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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의 집 2층에는 미친 무언가 숨어있다.
작가 : 접견
작품등록일 : 2016.8.26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댁에서 지내게 된 류설하와 류진, 그 집, 2층에서 승강기를 발견한다.
(지구라면, 시계탑의 숫자가 13까지 있을 리 없고, 건물이 허공에 떠 있지 않으며, 바다가 하늘에 뒤집혀 있을 리 없다. 구름이 그 바다 밑으로 붕붕 떠다니고 있을리가 없다. 태양이 두 개일 리도 없다. 잔디 잎이 먼지처럼 붕붕 떠다니고 있을 리도 없다. )

 
8. 그렇게, 그들은 세계에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작성일 : 16-09-05 00:19     조회 : 370     추천 : 0     분량 : 7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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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그렇게, 그들은 세계에 동화되어 가고 있었다.

 

 기억들의 파편이 세차게 지나쳐 갔다. 선명한 것, 투명한 것, 할 것 없이 롤러코스터의 배경처럼 뒤로, 뒤로 넘어갔다. 실제로 설하의 영혼은 롤러코스터 맨 앞자리에 타고 있었다. 옆에는 미츠오카의 영혼이 동승하고 있었다. 비록 영혼이긴 하나, 감각은 현실처럼 생생했다. 바람에 닿는 촉감, 흩날리는 청각, 침이 마르는 미각, 눈을 질끈 감은 시각. 심지어는 심장 박동까지.

 불행히도, 설하는 놀이기구를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기루를 타면서 눈을 올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두려움에 못이겨 아예 울어댈 정도였다. 내려갈 때, 토 쏠리고, 심장이 철렁거리며,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느낌을 싫어했다. 그녀가 탄 자리의 손잡이는 항상 땀으로 젖어있고, 바닥에는 눈물로 젖어있었다. 때문인지, 중학교 일학년 이후로는 회전목마나, 탐방 기구같은, 다소 정적인 기구만을 선호하고, 그 외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아마, 미츠오카가 말했던 ‘고통’이 없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라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말했던 것일 게다.

 

 기억의 롤러코스터는 어느 놀이동산의 혜성특급의 느낌과 비슷하다. 껌껌한 우주 같은 배경에, 그녀의 기억들, 그러니까 여럿이 모여 대화하거나, 학교에서 수업을 듣거나, 홀로 방에 누워 휴대폰을 보는 것 따위의 기억들이 파란빛의 형태로 군데군데 퍼져 있다.

 

 “한 바퀴 돈다”

 미츠오카가 말했다. 그의 얼굴은 무서워하지도, 그렇다고 밝지도 않은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일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한 라이드 헌터(놀이기구 안전성 검사관 – 지겹도록 놀이기구를 타는 게 직업이다.)처럼.

 설하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귀는 바람에 닫혀 있었고, 고개는 푹 숙이고 멀미를 참으려 애쓰고 있느라 정신이 없었다. 손은 홍수처럼 땀이 흐르고, 얼굴은 눈을 감은 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소리는 지르지 않았다. 소리를 내뿜어 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몸이 날아갈 것이라 믿고 있었다.

 

 고속질주 하던 롤러코스터는 점점 위로 올라갔다.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기울기는 사십오도, 직각, 확 뒤집히다가 다시, 직각 사십오도로 돌아온다. 그리고 옆으로 코너를 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원심력을 받아 거세게 쏠렸다. 자꾸만 좌우로 부딪혔다.

 

 언제 끝나려나 하느님, 설하에게 종교가 생기려고 할 때, 롤러코스터는 급브레이크를 밟고 레일에 끌려 쇳소리를 내며 멈췄다.

 그제야 설하는 눈을 뜰 수 있었다. 팔은 벌벌 떨었고, 눈동자에는 생기가 지워졌다. 고개는 여전히 들지 못했다.

 

 “이제 그만 고개 들어.”

 미츠오카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끝...났..?”

 

 설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열차 머리 바로 앞에, 하나의 형체가 있었다. 지금까지 지나쳐왔던 그 빛들 중 하나였다. 다만, 옆으로 지나쳐왔던 수많은 기억 파편들과는 다르게 빨간 빛을 내뿜고 있었다.

 

 “...저건 뭐죠?”

 설하가 물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고개를 돌려 미츠오카를 바라봤다. 그는 귀신에 홀린 듯 멍한 눈으로 빨간 빛을 바라보고 입은 무어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치 극심한 분열증에 시달리는 사람 같았다. 그녀가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봤었던 정신질환 환자는 저렇게 중얼거리다, 갑자기 흥분해서는 자기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칼로 베고, 손가락을 피날 정도로 물어뜯으며 자해했다. 그런 끔찍한 광경을, 지금, 바로 앞에서, 일어나려 하는 걸까.

 

 설하는 겁먹은 눈을 하고 최대한 몸을 뒤로 뺐다.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 보다 더 큰 두려움이 덮쳐왔다.

 

 “...미츠오카?”

 

 그러자, 그의 머리가 삐걱거리며 돌아갔다. 멍한 눈은 생기가 없었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입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에게 말하고 싶어 하는 듯 했다. 잘 들어보니, 같은 말만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뭐라고요?”

 

 “.....했어..”

 

 “잘 안 들려요”

 

 “...수고 했어..”

 

 “이거 타느라 수고했다고요?”

 

 “헛수고 했어”

 

 “여기 온 게 헛수고라고요?”

 

 “헛수고 했어. 헛수고 했어. 헛수고 했어. 헛수고 했어. 헛수고 했어.”

 

 그는 설하를 더 깊은 공포로 몰아갔다. 빨간 기억을 앞에 두고.

 미츠오카의 중얼거림은 점점 더 커졌다. 귀 속을 쾅쾅 울릴 정도로, 설하는 두 손으로 귀를 막지만 소용없었다.

 롤러코스터 바퀴가 다시 앞으로 돌아갔다. 빨간 빛이 천천히 설하에게 다가왔다.

 

 “그만!”

 

 그러자 미츠오카가 눈을 흰자로 뒤덮인 채 그녀에게 다가와 소리를 질렀다.

 “넌 헛수고 했다고. 이 멍청한 계집애야!!!”

 그리고는 미친 듯이 깔깔 웃었다. 소름끼치는 웃음이었다.

 

 기억의 빛이 설하를 감싸 돌았다. 웃음소리는 멈췄다. 미츠오카도 사라졌다. 그 대신 주변이 초등학교때 다니던 학교로 바뀌어 있었다. 세 번째 줄, 가운데 책상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릴 적 친구들이 앉아 있었다. 매일 잠만 자던 애, 책만 읽던 애, 앞 사람한테 짓궂은 장난을 치던 애, 쪽지를 돌려보던 애.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등학교 3학년 담임. 교직 2년차로, 늘 단발을 고집하던 여자 선생님이었다.

 

 “자, 다들, 주목. 오늘, 반장선거가 있는 날이에요. 반장 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볼까요?”

 

 그때, 설하의 손이 번쩍 올라갔다. 앳된 목소리도 냈다.

 

 “선생님! 저요!”

 

 지금의 그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반장이라는 건, 주체적이고, 남에 앞장서는 일이니까.

 그럼 초등학교 시절에는 어땠을까.

 당당하고, 책임감있다. 반장에 어울리는 찬사를 평소에 듣는다. 모두의 앞에 서서 자신의 주장을 말할 수 있는 총명한 아이였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일화)

 

 설하가 좋아하는 건 그림 그리기였다. 예전부터 미술학원에 다니고 있었고, 진로도 그쪽으로 나아갈 생각이었다. 먼저, 손을 깨끗이 씻어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자리에 안자 점과 점, 선과 선을 잇는다.

 연필 가루가 도화지에 묻는 느낌이 짜릿했고, 사각거리는 소리는 옛 고향에 온 듯한 포근함으로 다가왔다. 하루에도 몇 번식, 붓에 물을 묻히고, 지루했던 수업시간에는 교과서 한 구석에 간단한 만화를 끄적였다.

 

 재능이 있다고 믿었다. 소질이 충분하고 들었다. 이 정도면, 훌륭하게 자라날 가능성이 있다고 그랬다.

 아버지도 그녀를 아낌없이 후원해 주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주마.’ 열정주의자였던 아버지가 남긴 말씀이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일학년, 전국 중,고등 대상의 디자인 응모전이 열렸다. 잘하면, 시대표로 나가서 장관상까지 노릴 수 있는 대회였다.

 열정이 누구보다 넘쳤던 그녀는 당연히 참가했다. 재능을 인정받고, 자신이 할 수 있다는 나름의 인증이 필요 했던 것이다.

 몇 날 며칠, 밤을 새워가면서 도화지를 몇 십장씩 소비해가며 준비했다. 중간, 기말 시험을 거뤄서라도, 대회만을 바라보며.

 최종작품을 택배로 보내 응모하고, 결과 발표 날을 기다렸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했지만, 긴장에 떨리고, 며칠 밤은 걱정 때문에 그냥 지샜다.

 

 결과는 참혹했다. 상을 받는건 1위부터 3위까지. 시대표로 나갈 기회가 주어지는 건 2위까지. 설하는 4위에 머물렀다. 금 은 동에서 탈락한 목메달이다.

 

 아낌없이 지원해주던 아버지는 위로해 주었다.

 ‘괜찮아. 그 정도면 아주 잘한 거야.’

 설하는 그 말을 들었다. 4위라면, 어느 정도 나의 재능이 인정받았다는 것이라고, 그녀는 진심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얼굴은 울기보다는 미소를 지었다.

 아쉬움과 좌절감도 어느 정도 느꼈던 건 사실이었다. 마땅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애써 외면하고 마음 속 뒤로, 넘겼던 것이다. 혈관을 막는 응어리가 되어가는 것도 모른 채. 그 응어리가 따뜻한 혈류를 멈출 거라는 것도 모른 채.

 ‘난 괜찮아. 뭐든 열심히만 하면, 성과는 반드시 올 테니까.’

 

 다음날, 여느 때처럼 미술학원에 들렀다. 정확히는 토요일 오전 9시였다. 학원 운영시간은 10시 부터지만, 원활한 준비를 위해 1시간 일찍부터 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일부로 일찍 왔던 것이다. 실패를 겪고나면 나서면, 오뚝이처럼, 아니, 그 보다 더 높이 뛰어오르는 용수철같은 성격이 그녀의 장점이었으니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평소와 같이 자신의 사물함에서 스케치북과 붓, 연필을 꺼내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화장실에 손을 씻으러 갔다. 물을 틀고, 비누로 바깥의 먼지를 깨끗이 닦아 낸다. 꼼꼼히 헹궈낸 후 수건으로 점을 찍듯 조심스럽게 물기를 닦아낸다.

 화장실 바깥으로 나가려다가, 누군가 서 있는 걸 보았다. 한 분은 미술 학원 원장. 다른 한 분은 처음 보는 아줌마였다. 해외 메이드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모피코트를 입고 있었다. 설하는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숨었다. 그들이 진지한 대화를 나누니, 방해했다가는 따가운 시선을 받을 것 같았다. 잠자코 있다가, 못들은 척, 나가기로 했다.

 

 “어제 일은 고마워서 내가 다시 왔어요. 나란히 1,2위라니.”

 아줌마의 말이었다. 그녀는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네. 별 거 아닌데요”

 

 “하긴, 이런 일에 우리 애들이 쏟을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영어 학원에, 수학 학원에 바쁜데 말이죠. 안 그래요? 미술학원이야 나중에 막바지에 다니면 되고.”

 

 “뭐, 그렇죠. 다들 바쁘니.”

 

 “당연히 우리 애들이 받을 거, 다른 사람 손 좀 빌렸다고, 뭐 그게 잘못된 건가요?”

 

 “그럼요!”

 

 “아무튼 간에, 앞으로도 더 수고해주시라고, 좀 더 넣어왔어요. 요즘 사정이 어렵다면서요?”

 그녀는 봉투를 내밀었다.

 

 “에이, 안 그러셔도..”

  원장은 이거 왜 이러시냐는 듯, 주춤거리다가 마지 못해하는 듯, 받아서 서랍에 쑤셔넣었다.

 

 충격으로 다가왔다. 못 들은 척, 나갈래야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1위 2위 작품은, 미술 학원장 선생님이 대타로 그려서 응모했다는 얘기지 지금? 미술의 ‘미’자도 모르는 애들이, 단지 같잖은 스펙이나 쌓는답시고 평생을 미술만 보고 살아온 아이들을 짓밟고 받았다 이거지?

 아마, 저 아줌마는 응모전 실행 위원회에도 봉투를 내밀었을 것이 뻔했다.

 ‘별 건 아닌데, 이거 받고, 뭔 의미인진 알지?’

 

 원장과 아줌마 사이에 소름끼치는 웃음이 오고갔다.

 

 설하의 머릿속이 혼돈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절망적인 목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왓다.

 정정당당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아무리 못해도 2위에 올라, 시대표로 전국대회에 나가서 장관상을 노려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대표는 커녕, 상도 물 건너간 이상,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다.

 

 다시 한 번 열심히 준비해서 나가보자? / 앞으로도 수고하라는, 저 돈 봉투는 뭘까? / 몇 십 년을 그려온 사람과, 아마추어 중학생의 실력차이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신고? 아니라고 발뺌하면 끝이다. 어느 누가 중학생의 말을 믿어주겠는가. / 단순히 헛소리가 치부할 게 뻔하다. / 부유한 아줌마는, 실력있는 개인 변호사가 몇 있는 게 당연할 터 / 넌 헛수고 했어

 

 중얼거리는 듯한 마지막 목소리에, 설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고개를 돌리고, 애써 피하려 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촉에 독이 묻어 있고, 직선으로 심장을 꿰뚫는 화살이었다.

 

 ‘외면하지 마. 넌 헛수고 했다고. 이 멍청한 계집애야. 아무리 니가 날뛰어 봤자, 넌 계속 부딪히고, 헛질만 할 거야. 안 그래?’

 

 아직도, 밖에는 소름끼치는 웃음이 오고갔다.

 

 그 날,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 종일 울어댔던 것을 그녀는 기억했다. 지금까지 뒤로 넘겨짚었던 응어리가 혈관을 막아버렸다. 갖가지 암울한 감정이 떠올랐다. 너무도 높은 현실의 벽에 대한 좌절감,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버린 허무감, 재능을 믿어주던 원장 선생님에 대한 배신감, 다른 일들이 이번처럼, 헛수고가 될 것 같은 두려움. 자신은 한없이 나약하고....

 

 “그만!”

 

 설하가 소리쳤다. 의식은 다시 기억의 롤러코스터로 돌아와 있었다.

 

 “그만 해요!!!”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뭘 그만 하라는 거지?”

 미츠오카가 물었다.

 

 “이딴 거, 다 집어 치우라고요!”

 

 “이건 너의 내면세계 깊은 곳에 있는 기억이다. 난 그저 너 스스로에게 거울처럼 비추게 했을 뿐이다.”

 

 “필요없어요.”

 

 “아픈 건, 들춰내야 한다. 우리가 통각을 느끼는 것도 아픈 곳을 인지하고 제대로 치료하기 위함이다. 다만, 육신은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영혼은, 그저 다시 들다보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되기 마련이다.”

 

 잠시간 정적이 흐르고 설하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애써, 괜찮은 척하며 말했다.

 

 “그래서...왜 이 기억만 빨간 빛인 거죠?”

 

 “네가 스스로 굳게 닫은 기억이었어. 그래서 다른 거지. 이 갇히고, 감춰진 정신과 마주해야만, 네 진정한 잠재력이 깨어난다.”

 미츠오카가 말했다.

 

 “이게 끝인가요? 저건 뭐죠?”

 

 이보다 더 깊은 곳, 빛이 뭉개지는 것 같은 공간이 있었다. 시야가 왜곡되고 공간이 잠식되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아무것도”

 미츠오카가 잠시 뜸들이다가 말했다. “이제 다시 돌아갈 시간이다.”

 

 빛들이 빠른 속도로 후퇴하고, 왔던 길을 되감기하는 것처럼 배경이 멀어졌다. 처음 시작으로 돌아왔을 때, 밝은 섬광이 스쳐, 설하는 눈을 한번 깜빡였고, 다시 눈꺼풀이 올라가자 치과 의자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눈물을 흘러대고, 코가 찡해졌던 영혼과 달리 육체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미츠오카는 스탠드를 끄고, 커튼을 걷고 불을 켰다.

 

 “네 초능력은,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다.”

 미츠오카가 말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왔다.”

 

 “그게 뭐죠?”

 

 “동물을 네 의지대로 다루는 능력”

 미츠오카가 바로 대답했다.

 

 “방금 전의 기억에서 추출해서 그렇게 나왔다고요? 전 이해가 안 가요”

 

 “아니, 가끔 그런 건 있다. 다른 ‘무언가’가 있을 때.”

 

 “마지막으로 본 ‘그것’ 말이군요.”

 설하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게 정확히 뭐죠?”

 

 미츠오카는 슬럼프에 빠진 의사가 수술 도중 나온 것처럼 장갑을 벗다말고 서랍에 손을 올리고 얼굴을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블랙홀이다.”

 미츠오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읊조리듯 말했다. “알아챘겠지만, 난 사람들의 기억을 만질 수 있게 구체화하고, 시각화한다. 난 우주와 롤러코스터를 좋아해서, 방금 봤던 것처럼 꾸미고 설계했지. 그리고 사람들을 기억들을 별로 정리했어. 파란 건, 행복하거나 긍정적인 기억. 빨간 건, 상처가 된 트라우마같은 기억. 그리고 블랙홀은...”

 

 미츠오카는 말을 멈췄다. 고개를 들어 설하를 쳐다봤다. 그의 눈빛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마치, 이전의 공포를 다시 맛보는 듯이.

 

 “거긴 너무도 깊은 곳이다. 나조차도 감히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백 명 중에 한 명꼴로 나타난다. 좀 더 말하자면, 그 기억엔 보통, 삶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커다란 비극이 숨겨있다. 아마, 그곳이 네 초능력 발현에 궁극적인 영향을 준 것 같다.”

 

 미츠오카는 무언가 더 말하려는 듯, 입을 벌리다가, 한 마디만 하고 그쳤다.

 “그 얘기는 더 이상 안 하는 게 낫다. 아무튼 간에, 넌 보기 드문 능력을 가졌다. 잘 활용하길 바란다.”

 

 미츠오카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다가, 때마침 도승지와 마주쳤다.

 

 “끝났어?”

 

 “일단은.”

 미츠오카는 차갑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도승지는 왜 저럴까, 하며 그가 나가는 것을 멀뚱히 쳐다보다가 설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혹시 소리 질렀어? 쟤, 누가 소리 지르면 엄청 싫어해서 가끔씩 저렇게 박차고 나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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