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다, 쫓기다 Reboot
Believer
Imagine Dragon
눈 앞이 새하얘졌다는 건 내 기분이 그렇다는 묘사가 아니었다.
문자 그대로 내 시야가 새하얘진 건, 우리를 쫓아오던 그 차와 부딪힌 우리의 차에서 에어백이 터졌기 때문이었다. 사고가 났을 때처럼 완벽하게 터진 게 아니라 말랑한 풍선이 바람이 빠지듯이 내 앞에 맥없이 터진 에어백 때문에 답답해진 내가 손으로 에어백을 걷어냈다.
우리를 쫓아오던 그 차는, 앞 유리창이 박살 나긴 했지만, 그 부서진 사이로 흰색의 풍선으로 앞 좌석이 가득차 있었다. 허우적대는 여러 개의 손들이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에어백이 터지자마자 백은섭은 이 때를 노렸다는 듯이 가까워진 거리에서 정확하게 2발의 총알로 그 차의 앞 바퀴를 망가지게 한 다음, 핸들을 완전히 꺾어 다시 차를 정 방향으로 돌린 다음, 엑셀을 강하게 밟았다.
"하나를 쫓고 있는 건 어느 쪽이야?!"
"알려진 정부기관은 아니야, 전부 확인했어."
"그럼 테레문이야?"
"아마도."
"아마도라니?!"
"테레문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수법으로 볼 때는 용병조직이야."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를 도울 수 있겠어?!!"
"네이트."
"왜?!"
흥분한 듯한 네이트에게 걸어 간 에릭이 네이트의 양 어깨를 강하게 쥐고 살짝 허리를 숙여 네이트와 시선을 맞춘 다음
"당신이 지금 얼마나 걱정스러운지도 알겠고, 또 그런 게 당연하겠지만 지금은 네가 누구보다도 평정을 유지해야 해."
"에릭."
"당신이 우리의 리더잖아. 당신이 아니라면 하나를 제대로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없어."
"....."
에릭의 말을 이해한 네이트가 깊게 숨을 들이 쉰 다음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고 에셀레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네이트?"
전화가 끊어진 것은 아닌지 우리가 타고 있는 차가 속도를 내서 따라오던 차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리가 벌어지고 나서, 조용해진 차 안으로 네이트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까의 난리통에 떨어뜨린 건지 핸드폰이 눈에 띄지 않았고 나는 이리저리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두리번거렸다.
핸드폰은 뒷좌석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아까 급하게 조수석으로 건네오면서 손에 들고 있던 걸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괜찮아?"
"...네...네... 괜찮아요. 백은,백은섭이 잘 따돌렸어요."
이를 악물고 있었던 탓인지 입이 얼어버린 것처럼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핸드폰을 들지 않은 손으로 굳어버린 얼굴을 손바닥으로 이리저리 문질렀다. 몇 분도 되지 않는 동안 벌어진 일들이 현실감이 없어서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흐릿했다.
"일단 이스탄불에서 벗어나서 다른 도시로"
"안돼요!"
"하나."
"로드리고가 이스탄불로 온다고 했어요. 분명히 디온을 데리고 있을 거에요."
"하나, 고집부리지 마."
"고집이 아니에요. 지금의 디온은 자신이 일하고 있는 기관도 믿을 수 없어요. 지금 디온이 기댈 수 있는 건 나뿐이에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요."
"지금의 네가 얼마나 위험한"
"봤어요."
봤다는 그 말과 함께 내 눈은 금새 눈물로 가득 찼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인자한 미소를 띠며 우리를 이곳에 데려다 준 사람의 어떻게 바닥에 쓰러졌는지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그 잔인한 장면을 다시 되새긴 내가 울먹이는 목소리를 최대한 누르며
"...우리...여기다 데려다 준 그 분이 어떻게 살해됐는지 다 봤어요."
"......"
"근데 그게 디온이 되면 어떡해요?"
"....."
내 말에 네이트도 나도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침묵을 이어갔다. 차가 움직이는 엔진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던 적막을 깬 것은 에릭이었다.
"하나."
"에릭?"
"네 말대로 너는 훈련 받은 요원도 아니고 그런 위험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피할 수 있는 지 알고 있는 사람도 아니야. 지금 당장 내가 달려 가고 싶지만 그렇게 했다간 그렇게 했다간 너의 위치를 노출 시키는 것 밖에 되지 않아."
"..."
"너를 믿고 맡긴다고 했지만, 이렇게까지 위험해질 건 계산하지 못한 내 잘못이야."
"....."
"돌아와. 일단은 돌아와서."
"안가요. 아뇨 못 가요. 걱정해주시는 건 고맙지만 지금 여기서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어요."
"하나!"
"끊을게요."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무음으로 돌렸다. 스크린은 미친 듯이 전화와 메세지가 쏟아지고 있다고 알려줬지만, 난 그대로 가방에 핸드폰을 넣어버렸다.
꽤 먼 거리를 달리고 나서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이었다. 사막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아무것도 없는 곳에 도착하자 그나마 마음이 놓였는지 다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흑....흡...."
참으려고 해도 단전에서 뭔가가 밀려 올라오는 것처럼 참을 수 없이 울음이 솟구쳤다.
옆에서 운전을 하던 백은섭이 걱정스럽게 나를 돌아봤다.
"괜찮니?"
"....흡....흑....흑....흐...흡..."
양 손을 다 써서 입을 막았지만, 소리가 새어나가는 것은 멈출 수가 없었다. 잠시 나를 돌아본 백은섭이 차를 세웠다. 백은섭이 차를 세우자마자 문을 열고 뛰쳐나간 나는 허리를 숙이고 속을 게워냈다.
"야야!!"
깜짝 놀란 백은섭이 운전석 문도 열지 않고 열린 조수석 문으로 뛰어내려 내 등을 두드려주었다.
"너 진짜 괜찮은 거니?"
나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속을 게워냈다. 위장에 있는 걸 모두 게워냈는지 쓴 위액이 입 안에 느껴질 정도로 계속해서 토하던 내가 기운이 떨어졌는지 옆으로 쓰러질 듯 비틀댔고, 백은섭이 그런 내가 쓰러지지 않도록 양 어깨를 움켜쥐었다.
"정신 차려봐라! 왜 이러니?! 야!야!!!"
그리고 그게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젠장!!!"
"...."
저런 반응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격렬한 반응에 에릭과 네이트도 적잖이 놀랐다.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의 통화버튼을 눌러봤지만, 받지 않기로 작정한 건지 연결이 되지 않는 통화에 에릭은 거칠게 핸드폰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이제 어쩌지?"
에릭의 말에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노려보는 네이트의 머리 속도 어찌 할 바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에릭의 말대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지금 상황에서 하나를 어떻게 빼내야 하는 건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좀 전 까지 토악질을 해대던 하나는 몸이 축 늘어진 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몸을 돌려 늘어진 하나는 정신을 잃은 건지 눈을 감은 채로 반쯤 앉은 채로 백은섭의 몸에 안긴 채로 늘어져있었다.
"야!야! 유하나!"
깜짝 놀란 백은섭이 한 팔로 하나를 안은 채 다른 한 손으로 뺨을 때려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깜짝 놀란 백은섭이 검지와 중지로 하나의 턱 아래쪽의 맥을 확인했다. 그냥 기절한 건지 다행히 손끝으로 뛰고 있는 혈관이 느껴졌다.
"...에미나이 성질머리하고는."
늘어져있는 하나의 등과 무릎 아래를 양 팔로 바친 백은섭이 하나를 그대로 들어올렸다. 물 먹인 인형처럼 백은섭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등과 무릎을 제외한 모든 부위가 추욱 하고 늘어졌다. 몸을 한 번 추슬러 꺾어져 있는 하나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한 백은섭이 자신의 품에 안긴 하나를 내려다보았다. 번져있는 눈물자국과 땀에 범벅이 되어 엉켜있는 머리카락이 감싸고 있는 하나의 측은한 몰골에 마음이 쓰렸다.
뒷좌석 문을 열고 하나를 잘 눕혀준 백은섭은 차를 뒤져 꺼낸 휴지를 물에 적셔 혹시라도 입 안에 토사물이 남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휴지로 닦아내고 입가와 눈가도 한 번씩 닦아 내주고 뒷좌석의 문을 닫았다.
잠시 차에 기대 뭔가를 생각하던 백은섭이 뒷좌석 창문으로 비치는 하나의 얼굴을 다시 한 번 확인한 다음 결심한 듯 버튼을 눌렀다.
"백은섭."
"인터폴 양반."
생각지도 못했던 백은섭의 연락에 모니터 뒤에 함께 뭔가를 확인하던 에릭도 움직임을 멈추고 네이트를 돌아봤다. 스피커로 돌린 네이트가
"하나는?"
"혼절했소."
"괜찮은 거야?!"
"아까 그 기사가 변괴당한 거 보고 놀란 모양이오. 어디 상한 데는 없소."
"다행이군."
"솔직히 묻겠소."
"뭘?"
"그 디온이라는 인터폴 아직 살아있소?"
"....."
"살아있냔 말이요."
"살아있어."
"참말이오?"
"일개 요원이긴 하지만 인터폴이야.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내 사람이고. 그게 어떤 가치를 가지는 지는 디온을 데려간 쪽이 더 잘 알 테지."
"그 요원이 죽었다면, 저 녀석이 나를 어떻게 원망하던 간에 상관없이 당신한테 데려가려 했소."
"...."
"내 마음 같아서는 그 요원이 죽든 살든 상관없이 그냥 당신한테 데려다 주고 싶지만."
"싶지만?"
네이트의 반문에 크게 숨을 크게 내쉰 백은섭이
"내가 목숨 걸고 지키겠소.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얘는 살려보낼테니 도와주시오."
디온이 정신을 차린 곳은 요트 안 쪽의 방이었다. 의자에 묶인 채로 힘겹게 눈을 뜨자, 자신의 앞에는 군복처럼 보이는 차림의 한 여자가 디온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색 민 소매에 카멜색 바지를 입은 2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앳딘 얼굴
한 눈에 그 날 크루즈에서 하나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던 그 여자임을 알아 본 디온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정신이 드나 봐, 아카드 요원?"
"....팔레스타인인가?"
디온의 말에 피식 하고 웃은 여자가
"왜? 외모가 중동인이라서? 근데 악질 무기상에게 협조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팔레스타인인이라고 생각했나?"
"아니, 전에 하마스하고 같이 협조했던 적이 있어서 액센트를 알고 있을 뿐이야."
몸에 뭔가를 주사했던 건지 몸이 무겁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디온의 고개가 힘없이 뒤로 꺽인 채로
"뭘 주사 한 거지?"
"콜롬비아산 악마의 숨결."
"...스코플라민인가? 나한테 알아내고 싶은 게 뭐 얼마나 대단한 거길래 자백제까지 필요한 거지?"
"그건 네가 알 필요가 없지."
"....그래 알려줄 리도 없지."
더 이상은 잡아둘 수 없는 눈꺼풀을 그대로 감아버린 디온은 밀려오는 잠에 자신을 내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