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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신월이 뜨던 밤
작가 : 달리아
작품등록일 : 2017.11.13

신월이 뜨던 밤, 죽은 중전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 시각, 서울에서 의문의 사고를 당한 소월. 눈을 떠보니 내가 중전? 소월의 좌충우돌 중전 적응기.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
작성일 : 17-12-14 04:54     조회 : 223     추천 : 0     분량 : 9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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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결론부터 말하자면, 꺼이꺼이 울던 소녀의 이름은 '민 연심'이라고 했다. 솔직히 듣자마자 연필심이 생각나 웃음이 터질 뻔했는데,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잘 참아낼 수 있었다. 안 되지, 안 돼. 제 이름 하나 기억 못 한다고 그토록 우는소리를 했는데, 거기다 대고 웃기까지 하면 이번엔 정말 내 고막을 찢어 놓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저었다.

 

 문득 아이들의 신분이 궁금해졌다. 연심이 혼자 복장이 다른 것이 특이했기 때문이었다. 해정이와 단향이는 나인이라고 했다. 연심이는 상궁이라고 했는데, 내가 알던 그 상궁이 맞는가 싶은 의문이 들었다. 보통 상궁들은 나이가 꽤 있지 않나? 그에 비해 연심이는 아무리 높게 쳐줘도 채 스물도 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의아한 것도 잠시, 나는 그냥 신경 끄기로 했다. 대답하는 얼굴이 어두운 걸로 보아하니, 물어보면 얘기가 제법 길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장은 그것보다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실컷 울었어?"

 "예엥… 송구하옵니다 마마."

 "그래, 좀 송구하긴 해야겠다. 아직도 골이 울려."

 

 나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민망한 얼굴을 한 연심이가 손수건을 꺼내 코를 팽하고 풀었다. 살살 좀 풀어라… 그러다 코 거덜 나겠다. 걱정스레 혀를 찬 나는 이내 셋에게 좀 더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이름이랑 정체도 알았겠다, 슬슬 주변 정보를 탐색해볼까 싶은 마음이었다. 눈치를 보던 연심과 해정, 단향이가 몸을 쭉 당겨 내 앞까지 다가왔다. 아기 새처럼 올망졸망 모여앉은 그 모습에 이상하게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졌다. 익숙한 얼굴들이 떠오른 탓이었다.

 

 '다들 잘 지내고 있을까?'

 

 고아원 동생들을 떠올린 나는 괜스레 시큰해지는 콧날을 문질렀다. …마음 약해지지 말자 소월아. 지금 네 코가 석잔데 누가 누굴 걱정해. 애써 고개를 휘저으며 남은 미련들을 떨쳐낸 나는 본격적으로 궁금한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있지. 여기 왕실… 맞나? 하여튼 왕실에는 누가 있어?"

 "크응! 현재 왕실에는 전하와 중전 마마, 그리고 인빈 마마께서 계시옵니다."

 

 급하게 코 푸는 것을 마무리한 연심이가 살짝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그러니까 왕이랑 나, 그리고 인빈이라면… 내 팔을 잡아챘던 그 개념 없는 애를 말하는 건가? 엥. 근데 고작 셋이야? 나는 손가락을 세 개 펴 보이며 물었다.

 

 "겨우 세 명이 다야?"

 "그렇사옵니다. 몇 해 전, 대비 마마께서 승하하신 이후로는 쭉 그랬나이다. 전하께서는 딱히 후사를 두지 않으신지라…."

 "아…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진짜 다행이다. 팔자에도 없는 엄마 소리 들을 일은 없겠네. 부인 소리만 해도 소름이 끼쳤는데, 생전 모르는 아이가 엄마! 하고 외치면… 어후. 생각하기도 싫다. 미간을 찌푸리던 나는 다시 물었다.

 

 "왕은 어때?"

 "예?"

 "그니까 왕, 아니 전하는 성격이 어떠시냐고."

 "전하께서는… 무척이나 냉정하신 분이옵니다. 사람을 잘 믿지 않으시고, 감정을 드러내시는 일이 좀처럼 없으시지요."

 

 잠시 망설이던 연심이는 제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며 말을 이었다.

 

 "또 전하께서는 아주 오랜 시간, 마마를 찾지 않으셨나이다. 그 와중에 전하께서는 새로운 후궁을 들이셨고, 직접 인빈이라는 호를 하사하셨사옵니다. 그로 인해 마마께서는 무척이나 마음고생을 하셨지요."

 "나쁜 놈이었네…."

 "하오나 전날, 전하께서는 마마의 편을 들지 않으셨사옵니까? 어쩌면 심경의 변화가 생기셨을지도 모르는 일이옵니다."

 

 나로서는 의외인 말이었다. 나한테는 되게 친절하게 대했던 것 같은데… 중전한테 워낙 미안한 게 많아서 그랬나?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인빈에 대해 물었다.

 

 "내 팔 잡았던 애가 인빈 맞지? 걘 뭐 하는 애야?"

 "중전 마마 다음으로 내명부에서 가장 높은 품계를 지닌 분이옵니다. 현재 내명부의 모든 권력을 틀어쥐고 있지요."

 "또, 또 성격은 얼마나 더러운데요! 툭하면 이것저것 집어던지고, 이간질하고, 모함하고! 진짜 인빈 마마는 죽으면 지옥에서도 출입 거부당할 거예요. 만약 들어간다 해도 아주 똥물에 달달 튀겨질 것이옵니다!"

 "해정이의 말이 맞습니다! 아주 내명부를 손에 쥐고서 온갖 패악을 부려대는데, 그 포악성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것이옵니다!"

 

 여태껏 가만히 있던 해정이와 단향이는 인빈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했다. 나는 내 얼굴에 사뿐히 내려앉는 아이들의 침을 닦아내며 어색하게 웃었다. 저기 얘들아…. 자세한 설명은 고마운데, 왜 듣는 내가 마음이 아플까? 내 겸연쩍은 웃음을 본 아이들은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황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내명부의 수장은 원래 중전, 그러니까 나 아니야? 왜 걔가 권력을 쥐고 있어?"

 

 담담하게 꺼낸 물음에 두 아이는 울상이 되어버렸다. 연심이는 침착한 어투로 설명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전하께서는 오랫동안 마마를 찾지 않으셨사옵니다. 궁궐 사람 대다수는 전하의 총애를 잃었다며, 중전 마마를 기피했사옵니다. 그들은 앞다투어 새로운 권력의 축인 인빈에게 가담했고, 그 결과 인빈의 세력은 쉽게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사옵니다. 또한 인빈의 아비는 조정의 지고한 실세인 우상 대감으로, 그분이 든든히 뒤를 받치고 있는 한 그 세력은 점점 더 불어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옵니다."

 "…갈수록 태산이네."

 

 이거야 원… 난 무늬만 중전이었잖아? 조선에서의 생활은 초장부터 어렵게 풀려나갈 모양이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나저나 그 개차반 같은 년이 최종 보스였구나. 어쩐지 반반한 얼굴을 하고서는 범상치 않은 싸가지가 느껴지더라니. 역시 내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리던 나는 몸을 살짝 뒤로 젖히며 팔짱을 꼈다. 흐음. 또 물어볼 게 뭐가 있더라?

 

 "전하의 성함은 어떻게 돼?"

 

 잠시 머뭇거리던 연심이가 귓속말로 왕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얘는 그냥 알려주면 될 걸, 뭘 그렇게 조심스럽게 얘기를 하지? 어차피 우리 밖에 없는데, 누가 듣는다고. 가만 보면 이 동네 참 신기해. 겨우 이름 하나가지고 이토록 어려워해야 하다니, 현대에 살다 온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되는 대목이다. 왠지 북쪽에 계신 어느 분이 떠오른다. 왜 그 박수 잘치는 분 있잖아.

 

 여하튼 왕의 이름은 이강이라고 했다. 왠지 모르게 왕의 이미지랑 잘 어울리는 듯한 이름이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왕의 이름을 들어도 누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나는 역사에 문외한이었다. 굳이 이름을 물어본 것도 그냥 알아두자는 쪽에 가까웠다.

 

 내가 입을 다물자, 자연스레 방 안에는 침묵이 맴돌았다.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 같던 침묵은 연심이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연심이는 내 양해를 구하더니 돌연 방을 나섰다. 문득 창밖을 내다본 해정이와 단향이도 나직한 탄성을 내뱉고는 서둘러 연심이를 따라나섰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그새 복작거리는 분위기에 익숙해진 모양이다. 홀로 남은 방 안이 유난히 쓸쓸하게 느껴졌다. 나는 잠자코 아이들을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연심이의 지휘에 따라 해정이와 단향이가 낑낑거리며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오, 식사 시간이었구나?

 

 '이게 말로만 듣던 수라상인가?'

 

 나는 내 앞에 조심스레 내려진 밥상을 보며 적잖게 감탄했다. 우와 미쳤다. 상 다리가 부러지겠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내 기준으로는 반찬이 두 가지만 넘어도 호화로운 밥상이었는데, 여기는 열 가지가 넘었다. 국에 김치에 장에, 없는 걸 찾기가 더 힘들 지경이었다. 와… 수저가 은으로 돼 있어! 반짝거리는 숟가락을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연심이가 음식을 조금씩 덜어 맛을 보기 시작했다. 내 음식을 뺏어 먹는 줄 알고 순간 울컥했지만, 기미를 하고 있다는 해정이의 설명에 이내 납득하고 말았다.

 

 "이제 수저를 드셔도 좋사옵니다."

 

 나는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정신이 없어서 모르고 있었는데, 막상 음식 냄새를 맡으니 뱃속이 갑작스레 요동을 쳤다. 나는 젓가락을 들고 망설였다. 어쩌지? 뭐부터 먹지? 다 맛있어 보이는데… 한동안 결정 장애로 멈칫거리던 나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미친 듯이 수저를 놀렸다. 히야… 좋구나. 맨날 이런 음식들을 먹으면서 이렇게 말라빠진 거였어? 대체 얼마나 입이 짧았던 거야?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이 빌어먹을 몸뚱이를 근육 빵빵이로 거듭나게 해주지! 나는 각오를 다지면서도 빠른 속도로 그릇들을 비워나갔다. 헝… 너무 맛있어.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정성이 가득 담긴 맛에 나는 눈물까지 비췄다.

 

 "마, 마마! 어찌 그러시옵니까? 음식이 입에 안 맞으시는 것이옵니까?"

 "…아니야. 너무 맛있어서 그래. 진짜 너무너무 맛있다."

 

 것보다 네 눈엔 이게 음식이 입에 안 맞는 사람의 모습으로 보이니? 나는 눈가에 자그맣게 매달린 물기를 닦아내며 대꾸했다.

 

 "그러시옵니까? 다행이옵니다."

 

 맛있다는 내 말이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심이는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뭐냐, 그런 거 없어? 산삼이라던가 송이버섯이라던가. 또 뭐가 있더라… 아 몰라. 내가 뭐 좋은 걸 먹어 봤어야 알지. 하여튼 몸에 좋은 거 있잖아. 그런 것 좀 닥치는 대로 가져와 줄래? 나 몸 약하잖아. 보신해야지, 보신."

 

 전혀 아파 보이지 않는 기색으로 이런 말을 하려니 좀 부끄럽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잖아?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구. 세 명의 소녀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걸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내가 마구잡이로 먹어대는 통에 아이들은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었다.

 

 "미안한데 탕약도 좀 더 가져오자. 이거 몸에 좋은 거지? 어의 영감한테 말해서 잔뜩 받아와, 수시로 마시게. 고작 이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내 말에 음식을 가지러 가던 단향이가 내의원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실 나는 내의원이 어딘지도 몰랐지만, 가는 방향이 달라진 걸로 대충 짐작해 본 것이었다.

 

 "의원 나으리들께서 안 된다고 하시는 것을, 애원하고 또 애원해서 간신히 받아온 것이옵니다."

 

 단향이가 숨을 헉헉대며 가져온 탕약 그릇을 보며, 나는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거 양반들이 되게 쩨쩨하네. 인심 좀 쓰지, 겨우 한 그릇 가지고 생색내기는. 투덜대던 나는 단향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도 기특하네.

 

 "고생했어."

 "내의원이나 수라간이나 저희가 정말 애걸복걸해서 가져온 것들이니 드시고 꼭 건강해지셔야 하옵니다. 아시겠지요?"

 "오… 알겠어."

 "마마, 이것도 드시옵소서."

 

 뒤이어 들어온 연심이가 온갖 보양식들을 상에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손뼉을 치며 활짝 웃었다. 열심히 입에 음식을 가져가던 나는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은 저 추운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너희는 밥 안 먹어?"

 "저희의 끼니는 소녀들이 알아서 챙길 것이니 걱정 말고 드시옵소서."

 "그래도 영 미안한데… 같이 먹을래?"

 "아니 되는 말씀이옵니다!"

 

 한 목소리로 완강히 거부하는 아이들. 나는 멋쩍은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고맙다 얘들아. 내가 얼른 튼튼해져서, 너네가 어딜 가든 무시당하지 않게 해줄게. 그런 생각을 하며 열심히 닭다리를 뜯고 있을 때, 연심이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마, 부부인 마님 드셨사옵니다."

 

 그 말에 나는 들고 있던 닭다리를 놓치고 말았다. 부부인? 그게 누구야? 나는 도움을 요청하듯 해정이를 쳐다봤다. 다행히 눈치 빠른 해정이는 부부인이 나의 어머니라고 잽싸게 대답해 주었다. 어… 그러니까 중전의 어머니라 이거지? 나는 입안에 든 닭고기를 꿀꺽 삼키며 말했다.

 

 "들어오세요."

 

 이윽고 부부인이라 불린 중전의 어머니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중전은 어머니를 닮았구나. 중전이 그대로 늙으면 이렇게 될까 싶은 부부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조금씩 아려왔다. 이 사람은 알까? 자기 딸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왠지 모를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 거칠게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왜 죄책감을 느껴야 해? 따지고 보면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어, 어… 안녕하세요."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해정이가 건네주는 손수건으로 급하게 손을 닦았다. 내 말을 들은 부부인이 갑자기 흡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한 내가 허공에 손을 휘젓고 있자니, 저고리 고름으로 우아하게 눈물을 훔친 부부인이 젖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왔다.

 

 "마마. 어찌 이 어미를 찾지 않았습니까. 마마께서 그리되시고, 어미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아십니까…?"

 "…저기 그, 그게."

 

 나는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아오는 부부인이 너무나도 낯설어 슬쩍 시선을 피했다. 다소 거친 손에는 세월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으나, 굉장히 따뜻했다. 나는 힐끗 부부인의 얼굴을 쳐다봤다. 언뜻 봐도, 대단한 품격이 흐르는 얼굴이다. 옅은 주름마저도 그 고귀한 기품을 상하게 하지는 못했다. 내 시선을 알아챈 부부인은 다시금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많이 반가우신가 보네…. 이제 보니 중전은 정말 불효녀였나 보다. 평소에 오죽 안 찾아갔으면 어머니가 반갑다고 울기까지 할까.

 

 "번개에 맞았다고 들었습니다. 이 어미, 차마 마마의 상을 치르는 곳에 가지 못 하였습니다. 그 광경을 보게 된다면,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미안합니다… 다 어미가 못난 탓입니다… 흑."

 "네? 번개라니… 아니 그것보다 상이요?"

 

 아니 번개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연심이도 그렇고 부부인도 그렇고, 죄다 내가 번개에 맞았단다. 정작 나는 기억에도 없는데. 게다가 상을 치렀다는 소리는 또 뭐람. 상이라, 장례식 말하는 건가? 헉, 그럼 중전이 죽기라도 했었단 말이야? 문득 이곳에 오자마자 봤던 풍경들이 뇌리에 스쳤다. 하나같이 누런 삼베옷을 입고 있었지. 그거 상복이었구나. 나는 새삼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사람들 눈에는 중전이 부활한 걸로 보였겠네. 진짜 요지경 세상이다. 근데 이거 혹시 내가 조선에 온 이유랑 관련이 있나? 새로운 궁금증이 한가득 생겨났지만, 눈물을 한가득 쏟아내는 부부인의 앞에선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가만히 부부인의 손을 잡고 있다가는 도와달라는 얼굴로 연심이를 쳐다보았다. 연심이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종종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부부인 마님. 너무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중전 마마께서는 그 여느 때보다도 건강하시옵니다. 지금도 밥을 무려 세 공기나 드셨사옵니다."

 

 야 인마… 잘 나가다가 거기서 그게 왜 나와? 나는 황당한 눈으로 연심이를 흘겨보았다. 그런 나와는 대조적이게도, 부부인은 환한 얼굴로 가감 없이 기뻐했다.

 

 "그랬습니까 마마? 어찌 우리 마마께서 밥을 세 공기나! 오늘 같은 날엔 연회라도 벌여야겠습니다!"

 

 장난이라기엔 너무나도 진지한 말투. 밥 잘 먹는다고 칭찬 받기는 또 처음이네. 나는 그저 어색한 웃음을 짓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식사 중이었음을 깨닫고, 부부인에게 물었다.

 

 "식사는 하셨어요? 같이 드실래요? 닭이 진짜 부드러워요."

 "어미는 이미 먹고 왔답니다. 아! 한창 식사 중인데 제가 방해를 했나 봅니다. 어서 드시지요. 뼈는 제가 발라 드릴 터이니."

 

 방긋 웃으며 나를 앉힌 그녀는 옆에 앉아 닭의 뼈를 손으로 하나하나 발라주기 시작했다. 나는 숟가락 위에 살코기를 얹어주는 부부인의 모습을 한참이나 멍하니 쳐다봤다. 부부인이 그런 나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혹시 배가 부르십니까?"

 "…."

 "마마?"

 "…아, 아니에요. 맛있어요."

 

 나는 급히 수저에 올라간 밥과 닭고기를 한 입 크게 넣었다. 부부인은 더욱 환한 웃음을 지었다. 얼굴에 온통 눈물 자국이 번진 것도 모른 채로. 나는 괜히 죄송스러운 기분에 고개를 밥그릇에 처박듯이 숙였다. 불편하다…. 체할 것 같아. 누가 좀 살려줘. 속이 조금씩 얹혀가던 중에,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해정이었다.

 

 "중전 마마. 어의 영감 드셨나이다."

 "쿨럭. 어 그래."

 

 아니 아까 오지 않았어? 뭐 하러 또 와?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다들 어쩜 이렇게 타이밍이 구린 건지 모르겠다. 나는 괜스레 타는 속을 진정시키려 물을 쭉 들이켰다. 곧 어의가 다가왔다. 부부인은 멀찍이 비켜 앉았다. 해정이와 단향이가 급히 상을 들고서 뒤로 빠졌다. 안 돼… 내 밥!

 

 "의원들이 고하길, 탕약을 새로 받아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여 어디가 안 좋으신가 하여 들렀는데… 아까보다 묘하게 혈색이 좋아지신듯 합니다?"

 "딱히 안 좋은 곳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많이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가져오라고 한 거야."

 

 당당히 반말을 내뱉은 나는 어쩐지 싸해지는 분위기에 슬금슬금 눈치를 살폈다. 가만히 눈만 꿈뻑거리는 어의. 그게 아니라는 듯 뒤에서 열심히 손사래를 치는 연심이. 자리에 앉아 있던 부부인 역시 당황한 듯 나와 어의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 나 지금 말실수한 거야?

 

 "요."

 

 나는 급하게 요를 붙였다. 그렇게 '한 거야요'라는 기괴한 말이 완성되었다. 사극 좀 열심히 볼걸…. 이런 쪽은 쥐뿔도 모르는 나는 왕이랑 부모님한테만 존대를 쓰면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흠!"

 

 어의가 짐짓 헛기침을 하며 내 손목을 잡았다. 가만히 진맥을 하던 어의는 역시 문제가 없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바쁜 일이라도 있는지, 서둘러 방을 나서던 어의는 무조건 약을 많이 먹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엄…그렇구나. 한약이라면 그저 좋은 줄로만 알았지. 것도 나름 신기하네.

 

 "그나저나 참 어렵다 어려워…."

 "예? 무엇을 말이옵니까 마마?"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부부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소머즈세요? 나는 나름 작게 말한다고 한 건데… 놀란 나는 황급히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혼잣말이었어요."

 

 나는 문득 신세가 이상해져버린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곤 괜히 꼼지락거렸다. 역시 불편해, 이런 자리는…. 부부인은 그런 내 모습을 뚫어져라 보다가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반사적으로 따라 일어났다.

 

 "가시려고요?"

 "예 마마. 얼굴을 본 것으로도 족합니다. 마마께서도 슬 쉬셔야 할 터이니,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푸근한 미소에 코가 찡했다. 부부인은 내 손을 꼭 붙잡고 있다가, 본인의 목에 둘러진 목도리를 풀어 내 목에 둘러주었다.

 

 "아, 아니에요. 날도 추운데 하고 가시지…."

 "아닙니다. 어미가 해줄 수 있는 것이 고작 이것뿐이라 미안합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또다시 웃어 보이는 부부인. 문득 나는 아주머니의 딸이 아니라는 말이 목에 솟구쳤다. 말해야 하는데… 그래야 이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것 같은데…. 하아. 도저히 못 하겠다. 결국 나는 부부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입을 열지 못 했다. 이상하게도 떠나가는 부부인의 뒷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나는 문간까지 쫓아나가 부부인을 배웅했다. 그리고 멀어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또 보았다. 이윽고 부부인이 시야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 연심이는 고뿔에 걸리겠다며 나를 잡아끌었다.

 

 "괜찮아…에, 엣취!"

 "그것 보시옵소서. 아직 몸이 많이 약하시지 않사옵니까."

 "괜찮대도. 것보다 밥 잘 먹다가 끊겨버렸네. 어쩔 수 없지. 약이라도 줄래?"

 "예 마마. 쭉 들이켜시고 어서 쾌차하시옵소서. 소녀, 바라는 것은 그것 뿐이옵니다."

 "…고마워."

 

 나는 가볍게 약을 원샷했다. 크으. 씁쓸하구만. 아주 건강한 맛이야. 쓰디쓴 약을 먹고도 즐거워하는 나를 연심이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작가의 말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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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월#2 2017 / 11 / 14 242 1 4363   
1 신월#1 2017 / 11 / 14 369 2 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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