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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두 세계 이야기
작가 : 한니발렉터
작품등록일 : 2017.12.10

문명세계에서는 꼬맹이 현상금 사냥꾼, 카슨 더 키드,
야만세계에서는 백년에 한번 나올 위대한 전사, 웅크린곰.
두 세계의 이야기.

 
Ch.2 갈망 - 05
작성일 : 17-12-13 12:51     조회 : 328     추천 : 1     분량 : 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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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크린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새벽별을 응시했다. 소녀는 은색 머리카락을 드리워 달아오른 옆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둘 모두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혹시라도 눈이 마주쳤다면 무시무시한 살인귀의 얼굴과 그대로 대면하게 되었을 테니까.

 “...뭘 알았다는 거냐?”

 “그건....그걸 제 입으로 어떻게 말해요. 하지만 전 그런 모습도...”

 묘하게 대화가 엇박자로 돌고 있다고 웅크린곰이 느낀 순간, 멀찍이 떨어진 천막에서 목 떨림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꿀을 바른 목줄기’라는 이름을 가진 노인네의 목소리였다. 부락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부락원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외치는 포고꾼이었다.

 “전사들, 전사들- 전사들은 모이라 – 회의가 소집되었다 - !”

 웅크린곰은 벌떡 일어났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동안 혈관 속에 굳어 있던 피가 다시 흐르는 느낌. 밀물처럼 찾아오는 흥분 때문인지 몸에 열기가 돌았다. 생각하기 전에 이미 다리가 알아서 나가고 있었다.

 “저기, 저녁은....”

 새벽별이 불러보았지만 이미 웅크린곰은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는 중이었다. 새벽별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스튜가 끓는 냄비를 바라보았다. 오후 내내 온갖 여인네들에게 발품 팔아가며 모은 식재료들이 어우러지며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먹어줄 사람은 떠났는데.

 화가 치밀기라도 했는지 새벽별은 발을 치켜들었다. 냄비를 걷어 차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곧 마음이 바뀌었는지 스튜 냄비에 뚜껑을 덮어 웅크린곰의 천막 앞에 가져다 두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소녀는 부락의 남자들이 급히 추장의 천막으로 향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웅크린곰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회의가 소집된 것은 적의 접근 때문이었다. 경고의 창을 보기 좋게 무시했을 뿐 아니라 아예 꺾어놓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물론 크로우족은 아니었다. 열 명이나 되는 혈족이 고작 열흘 전에 죽었는데 또다시 도발했다면 그건 기본적인 사고능력을 의심해봐야 할 테니까.

 “아하아하. 적들의 얼굴빛은 갈색이었고 챙 넓은 밀짚모자를 썼다. 수는 열다섯 명 정도에 어깨가 높은 준마를 타고 큰 총을 손에 쥐고 있었다.”

 정찰대원인 미역머리가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원로들은 인상착의를 좀 더 자세히 물었고, 이내 결론을 내렸다.

 “와시추들이다.”

 대다수의 부족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터였다. 갈색 피부에 챙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천둥 막대기를 들고 다니는 ‘와시추’들은 남쪽 부족들의 오랜 적이었다. 수백 년 동안 피로 피를 씻는 관계가 계속되어 원한은 넓고 깊었다.

 “와시추들이 우리의 땅으로 왜 찾아온 것인가?”

 누군가가 물었다. 와시추들은 남쪽 부족들의 오랜 적이었으나, 상대적으로 북쪽에 있는 수우 족과의 접촉은 많지 않았다. 물론 우호적인 관계는 아니었지만, 대놓고 각자의 땅을 짓밟을 만치 원한이 있는 자들도 아니었다.

 “알 수 없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와시추 일행을 이끌고 있는 것은 와시추가 아니었다. 백묵처럼 하얀 얼굴에 노란색 머리칼을 한 자다. 제일 앞에 서서 말을 타고 가는데 복장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슴 가죽 옷에 모카신을 신고 있었다.”

 다시금 웅성거림. 웅크린곰은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그 정체가 누군지 알 것도 같았다. 원로들도 마찬가지인지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빌라가나다.”

 그 말을 끝으로 잠시 동안 담뱃대가 돌았다. 제일 안쪽 원을 차지한 원로와 가장 명망 높은 전사들에서 시작해 바깥쪽 원의 평범하거나 가난한 부락원들까지. 담뱃대가 한 번 도는 시간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숙고한 후에 의견을 낼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다.

 천막 안은 어느새 연기로 가득 찼다. 문가에서 서 있던 자들이 버팔로 가죽 문을 열어 짙게 깔린 연기를 빼냈다. 다시금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자, 매부리코를 한 전사가 입을 열었다.

 “빌라가나라면 ‘반가운 자’와 같은 출신이 분명하다. ‘반가운 자’도 털이 노랗고 얼굴이 햐앟지 않은가.”

 반가운 자는 모피 교역상 사무엘이라는 자였다. 부락에 종종 찾아와서 거래하고 가는 교역상으로 부락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잘 알았다. 그것이 논의에 한층 불을 붙였다. 또 다른 빌라가나가 왜 와시추들을 이끌고 이 땅에 온 것인가? 와시추들과 빌라가나의 관계는 어떤가? 빌라가나를 공격해도 될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논의가 이어졌다.

 웅크린곰은 이 모든 과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이미 천막에 들어왔을 때부터 마음을 정했다. 침입자는 죽인다. 죽여도 되는 자들이다. 만약 죽이고 난 후의 일이 걱정된다면 아무도 모르게 죽이면 될 일이다.

 “나는 겁 안 나.”

 웅크린곰이 벌떡 일어서서 소리쳤다. 좌중이 일시에 조용해졌다.

 “빌라가나든 와시추이든 우리 사냥터에 들어왔으면 적일뿐이야. 놈들은 우리 경고의 창을 꺾고 어머니 대지에 침을 뱉었어. 지금도 놈들의 더러운 장화자국이 어머니 대지에 상처를 남기고 있어. 그런데 지금 이렇게 담배연기나 피우고 있단 말이야?”

 웅크린곰이 열변을 토했다. 주변의 젊은 전사들은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곰 씨족뿐 아니라 전 부족에서 웅크린곰은 전공과 영광을 원하는 젊은이들의 우상과도 같았다. 그가 하는 말은 단 한 번도 젊은이들의 염원과 벗어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노인들은 신중했다. 영광을 획득하기보다는 이미 얻은 것을 지키고, 일생을 정리할 준비를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온건해질 수밖에 없다. 적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원로들은 웅크린곰을 존중했지만 그의 의견에 찬동하지는 않았다.

 “대화를 시도해봐야 한다. 빌라가나들은 쉽게 다룰 이들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한 친절을 베풀었어. 경고의 창을 꽂아 넣은 것으로 저들하고의 대화는 끝난 셈이야. 저들은 우리의 경고를 무시했고, 사냥터를 침범해 왔다. 가만 있으면 다른 씨족이 우리를 보고 뭐라 하겠어?”

 “경고의 창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네.”

 “남의 사냥터에 들어오면서 남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그들의 책임이지.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어. 남은 것은 응징뿐.”

 웅크린곰이 주먹을 쥔 채 좌중을 한 번 둘러보았다. 젊은 전사들이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보냈다. 당장이라도 창과 방패를 들고 뛰어나갈 기세였다. 분위기를 살피던 원로들은 모닥불가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노인을 바라보았다. 체크무늬의 긴 망토를 걸치고 백색 머리를 길게 땋아 내렸으며 머리에는 독수리 깃털을 꼽고 있는 노인이었다.

 “‘반가운 자’는 말했다. 빌라가나들은 하늘에 떠 있는 별만큼이나 많다고. 한 명을 죽이면 열 명이 온다. 이 일에는 신중해져야 한다.”

 그것은 부족 최고 원로인 대머리독수리의 말이었다. 목젖을 떨던 전사들이 천천히 조용해졌다. 웅크린곰의 명성과 권위는 드높았지만 그는 젊었다. 원로 중의 원로인 대머리독수리의 묵직한 말에는 한 발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살육을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웅크린곰은 한 발 물러서서 대머리독수리의 권위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흥분해서 소리 지르는 전사들은 오히려 자신이 나서서 진정시키기까지 했다. 자신의 욕망과 부족의 관습을 잘 조화시키는 것이 웅크린곰이 본능적으로 배운 처세술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가서 대화를 시도해 보겠다.”

 웅크린곰이 내뱉었다. 담배를 피우던 대머리독수리와 원로들이 고개를 들어 그를 응시했다. 웅크린곰은 자신 있는 몸짓으로 당당하게 부족원들을 둘러보았다. 이 일을 할 적임자는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어필하였다.

 “놈들이 우리를 이해할 의지가 있다면 나와 대화할 것이다. 우리를 적으로 여긴다면 나를 공격할 것이다. 나를 공격한다면 나 또한 저들을 적으로 대할 것이다.”

 전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웅크린곰의 이름은 이 대지에 드높았다. 부족원들은 그를 수호자이며 방패로 여겼고, 크로우족 같은 적들은 그를 악귀로 여겼다. 어느 쪽이든 유명했고, 어쩌면 와시추들 또한 그 이름을 들어보았을 수도 있다.

 원로들이 보기에도 그만한 사람은 없었다. 호전적인 상대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단순한 화술만 가지고는 어려웠다. 때로는 적당한 힘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누구를 데려 가겠나?”

 일순간 젊은 전사들의 눈이 반짝였다. 혹시라도 선착순이라고 웅크린곰이 말할 때를 대비해 미리 엉덩이를 일으키는 자들도 있었다. 대화로 끝나든 전투로 끝나든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

 그야말로 고기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요릿불만 피우는 격이었다.

 웅크린곰은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기다려 왔던 말을 할 기회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최대한 흥분을 가라앉히고, 담담한 얼굴을 유지하며 말에 잔뜩 무게를 담아 내뱉었다.

 “혼자 가겠다.”

 

 ***

 

 카슨은 벌떡 일어났다. 머리가 어지럽고 식은땀이 흘렀으며 신물이 올라왔다. 몸이 정신없이 흔들려서 그는 옆에 있는 통을 급히 움켜잡았다. 균형 감각을 잃은 게 아니라, 실제로 배가 그만큼 요동치는 터였다.

 “우욱.”

 구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카슨은 급히 손을 입으로 틀어막았다. 배는 신바람 난 아이마냥 왔다갔다 춤을 춰대고 있었고, 해먹도 진자처럼 왔다갔다 요동쳤다. 다만 제인과 웨던은 이미 이골이 난 듯 코까지 골며 잘 자고 있었다. 다른 선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있다간 복도에 토사물을 쏟아낼 것 같아 카슨은 급히 갑판으로 올라갔다. 3등 객실의 썩어가는 나무가 불안하게 삐걱거렸다. 사람들 코 고는 소리, 짐짝에 담긴 물건들이 부딪히는 소리, 벽의 판자가 수축했다 팽창하는 소리가 귀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토할 뻔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감방 같은 선실을 빠져나와 갑판으로 나온 카슨은 뱃전을 꼭 붙잡고 매달렸다.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계속 구역질했다. 우웩. 우웨엑. 먹은 게 없어서인지 나오는 건 신물밖에 없었다.

 “후우.”

 겨우 속이 진정되자 뱃전에 등을 기댔다. 차가운 북풍이 불어와 땀으로 젖은 몸을 식혀 주었다.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며 카슨은 팔을 축 늘어뜨리고 눈을 감았다. 방금 전 꾼 꿈의 감각이 현실처럼 생생했다.

 좁은 공간에 자욱한 담배 연기, 젊은 전사들의 흥분, 웅크린곰의 자신만만한 연설까지. 모두가 그를 우러러보았고 모두가 그를 존중했다. 한 마디 말에도 부락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동작 하나하나에 젊은 전사들은 열광했다.

 그것이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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