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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잿빛세상에 뜬 붉은 달
작가 : AT하나
작품등록일 : 2017.12.6

가상세계인 'D월드'가 상용화된 현재, D월드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처리하는 VA수사대원으로 일하게 된 주인공 린느 후즈가 겪을 미래의 이야기

 
016. B-15 창고(1)
작성일 : 17-12-13 18:01     조회 : 245     추천 : 0     분량 : 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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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반은 놀라 움찔했고, 린은 쟤가 왜 저러고 있나 싶어 귀가 뻘게졌다.

 

  “뭐야.”

  “누나, 잠깐 안 쉴래? 저번에 누나가 사과 사줬으니까, 오늘은 내가 다른 거 살게.”

  “일한 지 얼마나 됐다고..”

  “잠깐은 괜찮잖아. 빨간 달을 사용하는 단체는 방금 누나가 연락한 데 말고는 따로 없는 것 같아.”

  “…뭐 먹을 건데?”

 

  방금 전에 빨간 달 사장이 만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일단 이 스캐너와 관련된 수사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었고, 린도 조금은 바람을 쐬고 싶었으므로 반이 뭘 사준다는 말에 반응을 보인 것이다. 반은 빙긋 웃곤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밖으로 나가는 건가? 린은 이 근처 식당을 꿰고 있는 편이다. 국장과 식사를 할 때마다 나가서 먹었기 때문이다. 물론 식당이라는 것 자체가 흔하지는 않은데, 이 근처는 그래도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 식당이 꽤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어딜 가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반이 ‘뭘 먹고 싶은지’ 묻질 않았다. 그렇다는 건 어딜 알아본 모양인데.. 린은 반에게 물었다.

 

  “뭐 먹으려고? 밥 같은 것 먹기엔 너무 방금 전에 점심 먹었잖아.”

  “응, 커피 마시려고.”

  “커피? 흠.. 난 커피보다 차가 좋아.”

  “응, 차도 있을 거야.”

  “어딘데?”

 

  린이 묻자 반이 조금은 어색한 얼굴을 한다. 그리고는 별다른 말을 않는다. 린은 반을 쳐다보았다. 거짓말을 하는 건가? 린이 반과 함께 정보국에서 나가 걸어가다가 골목 쪽으로 꺾어 들어가는 반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지금 말하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가지 않겠다는 얼굴로 서 있자, 반은 속이기는 역시 어려울 거란 생각을 했다.

 

  “가게는 아니고, 아는 형이 잠깐 보자고 해서 가려는 거야.”

  “뭐야. 만날 사람도 따로 있는데 나는 왜 데려가? 나도 아는 사람은 아닐 거 아냐.”

  “응, 아니긴 한데…실은, 누나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거든.”

  “날? 내 얘길 했어?”

  “아니. 저번에 샷건 잡을 때 있잖아, 리슈베르에서. 그 때 현장에 있었대.”

 

  아. 얼마 안 된 일이고, 린에게도 큰일이었으므로 기억하고 있었다. 현장에 있었다는 건 리슈베르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라는 뜻인가? 린은 사람을 새로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사람의 기분을 읽어야 하기도 하고, 뭔가 복잡하기도 하고…어려웠기 때문이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을 파악하기 위해 눈치를 보는 것이나, 그 사람과 기분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도 말이다. 수사대에서도 그게 제일 오래 걸렸던 린이었다. 자신이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런 것에 약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린은 그런 자리를 웬만하면 피했다. 그런데 지금은 흥미도 일었다. 린은 정말 정보국 입사만을 생각하고 준비해왔기 때문에, 관련회사인 리슈베르나 헨델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리슈베르에서 근무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조금 들었던 것이다. 린은 표정을 굳힌 채 반에게 물었다.

 

  “이상한 사람 아니야?”

  “아, 그건 아니야. 나랑 2년 전쯤부터 알았던 형이야. 28살이고, 알라민 베른이라는 사람이야. 리슈베르에서 근무한 건 1년 정도 됐어. 내가 정보국 합격했을 때 그 형도 합격했거든. 저번까지는 VA관련 부서에서 일했다고 했는데 지금은 모르겠네.”

 

  반은 린이 만나기 싫다고 대답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가도 알라민에 대해 선뜻 사실대로 다 설명해주었다. 그냥 여기에서 반이 ‘이상한 사람은 아니지만…’ 하며 말을 줄이기만 했더라도 린의 호기심은 불편함이 싫다는 것에 패배해 만나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리슈베르에서 근무한다는 것에서부터 VA 관련 부서에서 일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니 린은 더 궁금해졌다. 이런 인맥이 별로 없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고. 입사한 지 1년밖에 안 됐다면 공무원한테 뇌물 들이밀 레벨도 아닌 것 같으니 안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좋아. 가자.”

  “어? 진짜?”

  “왜. 싫어?”

  “어? 아니…그건 아닌데….”

 

  반은 자신이 너무 솔직하게 설명해줬다는 걸 그 때 깨달았다. 알라민과 린이 친해지는 거야 좋을 것이다. 좋아하는 형과 좋아하는 누나가 서로 아는 사이면 더 좋을 테니까. 그런데 뭔가 그것과 별개로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알라민이 누굴 소개해달라고 먼저 부탁한 적도 없었고…린이 이렇게 선뜻 누굴 만나자는 말에 수락한 적도 없었다. 전에 윤수의 가족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같이 가자고 했을 땐 칼 같이 거절했었다. 그 외에 사람과 부딪치는 건 피하는 걸로 보였는데.. 반이 잘못 생각했던 모양이다. 반은 조금 기운이 빠진 걸음을 걸었다. 린은 그걸 보았지만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그래서 어디로 가?”

  “창고야. B-15. 여기서 얼마 안 멀어.”

 

  린은 곧장 핸드폰을 꺼내 검색해보았다. 정말 얼마 멀지 않았다. 정보국이 있는 센트럴은 정보국이 있는 곳 뒤쪽으로 창고들이 즐비했다. 이곳은 정보국이 있는 센트럴은 거주구역인 안수즈에 있긴 했으나, 센트럴 자체는 사람들이 살기보다는 일을 하러 출근을 하는 곳이었으므로 상권이 크게 발달하지는 않았다. 아까 말한 대로 몇 개의 식당이 전부다. 그러니 그 남은 구역은 창고 정도로 메워지게 된 셈이다. 일부는 오피스텔이나 정부소속 거주지역이고 말이다. 그 가운데 하나에 가는 모양이다. 린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반에게 물었다.

 

  “설마 그 창고, 그 사람 거야?”

  “그렇지 않을까?”

 

  반은 대답을 하곤 린을 돌아보았다. 회사에 1년 밖에 안 다닌 사람이 창고를 소유할 수 있을 정도라면 돈을 잘 버는 수준이 아니다. 집이 잘 산다는 이야기다. 린은 조금 심기가 불편해졌다. 어쨌든 반은 퍼스 출신이었으니, 그 사람도 퍼스 출신이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됐다. 퍼스 출신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은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불편했다. 린이 가지지 못한 걸 가진 게 너무나 보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라고 린 스스로 생각했다. 이건 일종의 질투일 것이다.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전에 반에게 실수했던 것처럼 표를 내지만 않으면 될 거라고 린은 스스로를 달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고 앞에 도착했다. 창고는 커다란 미닫이 문으로 되어 있었고, 그 문에 ‘B-15’라고 적혀 있었다. 정말 그저 창고로 보인다. 규모는 생각보다도 훨씬 컸다. 내부는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높이로 치자면 2, 3층 정도는 될 것 같다. 짙은 회색으로 지어진 창고였는데, 주변 창고와 똑같이 생겼다. 소유주가 다르면 분명히 다르게 꾸며놓을 수 있을 텐데, 그런 짓은 안 한 모양이다. 창고에 뭘 보관하고 싶어서 창고를 샀는 진 몰라도 참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린은 반이 앞장서서 창고 문을 그냥 열자, 긴장했다. 안은 온통 새카맣다. 아직 아무도 안 온 건가? 의심하며 성큼성큼 걸어가는 반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가던 린은 자신이 문 안쪽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안녕하…”

  “으아악!”

  “누나!”

 

  심장이 벌렁벌렁 뛰어서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부여잡은 린은 목소리가 들린 쪽을 보았다. 그 때 때마침 불이 켜지고, 린은 눈이 부셔서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가 눈을 떴다. 그곳에는 매우 미안해하는 얼굴의 남자가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금발을 약간 길러 묶고 있는 남자다. 눈매는 순해 보였고, 하늘색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키는 반보다도 컸는데, 덩치가 크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다.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인 건지 오히려 비쩍 마른 편에 속했다. 반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린과 알라민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형, 진짜 그럴래? 손님한테 뭐 하는 짓이야?”

  “미안. 놀리려던 건 아니었어. 이쪽에 찻잎이 있어서 가지러 왔었는데 문이 갑자기 열려서, 인사를 한 거였는데.. 나는 어두운 거에 눈이 익숙해져서 이렇게 놀라실 줄은 몰랐어. 죄송해요.”

 

  정말 많이 미안해하는 눈치이기에 린은 벌렁거리는 심장만 진정하면 화를 내지 않을 작정이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너무 가까이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리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반이 말한 알라민인가? 의외로 사람은 매우 좋아 보인다. 성격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방금 전에 그게 악의적으로 놀라게 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옷도 깔끔하게 입고 있다. 린이나 반은 후드나 청바지 같이 편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이 사람은 흰 셔츠에 옅은 노란빛 스웨터를 입고, 짙은 갈색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좀 더 어른스러운 느낌은 그 옷차림에서 나오는 건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퍼스 출신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외모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린느 후즈씨. 저는 알라민 베른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고 싶었어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린느 후즈입니다. 그냥 린이라고 부르시면 돼요.”

  “일단 저쪽으로 이동할까요? 맛있는 차가 있거든요.”

 

  정말로 찻잎을 가지러 온 거였는지 알라민의 손에는 찻잎을 포장한 것이 들려 있었다. 알라민이 신이 난 듯 앞장서고, 오히려 앞장서 있던 반은 린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린은 알라민의 뒤를 따라가며 약간 화가 난 얼굴로 알라민의 뒤통수를 보고 있었다. 반은 어쩐지 자신이 린에게 미안해졌다.

 

  “미안, 누나. 많이 놀랐어?”

  “뭐.. 전혀 경계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으니까. 왜 네가 사과해? 실례를 한 건 저 사람인데.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저 사람도 어쨌든 악의는 아니었던 것 같으니까 화 안 내려고 노력중이야. 너랑 아는 사이인데 나 때문에 괜히 어색해지는 건 싫으니까.”

  “아, 응. 고마워.”

 

  린은 정말로 화가 나는 걸 참고 있는지 심호흡을 하면서 최대한 미간을 펴려고 노력 중이었다. 하지만 반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린이 방금 한 말 때문이었다. 반과 알라민이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더 신경 쓴다는 말은, 알라민을 만나러 오는 데에 자신이 데려왔다는 게 크게 작용했다는 뜻일까? 자신을 그 정도로 신뢰해준다는 뜻인 건가? 그렇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반은 생각했다. 3개월을 넘게 같이 일했지만, 린은 어쩐지 선을 긋는 것이 있었다. 아주 거리를 두는 건 아니지만, 어떤 경계를 두고 거기에서 나오지 않는 것 같은.. 윤수도 그런 걸 느꼈다고 반에게 말했으니 분명히 그런 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만은 어쩐지 그런 게 느껴지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반은 웃으면서 린의 뒤를 따랐다.

  알라민을 따라 걸어가니, 창고 한 가운데에 소파가 있는 걸 발견했다. 소파는 디귿자 모양으로 되어 있었고, 그 가운데에 테이블이 있었는데, 테이블 근처에 한 여자애가 서 있었다. 까만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한 어린 여자아이였다. 기껏 높여 봐도 10대 중반 정도. 길게 기른 검은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구불거렸고, 그 밑으로 알과 비슷하게 까만 피부가 눈에 띄었다. 알보다는 좀 덜 까만 것 같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눈도 동그랗고, 키도 작은 편이어서 아주 귀여운 얼굴이었다. 린과 반, 알라민이 오는 걸 보고 미소를 지으니 더욱 그랬다.

 

  “슈, 준비 다 됐어? 찻잎 가져왔어.”

 

  슈라고 불린 그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곤 알라민의 손에서 찻잎을 받고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있었던 것 같다. 알라민은 슈에게 찻잎을 전해준 후, 린과 반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소파에 앉으라고 권했다. 린은 가장 끝에 앉았고, 그 근처에 반이 앉았다. 린과 반이 디귿자 소파 중에서 굳이 그 좁은 쪽 소파에 앉으니, 자연스럽게 알라민은 거기에서 가까운 소파에 그냥 앉았다. 슈는 차를 끓이면서 린과 반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렇게 되니 알라민은 기다란 소파에 홀로 앉은 것이 됐다. 조금은 쓸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 린에게 슈를 소개해주기로 했다. 반은 이미 슈와 만난 적이 있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있어서 말을 못하니까 제가 대신 소개할게요. 이쪽은 라미슈 제라라고 해요. 슈, 인사해.”

 

  라미슈는 린과 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귀여운 아이가 귀엽게 웃으면서 인사를 하니 린은 자신도 모르게 세잎클로버에서처럼 웃을 뻔했다. 웃으려다가 멈칫 하고는 이상한 표정으로 웃는 린을 보며 라미슈는 다시 웃었다. 웃음소리는 나지 않는다. 아예 목소리가 안 나오는 모양이다. D월드와 달리 현실세계엔 계절이 사라졌다. 지구가 돌지 않는 건 아니지만, 환경파괴로 급격히 뜨거워지던 지구는 과학기술로 온도를 낮추는 데엔 성공했지만, 계절을 다시 되살리는 것까지는 어려웠다. 온도조절장치로 조절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애초에 사람이 많이 사는 구역도 아닌 곳에서는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후로는 일부 지역에서 봄, 여름, 가을을 느낄 수 있도록 관광지역으로 만들어두었을 뿐이다. 나머지 지역들은 꽤 싸늘한 날씨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입는 정도의 옷을 입고 다닌다. 라미슈도 그랬는데, 옅은 상아색 스웨터를 입고 약간 어두운 빛의 붉은 스커트에 검은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 뭔지 아는 것 같다. 정말 잘 어울려서, 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라미슈씨는 알라민씨 동생인가요?”

  “아뇨, 친구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라미슈씨, 린느 후즈라고 해요.”

 

  린이 인사를 건네니 라미슈는 뭔가를 급히 찾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없는 모양인지 치마 주머니를 뒤지고 소파 위를 살피고 있다. 알라민은 라미슈를 보다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곳은 창고라는 느낌을 전혀 지우지 않았으므로, 창고 한가운데에 소파가 덩그러니 있는 느낌인데, 그 주변으로 커다란 기계들이 벽처럼 쌓여 있어서 마치 미로처럼 되어 있다. 알라민이 가리킨 건 린과 반, 알라민이 왔던 입구 쪽이 아니라, 그 반대쪽 기계 쪽이었다. 라미슈가 뭔가 기억이 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쪽으로 뛰어갔다. 그것마저 귀여워서 린은 한참 그 뒷모습을 좇았다. 알라민씨 친구라니, 외모로는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라고 말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린은 라미슈에게 말을 높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린은 라미슈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러고 보니 라미슈…제라라고 했던가? 제라?! 린이 놀라 반을 보았다.

 

  “라미슈씨, 성이 제라야? 진짜?”

  “응. 나도 처음에 놀랐어. 딱 누나처럼 형한테 물어봤었는데.”

  “생각하신 대로예요. 라미슈는 제라 지역을 건설하는데 막대한 힘을 쏟은 제라씨의 외동딸이거든요.”

 

  린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제라라고 하면 현재 이 지구에서 몇 안 되는 계절이 있는 구역이다. 제라는 특히나 가을이라서 관광지로 정말 유명하다. 자연환경을 살려 놓은 지역이라 그곳의 수익률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제라를 세우는데 막대한 재력을 부은 것이 바로 ‘제라’라는 사람이었고, 그 사람의 이름을 따서 그 지역의 이름이 정해진 것이다. 그 이전에는 지금의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황폐했다고 한다. 그렇게 대부호의 따님이 왜 목소리도 안 나오고…. 린은 그 때야 눈치를 챘다. 28살인 알라민과 친구라고 하는데 외모는 10대에 그친 것, 그리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 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확신할 순 없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높다. 분명히 라미슈 제라는, 유전자조작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케이스이다. 유전자조작 자체가 실패하면 몸에 장애가 생긴다. 목소리가 안 나오는 정도는 애교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아마 10대에서 성장이 멈춘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심하면 신경에 장애가 오기도 하고, 팔다리가 없는 경우도 흔하다. 그 때 알라민이 린에게 대뜸 말했다.

 

  “전에 리슈베르에서 범인을 잡으신 분이라고 들었어요. 전혀 다른 모습이셔서 정말 놀랐지만요.”

  “VA와 현실의 모습이 다른 게 보통이니까요. 그리 놀라실 것도 아닐 텐데요. 리슈베르에서 VA 관련 부서에서 일하셨다면요.”

  “그렇긴 하죠. 하지만 VA 관련부서라고는 해도 직접 VA를 형성하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관리 쪽 업무였어요.”

  “리슈베르에서 VA를 관리한다고 하면….”

  “물론 전적으로 정부에서 내주는 VA를 이용하고 있죠. 하지만 회사에서 일을 할 때에는 접속한 사원들 VA를 관리해줘야 하니까요. 접속하고 있는 동안 불안정해지거나 하면 바로 조치하는 팀이었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VA 자체와는 관련이 별로 없었습니다.”

 

  알라민이 웃으면서 설명해주자 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VA에 접속하기 위해선 정부에서 내준 주소와 VA가 필요하다. VA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지만, 주소는 정부에서 내준 것만 사용이 가능하다. D월드는 정부에서 관리하는 서버에서 형성되어 있으므로 알라민이 말한 ‘관리’라는 말 자첼 이해할 수가 없어서 되물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접속에 문제가 생기거나 하면 처리해주는 것을 담당한 모양이다. 오히려 이쯤 되면 의사에 가깝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정보국으로 치면 의학부의 일을 한 셈이다.

 

  “정보국으로 지원할 생각은 안 하셨나요?”

  “제가 거기에 들어가기엔 실력이 많이 부족하거든요. 그리고…리슈베르씨를 존경하는 마음도 있었고.”

  “D월드를 만든 과학자라서요?”

 

  알라민은 린을 지그시 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리슈베르는 아주 유명하다. D월드를 현실화한 과학자. 혼자서 만들었다기에는 완성도가 높았고,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가 그 D월드를 무료로 배포했다는 것이다. 분명히 자금이 어마어마하게 들었을 텐데도 말이다. 다른 과학자들을 통해 개선의 여지도 남겨두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D월드 접속실패가 빈번히 일어나니 D월드 자체를 정부에서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위대한 과학자는 D월드를 발표하고 얼마 안 되어 죽었으니까. 그가 죽은 건 큰 뉴스였다. 의도된 폭발이 일어나 리슈베르의 집이 완전히 날아갔다. 그 부인까지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천재 과학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모든 사람들이 애도했었다. 그리고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

 

  “정부에서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공인이 필요해진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씁쓸하긴 하더군요. 리슈베르는 분명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D월드를 무료로 배포한 것일 텐데 말이에요.”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D월드는 오히려 위험한 곳이에요. …접속실패 같은 것도 그렇고.”

  “그렇긴 하죠. 그래도 많은 과학자들이 힘을 보탠 덕에 요새는 많이 나아진 걸 알고 있습니다. 접속실패 사례도 많이 줄었고요.”

 

  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에서 D월드를 관리하면서 리슈베르가 설계한 D월드를 개선했다.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리슈베르 혼자 이 엄청난 D월드를 만들어낸 것은 맞았지만, 인원수가 늘어나고 그 안에 많은 것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접속실패의 부작용을 잡기 위해서는 다른 과학자들의 힘이 필요했다. 어쨌든 지금은 리슈베르의 이름이 역사에 새겨질 정도로 그는 위대한 과학자였던 것임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알라민처럼 리슈베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란 이야기이다.

 
작가의 말
 

  붉은 달 스캐너 사건에서 잠시 벗어나 B-15 창고 이야기로 들어왔네요. 알라민은 이전 사건에서 반과 잠시 통화했던 적이 있어요. 리슈베르 사 테러방지팀 사건에서 리슈베르 사에서 근무하고 있었거든요. 창고 편은 아마 다음 번에 끝날 것 같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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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05. 수사대 첫 임무(3) 2017 / 12 / 9 227 0 10289   
4 004. 수사대 첫 임무(2) 2017 / 12 / 7 238 0 7314   
3 003. 수사대 첫 임무(1) 2017 / 12 / 7 241 0 10554   
2 002. VA수사대(2) 2017 / 12 / 6 257 0 6350   
1 001. VA수사대(1) 2017 / 12 / 6 393 0 1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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