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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두 세계 이야기
작가 : 한니발렉터
작품등록일 : 2017.12.10

문명세계에서는 꼬맹이 현상금 사냥꾼, 카슨 더 키드,
야만세계에서는 백년에 한번 나올 위대한 전사, 웅크린곰.
두 세계의 이야기.

 
Ch.2 갈망 - 06
작성일 : 17-12-13 13:11     조회 : 322     추천 : 1     분량 : 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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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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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성을 지닌 자가 길을 제시하고 모범을 보이면 범인들은 그 길을 따라간다. 자의적으로, 또는 타의적으로. 영웅이 없다면 어떤 조직도 돌아가지 않는다. 붉은 곰 씨족은 최강의 전사부족으로 칭송받고 있었으나, 내실을 따지고 보면 웅크린곰의 명성과 힘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웅크린곰은 어떤 관점으로 보나 세상의 중심이었고, 자신 또한 그것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꿈에서는 그랬어.’

 카슨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웅크린곰의 손은 크고 넓을 뿐 아니라 가늘고 날씬한 손가락이 보기 좋게 뻗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손은 작고 손가락은 두꺼웠으며 쩍쩍 갈라져 있었다. 영웅과 일반인은,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갈라지기 시작하는 것일까.

 “......그럴 리 없지.”

 카슨은 중얼거리며 주먹을 꼭 쥐었다. 트란실피나로 가면서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되었다. 애초에 트란실피나로 가는 목적이 무엇인가. 명성을 얻기 위해, 부를 얻기 위해 가는 것이다. 명성과 부만 있다면 신체의 사소한 결점 따위는 극복할 수 있다. 오히려 사람들은 특출 나지 않은 신체로 그런 위업을 이뤄낸 자를 칭송하리라.

 마음을 다잡은 카슨은 벌떡 일어났다. 이마의 땀을 닦고 심호흡을 하자 울렁거렸던 속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두통과 열은 가라앉지 않았다. 소금기 섞인 바닷바람은 차가울 뿐 아니라 따끔했고, 몸은 으슬으슬 떨려왔다. 계속 이곳에 머무르다가는 감기에 걸릴 것 같아 그는 급히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때로는 벽에 부딪히며, 때로는 바닥에 널부러진 선원의 팔을 밟아가며 자신의 해먹으로 돌아왔다. 제인과 웨던은 여전히 곯아떨어져 있었다. 얼굴에 덮은 웨던의 모자가 숨소리에 따라 오르내렸고, 제인은 드러낸 배를 벅벅 긁으며 입맛을 쩝쩝 다셨다.

 동료에게서 눈을 돌린 카슨은 해먹으로 올라가려 했다. 이상한 점을 깨닫기 전까지는. 분명 해먹 위에 놓아두었던 자신의 가방이 없어졌다. 언제나 품에 안고 다니다시피 하는 염소가죽 가방. 멀미로 제정신을 잃고 갑판으로 나간 사이 누군가 가져간 것이다.

 순간 딛고 선 널빤지가 땅으로 푹 꺼지는 느낌이었다. 그 안에는 자신의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온갖 끔찍한 생각이 뱀처럼 다리를 휘감았지만 그는 겨우 침착을 되찾았다. 당황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짐을 되찾는 것이다.

 ‘누구일까.’

 카슨은 곧바로 주변을 훑었다. 의존할만한 불빛은 옅게 타오르는 고래기름 램프뿐. 바닥에 누워 있는 백여 명의 승객들 중에 누가 범인인가. 일일이 확인해가며 정말 잠들었는지 아니면 잠든 척을 하는지 알아보는 수도 있겠지만, 그럴 필요도 없을 듯했다. 자신이 나가기 전에는 없었던 흰 가루가 바닥에 잔뜩 흩뿌려져 있었고, 그 위로 선명한 발자국이 찍혀 있었으니까.

 배가 흔들리면서 밀가루 통이 쓰러진 게 분명했다. 아니면 흥분한 범인이 실수로 넘어뜨렸던가. 어찌 되었든 상관없었다. 벽에서 램프를 떼어 멀리 비추어 보자 밀가루 묻은 발자국이 복도 저편으로 사라지는 게 보였다.

 카슨은 램프를 다시 벽에 걸어 놓았다. 이어 허리춤에서 총을 빼들고 쏟아진 밀가루를 넘어 천천히 걸어갔다. 3등 선실은 사실상 짐칸과 동의어였다. 짐짝과 인간은 같은 곳에 실렸다. 그리고 상자들이 잔뜩 쌓여 천장까지 닿은 곳에서 옅은 램프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하자 수근수근 말소리까지 들려왔다.

 “...멍청한....”

 “...꼬마 녀석, 금화....”

 “최소한 500부셀은 되겠어!”

 카슨은 말소리로 상대의 수가 얼마나 될지 가늠했다. 대략 세 명 정도. 세 명이라면 최소한 총 두 자루는 필요하다. 마침 허리에는 장전된 총 세 개가 매여 있었다. 그는 총만은 절대 주머니에 넣어 다니지 않았다.

 “무슨 꼬마녀석이 돈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다녀? 부잣집 자제분이신가?”

 이제 한 음절 한 음절 또렷하게 들렸다. 카슨은 자신의 위치에서 상자의 모서리를 따라 직각으로 꺾는다면 놈들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하자마자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철컥. 공이 잡아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주머니에 담긴 금화에 정신이 팔려있던 남자들이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나같이 때가 꼬질꼬질하고 더러운 인상이라고 카슨은 생각했다.

 “주머니에서 손 떼.”

 카슨이 말했다. 분노로 타오르기보다는 피곤으로 찌든 목소리였다. 이런 잡배들을 한두 번 봐 온 것이 아니었고, 총으로 위협하면 알아서 꼬리를 내리고 도망갔다.

 “아, 저기....”

 “우리는, 그러니까....주인 없는....”

 “주인 없는 주머니인줄 알았다고! 참말로 미안하네.”

 예상대로 행동했다. 얼굴이 사색으로 변한 건달들은 곧바로 주머니를 내려놓고 꼬리를 말았다. 삼등선실은 말만 선실이지 그냥 건달들 수용소다. 광산이 풍부한 트란실피나로 가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빈민들이나 사회의 쓰레기들이 대부분. 그리고 이런 자들은 대개 비굴한 한편 비열했다.

 “꺼져.”

 카슨이 총을 까닥였다. 하지만 건달들은 슬금슬금 물러나면서도 연신 카슨을 힐끗거렸다. 총에 맞을까봐 불안해서 그러는 것 같진 않았다. 카슨은 저 시선의 뜻을 알았다. 얕보는 거다.

 문득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웅크린곰이면 결코 당하지 않을 일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웅크린곰이 무기를 들지 않아도 그 풍채와 위용 앞에 무릎을 꿇을 터. 그런데 자신은 무기를 들고 있음에도 생긴 것 때문에 얕보이고 있다. 빌어먹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꼬마야, 그거 진짜 총이냐?”

 건달 중 하나가 대놓고 물어 왔다. 겁은 차곡차곡 접어 바다 속에 집어넣었나 보다. 분명 공이 젖히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아니면 자신이 발사하지 못할 것이라 착각하는 걸까.

 “여기서 총 쏘면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너도 탄광 폭발 사고는 들어봤지?”

 한 건달이 그렇게 말하더니 자신의 신발을 탁탁 털었다. 밀가루를 밟은 놈인 모양이다. 뿌연 가루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카슨은 저들의 위협이 택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 정도 분진으로는 폭발이 절대로 안 일어난다. 만약 그렇다면 모든 빵집은 폭탄집으로 간판을 바꿔 달아야 할 것이다. 기분이 더러워지자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고, 도대체 그 찡그림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는 몰라도 건달들이 뒤로 물러나던 발을 멈추었다.

 카슨은 잠시 고민했다. 소란을 무릅쓰고 이들에게 절도의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 할까. 무릎이나 발을 겨냥해서 쏘면 간단하다. 놈들은 아마 평생 이 일을 잊지 못할 것이다. 마음을 정하고 총구를 살짝 아래로 내린 순간, 귀에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걸로 되겠어?’

 자기도 모르게 카슨은 옆을 확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죽이고 싶지 않아?’

 목소리는 계속 들려 왔다. 카슨은 이 목소리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임을 알았다. 굵으면서도 깊은 목소리. 가수를 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을 만치 성량이 풍부한 목소리.

 ‘너도 피를 보고 싶잖아?’

 웅크린곰의 목소리였다.

 카슨은 무의식적으로 발등으로 향했던 총구를 머리 쪽으로 향했다. 그것이 상대에게는 우유부단한 것으로 보였나 보다. 건달들이 히죽거리며 다가왔다. 한 명은 아예 그의 총구 쪽으로 손을 뻗어 총을 내리려 했다.

 “위험한 총은 치우고, 꼬마야. 우리 이야기를....”

 순간 방아쇠가 당겨졌다. 공이가 화약접시를 후려치고 천둥 같은 총소리가 선실을 뒤흔들었다. 발사된 총알은 손바닥을 뚫고 궤도가 틀어져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건달이 피가 줄줄 흐르는 손을 움켜쥐며 나뒹굴었다.

 “아아아악! 손, 손이....”

 놈이 손을 총구에 가져다 대지 않았다면 머리를 꿰뚫었을 것이다. 카슨은 소름이 돋았다. 굳이 죽일 필요가 없는데도 죽일 뻔 한 것이다. 하지만 거의 본능적으로 발사한 총을 바닥에 내던지고 허리춤에서 또다른 총을 뽑아 공이를 잡아당겼다.

 건달들은 그대로 얼어붙어서 팔을 들었다. 카슨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현상금 사냥꾼으로써 살아 왔어도, 범죄자를 죽이는 것과 살인을 즐기는 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꼭 죽일 필요가 없다면 어떻게든 피해 왔다. 하지만 방금 자신은 분명 아무런 가책 없이 사람을 죽이려 했다.

 한동안 건달과 카슨은 대치했다. 건달들은 겁먹은 채 얼어붙은 것이었고, 카슨은 정신이 없어서 총만 겨눈 채 서 있었다. 우렁찬 총소리에 잠자던 승객들이 깨어나 웅성거렸다.

 “꼬맹아, 무슨 일이냐?”

 제일 먼저 찾아온 자는 제인과 웨슨이었다. 썩어도 총잡이라고, 총소리가 들리자마자 벌떡 일어나 총소리의 진원지를 찾아온 것이었다. 다른 승객들도 둘을 따라 우르르 몰려왔다.

 “별거 아니에요. 도둑질을 당해서요.”

 바닥에서 손을 부여잡은 채 울고 있는 건달을 바라보며 카슨이 차갑게 내뱉었다. 염소가죽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금화가 피에 젖어 있었다. 제인은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쯧 하고 혀를 튕겼다.

 “오징어만도 못한 새끼, 총을 들고 있는데 왜 개기냐?”

 건달은 끅끅거리는 울음소리만 내뱉었다. 그 사이 웨던은 카슨이 식은땀을 잔뜩 흘렸고, 눈에는 핏발이 선 데다 몸에서는 열이 펄펄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여 그는 카슨의 팔에 손을 얹어 총을 내리게 한 후, 자신이 총을 꺼내 건달들을 겨누었다.

 주변의 군중들은 많았지만 총잡이임이 분명한 세 명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상황이 조금이나마 정리된 것은 선장이 3등 선실로 들어오면서였다. 얼굴은 붉었고 입에서는 럼주 냄새가 났다.

 “빌어먹을, 도대체 이게 무슨 사태란 말이오?”

 선장의 질문에 웨던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선장은 더럽고 구정물이 줄줄 흐르는 건달들과 총잡이 일행을 보더니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바로 결론을 내렸다. 따라온 선원들이 건달들을 데려가 갑판 아래 골방으로 향했고, 총잡이들에게는 선장이 이런 일을 당하게 해서 미안하다며 직접 사과했다.

 카슨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상자에 몸을 기댔다. 제인이 바닥에 떨어진 금화를 주워모아 카슨에게 건넸다. 카슨은 돈자루를 허리에 찬 후 거기에서 은화 여섯 개를 꺼내 선장에게 내밀었다.

 “1등 선실로 옮길게요. 소란을 피운 죄도 있고 하니 가격은 두 배를 드리겠어요.”

 제인이 입을 떡 벌렸다. 웨던도 마찬가지였다. 구두쇠에 수전노인 카슨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지갑을 열다니. 평소에는 식사에 돈 쓰는 게 아깝다고 싸구려 감자수프에 곰팡내 나는 빵을 먹고, 너덜너덜해진 면바지를 아직까지 입고 다니는 소년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선장은 이게 웬 횡재냐 하고 곧바로 은화를 채갔다. 태도가 눈에 보이게 부드러워졌다. 럼주로 달아오른 얼굴에 주체 못할 미소가 떠올랐다.

 “술꾼 아저씨, 나도 옮겨줘.”

 “나도 옮겨주게, 선장.”

 제인과 웨던이 각각 말했다. 키살피나의 제임스타운에서 트란실피나의 맛살리아까지는 배로 일주일 거리였고, 이제 사흘 왔으니 지금 옮기면 명백히 손해였다. 그래도 그들은 아픈 카슨을 1등 칸 침대에 그냥 박아두고 싶지만은 않았다. 거기엔 동료의식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풍겨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아서였다.

 조금 전 그들이 카슨에게 느낀 것은, 명백한 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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