지칭할 때도 있지만 특정 인물의 이미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성격, 어떤 출신, 어떤 사상 같이 특정 이미지들이 자신의 것과 부합한다면 관계에 있어 진전이 될 것이고 그것이 맞지 않다면 반감을 일으키고 그 이미지에 대한 인식을 낮추거나 배척해 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최대한 타인이 바라보는 이미지에 맞추려는 경향이 있었다. 배척받지 않으려고, 서로 연대가 되고 싶어져서.

 

 지배국 윌런의 왕녀와 속국 오리헨의 왕자. 둘의 관계는 남들이 봤을 때에 절대 좋은 관계여서는 안된다. 두 사람의 감정은 논외로 두고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각자의 이미지에 맞게 행동해줘야 지켜보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는다.

 어차피 윌런에 있는 이상 로윈은 이미지에 관계없이 남들에게 반감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는 애초부터 그럴 수 밖에 없는 입지였으니까.

 

 그러나 엘리스는 아니였다. 그녀는 속국에서 볼모로 잡아온 왕자에게 잘 대해주면 곤란하다. 지배국의 왕녀로 태어난 이상 그녀의 감정은 그녀의 것이면서도 동시에 그녀의 것이 아니다. 윌런이라는 왕국이 원하는 이상적이고 지향하는 모습, 거기에 맞추어 이미지를 쌓아야 한다.

 오늘처럼 엘리스가 로윈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건 로윈에게도 엘리스에게도 좋은 일이...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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