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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에디온
작가 : 염적
작품등록일 : 2017.11.7

과거 중간계를 휩쓸었던 원인모를 악마들의 습격이 일단락 된지도 어느새 20년, 전쟁을 종식시키는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세 명의 인간영웅 에디온 중 가장 강력한 자인 에르세데스 메데스의 아들인 에르세데스 이안은 평화속에서 평범한 삶을 살며 20살의 성인으로 거듭난다. 처음으로 맞는 방학에 떠난 첫번째 여행. 하지만 여행도중 대륙 곳곳에서 이상현상들이 발견되고, 이안과 일행의 앞에 다시 한 번 악마들의 위협이 모습을 드러낸다.

 
제 2장 : 전조 (7)
작성일 : 17-12-13 21:21     조회 : 241     추천 : 0     분량 : 1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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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하늘에 떠오른지도 벌써 하루가 넘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 하늘에 떠오를 때만 하더라도 심장이 뛰다 못해 튀어나올것만 같던 그 흥분감도 어느새 가라앉아 잔잔해져버렸다. 심지어는 잠이 올 정도니. 기쁨은 순간의 것이고 슬픔은 평생의 것이다. 시간이란 참 오묘하게 잔인한 존재다.

 밖을 보니 쨍쨍하게 빛나던 태양빛도 어느덧 지평선 너머로 고개를 숨기고 어둠이 찾아 온 지 오래였다. 사람들은 객실로 들어가 잠을 자고 있거나 여기 연회장마냥 생겨먹은 중앙홀의 의자에 앉아 쪽잠을 청하고 있었다. 나는 골아떨어진 일행을 뒤에 두고 혼자 나와 창문밖을 바라보며 짙은 쪽빛으로 빛나며 어둠을 가로지르는 구름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벨라의 선착장부터 발라테라스의 신스칼드까지 말을 타고는 꼬박 오일, 늦으면 일주일 가까이 걸릴 것이었다. 한데 이 배로는 하루하고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보니 굉장한 속도로 달리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이 안에서 창 밖을 내다봐서는 도저히 그 속도가 실감이 나지를 않는다. 선선히 지나가는 구름의 춤사위는 너무 여유롭다. 덕분에 난 골아떨어질 뻔한 위기를 거쳐야했다. 젠장, 정신 차려야지. 이렇게 첫 비행을 잠 따위를 자면서 보낼 수는 없다. 나는 가볍게 뺨을 치며 나를 부르는 꿈결의 속삭임을 무시하기 위해 애를 썼다.

 나는 고개를 조금 더 내빼어 지상을 내다보았다. 까마득한 높이라는 것이 실감이 날 정도로 오밀조밀하게 늘어서있는 평야와 산맥의 조화. 밤인 탓에 그 형형색색의 색채가 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괜스레 맘은 평안해져 온다.

 “아름다운 풍경이죠.”

 누군가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속삭였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음, 듣기만 해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느낌이로군. 나는 곧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조나단, 뭐하러 나왔어요?”

 눈에 두건을 두른 채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익숙해지지를 않는군.

 “따라서 나왔지요. 저도 비행선을 타는 건 처음이라서요.”

 “정말요?

 “그럼요, 사제는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조나단의 말을 믿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암, 당연하지.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조나단께서는 이 풍경이 보이시나요?”

 머리를 거치지 않고 질문이 툭 튀어나와 버렸다. 음?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한 거지? 스스로에게 되묻는 사이에 조나단은 또다시 그의 전매특허인 그 미소를 띄우며 내 질문에 대답했다.

 “당신이 보는 것과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라면 아니라고 대답해야겠군요.”

 “그렇다면 어떻게 앞을 볼 수 있는 건가요? 제가 여기 서있는 건 어떻게 알고, 저 밑의 풍경이 아름답다는 말도 어떻게 할 수 있는거죠?”

 뭐야? 뭔데 이렇게 갑자기 질문이 비오듯이 쏟아내는 건데?

 조나단은 잠시 입을 다문 채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했다. 내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동안 그는 생각을 마쳤다. 그리고 곧 그의 입이 열리고, 대답이 흘러나왔다.

 “글쎄요. 아름답다라. 당신이 여기 서있는 것은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제게는 심안이 있으니까요. 제 머리는 평범한 형체와 색채 대신 물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유의 진동, 그리고 열, 에너지를 포착합니다. 뭐랄까, 검은 배경에 물체들만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하지만 아름다운 것이라…… 저는 태어날 때 부터 맹인이었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말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군요.”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오래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한 번 미소를 걸친 입가를 보이며 그의 말을 끝마쳤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볼 수 있는것이 아니지요.”

 “아름다움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니요?”

 “이안은 왜 저 아래의 풍경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가요?”

 나는 당황했다. 한 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는 질문이다. 저 아래의 산들과 평야의 노랫말이 어째서 소음이 아닌 감미로운 합주곡으로 내게 느껴지는 것일까……

 “글쎄요……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 대답하기 어렵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겁니다. 그저 느껴지기 때문이겠죠. 눈으로 보이는 그 무언가가. 혹은 그 때 느껴지는 그 시간이, 그 공간이, 혹은 그 누군가가. 아름다움은 결코 하나의 감각에 의존해서는 만들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제가 배워온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죠. 때때로 시각은 너무나 강렬하여 화려함을 아름다움으로 착각하게 만들기도 하죠. 하지만 아름답다는 것은…… 화려함과는 아주 다른 말입니다.”

 “잘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하나 예시를 들어보죠. 저 눈앞의 풍경은 당신에게 바라봄으로서 어떤 마음을 주죠?”

 나는 잠시 생각했다. 창문 너머의 풍경을 다시 한 번 바라보니, 대답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여유로움, 고요함. 그리고 또 평화로움.”

 “왜 일까요? 지금은 어둠이 깔린 밤이고, 모두가 잠들어 있어 당신은 홀로 여기에 서있었고 만에 하나 이 비행선은 추락해 모두가 죽음의 위협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정말 운이 좋지 않다면 포악한 용을 한 마리 만나 정말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죠. 그런데 여유로움, 고요함, 평화로움이라니? 이치에 맞지 않는 말 아닌가요?”

 조나단의 말은 그 자체로는 틀린 것이 없었다. 하지만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하나 있는 듯 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한 채로 멀뚱히 나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당신은 지금 첫 여행을 떠나고 있고, 처음 하늘위에 떠있으며, 저 드넓은 대지를 처음 상공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발라테라스로 다가가는 기다림 속에 서있으며, 그 기대의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이미 저 멀리 떠나 버린 지 오래죠. 그리고 지금 그런 상황, 시간, 공간들이 당신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해주는 겁니다. 단순한 저 눈앞의 구름들과 대지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그 이면에 숨겨진 모든 세상의 요소들 이죠. 그것이 아름다움입니다. 한 인격체에 깃든, 특별한 무언가에 깃든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 처음 겪는 모든 새로운 것들에, 사랑하는 존재들 간에, 또 고귀한 희생과 믿음속에. 때로는 세계 그 자체를. 하지만 화려함은 다릅니다. 화려함은 그러한 소중한 개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자체로 빛나고, 예쁠뿐이죠.”

 나는 여전히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다시 한 번 입을 열어 예시를 들었다.

 “보석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가난한 한 남자가 피땀을 흘려 모은 돈으로 구매해 3년의 사랑 끝에 청혼의 표시로 건넨 그다지 비싸지 않은 보석이고, 다른 하나는 청혼의 표시를 받은 여자가 어제 밤에 맘에드는 귀공품 가게에서 발견했던 아주 아름다운 보석. 그리고 그 보석은 작은 마을 하나쯤은 거뜬히 사고도 남을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선물한 보석과는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사치스럽고요. 그렇다면 이 중에서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고, 화려한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그제야 그의 말에 담긴 의미를 깨우쳤다. 그가 조금은 이해가 된 듯한 내 표정을 바라봄 마지막으로 말을 덧붙였다.

 “이제 이해하신 것 같군요. 당연히 첫번째 것이 아름답고, 둘째것이 화려한 것이죠. 이것이 그 둘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담긴 가치의 무게는 비교할 수 없죠. 화려한 것은 그저 시각에 의존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눈앞의 무언가가 화려하다는 말은 할 수 없습니다. 볼 수 없기 때문이죠. 저에게는 빛나는 보석의 표면이 보이지 않고, 화려하게 춤을 추는 쪽빛 구름들의 무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누군가의 첫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보이고, 설렘이 보입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기대감이 느껴지고, 두려움을 덮는 용기를 뒷받침하는 누군가에 대한 고마움이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해했어요. 멋진 말이네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조나단의 미소에 화답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미소를 주고받은 이후 다시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보이는 봉긋하게 솟아오른 산들 너머 지평선위로 가득 깔린 흑백의 도화지위에는 옅게 빛나는 별들이 계속해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반나절도 채 남지 않았군요.”

 조나단이 창문을 응시한 채로 나지막히 말했다.

 “그렇네요.”

 나는 짧게 대답했다. 기대감으로 다시 마음이 부푸는 느낌이군. 정말 조금만 더 지나면 이제 발라테라스에 도착한다. 얼른 괴현상 조사를 마치고 여러군데를 돌아다녀야지. 상상만 해도 마음이 설레는 군.

 “가면 우선 무엇부터 하실 생각이십니까?”

 조나단이 내게 물었다.

 “음…… 아직은 잘 모르겠네요. 우선 칼리프에게 받은 임무부터 처리해야 뭐든 맘대로 할 수 있을테니, 그 동안 천천히 생각해보죠 뭐.”

 우리의 대화는 거기에서 끊겼다. 할 말이 없어서 끊긴 것이 아니라, 주위가 완전히 어둠에 깔리기 전에 아름다운(조나단이 언급한 진정한 ‘아름다움’을)풍경을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문득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조나단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맹인으로서 바라보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상평은 어떨지.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두건으로 가림에도 불구하고 선명히 보이는 눈가 주위의 주름들…… 그리고 사라져버린 미소에 씰룩거리는 입꼬리라……. 엥? 이건 전혀 뭔가를 감상하는 이의 표정이 아닌걸?

 “저기, 조나단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표정이……”

 “저기.”

 그는 내말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로 눈앞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나는 곧장 그의 지시를 따라 시선을 옮길 수 밖에는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않던 그의 표정에 그림자를 드리울 정도의 일이라니, 도대체 무엇이기에?

 시선을 따라 옮긴 곳에 보여오는 것은 아주 작은 무언가였다. 검게 보이는 짙은 그림자. 점점 깔려오는 칠흑의 손길 속에서도 옅게나마 그것은 왕성히 움직이며 우리에게 천천히, 아니 아주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저게 뭐죠?”

 나는 조나단에게 물었다. 그는 여전히 시선을 옮기지 않은 채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이제는 입술을 잘끈 깨물기까지 하는군. 나도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그 무언가는 내 손가락만큼 커져서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점점 형체가 보여온다. 분명 저것은 날아다니는 생명체이다. 날아다닌다면 저 위에서 계속해 펄럭거리는 것은 날개일테고, 또 뒤편에서 좌우로 움직이는 것은 꼬리…… 그리고 저 머리 위에 달린 것은 뿔…… 날개, 뿔, 꼬리라. 그렇다면 답은 나왔지. 저것은 용이다. 잠깐, 용이라고?

 “이거 좀 위험해질 수도 있겠군요.”

 조나단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여전히 입술을 세게 깨문 채로 눈앞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위험하다니, 저 용이 혹시 우리를 공격하려는 심산으로 날아온다는 말인가요?”

 용은 과거 중간계 자유종족이 많은 일들을 겪어오며 맺은 동맹인 아니미 동맹의 협약이후 협약을 맺은 다른 종족에 대한 공격을 스스로 일체 금지했다. 그 협약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기에 포악하던 용들은 모두 그렇게 온순하게 만들어 버렸는지. 물론 아주 가끔 그 협약에서 벗어난 용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아주 드문경우다. 설마 조나단, 지금 저 용이 그런 경우라고 말하려는 건가요?

 “요… 용이 왜요? 아주 드문 경우지만 비행중에 용이 나타날 수도 있는거 아닌가요?”

 “물론이죠. 하지만 그 용이 비행체를 향해 직접 접근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죠.”

 “지금 저 용에게서 적의가 보이나요?”

 조나단은 내 질문을 듣고는 눈가에 핀 주름을 조금 더 늘려가면서 시야를 집중하는 듯 보였다.

 “너무 멀어서 잘 느껴지지는 않는군요. 하지만 용이 내뿜는 적의정도라면 이 정도의 거리에서도 보여야 정상이겠죠. 아직까지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오히려 저 용의 상태는 지금무언가를 궁금해하는 상태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궁금하다니, 무엇이요?”

 “그건 저도 알 수가 없군요.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으니 지금 당장 사람들을 깨워야 겠습니다. 우선 밀레부터 깨우세요, 이안. 제가 여기서 용을 보고 있을테니.”

 “예…? 예, 아 예!”

 나는 곧장 뒤를 돌아 선실로 올라갔다.

 용, 용이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일이야. 설마 정말로 저 용이 함선을 공격하기 위해 날아오는 것은 아니겠지? 우리가 영역을 침범 하기라도 한 건가? 아니, 잠깐만. 용에게는 자신의 영역같은 것이 없다. 적어도 저 용이 고룡이 아닌이상은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왜 용이 인간들의 함선 따위에 관심을 갖는거지?

 깊게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나는 정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계단을 올랐다. 어느새 내가 머물던 방의 문 앞으로까지 간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문고리를 벌컥 열어젖혔다. 문은 당연히 열리지 않았다. 잠겨 있었으니까. 나는 열쇠를 찾기 위해 재빨리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어 무언가 잡히는 것을 찾기위해 이리저리 손을 움직였다. 하지만 주머니는 텅 비어있었다. 잠깐, 내가 열쇠를 챙겨서 나왔던가? 아니……. 아니다. 나는 정말 멍청하게도 열쇠조차 챙기지 않은 채 그저 방문을 나왔던 것이다. 이런 제기랄! 나는 어찌할바를 모르고는 제자리에서 빙빙돌며 그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때 무언가가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조나단! 그래 조나단이라면 분명 열쇠를 챙겨서 나왔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지체없이 몸을 돌려 아래로 발걸음을 향했다. 젠장, 조나단 열쇠 내놔요!

 계단을 반쯤 내려 왔을까, 그 순간 큰 진동과 함께 선채가 흔들렸다. 함선이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 마냥 움직이는 탓에 나는 계단을 내려오기는 커녕 미끄러지듯이 넘어져서는 계단을 내려왔다. 덕분에 어깨와 등은 단단한 계단 층에 부딪혀서는 이리저리 신음을 내뿜고 있었다.

 “아으…… 으아아으……”

 나는 신음을 흘리며 간신히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겨우 뜬 두 눈커풀 틈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황금빛의 향연에 나는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잔뜩 부시는 눈에 나는 다시 한 번 신음을 흘리며 앞을 쳐다보았다. 황금빛으로 환하게 빛나는 빛의 일렁이는 춤사위 속에 한 남자가 한 쪽 무릎을 꿇은 듯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머리에 두른 두건, 거추장스러운 로브, 분명 조나단이었다.

 “조나단! 무슨 일……”

 그 때 함선이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이번에는 방금 전과 다르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함선이 크게 뒤흔들리기 직전의 순간, 거대한 무언가가 바깥에서 창이 달린 배의 벽면을 아주 강하게 타격했다. 다시 한 번 흔들린 배 탓에 나는 한 번 더 바닥으로 고꾸라지며 이마를 바닥에 부딪혔다. 방금 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그저 통증으로 그치지 않았다. 아픈 이마를 쓸어내리는 손에 붉은 피가 묻어나왔다. 그러나 조나단은 흔들림없이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Almani de poetono wito yani!”

 조나단이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크게 소리질렀다. 그러자 그렇지 않아도 주변을 충분히 환하게 비추던 황금빛 빛은 일렁이며 그의 몸을 감싸더니 마치 뭉쳐있던 연기가 빠르게 흩어 지듯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러자 그 주위는 반짝하며 황금빛 빛을 점멸 하더니 다시 본래대로 돌아왔다.

 그 순간 거대한 눈동자가 순식간에 창문을 스치고 지나갔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것의 날카로운 눈빛은 정말 평생 내 머릿속에 남을 것만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용이었다. 용은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마치 그것의 동공은 그 찰나의 순간에 나를 향하고 있는 듯 했다.

 “조나단!”

 나는 다시 한 번 그를 불렀다. 돌처럼 굳어있던 그는 마침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이안, 밀레는요?”

 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의 목소리는 홀 전체를 채울 정도로 크게 울렸다. 아참, 이런 거에 감탄할 때가 아니다. 정신 차려라 이안!

 “열쇠가 없어요! 조나단, 열쇠 가지고 있어요?”

 그는 대답 대신 행동으로 답했다. 주머니를 뒤지던 그는 순식간에 열쇠를 꺼내들더니 나에게 정확히 집어던졌다. 꽤나 긴 거리였음에도 열쇠는 정확히 내 앞으로 떨어졌다. 나는 눈빛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이후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하지만 그 정신없던 질주는 채 삼 초가 되기도 전에 끝날 수 밖에 없었다. 정신없이 앞도 보지 않은 채로 계단을 올라가던 도중에 내려오던 사람을 보지 못하고 그와 거의 정면으로 부딪혀버린 탓이었다.

 나는 그대로 다시 한 번 계단 뒤로 굴러 떨어졌다. 몇 계단 올라가지 않은 탓에 떨어진 후에도 그렇게 몸이 아파오지는 않았지만, 아까 전 다친 이마의 상처는 여전히 욱신거렸다.

 “이안, 괜찮으냐?”

 들려오는 목소리. 익숙한 목소리의 남자로군. 나는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으며 눈에 힘을 주어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모습의 세 남자.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몇명의 모르는 사람들…… 아마도 방금 전 용이 부딪히면서 난 진동에 꽤나 많은 사람들이 깨어난 모양이다. 밀레와 에온, 그리고 레이널도 마찬가지고.

 “무슨 일이냐? 이 진동은 무슨……”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급하게 말을 전했다.

 “용이에요. 용.”

 “뭐라고?”

 밀레가 되물었다. 나는 정신없는 와중에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용이라고요! 용!”

 정말 그렇게 어두워진 밀레의 표정은 함께 지내는 내내 단 한 번도 본 적이없었다.

 “용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옆에서 레이널이 거들었다. 유일하게 아직까지 태연한 표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옆에있는 에온조차도 입술을 잘끈 깨물고 있었으니.

 “용이 지금……”

 “조나단은 어디에 있니.”

 밀레의 무거운 목소리가 내 대답을 끊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의 목소리에 깔린 무거운 분위기가 그 모든 생각들을 쳐내버렸기 때문이다.

 “저, 저기 혼자 앉아서 뭘 하고 있는데, 뭘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안내해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허리춤으로 손을 옮겼다. 내 시선은 그의 손동작을 따라 그대로 그의 허리춤에 달린 그의 검으로 향했다. 밀레는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손등에 나타난 힘줄들이 그 사실을 시인해 주고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몸으로 행동했다. 나는 곧장 뒤를 돌아 조나단이 앉아있던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밀레가 빠른 걸음으로 나를 쫓아왔고, 레이널, 에온도 내 뒤를 따랐다.

 그때 선채가 다시 한 번 크게 흔들렸다. 방금 전 보다 더 큰 진동이었다. 그리고 동반된 것. 아주 큰 굉음과 함께 울리는 거대한 존재의 울음소리. 피부까지 저릿해오는 울림에 나는 귀를 막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에온과 레이널도 마찬가지로 귀를 파고들다 못해 쑤셔오는 이 울부짖음을 견디기가 힘든 모양이다. 한데 밀레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마치 망부석마냥 다리를 땅에 붙인채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안.”

 밀레가 나지막히, 그러나 그 어느때보다 진지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에, 예?”

 “여기 가만히 있어라.”

 그는 그렇게 말하고 허리춤에 있던 검을 빼냈다. 검의 손잡이 부분에 박힌 반투명색의 광석은 밝게 빛나며 어두워진 밤의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그는 검을 고쳐잡고는 발을 천천히 앞으로 옮겨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어디가세요?”

 나는 거의 소리 지르듯이 물었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에온, 자네는 당장 선장에게 가 모든 승객들을 최하층으로 속히 이동 시키라고 전해주게. 그럴 수 없다면 가장 아래에 위치한 곳에, 그것조차도 안 된다면 가장 외진 곳으로 대피 시키라고 말해 주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속도를 연료가 바닥나지 않을 정도로 최대한 올리라고도.”

 그는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봤다.

 “레이널, 이안을 맡아주게.”

 “어디 가냐고요!”

 나는 이번에는 거의 비명을 내지르듯이 그를 향해 소리 질렀다. 그러나 되돌아온 것은 그저 미소 한 가닥 뿐. 그는 마지막 한 마디를 내뱉었다.

 “금방 다녀오마.”

 “조나단을 찾는다면서요!”

 나는 마지막으로 그를 향해 외쳤다. 그는 팔을 펼치며 움켜쥔 검을 바로잡았다. 공기는 날렵한 칼날에 베어나가 쉴 새 없이 자그맣게 소리친다.

 “아마도 조나단은 용이 있는 곳에 있을거다. 이렇게 울음소리가 선명히 들린다는 건 선채 어딘가가 파손되어 외부로 노출 되었기 때문이지. 서둘러 가지 않으면 조나단의 목숨이 위험할 거다.”

 “아버지는요!”

 나조차도 내뱉은 말에 깜짝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그가 내 양아버지 신분이기는 했지만 그에게 아버지라는 말을 내뱉은 것이 얼마만인지.

 “잊었나보구나 이안. 나는 그저 네 아버지가 아니다.”

 나는 순간 흠칫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 너무 오래간 지속된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나는 그의 위치를 잊고 있었다. 그는 팔레다임이었다. 나를 지켜야 하고, 사람들을 지켜야 하는 솔선수범한 세계의 전사.

 “나는 수호자다. 에디온을 지켜야 하는 수호자, 무고한 시민들을 지켜야 하는 수호자, 그리고 고귀한 수호의회의 일원이자 대천사의 가호를 받은 전사다.”

 곧 그를 기점으로 환한 빛이 마치 소용돌이 치듯 일어났다. 그리고 그 힘들은 순식간에 검을 향해 날아가 매끈하게 갈린 검날 부터 손잡이까지를 전부 뒤덮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말을 덧붙였다.

 “너무 걱정말아라. 조나단과 함께라면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거다.”

 그는 그렇게 뒤를 돌았다. 나는 더 이상 그를 부를 수 없었다.

 끝없는 자괴감이었다. 지난날 평화롭게 살며 수련을 게을리 한 것이 사무치게 후회가 된다. 안 된다. 지금 밀레를 보내서는 안 된다. 아버지를 보내서는 안 된다…… 세계의 영웅이라고? 내가? 정말 의미없는 세 글자로군. 나는 그저 평범한 철부지일 뿐이다. 에디온 따위가 아니다……. 나는 영웅따위가 되지 못한다…… 그저 소중한 사람을 벼랑끝으로 내몰 수 밖에없는 그런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그렇게 밀레는 뒤를 돌아 내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언제다시 그를 볼 수 있을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이슈타르여, 부디 그에게 당신의 가호를 내려주소서.

 나는 그저 기도밖에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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