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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의 집 2층에는 미친 무언가 숨어있다.
작가 : 접견
작품등록일 : 2016.8.26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댁에서 지내게 된 류설하와 류진, 그 집, 2층에서 승강기를 발견한다.
(지구라면, 시계탑의 숫자가 13까지 있을 리 없고, 건물이 허공에 떠 있지 않으며, 바다가 하늘에 뒤집혀 있을 리 없다. 구름이 그 바다 밑으로 붕붕 떠다니고 있을리가 없다. 태양이 두 개일 리도 없다. 잔디 잎이 먼지처럼 붕붕 떠다니고 있을 리도 없다. )

 
5. 어쩌면, 그는 콜라보다 커피를 더 좋아할 지도 모르겠다.
작성일 : 16-09-05 00:14     조회 : 424     추천 : 0     분량 : 8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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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어쩌면, 그는 콜라보다 커피를 더 좋아할 지도 모르겠다.

 

 “우린 학교에 가야 해”

 말끔한 옷으로 갈아입은 류진의 말이었다.

 

 설하는 병실에 딸린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환자복은 변기 위에 버리고, 치마와 와이셔츠, 재킷을 아래서부터 위 순서로, 단정하게 차려입기 시작했다.

 

 “뭔 학교?”

 

 “베타 학교”

 문 너머로 류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뭐야? 베타라니, 초등, 중등, 고등도 아니고 베타라니”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그렇게 세세하게 따지지 마”

 

 “대체 아는 게 뭐냐”

 

 “낸들 아냐”

 

 “거기로 가야 하는 이유는 뭔데?”

 

 “안내서에 나와 있어.”

 

 류진은 연설이 끝나고 살펴봤었던 안내서, <당신이 영원히 떠나지 못할 휴양지에 대한 모든 것>을 ‘다시’ 펴보았다.

  단 한 장뿐이었다.

 

 그래도 그 한 장속에는 웬만한 국립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만큼이나 무수히 많은 정보가 깃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 안내서가 ‘안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안내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기 때문이었다.

 

 이 안내서에는 저자의 초능력이 깃들어 있었다. 소유자의 손가락 지문에서 나오는 땀의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여 무엇을 안내받고 싶은지 알아낸 후, ‘실시간’으로 그 방법을 알려줄 ‘사람’을 찾아서 위치를 알려준다. 그것이 2 페이지의 내용이었다. 바로 앞 장의 1페이지는 2페이지의 소개, 저자의 출판 후기, 감사인사 따위가 실려 있었다.

 

 사실, 안내서의 저자, 패트릭 스번은 애초부터 한 장으로 출판할 계획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제목 그대로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백과사전만큼이나 두꺼운 책을 집필하려 했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출판사는 이런 게 잘 팔릴 리가 없다는 이유로 –그들 의 말을 인용하자면 ‘지나치게 지루하고, 베게로 사용하기에도 불편할 정도로 두껍다.’- 다시 처음부터 집필하게 했는데, 이에 분노한 스번은 출판사에 골탕 먹일 생각으로 단 한 장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출판업체의 반응은 꽤 좋았고 대중적으로도 광신적인 인기를 끌게 되어 이 시대의 베스트셀러로 오르게 되었다.

 

 어쨌든, 류진의 땀을 인식한 안내서, 지도는, 베타 학교라는, 그리 멀지 않는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직진하다가 신호등만 두 개 건네서 왼쪽으로 모퉁이를 돌면 바로였다.

 

 설하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안내서?”

 

 “안내서.”

 

 류진이 보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그녀는 그걸 받아서 별 읽을거리도 없는 1페이지를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 ‘당신이 안내를 받을 방법을’...그래서 여기로 가야한다고?”

 

 “달리 다른 방도가 없으니까. 따를 수밖에 없어.”

 

 “이거 어디서 난 거야?”

 

 “누가 줬어”

 

 “누가?”

 

 “콜라 좋아하는 사람이. 그건 그렇고, 갈 준비는 됐어?”

 

 “응. 휴대폰이...”

 

 “내가 챙겼어”

 

 “이리 줘”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몰래 본 건 아니지, 라는 눈빛으로 류진을 흘끔 쳐다보았다. 류진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했다.

 

 “있어봐야 소용없어. 여긴 데이터도 통화도 안 되니까. 기지국도, 안테나도 없을 걸?”

 

 .

 

 그들은 문을 열고 나갔다. 빈집털이범처럼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왜 그렇게 답답하게 숨어?”

 

 “내 병실이 얼음 넣은 콜라가 됐거든. 나한테 청구서 내밀면 곤란하잖아”

 

 “뭐야, 그게.”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7층에서 1층으로 내려갈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1층으로 내려오니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이곳저곳 각자의 목적지로 향해 걸어가는 모습은 분명 ‘지구’와 별 다를 게 없었지만, 시대에 맞지 않게 산업혁명 유럽 느낌이 풍기는 옷차림을 갖춘 사람들이 가끔씩 눈에 띠었다.

 

 병원 문을 열고 학교로 가는 길에는 스프링 롬이라 불리는 세계의 진풍경을 세세하게 볼 수 있었다.

 

 높게 지어진 수많은 건물에, 거리를 거닐고 다니는 사람들.

 자동차는 대부분 평범하게 달렸지만, 가끔씩 중력을 거스른 듯, 직각으로 꺾인 도로를 다니고 있었고, 심지어는 반 바퀴 뒤집힌 채 달리는 괴상한 기행을 벌이는 차들도 있었다.

 

 붕 떠있는 거대바위에 지어진 건물들, 허공을 발고 계단에 오르듯 올라가는 손님들이 있었고, 전광판에는 알 수 없는 물건을 과시하는 온갖 광고가 쏟아져 나왔다.

 가끔씩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무리지어 다니며 공중을 헤엄쳐 다녔다. 그들은 새총에 맞아 사냥당하기도 하며, 비행기에 부딪히기도 한다. ‘지구’에서의 상어나 고래 같은 거대한 어류(혹은 포유류)는 민물고기 크기보다 약간 큰 정도로 줄어 들었다. 그래서인지 어류 자체의 크기 분포의 스펙트럼이 좁아졌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하늘의 바다에서는 파도가 구름을 제멋대로 움직였으며, 바다 속에는 새가 날아가고 있었다. 어류와 반대로 조류의 크기는 고래만큼이나 거대한 것부터 플랑크톤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다양했다. 매 같은 최상위 계층은 고래 크기, 참새나 까치는 플랑크톤 크기였다.

 구름 속에서 나와 눈처럼 내리는 잔디 풀은 땅에 닿자, 스스로 움직이며 뿌리를 박아 땅에 심어지고 있었고. 느릅나무는 뿌리를 다리삼아 길거리에 돌아다니며 광고 전단지를 나눠주거나, 재떨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땐 감정 풍부한 신호등이 시를 읊조리고, 스스로 감격해 했다. 사람들이 떠나갈 때면 작별인사를 건네며 짧은 만남의 마무리를 지었다.

 감정이 있는 건 신호등뿐만이 아니었다. 피아노, 문, 컴퓨터 등에도 물건에 감정이 있었으며, 말을 서슴지 않고 건넸다. 심지어는 레스토랑의 돼지, 닭, 소마저도 손님에게 말을 건네며 자신의 요리 방식을 설명하곤 했다.

 ‘알겠습니다. 현명한 선택이시군요. 그럼, 저는 자살해서, 요리를 내오겠습니다.’

 

 초능력을 사용하는 사람도 가끔 볼 수 있었다. 가장 흔한 건, 하늘을 나는 것. 그리고 염동력이었다. 가끔 투명인간의 존재를 알아차리기도 했지만, 극히 드물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그들은 웅장하게 지어진 학교를 감탄해 하며 바라보았다.

 노이슈반슈타인성에 옥스터드 대학교가 가미된듯한 양식이었다.

 입구에는 큰 성문이 열려있었다.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은, 물론, 학생이었지만, 어느 누가 다닌다고 할 것 없이 다양했다. 코흘리개 유아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시계가 멈췄어”

 류진이 말했다.

 

 “저기있는 시계? 잘만 가는데?”

 설하가 말했다.

 성문 위에 붙어 있는 시계는 5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시계 역시 숫자가 13까지 있었다.

 

 “아니, 그거 말고. 내 시계 말이야. 9시 5분에 멈췄어.”

 숫자가 12까지 있는 손목 시계. 이제는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보여주면 괴상망측한 물건이라고 할 것이다.

 

 “그거 아직도 차고 다니네.”

 

 “...”

 

 “고장 난 거야?”

 

 “콜라에 담겨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류진이 그렇게 말하자 설하가 그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답답하고 짜증이 오른 말투였다.

 

 “야 자꾸 그 얘기가 나오는데, 나 진짜 니가 뭔 소리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거든? 뭘 알려주든가 입만 꾹꾹 다물고 있으면 내가 답답해”

 

 “말하기 어렵지만, 굳이 말하자면, 내 병실에 누가 왔었어. 이 안내서를 줬던 사람 말이야.”

 

 “그게 대체 누군데?”

 

 그때 그녀 뒤로 가운의 사내가 지나갔다. 콜라를 내뿜어내던 원흉이자, 해가 두 개나 떠도 선글라스를 고집하는 남자는 학교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저 사람.”

 류진이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안내서는 1페이지는 물감이 번지듯 지도가 지워지고 ‘안내를 중지합니다.’ 글자만 써졌다가 다시 백지로 돌아갔다.

 

 .

 .

 .

 

 어느, 인근의 카페. 희미하게 반짝거리는 형형색색의 구슬 위로 유리 타일이 깔려 있고, 암갈색의 나무 원형 테이블이 무작위로 주위에 배치되어 있었다, 천장에는 주황빛의 샹들리에가 있었고 테이블마다 한 가운데에 촛불이 자리해 낭만적인 분위기를 고조시켜주고 있다. 카페 왼쪽에는 피스톤 5개 달린 트럼펫과 재즈 피아노가 스스로 움직이며 재즈 앨범 ‘king of blues’의 트랙 전체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날 찾아 여기까지 왔다 이 말이지? 안내서에 따라?”

 가운의 사내가 말했다. 낮의 가운과 디자인은 완전히 똑같았지만, 깨끗한 새 가운이었다. 그는 어둡게 장식된 카페 안에서도 선글라스를 고집한 채 두 손으로 카푸치노 잔을 들고 있었다.

 

 “네. 안내서가 가리키는 건 당신이었습니다.”

 류진이 말했다. 그는 아무것도 마시지 않았다.

 옆의 설하는 빨대로 코코아를 마시고 있었다. 토하는 시늉을 하며, 끔찍한 맛을 간결하게 표현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가운의 사내는 곤란해 하는 눈치였다. 다리를 떨며, 불안한 듯 손가락을 정신 사납게 돌렸다. 언뜻 보면 재즈 음악에 리듬을 타는 것 같기도 했지만, 본인은 그럴 의도가 눈곱만치도 없었다.

 

 “안내서가 날 안내할 줄은 몰랐는데”

 그가 말했다. “너희끼리 알아서 하라고 준거였거든. 쩝. 나한테는 PC방에나 가라 그랬단 말이야”

 

 “저희에 대해서, 뭔가 아시는 게 있으시군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말이죠.”

 류진이 말했다.

 

 “맞아. 맞는데. 문제가 있어”

 

 “뭔데요?”

 

 그는 류진과 설하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쌍둥이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고 확고했다. 그러자 그는 못이기는 척 말했다.

 “좋아 말해주지. 그 대신 처음부터 해야 돼.”

 

 그러더니 가운데에 있는 촛불 장식을 옆으로 치우고 좀 더 가까이 오라며, 손을 까딱였다. 쌍둥이는 의자를 당기려다가 고정식 의자라는 걸 깨닫고 엉덩이를 의자 끝으로 살짝 걸치고 몸을 숙이기로 했다. 그들의 얼굴이 모여지고 그의 고개가 숙여지자 선글라스 너머로 눈이 보일 듯 말듯했다. 비장한 눈빛이었다.

 그가 말하는 목소리는 속삭이듯 조용했다.

 

 “내 이름은 도승지. 나도 너희처럼 ‘진짜 지구’에서 왔어.

 지구에서의 나는 정말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데다, 부모님은 빚쟁이에 시달리다 돌아가시고, 나는 그 빚을 안고 고아가 됐다. 그게 12살 때 일이었지. 고아원에 들어오라는 말도 있었지만, 난 거부했어. 그런데는 코찔찔이나 가는 곳이라고 믿었거든. 그래서 나는 여기저기, 잡일을 하거나, 길거리에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하루하루를 겨우 부지하며 살고 있었지. 그렇게 1년이 지났어. 그러다가 어느 날, 한 노숙자가 내게 다가온 거야. 그는 한때 회사원이었는데 회사가 망하고 아내는 다른 남자랑 눈이 맞아서 남아있던 자산을 한 푼도 안 남기고 가로챈 후에 외국으로 도망갔다더군. 그 후론 매일 술에 찌들어서 부랑자가 됐더래. 정말 나만큼이나 비참하고 음침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 그는 사회생활에 미련을 못 버렸는지 노숙자면서 양복을 고집하고 있었거든. 어쨌든, 그가 내게 말을 걸어왔어. 우리 둘이 여기서 인생을 허비하는 건 정말 분하고 아깝지 않느냐고. 나는 그 말을 한 귀로 흘리고 귀찮아서 고개만 끄떡거렸지. 그러기만 하면 좀 있다가 지루해져서 알아서 갈 줄 알았거든. 근데 그는 자기와 말이 통한다고 느꼈는지 자기 인생애기를 하더니 자기한테 기막힌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고.“

 

 그는 말을 멈추고 입김을 불어가며 카푸치노를 홀짝였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가 말하길, 굉장한 집을 알고 있는데, 거기를 털자는 거였지. 그 집 이층에는 값비싼 보물이 숨겨져 있다면서 말이야. 게다가 하루 중 반은 집을 비우니 정말 도둑질하기에 너무 안성맞춤이었지. 난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날 밤 바로 그 집을 털려 집에 들어갔어. 우리는 아무것도 건들지 않고 바로 이층에 갔지만, 보석은 없었어 대신, ‘그게’ 있었지. 그 말 많은 그 승강기 말이야.”

 

 다시금 홀짝.

 

 “승강기는 날 이 세계로 오게 했어. 처음엔 어리둥절하고,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어, 시간이 흘러, 내게 있어 여곳은 굉장히 환상적이고, 감성 넘치고, 사회적인 세계로 변했어. 사람들은 날 인정해주고, 존중해줬거든. ‘진짜 지구’에서의 나는 전염병이나 몰고 다니는 더러운 노숙자였지만, 스프링 롬에서는 한 ‘사람’ 으로 취급 받았다고. 그래서 난 여기 평생 머물기로 했어. 점점 이곳의 생활이 좋아졌고, 지금은 어엿한 베타 학생으로 머물고 있지. 그 후로, 15년이 자나고, 난 28살이 된 거야.”

 

 그리고 홀짝.

 다시 홀짝.

 또 홀짝.

 홀짝.

 

 류진과 설하를 그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도승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류진과 설하가 자기한테 뭘 바라는 건지 몰랐다. 그래서 그들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무안해져서 잔을 들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

 

 설하가 코코아를 탁자에 소리가 나게 내려놓은 채 물어보았다.

 

 “그래서 여기가 어디란 말이에요?”

 

 “아, 맞아. 그 얘길 해야지. 난 여기가 대체 어딘지 연구 좀 해봤지. 여태까지 놀고먹었던 게 아니야. 난 베타 학교에서 우주론을 공부하거든.

 그래서, 여기가 어디냐 하면, 바로 제 평행우주야.”

 

 “뭐라고요?”

 류진이 경악했다.

 

 “평행 우주가 뭔데요?”

 설하가 물었다.

 

 “좀 어려운 개념이긴 한데, 자, 잘 들어봐. 그러니까, 뭐가 좋을까. 그래, 이 커피 잔을 예를 들어서, 만약 네가 카푸치노를 만들고 싶다고 해보자. 그러면 넌 에스프레소, 우유, 우유거품 계피가루이 필요하겠지. 여기서 네가 카퓨치노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한가지야. 캔 하나에, 모든 재료를 똑같은 양으로 넣을 수 있고, 에스프레소 1/10, 우유 9/10을 채울 수도 있고, 에스프레소만으로 채울 수도 있어. 맛은 없겠지만 말이지. 그러면 여기서 100잔을 만든다고 해볼까? 갖가지 커피들이 심심찮게 등장할 거야. 물론 겁나게 맛이 없겠지. 여기서 1000잔, 10000잔으로 늘려보자. 얼레? 우연찮게도, 똑같은 재료로 만든 커피가 등장했어. 이런 식으로 무한정으로 만들어 버리면 어떻게 될까? 똑같은 재료의 커피가 무한정으로 늘어나겠지.

 즉, 무작위 생성, 무한정 생성으로 탄생한 도플갱어. 이게 평행세계야“

 

 “....뭔 소리야...?”

 설하가 류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중에 알려 줄게”

 류진이 무심하게 말하자, 설하는 살짝 불평스럽게 중얼거렸다.

 

 “뭣 같은 과학.. 지옥에나 가라.”

 

 “여기서 커피 잔을 우주라고 해볼까? 물리법칙과, 물체를 이루는 원소들이 우주마다 다른 거야. 어느 우주에는 중력이 홰까닥 뒤집힌 물리를, 열역학 1법칙이 어긋나는 물리를 따라. 이곳은, 그렇게 태어난 우주 중의 하나인 셈이지. 바다가 공기보다 가벼워서 하늘에 흐르는 우주, 초능력이 존재하는 우주 말이야.자, 평행우주 우주끼리는 원자 간의 거리보다 아주 가까운 데에 있어. 단지 다른 우주끼리 서로 제어와 인지가 힘들 뿐이야. 하지만, 승강기는 그 평행 세계간의 연결 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지”

 

 “그렇다면, 저희는... 승강기를 타고,...”

 류진이 말했다

 

 “그래. 제 2의 평행 우주로...”

 

 “넘어 왔다는 거군요.”

 “넘어 온 거지. 맞아.”

 도승지는 자신이 설명을 만족스럽게 잘한 것 같은 느낌에, 기쁨에 겨운 나머지 탁자를 내리쳤다. 류진은 덤덤했지만.

 

 ‘아주 둘이 죽이 척척 맞는군 그래.’

 설하가 무리에 끼지 못하자 뾰로통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그 노인양반이 뭔짓을 어떻게 한 건지는 몰라도, 평행우주로 넘어가는 승강기를 만들었던 거야.”

 

 “...그 노인 양반, 우리 외할아버지 되십니다.”

 류진이 조심스레 말했다.

 

 “하, 그러시군. 그래서 그 양반은 어떻게 살고 있어? 언젠가 한 번 꽃다발들고 감사인사는 드려야 하는데 말이야.”

 

 “삼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설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럼 꽃다발은 국화꽃으로 하지, 뭐”

 그가 카푸치노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저희는 어떻게 돌아가죠?”

 류진이 물었다.

 

 “제 1 지구에서 승강기가 있던 너희 할아버지 집은, 제 2의 지구의 같은 공간상에서는 베타 학교의 급식실 승강기야. 결국 통로는 거기 있는 셈이지. 여기서 제 1 지구 쪽으로 가려면 급식실 승강기에 숨겨진 버튼을 눌러야 하는 데 배식 아주머니들이 그걸 알 리가 없지. 아주 기가 막히게 잘해 놨어. 원하면 내일 당장 데려다주지”

 

 “저기, 궁금한게 있어서 그런데요...왜 학교 이름을 베타라고 하는 거죠?”

 설하가 물었다.

 

 “알파, 베타, 세타 쭉 나열해서 오메가까지. 딱히 이유는 없어. 그저 지역이나, 쓰임새에 따라 구분하기 위한 거야. 그렇다고 성적순이라던가, 단계별 수준 교육이라던가 하는 이유는 아니야. 제 1 지구에서처럼 성적도 없고, 강요하는 것도 없으니까.”

 

 “성적이 없다고요?”

 쌍둥이는 동시에 그렇게 경악해하며 물었다.

 

 “이곳의 학교는 개념자체가 달라. 제 1 지구가 ‘남들과 경쟁하며 취업하기’ 라면, 제 2 지구에서의 학교는 그저 자기 소양을 기르거나 자기 계발을 목적으로 다니지. 심지어는 교사가 따로 없어. 서로가 서로를 부족한 점을 가르쳐줘. 즉, 우리는 학생인 동시에 교사인 셈이지.”

 

 “...완전... 좋은데...? 그럼... 억지로 공부하는 것도....시험도...”

 설하가 말했다.

 

 “전혀 없어. 모두가 자발적이고, 평화롭고, 공존적이지. 경쟁은 눈 씻고 찾아 볼 수가 없어.”

 

 “....나 여기서 살래”

 설하가 말했다.

 

 반면, 류진은 뭔가 탐탁지 않아 했다. 지금까지 겪어왔던 경험의 감각이 되살아나 제 2 지구라는 이상향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있었다. 선한 면에는 항상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그렇게 믿어왔다.

 

 그때, 갑자기 바깥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창밖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도망가고 있었다.

 

 카페 안의 사람들은 겁을 먹은 채 어리둥절해졌고, 트럼펫 연주는 중단되었다.

 도승지는 자기 손목시계를 흘끔 보고 쌍둥이에게 말했다.

 

 “버쳐가 온 모양이야.”

 

 “버쳐라면...”

 류진이 말했다.

 

 “내가, 제 2 지구에서 맘에 안 드는 점 딱 하나가 있다면, 바로 버쳐야. 깔끔한 백지의 허점이란 말이야.”

 

 “버쳐가 대체 뭐야?

 설하가 물었다.

 

 “내가 쉽게 말해주지”

 도승지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한국어로는 도살자라는 뜻이야. 그게 뭘 뜻하겠어? 인간, 싹뚝싹뚝”

 

 “그래서 처음에 불안하게 떨었던 건가요?”

 류진이 물었다.

 

 “아니, 너희한테 붙잡혀서 과제를 못 할까봐 그랬지. 시험은 없지만 과제는 허벌나게 많거든. 학생이 교사다 보니까 양 조절을 제대로 못해. 하지만 뭐 됐어. 버쳐 때문에 못했다고 하면 되니까. 그 친구도 이해해 줄 거야.”

 

 그는 가운 안주머니에서 비밀봉지를 꺼냈다. 낮에 에테르라고 불렀던 그 가루였다.

 카푸치노 잔에 과다하다 싶을 정도로 탄 후 잘 저어서 단순에 들이켰다.

 

 그러더니 아주 사알짝, 정신이 나간 것처럼 휘청거렸다. 목소리도 조금 변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날 따라오오라아아. 형제들이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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