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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잿빛세상에 뜬 붉은 달
작가 : AT하나
작품등록일 : 2017.12.6

가상세계인 'D월드'가 상용화된 현재, D월드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처리하는 VA수사대원으로 일하게 된 주인공 린느 후즈가 겪을 미래의 이야기

 
015. 붉은 달 스캐너 사건(2)
작성일 : 17-12-13 17:51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1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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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윤수도 제닌과 사건해결 때문에 지금 점심을 먹을 것 같지 않아서, 반은 휴게실로 가서 아침에 가져온 사과를 꺼냈다. 그리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의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안녕, 슐츠 형! 별 일 없어. 그냥 점심 먹으면서 전화해본 거야.”

 

  반이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자 상대방에게도 그 소리가 들려왔다. 캡슐이 아니라 뭔가 먹는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는지 그가 물었다.

 

  「캡슐이 아니군.」

  “응. 사과. 아니, 한 번 밥을 먹고 나니까 자꾸 이것저것 먹고 싶더라고. 캡슐은, 배가 부르다는 느낌이 없잖아. 영양상으론 전혀 문제없겠지만, 그냥 싫어졌어.”

  「그것만 먹으면 영양이 부족하니 캡슐도 같이 먹어둬.」

  “그러려고. 형도 먹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슐츠라 불린 인물은 대답이 없었다. 반은 정말로 조금은 슬펐다. 그는 음식을 먹을 이유가 없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슐츠와는 정보국에서 알게 된 사이였다. 물론 얼굴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수사대나 보안부 사람들은 지금 반이 연락한 연락처에게서 메시지는 많이 받는다. 하지만 이 번호로 연락해본 사람은, 반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반이 이 번호로 연락했을 때, 슐츠는 뭔가 잘못 누른 거라 생각해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메시지까지 오니 연락을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일을 한 지도 벌써 7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반의 이런 행동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안드로이드가 뭘 먹는다는 발상을 하는 네가 이상한 거다.」

  “그러니까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야. 생각하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

  「특이하긴.」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계속 들려오는데도 반은 대화를 계속 이어간다. 안드로이드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로봇’의 일종이다. 다시 말해, 역시 ‘인간’이 아니다. 법적으로도 그렇기에, 안드로이드를 이렇게 살갑게 대하는 인간은 없다. 슐츠가 말한 대로 반의 행동이 이상한 것이다. 한참 반과 슐츠가 대화하고 있는데, 반에게 전화가 왔다. 반은 슐츠에게 양해를 구하곤 전화를 끊고,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전에 리슈베르에서 테러를 막기 위해 움직일 때 연락을 했던, 리슈베르에서 일하는 형이었다.

 

  “오랜만이네, 형.”

  「잘 지냈어? 오랜만에 만나고 싶은데 어때? 슈도 같이.」

  “아, 나야 좋지. 근데 오늘 언제 끝날지 모르겠네. 처리해야 할 사건이 늘어서..”

  「오늘 말고, 그럼 내일 점심쯤 어때. 이 시간엔 좀 시간 되는 거 아냐?」

  “아, 그러려나? 괜찮을 것 같네.”

  「그리고 내가 저번에 물어본, 그 분 말이야. 린느 후즈씨.」

 

  사건이 해결되고 나서, 이 사람은 반에게 사건을 해결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게 이성적인 관심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름 정도는 알려줬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반은 어쩐지 이 형이 린에게 관심을 갖는 게 싫었다. 물론 나쁜 사람이 아니란 건 반이 제일 잘 알았다. 2년 정도 알고 지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냥, 역시 어쩐지 싫었다. 반은 자신이 조금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형, 내가 아니라 누나를 만나고 싶은 거지? 싫어. 아무리 형이라도 수사대원을 막 만나게 할 순 없다고.”

  「그런 게 아니야. 그냥 인상 깊어서 그런 거지. 만나보고 싶긴 하지만..」

  “안 돼.”

  「그렇게 딱 자르지 말고, 반.」

  “안 돼, 안 돼.”

  「그럼 린느 후즈씨에게 여쭤보고 좋다고 하면, 내일 데리고 와줄 수 있어?」

  “내일? 뭐야! 진짜 누나 만나고 싶어서 내 핑계 대는 거네!”

  「아니라니까.」

 

  반의 표정이 좀 더 심통이 난 것처럼 변했다. 린에게 물어보는 거야 어렵지 않다. 그리고 반은 린이 딱 잘라 거절할 것을 알았다. 난데없이 나가자는 말에 좋아할 리도 없고. 그래서 반은 곧 알겠다고 하곤, 맛있는 걸 잔뜩 준비하라고 못을 박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어쩐지 짜증이 나서 사과 먹던 것을 멈추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한편 린은 국장실로 곧장 올라갔다. 그 앞에 계시던 체첸을 돕는 다른 공무원이 린을 보고 반겼다. 린과 키가 비슷할 정도로 큰 여자였는데, 이름은 어울리지 않게 ‘렘’이었다. 푸른빛이 도는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있지만, 언제나 깔끔하게 묶고 있는 그녀는 스타일도 좋고 예뻤다. 부드럽게 웃는 미소가 호감형이라, 사람과 친해지는 것도 잘하는 것 같았다. 렘은 린이 오자마자 국장과 매우 친하다는 걸 알고 린과 벌써 친해졌고, 린도 이곳에 오가기가 조금 그랬지만 렘이 편하게 해주어서 그나마 나았다.

 

  “국장님은 안에 계셔.”

  “감사해요, 렘씨.”

 

  린이 렘에게 인사를 하곤 안으로 들어갔다. 기다렸다는 듯, 체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언제나 올 때마다 린은 인사보다 이 말부터 했다.

 

  “하던 일은마저 끝내세요.”

  “아, 그럴까? 금세 끝낼 수 있어!”

  “네, 제대로 하셔야 돼요, 제대로.”

 

  다시 자리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 체첸을 보던 린은 조금 걸릴 것 같아 소파에 앉았다. 국장실은 굉장히 넓다. 전형적인 모양이라고 생각이 됐지만, 국장실은 재미있는 게 몇 가지 있었다. 직접 본 건 아니고, 체첸에게서 들은 것이다. 국장실은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는데(워낙 고층이라 뷰가 좋다며 체첸은 웃었고, 린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그 유리들은 모두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어서 정보를 바로바로 확인하기에 좋았다. 물론 잘 깨지지도 않는 유리다. 그리고 내부에서 보안등급을 설정해 도청 같은 걸 막을 수도 있다. 보안이 철저하다는 이야기이다. 체첸은 벌써 정보국장으로 일한 지 2년이나 됐다고 했다. 임기는 이제 2년 정도 남았다고 했다. 그래도 2년이나 한 걸 보면 분명히 대단한 실력이 있을 텐데, 린은 도통 그걸 발견하질 못했다. 그래서 언제나 체첸이 국장 이전엔 무슨 일을 했을 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질문을 했을 때, 체첸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었다.

 

  “당연히 수사대였지. 제닌하고 동기거든.”

 

  믿을 수가 없어서 정말로 수사대였냐고 물어보니, 왜 못 믿냐며 서운해 하다가, 린의 선배라는 게 좋다며 또 린을 그렇게 칭찬했다. 설마하니 이렇게 허술한 사람이 수사대일 거라곤 전혀 생각조차 못했다. 심지어 법을 전공했던 사람이라 실력도 좋았다고 제닌이 말하는 바람에 믿을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물론 제닌은 말하면서도 굉장히 불만이 많아 보였다. 실력과는 전혀 관계없이 그냥 체첸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만인 것 같았다.) 곧 체첸이 일을 끝냈는지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먹으러 갈까? 먹고 싶은 거 생각하랬잖아. 요새 숙제 잘한 보상이니까 뭐든 먹어도 돼.”

  “오늘은 국장님 먹고 싶은 거 먹어요. 캡슐 말고.”

  “난 루나가 먹고 싶은 게 좋아.”

  “아, 진짜. 국장님 먹고 싶은 거 먹으라니까요!”

  “난 네가 먹고 싶은 게 먹고 싶어!”

 

  난데없이 싸움으로 번진 대화는 린이 씩씩거리며 입을 다물고서야 끝났다. 언제나 얻어먹는 것도 미안하고, 사실 그 숙제라는 것도 짜증이 나기는 해도 수사대에 활동할 때 엄청 도움이 되는 터라 사주고도 싶고, 체첸이 먹고 싶은 걸 먹고 싶기도 한데…. 언제나 체첸은 어째서 돈도 더 많이 벌고 삼촌인 내가 얻어먹냐며 언제나 단호히 거절했다. 그 단호한 게 어느 정도냐면, 언제나 린이 화를 내고 끝이 났다. 오늘도 그럴 것 같아서 린은 참은 것이다. 그래서 린도 대안을 생각해왔다.

 

  “그럼 세 개 중에 골라요. 일반 밥, 파스타, 과일.”

  “다 먹을까?”

  “아니요! 제발 상식적으로 대답해요!”

  “음…과일이라면 여기 있는데.”

  “그럼 과일 먹어요.”

 

  어쨌든 방금 전에 ‘붉은 달 스캐너 사건’이라는 엄청난 걸 맡게 된 터라 점심시간을 너무 많이 사용할 순 없을 것 같아 그렇게 정하자, 체첸은 조금 풀이 죽었다. 린은 이해가 안 되어서, 되물었다.

 

  “먹기 싫으면 다른 거 먹어요.”

  “아냐. 과일이 싫은 게 아니라, 그렇게 되면 금세 내려갈 거잖아.”

 

  린은 너무나 바보 같은 말에 할 말조차 잃고 체첸을 보았다. 체첸은 터벅터벅 냉장고 쪽으로 가서 과일을 찾아왔다. 귤하고 사과, 바나나, 딸기가 있다. 뭐 이렇게 많은 건지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뭐 하나 빼지 않고 좋아했으므로 린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린의 맞은편에 앉은 체첸은 린에게 물었다.

 

  “파트너제도, 어때?”

  “아. 알고 계셨어요?”

  “응. 내 승인 있어야 되니까.”

  “…아니면 적극 추진하신 건 아니고요?”

  “뭐, 그것도 아니진 않지. 나도 수사대 생활 해봐서 알지만, 혼자서 수사하는 것의 장점과 별개로 부상이 워낙 많잖아. 이런 인재들이 병원에 오래 누워 있는 걸 막을 수 있다면 당연히 도입해야지.”

 

  체첸이 귤을 까면서 대답했다. 아니라고는 안 하는군. 린의 예상일뿐이지만, 아마 체첸이 수사대에 신경을 쓰는 건, 린이 오기 전과 후가 매우 다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정보국장이라는 자리는 수사대의 연장선이 아니다. 보안부라는 큰 조직과 의학부라는 큰 조직을 총괄하는 자리다. 보안부 산하에 가까운 수사대를 신경 쓸 겨를은 없다. 그래야 하는 게 맞고. 린은 딸기를 먹으면서 체첸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았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제 파트너 누군진 아세요?”

  “누군데? 안 그래도 지금 그거 물어보고 싶었어. 수사대장이 말을 안 해주던데.”

  “음? 그거엔 관여 안 하셨어요?”

  “그 정도론 안 해. 지금 수사대원에 대해 내가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결정해줄 순 없잖아. 너희들을 직속으로 총괄하는 수사대장이 해야지.”

  “반이에요.”

 

  그래도 자신이 월권을 하진 않았다는 것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 것처럼 이야기하는 체첸에게서 거짓말을 한다는 느낌은 없었기에 린은 곧장 다른 딸기를 입에 집어넣으며 대꾸했다. 반? 체첸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물론 반의 실력이 좋기는 하지만…. 경험 면으로 보아선 이 둘을 붙이는 게 괜찮은 건가 싶은 것이다. 이제 곧 퇴원해서 돌아오는 케이프 쪽과도 일을 잘 해결해냈다고 하기에 그쪽이 될 줄 알았는데. 하지만 그것보다도 체첸은 린이 반과 파트너가 된 걸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반 녀석, 잘 해주냐?”

  “네, 잘 해주죠.”

  “안 돼.”

  “…뭐가요?”

  “물론 그 녀석이 나쁜 녀석은 아니다만, 너는 아직 수사대 일도 더 배워야 하고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설마….”

 

  린의 귀가 빨개지고 있다. 그리고 전에도 설명했지만, 이건 린이 부끄러울 때만 그러는 게 아니라 감정변화가 있을 때 그런 것이다. 지금의 린은 화가 나고 있었다. 체첸은 린의 표정을 보고 잘못 건드렸다는 걸 알긴 했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하고 싶었다.

 

  “만약에 반하고 이성관계가 되면 꼭 삼촌한테….”

  “이 아저씨가 진짜…!”

 

  당장 체첸을 한 대 때리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안정을 위해 린은 귤껍질을 천천히 깠다. 침착하자. 진정하자. 눈앞에 있는 사람은 아저씨가 맞지만 국장이라는 탈을 뒤집어쓰고 있다…. 회사 상관을 팰 수는 없다, 린. 진정해. 그리고 몇 번 숨을 고른 후 귤을 먹으니 다행히 천천히 진정이 됐다. 린이 조금이나마 진정한 걸 보고 체첸은 그 이전에 생각했던 것을 말했다.

 

  “그래도 좀 이례적이란 생각은 드는 걸. 1년 차랑 3개월 차를 붙여놓는 게.”

  “그렇긴 하죠? 저도 그러긴 한데…이의는 안 받는다고 하시던데요.”

  “그런 거 일일이 이의 받으면 돌아가겠니. 반이나 너나 실력을 인정받은 거 아니려나?”

  “그렇게 생각하면 감사하긴 하지만요.”

 

  순식간에 귤까지 끝낸 린은 어느 새 바나나를 까고 있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린은 먹을 것 앞에서 참으로 온순해진다. 그래서 체첸의 냉장고에는 언제나 과일이 한두 개쯤은 있다. 오늘 유독 많았던 건, 밥을 먹고 나서 그걸 빌미로 국장실에 있게 할 생각이었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체첸은 자신의 소파에 등을 기대며 지나가듯 물었다.

 

  “요새 잠은 잘 자?”

  “네, 뭐. 괜찮아요. 집에 가면 지쳐 잠드는 수준이니까..”

 

  린은 슬쩍 체첸을 보았다. 지금은 또 다른 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딴 데를 보고 있지만, 분명히 린이 꽤 오랫동안 불면증으로 고생했던 걸 기억해서 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대답한 대로 일의 강도가 있다 보니, 정말로 집에 가기만 하면 잠들었다. 물론 자고 싶은데 체첸의 숙제까지 해야 하는 게 짜증날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과일을 순식간에 다 먹은 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첸은 역시나 아쉬운 표정을 했다.

 

  “나중에 또 점심 먹으면 되죠. 잘 먹었어요, 국장님.”

  “그래. 언제든 와도 돼. 렘한테는 말 해놨으니까.”

  “렘씨가 국장님 일 안 하고 도망갈 때도 있다고 하시던데, 진짜 절대 그러지 마세요. 렘씨가 고생하는 것 같으면 제가 제일 먼저 쫓아올 거예요.”

 

  린이 경고하자 체첸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곧 국장실에서 나온 린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반도 식사를 간단히 한 모양인지 이미 자리에 와 있었다. 린은 곧장 자리로 돌아가 반에게 사과했다.

 

  “미안, 미안. 좀 늦었네.”

  “아냐. 누나, 붉은 달 스캐너로 벌어진 사건 말이야. 내가 먼저 와서 공통점이 있나 봤는데.. 잡히는 게 없어. 피의자도 피해자도 다 제각각이고, 범행시간 같은 것도 그래. 그냥 흉기만 같은 것뿐이야.”

  “정말 우연히 흉기만 같은 사건들이란 말이야? 그럼 흉기를 중심으로 사건을 끌어가는 수밖에 없겠네. 이거 만든 제작자를 찾는 수밖에.”

 

  반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린에게 뭔가를 보냈다. 파일을 열어 확인해보니, 피의자들의 증언을 정리한 자료였다. 이 흉기를 어디에서 구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건이 우발적인 사건인 게 이상하긴 했는데, 거기에 더불어 이 흉기를 근처에서 ‘주웠다’고 대답한 사람이 상당수였던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스캐너가 바닥에 굴러다닐 정도로 흔한 거라면, 지금쯤 수사대원들은 다들 과로로 사망했을 것이다. 만드는 게 복잡한 만큼 대량생산도 어려울뿐더러, 특히나 아예 새롭게 만들어진 스캐너가 주울 정도로 흔할 리가 없는데.. 반은 한 가지 가설을 세우고 있었다.

 

  “이상하지 않아? 스캐너에 일부러 ‘붉은 달’ 그림을 그려놓은 것 말이야. 분명히 자신을 알리려던 거야. 그러니까 이거, 어떤 단체에서 만들지 않았을까 해.”

  “단체에서?”

  “응. 아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단체들 중 하나겠지. D월드에 대한 실체를 까발리려는 사람들 말이야. 일단 찾아는 봤는데 관련된 단체는 없었어. 신생단체일지도 모르고..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은 있다는 거야.”

 

  이렇게 대량생산이 가능한 개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단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린도 그쪽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단체여야 자본도 있을 거고, 그래야 대량생산이 가능하니까. 스캐너를 만들 정도의 실력자도 존재해야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단체가 새로 만들어졌다면 그건 그것대로 수사대에겐 안 좋은 소식이다. 흉기가 새로 만들어진 것만 해도 머리가 아픈데, 새로운 단체까지 나타난다고 하면 조사할 범위가 또 광범위해지기 때문이다. 린은 반이 준 피의자들의 증언을 쭉 보다가 뭔가 특이한 걸 하나 발견했다. 주웠다는 건 맞는데, 그 전에 목격한 게 있는 것 같다.

 

  “반, 네가 준 자료 중에, 특이한 증언이 있어.”

  “그거 나도 봤어. 누군가가 그 스캐너를 두고 가는 걸 봤다는 거 말이지?”

 

  린이 반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반이 린쪽 컴퓨터 화면으로 어떤 창을 띄웠다. 자세히 보니 수감소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반도 그것에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던 모양인지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린은 아직 이 사람이 저지른 사건 자체에 대한 지식이 없었으므로 반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반은 간단히 설명했다.

 

  “우발적으로 그 스캐너를 사용했어. 물론 피해자가 괴로워하니 금세 사용을 중지하기는 했는데, 피해자가 의식을 못 찾고 있지. 일단은 살인미수로 수감 중이야. 어쨌든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서, 수사에는 꽤 협조적이었다고 해. 이름은 KD. 37세 남성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에 어떤 사람이 나타났다. 우울한 얼굴을 한 남자였는데, 린이 들은 나이보다 좀 더 나이를 먹은 것 같이 보였다. 수감되어 있는 상황에서 고생을 하는 건지, 아니면 원래 나이가 들어 보이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반의 말대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면 전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머리카락은 매우 얇아서, 머리숱이 없어 보이는 게 나이가 들어 보이는 원인인 것 같기도 했다. 쳐진 눈에서는 수사관이 다시 자신을 찾았다는 것에 좀 더 괴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KD씨. 수사관 반 H 미네라고 합니다.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그, 사건에 관련.. 된 겁니까? 말씀은 다 드렸지만.. 네, 협조하겠습니다.”

 

  KD는 오히려 마음을 다잡은 듯 결의한 얼굴로 말했다. KD의 눈에 보이는 건 반이 설정해 놓은 VA의 모습이다. 전화통화의 형식이므로 떠오르는 얼굴만 VA로 변경해놓았을 뿐이었다. KD는 반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에 비해 험한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얼굴에도 흉터가 있을 정도라니, 보기에 젊은 것치곤 매우 베테랑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반의 VA에는 오른쪽 입꼬리 쪽에 칼로 베인 것 같은 흉터가 있었다. 눈이나 머리카락은 평범한 갈색이었지만 말이다. KD가 흉터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반이 자신을 보자 놀라 움찔했다. 흉터가 있는 것과는 별개로 반이 웃고 있었기 때문에 사나워보이지는 않았다.

 

  “이번에 사용한 흉기를 누가 두고 가는 걸 목격하셨다고 진술하셨던데 사실입니까?”

  “아, 네…. 그 때도 말씀드렸지만 얼굴 같은 건 보지 못했습니다.”

  “작은 거라도 좋으니까 그 사람과 관련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다른 사건과도 연관성이 있는 것 같아 조사 중입니다.”

 

  KD는 생각에 잠겼다. 그 때 일은 벌써 꽤 오래 전 일이다. 형을 받고 2개월 전에 4년을 선고받고 형을 사는 중이니 말이다. 거의 1년 가까이 지난 일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떠올려주는 것이 수사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KD는 계속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자신이 사용했던 스캐너는 까만색이었다. 그리고 그것에는 이상한 붉은 색의 초승달이…아! KD는 뭔가 떠올리고 곧장 입을 열었다.

 

  “그 스캐너에, 그림이 있었습니다. 붉은 색의 초승달이요.”

  “이것 말씀하시는 것 맞죠?”

 

  반은 이미 의학부에서 특정한 스캐너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KD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닌 모양인지 잠시 기억을 되짚는 듯 시선을 바닥 쪽에 둔 채 가만히 있다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때 그 스캐너를 두고 간 남자는, 그 초승달이 그려진 점퍼를 입고 있었습니다. 등에 엄청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어요.”

 

  그림이 그려진 점퍼라고? 단순히 스캐너에만이 아니라 옷에 새기고 다닐 정도? 린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범행에 사용할 흉기를 두고 간 사람은, 자신들의 존재를 매우 알리고 싶어 하는 관심이 필요한 단체인 게 틀림없으며, 옷을 맞추고 스캐너를 대량생산할 정도의 몸집이 커다란 단체인 셈이다. 초승달 모양의 점퍼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찾아본 반은 곧 어떤 사이트를 하나 발견했다. 그걸 곧장 린에게도 전송했다. 린도 그 사이트를 보았다. 말 그대로 붉은 초승달을 자신들의 브랜드로 삼아 활동하고 있는 작은 의류공장인 것 같았다. 린은 그곳에서 점퍼를 찾기 시작했다.

 

  “반, 좀 더 자세히 설명이 필요해.”

  “KD씨, 그 점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네…. 등은 상아색이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 커다랗게 새빨간 초승달이 있었고.. 소매는 붉은 색이었습니다.”

 

  린은 KD가 설명한 점퍼를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이상한데. 여기가 아닌가? 하지만 일단 조사할 필요성은 있어 보였다. 린은 곧장 펜을 들더니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KD가 설명한 모양을 최대한 맞춰볼 요량이었다. 대충 그림을 그려 색칠한 후 반에게 보내자, 반은 그것을 KD에게 보여주었다. KD가 설명한 대로, 몸 쪽은 모두 상아색이지만, 등의 초승달과 소매는 붉은 색인 점퍼였다. 그것을 본 KD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그런 모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옷을 입은 남자가 스캐너를 그냥 두고 갔다는 말이죠?”

  “네. 상자 채로 가져다 두었습니다.. 저는 그 중에 하나를 집었는데, 사용방법까지 자세히…적혀있더군요.”

 

  반은 KD의 진술을 받아 정리하고 있었고, 린은 생각에 잠겼다. 상자에 넣어 뿌릴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고? 여태까지 진술한 피의자들 중에서 상자에 넣어 뿌렸다는 걸 말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까 KD가 가장 가까운 목격자인 셈이다. 하지만 그가 설명한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건진 정보라곤 이 점퍼 정도인가.. 반은 KD와의 통화를 끝낸 다음 린 쪽으로 걸어왔다.

 

  “정리하면 이 스캐너를 누군가가 만들어 상자에 담아 뿌리고 있다는 거고, 이 붉은 초승달 모양을 엄청 알리고 싶다는 것 정도네. 그렇지?”

  “응. 아까 네가 찾은 사이트에서는 그 점퍼가 없었어. 그래도 알아볼 필요는 있겠지. 모양이 너무 유사해. 내가 조사해볼게.”

  “그러면 난 또 다른 단체가 있나 더 찾아볼게.”

  “오케이.”

 

  반과 린이 다시 붉은 달과 관련한 쪽을 뒤지기 시작했다. 린은 그 의류업체 쪽으로 연락했다. 작은 공장 같아 보이는데, 설립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꽤 장사가 잘 되는 것 같다. 상품의 가지 수도 많다. 이것만으로 의심할 순 없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여성이었다. 이 가게는 D월드에 존재하는 가게였으므로 린은 지금 D월드에 전화를 건 것인데, 방금 전에 반과는 달리 영상통화는 아니었다.

 

  「네, 빨간 달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수사관 린느 후즈라고 합니다. 좀 여쭤볼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수사관이요? 아…네. 그러세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별로 놀라지도 않은 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여자의 목소리는 좀 낮은 편이었다. 듣기 싫을 정도는 아니었고, 어떤 남자들이 듣기엔 조금 섹시하다 느낄 수 있을 목소리였다. 아주 어른의 목소리.

 

  “실례지만 그 업체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사장입니다만. 한나라고 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저희가 조사하고 있는 사건의 피의자로 의심되는 사람이 입은 옷에 귀사의 빨간 달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판매하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혹시 아시는 것 있나요?”

  「음? 범죄자가 저희 옷을 입어도 잡혀갑니까?」

 

  어이가 없다는 듯 한나가 말을 잇자 린은 할 말이 없었다. 물론 그렇지는 않다. 그저 이 ‘빨간 달’이 너무 많이 나오니까 의심스러운 것뿐이었다. 한나가 어이없어 하는 건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린은 자신의 설명이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아니요, 혹시 판매하지 않는데 그 마크를 새긴 옷을 만드신 적이 있는 걸 묻고 싶어서요.”

  「음…그렇죠. 선물용으로 몇 개 만든 적 있어요.」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조만간 방문해도 될까요? 목격정보가 있는 옷이거든요.”

  「그러시죠. 연락만 미리 주세요. 가게에 없을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오후는 어떠십니까?”

  「오후는 곤란해요. 상품 만들어야 해서. 되도록 아침이 좋은데. 그럼 내일 오전은 어때요?」

  “그럼 그 때 뵙죠.”

 

  린은 일단 전화를 끊었다. 수사에는 협조적인 것 같다. 왜 이런 걸로 전화했나 싶은 정도의 무관심한 목소리였고.. 하지만 달의 모양이 너무 똑같아서, 도저히 연관이 없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오늘 오후에라도 찾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안 된다니 아쉽지만 말이다. 린은 그 가게의 홈페이지를 좀 더 둘러보았다.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다. 그저 평범한 인터넷 쇼핑몰이다. 방금 전에 상품을 ‘만든다’고 했으니 여기서 팔리는 건 그 사장과 몇몇 사람들이 만드는 모양이다. 수상한 점을 찾지는 못했지만.. 내일 가봐야 알 것 같았으므로 린은 일단 ‘빨간 달’이라는 가게에 대한 걸 잊기로 했다. 그리고 반을 도와주려고 그쪽을 보았는데, 반이 자신을 보고 있었는지 눈이 딱 마주쳤다.

 
작가의 말
 

  국장인 체첸이 수사대 출신이었다는 것이 놀랍지 않나요?ㅋㅋㅋ 붉은 달 스캐너 사건은 점점 규모가 커져가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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