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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백의 가면
작가 : 베르니타
작품등록일 : 2016.9.3

열 번째 생일, 눈을 뜬 '조'는 방금 막 자신이 케이크 앞에서 촛불을 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뒤로 심한 두통과 함께 갑자기 모든게 이상하게 낯설기만 한 조는 매일밤 알 수 없는 꿈을 꾸고 고통스러워한다.
백합향기가 나는 아름다운 엄마. 두통의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사랑하는 조는 자신의 고통을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과 똑같이 아버지가 없는 소녀 '아만다'를 만나게 되는데.......
합리화 할 수 없는 죄에 대한 대가가 한 아이를 통해 치루어지는 이야기.

 
열 번째 생일
작성일 : 16-09-04 19:09     조회 : 461     추천 : 0     분량 : 5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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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은 나의 열 번째 생일이었다. 눈을 떴을 땐 뿌연 연기 사이로 활짝 웃고 있는 엄마의 입술이 보였다.

 “생일 축하해!, 사랑하는 조!”

 아래에는 막 꺼진 촛불 연기가 내 코 속을 점점 메우고 있었고 화이트 초콜렛과 쿠키로 데코레이션이 된 케이크 위에 가득 떨어진 빨간 촛농이 보였다.

 알록달록한 긴 초가 열 개. 분명 엄마와 나는 오늘 아침에 비싸지만 맛있기로 유명한 ‘피오나 베이커리’에 갔었다. 엄마는 일주일 전쯤에 내게 어떤 케이크가 좋겠냐고 물으셨고 나는 ‘피오나 베이커리의 케이크면 다 괜찮아!’라고 대답했었다.

 “조! 왜 그래?”

 엄마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엄마의 생일축하 노래가 끝나고 촛불을 불었다. 그러고 난 후 초점을 잃고 멍하니 멈춘 것이었다.

 필름이 촤르르 풀려 엉켜 버린 듯 머릿속에서 맴도는 방금까지의 모든 기억들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터질 듯한 두통이 찾아왔다.

 헝클어진 곱슬머리를 아무렇게나 질끈 묶었으나 그 마저도 우아함이 풍기는 여인, 옅은 갈색이 매혹적인 엄마의 눈은 나를 또렷이 응시하고 있었다.

 “괜찮니?”

 나는 엄마의 흔들리는 동공에서 자식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이 한가득 고여 있는 것을 보았다.

 엄마는 내 어깨를 조심스레 잡았다.

 

  ‘삐익-’

 커다란 굉음과 함께 귀에 불결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 소리와 함께 진득하게 느껴지는 이질감이 불쾌한 어떠한 존재로부터 비롯된단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문득, 갑자기 내가 있는 이 곳, 함께하는 사람이 낯선 곳, 낯선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 사람이 나의 엄마라는 것도, 식탁 옆에 자리 잡고 있는 낡은 피아노와 퀼트 인형들이 선반 곳곳에 가지런히 놓아진 이 공간이 나의 집이란 것도,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것도,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다는 것조차도, 익숙하면서도 소름끼치도록 낯선 기분이었다.

 나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도망가듯 내 몸이 기억하는 안락한 장소로 뛰어갔다. 2층의 다락방. 문을 열었을 때 옅게 들리는 쇳소리도 나를 극심한 불안함에 빠지게 했다. 다시 계단을 내려가려 했지만 두통에 쓰러질 것 같았으므로 구석의 낮은 침대에 누웠다.

 하늘색 페인트가 덕지덕지 칠해진 벽에는 모형비행기가 어설프게 매달려 있었다.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향긋한 백합의 향기가 은은하게 났다. 부드러운 천의 느낌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심장소리가 잔잔히 들렸다. 오랜 시간동안의 피로가 한 순간에 풀리는 것 같았다.

 “조?” 엄마가 나를 감싸 안은 채로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벽에 붙어있던 모형비행기가 눈 바로 앞에서 대롱대롱 매달려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머리가 여전히 지끈거렸지만 처음 보다는 덜했다. 창문으로 들어온 노을이 바닥까지 비추었다. 나는 여전히 걱정 가득한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두 손을 꼭 잡았다.

 “엄마.”

 “괜찮아?”

 내가 내뱉는 말 한마디, 내 목소리조차 전혀 적응 되지 않으면서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네, 괜찮아요.”

 “사랑하는 우리 아가, 아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엄마는 나를 안았다.

 “그래, 저녁을 먹으러 가자. 점심도 못 먹었으니까 배가 많이 고플거야.”

 

  우리는 택시를 타고 시내의 조그마한 레스토랑으로 갔다. 저녁시간이라 손님이 붐빌 만도 한데 생각보다 한적했던 그 곳에서 나는 스테이크와 치킨 샐러드를 시켰다. 사실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지만 가만히 있기만 하다간 두통이 더 심해질 것 같았다.

 식전스프와 바게트가 나왔다. 엄마는 메뉴판을 다시 들여다보며 물었다.

 “감자칩은 왜 주문하지 않은 거니? 감자칩을 좋아하잖아.”

 내가 감자칩을 좋아했었던가. 좋아했던 기억은 머물고 있었지만 정말 내가 좋아했던 건지 의심스러웠다.

 역시나 무언가가 이상했다.

 “오늘은 먹지 않을래요.” 엄마는 다시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늘 먹던 감자칩을 오늘은 안 먹는다고? 달콤한 치즈가 듬뿍 뿌려진 감자칩을?”

 “음, 좋아요. 먹을게요.”

 “몸이 아직 안 좋은 거니? 오, 우리 불쌍한 조.”

 “아니에요, 정말 아프지 않아요.”

 나는 보란 듯 스프를 씩씩하게 들이키고 두툼하게 잘라진 바게트에 버터를 가득 발라 입으로 넣었다.

 “여긴 식전 스프가 정말 맛있네요. 버터도 고소해요. 맛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로 자주 오잖아.” 엄마는 감자칩을 주문했다.

 “조. 아까 네가 방으로 달려갔을 때 말야......”

 나는 버터칼을 집다가 내려놓는 엄마의 표정을 보지도 않고 바게트를 계속 입에 넣었다.

 “그냥 잠시 어지러웠던 것뿐이에요. 자고나니 이렇게 괜찮아 진걸요.”

 엄마가 버터 칼을 다시 들기 전까지 나는 하던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비타민을 좀 먹어야겠어요. 누가 그러던데 비타민을 먹으면 두통이 괜찮아진대요. 아니면, 과일을 자주 먹어야겠어요. 몸에 좋은 채소도 먹고.......”

 치킨 샐러드에는 올리브도 있었다. 나는 올리브를 먼저 골라먹은 후 양상추를 먹었다.

 “그래, 조. 많이 먹으렴. 널 위해 가장 비싼 비타민을 사야겠어.”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시내의 광장으로 걸어갔다. 여우비가 조금씩 내렸지만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기억하기론 어릴 때 종종 엄마와 함께 이곳에 와서 산책을 했었다. 광장 중앙에는 커다란 꽃을 들고 있는 여신의 동상이 있었고 제목은 ‘봄의 기다림’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에 지어진 이 동상 앞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광장의 번쩍이는 조형물 위로 내 얼굴이 비쳤다. 10살, 검정색의 곱슬머리, 158cm의 키. 또래보다 마른 체형, 주근깨가 조금 있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앳된 소년. 엄마를 꼭 닮은 갈색의 큰 눈동자. 사람들은 늘 ‘눈이 엄마를 닮아 참 예쁘구나!’라며 칭찬을 했었다. 그런데, 이런 기억들을 떠올리는 이 순간 조차도 모두 선명한 듯 희미하단 것을 느꼈다. 뭐랄까, 나는 10살, 곱슬머리, 양 볼에 주근깨가 조금 뿌려져 있는, 피부가 까무잡잡한, 옅은 갈색의 큰 눈동자를 가진 조가 맞고 떠오르는 기억 속의 나는 내가 맞는데 ‘온전한’ 내가 아니랄까. 10년 동안 보아왔던 내 얼굴이 맞지만 확신할 수 없는 느낌. 이상하리만큼 낯선 공기. 그리고 잊을만하면 온 머리를 지끈대는 두통은 나는 나이면서도 내가 아니도록 만드는 것 같았다.

 

  광장을 지나쳐 우리는 약국에서 비타민을 사고 옷 가게 앞에 섰다.

 “조. 쇼윈도우에 보이는 저 옷, 참 멋지지 않니?”

 “네, 멋지네요.”

 “오늘 생일이니까 엄마가 옷을 선물로 주고 싶어. 들어가서 입어보자.” 엄마는 나의 손을 잡고 가게로 들어섰다.

 점원은 친절하게 안내했다.

 “어서 오세요, 어떤 옷을 찾으세요?”

 “저 앞에 진열되어 있는 것 좀 보여주시겠어요? 이 아이에게 맞는 사이즈로요.”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요즘 유행하는 디자인이랍니다. 옷감도 좋구요.”

 그는 내 겉옷을 벗게 하고는 탈의실로 안내했다.

 “이 쪽에서 입어보렴. 안에 문고리가 있어서 잠글 수 있어.”

 나는 옷을 입어보았다. 커다란 나비넥타이에 줄무늬가 들어간 하늘색 스웨터였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나를 보고 엄마는 기뻐했다.

 “와, 우리 아들 최고야! 멋진걸!”

 그리고 돌아서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다니까.”

 .

 

  나는 새 옷을 입고 엄마와 택시에 올라탔다.

 콧수염을 길게 기른 택시 기사는 미러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오, 꼬마야. 아주 멋진 옷을 입었구나. 엄마가 사주셨니?”

 “네, 방금요.”

 “그래, 엄마가 생일 선물로 좋은 것을 해주셨구나.”

 나는 어떻게 내 생일인 것을 아냐고 다시 묻고 싶었으나 택시 기사가 아무 생각 없이 이것저것 던져본 말이라 생각하여 입을 열지 않았다.

 뒷모습만 봐도 덩치가 내 몇 십배는 되어 보이는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행복하겠구나. 그래.......”

 그는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가는 트럭에 잠시 불만을 표시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꼬마야, 혹시나 꿈을 꾸게 된다면 말이다. 네가 피해자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단다.”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았다. 그의 표정을 보려고 했으나 고개를 숙인 그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운전대를 잡은 그의 팔뚝의 힘줄이 꿈틀대는 것만 선명하게 보일 뿐이었다. 엄마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평화롭게 눈을 감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내 스웨터를 친히 벗겨 주시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겨 주었다. 나는 다 커서 혼자 할 수 있다고 몇 번이나 거절했지만 엄마는 ‘내가 그저 해주고 싶은걸.’이라고 말하며 비누칠을 해주었다. 엄마의 보드라운 손길은 나에게 큰 안정감을 주었으며 아까의 고통스러웠던 두통도 잊게 했다. 동그란 비누 거품이 엄마의 머리끝에 앉았고 나는 손을 뻗어 그것을 잡았다. 손 아래로 내 발을 씻겨주는 엄마의 기다란 속눈썹이 보였다. 아름다운 여인, 나의 엄마. 우아한 백합향기가 아름답게 풍기는 나의 엄마. 아늑한 포근함. 이건 내 일상. 이질감이 끊임없이 느껴졌으나 이 생활은 오래전부터 내 것임이 분명했다. 아니, 내 것이 아닐지라도 내 것이어야 햇다. 이러한 생각에 나는 따뜻한 만족감과 함께 날이 설만큼의 강렬한 소유욕을 느꼈다.

 

  엄마의 부드러운 입맞춤을 마지막으로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꿈을 꿨다.

 

 [짙은 안개. 나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짙게 뿌려진 안개 속에 있었다.

 그 곳은 산이었다. 나는 산을 오르고 있었다. 하얀 안개가 사방을 가득 뒤덮어 앞을 볼 수 없었지만 나는 올라가야만 했다. 온 신경을 발끝에다 집중하여 돌부리에 넘어지지 않도록 한걸음씩 디뎌갔다. 나는 성인이고 매우 말랐으며 꾀죄죄한 차림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촉박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상이 어딘지도 사실은 몰랐다. 행여나 안다고 하더라도 안개에 가려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계속 올라가다 보면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므로, 그 곳이 이 산의 정상일 것이므로 입술을 질끈 깨물고 올라갔다. 최대한 빨리 도착하기 위해 보폭을 더 크게 넓혀 발을 딛기도 했다. 산의 고요한 기운과 나무의 비린내가 알 수 없는 퀴퀴한 냄새와 뒤섞여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올라가다 사방을 밝히는 밝은 빛과 마주했다. 빛의 가까워질수록 안개 또한 사라졌다. 미친듯이 빛을 따라가자 그 곳에는 아주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산이 얼마나 크면 이런 나무가 뿌리를 내릴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거대한 나무였다. 탐스런 붉은 열매가 흐드러지게 열려 있었고 이제껏 보지 못한 아름다운 꽃이 나뭇가지마다 열려있었다.

 ‘조금만 쉬었다 갈까.’ 급하게 산을 오르기만 하느라 잊고 있었던 갈증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저 열매를 한 입 베어 물 수 있다면’

  따스한 빛이 오묘하게 감싸고 있는 그 나무 아래에서 잠시라도 앉아 숨을 돌리고 싶었지만 나는 이내 생각을 바꿨다.

 ‘나는 가야해. 그녀를 살려야 해.’

 신고 있던 운동화가 너덜너덜 해져 벗겨 질 것만 같았다. 땅 위로 삐져나온 넝쿨 줄기를 뜯어서 운동화 밑창을 동여매고 꽉 조았다. 나무가 너무 컸기 때문에 지나가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짙은 안개가 다시 서리기 시작했다.

 흐드러진 열매가 자꾸 떠올랐지만 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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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 번째 생일 2016 / 9 / 4 462 0 5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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