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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신월이 뜨던 밤
작가 : 달리아
작품등록일 : 2017.11.13

신월이 뜨던 밤, 죽은 중전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그 시각, 서울에서 의문의 사고를 당한 소월. 눈을 떠보니 내가 중전? 소월의 좌충우돌 중전 적응기.

 
이름이 뭐예요?
작성일 : 17-12-14 04:51     조회 : 210     추천 : 0     분량 : 8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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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으아아악!"

 

 무언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었다. 경악스러운 현실에 나는 숨 막히는 비명을 내질렀다. 소리를 지르는 와중에도 나의 시선은 여전히 손거울에 붙박인 채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불투명한 표면에 낯선 얼굴이 비쳤다. 놀란 듯 나를 마주 본 얼굴은, 이리 보고 다시 저리 뜯어봐도 나와는 닮은 구석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말 그대로 생판 남의 얼굴이었다.

 

 '뭐, 뭐야? 내 얼굴이 왜…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나는 계속해서 내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말도 안 돼… 눈코입 전부 내 마음대로 움직이잖아. 이게 진짜 나라고? 그제야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당시, 왕과 군중들이 했던 말의 의미를. 그들이 보고 있었던 것은, 중전을 닮은 누군가가 아니었다. 아마도 이 얼굴의 주인은 진짜 '중전'일 것이었다. 그러니 나보고 그토록 애타게 중전이라 불렀던 거겠지. 적어도 겉모습만큼은 똑같아 보였을 테니까.

 

 "하, 하하…."

 "마마…."

 

 망연자실한 웃음을 흘리고 있자니, 나를 찾는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고개가 돌아간 곳에는 두 명의 어린 소녀가 있었다. 열대여섯 때쯤 됐을까. 옥빛 저고리의 소녀들은 연신 안절부절못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태도나 말하는 모양새로 보건대, 곁에서 중전을 모시는 아이들인듯했다. 키가 조금 더 큰 아이는 묘하게 낯이 익었다. 나는 언뜻 맹랑해 보이는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가는, 잠결에 얼핏 봤던 소녀를 기억해낼 수 있었다. 문제의 손거울을 가져다준 아이였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그 아이의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껏 원망을 담은 시선을 보냈다.

 

 "마, 마마… 무슨 문제라도…?"

 

 문제가 있냐고? 그래, 있다. 문제가 아주 많아서 문제다! 나는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소녀의 당황한 내색 따위는 쿨하게 무시했다. 가뜩이나 조선이니 중전이니 하는 것도 어이가 없었는데, 이제는 몸까지 뒤바뀌고 말았다. 확실히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눈앞에 닥친 이 거지 같은 현실에, 나는 거칠게 머리를 헤집으며 한참을 괴로워했다. 제길. 내 몸 돌려줘. 다시 서울로 돌려보내 줘!

 

 격렬하게 몸부림치던 나는 발라당 뒤로 누워버리고 말았다. 아무런 의욕도 나질 않는다. 대체 난 뭘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거지?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전부 소용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신이란 작자가 있다면, 면전에 대고 소리라도 쳐주고 싶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왜 나한테만 이렇게 잔인하게 구는 거냐고. 부질없는 망상이었다.

 

 "왜 그러시옵니까, 마마."

 

 나를 부르는 걱정스러운 목소리. 음. 저기, 걱정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말이지. 오해가 하나 있구나. 나는 텅 빈 눈으로 대꾸했다.

 

 "난 네 마마가 아니야."

 "예? 그게 무슨…."

 "난 중전이 아니라고."

 

 그렇게 당황한 표정 지어봤자 소용없어. 아닌 건 아닌 거니까.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못을 박았다. 그러자 아이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저희들끼리 속닥거렸다. 어쭈, 이것들 봐라? 뒷담을 해? 내 얼굴에 비틀린 미소가 떠오르는 순간, 드르륵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마마아!"

 "으악, 깜짝이야!"

 

 나를 부르는 우렁찬 목소리에 하마터면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콩콩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바라본 자리에는 가쁜 숨을 내쉬는 또 다른 소녀가 있었다. 뭐지? 뉴 페이스 등장인가? 소녀는 청록색 당의를 입고, 곱게 쪽 찐 머리에는 옥비녀를 꽂았다. 옆에 있던 아이들보다 두어 살이나 많을까. 아직 애티가 가시지 않은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기쁨이 가득했다. 나는 갑자기 등장한 의문의 소녀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다가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나는 마마가 아니래도? 내가 뭐라 입을 열려는 순간, 소녀가 저돌적인 움직임으로 달려들었다. 뭐지? 빠, 빠르다!

 

 "커헉!"

 "흐어어엉! 마마!"

 "이, 이제 그만…."

 

 소녀가 내 몸을 들이받음과 동시에 커다란 충격이 밀려왔다. 와 진짜 먹은 게 없어서 다행이다. 하마터면 다 토할 뻔. 다행히 잠든 사이에 의원이 다녀갔는지 왼쪽 어깨에서 큰 통증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후 숨 막혀…. 나는 답답한 표정으로 소녀를 밀쳐 내었다. 왜 만나는 사람마다 껴안질 못해서 안달인 거야? 그리고 얘는 웃을 땐 언제고 왜 갑자기 우는 건데? 왕에 이어 나타난 신종 진상 수법에 식은땀이 절로 흘러나왔다.

 

 "좀 떨어져라…."

 "마마아아아… 흐어엉…."

 

 그러나 소녀는 거머리처럼 딱 달라붙어서는, 나한테서 절대 떨어지려 들지 않았다. 잔뜩 찡그린 얼굴로 한참을 밀고 당기던 나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바뀐 건 얼굴만이 아니었는지, 도통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여전히 나를 끌어안은 채로 서럽게 울어댔고, 나는 영문도 모르고 그런 소녀를 달래는 신세가 되었다. 하아. 이제 그만 뚝하지 그러냐. 작게 한숨지은 나는 소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근데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되게 서럽게도 우네.

 

 내 차분한 도닥거림에도 소녀의 울음은 잦아들 기미가 안 보였다. 대체 언제까지 울 거야. 진짜 짜증 나 죽겠네. 내 불만스러운 시선이 다른 아이들을 향했다. 얘넨 뭐 하는데 이렇게 조용해? 그리고 나는 어이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황당하게도 이 빌어먹을 녀석들은, 만면에 훈훈하다는 미소를 띤 채로 우릴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닌가! 인상이 팍 찌그러졌다.

 

 "너넨 거기서 뭐 하냐?"

 "헉…!"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악! 떨어져! 떨어지라고 이것들아!"

 

 소녀들은 내 말의 의미를 오해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보고 있지만 말고, 이 진드기를 좀 떼어내 달라는 뜻이었는데… 하하. 진드기가 떨어지기는커녕 두 마리가 더 늘었네? 혹부리 영감의 심정이 이런 건가 싶다. 나는 서서히 인내심이 바닥나는 것을 느꼈다. 사실 이쯤이면 내 성격 치고는 굉장히 많이 참은 거다.

 

 "아아악! 나가! 다 나가! 꺼지라고!"

 

 결국 한계에 다다른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폭발하듯 터져 나온 고성에 세 명의 소녀는 쫓기듯 튀어 나갔다. 그제야 평화가 찾아왔다. 나는 씩씩거리며 황급히 닫혀버린 문을 흘겨봤다. 그리곤 다시 털썩 드러누워 뒹굴거렸다. 진짜 짜증 나…. 그 와중에 이불은 또 더럽게 폭신폭신했다. 나는 부드러운 비단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눈을 감았다.

 

 "끄응…."

 

 사람들이 나를 향해 중전 마마라고 외치던 것이 생각났다. 처음에는 막연히 닮은 사람이랑 착각하는 줄 알았더랬다. 나름 중전의 반려라는 왕까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기에, 엄청 닮긴 닮았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진짜 중전의 몸에 들어가 있지 않은가. 나는 경대 거울을 쳐다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지나치게 마른 몸이며, 앙상하지만 고아한 기품이 흐르는 얼굴이며 영락없이 중전의 모습이다. 통탄할 노릇이다. 뜬금없이 조선시대로 날아온 것도 모자라서, 몸까지 바꿔치기 당하다니.

 

 나는 오른팔을 베고 반대편으로 돌아누웠다. 다른 손으로는 이불 위를 톡톡하고 두드렸다. 이불을 두드리는 내 손길은 점점 빠르고 둔탁해지다가, 곧 주먹으로 퍽퍽 내리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으아악!"

 

 도저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밑에 깔린 이불을 손으로 쥐어뜯듯 꽉 쥐다가는 벌떡 일어났다. 어떡하지? 진짜 어떡하지? 왜 하필 나지? 왜 하필 조선시대야? 이러다 못 돌아가면 어떡해? 평생 여기서 살게 되면 어떡하냐고….

 

 "…그럼 진짜 뭐 되는 건데."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곳은 완전히 미지의 세계였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는 인간들만 드글드글한 곳이었다. 문득 소름이 끼쳤다. 나는 마치 스스로를 보호하듯 이불로 몸을 둘러쌌다. 정말 여기서 계속 살아야 되면 어쩌지? 그럼 이제 수녀님도, 애들도 못 보는 거야? 어떡해… 나 돌아가고 싶어. 집에 가고 싶어, 여긴 무섭단 말이야….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꾸만 뇌리를 좀먹었다. 나는 이불을 아예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연달아 떠오르는 섬뜩한 가정들에 찔끔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랜 시간 이불 속에서 고개조차 내밀지 않았다. 그저 나는 중전이 아니라는 말만 끊임없이 되뇌고 또 되뇔 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고개를 천천히 이불 밖으로 꺼냈다.

 

 "…이거 어쩌면 다행일지도?"

 

 적어도 중전이 나타날까 봐 떨지 않아도 되잖아? 오… 맞아. 속은 나여도 겉은 진짜 중전이니까. 이거 의외로 나쁜 상황은 아닌데? 생각해보면, 노비가 안 된 게 어디야. 나는 애써 자기합리화를 하며 웃었다. 하하하. 입은 웃고 있는데 왜 눈에선 눈물이 흐를까….

 

 그래, 중전이면 감지덕지지. 까짓것 높은 신분으로 역사 체험이라도 한다고 생각하지 뭐! 이런 기회가 어디 흔하겠어? 물론 지금은 돌아갈 방법이 딱히 없다지만, 나중이 되면 혹시 모르잖아? 왔던 길도 있는데 돌아갈 길이라고 없겠어? 오오… 희망이 보인다. 엄청난 희망이 보여! 나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강박적으로 다리를 떨었다. 누가 들으면 참으로 괴상하다며 혀를 내두를 웃음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킥킥… 내가 시간 여행을 하는 날이 오다니! 이야…! 참으로 값진 경험 납셨다!"

 

 연신 광소를 흘리며 심각할 정도로 다리를 떨어대던 나는 다시 자리에 폭 쓰러졌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진짜 부드럽고 푹신하다. 꼴에 중전이라고 이부자리는 좋은 걸로 깔아줬나 보네. 바닥도 뜨끈한 게 아주 귀빈 대접이 따로 없구나. 나는 겨울에도 난방비 아까워서 옷 잔뜩 껴입고 자고 그랬는데. 투덜거리던 나는 이불 밖으로 고개만 빼꼼 내밀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아니 근데 생각할수록 열받네. 왜 하필 나냐고!

 

 "다 망했어… 몰라. 몰라! 아무것도 몰라아악!"

 

 그래도 소리를 지르니까 아주 약간은 속이 풀리는 것도 같았다. 이런 신발…. 될 대로 되라지. 나는 체념하듯 눈을 감았다. 그냥 잠이나 자자. 이렇게 답이 안 나올 때는 역시 잠이 최고지. 자고 일어나면 다시 서울에 있을지 또 어떻게 알아?

 

 몸이 약해서인지 아니면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건지, 나는 거짓말처럼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의식이 점차 흐릿해지고,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헤매고 있을 때 돌연 밖에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전 마마. 어의 영감께서 드셨나이다."

 "…."

 

 와. 타이밍 지저분한 것 좀 봐. 올 거면 진작 오던가. 막 달콤한 잠에 빠지려던 나는 한껏 나른해진 몸을 추스르며 간신히 일어나 앉았다. 나는 하품을 찍하며 문을 쳐다봤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문은 열릴 생각을 않았다. 뭐지? 아, 대답을 안 해서 그런가.

 

 "들어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열렸다. 어의로 보이는 늙수그레한 남자 하나와 의녀 몇 명, 그리고 소녀 세 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이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들어와 내 옆에 앉았다. 그들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나도 반사적으로 목을 굽혔다.

 

 "마마. 팔은 좀 괜찮으십니까?"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왼 팔을 내밀어 보시겠습니까."

 

 맥을 재려는 모양이기에 나는 순순히 팔을 내밀었다. 어의는 능숙한 손길로 내 팔목을 잡고는 맥을 짚었다. 순간 어의의 표정이 이상야릇하게 변했다. 뭐지? 미묘한 불안감이 차올랐다. 왜 그러냐는 물음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다행히도 별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내 만면에 인자한 웃음을 띤 어의가 진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딱히 이상이 있는 곳은 없습니다만, 원체 몸이 허약하신 편이니 탕약을 꾸준히 복용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마! 정말 다행이옵니다!"

 

 나보다 더 기뻐하는 청록색 당의의 소녀. 나는 심드렁하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래. 다행이기도 하시겠지. 자다 깨서 그런 건지, 유난히 삐딱한 생각이 들었다. 맘에 안 들어.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닌 나를 향해 괜찮다고 말하는 어의란 작자도, 그걸 들으며 제 일인 듯 해맑게 웃는 소녀도.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든다. 어쩌면 내가 아닌, 중전을 대하고 있는 이들이었기에 더욱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럼 지체 보중하옵소서 마마."

 

 나는 빨리 나가라는 듯이 손을 휙휙 휘저었다. 잠시 뻘쭘한 표정을 짓던 어의와 의녀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들을 배웅하던 소녀들도 내 눈치를 살금살금 살피더니 이내 문밖으로 나갈 태세를 갖췄다. 문틈으로 들어온 찬바람이 조금씩 내 정신을 일깨웠다.

 

 "이리 와 봐."

 "예? 저, 저 말씀이십니까…?"

 "그럼 누가 또 있냐. 이리 와 보라고."

 

 아까 버럭 하고 소리를 지른 잔상이 아직 남아 있는 탓일까. 당의 소녀는 움찔거리며 자신을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까딱였다. 소녀가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시선은 소녀의 뒤편을 향해 있었다.

 

 "거기 스톱."

 "…."

 "아, 스톱이란 말을 모르나? 동작 그만이라고. 너네도 이쪽으로 와."

 "예에? 저희들도요?"

 "그래. 너희들은 안 불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이리 와. 빨리 안 튀어 와?"

 

 소녀들은 서로의 손을 꼭 붙잡으며 내 눈치를 살폈다. 아니,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 대? 이 정도 가지고 쫄기는. 중전이 평소에 순한 성격이었나? 아니면 내가 무섭게 굴었나….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말투를 조금 부드럽게 바꿨다.

 

 "추우니까 문은 닫고 와 줄래?"

 "앗… 예 마마!"

 

 또 곱게 말해줬다고, 그새 쪼르르 달려와 옆에 서는 걸 보니 어처구니없는 실소가 흘러나왔다.

 

 "여기 앉아."

 "…꼭 앉아야 하는 것이옵니까?"

 "서서 듣고 싶니?"

 "예!"

 

 이게 누굴 못된 사람으로 만들려고. 나는 미간을 좁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도 서서 말할게. 이러면 공평하지?"

 "아니 되옵니다 마마! 소녀들을 죽여주시옵소서!"

 "이거 놔… 누가 죽인대? 그냥 같이 앉자니까?"

 

 우여곡절 끝에 나는 내 옆에 세 사람을 주르르 앉히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서로 의아한 눈길을 주고받는 소녀들. 음. 안 하던 짓을 하려니 왠지 모르게 입안이 바싹 마르는 느낌인데? 나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열어 말했다.

 

 "그, 어…음…. 아까는 미안."

 

 갑작스러운 나의 사과에, 소녀들의 눈이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너희들도 봐서 대충 알겠지만… 지금 내가 좀 정상이 아니거든?"

 "…."

 "어, 그러니까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너넨 아직도 내가 중전이라고 생각하니?"

 "당연한 것 아니옵니까 마마! 마마께서는 언제까지고 저희의 중전 마마일 것이옵니다!"

 "그러니까 그런 뜻이 아닌데… 아 몰라. 내가 중전이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안 들을 거지?"

 "마마…. 저희도 마마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사옵니다. 하지만 아까 어의 영감께서도 정상이라 말씀하지 않으셨사옵니까? 마마께서는 번개로 인한 충격으로 잠시 기억을 잃으신 것뿐이옵니다. 또 얼마 전에는 불미스러운 사건도 있었으니… 당장은 기억을 못 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마시옵소서. 소녀들이 반드시 마마의 기억을 되찾아 드리겠사옵니다!"

 

 나는 진짜 중전이 아니라서 한 말인데, 그걸 굳이 기억 상실이라고 포장까지 해주다니… 이것 참 쑥스럽구만. 그나저나 번개는 또 뭔 소리야?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선언하는 소녀를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저 강건한 태세로 보건대, 내가 아무리 중전이 아니라고 우겨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듯했다. 나는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와서 느는 거라고는 한숨뿐이구나.

 

 "헌데, 마마. 혹시 소녀들의 이름은 기억나시옵니까?"

 

 어렵게 말을 꺼내는 여자아이. 나는 벙찐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얘네 이름도 모르고 있었구나.

 

 "저는 해정이옵니다."

 "전 단향이옵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옥빛 저고리를 입은 아이들이 얼른 대답을 내놓았다. 해정이랑 단향이라… 이름 예쁘네. 맹랑하게 생긴 아이가 해정이, 그리고 비교적 순한 인상의 아이가 단향이었다.

 

 "너는… 왜 대답이 없어?"

 

 내 말을 들은 당의 소녀는 조금씩 울먹거리더니 기어코 요란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작게 혀를 찼다. 이런 반응을 보일까 봐 나름 조심스럽게 묻는다고 물은 건데, 영 헛수고였던 모양이다.

 

 "어찌… 어찌 저를 잊으실 수 있사옵니까…. 흡… 아니, 이해하옵니다. 번개가 잘못한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어찌 저를 잊으신다는 것이옵니까. 흐윽… 마마의 잘못이 아닌데…. 도저히 믿을 수가 없사옵니다…흐끅. 마마, 정녕 제 이름이 기억나지 않으시옵니까…?"

 "음… 네 이름이 혹시 영희?"

 

 눈물을 뚝뚝 흘려대며 애절하게 묻는 소녀의 질문에 차마 모른다고 대답하기가 애매했다. 나는 멋쩍게 뺨을 긁적이며 대충 찍었다. 왜 자고로 우리나라에서 소녀의 대명사라고 하면 영희가 아니던가? 그러니 적어도 절반 확률로 맞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흐어엉… 아니옵니다. 소녀의 이름은 영희가 아니옵니다…."

 "엄…그러면 미희? 순자? 복자? 주희?"

 "…으아아아아앙!"

 

 아주 집이 떠나가라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에 나는 질린 얼굴로 귀를 틀어막았다. 염병. 이것도 아닌가?

 

 

 
작가의 말
 

 날이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글 진행 방향을 통째로 엎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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