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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해결사
작가 : 골든피크
작품등록일 : 2017.12.11

40년, 그 오랜 시간동안 윌런 왕국을 지배하던 오리헨은 도리어 속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 아래에서 볼모로 잡혀온 '저능아 왕자' 는 오늘도 하루를 겨우 연명하는 처지였다.

 
해결사
작성일 : 17-12-13 23:37     조회 : 246     추천 : 0     분량 : 1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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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연무장을 나온 로윈은 혼자서 고대룬어학부가 모이는 강의실로 찾아가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져 분주하게 찾고는 있었지만 버밋 아카데미 자체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초행자들이 길을 잃기 딱 좋았다.

 잘만 활용한다면 아카데미 어디든 갈 수 있다는 하얀 게이트를 열었다가 하마터면 지하감옥으로 들어갈 뻔해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보류하기로 했다.

 

 "저기인가?"

 

 30분 정도를 빙글빙글 헤매다 보니 저쪽 간판에 고대 룬어로 짐작되는 현판이 보이자 로윈은 주변을 기웃거리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오래된 양피지 냄새가 확 올라왔다. 가까이 있는 책을 한 권 뽑아서 확인하자 알 수 없는 문자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이 아무래도 보관실에 온 모양이었다.

 그래도 사람이 있으면 길이나 물으려고 로윈은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다.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종이들이 한 가득 쌓여 마치 미로를 헤매는 심정으로 돌아다니던 로윈은 안쪽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자 발소리를 줄이고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샤르륵. 샤르륵. 탁.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생각이 들 때쯤, 코너를 돈 로윈은 한 쪽 끝에서 서랍을 뒤적거리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분명 여기에 감추시는 걸 봤었는데..."

 

 무언가를 급하게 찾는 남자의 모양새가 어딘가 수상쩍어 로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았다. 네이비색 아카데미복 등뒤로 땀이 나는지 검은색으로 젖었고 무언가 불안한지 발뒤꿈치를 들어 자꾸만 입구를 살피는 모습이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했다.

 

 "좀도둑?"

 

 아카데미 내에서는 좀도둑이 종이를 훔치는가 하고 로윈이 갸웃거리던 차에 남자는 원하는 것을 찾았는지 작게 환호성을 질렀다.

 

 "이것만 있으면, 이것만..."

 

 한 손에 종이 몇 장을 쥐고 다른 손으로 옷 안에서 누리끼리한 종이를 꺼낸 남자가 보인 다음 행동에 로윈은 조금 놀랐다.

 

 "리플렉타 리티."

 

 뜻 모를 말을 하자 종이 위에 있던 글자들이 살아있는 것 마냥 둥둥 떠올랐다. 남자가 턱짓을 하자 차례대로 움직인 글자들은 두 개씩으로 나뉘어져 하나는 하얀 종이 위로 하나는 누런 종이 위로 옮겨가 복제되었다.

 좀도둑이었는 줄 알았던 남자가 사실은 마법사였다는 점이 의외였다.

 

 마법사들은 대기 중에 흐르는 마나를 이용하여 마법을 부리는 이들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마법을 부리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마나와 특정한 마법에 대한 술식이나 진이 필요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마법만 해도 천 가지에 이를 정도이지만 여전히 마법의 종류와 그 수에 대해서는 연구가 열렬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그런 마법을 부리기 위한 마법사들의 수는 굉장히 소수에 불과했다.

 평생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고, 마나를 느낀다고 한들 그것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도 매우 적었던 탓이다.

 

 평범한 좀도둑 남자의 머리 위로 마법사 라는 타이틀이 추가 되었더라도 해도 엄연히 범죄는 범죄. 특히나 마법을 이용한 범죄는 중범죄에 이른다. 그러나 로윈은 고개를 슬쩍 저었다.

 

 '무슨 상관이야.'

 

 이 곳에서 달려가 그건 범죄라고 말한들, 로윈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쓸데없이 참견을 했다가 도리어 마법사가 무슨 마법을 부린다면 손해다. 완전히 손해.

 

 로윈은 그가 종이를 제자리에 두고 나가려 하자 슬그머니 뒷걸음질했다. 그러나 로윈의 어깨 근처에 있던 책장이 살짝 흔들리면서 끼익거리는 마찰음을 냈다. 그러자 소스라치게 놀란 남자는 뒤를 돌아보고 앞을 보지도 않은 채로 절을 했다.

 

 "죄,죄, 죄송합니다, 한 번만 한 번만! 용서를...으응?"

 

 남자는 고개를 슬쩍 들었다가 상대가 재빠르게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본 머리 중에서 가장 고운 금발 머리와 남자치고는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얼굴에 상처투성이에 옷이 많이 헤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카데미 복장을 입지 않은 것으로 보아하니,

 아카데미 어린 직원임이 분명했다. 판단을 마치고 억지로 웃는 얼굴로 몸을 일으킨 남자는 스리슬쩍 로윈 쪽으로 걸어왔다.

 

 "저기, 귀여운 꼬마야? 나는 저얼대로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동작 그만."

 

 로윈의 말에 움찔하던 남자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어눌한 말투로 '우리 말로 하자꾸나'며 다시 움직이던 남자를 향해 로윈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 표정이 너무나 날카로워 한기가 뚝뚝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어줍짢은 회유를 펼치시면 그대로 소리지를 겁니다."

 

 단호하게 내뱉는 로윈의 대답에 남자는 움찔하고 말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보통 꼬마가 버밋 아카데미에 올 일은 없었다. 그렇다는 말은 저 꼬마도 무언가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아니면 엄청 나이 먹은 대마법사가 어린 아이로 모습을 바꾼 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는지 얼굴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던 남자는 표정관리를 못하고 안절부절한 얼굴이었다. 로윈은 무표정한 눈으로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갈색 곱슬머리에 투박하게 생긴 얼굴. 얼굴에 듬성듬성난 수염은 정리가 되지 않아 너저분해보였고 버밋 아카데미의 엠블럼이 박혀있는 복장은 닳아서 여러번 수선했는지 옷 색이 부분부분 달랐다. 대충 복장과 행동거지로 추측해 봤을 때, 남자는 버밋 아카데미에 다니는 평민 학생인 것 같았다.

 마법사라는 점이 의외이기는 했지만 그렇더라도,

 

 "좀도둑."

 "야야, 그런 거...에... 그냥 못 본 걸로 해주면 안 되나?"

 "제가 왜 그래야 할까요?"

 

 남자는 황급하게 몸을 낮추었다. 쿵하는 소리가 날만큼 무릎을 급하게 찍은 그는 꼬마 앞이라는 자존심도 없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제발,제발, 제발. 나 여기서 쫓겨나면 안 된다. 꼭 해야될 일이 있다 이 말이다."

 

 남자는 제발이라는 소리를 연발했다. 여기서 들키면 이때까지의 고생들이 모두 헛고생이 되어버린다. 여기서 쫓겨나면, 그렇게 되면

 

 "지킬 수 없단 말이다. 제발 부탁한데이."

 

 마지막에 가서는 거의 울것 같은 목소리가 되자 로윈은 한숨을 푹 쉬었다. 애초에 남들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아카데미에 도둑이 들든지 말든지는 그가 알 바가 아니었다. 오히려 굳이 말했다가는 시간만 낭비당할 게 뻔했다.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는 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그렇게 빌면 자존심도 없습니까?"

 "자존심은 개나 갖다 주라 그래. 응? 안될까?"

 "후우, 알겠습니다."

 

 로윈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방금전까지 슬픈 목소리는 거짓말이었는지 얼굴에 화색이 가득했다.

 

 "약속 한기다? 그렇지?"

 

 웃음기까지 가득한 얼굴에 아니오 라고 말할까 싶다가 고개를 끄덕여주려는데 갑자기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몸을 벌떡 일으킨 남자는 뒷발을 들어 누가 들어왔는지 확인하고는 사색이 되었다. 후다닥 구석으로 뛰어간 남자는 로윈을 향해 조용히 해달라는 손짓을 했다.

 

 "루 비사 세이룬."

 

 주문과 함께 남자의 모습이 스르륵 사라졌다. 대마법사들이나 한다는 순간이동인가 싶었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남자가 움직일 때마다 책장이 어긋나는게 제자리에서 안 보이게 하는 마법이었다.

 

 "마법사 좀도둑. 재능 낭비가 일류급이시네요."

 

 로윈이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면서 말하자 벽 쪽에서 작게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대충 해석해보니 '아니라니까 그라네.' 정도인 것 같았다.

 

 코너에서 나온 사람은 한 중년 남성이었다. 어깨까지 기른 검은 장발에 금색 뿔테 안경을 낀 남자는 로윈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그쪽은 누군가?"

 "저는 고대룬어학부를 찾기 위ㅎ..."

 "부른 지가 언젠데 지금 오는 거야!"

 

 고대룬어학부라는 말을 듣자 마자 얼굴이 확 변한 남자는 로윈의 말을 자르며 언성을 높였다.

 

 "예?"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긴 남자는 아까 좀도둑이 뺐다 넣었던 종이를 꺼냈다.손바닥 위에 종이를 올린 남자는 짧게 중얼거렸다.

 

 "리플렉타 리티 - 픽사르."

 

 좀도둑이 쓰던 마법과 거의 똑같은 주문을 읊조리자 이번에는 아까와 다르게 공중에 붕 뜬 종이에서 새로운 종이가 튀어나오고 그 새로운 종이에서 또 다른 종이가 계속 복제되었다.

 만들어진 종이가 수북히 쌓이자 남자는 로윈에게 턱짓을 했다. 그러자 종이뭉치들이 살아있는 것마냥 로윈 쪽으로 날라가 그의 두 팔 위에 안착했다.

 

 "?"

 "얼른 따라와. 시험 시간이 늦었으니."

 

 제말만 하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남자 때문에 로윈은 얼떨결에 그를 따라갔다. 슬쩍 시선을 돌리니 좀도둑은 그 사이에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로윈이 도착한 곳은 원뿔 모양의 큰 강의실이었다. 제일 바닥에 무대가 있었고 그 주변을 책상들이 점점 높아지며 빙 둘러싸고 있는 구조였다. 강의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책상에 앉아 방금 들어온 남자와 로윈을 주시하고 있었다.

 무대 제일 중앙에 있는 책상에 당도한 남자는 멀뚱멀뚱 서 있는 로윈을 보고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뭐하나, 안 나눠주고?"

 "예? 예"

 

 어슬렁, 어슬렁 종이를 나누어주던 로윈은 종이 위쪽에 고대룬어학부 입학 시험지라 적혀있는 것을 보고 쓰게 웃었다. 어찌되었든 원하는 목적지에는 도착을 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할지 애매했다. 책상에 앉아있던 학생들은 조그만한 로윈이 종이를 나눠주는 모습에 키득키득 웃으며 신기해했다.

 개중에는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으려 드는 여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로윈은 그런 관심을 칼같이 잘라냈다. 어차피 그가 누구인지 알면 비웃음치며 손가락질할 것이 뻔한 이들이었다. 이제 남아 있는 맨 뒷줄에 가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라라?"

 

 로윈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좀도둑은 로윈이 자신쪽으로 오자 슬며시 시선을 피했다.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최대한 숨긴다는 것 같았지만 유독 튀는 그 복장은 어쩔 방도가 없었다. 로윈은 남자에게 시험지를 나눠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좀도둑."

 

 그 말에 남자는 움찔하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아니라니까, 그리고 좀도둑이 아니라 나한테도 가넷이라는 이름이 있단 말이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떳떳하다는 말입니까, 좀도둑 가넷 씨?"

 "으으."

 

 그래서 어쩌라는 식으로 묻자 가넷은 스리슬쩍 몸을 움츠렸다. 로윈은 더 쏘아붙일까 생각하다 이내 몸을 돌렸다.

 

 다 나누어주고 나서 한 장 남은 시험지를 들고 장발의 남자에게 가자 남자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한 장이 남는다고? 분명 오늘 지원하는 학생 수까지 정확히 맞춰왔는데."

 

 눈으로 학생들을 빠르게 흩던 남자는 돌연 인상을 찌푸렸다.

 

 "지원자...젠장, 낯선 얼굴이 안 보이는구만. 너, 얼른 내려가서 고대룬어학부 지원자를 데려와. 어디서 멍청하게 길이나 헤매는 모양이군."

 

 정확한 추측이십니다. 그리고 멍청해서 정말 죄송합니다만 이 건물이 더럽게 넓은 데다가 미로처럼 꼬여서 어디가 어딘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하고 속으로만 대답한 로윈이 작게 손을 흔들었다.

 

 "제가 그 지원자인거 같습니다만?"

 "네가?"

 

 묘한 시선으로 로윈을 보던 남자는 허허 하고 가볍게 웃었다.

 

 "왜 말하지 않았나? 나는 부탁했던 심부름꾼인지 알았네."

 "말할 틈도 안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로윈이 딱 잘라 말하자 남자는 헛기침을 두어번 했다.

 

 "...그래, 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그럼 얼른 가서 자네도 시험을 보게. 그 시험지가 입학 시험일세."

 "이것 말입니까?"

 "그래, 내 책을 읽어봤으면 답은 쉽게 나올 테니까 걱정 말게."

 

 그래서 당신이 누구신가요. 라고 물으려던 로윈은 고개를 끄덕이며 빈 책상에 앉았다..

 

 룬이란 마법 연성과 마법진을 그리기 위해 쓰이는 문양들이었고 마법을 발현 시키는데 있어서도 기본이 되는 표식이다. 그 중에서도 고대 룬어는 로라시아 대륙이 과거에 '판계아' 라는 하나의 커다란 초대륙이었을 무렵, 그 당시에 샤먼(주술사) 들이 만든 글자로 알려져 있다.

 고대룬어는 현재에 사용되고 있는 룬어들의 가장 핵심이기 때문에 마법사라면 반드시 이해해 두어야 할 필수사항이었다. 그러나 문제라고 한다면,

 

 '대체 어디에 써먹는 글자들인거야.'

 

 룬이라는 것 자체가 마법사들이나 마법 물품 수공업자 등 특정 직업군들 외에는 접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힘든 언어라 로윈은 그것을 알리가 전무했다. 그래도 예의상 시험지를 눈으로 흩어보았지만 어찌 된게 아는 글자라고는 '이름' 이 전부였다.

 

 "글러먹었어."

 

 이래서야 운이고 뭐고 따질 수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시험지를 다시 뒤져 봤지만 '출제자 - 스완' 이란 글자 외에는 성과가 없었다.

 

 "하아아."

 

 깊은 한숨을 쉬며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로윈은 마지막 문제를 눈으로 보던 도중 갑자기 머릿속에 찌릿한 통증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핑 돌아가는 느낌과 메스꺼움이 확 몰려왔다. 대련할 때 너무 과하게 움직여서 그런지 온몸에서 힘이 쫙 빠지는 느낌이었다.

 

 "어...어..."

 

 어째서? 를 끊임없이 되뇌어도 말이 나오지 않고 공기 빠지는 소리만 났다. 시야가 점점 좁아지려 하자 억지로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차에 그가 보고 있던 시험지에서 마치 글자들이 살아있는 것마냥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아까 전에 좀도둑이 보여주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눈높이까지 올라온 글자들은 황금빛을 내며 제각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윈은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모두들 자신의 시험지에만 집중하고 있는 중이었다.

 누구든 도와줘. 아무도 이 글자들이 보이지 않는 거야? 어째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바쁘게 움직이던 글자들이 차례로 배열되더니 잠시 뒤에는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되었다. 눈도 슬슬 풀리기 시작해 억지로 힘을 주려했으나 헛수고였다. 그저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행동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였다.

 

 [오랜만이네, 이 글을 보게 되었다는 건 이제 시작이란 의미겠지?]

 

 "이봐, 일어나."

 

 얼마 안 되어 들려온 목소리에 눈을 번쩍 뜬 로윈은 눈이 아파 크게 깜빡거렸다. 손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나서야 멀쩡하다는 걸 안 로윈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생생하게 다가오던 감각들이 모두가 꿈?

 아니, 꿈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이여서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주변이 소란스럽게 그제서야 고개를 든 로윈은 시험이 끝나버렸는지 빈 강의실에 앉아 있는 사람은 오직 그 하나뿐이었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아까의 가넷이 서있었다.

 

 "시험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푹 자다니 니도 참 대단한 깡이다. 시험치는 애들이 얼마나 널 쳐다봤는지 아나?"

 "알 바입니까?"

 

 로윈은 나오는 하품을 입으로 막으면서 나갈 채비를 했다. 계단을 뚜벅뚜벅 걸어내려가는데 가넷이 싱글벙글 웃으며 옆에 따라 붙었다.

 

 "저기 꼬마야?"

 "꼬마 아닙니다."

 "에이, 니 정도면 꼬마지."

 

 가넷은 로윈의 말에 피식 웃었다. 눈 앞에 있는 아이는 어른인 척 하고 싶어하는 아이인 것 같았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짓은 그만두기를 바랍니다, 좀도둑 씨."

 "말하는 꼬라지만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아니 그것보다 나는 좀도둑이 아니라니까카네?"

 "그러니까 저도 꼬마가 아닙니다."

 "...그래, 뭐 넘어가기로 하고 혹시 먹고 싶은 거 있나? 이 형이 특별히 사주도록 하지."

 

 앞서 걸어가고 있던 로윈은 눈동자만 힐끈 돌려 가넷을 흩어보았다. 별로 친하지도 않으면서 친근하게 접근하는 사람은 두 종류였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라 겉모습만 보고 호감을 가지거나 혹은 뒷통수를 치기 위해서. 이 가넷이라는 사람은 어떤 부류인 걸까? 전자? 후자?

 로윈은 고개를 휘이 저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지금은 너무 날이 서있었다.

 

 "괜찮습니다."

 "에헤이, 사준다고 할 때 받지? 이런 기회 흔하지 않다는 말이지?"

 "싫습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로윈은 한 발 먼저 앞서가 강의실을 쏙 빠져나왔다.

 

 ***

 학생들의 시험이 다 끝나고 나서 마법학부의 교수이자 동시에 고대룬어학부의 교수를 맡고 있는 스완은 안락 의자에 몸을 젖히며 쉬고 있었다. 잠시 후에 조수인 피콕이 채점한 시험지를 들고 들어오자 스완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고 책상 위에 놓인 안경을 썼다.

 

 "다 매긴건가?"

 "네, 총 80명이었는데 맞나요?"

 "그래, 수고했다."

 

 피콕이 종이 뭉텅이를 책상에 올려주자 스완은 위에서부터 한 장씩 꺼내 검토하기 시작했다.

 

 "음, 괜찮긴 한데 마법연성식은 영 꽝이군. 불합격. 호오, 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발췌했군. 기특하니까 합격을 줄까?"

 "그거 공정성 위반인데요, 교수님."

 

 고대룬어학부는 정기적으로 치는 시험 때마다 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그대로 유지시키거나 잘못되면 잘려나가는 걸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네임 벨류가 높아서 그의 수업은 항상 인원이 꽉 차있었다. 그 이유는 스완에게 있었다.

 스완은 버밋 아카데미의 교수로 남아 있지만 그의 마법 실력만 따진다면 왕국의 수석마법사 정도는 충분히 꿰찰 수 있는 정도였다. 어째서 그런 높은 자리를 거절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그는 귀찮아서 라는 입장을 일관했다.

 

 그 일화만 들어서는 스완이 굉장히 불성실한 교수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스완은 가르치는 일에 유독 재능이 있었는지 그의 수업을 듣고 난 학생들의 마법 실력은 듣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비약적으로 높아서 '마법사 제조기' 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대충 시험지를 검토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 합격여부를 가리는 중이었다.

 

 시험지를 반 정도 넘기자 스완은 한 시험지에서 손이 멈추었다.

 가넷. 성도 없이 간단한 이름으로 된 시험지에는 빼곡하게 글씨가 적혀 있었고 문제 위에 모두 동그라미 표가 있었다. 거기다 정답들을 보자 스완이 미리 적었던 풀이와 거의 유사했다. 스완이 그 시험지를 따로 빼내어 한 쪽에 두자 피콕이 그것을 쓱 쳐다봤다.

 

 "이번에도 가넷이 장학생인가요?"

 "뭐, 성적만 따지자면 그렇지."

 "...사실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를 처벌하실 생각은 없으신 건가요? 비록 답이 없다고는 하지만 시험지를 미리 보는 건 부정행위잖아요."

 "이해해주게. 이곳에 다는 귀족들과 가넷의 사정은 다르네. 높은 놈들에게 장학금은 그저 집안의 자랑이지만 가넷에겐 그건 생명줄일세. 그리고 먼저 본다고 한들 실력이 없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어."

 "그건 맞는 것 같아요."

 

 피콕은 제일 밑에 있던 시험지를 꺼내 보였다. 스완은 의아한 얼굴로 그것을 쳐다보았다.

 

 "그건 누구 시험지인가?"

 "교수님이랑 같이 왔던 아이 꺼요."

 "아아, 그 얼빵한 금발 말인가?"

 

 스완은 다시 생각해도 코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해 시종 노릇을 한 학생이라니.

 

 "그 시험지 이리 줘보게."

 

 시험지를 건내받은 스완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적혀 있는 글자가 없었다. 대체 뭐하는 놈인가 싶은 마음에 스완은 로윈의 프로필을 꺼냈다. 그리고는 크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왜 그러세요, 교수님?"

 "흐흐, 자네가 직접 보게나."

 

 스완은 피콕에게 프로필을 건냈다. 원래 프로필이란 것은 교수 외에는 보면 안되는 개인적인 사항이었으나 스완은 피콕을 믿고 있었다. 로윈에 대한 프로필을 읽은 피콕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우와, 오리헨의 왕자였네요. 그 얼굴에 16살이고, 맙소사, 검술학부 지원?"

 "내 살면서 검술학부생이 내 수업을 같이 들으려 한 적은 처음이군, 그래."

 

 키득키득대며 시험지를 흩어보던 스완은 마지막 문제에 이르러서 얼굴이 굳어졌다. 그 마지막 문제는 스완이 모든 시험 때마다 냈지만 지금까지 맞춘 사람이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말이었다.

 

 "피콕."

 "네, 교수님."

 "이 녀석 합격시켜. 아니 그냥 조수직에 같이 넣어버리는 것도 좋겠군."

 "예에?"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는 얼굴로 피콕이 되물었으나 스완은 황급히 코트를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피콕은 책상에 올려진 로윈의 시험지를 내려보았지만 그곳에는 한 문장만이 적혀 있었다.

 

 [지금은 연극을 시작할 때]

 

 ***

 촛불을 하나도 키지 않아 사방이 깜깜한 방이었다. 바깥의 소리라고는 바람부는 소리가 전부인 그곳에서는 적막이 낮게 깔려 있었다. 언제까지나 어두울 것 같아 보였던 그 방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푸른 빛이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통신을 목적으로 사용되는 마법구였다. 마법구에서 새어나온 빛이 어둠을 조금 삼키자 방 내부의 환경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듯한 가구들과 작은 침대, 그리고 커튼이 쳐져 있는 창문을 가진 평범한 침실이었다. 겨울이 거의 지나갔음에도 두터운 이불이 순간 꿈틀거렸다. 이불이 한가운데에서부터 점점 올라오더니 옆으로 툭 떨어졌다.

 오랜 시간동안 자고 있었는지 헝글어진 머리와 몽롱한 얼굴의 소녀가 피곤한 모습으로 일어났다. 레이스가 치렁이는 유치한 잠옷을 입고 있었지만 앳되어 보이는 얼굴에 잘 매치되었고 특이하게도 소녀는 색염료를 섞어도 나올것 같지 않은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표정만 제대로 짓는다면 귀여워 보일 얼굴이었지만 어제 하루종일 일해서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기 때문에 소녀는 별 의미없는 내용이라면 메시지를 보낸 당사자를 족치겠다고 생각했다.

 

 슬리퍼도 없는 맨발로 마법구 쪽으로 간 소녀는 눈을 비추는 푸른 빛 때문에 눈을 반쯤 감으면서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가 마법구에 손을 올리자 마법구가 부르르 떨리더니 곧이어 허공에 글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한 그녀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흐음하고 짧게 소리를 내뱉은 소녀가 이내 생각을 정리하고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휘저었다.

 

 그러자 허공에 분홍색 글씨의 마법문자들이 생겨 곧바로 마법구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방 밖은 안과 다르게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작은 계단을 밟고 내려가자 작지만 아기자기한 거실이 나왔다.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던 소녀는 방에서 나온 소녀를 보자 책에서 시선을 떼고 웃어보였다.

 

 "잘 잤어, 테미아?"

 "그럴려고 했지만서도... 내가 자는 사이에 손님이라도 왔었어?"

 "아니, 전~혀."

 

 요즈음 들어 꽤 한적한 사무소 소식이 반가우면서도 씁쓸했다. 테미아는 힘없는 걸음걸이로 소파에 가서 엎어져 누웠다.

 

 "피휴우우우~ 이제 한동안 바쁘겠네."

 "어디 출장이라도 갔다 오는 거야?"

 

 테미아의 졸렸던 눈이 거짓말처럼 반짝였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테미아는 눈 앞의 소녀를 손가락질했다.

 

 "너가 말이야."

 "...!!...그, 그렇구나."

 

 테미아의 말에 잠잠하던 소녀의 눈이 놀란 듯이 커졌다가 되돌아왔다. 곧이어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시선을 책으로 돌렸다. 그러나 테미아는 꺄르르 웃으며 소파를 팡팡 두드렸다.

 

 "꺄하하, 루비. 눈이 책을 보고 있지 않잖아. 뭘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는 거야?"

 

 테미아가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하자 루비라고 불린 소녀는 그대로 얼굴을 책에 묻어버렸다. 그녀의 마음을 그대로 들켜버리자 부끄러워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곧바로 그녀의 귀는 새빨개져 가기 시작했다. 테미아가 너무 웃어 눈물까지 나려고 하자 루비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흘겨보았다.

 

 "그... 그만 웃어, 테미아."

 "아하하, 하지만 말야. 루비가 그런 얼굴하는 건 진구경인걸."

 

 테미아는 평소 루비가 보여주는 모습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직업 특성상 어쩔 때는 웃어주기도 하고 어쩔 때는 냉철하게 상황판단을 내려야 하지만 저렇게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건 그녀를 알게 지낸 이후로 보기 힘든 희귀한 일이었다.

 한동안 테미아의 웃음을 멈추기 힘들다고 판단한 루비는 휴우하고 짧게 한숨을 쉬었다.

 

 테미아의 말대로 책에서 거리를 두어 최대한 읽는 자세로 바꾸어봤지만 앞을 보고 있어도 앞에 있는 글자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진귀한 경험을 체험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 나는 건지 그녀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다행이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만큼 작은 목소리에는 안도감이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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