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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사랑에 관한 여섯 가지 필름
작가 : 이류수
작품등록일 : 2017.11.6

입방정 저주의 유전자를 타고난 그녀에게 한 남자의 6색 사랑이 몰려온다…… 인생 최대의 소란이자 변수.이것은 저주일까, 행운일까?

 
제 22화. 견디고 기다리면
작성일 : 17-12-13 09:50     조회 : 325     추천 : 0     분량 : 4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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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학기엔 좀 어렵겠네요.”

 

 학과장실에서 나온 소란은 가슴에 구멍이 난 듯 먹먹했다. 시대적인 흐름을 혼자만의 힘으로 막아보기란 어려운 걸까. 여기저기서 ‘인문학 회생’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결국은 모두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 대학에서 벌어지는 학과 통폐합 1순위 목록에는 언제나 인문학 전공들이 버젓이 자리했다.

 

 “우리 학굔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는데 결국 잘 안 됐네요. 하긴 다른 대학들도 사정은 마찬가지겠지만요.”

 

 소란의 지인 중에는 철학이나 사회학, 언어학, 사학 등의 박사학위를 갖고도 여전히 실직 상태인 이들이 많았다. ‘교양학과’란 이름으로 관련 학과를 한데 묶어버리거나 하루아침에 전공을 없애버리는 현실 때문에 변변한 강의 자리조차 꿰차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란이 ‘사회학’이란 학문을 택할 때만 해도 나름의 큰 꿈이 있었다. 고교 때 무심히 빠져든 조르주 페렉은 ‘존재’와 ‘사회’라는 불가분의 관계를 삶과 문학 속에 녹여낸 소설가였다. 그의 존재론적 화두에 매료돼 사회학을 택했고, 깊이 들어갈수록 점점 더 매력적인 학문이란 걸 깨달았다.

 

 “그나마 사회학은 교양 과목으로 활용하기 무난하니까 아주 희망이 없진 않아요. 다음에 기회 되면 진 선생한테 꼭 강의 드릴게요.”

 

 학문의 효용 가치를 따지는 기준은 무엇일까. 조르주 페렉이 살았던 20세기 파리에서는 적어도 ‘취업’이나 ‘실용성’이 학문의 존재를 판가름하는 잣대는 아니었을 터. 소란은 목구멍부터 가슴까지 숨이 턱 막혀왔다.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야. 5년 전에 인문 계열은 싹 다 하나로 묶어버렸어. 요즘엔 그마저도 없애버려야 한단 의견이 많아. 이게 대학인지 학원인지 모르겠다. 할아버지 학교긴 하지만 갈수록 한심한 기분이 들어.”

 

 안일도 그녀의 처지에 적극 공감해 주었다. 공감은 공감일 뿐 그 역시 마땅한 대안은 없었다.

 

 “그래도 너한텐 댄스가 있잖아.”

 

 일상의 숨통과도 같던 댄스는 어느새 실업을 구제하는 ‘보험’이 되고 말았다. 삶은 종종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튀기 마련인가 보다.

 

 “우리 학교 강사들 보니까, 강의라면 부산 찍고 광주 찍고 어디든 나가더라. 힘들게 공부해서 그게 뭔 짓이냐? 언제까지 이렇게 국가적인 낭비를 계속해야 하는 건지, 쯧.”

 “그러게. 학생들 취업은 취업대로 안 되고, 전문 인력은 제대로 활용도 못하니 말이야.”

 

 이제 곧 서른이었다. 30대가 되면 미래에 대한 불안 따위 없어질 줄 알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20대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고 나면 빛 한줄기쯤 내리쬘 줄 알았다.

 

 “나도 좀 알아볼게.”

 “그래, 고마워.”

 “최 본부장한테도 한번 부탁해 봐.”

 “그건 싫어.”

 “하긴. 아무리 사귀는 사이여도 자존심이란 게 있으니까.”

 

 그에게는 이미 여러 번 마음의 빚을 졌다. 더 이상 빚쟁이 같은 연인이 되기는 싫었다.

 

 “근데 최 본부장이 우리 출판팀장한테 나에 대해 꼬치꼬치 묻더래.”

 “뭐?”

 

 소란의 가슴이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미 시작될 것일까, 그의 마니아형 사랑이?

 

 ***

 

 딸깍딸깍. 변수가 손에 쥔 볼펜을 쉴 새 없이 딸깍거렸다. 머릿속에 둔중한 돌덩이가 들어 있는 느낌이었다.

 

 “문학이랑 정치 관련 책이 주로 상위에 있어요. 아무래도 올해의 책은 두 분야에서 나올 것 같습니다.”

 “…….”

 

 대꾸가 없자 모두의 시선이 변수의 얼굴로 모아졌다.

 

 “본부장님!”

 “아, 네.”

 “특히 정치 서적 판매량이 전년 대비 21.5%나 올랐습니다. 대선 특수 때문에 대통령 관련 책이 인기를 끌었던 게 주효했던 거 같아요.”

 “그렇군요.”

 

 소란을 생각하면 거슬리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타이트한 의상을 입고 댄스 수업을 하는 그녀, 남사친인지 뭔지 알 길 없는 무안일 주임, 댄스 강사가 여간 예쁘지 않다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던 송 대리와 김 팀장…… 하나같이 거슬리는 것투성이였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추가 보고 사항이 있으면 개별적으로 찾아와 주세요.”

 

 하다 만 듯 끝나버린 회의가 어색한지 모두들 쉬이 자리를 뜨지 못했다.

 

 “본부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윤 팀장이 슬며시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은요. 좀 피곤해서요.”

 “연말이라 일이 좀 많긴 하죠.”

 “윤 팀장님도 댄스 수업 들으시죠?”

 “네. 댄스 배우고부터 생활에 활력에 돈답니다. 다른 직원들 만족도도 아주 높은 거 같아요.”

 

 배시시 웃는 그를 보니 변수의 뒷목이 당겨왔다.

 

 “왜요? 왜 활력이 돕니까?”

 “네? 그게,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아무래도 새로운 걸 배우고 또 몸을 움직이다 보니…….”

 “혹시 댄스 강사도 활력에 일조하나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건 아니다 싶었다. 직원들의 사기 진작과 건강을 위해 복지 차원에서 마련한 강좌가 아니던가. 그것도 본인이 직접 기획한 일이었다. 직원들의 평을 종합하면 그의 기획은 성공한 셈이었다. 그런데 왜?

 

 “본부장님, 지난번 말씀하신 B대학 무안일 주임 말인데요.”

 “아, 네. 알아보셨어요?”

 “외조부가 이사장이라 대학 졸업하고 바로 근무하기 시작했대요. 출판팀에 있다가 산학협력팀으로 옮긴 지 얼마 안 됐고요. 수더분하고 무난한 성격이라 직원들 사이에서 낙하산이란 인식도 별로 없나 봐요.”

 

 변수도 그의 무던함에 대해선 익히 아는 터였다. 세상만사 욕심이라곤 하나 없이 그저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 중의 소시민. 그런 평범함이 소란과의 9년 우정을 유지할 수 있던 비결이었을까. 어찌되었든 두 사람이 오랜 친구라는 사실 자체가 변수에게는 자꾸만 거슬렸다.

 

 “대학 생활은요? 소란 씨랑 어떤 관계…….”

 “저기, 본부장님!”

 

 송 실장이 더 이상은 못 들어주겠다는 듯 그의 말을 잘랐다.

 

 “그러니까 소란 씨랑은 어떻게 친해졌는지, 혹시 사귄 적은 없는지, 뭐 그런 건 안 알아보셨어요?”

 “변수야!”

 

 송 실장이 먼저 형제 모드로 전환하는 일은 드물었다. 변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왜?”

 “너 진짜 왜 그래? 소란 씨랑 또 무슨 문제 있어?”

 “문제는 무슨. 우리 요즘 너무 좋은데?”

 “근데 왜 이래. 소란 씨 주변 사람을 왜 캐고 다니냐고!”

 

 송 실장의 채근에 그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럴싸한 변명조차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게. 내가 왜 이러지, 형?”

 “뭔데? 대체 뭐가 문젠지 속 시원히 말해 봐.”

 “그러니까, 뭐라 딱히 꼬집어 말할 순 없는데, 소란 씨 생각하면 자꾸 찝찝해. 소란 씨 주변 남자들이 신경 쓰이고, 누가 예쁘단 말만 해도 그 입을 틀어막고 싶어.”

 “음.”

 

 송 실장의 얼굴이 자못 심각해졌다. 변수가 연애를 시작한 후 전에 없던 모습을 자주 보인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걱정스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소란 씨한테 의심할 만한 낌새 같은 게 있었어?”

 “아니, 전혀.”

 “그럼 아무 것도 아니야. 그냥 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잖아.”

 “그런 거 같아.”

 “여기서 더 가면 병이다. 좋은 말 할 때 당장 관둬!”

 

 송 실장의 단호한 한마디가 그의 가슴에 비수처럼 와 닿았다. 그랬다. 이 모든 것은 언젠가부터 그의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었다. 사랑스러운 그녀가 언제나처럼 그의 곁에 있지 않은가.

 

 ‘이건 정말 아니야. 여기서 멈춰야 해!’

 

 ***

 

 “이렇게 뵙게 되네요.”

 

 연신 미소를 머금은 미련이 두 남자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낮에 로펌 면접은 어떠셨어요?”

 “네, 꽤 호의적이었어요. 여러 가지 조건들도 좋고요. 긍정적으로 검토 중입니다.”

 “다행이네요.”

 “이번 일에 신경 써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지난번 저자 강연회도 그렇고.”

 

 훈남의 인사치레가 그의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변수는 줄곧 소란의 안색을 살폈다.

 

 “오빠, 두 사람 너무 잘 어울리지 않아요?”

 “그러게. 소란인 중학교 때 잠깐 봤던 기억이 나는데. 이렇게 멋진 여자로 자랄 줄이야.”

 

 훈남의 칭찬에 그가 심드렁하게 반문했다.

 

 “왜요? 중학교 땐 별로였나 보죠?”

 “아, 아니요. 별로였던 게 아니라 그땐 완전히 어린애였죠. 어른이 된 모습은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좀 놀랐죠.”

 

 그가 스테이크를 잘라 소란의 접시에 놓아주었다. 미디엄 웰던으로 구웠음에도 선홍색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소란 씨 어릴 땐 어땠는지 궁금해요. 고모님이 얘기 좀 해주세요.”

 “중학교 때부터 춤에 빠져서 코빼기도 보기 힘들었죠. 그래도 다행인 건 공부의 끈을 놓진 않더라고요. 기특하게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죠.”

 “쫓아다니는 남자들도 많았겠네요?”

 

 그의 질문에 소란은 긴장했다. 불안감 때문인지 스테이크가 잘 씹히지 않았다.

 

 “남자는요. 춤추고 공부하느라 바빴죠.”

 

 소란은 어떻게든 화제를 돌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신은 자신의 편이 아닌 모양이었다.

 

 “댄스 동아리에서 로맨스가 꽤 있었을 걸요. 아이돌로 데뷔한 남자애랑도 사귄 적 있었답니다, 호호.”

 “고모!”

 

 속없이 주절대는 미련의 입을 어떻게든 틀어막고 싶었다.

 

 “어머머, 내가 괜한 소릴 했네. 아이돌 그 자식이랑은 별로 오래 안 갔어요. 그 놈 데뷔하자마자 바로 채였거든요.”

 

 소란의 눈에 어린 절망의 빛을 눈치 챘는지 그녀도 더 이상은 말이 없었다. 소란은 그의 안색을 슬쩍 살폈다. 자신의 접시 위로 하나둘 옮겨오던 스테이크도 뚝 끊긴 지 오래였다. 그의 독점욕과 질투심을 자극하고 만 걸까. 에이, 설마 학창시절 사귀던 나부랭이 녀석한테?

 

 “변수 씨, 우리 밥 먹고 뭐 할까요?”

 “글쎄요. 회사에 일이 있어서.”

 “네? 그런 말 없었잖아요.”

 “그렇게 됐어요.”

 

 그의 말이 단답형으로 짧아졌다. 냉랭한 시선조차 더 이상 소란에게로 향하지 않았다.

 

 ‘정말 마니아형으로 바뀐 건가?’

 

 그녀는 비로소 저주 키워드의 전환을 확신했다. 자신에게 닥친 네 번째 사랑 키워드를 무사히 버텨낼 수 있을까. 견디고 기다리면 이 또한 지나가게 될까.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 야고보서 5장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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