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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장미의 이름
작가 : 홍단
작품등록일 : 2017.12.14

꿈을 꿔.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꿈을.

알레테아의 혼잣말에 그가 묻는다.

...돌아가고 싶은 건가요?

대답은 생각보다 빠르고, 분명하게 돌아왔다.

돌아가고 싶다고 한 적은 없어. 기억 속에서 긁어내고 싶을 뿐이야.



알레테아도 한때는, 미치도록 돌아가고 싶었다.
그녀의 부모와, 형제와, 이웃들의 몸을 양분으로 피어난 그 혐오스러운 붉은 꽃들의 꿈을 꾸기 전까지는.

 
3화 - 알레테아(3)
작성일 : 17-12-14 16:22     조회 : 252     추천 : 0     분량 : 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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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길드장님! 여기 계셨네요.”

 

  침대 옆에 누군가가 서서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은, 기도를 한창 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기척도 없어 자신의 침실에 들어오다니, 분명 밖에서 길드원 몇몇이 지키고 있을 터였다. 어떻게? 하고 의문스러워하며 알레테아는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하여 재게 고개를 돌렸다.

 

  “누구...”

 

  “길드장님, 왜 약속 안 지키셨어요?”

 

  “그게 무슨...”

 

  “제 동생이 배가 고프다는데, 왜 약속을 안 지키셨냐구요.”

 

  아닌 밤중에 도대체 무슨 개소리야?

 

  알레테아가 고개를 돌린 쪽에는, 새하얀 백발의 깡마른 소녀가 알레테아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대충 열아홉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는 핏기 없이 하얀 피부에 하얀 머리카락은 아무렇게나 묶어 올려 엉망이었고 여기저기 솔기가 터지고 찢어진 낡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이 흡사 무덤에서 튀어나온 귀신같았다.

 

  여기까지만 봐도 오싹한 모습이었다만 소녀의 눈은 오싹함을 넘어 무시무시한 기운까지 풍기고 있었다. 밤이라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올랐다만, 동공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만 눈동자가 알레테아를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별빛도 그 눈동자 위에는 반사되지 못하리라 싶을 정도로 어둡고 적막한 눈동자였다.

 

  “라키샤...? 지금 뭐 하는 거지? 제 자리로 돌아가지 못해!”

 

  알레테아는 오싹한 감정을 어떻게든 참아 내며 짐짓 큰소리를 쳤다. 저 거지꼴의 무시무시한 소녀는 얼마 전 모독자 포획을 위해서 들인 길드원이었다. 볼 때마다 무서운 데다가 제정신도 아니기는 했지만. 거기다가 ‘매우 껄끄러운’ 녀석이기까지 했지만, 라키샤가 없었다면 모독자를 잡지 못했을 터였다. 모독자를 만나고 얼마지 않아 바로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던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닌 괴물.

 

  그런데 지금 한창 자고 있어야 할 시간에 그 무시무시한 괴물이 자신의 침대 앞에 서 있었다. 그것도 이상한 말이나 지껄이면서 말이다.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도대체 왜 여기 있는 것인지.

 

  그렇기에 괜히 큰소리를 쳐서 방에서 쫓으려고 한 것이었다. 원체 꺼림칙한 녀석이라 피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만, 지금 안 그래도 심란한데 이딴 거에까지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한창 기도하면서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중인데 감히 방해를 하다니... 하는 심정과, 기도하면서 터뜨리고 있던 분노가 그 쪽으로 향한 탓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자신이 완전히 오판을 내렸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불과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왜 약속 안 지키셨어요? 위버멘쉬, 아니 모독자를 잡으면 제게 준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왜 다른 놈 줬어요.”

 

  라키샤가 한껏 칭얼대는 목소리를 냈다. 역시나 했는데 며칠째 저 소리다.

 

  “...모독자를 만신전에 바치는 건 당연한 거야. 그래도 일단 만신전에 요청하긴 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라쉬미가 더 못 기다린대요. 계속 배고프다고 울고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번에 많이 먹이라고 일부러 돈도 많이 챙겨 줬잖아! 도대체 왜 모독자에 집착하는 거야?”

 

  알레테아는 화가 나서 소리 질렀다. 짜증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 야만인 녀석이랑은 원체 말이 안 통했다. 항상 동생이 배고프다고 징징징... 정작 동생이란 녀석은 본 적도 없었다. 동생이란 게 있기나 할까 의문이 들 정도로. 게다가 무슨 돼지새끼라도 되는지 라키샤는 항상 동생이 배고프다고 징징거렸다.

 

  무엇보다도 모독자의 신체에 집착을 하는 게 가장 이상했다. 제국 밖에서 온 야만인 출신이라 정신이 좀 이상한 건지 다른 먹을거리나 돈에는 집착하지 않고, 오로지 모독자의 신체에만 집착을 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건지.

 

  그러나 그렇게 한창 화를 내고 얼마지 않아. 알레테아는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뭐야, 너 팔이...”

 

  그 새까맣고 깊이가 도저히 느껴지지 않는 눈에만 집중하고 있어 차마 알아차리지 못했었는데... 짜증을 내며 고개를 홱 돌린 순간, 알레테아의 눈에 라키샤의 왼팔이 비쳐졌다.

 

  당연하게도 하얀 피부대로 하얀 팔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동자에 하얀 팔뚝이 비친 순간, 알레테아는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고야 말았다.

 

  라키샤의 왼팔은 지나치게 얇았다. 하얗게 드러난 팔은 오른쪽 팔에 비해 배는 더 얇아 보였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착각이었지만.

 

  왼팔이 지나치게 얇은 게 아니었다. 팔의 살을 다 발라내서 하얀 뼈마디만 남았기에 얇아 보였을 뿐이었다. 하얀 뼈마디 위로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으며 살점 몇 개만이 그 위에 붙어 덜렁대고 있었다.

 

  원래 무언가에 베였을 때도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아픔을 못 느낀다고 하던가. 알레테아도 똑같았다. 그 전까지는 냄새 따위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데, 알아차리고 나니 역겨운 피 냄새가 진하게 훅 끼쳐 왔다. 끔찍할 정도로 역겨운 냄새, 맡아도 맡아도 적응이 되지 않는 그 냄새였다.

 

  알레테아는 구토감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토악질을 했다. 먹은 게 없어서 나오는 것은 없었지만, 끔찍한 광경을 본 탓인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머리통이 날아가는 것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수많은 길드원들이 다채롭게 죽어가는 꼬락서니를 무수히 봐 왔지만, 이 정도로 기막히게 끔찍한 광경을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라쉬미가 배고파해서 준 거에요. 라쉬미는 저주를 받아서, 먹을 수 있는 게 정해져 있으니까요. 사람이랑, 신의 축복을 받은 백성이랑...”

 

  라키샤가 손가락을 꼽으며 종알종알 끔찍한 소리를 읊어 댔다. 입에서 나온 말들이 하나같이 흉악하기 그지없었다. 사람, 백성, 권속, 모독자... 뭐 이딴 것들을 동생이 먹는단다.

 

  예전부터 미친년이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까지 돌아 버렸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는데. 그나마 이전에는 어딘가 나사 빠진 년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그냥... 미친년이다. 그것도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식재료로 생각하는 미친년. 쓸 만하다 해서 받아들인 게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눈앞의 모독자를 잡는 데 정신이 팔려 이딴 녀석을 끌고 온 게 잘못이었어. 이 녀석의 능력이라면 될 거라고... 내가 미쳤지!’

 

  “라쉬미가 아직도 배고파해요. 모독자는 베어 내도 안 줄어들던데, 그럼 라쉬미의 배고픔을 멎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미쳤어? 그게 사실이면 네 동생은 괴물이야! 아님 네 망상일 뿐일 거라고.”

 

  알레테아는 역겨움 것을 삼켰다가 뱉어 내듯 말을 내뱉었다. 제발, 제발 제정신 좀 차려라. 간절함마저 담긴 말소리는 공허하게 허공을 울린다. 그러나 알레테아의 말은 라키샤에게 전혀 닿지 않는 듯 했다.

 

  라키샤는 머리카락 한쪽 끝을 돌돌 말며 무덤덤한 눈으로 알레테아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계속할 뿐이었다.

 

  “저 그래서, 모독자를 못 받는다면 기부를 받기로 했어요. 다들 손가락 하나씩! 좋은 생각인 거 같지 않아요?”

 

  미쳤다, 완전히 미쳤어.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갑작스럽고 끔찍한 상황 앞에서 발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다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오금이 지져지는 느낌만이 전신을 지배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뇌에 차 침대에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딴 상황에 처한다면 누구나 그럴 게 뻔했다. 떨리는 다리에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 않고, 시선의 끝에는 붉게 덜렁이는 살점들만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라키샤가 알레테아가 도망칠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 줄 리는 만무했다. 알레테아가 그렇게 떨고 있는 와중에도, 라키샤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알레테아를 향하여 다가오기 시작했다.

 

  “길드장님도 기부해 주실 거죠? 약속 안 지켰으니까. 아, 그런데 길드장님은 손가락만으론 안 돼요. 거짓말쟁이의 심장이 먹고 싶다고 동생이 그러던데-”

 

  라키샤의 새빨간 혀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뱉었다. 세상에. 지금 심장을 먹는다고 말했다. 손가락도 아니고 심장.

 

  알레테아는 저도 모르게 가슴을 손으로 포갰다. 그래봤자 저년이 마음만 먹으면 금방 꿰뚫릴 걸 알고 있음에도, 원초적인 공포감이 알레테아의 몸 전면을 지배했다. 제대로 사고회로가 돌아가지를 않는다. 속이 울렁이고 귓속에 물이 들어간 것 같은 불안정한 감각만이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움직여야 해, 움직여, 움직여, 아니면 죽는다고! 제기랄!’

 

  “거짓말쟁이의 심장은 무슨 맛일까요?”

 

  라키샤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알레테아의 심장을 향하여 천천히 뻗어 왔다. 핏기라고는 하나 없이 파란 정맥이 다 비치는 하얀 팔이 금방이라도 심장을 움켜쥘 것만 같은데, 몸이 마비되어 움직이지를 않았다.

 

  하얀 팔과 덜렁거리는 붉은 살덩어리, 그 사이로 보이는 하얀 뼈, 다시 붉은 핏줄기, 하얀 머리카락, 새파란 핏줄,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이든 빨아들일 것만 같은 - 이미 알레테아의 정신을 빨아들인 것만 같은 - 새까만 눈. 그 순서로 공포에 어린 초콜릿 색 눈동자가 복잡하게 움직인다. 곧 박동을 멈출 심장을 애도하듯, 두려움에 덜덜 떨면서. 아무런 희망도, 힘도 꿈꾸지 못한 채로.

 

  그때였다.

 

  “도망치세요! 이 녀석은 제가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한 남자의 목소리가 라키샤의 뒤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는 라키샤가 뒤를 돌아볼 계제도 없이 바로 라키샤를 덮쳤다.

 

  “이게! 기부 좀 받는다는데, 약속 안 지킨 건 너희잖아! 내 동생이 굶어 죽어 간단 말이야!”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알레테아는 라키샤가 악을 쓰는 것을 뒤로 하고 방문을 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움직여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최선을 다해 뛰었다. 굳어져 있던 다리가 비명을 질러댔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빨리 저 미친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자신을 도와준 자가 길드원 중 누구인지는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라키샤를 막을 수 있는 길드원이 현재 있을 리가 만무하다는 것뿐이었다. 모독자도 고깃덩이로 만든 년이다. 그것도 단신으로... 그런 놈을 누가 막아?

 

  저 녀석이 막아 줘 봤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따라올 게 뻔했다.

 

  아주 최악의 밤이다 - 라고 한탄하며, 알레테아는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빠져 나와 내달리기 시작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뒤를 차마 돌아보지 못했다. 언제고 다시 따라올까 봐, 다시 그 눈을 보면, 그 하얀 팔을 보면, 그 사이 끼어 있던 붉은 살덩이를 보면, 그리고... 라키샤에게 참혹하게 당하고 있을 길드원을 보면 움직이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버릴 것만 같아서.

 

  앞으로 힘껏 내달리는 알레테아의 앞으로, 어두운 복도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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