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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활력고교
작가 : 리리박스
작품등록일 : 2017.12.13

특별할 것 없는 대한민국 고등학교 2학년 해인. 성적경쟁에 지친 주인공의 정신상태와 처절한 말로를 볼 수 있는 일기형식의 창작소설입니다.

 
03. 2학년 마침
작성일 : 17-12-13 21:28     조회 : 256     추천 : 0     분량 : 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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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0일(일)

 

 1. 손톱을 깎으러 베란다에 나갔는데 공기가 참 맑았다. 뇌 속에 새 공기가 들어온 기분이다.

 

 2. 금요일에 학원을 갔는데 유현이가 영어 문제집을 샀다고 자랑했다. 방학시작하고 얼마나 지났는데 지금에서야 시작한다고? 문제집도 어려운 거던데. 집에서 공부하긴 하는구나.

 

 다른 애들이 독서실에 간다, 무슨 계획을 세웠다. 이런 말이 귀에 들리면 초조해진다.

 

  분명 전교에서 나보다 잘하는 애들보다 못하는 애들이 훨씬 더 많은데 왜 이렇게 자괴감에 빠져 사는건지 모르겠다.

 

  언제는 또 자신감 넘치고, 언제는 한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에 나도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그냥 모순인건가.

 

 

 1월 14일(목)

 

 세상은 시궁창 같다.

 내 말을 듣지 않는 동생.

 꿈도 없고 욕심도 없는 춤추는 사람이 우리 아빠.

 엄격하고 고지식한데다 욕심까지 많은 사람이 우리 엄마.

 

 지원이는 엄마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프랑스로 여행을 갔다고 했다. 독일이였나.

 부러웠다.

 여행이 부러운 게 아니고 돈이 많은게, 잘 사는게.

 

 지원이네 아버지는 대학병원의 의사이고, 어머니는 변호사이다.

 

 둘 다 지금도 돈을 많이 벌 테고 퇴직해도 걱정이 없는 삶일테지. 진심으로 부럽다.

 나도 돈 많은 금수저 잡고 태어났었으면 좋았을 걸.

 

 세상은 시궁창이고 나는 그 시궁창에 사는 시궁쥐다. 어떻게든 빛을 보려고, 벽을 기어오르면서도 다시 절망하고 체념하면서 어두운 굴 속으로 들어가는 시궁쥐.

 

 이 모든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나에겐 소원이 있다.

 

 피부가 좋아지길.

 

 책이 많이 생기길.

 

 공부를 잘하길.

 

 돈 많은 집에 살길.

 

 딱히 못 산다고 생각을 많이 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 엄마아빠가 싸우면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내가 어떻게 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늦둥이 동생은 알아서 하는 게 아무것도 없지. 말썽만 부리지. 하지만 동생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랑 아빠는 진작에 이혼했을지도 모른다.

 

  이젠 이혼을 말릴 생각보다 차라리 이혼해서 돈 많은 사람이 우리 엄마나 아빠랑 결혼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내가 장녀니까 아빠가 더 이상 일을 못하고 엄마도 그렇게 되면 내가 부양해야 할텐데. 그렇다고 동생한테 뭘 기대하리.

 

 엄마아빠가 돌아가시면 나랑 쟤만 남게 된다. 이게 무슨 지상 지옥?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다 내 잘못인걸까?

 

 어디 좋은 줄이나 얻어서 좋은 데에 취직하고 싶다. 그렇게 좋게, 좋게 순탄한 인생을 살고싶다. 돈 잘 벌고, 쉴 때 잘 쉬고, 자유롭게. 정 안되면 그냥 어디 절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아, 죄 많은 인생길.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깨면 아무것도 아닐 꿈.

 

 나도 아무것도 아니면 좋겠다.

 

 다음 생엔 먼지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1월 26일(화)

 

 1. 폭풍같았던 2주간의 한파가 끝나고 다시 햇살이 찾아왔다. 추우면 아예 나가지 않아서 날씨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햇볕은 따뜻한 것 같다.

 

 2. 9시 30분 쯤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딴짓만 했다. 침대 머리맡에 '자고 일어나면 공부, 공부 다 했으면 자기'라고 써 붙였는데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근데 나만 이러고 있는 건 아니겠지? 딴 애들도 독서실 다니고 하던데 왜 나는 이렇게 놀고 있는건지......

 

  애들이 뭐하는지 CCTV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1월 27일(금)

 

 1. 어제 학교에가서 일을 하고 왔다. 장장 7시간에 걸친 노동이었다. 나, 소미, 예지, 유정이 이렇게 넷이 모였다. 내가 갔을 때 예지와 유정이는 미리 교무실에 와 있었다. 사실 유정이는 오는 줄 몰랐는데 있었다. 유정이는 얼마 전에 중국에 다녀왔다고 하면서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다.

 

 상하이의 성들은 정말 예쁘고 멋졌다. 꼭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올 것 같이 생겼다. 야경도 정말 예뻤다고 유정이는 덧붙였다. 가족이랑 간 거냐 물으니 유정이는 친구와 둘이 갔다고 했다.

 

  호텔룸도 보여줬는데 되게 비싸보였다. 유정이네 집은 돈이 많나 보다.

 

 2. 내일모레면 개학이다. 다시 학교의 노예. 하지만 괜찮다. 올해 나는 죽은 사람이여야 하니까. 늦게 일어나지 못하는게 아쉽지만 난 많이 피곤해야 하니까. 계속 피곤했으면 좋겠다. 그럼 피곤한대신 죄책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2월 4일(목)

 

 졸업식. 3학년들의 머리는 절반이 갈색이었다. 다른 반은 파마였다.

 다 끝나버려서 좋겠다.

 

 

 

 2월 5일(금)

 

 반편성이 드디어 나왔다. 첫 머리부터 욕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같은 반이 되지 않았다는 건 눈치챘겠지?

 

  나는 3학년 10반이 되었다. 선혜는 11반. 아슬아슬 했다.

 

  반 편성이 되었으니 걔가 물으러 올게 불 보듯 뻔했다. 긴장한 마음을 추스르고 책상에 엎드려 오지도 않는 잠을 청했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끔찍한 것을 경험해야만 했다.

 

 귓가에 들려오는 내 이름 석자. 모른 척 하고 계속 고른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5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살짝 고개를 들어 선혜가 간 것을 확인했다.

 

 

 

 2월 15일(월)

 

 처음 보는 국어 선생님이 들어오셨는데 문학을 담당하신다고 그랬다.

  그리고 첫 시간이라 오리엔테이션을 해 주셨는데 입시 관련해서 좋은 얘기를 정말 많이 들려주셨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하는 법도 가르쳐 주셨다. 좋은 분 같다.

 

 영어선생님도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셨다. 거의가 다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난 언니들의 얘기였지만 그건 우리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라는 뜻이 담긴거라고 생각한다. 말씀을 정말 잘 하셔서 그 말에 온 정신이 푹 빠져있었다.

 

 

 2월 16일(화)

 

 너무 졸리다. 미친듯이 졸리다. 미친 것 같다.

 

 

 2월 20(토)

 

 1. 미세먼지 농도가 굉장해서 하늘이 뿌옇다.

 

 2. 어제는 자기소개서만 쓰고 오늘은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공부 안하는게 너무 재밌다.

 

 3. 3학년 때가 제일 재밌다더니 맞는 말이다.

 

 4. 오늘은 쉬는 토요일이고 다음주 토요일은 마지막 토요일이다. 그 후의 쉬는 토요일은 수능이 끝나고 돌아온다.

 토요일이여, 안녕.

 

 5. 오늘은 낮잠도 잤다.

 

 

 2월 26일(월)

 

 오늘은 선혜의 생일이여서 전에 미리 사두었던 팔찌를 선물했다. 그리고 축하문자도 예약문자로 자정에 맞추어 보냈다. 귀찮지만 챙겨주지 않으면 삐지니까 어쩔 수 없다. 매년 내 생일, 새해 첫날 등등 읽기도 싫은 긴 문자들을 자꾸 보내는 선혜가 신기할 뿐이다. 생일이든 뭐든 아무 의미 없잖아? 그냥 일 년중 하루일 뿐이라고.

 

 

 2월 27일(토)

 

 전화를 길게 하는 엄마가 끔찍이도 싫다.

 

 난 요즘 기분이 꽝이다. 공부도 못하고 자기소개서만 오늘까지 나흘째 쓰고있다. 게다가 엄마한테는 쓴 소리까지 들었다.

 

 나보고 '무슨생각'이냐고 물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다 놓아버리고 싶다.

 

 그냥 내가 죽었으면.

 

 진짜 죽어라, 나.

 멍청이.

 

 2월 28일(일)

 

 밀가루를 먹었다. 샌드위치였다. 호밀식빵을 깔고, 계란 푼 것 조금. 아일랜드 드레싱과 양배추, 오이, 햄을 버무려서 만든 샌드위치는 굉장히 맛있었다. 오렌지 주스도 반 잔 마셨다. 거의 일주일 만에 먹는 밀가루 음식이었다.

 

 -

 

 내가 밀가루를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가 있다. 어느 때는 마구 먹기도 하지만 먹지 않을 때에는 전혀 입에 대지 않는다.

 이게 다 아토피 때문이다. 집에서야 내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 아니까 한번 쯤은 먹어도 된다고 하지만 밖에서는 다르다. 다른 사람들의 눈이 무섭다. 밖에 나가면 다 내 얼굴만 쳐다보는 것 같다. 칙칙하고 안 좋은 피부, 뻣뻣한 머릿결.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집에서는 먼지가 덜 하니까 얼굴이 훨씬 진정 되지만 밖, 특히 학교!학교에서의 상태는 끔찍하다.

 

 산 송장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누가 내 얼굴을 만지는 것도 싫고 가까이 오는 것도 싫다.

 

  정면으로 바라보지도 못하겠다. 내 얼굴이 얼마나 심각한지 눈에 훤히 보이겠지.

 

  그래서 학교가 너무 싫다. 거기에 있으면 백 배, 천 배 못생겨 보이는 것 같다. 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특히 등 위쪽이 참혹하다. 다른 애들을 보면 피부도 좋고 머릿결도 윤기있고 혈색도 좋다.

 

  왜 나만 유독 뒤처지는지 모르겠다. 거리에 나가면 온통 그런 사람들 뿐이다. 예쁜 옷을 입고, 예쁜 화장을 하고, 예쁜 머리르 하고. 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너무 무섭다.

 피부가 좋아졌으면 좋겠다.

 

 피부가 좋아졌으면 좋겠다.

 

 

 3월 1일(화)

 

 열아홉의 하루하루가 간다.

 열아홉의 겨울이 간다.

 내년 이맘 때 나는 뭘 하고 있을까?

 

 이토록 미래가 궁금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12년의 학교생활에서 벗어나 하루 아침에 사회에 출석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설렌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의 더러운 교복을 벗으면 더 더러운 사회의 가면을 써야 한다. 앞으로가 두렵다. 암흑 속을 맨 몸으로 헤쳐나가는 기분이랄까. 나의 청춘이 간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곧은 평행선 처럼.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인데 아무것도 느낀 게 없는 것 같다. 20대가 되든, 30대가 되든 남는 것은 없다고.

 

 나이 먹는 게 진짜 싫다.

 

 

 3월 2일(수)

 

 집 도착.

 30분 후면 내일.

 거지 같다.

 그리고 눈이 아프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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